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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태석 신부의 수단 제자, 한국에서 의사됐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을 의사가 탄생했습니다.  

     

    이 신부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도왔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한국에 와서 의사가 됐습니다.  

     

    인제대 의대 졸업생인 토마스 타반 아콧(33) 씨는 올해 초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21일 제83회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토마스는 2019년부터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과정을 거친 뒤 남수단으로 돌아가 이 신부님처럼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합니다. 

     

    토마스와 한국과의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토마스는 교육과 의료봉사를 위해 남수단의 가난한 마을에 온 이 신부를 만났고 복사단원(천주교에서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평신도)으로 미사 집전을 도왔습니다.  

     

    [[IMAGE|173|center|'남수단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故 이태석 신부. 토마스씨는 故 이태석 신부를 만나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된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쳐]]

     

    이 신부가 진료를 다닐 때도 곁에서 도왔습니다. 붕대를 감아주거나 상처를 소독할 때 환자를 잡아주는 등 보조 역할도 했습니다.  

     

    이 신부는 그런 토머스를 눈여겨보다 2008년 한국에 귀국한 뒤 한국에서 공부할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토마스는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언어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부모님의 격려에 힘입어 토마스는 2009년 12월 한국에 왔고 연세대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에 힘을 쏟았습니다. 

     

    토마스는 한국어 가운데 특히 속담이 재미있었다고 말합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속담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를 꼽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온 지 한 달쯤 뒤에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토마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습니다. 임종 하루 전 병실을 찾았을 때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이 신부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이 신부가 선종한 뒤 토마스는 그의 뜻을 이어 2012년 김해시에 있는 인제대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한자까지 섞인 의학 용어를 익히는 것은 외국인인 토마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농구를 하며 땀을 흘리거나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학업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고 합니다.  

     

    의사 고시도 한 번에 붙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낙방했을 때 잠깐 힘들기도 했지만 스스로 ‘노력파’라고 부를 정도로 끈기 있게 공부해 올해 마침내 의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토마스는 외과 전문의가 되려고 합니다. 수단에 가장 필요한 의사가 바로 외과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엄마, 친구가 하늘나라 갔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12월10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것이라고는 늘 비가 오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창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처럼 비가 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며 아들을 맞으러 학교에 갔다.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 멀찍이 바라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학교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금요일이라면 주말에 놀 생각에 더 활짝 웃으며 나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진짜 슬픈 소식이었어. 진짜, 진짜, 진짜 슬픈 소식이야. 그 친구가 하늘 나라에 갔대."

     

     

     

    [[IMAGE|228|center|caption]]

     

    느닷없는 비보

     

     

    그 친구라 함은, 지난 학년부터 아들과 한 반이었던, 9월에 시작된 새로운 학년에 첫 짝궁이었던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휠체어에서 생활했고, 옆에는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이 늘 함께 했지만, 아들의 그 친구는 학교생활에 대부분 참여했었다.

     

    통합교육이 원칙인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몸이 불편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이 친구도 학급 활동에 늘 함께 했다. 지난해 그 친구의 생일 땐 반 전체에서 작은 축하파티도 열었었다. 반에서는 혼자 책을 읽기 힘든 이 친구에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두어 달 전 아들은 자신이 책 읽어줄 차례라며 영어발음을 연습해 갔었다. 몇 주 전 자원봉사로 따라간 현장학습 때도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과 함께 참가했던 아이였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먹먹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주친 선생님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 중 몇몇도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온 부모들 중 몇 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자,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 그것도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10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것을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건넨 종이

     

     

    아들이 비보를 접한 것은 등교하자마자였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몇몇 친구들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어 담임선생님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종이를 둘게요. 수업 도중에라도 마음이 힘들고 슬픈 기분이 들면 언제든지 가져다가 쓰고 싶은 것을 아무 거나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되고,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되고, 너무 슬퍼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도 돼요. 그리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안 될 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울고 와도 돼요."

     

    아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그 어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도, 그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충격을 이해해주고 그 슬픔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털어 놓았고, 지원 나온 대체교사가 이날 수업시간에 함께 했다.

     

    상실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심리적으로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기는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겪는 상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 준다.

     

    상실을 맞닥뜨릴 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힘들다고 해서 부인하거나 '괜찮다'고 포장해 버리면, 그 슬픔은 마음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슬픔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오랫동안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대처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날 아들과 반 친구들은 수시로 종이를 가져다가 슬픔을 표현했고, 도서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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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선생님의 메일 한 통

     

     

    그리고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전체 학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시 한 번 비보를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이어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속히 밴쿠버 교육청의 위기지원팀(VSB Critical Support Team)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위기지원팀은 학교 공동체에서 재난이나 구성원의 죽음 등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심리적 문제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슬픔에 빠진 선생님들도 돕고, 때로는 대체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아이들이 들를 수 있도록 상담센터를 열어 두었고, 학교와 교육청 소속의 상담사들이 도움을 제공할 채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또한 교장선생님은 강조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물을 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정직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나아가 학교에서도 언제든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집에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장 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여전히 먹먹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자세, 상실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태도, 공동체 차원에서 상처를 극복해 가려는 노력. 아들의 학교는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해내며 애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나와 내 아이를 비롯, 그 친구와 가까워 충격과 슬픔이 더 큰 몇몇만이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린 마음 한 켠에 훈훈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물론, 아무리 함께하고 서로 위로하더라도 상실을 경험해내는 것은 분명 힘들고 아픈 일일 것이다. 그 충격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까지 나서 함께 슬픔을 나누고 도우려는 모습들을 보니 이를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분명 이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 지구인컴퍼니, ‘못생긴’ 농산물 구출회사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이 가치가 있습니다. 

     

    과일과 채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손길은 물론 빛, 바람, 비 등 우주가 함께 식물은 모두 독특합니다. 귀합니다.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이 빚은 창조물도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차별합니다. 자연스럽게 자란 과일과 채소지만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받고 외면당합니다. 버려지기도 합니다. 

     

    지구인컴퍼니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른바 ‘B급 농산물’에 담긴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회사입니다. 그런 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이 회사가 만든 쇼핑몰이 바로 superb입니다. 사람들이 B급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는 놀라운 맛과 성분을 지닌 작물이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지구인컴퍼니는 홈페이지(http://superb-store.com)에 superb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더 건강한 맛을 위해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적 농법을 시도하고 있는 농부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 혹시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기준으로 농사를 지어도 모두가 판매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외모의 흠결이 있으면 아예 시장으로 나오지도 못하지요.” 

     

    이 회사는 ‘못난이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생산자와 연결되는 고리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superb를 만든 이유입니다. 

     

    “발효식초, 전통차, 김치 등의 명인이 만든 음식도 제때 유통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판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IMAGE|224|center|(주)지구인컴퍼니의 민금채 대표. 이미지 출처 : (주)지구인컴퍼니]]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민금채 대표는 올해 7월 지구인컴퍼니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B급 농산물을 수매해 팔거나 잼, 즙, 피클, 파우더 등으로 가공해 파는 게 이 회사의 사업모델입니다. 

     

    지구인컴퍼니는 원재료는 물론이고 제조 과정과 제품 용기까지 친환경을 추구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 뉴욕, 프랑스 등 앞서 만들어진 해외의 친환경 식품업체를 벤치마킹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분말수프에 적합한 친환경 포장 용기를 찾기 위해 제품 출시를 미뤄야 하기도 했습니다. 생분해성 용기를 만드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만나지 못했고 결국 중국에서 사탕수수를 재료로 용기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 고민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IMAGE|223|center|B급 농산물을 그대로 팔거나, 위 사진과 같이 다른 제품으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주)지구인컴퍼니]]

     

    수퍼브는 자신들의 활동을 못생긴 농산물을 ‘구출'하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까지 ‘구출’한 농산물은 47,000,000g이라고 홈페이지에 표시해뒀습니다.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지만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외면받는 농산물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40억 톤에 달합니다. 이 고민에 함께 동참해주세요."

  • 개운조사(1) - 바위에 주먹으로 새긴 글씨 '동천(洞天)'

    경북 상주군 화북면 우복동 길가에 ‘동천’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습니다. ‘동천’은 흔히 신선이 살 만큼 경치 좋은 곳을 이르는 말이지요.  

     

    신기하게도 이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총 길이와 바위 둘레의 길이가 오장(五丈)으로 같아 ‘오장비(五丈碑)’라고도 불립니다. 

     

    동천 바위 아래 표지판의 설명에 의하면 이 글씨는 조선 4대 서예가 중의 한 분으로 특히 초서에 능통하셨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31-1586)이 각자한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 글씨는 또한 18세기 상주에서 태어난 고승 개운조사가 새기신 것이라 회자되기도 하지요.  

     

    아마도 그것은 바로 개운조사께서 주석하신 『유가심인 정본수능엄경 환해산보기(瑜伽心印正本首楞嚴經環解刪補記)』(이하 ‘정본수능엄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으로 ‘동천(洞天)’이란 글자를 쓰고 

    손톱으로 ‘한좌(閑坐)’라는 글귀를 새기니 

    돌이 물렁한 흙처럼 부드러워서 

    나의 현명(顯名)을 받아들이네 

    맑은 물 흐르는 반석(磐石) 위에 

    용자(龍子)를 놀게 했노라. 

     

    조사께서 바위를 물렁한 진흙처럼 주물러 ‘동천’ 두 글자를 새기고 맑은 물 흐르는 반석 위에 용으로 하여금 놀게 하였다는 이곳은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도장산 자락을 흐르는 쌍룡계곡을 말합니다.  

     

    충주에서 문경으로 가는 이화령 터널을 빠져나와 가은과 농암을 지나면 쌍룡계곡에 닿지요. 직진하여 쌍용터널을 지나면 상주 화북면이고, 터널 앞에서 왼쪽으로 용추교(龍椎橋)를 건너 도장산(道藏山)에 안기면 개운조사가 머물며 『능엄경』을 주석하신 심원사(深源寺)에 오르게 됩니다.

     

     

    "개운조사(2)"로 이어집니다. 보러가기(클릭)

  • 불길 뚫고 90대 할머니 구한 스리랑카 불법체류자에 영주권

    화재 현장에서 할머니를 구한 니말 씨(가운데). 출처 : LG복지재단

    불길 속에서 90대 할머니를 구한 스리랑카 불법체류자가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니말 씨는 18일 오전 대구 동구 대구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에서 영주권을 받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편찮으신데 방문해 기쁨을 나누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니말 씨는 이어 “영주권을 받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에게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자신에 관심을 가져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법무부 관계자와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군위군청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경북 군위군의 한 과수원에서 일하던 니말 씨는 지난해 2월 한 가정 주택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주민 등과 함께 불길을 헤치고 들어가 혼자 살던 90대 할머니를 구했습니다.  

    니말 씨는 할머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목, 손목 등에 2도 화상을 입었고 유독가스를 마시는 바람에 폐를 다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법무부는 지난 13일 ‘외국인 인권 보호 및 권익 증진협의회’를 열어 참석위원 만장일치로 니말(Nimal) 씨에게 영주 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민의 생명 및 재산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영주권이 주어진 것은 니말 씨가 처음입니다.  

    니말씨는 지난해 3월 LG복지재단이 수여하는 ‘LG의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상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의상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부상을 입은 사람으로 보상금 등의 예우를 받게 됩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의상자가 된 것은 니말 씨가 처음입니다.  

    이어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니말 씨가 추방당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기타자격(G-1) 체류허가를 내주고 불법체류와 관련된 범칙금도 면제해 줬습니다.  

    또 기타자격(G-1)은 취업활동을 하거나 의료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영주권 부여를 추진했다고 합니다..

  • 진짜 재산이란

    동물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난 게 눈앞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구상의 생명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이 먹을 게 썩어들어갈 정도로 많아도  더 쌓아두려고 합니다.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게 차고 넘쳐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세고 관리하기 위해 사람을 채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더 가지려고 다른 이의 재산을 탐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재산은 자신이 죽은 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쌀 한 톨도, 단 돈 십 원도갖고 가지 못합니다. 

     

    진짜 재산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 작은 친절, 부드러운 말 한마디, 조건 없는 베풂, 다른 존재를 위한 기도,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 핍박받는 이를 위한 지원 등.

     

    이런 것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쌓는 부입니다.
    죽은 뒤에도 지니고 있게 되는 참된 재산입니다. 

  • 응급실 앞을 지키는 네 마리의 개

    어느 일요일, 브라질의 한 병원에서 야간근무를 하던 간호사 크리스 맘프림은 세자르라고 불리는 노숙인이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걸 봤습니다. 

     

    크리스는 그가 치료를 받는 동안 네 마리의 개가 응급실 밖에서 꼼짝 않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드나드는 사람이 오갈 때면 옆으로 비켜서기도 했지만 개들은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응급실 안쪽을 바라봤습니다.  

     

    그렇다고 응급실 문을 넘지도 않았습니다. 마치 자신들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걸 알고 있기라도 하듯이 말입니다.  

     

    이 개들은 응급실에 실려간 한 청년 노숙인의 반려견들이었습니다. 크리스는 이 개들이 보살핌을 잘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는 응급실에서 치료받고 있던 노숙인 청년과 개들에 대해 얘기도 나눴습니다.  

     

    그 청년은 반려견을 가족처럼 대한다고 했습니다. 음식이 모자라면 개들을 먹이기 위해 자신이 굶을 때도 있다고 했습니다. 개들이 가정에서 키우는 것처럼 상태가 좋은 것은 세자르의 그런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크리스는 10일 세자르와 네 마리의 반려견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SNS에 올렸습니다.  

     

    이들의 가슴 따뜻한 이야기가 페이스북에 올라오자 순식간에 13만 명이 좋아요를 눌렀고, 댓글 2만 2천 개가 달렸으며 8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사진과 사연을 공유했습니다. 

  • 떼제, 청년들의 영혼의 쉼터

    떼제공동체에서 기도 중인 청년들. 이미지 출처 : 플리커 (TaizéBirmingham), 퍼블릭 도메인

    “우리가 지금 온 대륙의 젊은이들과 함께 신뢰의 순례를 해 나가는 것은 평화가 얼마나 시급히 필요한지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의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할 때 평화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신뢰를 간직하고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떼제공동체 창설자 로제 수사)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분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늘색 십자가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징한 이 십자가가 공동체의 상징 떼제 십자가입니다. 

     

    [[IMAGE|198|center|떼제공동체를 상징하는 푸른 십자가. 출처 :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oix_de_Taiz%C3%A9.jpg), CC BY-SA 라이센스]]

     

    1940년 8월 한 청년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 부르고뉴 남부 지방의 작은 마을 떼제(Taize)를 찾았습니다. 그 해 6월 14일 프랑스 파리가 함락된 지 두 달쯤 되는 때였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 로제는 전쟁이라는, 사람이 벌인 가장 잔인한 행위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화해와 일치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전쟁을 막고 인류가 한 가족처럼 지내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떼제를 찾은 이유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바로 그곳에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도망자를 숨겨주는 일이었습니다.  

     

    로제에게 가장 먼저 눈에 뜨인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 나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반대의 처지에 놓인 독일군 포로들을 맞았습니다. 젊은이들의 영성 공동체 떼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떼제가 공동체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9년입니다. 로제와 뜻을 함께 하는 일곱 명의 청년들이 찾아와 독신 생활과 물질적 영적 재산의 공유 등을 지킬 것을 약속하는 종신서원을 하면서 공동체 식구들이 생겼고 1952년에는 떼제의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어떤 기부나 헌금도 받지 않고, 가족의 상속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나눔을 실천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평생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차츰 그들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공동체에는 지금 공동체에는 20여 개 나라에서 온 1백 명가량의 수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출신도 있고, 개신교회 출신도 있습니다. 

     

    떼제에는 1950년대 말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로제 수사를 비롯한 공동체 식구들은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머물면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 정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때부터 손님맞이는 떼제의 주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지금은 1년 내내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습니다. 한 주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요일에서 다음 일요일까지 1주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떼제의 정신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1962년 세워진 ‘화해의 교회’에서 하루 세 차례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소그룹으로 나눠 대화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아지자 몇 해 전부터 가톨릭 국제공동체인 성 안드레아 수녀회와 폴란드의 우술라 수녀회에서 ‘젊은 순례자’들을 맞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의 모임은 떼제공동체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들은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을 찾아다니며 크고 작은 모임을 이끕니다. 이는 지구촌에 믿음에 바탕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신뢰의 순례’입니다. 이들 모임에서 떼제공동체 수사들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사는 바로 그곳에서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도록 돕고 격려합니다. 

     

    가장 큰 모임은 떼제공동체가 매년 말 유럽에서 여는 ‘테제 유럽 젊은이 모임’(Taize European Youth Meeting)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는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만 명의 젊은이들 참여합니다. 2004년 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행사에는 8만 명의 젊은이들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올해 행사는 12월 28일부터 2006년 1월 1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립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지만 떼제는 자신을 중심에 두는 법이 없습니다. 떼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동네, 마을, 도시, 교회, 성당 등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곳에서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떼제공동체가 세계 곳곳을 찾아가며 벌이고 있는 ‘신뢰의 순례’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획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1979년 다섯 분의 수사들이 파견되어 서울 화곡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26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한국의 교회와 젊은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화해와 일치의 지구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떼제공동체. 이들의 꿈이 자랄수록 지구촌에는 사랑과 평화의 기운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 17년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눈이 되주는 사람

    안기형씨는 두 개의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공식 직함은 현대모비스 모듈품질보증팀 차장이고, 비공식 직함은 시각장애인 마라톤 코치입니다. 

     

    안 차장은 토요일이면 서울 남산 산책로에서 2시간 동안 마라톤을 하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됩니다. 17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라톤 마니아로 2002년 4월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그는 특별한 모습의 참가자를 보게 됩니다. 

     

    서로의 팔에 줄을 묶고 함께 호흡을 맞춰 달리는 두 사람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한국에서 온 시각장애인과 도우미였습니다. 

     

    안 차장은 도우미로 온 분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어렵지 않으세요?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더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그분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존경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레이스 마지막 날 시각 장애인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한국에 자신 외에도 마라톤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많으니 지도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안 차장은 매주 토요일 남산을 찾아 시각장애인의 도우미 구실을 시작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요. 국가대표 출신이 마라톤 코치를 한다고 하니 첫날 11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왔다고 합니다. 안 씨는 준비체조부터 가르쳤는데 따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조각상을 만지면서 느낌을 얻는다는 데 착안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면서 스트레칭 자세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노하우도 쌓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트레칭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시각장애인과 동반주자를 이어주는 끈의 길이를 1m 이하로 줄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실력이 늘어가자 안 차장은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망신만 당할까 자신 없어 했습니다. 

     

    180개 동호회가 참여했는데 시각장애인임에도 19등을 했다고 합니다. 

     

    안 차장은 1977년 성남 성일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육상부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2000m 달리기에 참가해 1위로 선발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1985년 경부역전마라톤 대회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현대모비스 실업팀에 들어와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1987년 동아마라톤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다 2002년 '나를 찾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 이듬해 열린 '제18회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서 아시아 참가자 중 최고 기록을 내기도 했습니다. 2004년 <243㎞ 사하라를 달린다>는 책도 펴냈습니다. 

     

    요즘에도 가끔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데 강연 또한 마라톤 자원봉사와 마찬가지로 돈을 받지 않고 합니다. 봉사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 수도사가 알려준 기도의 비밀

    도시의 삶에 힘들고 지칠 때면 수도원을 찾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저 고요히 쉴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는 수도원에 갈 때마다 한 수도사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도원에서 가장 바빠 보이는 수도사로 보였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도사는 파리에 사는 여느 도시인처럼 분주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은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언제 기도를 하세요?” 

    “늘 기도를 한다네" 

     

    “어떻게 기도를 하세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그러지" 

     

    “그건 저도 하는데요"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자면서도 다음날 걱정을 해. 나는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졸릴 때는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