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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급의 80%를 제자 위해 쓰는 교사

    케냐의 교사 피터 타비치(36)가 2019년 세계교사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다. [이미지 : Global Teacher Prize 공식 홈페이지]

    케냐 시골학교의 과학교사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으로 뽑혀 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케냐의 리프트밸리에서도 오지인 프와니빌리지의 케리코 중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피터 타비치(36)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교사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교사로 뽑혔습니다. 

     

    타비치는 이날 시상식에서 진행자 영화배우 휴 잭맨으로부터 트로피와 상금을 전달받고 “이 상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습니다.  

     

    세계 교사상은 바르키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 179개 나라에서 1만여 명이 추천됐습니다. 

     

    타비치는 프란체스코 수도화의 멤버로 자신이 받는 봉급의 80%를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복과 교과서를 사주는 데 썼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가난을 신부로 맞아’ 평생을 청빈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도운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타비치는 케냐의 가장 가난한 마을 가운데 하나인 프와니빌리지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90% 이상은 빈곤가정 출신이고 1/3은 고아들이거나 편부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5~7km 가량을 걸어서 등교하는데 우기에는 학교에 가기가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마약에 손을 댄 아이들도 있고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조혼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고, 심지어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의 교육 환경도 무척 열악합니다. 학교에 컴퓨터가 한 대뿐이고 인터넷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교사 한 명이 60명에 가까운 학생을 돌봐야 합니다.  

     

    타비치는 아이들을 위해 재능육성동아리를 만들었고 이를 과학동아리로 발전시켰습니다. 타비치와 4명의 동료 교사들은 아이들을 1대1로 맡아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고 틈나면 가정을 방문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하는 부모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 학교 학생 수는 지난 3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나 400여 명이 됐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크게 향상됐습니다.  

     

    타비치와 동료 교사들이 지도한 과학동아리에서도 성과가 났습니다. 학생들은 국제 과학경진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탔고 영국왕립학회가 주는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타비치는 시상식에서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내 학생들이 이룩한 성과 때문”이라며 “이 상이 그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프리카는 세계 곳곳에서 이름을 떨칠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를 배출할 것입니다. 특히 여성들이 그런 성공 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저는 과학과 기술이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아프리카의 아침입니다. 하늘도 활짝 갰습니다. 이제 아프리카의 시대입니다.”

  • 1000번의 감사를 위해 세계를 누빈 작가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의 저자로 유명한 에이제이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 TED 캡처]

    미국 작가인 A. J.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 아이들에게도 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북돋워 줬습니다. 그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감사 노트를 쓰게 하기도 했습니다. 버스 운전사는 물론이고 날씨를 알려주는 인공지능 로봇 알렉사에게도 말이지요. 

     

    추수감사절에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식탁에 오른 음식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제인이 제이콥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감사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아세요? 아빠가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직접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이콥스는 아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이 작가는 모닝커피를 마시도록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감사 인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제이콥스가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을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할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관여된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동네 커피점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대상으로 시작한 감사 인사는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동네 커피가게의 바리스타, 원두커피 판매자, 원두커피가 담긴 포장지를 만든 사람, 원두커피를 싣고 온 운전기사, 원두커피를 실은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도로를 만들어 준 사람 등등. 

     

    그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 컵의 뚜껑을 발명한 더그 플레밍이라는 발명가에도 연락을 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가 매일 마시는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었고 그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도로의 중앙선을 그어준 사람도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는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남미의 콜롬비아에까지 찾아갔습니다. 자신을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벼랑길을 운전하는 기사에게도 당연히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이콥을 텔레마케터나 다단계판매원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감사 인사를 받고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제이콥스는 이 프로젝트에 ‘천 명에 감사하기(Thanks a thousan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국 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상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연결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 부정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심굴 궂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사 여행을 하면서 그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감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3세계의 식수 문제 해결을 돕는 단체를 알게 되어 후원도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결과는 감사하면 삶이 여유롭고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행동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 100세 봉사 꿈꾸는 93세 의사 한원주

    매그너스 요양병원의 한원주 내과 과장(93). [이미지 : 극동방송TV 유튜브 캡처]

    내과 의사 한원주(93) 선생님이 오랜 기간 의술을 베풀면서 얻은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100세 현역’을 꿈꾸는 한 선생님은 지금도 여느 의사처럼 환자를 진료합니다.

     

    한 선생님의 직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매그너스 요양병원. 일요일 저녁 병원으로 출근해 금요일 오후 진료를 마친 뒤 서울 자택으로 퇴근하는 게 한 선생님의 일주일입니다.

     

    이곳에서 한 선생님이 돌보는 환자는 가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생뻘 되는 ‘어린’ 분들입니다. 한 선생님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 겸손한 자세로 환자를 돌봐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손길을 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어떨 때는 함께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의사 대의(大醫)는 환자의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책임을 져 전인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의사라면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한 선생임은 1949년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려대에서 내과 박사 학위를 딴 뒤에는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전문의 자격을 따기도 했습니다.

     

    귀국한 뒤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1978년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듬해인 1979년 병원을 정리하고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 원장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 내가 배운 기술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한 선생님은 의료선교의원에서 가난한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시작했고, 1982년에는 ‘전인치유소’라는 이름의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가난이 병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난한 환자에게 생활비와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자립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한 선생님이 봉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도 컸습니다. 역시 의사였던 한 선생님의 아버지는 평생을 의료봉사에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는 82세 되던 2008년 의료선교의원 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매그너스 요양병원 내과 의사로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남은 생을 노인요양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위로만으로도 병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선생은 2017년 JW중외제약의 공익 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제5회 성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천상은 JW성천재단 창업자인 고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는 의료인에게 주는 상입니다.

     

    한 선생님의 건강 유지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진료를 마친 뒤에는 어김없이 한 시간 가량 병원 주변을 산책합니다.

     

    의사로 평생을 봉사하며 살다 세상을 떠난 알버트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베풀 수 있는지 터득한 사람뿐입니다.”

  •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명상이야기

    <사피엔스>로 잘 알려진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20년 가까이 위빠사나 명상을 실천한 명상가이기도 하다. [이미지 : 유발 하라리 페이스북]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라는 세계적 베스트셀러의 작가입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 역사학과의 젊은 교수를 일약 세계적 베스트 작가 반열에 올린 <사피엔스>는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65만 부가 판매됐지요. 

     

    하라리의 열풍은 후속작 <호모데우스>와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라리는 이들 책을 통해 ‘세계의 정복자가 된 인류가 스스로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는 다소 도발적인 예측을 과학적 근거를 들며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듯의 호모와 신이라는 뜻 데우스를 합한 호모데우스라는 책 제목은 그를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히라리는 인간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만 미래 예측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고 자칫 혼돈과 무지의 상태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또 석기시대에 비해 엄청난 힘을 갖고 있지만 행복은 그에 비례해서 커지지 않았고 그 힘을 행복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하라리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적 균형감각이나 사고의 유연성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라리는 자신이 정신적 균형감각과 사고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명상을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명상을 통한 집중과 정신적 균형감각, 사고의 유연성이 없었다면 사피엔스나 호모데우스 같은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하라리는 20년 가까이 위빠사나 명상을 한다고 합니다. 그에게 명상을 가르쳐준 이는 사트라 나라얀 고엔카입니다. 

     

    그는 매일 1~2시간씩 명상을 합니다. 그리고 1년에 한두 달은 인도의 고엔카 센터를 찾아 외부와 모든 연락을 끊고 명상에만 집중을 한다고 합니다. 

     

    하라리는 명상의 본질에 대해 “그냥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눈을 감고 앉아서 내 몸과 마음에서 그리고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알아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스토리는 허상이라는 겁니다. 

     

    하라리는 이런 명상이 한 개인으로서 자신에게, 그리고 학자로서 자신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명상을 통해 모든 이론이나 학설 등을 한쪽으로 치워두고 세계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을 통해 학문적 연구에 도움을 받는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내지만 자신은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직시한다는 겁니다. 

     

    유발 하라리가 고엔카로부터 배운 위빠사나 명상법은 ‘있는 그대로 본다’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일어나는 사실 그대로를 관찰하도록 이끄는 방법입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가 인생의 책으로 꼽은 <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김영사)에는 위빠사나 명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것입니다. 

    어떤 것도 믿음 하나만 가지고 받아들여선 안됩니다. 

    그것이 논리적인지, 실용적인지, 유익한지 검토해 봐야 합니다.

    이성적으로만 따져 지적으로 진짜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진리가 유익하다면, 우리가 그것을 직접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야 그것이 진짜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세계를 감동시킨 뉴질랜드 총리의 테러 대응 리더십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 총리가 지난 16일 검은 히잡을 쓰고 무슬림 공동체를 방문해서 뉴질랜드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위로를 표했다. [이미지 : 가디안 뉴스 유튜브 캡쳐]

    이슬람 사원 모스크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총격 테러로 충격과 슬픔에 잠긴 뉴질랜드에서 총리의 리더십이 세계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저신다 아던 총리는 희생자를 진심으로 위로했고,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어울려 사는 뉴질랜드의 가치를 다시 확인했으며 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위해 단호한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총격 사건이 다음 날인 16일 아던 총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인 히잡을 쓰고 사건이 발생한 크라이스트처치로 가 충격과 공포에 빠진 무슬림 공동체를 찾았습니다.

     

    총리는 이 자리에서 “뉴질랜드를 대표해 여러분 모두에게 사랑과 지지의 메시지를 전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건 뉴질랜드가 아닙니다. 지난 24~36시간 동안 우리가 본 사건과 행동 가운데 뉴질랜드답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지지의 메시지들입니다.”

     

    파이자 알리라는 한 시민은 이날 히잡을 쓰고 무슬림 공동체를 찾은 아던 총리의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검은색 히잡을 쓴 아던 총리의 얼굴에서는 진심 어린 슬픔이 묻어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희생자 가족들을 방문해줄 수 있느냐고 하자 아던 총리는 곧바로 일정을 바꿔 희생자 가족이 머물고 있는 해글리대학으로 향했습니다.

     

    알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저신다 아던 총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지도자인가요. 총리는 사건 뒤 공격용 무기에 대한 제한 조치를 했을 뿐 아니라 희생자 가족에 대한 재정적 지원도 제안했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수도 웰링턴으로 돌아온 아던 총리는 18일 웰링턴국립도서관에 마련된 공식 분향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뉴질랜드의 모든 사람을 대표해 우리가 함께 비통해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우리는 하나입니다. 희생자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조문을 한 뒤 아던 총리는 곧바로 각료 회의를 주재하고 부총리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10일 안에 총기법 개정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던 총리는 테러범에 대해서는 단호했습니다.

     

    19일 검은색 옷차림으로 의회에 나온 아던 총리는 ‘앗살람 알라이쿰(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아랍어 인사말로 연설을 시작했고 “테러 용의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테러 행위로 많은 것을 얻으려 했고, 그 중 하나는 악명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제가 그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지 못할 이유입니다.

    그는 테러리스트입니다. 범죄자입니다. 극단 주의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의 이름을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간곡히 요청드립니다. 그들의 목숨을 앗아간 남자의 이름 대신,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가 악명을 얻으려 했는지 모르겠지만 뉴질랜드에서 우리는 그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름조차도”

     

    아던 총리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위로 전화를 걸어와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고 자신은 “모든 무슬림 커뮤니티를 위해 지지와 사랑을 보내달라"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나이듦에 관하여

    지금보다 젊었던 때, 

    얼른 나이 들길 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행동과 몸은 돌멩이보다 단단하고 정확했으며 

    언어는 가시보다 날카로워 

    그 말과 행동이 '정의'라는 이름으로 

    이웃 형제들을 상처 내고 재단하고 

    그것이 정직하게 제 스스로에게 날아와 스스로를 무너뜨리던 

    지치고 아프고 암울했던 시절. 

     

    나일 먹으면 

    부드러워지고 관대해질 줄 알았습니다. 

    저절로 온화해지고 깊어질 줄 알았던 거지요. 

    어서 나일 들었으면.... 

     

    이제 압니다. 

    세월만으론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세월의 경험만으론 오히려 저를 더 완고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성찰하고 헌신하며 전체와 내면을 통찰하도록 돕는 

    그 어떤 노력들이 수반되지 않고는 

    그러한 노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여행과 독서, 고요한 명상 혹은 기도, 몸으로 사는 삶. 

    이런 것들이 모이고 쌓여 제 영혼과 의식의 결을 이루고 

    착한 행실과 따뜻한 시선으로 이웃을 바라보다 보면, 

     

    어쩌면 언젠가는 그냥 제자리에서 제 스스로 빛나는 

    맑고 지혜로운 노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는지.... 

     

    새봄 이런 꿈을 함께 나눕니다. 

    그대, 그 자리에 계셔 참 고맙습니다.

  • 16세 스웨덴 환경운동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는 매주 금요일마다 거리로 나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운동을 진행한 16세 환경운동가로, 지난 14일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이미지 : 그레타 툰베리 트위터]

    스웨덴의 16세 환경운동가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습니다.

     

    영국 BBC 방송은 14일 스웨덴 의회 앞에서 매주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는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고 전했습니다.

     

    노르웨이 의원 3명의 추천을 받아 후보가 된 툰베리는 자신의 트위터에 “영광”이라고 적었습니다.

     

    툰베리는 지난해 8월 스웨덴 의회 앞에서 첫 시위를 벌인 뒤 매주 금요일마다 거리로 나서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 운동을 진행해 왔습니다.

     

    툰베리가 시작한 운동은 독일,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 등 세계로 퍼져나갔습니다. 학생들은 이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등교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15일에는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등교거부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는 올해 1월 스위스에서 열린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각국의 지도자들에게 “우리 모두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실패해왔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앞서 툰베리는 지난해 12월 폴란드에서 열린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각국 정부와 정치권에 기후변화를 막는데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습니다.

     

    툰베리는 트위터에 자신을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 16살 환경운동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발달장애의 한 종류로 비정상적인 사회적 상호작용과 제한되고 반복적 행동을 보이는 질환입니다.

     

    그를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한 노르웨이의 한 의원은 AFP 통신에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전쟁, 갈등, 난민 등의 문제를 낳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레타 툰베리를 추천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에는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301건이 추천됐습니다.

     

    툰베리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되면 17세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 보다 1살 어린 최연소 수상자가 됩니다.

  • 고교생들이 새벽 4시에 ‘삽질’한 이유

    미국 뉴저지 주의 고등학생들의 ‘새벽 삽질’이 훈훈한 감동을 줬습니다.

     

    미국 ABC방송 등에 따르면 뉴저지주 파시파니 고등학교 패트릭 래니건과 친구들은 투석을 위해 병원에 가야하는 이웃을 돕기 위해 폭설이 내린 날 새벽 4시 30분에 모여 그 이웃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치웠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패트릭의 형 브라이언이 해 온 또 다른 선행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응급구조사로 일하는 브라이언은 눈이 올 때마다 이웃인 나탈리 블레어의 집 앞의 눈을 치워줬습니다.

     

    블레어는 투석을 위해 매일 병원에 가야 하는데 눈이 많이 쌓여 병원에 가지 못할 경우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폭설이 예보된 어느 날 브라이언은 직장에 나가게 되어서 눈을 쓸 수 없게 됐습니다. 그는 동생 패트릭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패트릭은 형의 부탁을 받고 눈을 치우기 위해 친구 4명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다섯 친구들은 전날 밤에 패트릭 집에 모여 밤을 새웠습니다. 잠에 들어 새벽에 일어나지 못할까봐 게임을 하면서 졸음을 쫓았습니다.

     

    예보대로 폭설이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패트릭과 친구들은 새벽 4시 30분에 삽을 들고 블레어의 집으로 가서 길에 쌓인 눈을 치웠습니다. 30분 만에 작업이 끝났습니다.

     

    나탈리는 아침 6시에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는데 길에 눈이 깨끗이 치워져 있어서 병원에 갈 수 있었습니다.

     

    패트릭과 형 브라이언은 이처럼 몇 년째 블레어 가족을 도와 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MAGE|361|center|투석을 위해 병원에 가야하는 이웃을 돕기 위해 폭설이 내린 날 새벽에 눈을 치운 패트릭 래니건과 친구들. [이미지 : ABC뉴스 캡처] ]]

  • 시한부 암환자에 찾아온 기적

    어느 스님이 법문에서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한 티베트 사람이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게다가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고 몸에 좋다는 온갖 것을 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에 분노하고 죽음에 두려워 떨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분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굳이 애쓰지 않고 차분히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곡식가루를 준비해 하루에 한번씩 공동묘지를 찾아가서 물에 타서 먹었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묘지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자신은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암에 걸린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모두 자신이 안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점점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검사를 했더니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겁니다.

  • 6명 고아 입양해 평생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

    6명의 고아를 키우느라 평생 독신으로 산 할아버지가 100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중국 하얼빈 다오와이 펑룬에 사는 펑윈송 할아버지는 지난 4일 자신이 입양해 키운 6명의 자녀들로부터 100세 생일 축하를 받았습니다. 

     

    펑  할아버지가 고아들과 인연을 시작한 것은 그가 35세이던 1954년이었습니다.  

     

    흑룡강성 화학공업국 소속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그는 길을 가다 철길 위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만두를 꺼내 건네주자 그 아이는 허겁지겁 먹어치웠습니다. 

     

    “몇 살이니?” 

    “8살입니다” 

    “가족은?” 

    “없어요”. 

     

    펑 할아버지는 차마 그 아이를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우리 집에 가서 나와 함께 살자.” 

     

    그렇게 만난 8살 아이가 첫 번째 입양 아들인 얀 진챙입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모두 5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입양했습니다. 

     

    막내딸로 입양된 장 추징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굶주림과 외로움에 죽음을 떠올린 적이 수도 없었다"라며 “어느 날 아빠가 찾아와 “얘야, 나와 같이 가자. 잘 먹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먹을 수는 있게 해주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펑윈송 할아버지는 당시 먹고살기 위해 고향인 산둥성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하얼빈으로 갔고 화학기계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책임감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흑룡강 성 화학공업국의 노동자로 채용됐습니다. 

     

    하지만 첫 아들을 입양했을 때 한 달 월급은 30위안(한화 약 5000원)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월급은 조금씩 올랐지만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여전히 생활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펑 할아버지는 귀갓길에 늘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샀습니다. 

     

    넷째 아들인 가오 유빙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에 가장 행복했던 것은 우리가 문간에 서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길을 바라봤던 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 데 어느 해 펑 할아버지가 받은 월병이 하나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작은 월병을 6조각 내어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먹였습니다. 자녀들은 그때 먹은 월병이 평생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합니다. 

     

    펑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도 힘을 쏟았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어느 한 아이도 공부 대신 일을 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다섯 마리의 염소를 길러 매일 아침 염소젖을 짜서 시장에 팔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폐지를 줍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한 번 그런 일을 한다면 내쫓겠다"라고 혼을 냈습니다. 일찍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을 쏟으면 그릇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구오 엥총이 군대에 가게 됐을 때 펑 할아버지는 아들의 주머니에 몰래 10위안을 넣어줬습니다. 구오는 나중에 주머니에 든 돈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돈이 가족의 반 달치 생활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웃들이 장가를 들라고 여성을 소개해준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6명의 고아를 키우는 그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얘기를 듣고 자신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울며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는 선이 들어와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가정을 꾸린 뒤에도 펑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봐 혼자 살았습니다. 아이들의 간청에 못 이겨 2013년 94세가 되어서야 한 자식의 집으로 거쳐를 옮겼습니다.  

     

    펑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는 2016년 ‘중국의 선한 사람들 목록’에 올랐습니다. 일곱 가지의 성을 가진 한 가족의 얘기는 큰 감동을 줬습니다. 

     

    서로 다른 성씨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을 펑씨로 바꾸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펑 할아버지는 “근본을 나타내는 성이 있는데 이를 바꿔서는 안된다"라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다음 생에 태어나도 우리는 한 가족”이라며 여러 차례 눈물로 호소해 2013년 마침내 펑씨 성을 갖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