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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 100원으로 묵을 수 있는 호텔

    베트남에서 하루 100원으로 묵을 수 있는 끼엔 안 레지던트 [이미지 : THANHNIEN]

    베트남 호찌민에서 사업을 하는 응웬 탄 응웬 씨는 남부 껀토시의 한 병원을 찾았다가 가슴이 아픈 광경을 목격합니다.

     

    장기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은 가난한 사람들이 머물 곳이 없어 병원 복도와 벤치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하루 8만 동(4천 원)~15만 동(7500원) 하는 숙박비를 장기간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응웬 씨는 가난한 이들이 비용 부담 없이 오래 머물면서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숙박시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끼엔 안 레지던트(Kien An Residence)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응웬 씨는 지금 레지던트로 운영되고 있는 건물을 월 700만 동(한화 약 35만 원)에 임대한 뒤 4천만 원 가까운 돈을 들여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지난 7월 끼엔 안 레지던트는 15개의 객실과 객실별로 이층 침대 2개씩을 갖춘 어엿한 숙박시설로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객실에는 에어컨과 선풍기도 달았습니다. 와이파이도 됩니다.

     

    베트남 기준으로 중급 호텔 수준의 시설로 숙박료는 하루에 1500동(한화 약 75원)~2만 2000동(1600원)입니다. 숙박료는 숙박객의 처지에 따라 값이 달라집니다. 장애, 노인, 어린이는 1500동, 학생은 6000동, 보통 사람은 2만 2000동 등입니다.

     

    탄 린 매니저는 베트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료로 숙박할 수 있는 공동주택 개념이지만 전기와 수도료를 내도록 했습니다. 숙소 유지비로 쓰기 위해서입니다.”

     

    끼엔 안 레지던트에는 현재 2명의 직원이 청소, 빨래, 숙소 관리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봉사자들입니다.

     

    ‘고객'들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응웬 씨와 직원들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정직하고 선하다고 믿습니다.

     

    “정직한 사람을 믿어줌으로써 그들이 가진 선의의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할 수 있습니다.”

  • 힘내라 물고기

    일주일 정도 된 듯합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자고 있는데 밤 11시쯤 됐을까 아이가 급하게 엄마를 부르는 거예요.

     

    "이리 좀 와 보세요. 물고기가 이상해요."

     

    일어나 어항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금붕어가 반쯤 몸이 꺾여있고 비늘이 떨어질 것처럼 서 있었습니다.

     

    가족으로 함께 한 지가 12~13년쯤 된 흰색 금붕어입니다. 지느러미가 길고 멋진 꼬리를 가진 아이입니다.

    다른 금붕어들이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나 외로울 것 같아 친구를 데려다 놓았는데 그도 먼저 하늘나라에 가버렸습니다. 몇 차례 그러고 나서는 이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마땅히 어떻게 해줄 것이 없었는데 몇 년 전쯤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다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힘내라. 힘내라. 힘내라."했더니 살아나고 있다는 글을 읽었던 생각이 떠올라 아이와 함께 몇 번을 금붕어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젯밤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숨은 쉬고 있었지요. 그날은 틈틈이 자주 들여다보며 "힘내라. 금붕어. 힘내.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

     

    하루가 지나자 금붕어가 제법 잘 움직였습니다. 물론 건강했을 때와 똑같진 않지만 많이 좋아졌는지 수면에만 주로 있던 녀석이 가끔씩은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이제는 잘 돌아다니고 건강해졌습니다. "힘내라"라는 말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딸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힘내. 사랑해"라고 말하며 박장대소를 터트리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말과 마음을 전해보려고 합니다.

  • 로저 페더러, 말라위, 그리고 100만 명의 아이들

    로저 페더리가 자신이 도운 아프리카 말라위의 어린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있다. [이미지 : BBC News 유튜브 캡처]

    로저 페더러는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남자 프로 테니스(ATP) 투어 단식에서 미국의 지미 코너스에 이어 두 번째로 통산 100번째 우승을 달성한 선수입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3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역대 최장 연속 랭킹 1위를 기록했고 302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페더러가 써나가는 위대한 테니스 역사를 알고 있지만 아프리카 말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그의 담대한 프로젝트를 아는 이들은 적습니다.

     

    페더러의 어머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입니다. 페더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를 자주 찾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고 합니다.

     

    페더러는 2004년 아프리카 말라위에 로저 페더러 재단을 만들어 아이들의 교육과 급식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2018년까지 100만 명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이를 달성했습니다.

     

    로저 페더러 재단을 이끌고 있는 제니 핸델 CEO는 목표를 달성한 뒤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로저 페더러가 늘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100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등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다 나은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로저 페더러는 BBC와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환상적인 일”이라며 “테니스 선수가 된 뒤에 늘 이곳이 내가 돌아와서 도와야 할 곳이라고 늘 생각했고 그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 지갑을 잃어버린 뒤 계좌에 입금된 돈

    잃어버린 지갑을 들고 있는 팀 캐머런(좌)과 그의 지갑을 찾아준 사이먼 바이포드(우) [이미지 : 팀 캐머런 트위터]

    영국 런던에 사는 팀 캐머런(30)이 지갑을 잃어버렸다 찾은 재미있는 사연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캐머런은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데 퇴근길에 청바지 뒷주머니에 넣어둔 지갑이 땅에 떨어졌지만 집에 도착해서야 지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지갑 안에는 운전면허증, 신용카드 등이 들어있어서 도용됐을 가능성도 있어서 걱정이 됐습니다.

     

    캐머런은 곧바로 자신의 은행 계좌부터 조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의 계좌에 세 차례에 걸쳐 돈이 입금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입금한 사람은 지갑을 주운 사이먼 바이 포드(30)였습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에서 떨어진 지갑을 발견했는데 지갑 안에는 주인을 확인할 단서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팀 캐머런이라는 이름도 흔해서 페이스북을 통해 확인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지갑을 뒤지던 바이 포드는 은행 카드에 적힌 계좌번호를 발견하고 지갑 주인에게 연락할 수 있는 지혜를 떠올렸습니다. 지갑 주인이 명의 도용을 우려해 맨 먼저 자신의 계좌를 열어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계좌로 1센트씩 3차례에 걸쳐 3센트를 입금했습니다. 그가 3차례 입금한 이유는 한 번 입금할 때마다 쓸 수 있는 영문 단어가 18개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바이포드는 세 차례 입금을 하면서 캐머런에게 “Hi, I found your” “wallet in the road” “Call 000-0000”이라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캐머런은 곧바로 전화를 해 바이포드를 만나 지갑을 돌려받았고 고맙다는 뜻으로 레드와인 한 병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 부동산 중개하며 마음닦기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분의 말씀이 크게 와닿아 소개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무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이 제때 팔리지 않으면 계획이 어그러지고 여러 사람이 혼란이 올 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의 고민이 자신의 고민이 된다고 하셨지요.

     

    전세나 월세를 사는 분들이 맘 편하게 이사를 가려면 새로운 세입자가 제때 나타나야 하기에 중개업을 하지만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 같이 고민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까 생각하게 되어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하고 이사를 잘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을 쓴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중개를 하면서 다양한 경우를 많이 보셨다고 합니다.

     

    같은 조건의 집도 다른 거래 조건에 사고 팔리기도 하고 어떤 집은 이삿날 일주일을 남겨두고 거래가 성사가 된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집 주인은 성격이 고약한데 거래가 잘 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사람이 굉장히 좋은데 거래가 잘 안돼 애를 먹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하늘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관련해서도 정해진 가격이 있지만 마음을 열어놓고 꼭 깎고 싶어 하는 분이 있으면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부동산 중개인이 아닌 집을 사고팔거나 세를 놓고 드는 당사자의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중개업을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멀리 사는 분이 오랜만에 찾아오셨길래 다른 부동산도 많은 데 제 사무실까지 오게 되셨는지 물으니 “왠지 믿음이 가서 오게 됐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분이 내놓은 상가는 목이 좋은 곳이지만 많은 걸림돌이 있어 매매가 어려웠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이 분께 와서 성사가 되었답니다.

     

    그분은 그 상가가 팔리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이루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자 지금은 근심 걱정 없이 일을 하게 되고 식구들 밥 먹고 사는 데도 지장이 없게 됐다고 하십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 편하고 즐겁게 살며 부모님 곁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찾아오는 분들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 정성을 기울이며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마음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 베트남 오지 마을에서 인술 펴며 20명 입양한 의사

    진 덕 티엔(51)은 베트남의 국경 인근인 어 바오의 단 한 명뿐인 의사이다. [이미지 : tuio tre 유튜브 캡처]

    오지 마을에서 20년째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있습니다.

     

    진 덕 티엔(51)은 1998년 후에 의약학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베트남 중부 꽝찌 근처의 어 바오로 갔습니다. 어 바오는 60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도시 다낭이 있었지만 그는 돈이나 명예 대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이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20년 넘게 살고 있는 어 바오에 처음 간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근처의 어 바오에 가기 위해 흙먼지 날리는 길 8km를 걸어서 갔고 도중에 강도 건너야 했습니다.

     

    환경은 더 열악했습니다. 마을 보건소 건물은 나뭇조각으로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이어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기에는 너무 허술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몸이 아픈 것이 악령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생각해 기도를 하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진 덕 티엔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2주 동안 아무도 보건소를 찾지 않아 할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 덕 티엔은 이 마을의 임산부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마을의 임산부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에 세워진 텐트에서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마을의 신생아 사망률은 무척 높았습니다.

     

    그는 치료에 앞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가족들을 설득해 텐트로 가서 여성의 출산을 도왔습니다. 보건소 옆에 임산부가 의료지원을 받으며 출산할 수 있도록 판잣집도 지었습니다.

     

    이와 함께 마을의 지도자들을 찾아가 의료의 중요성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건소에서 치료받으면 병이 낫는다는 확신을 갖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임산부들이 이전과 달리 별 탈 없이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보건소를 찾는 여성들이 늘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보건소 건물도 세웠습니다. 판잣집을 허물고 지은 2층 콘크리트 보건소 건물에는 진료실과 함께 14개의 병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건소가 자리를 잡자 진 덕 티엔은 다음으로 마을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었습니다. 어 바오에 사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반나절이나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와 논의해 그런 아이들을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터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부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집 근처에 밭을 일궜습니다. 학기기 시작되기 2개월 전부터는 부근 도시의 자선단체를 찾아가 옷가지와 학용품 교재 등을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부부가 입양해 키운 아이들은 20여 명이나 됩니다.

     

    진 덕 티엔의 아내 호앙 티 후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에 개의치 않았어요.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

  • 고슴도치 새끼 8마리를 입양한 고양이

    고양이가 아기 고슴도치를 입양했습니다. 자그마치 여덟 마리나 됩니다.

     

    태어나자마자 어미를 잃은 아기 고슴도치들은 젖을 먹어야 하는데 젖병이나 주사용 흡입기로 주는 우유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칫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한 고양이가 이 아기들을 받아줬습니다.

     

    고양이는 느긋하게 누워서 젖을 먹으러 달려드는 아기 고슴도치들에게 몸을 맡깁니다. 마치 자신이 낳은 새끼들처럼 돌보는 모습니다. 물론 귀를 물려고 달려드는 녀석의 행동을 단호히 제지하기도 합니다. 나쁜 버릇은 어릴 때부터 바로잡아줘야지요.

     

    이 영상은 2017년 유투브에 올라왔습니다.

  • 진표율사(4) - 물고기와 자라에게 법을 베풀다

    금강산 발연사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님이 명주(강릉) 앞바다를 가는데 물고기와 자라가 바다에서 나와 육지처럼 만들어 주어 스님은 그것을 밟고 바다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계법을 외워주었다. 고성군에 들어가 발연사를 세우고 점찰법회를 열고 7년간 머물러 가르침을 폈다.”

     

    강릉지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고 흉흉한 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강릉지방에 가서 바다에 가서 계법을 베풀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닷가에는 무수한 고기들이 저절로 죽어 나와 그 지방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표율사의 이 같은 법력이 알려지자 경덕왕이 계를 청했습니다. 왕과 외척은 물론 궁중의 중신들을 모두 불러놓고 보살계를 설했는데 이에 감읍한 왕이 쌀과 비단, 황금 등을 공양하였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전국 여러 사찰에 나눠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은 다시 백성들 속으로 떠났습니다.

     

    말년에 발연사에 지내다가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올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뼈가 모두 삭아 내릴 때까지 그대로 공양하고 흙으로 덮어 무덤으로 삼으니 무덤에서 푸른 소나무가 났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진표율사가 수행하던 변산을 찾아가 썼다는 글이 전하고 있습니다.

     

     

    大千猶可筒中藏

    무지개 같은 사다리 다리 밑이 길어서

     

    回身直下萬尋强

    몸을 돌려 곧장 내리니 만 길이 넘네

     

    至人已化今無迹

    도인은 이미 가고 자취마저 없는데

     

    古屋誰扶尙不疆

    옛집은 누가 붙들었기에 아직도 쓰러지지 않나

     

    丈六定從何處現

    일장육척의 불상은 어느 곳으로 좇아 나타날런지

     

    大千猶可筒中藏

    대천의 세계는 그 가운데 감추어져 있네

     

    完山吏隱忘機客

    완산의 벼슬아치 숨어들어 나그네임을 잊으니

     

    洗手來焚一辨香

    손씻고 들어와 한 조각 향을 사르네

    

    (끝)

  • 야생으로 돌려보낸 고릴라와의 감동적 재회

    10년 전 쯤에 있었던 일입니다.

     

    야생동물 보호운동가인 다미안 아스피널은 자신이 길렀던 고릴라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영국인인 그는 2000년쯤 어미를 잃은 새끼 고릴라를 입양해 크위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식처럼 돌보다 5살이 되자 아프리카 가봉의 정글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0년 아스피널이 크위비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아스피널은 아프리카 가봉으로 가서 수소문 끝에 크위비를 방사한 지역을 찾아내 정글 속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현지의 전문가들도 크위비가 지금은 야생 고릴라인 만큼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크위비가 이전에 자신과 접촉하려 한 사람들 두 차례나 공격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스피널은 크위비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보트를 빌려 정글 속을 찾아 다니며 “크위비”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크위비가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한 고릴라가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세상에나, 크위비였습니다. 비록 5년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크위비는 아스피널의 목소리를 기억했습니다.

     

    크위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지만 아스피널은 강기슭으로 뛰어 올라가 크위비 곁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그랬듯이 풀을 입에 물었다 건넸고 크위비는 곧바로 예전처럼 받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IMAGE|599|center|야생동물 보호가인 다미안 아스피널이 10년 전 자신이 길렀던 고릴라 크위비를 만나고 있다. [이미지 : WolfstarTV 유튜브 캡처] ]]

     

    크위비는 이어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스피널을 바라보다 아스피널의 팔을 끌어 당기고 그를 그를 껴안았습니다. 놀랍게도 크위비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아스피널에 소개했습니다.

     

    크위비는 아스피널과 헤어지기 싫다는 듯 그를 껴안고 놔주지를 않았습니다. 아스피널과 크위비는 한참 동안 마주 앉아 회포를 풀었습니다.

     

    [[IMAGE|601|center|아스피널에게 크위비가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는 모습 [이미지 : WolfstarTV 유튜브 캡처] ]]

     

    해가 지기 시작하자 아스피널은 정글을 떠나기 위해 보트를 탔습니다. 크위비는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 아스피널을 따라왔고 아스피널이 머무는 반대편 강둑에서 가족들과 함께 그를 지켜봤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스피널은 멱을 감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놀랍게도 크위비는 그때까지 강 건너편에서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성소수자 인권보호 앞장선 예수회 사제 만나

    프란치스코 교황이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와 만남을 가졌다. [이미지 :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 트위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예수회 사제를 만났습니다.

     

    미국 예수회 매체인 <아메리카>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달 30일 성소수자 인권 보호에 앞장서 온 제임스 마틴 예수회 신부를 만났습니다.

     

    마틴 신부는 자신의 트위터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30분 동안 배석자 없이 만남을 가졌고 그 자리에서 LGBT 가톨릭 신자와 전 세계 LGBT들의 희망, 슬픔, 불안 등을 전했다"라며 “이렇게 훌륭한 목자와 만나게 되어 너무 기뻤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만남을 “인생 최고의 순간 가운데 하나”라며 “교황님으로부터 격려와 위로와 영감을 받았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마틴 신부는 <아메리카>에 이번 알현에 대해 “교황께서 LGBT를 살피고 계시다는 하나의 징표로 봤다"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만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로마에서 열린 교황청 홍보처 행사에서 만난 마틴 신부를 바티칸에 정식으로 초대하면서 이뤄졌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마틴 신부를 만난 것을 두고 가톨릭교회가 성소수자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소수자에 대해 줄곧 “차별 대신 존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교회가 목회자의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2016년 6월 아르메니아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기독교인들은 이들에게 반드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3년 즉위 뒤 “게이인 자가 하느님을 찾는 데 내가 누구를 정죄할 수 있겠는가?”라고 발언해 성소수자와 관련 단체로부터 찬사를 받았습니다.

     

    <아메리카>의 대기자이기도 한 제임스 마틴은 가톨릭교회가 성소수자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보수적인 미국 가톨릭 성직자와 신자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마틴 신부는 그런 비난에 개의치 않고 성소수자 사목을 도맡아 그들을 돕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성소수자와 가톨릭과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 <가교를 만들자(Building a Bridge: How the Catholic Church and the LGBT Community Can Enter into a Relationship of Respect, Compassion, and Sensitivity>를 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