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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 성자들

Contents List 3

  • 부설거사, 파계 또한 깨달음의 길

    부설거사에 얽힌 이야기는 수행에 승속이 따로 없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신라 때 고승인 부설거사의 삶과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북 부안 내변산 월명암에 전해오는 한문 필사본 <부설전>에 담겨 있습니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은이는 구전되던 부설거사의 이야기를 소설체로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부설은 출가승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출가했다 파계한 승려입니다. 부설거사는 신라 때 불국사의 승려였다고 합니다. 승려일 당시 그는 도반인 영조, 영희 스님과 함께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부설 스님에게 당혹스러운 인연이 생겨납니다. 지리산, 천관산, 능가산 등지에서 수도하고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묘법을 얻고자 만행을 떠나는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김제시 부근을 지나던 세 도반은 불심이 깊다는 집을 수소문해 하룻밤을 지내게 됐습니다. 구무원이라는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하룻밤 신세 지고 떠나려 했지만, 비가 몇 날을 계속해서 내려 하는 수 없이 며칠을 묵게 됐습니다.

     

    스님들이 머무는 동안 불심이 깊었던 구무원은 스님들에게 자주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에게는 재색을 겸비한 묘화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묘화 낭자도 스님들의 법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며칠 뒤 비가 그치고 부설 거사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서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묘화 낭자가 부설 거사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부설 스님에게 자신의 지아비가 되어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득도를 위해 세속의 삶을 버리고 출가한 스님에게 혼인해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부설거사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묘화 낭자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차 도통하여 많은 중생을 구하실 스님이 작은 계집 하나 구해 주지 못한다면 어찌 큰 뜻을 이루실 수가 있겠습니까?”

     

    묘화 낭자는 혼인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은 목숨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자살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 딸을 보고 구무원도 부설 스님에게 매달려 애원했습니다. 부설 스님은 묘화 낭자의 목숨을 건 호소에 하는 수 없이 그녀와 혼인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도반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때 부설 스님은 도부재치소(道不在緇素) 도부재화야(道不在華野) 제불방편(諸佛方便) 지재이생(志在利生)이라는 게송을 들려주며 도반들을 떠나보냅니다.

     

    “도라는 것은 승려의 검은 옷과 속인의 하얀 옷에 있는 것이 아니며, 번화로운 거리와 초야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님이 하고자 하신 뜻은 중생을 이롭게 제도하는 데에 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설 스님은 거사가 됐습니다. 묘화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아들과 딸을 얻어 등운과 월명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비록 파계하고 집안을 이뤘지만, 부설 거사는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바닷가에 지은 초막에서 지낼 때나 나중에 내변산에 지은 암자에서 살 때나 늘 수행에 몰두했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또 흘러 지난날의 도반인 영조 스님과 영희 스님이 오대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부설 거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때 부설 거사는 한참 동안 토굴에서 수행 중이었습니다.

     

    두 도반이 왔다는 말을 듣고 토굴에서 나온 부설 거사에게 영조와 영희 두 스님은 측은한 마음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그때 묘화 부인이 두 스님에게 도력을 겨룰 것을 제안합니다.

     

    묘화 부인은 병 3개에 물을 가득 담아 걸어 놓고 병만 땅에 떨어지게 하라는 문제를 냈습니다. 영조, 영희 두 스님이 병을 깨자 병 조각과 함께 물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부설 거사가 병을 깨자 병 조각은 바닥에 떨어졌지만 물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습니다. 두 도반은 부설 거사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영조, 영희 두 스님이 법문을 청하자 부설 거사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습니다.

     

    목무소견 무분별(目無所見 無分別)

    이청무음 절시비(耳聽無音 絶是非)

    시비분별 도방하(是非分別 都放下)

    단간심불 자귀의(但看心佛 自歸依)

     

    눈은 보는 바가 없어 분별심이 사라졌고

    귀는 듣는 바가 없어 시비심을 끊었네

    시비분별을 모두 놓아 버리고

    다만 마음 부처를 보아 자신에게 귀의할지니라

     

    게송을 마친 뒤 부설 거사는 그 자리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묘화 부인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전 재산을 털어 부설원을 세운 뒤 평생 보살행을 실천하다 110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출가한 등운과 월명도 수행에 정진해 득도하게 됩니다.

     

    자신의 깨달음보다 한 여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파계를 선택한 부설 거사. 도반들을 떠나보내며 지은 게송에 담긴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함으로써 부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한 그 마음이 부설 거사를 깨달음에 이르게 한 힘이 아니었을까요.

  •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스베덴보리(3)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안내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여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뒤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간영계를 거쳐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중간영계를 천국행이나 지옥행이냐를 가르는 심사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중간영계는 지구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사람들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잊을 정도라고 합니다. 중간영계에서 죽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도 합니다.

     

    중간영계에서 머무는 동안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지구상에서 다른 이의 눈에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았더라도 천국의 마음을 갖고 살았다면 그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대로 남들 눈에 아무리 고상하고 이타적인 삶을 산 것처럼 보였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사람의 모습은 점점 지옥에 사는 악령들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중간영계에서 자신의 본래모습이 드러난 뒤에 사자들은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에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이 각각 세 개로 나눠져 있다고 했습니다.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착하게 산 사람들이 가는 제1천국이 맨 아래에 있고, 그 위에 제2천국과 제3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방문했을 때 제3천국은 아직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옥도 제1지옥, 제2지옥, 제3지옥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지옥에 사는 영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이들로 서로를 괴롭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습니다.

     

    제1지옥에는 악령이 제2지옥에는 악마가 제3지옥에는 악귀가 삽니다. 이들의 형상은 지구상에 있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흉측하고 기괴하며 섬뜩하고 무섭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지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천국의 천사나 지옥의 영인들 모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기 위해 애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구는 천국의 천사와 악령 즉 선과 악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터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가기가 생각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왠만큼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천국에 가느냐, 그 천국에서 어떤 집에서 사느냐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 얼마나 이타적인 삶을 살았느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구상에서의 삶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구상에서의 100년도 안 되는 삶이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가기 위한 덕을 쌓거나 잘못을 회개하는 것 모두 오로지 지구에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기회는 지상에만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죽음도 '예언'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는 날을 밝힌 방식은 독특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한번도 만난 일이 없던 존 웨슬리라는 목사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자신이 1772년 3월 29일 영계로 '이주'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만나려면 그 전이 좋겠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실제 그는 자신이 '예언'한 그날 그 시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과 그가 체험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믿음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대해 비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천국에 가는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밝힌 천국에 가기 위한 6가지 삶의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 매사에 양심을 지켜라.

    넷째,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

    다섯째, 자기 생명까지 희생하는 사랑은 사랑의 극치이다.

    여섯째, 마음의 참 평화를 확인하라.

    천국에 가려면 지상에서의 삶을 천국 사람들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끝.

  •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스베덴보리(2)

    스베덴보리는 '죽음의 기술'을 터득한 뒤 무려 27년 동안 영계를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과 죽음 뒤의 삶, 사후생에 대한 얘기를 남겼지요.
     
    스베덴보리는 사람의 수명은 하늘이 정한다고 했습니다. 인명재천(人命在天),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는 우리 옛말이 정확히 맞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죽는 날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동양의 영적 스승들 가운데 자신이 죽는 날을 예측한 사람들이 적지 않지요. 가깝게는 주역의 대가로 널리 알려진 탄허 스님도 자신이 언제 세상을 떠날지 정확히 아셨다고 합니다.

    나아가 스베덴보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도 예측했습니다. 한번은 스베덴보리가 명사들 모임에 연사로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대화를 나누는 중에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스베덴보리에게 이 자리에 모인 사람 가운데 누가 제일 먼저 죽을 지를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한참을 망설였지만 사람들이 계속 요청을 했고, 결국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든 괜찮다는 다짐을 받은 뒤에 젊고 건강한 사람을 가리키며 다음날 새벽 그가 세상을 떠날 거라고 말했습니다. 청중들은 웅성거렸고, 당사자는 "농담이 심하다"며 불쾌하게 자리를 떴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새벽 그는 스베덴보리가 말한 시간에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스베덴보리는 영계에 물어보면 사람의 수명을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저승의 명부에 사람의 수명이 적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명부를 들고 세상 사람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사자가 등장합니다. 
     
    스베덴보리도 저승사자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오면 혼수상태에 빠지는 데 사실 당사자에게는 새로운 감각이 열려 의사나 가족 이외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 존재는 2명 또는 4명인데 스베덴보리는 그들이 임종자를 영계로 인도한다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그런 존재를 안내영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저승사자인 셈입니다. 
     
    하지만 스베덴보리는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늘에 의해 영생불멸의 존재로 창조되었으며 죽음은 이승에서 영계로 이주하는 것일 뿐 소멸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죽는 과정에 대해서도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죽기까지 고통이 있을 수 있지만 죽은 순간 그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절대 평화와 환희심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실제 부모님이나 가까운 이가 세상을 떠나는 과정을 지켜본 사람들 가운데 돌아가시기 전 이상한 행동을 했다고 애기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을 향해 마치 누군가가 있는 것처럼 쳐다보거나 심지어 얘기를 나누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의 경험에 따르면 그것은 임종자가 안내영인을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구상을 다녀간 모든 사람이 죽는 과정은 모두 다르지만 죽음 이후에는 같은 과정을 밟는다고 한다. 그가 알려준 죽음의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임종자가 어떤 형태의 죽음을 맞든 죽는 순간 지구상에서의 모든 고통은 끝나고 황홀한 상태에 들어간다. 주위 사람들은 임종자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으로 보지만 임종자는 모든 고통에서 초월해 환희를 경험하고 있는 상태다.
     
    2. 임종자의 영적인 몸은 살아 있을 때의 육체와 똑같아서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감각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유지된다. 다만 그 감각은 인간이 느끼는 것보다 더욱 정묘하다. 특히 죽어서 최초로 가는 곳인 '중간영계'의 환경이 지상과 너무 흡사해 임종자를 더욱 헷갈리게 한다.
     
    3. 임종자가 육체적 죽음을 맞고 영적 육체로 되살아난 뒤에는 그를 인도할 안내 영인과 만나게 된다. 안내영인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고 한다. 죽은 뒤 3일 동안 임종자와 '주파수'가 맞는 안내영인을 찾는 과정이 이뤄지는데 처음에 온 안내영인이 불편하면 그가 떠나고 다른 안내영인이 찾아온다. 안내영인은 나중에 오는 사람일수록 차원이 낮은, 즉 천국에서 먼 곳으로 임종자를 안내하게 된다.
     
    4. 안내영인과의 인연은 지상에서의 삶에 달려 있다. 지상에서 자신이 어떤 차원에서 살았느냐에 따라 천국 혹은 지옥으로 인도하는 안내영인을 만나게 된다. 지상에서 천국의 삶을 산 이들은 죽어서도 천국의 삶을 이어갈 것이고, 지상에서 지옥의 삶을 산 이들은 죽어서 지옥의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