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종교

Contents List 3

  • 139년째 건축 중, 스페인 ‘가우디 성당’ 별 점등

    이미지 : Reuters Youtube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건설 중인 건축물을 아시나요?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입니다. 스페인 카탈루나 출신 건축과 안토니 가우디가 디자인한 이 성당은 139년째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8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두 번째 높은 첨탑이 그곳에 내걸린 5.5톤짜리 별 모양 등이 불을 밝히면서 완공됐습니다.

     

    크리스털과 강철로 만들어진 12개의 꼭짓점을 가진 이 별에는 ‘베들레헴의 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별이 걸린 곳은 지상에서 138m 떨어진 곳인데요. 이날 완성된 성모 마리아 첨탑은 1976년부터 공사가 시작됐습니다.

     

    가우디는 이 성당을 디자인할 때 구조와 조각, 장식이 성서적 의미를 담도록 했습니다.

     

    공사가 진행 중인 가장 높은 탑은 '예수 그리스도 첨탑'입니다. 꼭대기는 십자가로 장식되고 신약 4대복음을 상징하는 네 개의 첨탑이 주위를 둘러싸게 된다고 합니다.

     

    이 성당은 2026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 교황 유리천장 또 깨다, 바티칸 행정 책임자에 첫 여성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시국 고위직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을 임명했습니다. 

     

    교황청은 지난 5일 바티칸 행정부 사무총장에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 라파엘라 테트리니 수녀가 임명됐다고 밝혔습니다. 

     

    바티칸 조직 서열상 2인자에 해당하는 행정부 사무부총장은 명목상 수장인 행정원장을 보좌해 사실상 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입니다. 

     

    이 때문에 주교가 보직을 맡았는데 수녀가 임명된 것은 파격적인 인사로 여겨집니다.

     

    이탈리아 로마 태생인 페트리니 수녀는 로마 소재 루이스대학과 교황청립 성토마스 아퀴나스 대학에서 공부했고, 2005년부터 해외 선교 업무를 주관하는 인류복음화성에서 일했습니다.

     

    교황은 가톨릭교회 내 여성의 지위 향상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요직에 여성들을 등용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인사가 지난 2월 가톨릭 교회의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시노드(Synod:세계주교대의원회의) 사무국장에 나탈리 베라크 수녀를 임명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교황청 외무차관과 부대변인, 바티칸 박물관장도 여성이 맡고 있습니다. 

  • 부설거사, 파계 또한 깨달음의 길

    부설거사에 얽힌 이야기는 수행에 승속이 따로 없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신라 때 고승인 부설거사의 삶과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북 부안 내변산 월명암에 전해오는 한문 필사본 <부설전>에 담겨 있습니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은이는 구전되던 부설거사의 이야기를 소설체로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부설은 출가승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출가했다 파계한 승려입니다. 부설거사는 신라 때 불국사의 승려였다고 합니다. 승려일 당시 그는 도반인 영조, 영희 스님과 함께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부설 스님에게 당혹스러운 인연이 생겨납니다. 지리산, 천관산, 능가산 등지에서 수도하고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묘법을 얻고자 만행을 떠나는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김제시 부근을 지나던 세 도반은 불심이 깊다는 집을 수소문해 하룻밤을 지내게 됐습니다. 구무원이라는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하룻밤 신세 지고 떠나려 했지만, 비가 몇 날을 계속해서 내려 하는 수 없이 며칠을 묵게 됐습니다.

     

    스님들이 머무는 동안 불심이 깊었던 구무원은 스님들에게 자주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에게는 재색을 겸비한 묘화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묘화 낭자도 스님들의 법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며칠 뒤 비가 그치고 부설 거사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서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묘화 낭자가 부설 거사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부설 스님에게 자신의 지아비가 되어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득도를 위해 세속의 삶을 버리고 출가한 스님에게 혼인해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부설거사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묘화 낭자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차 도통하여 많은 중생을 구하실 스님이 작은 계집 하나 구해 주지 못한다면 어찌 큰 뜻을 이루실 수가 있겠습니까?”

     

    묘화 낭자는 혼인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은 목숨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자살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 딸을 보고 구무원도 부설 스님에게 매달려 애원했습니다. 부설 스님은 묘화 낭자의 목숨을 건 호소에 하는 수 없이 그녀와 혼인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도반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때 부설 스님은 도부재치소(道不在緇素) 도부재화야(道不在華野) 제불방편(諸佛方便) 지재이생(志在利生)이라는 게송을 들려주며 도반들을 떠나보냅니다.

     

    “도라는 것은 승려의 검은 옷과 속인의 하얀 옷에 있는 것이 아니며, 번화로운 거리와 초야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님이 하고자 하신 뜻은 중생을 이롭게 제도하는 데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설 스님은 거사가 됐습니다. 묘화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아들과 딸을 얻어 등운과 월명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비록 파계하고 집안을 이뤘지만, 부설 거사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바닷가에 지은 초막에서 지낼 때나 나중에 내변산에 지은 암자에서 살 때나 늘 수행에 몰두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지난날의 도반인 영조 스님과 영희 스님이 오대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부설 거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부설 거사는 한참 동안 토굴에서 수행 중이었습니다.

     

    두 도반이 왔다는 말을 듣고 토굴에서 나온 부설 거사에게 영조와 영희 두 스님은 측은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때 묘화 부인이 두 스님에게 도력을 겨룰 것을 제안합니다.

     

    묘화 부인은 병 3개에 물을 가득 담아 걸어 놓고 병만 땅에 떨어지게 하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영조, 영희 두 스님이 병을 깨자 병 조각과 함께 물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부설 거사가 병을 깨자 병 조각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물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두 도반은 부설 거사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영조, 영희 두 스님이 법문을 청하자 부설 거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습니다.

     

    목무소견 무분별(目無所見 無分別)

    이청무음 절시비(耳聽無音 絶是非)

    시비분별 도방하(是非分別 都放下)

    단간심불 자귀의(但看心佛 自歸依)

     

    눈은 보는 바가 없어 분별심이 사라졌고

    귀는 듣는 바가 없어 시비심을 끊었네

    시비분별을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마음 부처를 보아 자신에게 귀의할지니라

     

    게송을 마친 뒤 부설 거사는 그 자리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묘화 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전 재산을 털어 부설원을 세운 뒤 평생 보살행을 실천하다 110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출가한 등운과 월명도 수행에 정진해 득도하게 됩니다.

     

    자신의 깨달음보다 한 여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파계를 선택한 부설 거사. 도반들을 떠나보내며 지은 게송에 담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함으로써 부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한 그 마음이 부설 거사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