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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겨울에도 얼음없는 북극 바다…사라져가는 북극

    11월이 다가오면서 대한민국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찾아왔습니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에서도 겨울이 오고 있는데, 빙하로 유명한 북극에서 아직도 얼음이 얼지 않아 전문가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 재커리 라베 교수의 연구팀은 "11월이 다가오는데도 북극의 바다에 아직도 얼음이 얼지 않았다"라며, 북극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늦은 기록이라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에 따르면, 북극해를 이루는 바다 중 한 곳인 랍테프해가 현재까지도 얼음이 얼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원래 랍테프해는 보통 10월 말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하며, 해마다 다르긴 하지만 2017년도에는 그 시기가 빨리 오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그런 랍프티해가 아직까지도 얼음이 얼지 않고 있다며, 이는 북극해 관측을 시작한 41년 간 한번도 없던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연구팀은 이상기후로 인해 기온이 상승했고, 이로 인해 따뜻해진 대서양 해류가 북극으로 유입돼 랍프티해가 얼지 않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현지의 관측소에서 랍테프해의 해수온도는 기록적인 폭염과 함께 해빙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면서 평년보다 5도 이상 높아졌습니다. 연구팀은 온실가스를 체계적으로 감축하지 않으면 이러한 현상이 21세기 중반까지도 계속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극지나 산악지역의 얼음이 녹으면 지구의 기온이 더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극지나 산악지역의 얼음이 지구 표면에 도달한 태양열을 반사하는데, 이 얼음이 줄어들수록 반사하는 태양열이 적어져 지구의 기온이 더 오른다고 합니다. 여기에 얼음이 줄어들면서 대기 중에 수증기가 늘어나게 되고, 이 또한 온실효과를 더욱 늘린다고 합니다.

     

    해빙 전문가인 스테판 헨드릭스 박사는 "이런 현상은 오래 전부터 예측됐지만, 이에 대해 실질적인 조치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었다"면서, 이번 결과에 대해 충격적이기보다는 실망스럽다고 말했습니다.

  • [영상]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보내는 편지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치료제와 백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치료제나 백신이 해결책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코로나19의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순 있겠지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코로나19와 비슷한 또다른 형태의 바이러스나 질병이 생겨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사람들은 코로나19를 누군가 인류에게 보내는 경고라고 보기도 합니다.

     

    만약 신이 있어서 지구를 돌보고 계신다면 지구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실 것이고 그 원인이 인간이라는 생명체라는 것도 당연히 알 겁니다.

     

    인간으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고 많은 동식물이 멸종했으며 지구는 생명이 살기 힘든곳이되가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는 몸 안의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백신을 맞습니다. 그렇다면  지구를 돌보는 신이 계시다면 그분도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를 없애기 위해 지구의 백신을 처방하지 않을까요?

     

    코로나19가 인류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지만 지구에겐 백신이라는 말은 그런 관점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담은 글이 인터넷에서 널리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아시아N'이라는 매체에 편집장을 맡고 있는 비비안 라이히가 썼다고 알려진 글인데요. 정말 많은 생각을 갖게 해주는 글입니다.

     

    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제목은 코로나 19가 인류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지구는 속삭였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큰 소리로 이야기했지만 당신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지구가 소리를 질렀지만 당신들은 귀를 막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난 당신들을 벌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난 당신들을 일깨우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지구는 도와달라고 소리쳐 왔습니다.

    큰 홍수로 외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고 거대한 산불로 외쳐도 당신들은 듣지 않았고 강력한 허리케인과 토네이도를 보내도 당신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해양 오염으로 대양에 사는 많은 생물이 죽어가도 당신들은 여전히 지구의 외침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빙하가 녹아내리는 심각한 경고에도, 혹독한 가뭄에도, 지구가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받고 있는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지구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당신들의 욕심은 멈추지 않았고, 얼마나 많은 증오가 있든지, 하루에 얼마나 많은 죽음이 발생하든지 당신들은 그저 당신들의 삶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당신들은 지구가 말하려 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걱정하기 보다는 최신 아이폰을 갖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세계가 움직여 가는 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내가 마침내 당신들로 듣게 만들었습니다. 

    당신들을 대피하게 만들었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생각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지구와 비슷한 상태가 됐습니다. 바로 당신 자신의 생존에 걱정하게 된 것이지요.

     

    그런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까?

    나는 지구에 온난화가 심해지는 것 처럼 당신들에게 고열을 일으켰고, 지구가 대기가 오염으로 가득 찬 것처럼 당신들에게 호흡곤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지구가 매일 약해지는 것 같이 당신들이 매일 약해지도록 했습니다.  

    나는 세계를 멈추게 만들어 당신들이 지구와 지구의 아픔을 잊게 만들던 편안함과 다양한 외부활동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이제….공장들이 오염물질을 대기에 내뿜지 않게 되자 중국과 인도의 공기질이 좋아지고 하늘이 깨끗해졌습니다. 지고 공기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해양 오염의 원인이었던 곤돌라가 멈추는 것 만으로 베니스의 물이 깨끗해졌고 돌고래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신들은 비로소 삶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됐습니다.

     

    나는 여기에 당신들을 벌 주러 와있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끝나고 내가 떠나간 뒤에 제발 지금 일어났던 일들을 기억해주세요. 

    지구의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당신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세요. 

    더 이상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을 멈춰 주세요. 싸움을 멈추고, 물질적인 것에 매달리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이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시작해 보세요.  지구와 그 안의 모든 생물을 보살피는 일을 시작해 주세요. 

    그리고 창조주를 믿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혹 내가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모습으로 오게 될 거예요. 

     

    코로나 바이러스 드림

     

    어떠신가요?

    다들 한번씩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11세 소년, 할머니를 만나러 3000km를 걷다

    코로나19의 대유행으로 인해 전 세계의 하늘길이 막힌 지 반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때문에 얼마 전 있었던 추석에 해외에 있는 사람들은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영상통화 등으로 안부를 전해야 했었죠.

     

    이런 상황은 외국 또한 마찬가지인데요. 그런데 한 어린이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약 3,000km를 도보로 걸어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0일 시칠리아에 사는 로미오 콕스(11)가 런던에 사는 그의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약 3개월 동안 1,000마일 이상을
    걸었습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비행기를 타기 어려워져 할머니를 뵈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자, 할머니가 사는 런던까지 도보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는 그의 아버지 필과 함께 할머니를 찾아뵙는 여행을 시작했고, 약 3개월 동안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를 거쳐 런던의 할머니댁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그는 별빛이 가득한 밤하늘 아래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고, 야생 당나귀를 길들이기도 했습니다. 로미오와 필은 여행 중간중간 사진 찍으면서 이를 SNS에 올렸고, 곧 수많은 이들이 사진을 보면서 그들의 여행을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로미오의 여행을 더더욱 응원했던 건 그의 여행이 단순히 가족을 찾아가는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로미오는 자신의 여행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행하는 동안 자신의 SNS를 통해 난민과 불우이웃을 지원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금했습니다. 그는 기부 페이지에서 "우리 모두가 공부하고 살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라며, 모집된 기부금은 난민들과 불우한 가정의 아이들이 온라인 학습을 할 수 있는 태블릿과 인터넷을 구입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캠페인을 1만 9천 달러 이상을 모금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9월 21일, 마침내 런던에 도착하면서 그들의 여행은 끝을 맺게 됐습니다. 런던에 도착한 로미오와 필은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로미오는 SNS에서 "몇 번 길을 잃기도 했고, 말벌 둥지 아래서 자기도 했으며, 발이 피투성이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생계 어려운 음악인 위해 고품질 유료공연 플랫폼 개발 중

    코로나19가 경제에 끼친 여파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날이 갈 수록 폐업하는 가게들이 늘어났으며, 취업시장에는 어느 때보다 차가운 한파가 들이닥쳤습니다.

     

    문화, 예술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각종 공연의 취소, 레슨의 감소 등으로 오로지 음악의 길에 매진하던 이들은 생활고에 직면하게 됐고, 택배, 배달, 대리운전 등 음악과는 전혀 관련 없는 직종에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음악인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유료공연 스트리밍 플랫폼이 올해 말 등장합니다. 예비사회적기업 오디오가이에서 개발 중인 '라이브 360'은 pc, 스마트폰을 비롯한 각종 통신기기들을 통해 고품질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유료공연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오디오가이는 레코딩 서비스 및 음반 기획, 제작 등을 담당하는 오디오 전문 회사로, 지난 2월 오디오가이는 스위스 바젤에서 활약하는 바리톤 이응광과 함께 무관중 공연 스트리밍 이른바 방구석 콘서트를 개최해 좋은 반응을 끌어냈습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방구석 콘서트가 붐을 이뤘으나, 일부 국공립기관을 제외하면 완성도가 떨어지는데다, 무료공연이라 정작 음악인들의 수입은 전무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디오가이는 '라이브 360'을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연의 완성도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각 콘텐츠에는 3D 사운드 기술이 접목될 예정입니다. 이를 위해 오디오가이는 올해 초부터 돌비코리아와 협멱해 국내 최초로 '돌비애트모스뮤직 3D 사운드 콘텐츠'를 제작 중입니다. 또한 음악인들의 부가적인 수입을 위해 음반 및 LP, 굿즈 제작 등 각종 수익 창출 방안 또한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최정훈 오디오가이 대표는 라이브 360을 통해 공연문화를 좀 더 대중화시키고, 예술인들 또한 안정적인 수입으로 창작활동에 집중하는 생태계를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 이어, "3D 사운드를 접목한 라이브 공연 스트리밍 서비스는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면서, 향후 한국 아티스트가 만든 영상이 애플TV, 넷플릭스 등에 송출된다면 큰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해 오디오가이는 2016년부터 진행한 프로젝트 '울림'을 계기로 문체부 지정 예비사회적기업이 됐습니다. 올해로 5년차인 프로젝트 '울림'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인들을 위해 음반제작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지금까지 약 20여 명을 지원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의 활동을 포기하려던 네덜란드 음악가 부부가 재기할 수 있었으며, 이재하의 거문고산조 음반은 KBS 국악대상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 마을 같은 아파트 위스테이 별내의 특별함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참으로 특별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위스테이 별내가 그 아파트 단지 이름인데요. 22층 7개 동으로 이뤄진 이 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입니다.

    사회적기업 ‘더함’이 사업을 주관해 만들고 지난 6월29일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점이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 시설입니다. 이 아파트의 커뮤니티 공간은 953평으로 법정 기준의 2.5배에 달합니다. 커뮤니티 공간은 놀이터, 잔디광장과 함께 아파트 단지 한 가운데에 있습니다. 위스테이 별내는 커뮤니티 시설에 동네라는 정감이 가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공간에는 동네카페, 동네부엌, 미취학 아동 돌봄 시설인 동네키움방, 초등학생 돌봄공간 동네자람터 등이 있습니다. 동네 빨래터, 동네책방, 동네체육관, 동네방송국 등도 있구요. 필요한 공구를 빌려주는 공구도서관도 있습니다. 동네텃밭은 너무나 당연하구요. 

     

    커뮤니티 공간을 어떤 것으로 채울지는 시행사나 시공사가 구상한 게 아닙니다. 입주 전부터 조합원들이 아파트 공간을 기획하는 데 참여했습니다. 회의만 40번 이상 열어 공간을 어떻게 쓸지 논의했습니다. 커뮤니티 시설을 만드는 데 30억 원이 들었지만 조합원들의 만족도는 아주 높다고 합니다.

     

    이 커뮤니티 시설은 사회적 기업 ‘더함’의 100% 자회사 ‘스페이스 잇다’가 운영을 담당합니다. 커뮤니티 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입주민 가운데 채용했습니다. 이 아파트는 일자리가 생기면 입주민부터 채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합니다. 일하는 사람을 부르는 말도 바꿨습니다. 관리소장은 동네지기, 경비원은 동네보안관, 환경미화원은 동네벼리로 부릅니다. 

     

    그렇다고 위스테이 별내가 다른 아파트보다 값이 비싼 것은 아닙니다. 입주민들은 협동조합 가입비, 출자금, 임차보증금과 월 임차료를 냅니다. 비용을 환산하면 주변 시세의 80% 수준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아파트 입주자는 협동조합에 출자한 조합원이면서 동시에 임차인이 됩니다. 주변 시세보다 20~30% 저렴한 임대료로 8년 동안 살 수 있습니다. 전용면적 84㎡의 임대료는 보증금 2억8천만원에 월 임대료 10만원입니다. 상대적으로 임대료를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적 기업 ‘더함’이 사업을 주관하면서 개발비용과 시행사 마진을 줄였기 때문입니다. 

     

    위스테이 별내는 사회적혁신기업 더함이 지난 2016년 12월 국토교통부의 협동조합 뉴스테이 공모사업 사업주관사로 선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더함 등이 참여한 부동산투자회사(임대리츠)가 사업비를 조달했습니다. 사업주관사는 입주자를 모집하는 동시에 건설사에 시공을 맡기는 등 사업 추진을 총괄했습니다. 협동조합 설립 등 준비를 거쳐 2018년 3월 착공했고 시공은 계룡건설산업이 맡았습니다. 

     

    이 아파트는 처음 청약을 받았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아파트는 전용면적 60m², 74 m², 84 m² 세 종류였는데 청약 최고 경쟁률은 55대 1, 평균 경쟁률은 6.4대 1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아파트의 탄생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습니다. 총 사업비 2000억 원이 드는 큰 프로젝트였는데 건설사나 금융사 모두 협동조합방식의 아파트 건축을 이해하지 못해 설득하는 데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위스테이 별내와 비슷한 방식으로 건축되는 위스테이 지축은 2022년 1월 준공을 앞두고 있습니다. 

  • 빌 게이츠, 한국의 코로나19 대처에 "모범적" 평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인 빌 게이츠 회장이 한국에 대해 방역 모범국이라고 언급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20일(현지시간) 빌 게이츠 회장은 영국의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공개한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19에 대처를 잘한 나라로 한국을 뽑았습니다. 그는 신속한 접촉자 추적체계를 갖춘 한국 정부와 방역지침 준수에 적극적인 한국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덕분에 한국은 코로나19 발병률과 관련해 타 국가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는 한국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 전염병 사태를 미리 겪으면서 대처능력을 쌓아왔기에 가능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다만 그의 이번 인터뷰는 이번에 발생한 교회발 집단감염 전에 진행됐습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미국의 코로나19 대응을 다시 한 번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8일 공개된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미국 정부는 코로나19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고, 코로나19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면서 초기 대응이 늦어졌다고 비판했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체계를 언급하며 미국의 대응에 대해 다시 비판했습니다.

     

    또한 그는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에는 중국의 부실한 코로나19 대응에도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는 "중국 당국이 바이러스 확산이 본격화된 지난 1월까지도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라며 중국 당국의 부실한 초기대응에 대해도 비판했습니다.

     

    한편 빌 게이츠 회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수백만 명이 더 사망한 뒤 내년 말에야 백신의 대량생산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또한, 그는 "열악한 의료보건 시스템과 경제상황 등 여러 간접적 원인으로 인해 앞으로는 개발도상국에서 특히 많은 사망사례가 발생할 것"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할 개발도상국의 피해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 홍콩 민주화의 선봉장, 지미 라이 빈과일보 회장

    빈과일보의 창시자 지미 라이

    지난 10일 홍콩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던 지미 라이 빈과일보 회장이 12일 0시에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방 국가들에게는 "홍콩 언론 자유의 상징", 중국 당국에게는 "홍콩 혼란의 검은 손"이라 불릴 정도로 홍콩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투사가 되었지만, 본래 그는 운동가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광저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지미 라이는 국공 내전 이후 광저우가 공산화되면서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5살 때부터 폐품을 주워가며 겨우 생활을 이어나갔고, 이후에는 암시장에서 라이터를 팔거나 기차역 앞에서 짐을 나르는 등 허드렛일로 연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홍콩에서 온 어떤 손님이 준 초콜릿을 맛보고 "언젠가 반드시 홍콩에서 살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12살이 되던 해,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아버지가 피신해있던 홍콩으로 밀항했습니다. 

    그는 가발공장, 의류회사 등을 다니며 매일 16시간씩 중노동을 하면서도, 밤에는 학업에 몰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특히 그는 영어를 계속 독학했고, 나중에 20대가 되어서는 미국으로 출장을 다니며 영문 서적을 읽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칼 포퍼 등 사회주의를 비판한 학자들의 책에 푹 빠졌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쓴 '노예의 길'은 너무 많이 읽어 책장이 떨어져 나갈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토대로 섬유업계에 뛰어들기로 결심했습니다.

    1970년, 그는 조금씩 모아온 돈으로 생산공장 코미텍스를 설립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사업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나간 그는 새로운 패션 브랜드의 런칭을 기획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81년,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패션 브랜드 '지오다노'를 설립, 큰 성공을 거둡니다.

     

    기업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그가 자유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것은 1989년 일어난 천안문 6.4 항쟁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천안문에서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던 시위대를 중국군이 유혈 진압하자, 그는 홍콩의 시위대에게 "내려오라. 우리는 분노했다" 라고 적힌 티셔츠를 만들어 나눠줬습니다. 

    1990년에는 넥스트미디어라는 언론사를 만들어 '일주간'이라는 잡지를 발행했습니다. 이 잡지에 리펑 중국 총리를 비난하는 공개서한 등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실었습니다.

    이로 인해 지오다노 매장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등 중국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당했고, "장사꾼은 정권에 맞설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사업을 처분하고 언론사에 매진하기로 결심합니다.

    이후 지오다노를 매각한 그는 1995년 빈과일보를 창간합니다. '빈과'는 중국어로 '사과'를 뜻하며, 지미 라이가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통해 '빈과일보'라고 지었다고 합니다. 

    성경의 사과를 딴 신문답게, 중국 당국이 감추려 하는 커다란 이슈를 계속 특종으로 발굴, 보도하면서 홍콩 제일의 신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는 빈과일보를 통해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동시에, 반중성향의 정당 및 사회단체들을 지원했습니다.

    또한 2003년 홍콩 시민들의 7.1 반중 행진을 독려하기도 했으며, 2014년 홍콩 민주화운동,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등 각종 굵직한 시위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지난 해에는 미국의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방문해 홍콩 문제에 대해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도 그는 "중국 공산당이 세계로부터 홍콩을 고립시킨다"라던지 "중국이 코로나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는 등 중국 공산당과 시진핑 주석을 비판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중국으로부터 수많은 위협에 시달렸으며, 심지어 화염병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지난 10일 그는 홍콩 국가보안법의 "반중단체 자금 지원" 혐의로 체포되었다가, 12일 보석으로 풀려났습니다.

    이날 정오에 빈과일보 본사로 출근한 그는 "빈과일보는 분명히 버틸 수 있다. 어떤 압박을 받아도 모두 버텨야 한다."라며 사원들을 독려했으며, 13일 오전 빈과일보 시청자들과의 온라인 채팅에서는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언급하며 자유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설령 이런 시련이 닥칠 줄 미리 알았다 하더라도, 자신은 홍콩 민주화 운동을 계속했을 것"이라며 이 길을 선택한 것에 한 점의 후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미 라이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견제가 점차 심해지는 가운데, 언론시장의 불황, 반중 성향 언론의 광고수입 감소 등 빈과일보에도 여러 악재가 겹치고 있지만, 홍콩의 민주화에 대한 그의 뜻은 변함없이 견고해보입니다.

  • ‘1000 고아의 어머니’ 신두타이 삽칼

    인도 푸네에 살고 있는 신두타이 삽칼은 ‘1천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1968년부터 지금까지 1500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그에게는 282명의 사위와 49명의 며느리가 생겼습니다.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육원을 지어 운영하며 ‘어머니’의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삽칼은 1948년 인도의 가난한 마을인 마하라슈트라주의 작은 마을 핌프리 메게에서 태어났습니다. 찢어진 옷이라는 뜻의 친디가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가난한 목동이었지만 딸을 학교에 보내길 원했습니다. 아내가 반대하자 그는 함께 소를 돌보겠다며 데리고 나가 몰래 학교에 보냈습니다. 삽칼은 필기용 석판을 살 돈이 없어서 나뭇잎에 글자를 적어가며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그만둬야 했습니다.

     

    대신 삽칼은 인도 풍습에 따라 열 살 때 서른 살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19세에 이미 아들 셋을 뒀고 또 임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삽칼이 사는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숲속에서 소똥을 모아 지주에게 연료로 팔고 있었는데 그가 여성들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난폭한 지주가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삽칼은 지주가 자신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앞장서서 이 일을 문제 삼았고 지방 관청을 움직여 마을 여성들이 소똥 판매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상대로 지주는 복수를 위해 남편을 찾아가 거짓말을 합니다. 삽칼이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고 자신도 그랬다는 겁니다. 뱃속의 아기도 누구 아이인지 모른다는 말도 했습니다. 삽칼을 죽이지 않으면 남편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고요.

     

    남편은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와 임신 9개월째인 삽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져 바닥에 쓰러지자 발로 배를 걷어찼지요.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짐짝처럼 끌고 가 소 우리게 던져뒀습니다. 소에 밟혀 죽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 있던 소 한 마리가 삽칼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소의 접근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가 죽었는지 살펴보러 온 사람들까지 쫓아냈습니다.

     

    삽칼은 외양간에서 딸 맘타를 낳고 돌멩이로 탯줄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준 소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가장 절박할 때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삽칼은 핏덩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지만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기찻길 옆이나 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힌두 사원을 찾아 먹을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잠은 근처 공동묘지에서 잤고요. 한때는 너무 힘이 들어서 딸을 안고 기차선로 위에 지나가는 기차에 치여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길에서 걸식을 하면서 삽칼은 부모에게서 버려져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많이 많이 만났습니다. 자신의 먹을 것을 그 아이들에게 나눠 주면서 간신히 연명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삽칼의 삶에 큰 전환점을 주는 일이 생깁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그를 찾아와 물 한 모금만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온몸이 열로 펄펄 끓었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삽칼은 물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던 음식까지 모두 그 사람에게 줬습니다. 곧 죽을 것 같던 그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신두타이는 자신이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거리에서 만난 버려진 아이들을 품어서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했고 그렇게 얻은 돈과 음식으로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수가 빠르게 늘자 그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푸네 마하라슈트라 등 4곳에 보육원을 지어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삽칼이 운영하는 보육원은 여느 보육원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보육원은 18세가 되면 아이들을 독립시키지만 그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얻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삽칼을 어머니라는 뜻의 ‘마이’라고 부릅니다. 테레사 수녀 앞에 마더라는 말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그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삽칼의 사랑 속에서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 어엿한 성인으로 인도 사회의 구성원이 됐습니다.

     

    삽칼은 남편이었던 슈리하리 삽칼이 70살에 용서를 구하러 찾아왔을 때 그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가난 때문에 굶주리던 그를 보호소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이제 그가 자신의 가장 큰 아들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삽칼은 방문객들에게 그를 “가장 큰 아이”로 소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남편을 용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헌신으로 신두타이는 지난 40년 동안 마더 테레사 상, 아마디야 무슬림 평화상 등 750여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상금은 모두 고아들을 위한 시설을 짓고 교육하는 데 쓰였습니다.

     

    신두타이 삽칼의 감동적인 삶은 2010년 영화 ‘미 신두타이 삽칼’로 만들어져 런던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삽칼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도움을 준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 것”이라며 “그것이 내 삶에서 이뤄낸 가장 귀한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 마음을 바꿔 먹었더니 암이 사라졌다

    오늘은 기적적인 체험을 한 분의 얘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저와 가까운 한의사 선생님의 어머님 얘기입니다. 20년도 지난 일이지요,

     

    그 분의 연세가 여든인가 여든하나였을 때입니다. 어느날 가슴에 멍울 같은게 만져졌다고 합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그 분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멍울이 커지고 만저지는 멍울의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기운이 없어 거동이 힘드실 정도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병원을 찾으신거죠.

     

    병원에 갔더니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유방암 말기라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길어야 3개월 정도 사실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어머님은 물론 가족들도 깜짝 놀랐지요. 병원에서는 더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가족들은 아드님인 한의사 선생님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편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한의학은 물론 서양의학의 장점에도 이해가 많으셨죠. 무엇보다 그 분은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 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외과의학적 처치가 불가능하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두 가지 처방을 했습니다. 어머님은 독실한 크리스챤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그런 점까지 고려해 처방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기도이고, 하나는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어머님에게 매일 기도를 하시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보시기에 아드님이 알려주는 기도법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아랫배에 십자가를 떠올리며 고요히 묵상을 하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랫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곳은 한의학에서 에너지 저장고로 여기는 하단전이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마음이 가는 곳에 에너지가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처방은 마음을 하단전에 둠으로써 에너지 창고를 채우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그냥 아랫배를 바라보면 생각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어머님에게 익숙한 대상인 십자가를 떠올리시라고 했습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십자가를 말이지요.

     

    다행히 어머님은 아드님을 무척 신뢰하셨다고 합니다. 틈날 때마다 열심히 아랫배에 십자가를 떠올리는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 처방은 생각의 전환입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하루 날을 잡아 어머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두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어머니는 3개월 뒤면 하늘나라에 가셔서 예수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평생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고 뵙고 싶어하셨잖아요. 이제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사람 같으면 3개월 뒤에 죽는다는 생각에 두려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머님은 믿음이 훌륭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드님의 얘기를 듣고는 두려움 대신 기쁜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 말씀처럼 살다가 가시면 예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이웃은 물론 세상 만물에 사랑을 전해보세요. 그저 어머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만나는 모든 존재에게 전해진다고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

     

    어머님은 이 말을 듣고 더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어머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친절하게 대하고 좋은 말을 건네고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옷, 그릇, 음식 등 생활용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고 그 모든 것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빌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혹 당신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지 모르는 분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님의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가슴에 만져지던 멍울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느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다 사라졌습니다.

     

    의사와 가족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 어머님 몸에서 자라던 암세포가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의사 선생님은 어머님께서 사랑으로 만물을 대하는 마음을 먹자 치유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10여 년을 건강하게 살다가 당신이 그리던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 연꽃에서 배우는 10가지 지혜

    연꽃에 대해 배울만한 좋은점이 많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연꽃의 밝은 마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올립니다.

     

    불가의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산회에서 제자들에게 불법을 전할 때 연꽃을 들어 보이니 마하 가섭 존자만이 뜻을 알아듣고 미소를 지었다하여 염화미소(拈華微笑)라 합니다. 말이나 글이 아닌 마음과 마음으로 전했다하여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이집트에서는 수련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해가 뜨면 꽃이 피는 수련은 태양을 상징하면서 이집트 고대 문양의 중심에 있는 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동양의 연꽃은 무명 (無明)을 깨쳐 태양을 낳는 꽃으로 봤습니다.

     

    이른 아침 연꽃의 꽃잎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 태양이 잉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진흙바닥에 파묻힌 지 무려 1300여 년 만에 종자가 발아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연꽃이 상징하는 지혜의 문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1,이제염오(離諸染汚) 연은 진흙 속에서 자라면서도 진흙에 오염되지 않는것을 이제염오라 했습니다. 어떠한 오염된 곳에서도 물들지 않고 고고하며 깨끗한 본성을 지키는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2. 성숙청정(成熟淸淨) 연꽃을 보면 마음이 맑아집니다. 멀리까지도 맑은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것을 닮은 사람은 은연중에 다른이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맑아지게 합니다. 이런 사람을 비유하였습니다.

     

    3. 견자개길(見者皆吉) 꿈에서 연꽃을 보면 아주 길하다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길한 일을 주는 귀한 삶을 연꽃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4,면상희이(面相熙怡) 모양이 둥글어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화사하게 피어있는 연꽃은 마음이 둥글둥글하며 순수하고 밝은 사람에 비유되기도 합니다.

     

    5. 유연불삽(柔軟不澁) 연의 줄기는 부드럽고 유연합니다. 욕망과 집착을 비워낸 사람은 유연하면서도 힘이 있어 어려운 속에서도 자신을 지켜 나가는 사람에 비유되곤 합니다.

     

    6. 불여악구(不與惡俱) 연잎에 물이 닿아도 굴러 떨어질 뿐 연잎에는 흔적도 남지 않습니다. 악한것이 가까이 있어도 멀리하여 물들지 않으며 일이나 관계에 있어 집착 없이 하는 사람을 이에 비유했습니다.

     

    7.계향충만(戒香充滿) 연꽃이 만발하면 악취는 사라지고 향기만 남습니다. 고결한 인품은 그 윽한 향을 품어서 사회를 정화 합니다. 이런사람을 비유하였습니다.

     

    8. 개부구족(開敷具足) 꽃이 지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꽃피운 만큼의 선행의 결과로 선한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은 사람을 비유했습니다.

     

    ​9. 본체청정(本體淸淨) 연의 줄기와 잎은 청정함을 잃지 않습니다. 청정한 ​몸과 마음을 간직한 사람을 본체청정에 비유했습니다. 

     

    10. 연화십유(蓮華十喩) 아름다운 연꽃처럼 선행을 열 가지 이상 베풀어야 합니다. 깨달음의 이유가 서로 화합하고 사랑 함에 있으니 선행에 마음을 두어 실천에 힘쓰는 사람을 비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