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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쿄 올림픽 화제 인물, 13세 영국 국가대표 스카이 브라운

    스카이 브라운(13)은 영국의 스케이트 보더로, 도쿄 올림픽에 역대 최연소 영국 국가대표로 선발됐습니다. [Jordan Matter Youtube]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영국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스카이 브라운 선수로 올해 13살의 소녀입니다.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이 하는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이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요.” 

     

    실제 브라운은 8살에 2016년 프로 스케이드보드 대회에 최연소로 출전했고, 2019년 11살 때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 스케이트보딩 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해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X게임'에서는 '프론트사이드 540도'의 기술을 성공시킨 최초의 여성이 됐습니다. 

     

    시련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훈련 도중 크게 넘어져 두개골이 골절되고 왼쪽 손목과 손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병상에서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제가 경험한 최악의 추락 사고였어요. 하지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다시 일어나 더 강하게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는 어려운 지역의 또래 소녀들이 스케이트보드를 즐길 수 있도록 후원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어려운 지역을 찾아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치는 겁니다. 보드를 탈 때면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잊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어서 팝니다.” 

     

    스케이트보드 판매수익금은 모두 스케이티스탄(Skateistan)을 통해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의 아이들의 교육과 스케이트보드를 전달하는 데 기부가 됩니다. 스케이티스탄은 스케이트보드를 매개로 아이들에게 교육, 급식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엔지오입니다.

  • 솔라카우, 아프리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다

    소는 누가 키우나?

    아프리카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라고 하면 부모들이 보이는 반응입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시골 가정에서는 생계로 소와 양을 키웁니다. 가축을 돌보는 일은 주로 아이들에게 맡겨지지요. 부모들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면 일손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게다가 여자 아이들은 10대 중반이 되면 시집을 보내는 곳도 적지 않아 교육을 받을 기회는 더욱 적습니다.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은행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는 부모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조건부 현금 지급(CCT: Conditional Cash Transfer) 제도를 가구당 월 13달러를 지급했습니다.
     
    부모들은 당연히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습니다. 아이들에 일을 시켜 벌 수 있는 돈을 공짜로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지요. 하지만 이는 재정문제 때문에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기업 요크(YOLK)는 다른 데서 답을 찾았습니다. 바로 태양이지요.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태양광 에너지입니다.
     
    아프리카는 빈곤층이 많지만 휴대폰 보급률은 90%를 훨씬 넘습니다. 교통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해 이곳 사람들은 많은 일을 휴대폰을 통해 해결합니다. 금융은 물론 공공기관에서 처리해야하는 일도 그렇습니다.
     
    생계에 꼭 필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휴대폰을 장만하기는 하지만 가난한 이들에게는 충전이 큰 문제입니다. 소득의 10% 가량이 충전비에 쓰인다고 합니다.
     
    게다가 전기 인프라가 부족해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소득의 10% 이상을 배터리 충전에 쓰고 있다고 합니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하루 4시간씩 걸어서 충전소를 찾아가기도 합니다.
     
    장성은 요크 대표는 이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아디이어가 떠올랐습니다. 학교에서 태양광으로 충전한 전기를 나눠주면 아이들을 학교에 오게 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태양광 전기 충전 시스템 솔라카우(Solar Cow)입니다. 솔라카우는 소 모양의 철골 구조에 태양광 모듈이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충전지를 꽂는 슬롯이 붙어 있습니다.
     
    등교한 아이들이 맨 먼저 하는 일이 솔라카우에 충전지를 꽂는 일입니다. 충전지에 전기가 가득 채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시간.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고 하교할 때 충전된 보조배터리를 들고 집으로 갑니다.
     
    솔라카우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면 부모들에게 필요한 전기를 공급하는 보상 시스템인 셈입니다.
     
    아이들은 아동노동에서 벗어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부모들은 아이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준의 대가를 전기로 받아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필요한 일에 씁니다.
     
    무엇보다 공짜로 무한히 쏟아지는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세계은행의 현금 지급에 비해 지속가능성 월등하게 높습니다.
     
    솔라카우 한 ‘마리’는 250가구에서 쓸 수 있는 태양광 에너지를 생산합니다. 아이들이 들고 와 충전해 갖고 가는 보조배터리 1개의 용량은 2900mA입니다. 휴대폰 한 대를 충전하고도 전등 4시간을 켤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요크의 첫 번째 솔라카우 프로젝트는 2018년 케냐의 오지 마을 포콧의 한 학교에서 시작됐습니다. 지금은 케냐 3곳, 탄자니아 2곳, 캄보디아 1곳의 학교에 총 8대가 설치됐습니다.
     
    요크의 아이들 학교 프로젝트의 성과는 어땠을까요? 2년간 성과를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학교에 출석하는 비율이 10% 늘었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가정의 숫자도 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크게 높아졌다고 합니다, 자신이 가족에게 필요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준 겁니다.
     
    솔라카우에는 많은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구글에서 관심을 가졌고 로이터, 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보도됐고 미국 시사주간지는 솔라카우를 ‘최고의 발명품’으로 선정했습니다.
     
    요크는 솔라카우 프로젝트를 케냐 뿐 아니라 탄자니아, 콩고 등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 확대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태양처럼 빛나는 희망을 심어주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습니다.

  • 6년전 최저연봉 7만달러 실험한 회사 지금은?

    2015년 미국 시애틀의 카드 결제 시스템 회사 그래비티 페이먼츠의 CEO인 댄 프라이스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발표를 했습니다.

     

    당시 110만 달러이던 자신의 연봉을 90% 줄이는 대신 직원 117명의 최저연봉을 3년 안에 7만 달러까지 올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프라이스는 자신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2015년 5만 달러에서 시작해 2016년 6만 달러, 2017년 7만 달러로 직원들의 최저연봉을 인상했습니다.

     

    최저 연봉 기준을 7만 달러로 잡은 이유는 ‘인간은 7만달러의 연봉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연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카너먼 교수는 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프라이스의 결정을 무모한 실험이라고 봤습니다. 폭스뉴스는 그를 사회주의자라며 직원들이 조만간 식량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서게 될 것이라고 냉소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득이 높아지면 직원들의 행복도가 높아지고 이는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비티 페이먼츠는 어떻게 변했을까요?

     

    미국 경제 전문지 보도에 따르면 그래비티의 고객은 2배 늘고 거래 규모는 2015년 38억 달러에서 102억 달러로 268% 증가했습니다. 수익도 3배가 뛰었습니다. 고객 이탈률은 미국 평균치인 25%를 밑돌았습니다. 

     

    프라이스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집을 산 직원이 10배 늘고 아기를 가진 직원도 10배 늘었다”며 “직원의 70%기 빚을 완전히 갚았고 이직률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직장에 만족한 직원들은 회사의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하고 이직률이 낮아진 데다 입사지원자가 너무 많아 사람을 찾는데 돈과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비티 직원들의 급여도 매년 인상돼 현재 평균 연봉은 10만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힘든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 3월 수익이 55%나 줄어서 큰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프라이스는 해고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프라이스는 전 직원을 모아 놓고 회사의 어려운 상황을 솔직하게 알렸습니다. 회의가 마칠 때쯤 직원의 98%가 일시적 급여 삭감을 신청했다고 합니다. 

     

    다행이 두 세 달 뒤에 회사 수익이 반등해 프라이스는 다시 직원들의 급여를 원래 수준으로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삭감했던 급여도 모두 다시 채워줬습니다.

     

    좋은 뜻과 선한 행동이 회사의 성장을 가져왔고 위기도 쉽기 이길 수 있도록 해준 겁니다.

     

    프라이스가 직원들의 최저 연봉을 7만 달러로 정하기로 한 이유는 친구로부터 들은 말 때문이었습니다. 

     

    어느날 등산을 함께 하던 친구가 그에게 하소연을 했습니다. 집주인이 월세를 200달러 올린다고 하는데 감당할 수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친구가 ‘투잡’까지 뛰어도 감당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 화가 났다고 합니다. 

     

    프라이스는 친구 말을 듣고 그래비티 페이먼츠 직원들의 임금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친구의 연봉은 자신이 만든 회사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직원들보다 적지 않았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절망감 때문에 며칠 잠을 잘 수 없었다. 내 친구도 우리 직원들도 그런 대접을 받아서는 안됐다”고 말했습니다. 

     

    프라이스가 ‘생활연봉’이라고 정한 7만 달러는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논란이 됐습니다. 극우 성향의 라디오 진행자 러시 림보는 “이 회사는 사회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MBA 연구자로 감이라며 곧 망하게 될 것”이라는 저주섞인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회사 임원 2명은 말이 안된다며 사표를 던졌고 심지어 자신의 친형으로 공동설립자인 루카스는 기업가치를 떨어뜨렸다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일부 고객사는 최저연봉 인상이 수수료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거래를 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연봉 인상 뒤 회사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프라이스 바람대로 직원들의 행복도는 높아졌고 이는 고객들의 만족도 증가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2016년 직원들은 2016년 10만 달러가 넘는 테슬라 전기차를 프라이스에게 선물하는 서프라이즈 행사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 도문 스님, 71대 부촉제자로 비구니 화정 스님 인가

    비구니 스님이 부처님의 부촉제자로 인가받았습니다.

     

    8일 조계종에 따르면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인 도문 스님은 지난 5일 평택 명법사에서 비구니인 화정 스님에게 용성 스님이 사용했던 발우와 가사를 전하는 것으로 부촉법을 전했습니다.

     

    불교계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문 스님은 “어찌 부처님의 법이 비구에게만 있겠는가”라며 비구니인 화정 스님에게 법을 전한 것이 용성 스님의 유훈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는 “용성조사께서는 조선 이후 민주제도로 바뀌었으니 비구·비구니 구분 없이 전법안장을 받아야 한다고 유훈을 남기셨다”며 “이제 그 유훈에 따라 화정스님에게 법을 전한 바 없이 전하니 받은 바 없이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부촉법은 부처님에서 마하가섭 존자에게 처음 전해졌습니다. 

     

    부처님이 어느 날 대중들 앞에서 꽃 한송이를 들자 아무도 뜻을 헤아리지 못했는데, 마하가섭 존자만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은 이를 보고 “나의 정법안장의 열반묘심과 실상무상의 미묘법문을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며 법을 전했습니다.

     

    이 법은 선종의 초조인 달마선사가 중국에 전했고 육조 혜능선사 이후 신라로 이어졌습니다. 

     

    그 뒤 고려 때 보우 스님을 거쳐 구한 말 용성 스님이 부촉법을 이었으며 도문 스님이 70대 부촉제자로 인가를 받았습니다.

     

    이날 화정 스님을 부촉제자로 인가한 두문 스님은 독립운동가인 용성 스님의 법맥을 이었습니다. 법륜 스님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제71세 부촉제자로 인가받은 화정스님은 1965년 순형 스님을 은사로 평택 명법사에서 출가했습니다. 

     

    1972년 부산 범어사에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내원사와 석남사, 문수암 등지 전국 선원에서 수행정진했고 현재 명법사에서 포교와 전법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1999년에 ‘용성진종조사 유훈실현’에 동참했고 2014년부터 ‘용성진종조사 장학재단’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 김동호 목사, "극한의 고통 항암이 가장 행복했다"

    '암'. 대한민국 국민 사망 원인 1위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입니다. 그중에서도 3대 암이라 불리는 폐암, 위암, 간암은 특히 발병률과 사망률이 높다고 알려진 무서운 질병입니다.

     

    김동호 목사는 그런 3대 암 중 폐암 수술을 받은 암 환자입니다. 40대에는 청년부흥과 교회개혁운동에, 50대에는 교인이 일정 인원을 넘으면 분립하는 운동을, 60대에는 개신교 NGO운동을 펼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던 그는, 지난해 4월 폐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는 절망하기는 커녕 '날마다 기막힌 새벽(날기새)'과 오프라인 모임 CMP(Comfort My People)을 통해 다른 암환자들을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임파선까지 일부 전이가 되어, 폐의 20%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고도 네 차례에 걸친 항암치료까지 받아야 했음에도 말이죠. 건장했던 사람도 한번 항암치료에 들어가면 산송장이 될 정도인데, 오히려 다른 고통받는 환자들을 위로한 겁니다.

     

    그런 그도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 때, 다른 이들과 똑같이 그 또한 매우 당황했었다고 합니다. 객관적으로만 보던 죽음이, 갑자기 코 앞으로 다가와, "왜 내가? 왜 하필 내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그의 머릿속에 "넌 왜 안돼?"라는 생각이 스쳐갔다고 합니다. 자신 또한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인데 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절망에서 바로 벗어나, 치료를 잘 받아보자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런 긍정적인 마음으로도 항암치료에 따라오는 고통은 쉽사리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한번 치료를 받으면 2주는 구토로 음식을 먹지 못했고, 마지막 1주에 겨우 조금씩 입에 대어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이들보다 더 강한 치료를 받아야 했었기에, 졸도를 두 번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그가 날기새와 CMP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수술 후 들린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그가 수술을 받고 병실로 돌아갔는데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는 이사야 40장 1절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죽게 생겼는데 누구를 위로하라는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 "네가 겪어봤으니, 내 백성을 네가 위로할 수 있다."라는 말씀이 들렸다고 합니다. 

     

    이에 그는 그 자리에서 CMP라는 집회를 만들고 6차례 암환자와 보호자들을 위한 집회를 했습니다. 신기한건 첫 집회 때는 항암치료로 인해 앉아 있을 힘조차 없고, 들것에 실려 가야 할 만큼 힘들었던 시기였음에도, 어째선지 설교를 장장 40분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힘든 상태의 환자들이 위로받고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목사'임에도 하루 종일 암을 생각하고 정보를 찾고, 또 불안해하는 자신에 화가 났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마음을 '말씀과 은혜'로 채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기분좋게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고, 일선 목회할 때 가장 좋았던 새벽기도회를 떠올렸습니다. 그는 곧바로 새벽기도회를 촬영해 유튜브에 업로드하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기막힌 새벽'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자막도 없었고, 거실 쇼파에 앉아 스마트폰에 마이크만 설치해서 찍었습니다. 그러다 자막을 넣어주겠다는 전문가의 연락을 받았고, 중국어, 영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 자원봉사자들이 외국어 자막을 만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은 구독자가 12만 명에 이르렀고, 광고 수익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수익은 선교사 지원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는 최근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카페를 만들어 환자들을 만나고, 이야기도 듣고 위로도 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최악이었던 작년이 가장 행복했다고 합니다. 비록 암에 걸려서 육신은 고통스러웠을지 모르지만, 날기새, CMP 등 '최고로 좋은 일'을 만났고, 그 일을 계속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의 목표는 지금 하는 '날기새'를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의 꿈이 강단에서 마지막을 맞는 것"이라면서, 앉기 힘들면 누워서라도 계속하고 싶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것 또한 힘든 분들에겐 위로가 된다며, 마지막까지 무리하지 않고 오랫동안 '날기새'를 하고싶다며.

  •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스베덴보리(3)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안내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여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뒤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간영계를 거쳐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중간영계를 천국행이나 지옥행이냐를 가르는 심사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중간영계는 지구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사람들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잊을 정도라고 합니다. 중간영계에서 죽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도 합니다.

     

    중간영계에서 머무는 동안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지구상에서 다른 이의 눈에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았더라도 천국의 마음을 갖고 살았다면 그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대로 남들 눈에 아무리 고상하고 이타적인 삶을 산 것처럼 보였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사람의 모습은 점점 지옥에 사는 악령들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중간영계에서 자신의 본래모습이 드러난 뒤에 사자들은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에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이 각각 세 개로 나눠져 있다고 했습니다.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착하게 산 사람들이 가는 제1천국이 맨 아래에 있고, 그 위에 제2천국과 제3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방문했을 때 제3천국은 아직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옥도 제1지옥, 제2지옥, 제3지옥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지옥에 사는 영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이들로 서로를 괴롭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습니다.

     

    제1지옥에는 악령이 제2지옥에는 악마가 제3지옥에는 악귀가 삽니다. 이들의 형상은 지구상에 있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흉측하고 기괴하며 섬뜩하고 무섭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지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천국의 천사나 지옥의 영인들 모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기 위해 애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구는 천국의 천사와 악령 즉 선과 악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터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가기가 생각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왠만큼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천국에 가느냐, 그 천국에서 어떤 집에서 사느냐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 얼마나 이타적인 삶을 살았느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구상에서의 삶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구상에서의 100년도 안 되는 삶이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가기 위한 덕을 쌓거나 잘못을 회개하는 것 모두 오로지 지구에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기회는 지상에만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죽음도 '예언'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는 날을 밝힌 방식은 독특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한번도 만난 일이 없던 존 웨슬리라는 목사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자신이 1772년 3월 29일 영계로 '이주'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만나려면 그 전이 좋겠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실제 그는 자신이 '예언'한 그날 그 시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과 그가 체험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믿음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대해 비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천국에 가는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밝힌 천국에 가기 위한 6가지 삶의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 매사에 양심을 지켜라.

    넷째,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

    다섯째, 자기 생명까지 희생하는 사랑은 사랑의 극치이다.

    여섯째, 마음의 참 평화를 확인하라.

    천국에 가려면 지상에서의 삶을 천국 사람들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끝.

  • 임은정, 검사 겸임 발령에 “감사한 마음, 등산화 한 켤레는 장만한 듯 든든”

    임은정 대검찰청 감찰정책연구관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발령이 난 뒤 소회를 밝혔습니다. 

     

    임은정 연구관은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감찰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연구관으로서 이례적으로 수사권이 없어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다”며 “어렵사리 수사권을 부여받게 됐다”고 적었습니다. 

     

    임 연구관은 "다른 연구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수사권이지만 저에게는 특별해 감사한 마음이다"며 "여전히 첩첩산중이지만 등산화 한 켤레는 장만한 듯 든든하다"고 글을 이어갔습니다.

     

    법무부는 22일 임 연구관을 보직이동 없이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겸임 발령하며 “서울중앙지검 검사로서의 수사권한도 부여해 감찰 업무의 효율과 기능을 강화했다”고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이번 발령으로 임 연구관은 감찰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개시할 권한을 갖게 됐습니다. 검사의 비위를 감찰하고 서울중앙지검 검사로서 수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그동안 임 연구관은 수사 권한이 없어 감찰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을 두고 아쉬움을 표현해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제가 ‘제 식구 감싸기’를 결코 하지 않으리란 걸 대검 수뇌부는 잘 알고 있다”며 “감찰 조사 말고 정책 연구에 전념하길 원한다는 의중이 전달되고 중앙지검 검사직무대리 발령이 계속 보류되고 있다”고 쓰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임 연구관이 22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의 전문입니다. 

     

    충주와 울산에서는
    겨울에도 수국 화분을 베란다에 두었지요.
    그래도 남쪽이라 비교적 따뜻한 편이고,
    마른 가지나마 겨울 햇살을 쬐는 게 좋을 것 같았으니까요.
    상경하여 베란다에 둔 화분들의 겨울나기가
    보기 안쓰러워
    수국 화분은 거실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보니
    마른 잎들을 밀어내고 푸른 잎들이 돋아나고 있네요.
    입춘이 지났다던데.
    봄이 오고 있긴 한가 봅니다.
    코로나19와
    어려운 경제상황과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어
    가슴 시린 모든 분들의 마음에도
    봄이 어여 왔으면 좋겠습니다.

    ps.
    감찰업무를 담당하는 대검 연구관으로서
    이례적으로 수사권이 없어 마음고생이 없지 않았는데,
    어렵사리 수사권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다른 연구관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수사권이지만,
    저에게는 특별하여 감사한 마음입니다.
    여전히 첩첩산중이지만,
    등산화 한 켤레는 장만한 듯 든든하네요.
    계속 가보겠습니다.
    봄에게로. 

  • 김범수 카카오 의장 “전 재산 절반 기부”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55) 의장은 8일 카카오 및 계열사 전 임직원에게 보낸 신년 카카오톡 메시지에서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적었습니다.

     

    김 의장은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 중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김 의장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라면서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전했습니다. 

     

    김 의장의 재산은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 1천250만주(전날 종가 기준 5조7천억원) 등 총 10조원이 넘습니다. 절반만 기부해도 5조 원 이상입니다. 

     

    김 의장은 1998년 한게임을 창업해 2000년 네이버와 합병시킨 다음 NHN 공동대표를 맡았고 2007년 자리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10년 카카오톡을 내놓았고, 2014년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인수했습니다. 

     

    다음은 김범수 의장이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전문입니다. 카카오는 권위주의적 문화를 바꾸기 위해 직함 대신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릅니다. 브라이언은 김 의장의 닉네임입니다. 

     

    안녕하세요 크루여러분, 브라이언입니다.

     

    새로 생긴 크루전용 소통채널에 첫 콘텐츠를 보내게 되어 부담도 되고 영광스러운 마음도 있네요. 

     

    지난 1년은 코로나가 지속되면서 예상보다 변화가 심하고 어려운 한 해였습니다. 이런 시기에도 의미있는 성장을 이끌어내 주신 크루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모든 영역에서 비대면이 강화되는 상황과 급격한 기술 발전이 겹쳐지면서 세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빠르게 진입하였습니다. 이제 시작에 불과할 수 있는 이번 변화의 물결은 세상을 어느 곳으로 이끌고 갈지 두렵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이 시기에 이루어 온 것에 안주하지 않고 어떤 도전을 해 나가야 할까요? 언제나 그래왔듯이 공동체의 리더분들과 크루분들이 함께 답을 찾아가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도 지난 3월에 10주년을 맞아 사회문제 해결의 주체자가 되자고 제안드린 후 무엇을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요.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짐은 공식적인 약속이 될 수 있도록 적절한 기부서약도 추진중에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제 고민을 시작한 단계이지만,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플랜은 크루 여러분들에게 지속적으로 공유드리며 아이디어도 얻고 기회도 열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점점 기존의 방식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많아지면서,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만간 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는 크루간담회도 열어보려고 하니 그때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다시 한번 크루 여러분들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하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1. 2. 8. 브라이언

  • 죽어서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신부님

    이미지 : Divine TV 채널

    신부님 한 분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의사가 사망진단까지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신부님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인도 출신으로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호세 마리얀갓 신부님이 그 분입니다. 신부님은 2016년 한국을 방문해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에서 치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 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움 그 이상입니다. 

     

    수호천사의 안내로 하늘나라로 가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님을 만났고 치유사역을 하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수호천사와 함께 천국과 지옥, 연옥도 방문했습니다.

     

    다음은 마리얀갓 신부님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사후세계 이야기입니다. 물론 자신의 체험이 가톨릭 교회에서 공인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마리얀갓 신부님은 1949년 인도 남서부 해안가에 있는 케랄라(Kerala)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을 만나면 부모님이 힌두교도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매우 영적인 분위기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가족과 친척을 모두 합하면 25명의 신부님과 40명의 수녀님을 배출했다고 하네요.

     

    인도에서 어떻게 그런 집안이 있을 수 있냐구요?  

     

    신부님이 자란 케랄라주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도마 사도가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20년쯤 뒤에 찾아와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인지 마리얀갓 신부님은 7살 때 첫 영성체를 하면서 신부가 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케랄라주의 티부발라에 있는 성마리아 소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열 네 살 때였습니다. 소신학교 4년을 마친 뒤에는 같은 지역에 있는 성 요셉 대신학교에 들어가 사제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이어 7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75년 사제 서품을 받고 티루발라 교구에서 사목을 시작했습니다. 1978년에는 배터리에 있는 성토마스 소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구 신부로 일했습니다.

     

    당시 케랄라 교구를 맡고 있던 주교님이 그에게 오지의 공소를 맡겼습니다. 마땅히 머물 곳은 물론 교통편조차 없어 가려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리얀갓 신부님은 하느님께 기도를 했고 그곳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교님은 그에게 공소를 오갈 수 있도록 오토바이를 한 대 사줬습니다.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사건은 1985년 4월14일에 일어났습니다. 마리얀갓 신부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 자비주일을 맞아 공소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흰두교 축제일이기도 했습니다. 축제 때 술을 마신 한 남자가 몰던 트럭이 신부님이 타고 가던 오토바이를 덮쳤습니다. 신부님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된 신부님을 50km 떨어진 병원으로 싣고 갔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신부님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났습니다. 죽음을 경험한 것이지요. 신부님은 몸 밖에서 자신의 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병원으로 옮기며 울부짖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영혼이 육체를 벗어남과 동시에 신부님은 수호천사를 만났습니다. 수호천사는 신부님에게 “당신을 천국에 데리고 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 얘기하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에 지옥과 연옥을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수호천사는 신부님을 지옥에 먼저 데리고 갔습니다.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사탄과 악마들도 보였습니다. 1000도가 넘는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지옥은 7단계로 나뉘어져 있었고 단계별로 받는 고통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이곳에 온 영혼들은 아주 추하고 잔인한 모습이었습니다. 수호천사는 그들이 생전에 지은 죄를 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죄를 뉘우쳤다면 지옥 대신 연옥으로 갔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지옥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신부님이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죄를 지었지만 생전에 뉘우치고 고통을 통해 정화되면 연옥이 아니라 곧바로 천국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지옥에 이어 수호천사는 신부님을 연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연옥 역시 일곱 가지 차원으로 나뉘어 있었고 고통과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옥에 비하면 훨씬 고통은 훨씬 덜했고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서로 언쟁을 하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전에 많은 죄를 지었지만 죽기 전에 뉘우치고 하느님과 화해한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고통을 겪었지만 언젠가 하느님을 만날 것을 알기에 마음은 평화로웠습니다. 

     

    신부님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부님메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그들이 빨리 천국에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의 수호천사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수호천사는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로 너무 아름답는 말 외에 묘사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언제나 신부님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주고 있으며 특별히 치유 사역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언제 어디서나 수호천사의 가호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수호천사는 지옥과 연옥을 거쳐 신부님을 하늘로 데리고 갔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동안에 눈부시게 빛나는 흰색 터널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보다 더한 평화와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터널을 지나니 바로 천국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곳에서는 천사들이 노래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계셨고, 특히 복되신 성모 마리아님과 성 요셉, 그리고 많은 주교와 성직자들이 별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한다. 너의 두 번째 삶을 통해 너는 나의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너는 외국어를 말하며 외국을 다니게 될 것이다. 나의 은총을 너는 못할 일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 성모 마리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여라. 내가 너의 사역을 돕겠다”

     

    천국의 모습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수백만 배 더 큰 평화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시고 계신지 말은 물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수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주님을 그린 그림은 단지 그 분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주님 옆에 계신 복되신 성모님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분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로 가서 하느님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천국을 방문한 뒤에 수호천사와 함께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신부님의 육신은 병원에 있었는데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린 상태였습니다. 사인은 출혈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멀리 있었기 때문에 병원 직원들이 시신을 안치실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에어컨이 없어서 직원들은 사체가 빨리 부패할까 걱정했습니다. 

     

    영혼이 다시 육체로 돌아왔을 때 신부님은 어마어마한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직원들은 깜짝 놀라서 의사에게 달려갔습니다. “선생님, 시체가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의사가 달려와 진찰을 한 뒤 소리쳤습니다. ”신부님이 살아 있습니다. 기적이에요. 서둘러 병원으로 옮깁시다.“ 의사는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 아래턱, 갈비뼈, 골반뼈, 손목, 오른쪽 다리 등등. 부러진 뼈를 이어 붙였습니다. 두 달 쯤 지나 퇴원을 했지만 의사는 다시 걸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나를 되살려 세상으로 보내신 주님께서 고쳐주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신부님과 가족들은 모두 하느님께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달쯤 지났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를 하던 중에 골반뼈 부근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곧바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 다 나았으니 일어나 걸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신부님은 바로 일어나 걸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를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전하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힌두교인이었던 의사는 “당신이 믿는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입니다. 당신이 믿는 하느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영세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됐습니다. 

     

    1987년 11월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국에 선교 사제로 와서 여러 지역의 성당을 옮겨다니며 일했습니다. 

     

    신부님은 2016년 4월에 은퇴한 뒤에는 주교님의 허락을 받아 미국은 물론 세계를 다니며 치유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더 많은 사람을 섬기면서 더 많은 자유를 얻었다고 합니다. 

  •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스베덴보리(2)

    스베덴보리는 '죽음의 기술'을 터득한 뒤 무려 27년 동안 영계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과 죽음 뒤의 삶, 사후생에 대한 얘기를 남겼지요.
     
    스베덴보리는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정한다고 했습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우리 옛말이 정확히 맞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죽는 날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동양의 영적 스승들 가운데 자신이 죽는 날을 예측한 사람들이 적지 않지요. 가깝게는 주역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탄허 스님도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정확히 아셨다고 합니다.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도 예측했습니다. 한번은 스베덴보리가 명사들 모임에 연사로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스베덴보리에게 이 자리에 모인 사람 가운데 누가 제일 먼저 죽을 지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한참을 망설였지만 사람들이 계속 요청을 했고, 결국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든 괜찮다는 다짐을 받은 뒤에 젊고 건강한 사람을 가리키며 다음날 새벽 그가 세상을 떠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청중들은 웅성거렸고, 당사자는 "농담이 심하다"며 불쾌하게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그는 스베덴보리가 말한 시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영계에 물어보면 사람의 수명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저승의 명부에 사람의 수명이 적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명부를 들고 세상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도 저승사자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오면 혼수상태에 빠지는 데 사실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감각이 열려 의사나 가족 이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 존재는 2명 또는 4명인데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임종자를 영계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런 존재를 안내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저승사자인 셈입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늘에 의해 영생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죽음은 이승에서 영계로 이주하는 것일 뿐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죽는 과정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기까지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죽은 순간 그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절대 평화와 환희심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부모님이나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 돌아가시기 전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애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마치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쳐다보거나 심지어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임종자가 안내영인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구상을 다녀간 모든 사람이 죽는 과정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 이후에는 같은 과정을 밟는다고 한다. 그가 알려준 죽음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임종자가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맞든 죽는 순간 지구상에서의 모든 고통은 끝나고 황홀한 상태에 들어간다. 주위 사람들은 임종자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지만 임종자는 모든 고통에서 초월해 환희를 경험하고 있는 상태다.
     
    2. 임종자의 영적인 몸은 살아 있을 때의 육체와 똑같아서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감각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다만 그 감각은 인간이 느끼는 것보다 더욱 정묘하다. 특히 죽어서 최초로 가는 곳인 '중간영계'의 환경이 지상과 너무 흡사해 임종자를 더욱 헷갈리게 한다.
     
    3. 임종자가 육체적 죽음을 맞고 영적 육체로 되살아난 뒤에는 그를 인도할 안내 영인과 만나게 된다. 안내영인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죽은 뒤 3일 동안 임종자와 '주파수'가 맞는 안내영인을 찾는 과정이 이뤄지는데 처음에 온 안내영인이 불편하면 그가 떠나고 다른 안내영인이 찾아온다. 안내영인은 나중에 오는 사람일수록 차원이 낮은, 즉 천국에서 먼 곳으로 임종자를 안내하게 된다.
     
    4. 안내영인과의 인연은 지상에서의 삶에 달려 있다. 지상에서 자신이 어떤 차원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 혹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영인을 만나게 된다.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산 이들은 죽어서도 천국의 삶을 이어갈 것이고, 지상에서 지옥의 삶을 산 이들은 죽어서 지옥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