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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을 울린 한 소년의 눈물어린 호소

    중국 후난TV의 예능프로그램 '샤오녠슈어'에 출연한 한 소년의 연설이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미지 출처 : 텐센트]

    중국 텔레비전에 출연한 한 소년의 연설이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중국 후난TV가 제작한 예능프로그램 ‘샤오녠슈어(少年说)’에 출연한 리런즈 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배달원이라고 밝힌 뒤 어머니를 존중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리런즈 군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어떤 일을 하든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연설을 시작했지만, “어떤 고객은 비가 오는 날 배달 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한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할 때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우리 어머니와 같은 사람들에게 좀 더 호의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고객들이 자신의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가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여자이자, 내게는 하나뿐인 어머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 주세요” 

     

    리 군의 어머니는 배달 음식 전문 택배업체인 와이마이 소속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리 군은 자신의 어머니를 “항상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전문 배달원”이라고 말하며 고객 중 일부는 배달원이라는 직업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일을 함으로써 나를 교육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저 역시 소수의 고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리런즈 군의 말을 들으며 현장에 있던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IMAGE|264|center|샤오녠슈어 촬영현장에서 리런즈 군을 지켜보던 리런즈 군의 어머니. [이미지 출처 : 텐센트] ]]

     

    당시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 있던 리 군의 어머니는“아들이 나의 직업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할 줄만 알았다”면서 “아들의 말을 듣고 더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아들이 부족한 나로 인해서 너무 이른 나이에 철이 든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샤오녠슈어는 중국 청소년이 출연해 자신이 겪은 일화와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전국적 인기를 얻어 올해로 세 번째 시리즈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택배 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달 시간이 늦어질 경우 감점을 해 이를 급여에 반영하는 회사가 많다고 합니다. 배달원이 다녀간 뒤 후기를 쓰도록 하는 서비스도 함께 제공됩니다. 악성 댓글이 기준 이상으로 달릴 경우 1000위안(약 17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침 탓에 배달원들은 눈비 속에서도 도착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오토바이 고속 운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러 군의 사연이 방영된 뒤 온라인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는 만큼 모두를 존중하자는 글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 제 밥을 덜게 하소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받아야 합니다.“

     

    나눔 단체 JTS의 생각입니다.

    아,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무슨 군더더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신영복 교수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창 밖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달콤한 잠을 잘 권리가 없다……“

     

    ARS라도 누르는 마음, 그것이 사랑 자비의 실천이겠지요.

    나눔의 평화!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제 밥을 덜어 그들과 나누게 하소서.”

  • 빌 게이츠가 지혜를 얻는 비밀 ‘씽크 위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이미지 출처 : 플리커 Steve Jurvetson (www.flickr.com/photos/jurvetson/4368494308), CC BY 2.0 라이센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로 20년 이상 세계 1위 부자에 올랐습니다. 

     

    30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출연해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공익사업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을 갖는 이로도 이름이 나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1년에 한 두 번씩 북서 태평양에 인접한 삼나무 숲 속의 작은 2층 집에 머물며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시간을 보냅니다. 

     

    이 때만큼은 가족과도 떨어져 지냅니다. 빌 게이츠 판 무문관이라고 할까요.

     

    씽크 위크를 통해 빌 게이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회사 경영과 관련한 생각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회사나 재단을 통해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제안도 검토합니다.

     

    [[IMAGE|260|center|빌 게이츠의 아이디어 비결 중 하나는 바로 1년에 1~2회 갖는 '생각주간(Think week)'이다. 이 기간에 그는, 문명과 고립된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회사 경영 등에 대해 생각한다.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게이츠노트] ]]

     

    빌 게이츠는 1995년의 씽크 위크에서 IT 기업 역사상 가장 통찰력 있는 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짧은 글 인터넷 물결(Internet Tidal Wave)을 씁니다.

     

    그는 이 글을 토대로 마이크로소프트 임직원들에게 다가오는 인터넷 서비스 물결이 기술과 산업 전반에 지각 변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를 개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태블릿PC도 씽크 위크에서 구상했다고 합니다.

     

    [[IMAGE|261|center|마이크로소프트사의 태블릿PC는 빌 게이츠의 '생각주간'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

     

    빌 게이츠가 생각주간을 보내는 공간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한 빌 게이츠의 ‘무문관’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자신에게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책들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고, 다른 벽에는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다이이트 음료가 들어 있는 작은 냉장고가 거의 유일한 전자제품이구요. 하루 두 끼를 먹으며 빌 게이츠가 하는 일은 생각하고 읽고 쉬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씽크 위크의 효과를 깨달은 뒤 마이크로소프트의 간부들도 1년에 2주씩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 1640억 로또 당첨 부부, 당첨금 50명에게 기부하다

    유럽의 로또인 유로밀리언에 당첨된 코놀리 부부. 코놀리 부부는 당첨된 금액을 가족, 친구, 자선단체 등에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이미지 출처 : 야후뉴스 캡쳐

    새해 첫날 유로밀리언 로또에 당첨돼 1500만 파운드를 받게 된 부부가 당첨금을 지인과 자선단체들에 나눠주겠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북아일랜드에 사는 프랜시스 코놀리(52)와 패트릭 코놀리(54) 부부는 4일 수도 벨파스트 외곽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첨금 1640억 원을 가족과 친구, 자선단체들에 나눠주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랜시스는 “당첨금으로 우리 부부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이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라며 “새해 첫날 당첨된 사실을 안 뒤 사흘 동안 당첨금을 나눠주고 싶은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한 일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당첨을 확인한 순간 대략 50명의 이름이 떠올랐다면서 그들이 우리가 돈을 전했을 때 지을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남편인 패트릭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겐 멋진 아내, 멋진 가족, 멋진 친구들이 있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행복합니다. 삶으로부터 이미 충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IMAGE|257|center|유로밀리언에 당첨된 코놀리 부부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코놀리 부부는 당첨된 금액을 가족, 친구, 자선단체 등에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이미지 출처 : BBC뉴스 캡쳐]]

     

    부부는 얼마를 나눠주기로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온라인 미디어에서 일하다 퇴직한 프랜시스는 “은퇴 뒤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면서 “이제는 뭔가 할 수도 있게 된 만큼 상담 치료에 관한 박사학위를 따고 싶다"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부부는 로또 당첨금을 나누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번에 돕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오면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불교 강의하는 푸른 눈의 신부 교수님

    서명원 베르나르도 신부는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처럼 그는 매일 1시간 가량 참선을 한다. [이미지 출처 : 경상북도 유튜브 캡쳐]

    25년 이상 불교 수행을 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 신부가 있습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를 가르치는 서명원 베르나르도(64) 신부입니다. 

     

    개량 한복을 자주 입고 다니는 베르나르도 신부는 매일 1시간가량 참선을 합니다. “중심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라는 게 이유입니다. 

     

    그는 참선을 시작한 시기를 1996년 12월 말이라고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참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자로서 20여 년간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2015년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과 열반 20주년을 맞아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퇴옹성철, 이 뭣고?>(서강대 출판부)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베르나르도 신부는 조계종 법사로서 2007년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간화선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으로 귀화한 그는 불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주,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참선을 가르칩니다.

     

    베르나르도가 세례명이지만 그에게는 천달이라는 법명도 있습니다. 법명을 주신 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하늘 천 자에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라는 점에서 통달할 달자를 합해지었다고 합니다. 

     

    불교 경전 구절 가운데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내라)을 가장 좋아한다는 베르나르도 신부는 법명대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고 싶은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합니다.

     

    종교와 종교 갈등에 대해 베르나르도 신부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신부는 2018년 부처님 오신 날에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종교라면 궁극적인 목적지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죽음을 벗어난 생사에서 하나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목적지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는 상호 상생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서로를 비판할 때 조심스럽게, 아소카 황제가 기원전 3세기경에 인도를 다스리셨을 때 말씀하신 대로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종단을 그만큼 비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세상을 바꾸는 따뜻한 기술, 고요한 택시

    코액터스에서 개발한 어플리케이션 '고요한 택시'가 설치된 택시(이미지 출처 : 코액터스)

    택시는 운전기사와 승객의 소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승객이 말한 목적지를 알아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에게 택시 운전은 도전 불가능한 영역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만든 소셜벤처 코액터스((CO:ACTUS))가 애플리케이션 ‘고요한 택시’를 만들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앱은 택시 승객과 운전기사가 태블릿PC를 통해 대화를 주고받게 만든 앱입니다. 앱을 쓰기 위해서는 승객과 운전기사를 위한 태블릿PC가 필요합니다. 승객용 좌석에 설치된 태블릿PC에 하고싶은 말을 입력하면, 운전석 근처에 설치된 태블릿PC에 그대로 전송돼 화면에 나타납니다.

     

    [[IMAGE|251|center|코액터스에서 개발한 어플리케이션 '고요한 택시'. 이 어플이 깔린 태블릿 PC를 통해 승객과 운전기사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코액터스)]]

     

    앱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실제 청각장애인 기사가 택시를 운전하는 게 가능하겠냐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코액터스의 꿈은 실현됐습니다. 작년 5월 경주에서 택시를 몰기 시작한 지 한 달 된 청각장애인 택시기사가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 태블릿PC를 설치했습니다. ‘고요한 택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어 서울의 한 택시회사에서도 8월 청각장애인을 기사로 고용했습니다. 서울 지역 청각장애인 1호 택시의 주인공은 이대호(50)씨와 최철성(47)씨입니다. 두 사람 모두 보청기를 사용해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 2급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서울시의 택시운전자격 시험을 통과했고 올해 8월 한 택시회사에 채용됐습니다. 특히 최 씨는 운송업 20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택배차량, 패스트푸드 배달 차량 등을 몬 경험자입니다. 

     

    서울 지역에서 시작된 ‘고요한 택시’는 다른 지역으로도 조금씩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코액터스는 12월 말까지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일할 청각장애인 택시 운전기사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IMAGE|249|center|청각장애인 택시운전원 양성을 위해 코액터스를 설립한 청년사업가 송민표 대표(이미지 출처 : 송민표 대표 페이스북)]]

     

    코액터스는 동국대 컴퓨터공학과 4학년인 송민표 대표가 만든 회사입니다. 송 대표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동아리 ‘인액터스’에서 활동하면서 코액터스의 사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는 청각 장애인이 장애인 가운데 두 번째로 많지만 취업률은 지적장애인에 비해 20%가량 낮다는 것을 알고 청각장애인의 취업률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는 해외 차량 호출 서비스 업체인 우버에서 청각장애인 운전사를 고용하는 것을 보고 앱을 구상했습니다, 우버는 승객과 운전자가 앱으로 대화하고 꼭 필요한 경우에 글을 써서 대화를 했는데 송 대표는 이를 모두 애플리케이션에 담았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사각지대에 놓이지 않도록 돕는 IT솔루션을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했지만 코액터스의 창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뜻은 좋지만 사업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이 많아 자금 확보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송 대표는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공모전에서 창업 자금을 모았고, SK 청년비상 창업경진대회 등 각종 대회에 참가해 여러 차례 상을 받았습니다. 서울 중구 언더그라운드 피치 대회에서는 1위를 차지해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창업팀으로 뽑히기도 했습니다.

  • 올해 100세 된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삶의 지혜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집니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이 하신 말입니다. 김 교수님이 올해 100세를 맞았습니다. 

     

    100년은 간단치 않은 세월입니다.  

     

    김 교수님은 1920년 평남에서 태어나 윤동주 시인과 함께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셨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마지막 대중 강연을 들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를 살아오신 김 교수님이 세월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다음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 교수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4살, 15살 때 건강이 너무 나빴어요. 건강 때문에 중학교도 못 가고 인생이 끝날 것 같은 데 하나님께 건강을 주시면 주시는 동안은 내 일보다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건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일하기 위한 건강이지 건강을 위한 건강은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 좋아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곧 끝나버리고 마는데 일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언제나 돈이 따라와요. 

     

    경제는 일을 사랑하는 개인과 사회에 주어지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수입보다는, 소유보다는 일을 사랑하는 것, 그다음에 또 하나는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돈 벌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명예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과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조금 더 행복해지고 지금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것에 제게는 일의 목적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예수님의 교훈이 바로 그거죠. 그러니까 일의 목적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조금 더 행복해졌다, 좀 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 이상의 목표를 나는 없다고 봐요. 

     

    젊었을 때는 누구나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년기에는 일을 성공하는 게 목표죠.  

     

    그런데 나무도 마지막에는 열매를 맺어야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생도 60이 넘으면 사회를 위해서 열매를 맺어줄 나이가 됐거든요.  

     

    내 인생에 목표가 있다 하면 아까 얘기한 그대로 내가 있기 때문에 주변의 여러분들이 좀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 목표죠."

     

    김 교수님은 인생의 황금기를 65세에서 75세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 개운조사(4) - 드디어 참 스승을 만나다

    봉암사로 돌아온 조사는 환적암(幻寂庵)에 머물며 불철주야 용맹 정진을 이어갑니다. 침식도 잊고 부처님께 오직 참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기도나 참선 중에 온갖 이상한 현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별의별 환상들이 다 나타났습니다. 환상은 현실처럼 생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요염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눈앞에 황금 덩이기 놓이기도 하고, 호랑이가 입을 딱 벌리고 다가오기도 하고, 구렁이가 몸을 칭칭 감기도 했습니다. 도적이 방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가 천상에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온갖 진귀한 음식들로 차려진 밥상이 불쑥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조사는 이러한 환상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리따운 여자의 요염한 자태를 보아도 무덤덤했습니다. 황금은 돌로 보였습니다. 호랑이가 나타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구렁이가 몸을 감아도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도적들이 대갈통을 부수어버리겠다 호령하며 방망이를 휘둘러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산해진미를 보아도 먹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눈앞에서 온갖 환상들이 나타났다 스러지기 일 년여, 조사는 그저 고요한 마음으로 정진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어느 해 질 녘이었습니다. 웬 미치광이 중이 비틀걸음으로 환적암을 찾아왔습니다. 너덜너덜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고, 온몸의 부스럼에서 진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옷과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부지깽이라도 들어 바로 쫓아냈겠지요? 하지만 조사는 이 비렁뱅이 노인을 안으로 맞아들여 극진히 봉양합니다. 

     

    그런데 이 거지 스님의 행패가 아주 고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툭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조사를 마구 때렸습니다. 조사는 그래도 화가 안 났습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조사에게 칭찬의 말을 해댔습니다. 그래도 조사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조사의 마음은 그저 잔잔한 호수같이 고요할 뿐이었습니다. 

     

    거지 스님과 같이 지낸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밤중에 거지 스님이 조용히 조사를 불렀습니다. 

     

    “너는 정말 마음을 잘 비웠구나. 못살게 굴어도 화를 안 내고 칭찬을 해도 좋아하지 않으니 마음이 참으로 훌륭하게 닦이었구나. 틀림없이 크게 득도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네가 부처님께 그토록 애타게 기원한 것이 무엇이더냐?" 

     

    조사는 이 노인에게 공손히 절을 올리고 대답했습니다. 

    "참 스승님을 만나 부처님의 법을 잘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자 노인이 또 물었습니다. 

    “부처의 법을 배워 무엇 하려고?” 

     

    “생사를 뛰어넘는 대도를 이뤄 가없는 중생들을 구하고자 하옵니다.” 

     

    노인의 입에서 한없이 자비로운 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네 스승이 되면 어떻겠느냐?" 

     

    그 순간 조사는 이 노인이 자기가 그토록 만나옵기 간절히 바라던 큰 스승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조사는 거듭거듭 큰절을 올렸습니다. 

     

    “불감청이어든 고소원이외다. 부디 저를 제자로 삼아주소서.” 

     

    조사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습니다. 

     

    “일어나라. 너는 이미 내 제자다.” 

     

    노인이 따사롭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 조지 클루니가 13년째 이 회사 광고를 하는 이유

    조지 클루니가 13년째 광고를 하는 회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에도 자주 등장하는 광고입니다. 바로 커피 회사 네스프레소이지요. 

     

    조지 클루니가 이 회사 광고를 오랫동안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주위에서는 네스프레소가 함께 진행 중인 남수단 프로젝트를 이유로 듭니다. 

     

    클루니는 수단 내전에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세계에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수단은 20년에 걸친 내전으로 200만 명 가까운 이들이 사망하고 40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생겨난 나라입니다. 클루니는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차례 수단을 찾아 그곳의 참혹한 현실을 알리는 다큐를 만들었습니다. 2012년 3월에는 워싱턴 주재 수단 대사관 앞에서 수단 정부군의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클루니는 수단인을 돕기 위해 자신이 광고모델로 있는 네스프레소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전쟁으로 초토화된 커피 농장을 되살려 농민들의 자립을 지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네스프레소는 클루니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남수단 커피산업 재건을 위한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입니다.  

     

    [[IMAGE|239|center|남수단 재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커피를 재배 중인 농부들. 이미지 출처 : 네스프레소 유튜브 캡쳐]]

     

    네스프레소는 2013년부터 비영리단체 테크노 서브와 함께 700여 명의 농부들에게 종자를 보급하고 재배기술을 가르쳤습니다. 커피 가공 공장도 세웠습니다. 또 시장가 보다 30~40% 비싼 가격으로 원두를 샀습니다. 네스프레소는 2020년까지 250만 달러를 투자해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를 8000명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조지 클루니와 네스프레소의 ‘콜라보’는 광고주와 모델의 관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닙니다.  

     

    클루니는 네스프레소 지속 가능성 경영 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합니다. 네스프레소는 2003년부터 열대우림 연맹과 함께 지속 가능한 커피 농사를 위한 지원을 해오고 있습니다.  

    클루니는 오래전부터 행동하는 ‘개념 배우’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환경, 인권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행동을 무척 중요시하지요.  

     

    네스프레소 외에 클루니는 스위스 친환경 에너지 회사인 벨레노스 클린파워의 이사로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활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그 자신 환경이나 인권 관련 재단에 기부를 이어가고 있고 전기차를 사서 몰고 다닙니다. 

     

    조지 클루니는 그런 행동을 통해 삶의 가치와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나는 해피엔딩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행복한 여정을 믿는다”

  • 거울 11만 개를 닦은 할아버지

    7년 동안 도로 위의 반사경을 11만 개를 닦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대만 타오위안 시에 사는 장 시유숑(Zhang Xiuxiong) 할아버지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새벽 4시면 집을 나섭니다. 도로 위의 반사경을 닦기 위해서입니다. 

     

    장 할아버지는 반사경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오토바이를 몰고 갑니다. 오토바이 뒤에는 사다리와 밀대, 손걸레가 늘 실려 있습니다.  

     

    그는 공책에 일기처럼 매일 반사경을 닦은 작업일지를 적었습니다. 닦지 않은 곳, 닦은 지 오래 지난 곳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입니다. 공책에 적힌 기록을 보면 할아버지가 지금까지 닦아 온 거울은 11만 개. 한 해 평균 1만 6천 개에 달합니다.  

     

    그가 반사경을 닦는 일을 시작한 것은 8년 전 목격한 교통사고 때문입니다. 굽은 길에서 마주 오던 차량이 상대방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 정면으로 충돌했고 여러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당시 장 할아버지는 사고 현장에서 거미줄이 잔뜩 낀 반사경을 발견합니다. 반사경이 제구실을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바로 다음날부터 반사경을 닦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높은 곳의 반사경을 닦다 사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진 적도 있고, 외진 곳에서 야생동물의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것도 할아버지의 반사경 닦는 일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남을 위해 선행을 하니 신이 덜 다치도록 해주신 것 같습니다. 거울을 닦는 동안 내 마음이 거울처럼 깨끗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