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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네딕토 성인 (3) - 독살 위기를 면하게 한 기적

    베네딕토 성인은 독수자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성인이 머물던 지역에 있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찾아와 전임 수도원장이 선종했다며 후임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성인은 거절했지만 수도자들이 거듭거듭 요청하자 마침내 그 자리를 수락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장이 되어 흐트러진 규율을 다시 세우고 올바른 수도자로서의 삶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유분방한 삶에 물들어버린 그들은 성인의 엄격한 규율에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모셔온 수도원장을 쫓아내기가 어렵자 이들은 성인을 독살하기 위해 포도주에 독을 탔습니다. 성인이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축복 기도를 하기 위해 성호를 긋자 그 잔이 그 자리에서 깨져 버렸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상황을 짐작하고 미련 없이 수도원을 떠나 수비아코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성인은 자신을 죽이려 한 이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을 떠나기에 앞서 하느님께 그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성인이 수도원을 떠날 때 그를 따르던 수도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성인과 수도자들은 수비아코 근처에 작은 수도원들을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성인은 수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한 본당 사제가 성인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인이 이끄는 수도자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빵에 독을 넣어 성인에게 바쳤습니다. 평소 성인은 빵을 먹을 때 까마귀에게 부스러기를 던져주곤 했는데 그날 성인이 빵을 먹으려 하자 까마귀가 나타나 빵을 물어다 버렸습니다.

     

    그 사제는 성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쉽지 않자 생각을 바꿔 성인을 따르던 수도자들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아리따운 여성들을 수도원에 보내 수도자들을 유혹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그를 따르던 수도자들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가꿔온 수도 공동체를 미련 없이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도원별로 책임을 나눠 맡긴 베네딕토 성인이 그곳을 떠나던 날이었습니다. 성인을 괴롭히던 사제는 자신의 처소 발코니에서 성인이 떠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그가 서 있던 발코니가 무너져 그 사제는 돌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수도자가 기뻐하며 성인에게 이를 알렸지만 성인은 그의 마음 또한 세상을 떠난 사제와 별반 다름없음을 한탄하며 그를 엄히 꾸짖고 속죄하도록 했습니다.

  • 골수이식을 해주다 세상을 떠난 교장 선생님

    뉴저지주 웨스트필드 고등학교 교장인 데릭 넬슨 박사가 만난 적도 없는 소년에게 골수 이식을 해주다 세상을 떠난 사연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미지 : 故 데릭 넬슨 박사 페이스북]

    만난 적도 없는 소년에게 골수 이식을 해주다 세상을 떠난 교장 선생님의 사연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줍니다.

     

    미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뉴저지주 웨스트필드 고등학교 교장인 데릭 넬슨 박사가 8일 연명치료의 중단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넬슨 교장은 지난 2월 뉴저지의 한 병원에서 골수이식을 위한 조혈모세포를 채취하던 도중에 심장마비로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한 달 동안 많은 이들이 그가 깨어나기를 기도했지만 차도가 없자 아버지인 윌리 넬슨은 “지난 주말 아들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다"라고 밝혔습니다.

     

    넬슨 교장은 지난해 10월 골수를 필요로 하는 환자와 기증자를 연결해주는 비영리단체 ‘비 더 매치(Be the Match)’로부터 프랑스에 있는 14세 소년과 조혈모세포가 일치한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는 1996년 델라웨어주립대에 다닐 때 헌혈을 하면서 골수를 기증하겠다는 서약을 했습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뒤 그가 약속을 지킬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요. 넬슨 교장은 당시 학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누군가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약간의 고통은 견딜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말하며 골수를 기증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넬슨 교장이 골수이식을 하다 혼수상태에 빠졌고 급기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웨스트필드는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수천 명의 지역주민들이 수요일 밤에 열린 추모 모임에 참석해 고인을 기렸습니다. 웨스트필드 고등학교 학생들이 발간하는 교지 는 학생들과 교직원의 추모를 담아 넬슨의 삶을 기리는 특집판을 만들었습니다.

     

    웨스트필드 고등학교의 이름을 그의 이름으로 변경하자는 온라인 청원은 순식간에 1만 6천 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넬슨 교장의 장례식에서 약혼자인 세론다 브리에커는 “그는 친절하고 너그러웠으며 공평무사했다"라며 “늘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았고 늘 무언가를 더 베풀고 싶어 했다"라며 생전의 모습을 회고했습니다.

     

    학생들은 추모 특집 기사에서 넬슨 교장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넬슨 박사,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지역사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한 분.’

  • 정학 대신 명상, 그 놀라운 결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로버트 W 콜먼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명상을 시킨다. [이미지 : EducateInspireChangeTV 유튜브 캡처]

    학생이 말썽을 피우면 징계를 합니다. 교실 밖에 세워두거나 봉사활동을 시키고 심하면 정학 또는 퇴학을 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로버트 W 콜먼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명상을 시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바뀌냐고요? 물론입니다. 그것도 놀랍게요. 지난해 명상을 도입한 뒤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는 정학 조치를 당한 학생이 한 명도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이 학교 근처에 있는 패터슨 파크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역시 정학 조치를 받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출석률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홀리스틱 라이프 재단이 지역 자선단체와 함께 만든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말썽을 일으킨 학생들은 정학 대신 ‘마음챙김방(Mindful moment room)’으로 가서 명상을 합니다.  

     

    [[IMAGE|397|center|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로버트 W 콜먼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완전한 나(Holistic Me)’라는 마음챙김 운동법과 요가 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 : EducateInspireChangeTV 유튜브 캡처] ]]

     

    명상만 하지는 않습니다. 이 학교는 방과 후에 ‘완전한 나(Holistic Me)’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5학년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챙기면서 하는 운동법과 요가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명상을 안내하는 커크 필립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아이들이 침묵 속에서 명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명상을 잘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필립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에 앞서 명상을 했던 예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 꾸러미를 앞에 뒀을 때는 흥분하기 마련입니다.  

     

    “어린아이가 선물이 든 가방을 앞에 두고 고요히 앉아 명상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아이들이 그렇게 했어요. 우리 모두 그 장면을 보면서 미소 지었습니다.”

  • 커피찌꺼기 100% 재활용에 도전하는 커피큐브

    커피큐브에서 커피찌꺼기(커피박)을 재료로 만든 커피 점토. [이미지 : 커피큐브 홈페이지]

    임병걸 커피큐브 대표는 커피찌꺼기(커피박)의 100% 재활용을 꿈꿉니다.

     

    커피큐브는 커피박으로 부엉이, 향꽂이, 커피캔들, 커피화분 등 소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입니다. 아이들의 친환경 교육을 위한 커피 점토도 생산합니다.

     

    [[IMAGE|391|center|임병걸 커피큐브 대표. 커피큐브는 커피 찌꺼기로 다양한 소품을 만들어 파는 회사이다. [이미지 : 유튜브 캡처] ]] 

     

    임 대표가 커피찌꺼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는 연봉도 짱짱한, 나름 주위의 부러움을 사는 외국계 회사 직원이었지요.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앞을 지나던 임 대표는 큰 포대에 담긴 커피찌꺼기를 보고 이를 재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2017년 커피박 발생량은 13만 톤에 달합니다. 재활용되는 비중은 거의 없고 처리 비용만 연간 30억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임 대표는 이날부터 커피찌꺼기의 ‘부활’을 위한 연구에 몰두합니다. 퇴근 뒤에 카페에서 커피박을 가져다 실험을 했습니다. 대학 때 화학을 전공해 실험은 낯선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구 때문에 하루에 두세 시간 잠을 자고 출근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3년여의 시간을 들인 끝에 임 대표는 커피 점토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2011년 커피 점토 분말 관련 국내외 특허도 취득했습니다. 2012년 서울시 사회적 경제 아이디어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지요.

     

    커피 점토로 만든 첫 작품이 예쁜 부엉이 인형인 씨울입니다. 주위에 선물로 주곤 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IMAGE|392|center|커피점토로 만든 부엉이 인형 씨울. 커피큐브의 인기상품 중 하나다. [이미지 : 커피큐브 홈페이지] ]]   

     

    임 대표는 2013년 8년 동안 다니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박 재활용 기업인 커피큐브를 창업했습니다.

     

    사업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커피박으로 만든 제품에 곰팡이가 생기는 일이 있었고, 커피박 냄새로 인한 민원으로 여러 차례 사무실을 옮기기도 했습니다. 경기도 김포시 외곽으로 사무실을 옮기게 된 이유입니다.

     

    커피큐브는 최근 커피박으로 만든 파벽돌을 야심작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은은한 커피향이 나오기 때문에 카페 등의 인테리어용으로 수요가 클 것으로 보입니다.

     

    커피큐브에서 커피박으로 만든 벽돌은 ‘2018년도 혁신형 에코디자인 사업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 ‘코끼리 고아원’을 만든 다프네 셀드릭

    케냐 나이로비에 코끼리 고아원을 설립한 故 다프네 셀드릭. [이미지 : 쉘드릭 와일드라이프 트러스트 공식 홈페이지]

    동물보호운동가인 다프네 셀드릭은 삶의 대부분을 아프리카의 어미 잃은 아기 코끼리들을 구하고 돌보는 데 보냈습니다.

     

    그가 구한 아기 코끼리의 어미들은 모두 상아를 노리는 사냥꾼에 희생당했습니다. 다프네는 ‘코끼리 고아원’을 운영하며 아기 코끼리를 구출해 돌본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2018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다프네의 가장 큰 공적 가운데 하나는 코코넛 오일이 아기 코끼리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다프네가 처음 발견한 어미 잃은 두 마리의 새끼 코끼리는 우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먹이를 먹였는데도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거의 모든 조합을 시도해 본 끝에 코코넛 오일이 든 우유가 아기 코끼리에게 적합함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이런 발견으로 세계 각지에서 구출된 수천 마리의 아기 코끼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프네는 어미의 죽음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아기 코끼리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IMAGE|382|center|故 다프네 셀드릭이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에서 아기 코끼리를 돌보고 있다. 나이로비 코끼리 고아원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무한도전의 정준하가 아기 코끼리 도토를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 ]]

     

    다프네는 생전에 “코끼리는 감정적으로 사람과 다르지 않다"라고 그를 찾아온 기자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가족을 잃고 적의 손에 붙잡힌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겠습니까?”

     

    그는 코끼리들이 세상을 떠난 동료를 애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머문다는 사실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아기 코끼리를 구출하고 키우면서 그는 세계에서 코끼리와 가장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다프네가 돌본 뒤 야생으로 돌아간 코끼리들은 언제 만나더라도 그를 알아봤습니다. 낳아 기른 아기를 보여주려는 듯 다프네가 있는 곳을 부러 찾는 코끼리들도 있다고 합니다.

     

    위험한 때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자신이 키운 뒤 돌려보낸 코끼리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코끼리는 코로 그를 휘감아 내동댕이쳤고 바위 무더기 위해 떨어진 그는 한쪽 다리가 부러졌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코끼리가 다가오자 죽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그의 냄새를 맡더니 그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주위를 살피다가 떠나갔습니다. 다프네는 코끼리가 인간으로부터 수없이 위협을 당한 경험으로 자신을 공격했지만 이내 자신이 친구임을 알아봤던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IMAGE|384|center|故 다프네 셀드릭이 젊은 시절 딸과 코끼리와 함께 촬영한 사진. [이미지 :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 ]]

     

    다프네가 아기 코끼리를 구하는 일을 시작한 것은 남편 데이비드 셀드릭 때문이었습니다. 다프네의 두 번째 남편인 데이비드는 1960년대 케냐의 차보(Tsave) 국립공원 소장으로 일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야생동물을 도우면서 다프네는 밀렵꾼으로 인해 고아가 된 코끼리가 많음을 알고 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1977년 남편이 심장마비로 57세에 사망하자 다프네는 남편을 기리기 위해 데이비드 셀드릭 야생 재단을 만들어 차보 공원에 전초기지를 두고 코끼리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다프네는 생전에 상아 거래 금지를 적극 옹호했습니다. 특히 그는 상아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상아 판매를 금지하도록 세계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프네는 2014년 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남편 데이비드가 권해서 읽은 책의 한 구절을 담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얻은 트라우마를 자연 속에서 치유한 헨리 베스턴이라는 사람의 책이었습니다.

     

    “동물에 관한 더 현명한 아니 더 신비로운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우리 세계보다 더 오래되고 복잡한 세계에서 기품 있게 움직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결코 갖지 못했던 예리한 선천적 감각을 갖고 있어서 완전하며 우리가 결코 듣지 못할 목소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들은 우리 형제가 아니며 부하도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과 시간이라는 그물 속에서 우리와 함께 붙잡힌 다른 민족이자 지구의 영화와 시련을 함께 누리는 동반자들입니다.”

     

     

    [[IMAGE|381|center|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에서 사육사가 아기 코끼리를 돌보고 있다. 나이로비 코끼리 고아원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무한도전의 정준하가 아기 코끼리 도토를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 ]]

  • 학습장애 아이를 바꾼 선생님의 한마디

    레스 브라운은 오하이오 주 하원 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It's Possible!"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유명한 동기부여 연사이기도 하다. [이미지 : 레스 브라운 페이스북]

    레스 브라운은 생전에 자기개발과 동기부여 분야에서 이름난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작가이면서 라디오 DJ를 했었고 레스브라운쇼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삶은 불행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주 리버티시의 버려진 건물 바닥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뿐 아니라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에게는 ‘교육적 정신장애자’라는 딱지가 붙었고 6학년에서 5학년으로 강등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쌍둥이 동생은 너무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 다른 학생들은 레스를 ‘멍청한 쌍둥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한 선생님이 레스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레스에게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을 때 레스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님이 “넌 할 수 있어”라고 격려했지만 레스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레스의 그런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교탁 뒤에서 걸어 나와 레스와 눈을 맞추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레스, 너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현실로 만들 필요는 없단다”

     

    그 한 마디가 어린 레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바보, 학습장애자 등 자신을 향한 친구들의 놀림은 그들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레스는 변했습니다. 평생 그 말을 잊지 않고 온갖 역경을 딛고 노력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강사가 됐습니다.

     

    레스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위대함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힘들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여행이라고 믿지만 우리 모두는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 인분 덕에 250명을 고용한 기업

    새너지(Sanergy)의 퇴비를 들고 있는 직원의 모습. [이미지 : 새너지 공식 홈페이지]

    우리 조상들은 똥을 거름으로 썼습니다. 

     

    지금도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 가운데 재래식 화장실을 짓고 거기서 나오는 인분으로 거름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케냐에도 인분을 재활용해 퇴비를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새너지(Sanergy)라는 이름의 회사는 빈민가에 화장실을 짓고 거기서 나오는 인분으로 퇴비를 만들어 팝니다. 

     

    새너지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800여 개의 공중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매일 나오는 10톤가량의 인분을 모아 공장으로 갖고 갑니다. 여기에 식물성 재료와 미생물을 넣어 6개월 동안  숙성 시키면 퇴비가 됩니다. 우리나라 예전에 시골에서 인분에 낙엽이나 부엽토를 넣어 ‘발효’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새너지가 인분을 퇴비로 만드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새너지의 설립자인 데이비드 아우레르바흐, 린제이 스트레들리, 아니 발라바네니 세 사람은 2009년 미국 MIT에서 10억 명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상 국가와 도시에서 작동할 수 있는, 그곳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한다는 원칙 아래 고민을 거듭하다 도시 빈민가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면서 빈곤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안으로 화장실 개선 사업을 생각해냈습니다. 새너지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실제 가난한 나라나 지역의 화장실 문제는 심각합니다. 세계 인구의 30%를 훨씬 넘는 25억 명이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화장실을 쓰고 있습니다. 길에다 대소변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고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화장실이 없어 비닐봉지에 대변을 받아 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2011년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에 새너지는 케냐 무쿠르 콰응가 빈민지역에 프레시 라이프(Fresh Life)라는 브랜드의 파란색 간이 화장실을 내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새너지의 인분 퇴비화 사업은 괄목할 성장을 이뤘습니다. 현재 새너지가 만들어 비치한 파란색 화장실은 하루에 9만 명이 이용합니다. 그를 통해 새너지가 지난해 모은 인분은 6000톤이고 그를 통해 만들어진 퇴비는 유기농 농사에 쓰여 농작물 생산을 30%나 늘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새너지회사에는 지금 250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직원의 60%는 화장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 주민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새너지의 공동창업자인 린제이 스트레들리는 TED 강연에서 “새너지의 방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도시화와 물 부족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위생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 베네딕토 성인 (1) - 첫번째 기적

    얼굴 없는 성인으로 알려진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입니다. 유럽의 수호성인이기도 하지요.

     

    베네딕토 성인은 로마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20살 전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은수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 독수가로 살고자 했지만 다른 수도자들의 거듭된 요청으로 그들을 이끌며 이탈리아 수비아코에 12개의 수도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말년에 이탈리아 남부 몬테카시노 산에 세운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발상지가 됐고 베네딕토 수도회의 총본부로 쓰이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즈음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누르시아에서 로마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젊어서 문학에 심취한 그는 방탕한 삶을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다 귀족 신분을 포함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게 됩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처음부터 은수자의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저 퇴폐한 로마를 떠나고 싶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시골로 갔을 때 곁에는 자신을 키워준 유모가 함께 갔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처음 정착한 곳은 성 베드로 성당이 있던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지체가 높은 그를 경계하고 어려워했습니다. 그럴수록 베네딕토 성인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모든 이들을 친절히 대했다고 합니다. 그즈음 베네딕토 성인이 첫 번째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날 베네딕토 성인을 돌보던 유모가 밀을 빻아 거르기 위해 이웃집에서 빌려온 채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습니다. 유모는 남의 집에서 쓰던 채를 망가뜨린 것이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서 부유하게 살던 때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유모가 우는 것을 보고 흩어진 조각을 모아 놓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났을 때 채는 원래 모양대로 돌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 봉급의 80%를 제자 위해 쓰는 교사

    케냐의 교사 피터 타비치(36)가 2019년 세계교사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다. [이미지 : Global Teacher Prize 공식 홈페이지]

    케냐 시골학교의 과학교사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으로 뽑혀 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케냐의 리프트밸리에서도 오지인 프와니빌리지의 케리코 중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피터 타비치(36)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교사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교사로 뽑혔습니다. 

     

    타비치는 이날 시상식에서 진행자 영화배우 휴 잭맨으로부터 트로피와 상금을 전달받고 “이 상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습니다.  

     

    세계 교사상은 바르키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 179개 나라에서 1만여 명이 추천됐습니다. 

     

    타비치는 프란체스코 수도화의 멤버로 자신이 받는 봉급의 80%를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복과 교과서를 사주는 데 썼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가난을 신부로 맞아’ 평생을 청빈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도운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타비치는 케냐의 가장 가난한 마을 가운데 하나인 프와니빌리지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90% 이상은 빈곤가정 출신이고 1/3은 고아들이거나 편부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5~7km 가량을 걸어서 등교하는데 우기에는 학교에 가기가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마약에 손을 댄 아이들도 있고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조혼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고, 심지어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의 교육 환경도 무척 열악합니다. 학교에 컴퓨터가 한 대뿐이고 인터넷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교사 한 명이 60명에 가까운 학생을 돌봐야 합니다.  

     

    타비치는 아이들을 위해 재능육성동아리를 만들었고 이를 과학동아리로 발전시켰습니다. 타비치와 4명의 동료 교사들은 아이들을 1대1로 맡아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고 틈나면 가정을 방문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하는 부모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 학교 학생 수는 지난 3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나 400여 명이 됐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크게 향상됐습니다.  

     

    타비치와 동료 교사들이 지도한 과학동아리에서도 성과가 났습니다. 학생들은 국제 과학경진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탔고 영국왕립학회가 주는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타비치는 시상식에서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내 학생들이 이룩한 성과 때문”이라며 “이 상이 그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프리카는 세계 곳곳에서 이름을 떨칠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를 배출할 것입니다. 특히 여성들이 그런 성공 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저는 과학과 기술이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아프리카의 아침입니다. 하늘도 활짝 갰습니다. 이제 아프리카의 시대입니다.”

  • 1000번의 감사를 위해 세계를 누빈 작가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의 저자로 유명한 에이제이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 TED 캡처]

    미국 작가인 A. J.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 아이들에게도 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북돋워 줬습니다. 그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감사 노트를 쓰게 하기도 했습니다. 버스 운전사는 물론이고 날씨를 알려주는 인공지능 로봇 알렉사에게도 말이지요. 

     

    추수감사절에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식탁에 오른 음식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제인이 제이콥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감사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아세요? 아빠가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직접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이콥스는 아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이 작가는 모닝커피를 마시도록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감사 인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제이콥스가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을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할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관여된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동네 커피점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대상으로 시작한 감사 인사는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동네 커피가게의 바리스타, 원두커피 판매자, 원두커피가 담긴 포장지를 만든 사람, 원두커피를 싣고 온 운전기사, 원두커피를 실은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도로를 만들어 준 사람 등등. 

     

    그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 컵의 뚜껑을 발명한 더그 플레밍이라는 발명가에도 연락을 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가 매일 마시는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었고 그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도로의 중앙선을 그어준 사람도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는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남미의 콜롬비아에까지 찾아갔습니다. 자신을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벼랑길을 운전하는 기사에게도 당연히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이콥을 텔레마케터나 다단계판매원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감사 인사를 받고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제이콥스는 이 프로젝트에 ‘천 명에 감사하기(Thanks a thousan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국 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상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연결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 부정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심굴 궂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사 여행을 하면서 그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감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3세계의 식수 문제 해결을 돕는 단체를 알게 되어 후원도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결과는 감사하면 삶이 여유롭고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행동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