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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고 레이서가 시한부 5살 꼬마 팬에 준 선물

    루이스 해밀턴과 그의 5살 꼬마 팬 해리 쇼의 특별한 인연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미지 출처 : Ryan Bayona(https://www.flickr.com/photos/ryanbayona/7109416681/) 및 루이스 해밀턴 SNS, CC BY-SA 2.0]

    루이스 해밀턴은 세계 최고의 레이서 가운데 한 명입니다.

     

    포뮬러원(F1) 최초의 흑인 선수이자 영국인 최초로 4차례 월드 챔피언에 오른 인물입니다. 지난해 그가 받은 연봉만도 500억 원입니다.

     

    루이스 해밀턴은 얼마 전 SNS를 통해 영국에 사는 5살 꼬마팬으로부터 영상 응원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해밀턴은 그 영상을 지난 13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렸습니다.

     

    “안녕 해밀턴, 스페인 경기에서 우승하기를 바래요.”

     

    이 영상을 보낸 5살 꼬마팬의 이름은 해리 쇼입니니다. 쇼는 안타깝게도 희귀암을 앓고 있는데 자동차 경주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해밀턴의 열렬한 팬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제임스 쇼는 언론과 인터뷰에서 “해리는 자동차를 좋아합니다. 무엇보다 자동차를 너무너무 좋아해요. 루이스 해밀턴은 우리 해리가 아는 유일한 유명인이고 스포츠 선수”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해리 쇼는 상당도 못했던 깜짝 선물을 받게 됩니다. 해밀턴이 F1 월드챔피언십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우승할 때 탔던 경주용 자동차와 우승컵을 볼 수 있도록 집으로 보내준 것입니다.

     

    [[IMAGE|447|center|희귀암을 앓고 있는 해리 쇼(5)의 사연을 들은 루이스 해밀턴이 F1 월드챔피언십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우승할 때 탔던 경주용 자동차와 우승컵을 볼 수 있도록 해리의 집으로 보내줬다. [이미지 : 제임스 쇼 페이스북] ]]

     

    해밀턴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해리를 격려하는 글도 남겼습니다.

     

    “해리, 이 메시지가 내게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는지 넌 모를 거야. 정말 고마워. 너는 오늘 내게 큰 감동을 줬어. 해리, 난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너는 참으로 강한 아이야. 나도 너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세상 사람들이 네가 얼마나 강인한 사람인지 알고 너를 위해 기도하기를 바라.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 하기. 친구 루이스가”

     

    루이스 해밀턴을 통해 해리 쇼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해리의 부모가 JustGiving에서 진행 중인 희귀암 연구를 위한 모금(Harry’s Giant Pledge)에는 23일 현재 6천여 명 참여해 20만 파운드를 넘는 기금을 모았습니다.

     

    “우리는 해리의 이야기가 영국 왕립 마스덴 암 자선재단(The Royal Marsden Cancer Charity)을 위한 모금에 도움을 주기를 바랍니다. 연구만이 이 무서운 질병을 멈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한센인 50년 섬긴 강칼라 수녀

    강칼리 수녀가 전북 고창군에서 열린 ' 나눔의 삶 50주년' 축하 행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미지 : 고창군청]

    강칼라 수녀는 한센인의 친구이자 어머니로 불립니다.

     

    ‘작은자매 관상수녀회’ 소속으로 1968년 한국에 파견된 강칼라 수녀는 그로부터 50년 동안 한센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줬습니다.

     

    강칼라 수녀가 반평생을 산 전북 고창의 호암마을(옛 동혜원마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센인들이 살기 시작한 곳입니다.

     

    강칼라 수녀는 이곳에서 한센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돼지를 키우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카를라라는 그의 세례명을 발음하기 어려워 칼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센인을 돌보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한센인 치료를 위해 스페인에 있는 병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간호보호사 자격을 따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골방만을 허락했습니다.

     

    한때 200명 가까운 한센병 환자와 가족이 살았지만 지금은 10여 명만이 살고 있습니다. 강칼라 수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사업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호암마을 도자기는 꽤 이름난 제품이라고 합니다.

     

    한센인을 대신해 고무신을 신고 매일 자전거로 읍내를 오가는 젊은 수녀는 이제 반백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속명이 탈로네 리디아인 강칼라 수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세에 ‘작은 자매 관상 수녀회’에 입회했습니다. 전쟁고아를 돌보던 그는 1968년 한국 파견을 자원해 지구 반대쪽의 작은 나라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강칼라 수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센인과 함께 한 지난 50년은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며 “대신 아파 줄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호암상을 수상한 강칼라 수녀의 삶을 소개한 글입니다.

     

    강칼라 수녀는 사회에서 격리되고 외면당한 한센인의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한센인의 친구이자 어머니다. 이탈리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달로네 리디아는 25세이던 1968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북 고창 호암마을의 한센인 정착촌 동혜원에 도착하여 강칼라 수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50년 동안 한센인의 곁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한국에서 한센인은 감염 우려와 불편한 외모, 편견으로 인해 차갑게 외면당했다. 어디에도 그들의 자리는 없었고, 비참한 삶은 2세들에게 대물림됐다. 하지만 강칼라 수녀에게 한센인은 똑같이 고귀한 인간이자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조차 감당하기 힘든 한센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환자와 그 가족들을 가장 귀한 사람들로 섬기며 평생을 함께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쳤다.

     

    1916년 소록도 자혜병원 설립 이후 한센병 치료와 관리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삶의 문제는 항상 뒷전이었다. 강칼라 수녀는 외롭고 구석진 개인의 삶에 다가갔다. 고통스러운 일상을 위로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했다. 한센인들은 그가 절망의 순간을 견디게 해 준, 존재만으로도 희망이 되어 준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강칼라 수녀의 삶은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실천적 사랑의 귀감이다.

     

    강칼라 수녀는 한센인 외에도 성매매 여성과 자녀들, 거리의 윤락여성과 그 아이들, 노숙자들, 병들고 가난한 이들처럼 가장 낮고 비참하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돌봤다. 생활과 의료, 교육 사업을 통해 절망 대신 희망을, 좌절보다 용기를 줄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꿈꿨다. 50년 동안 자신을 바쳐 헌신해 온 ‘푸른 눈의 천사’는 오늘도 변함없이, 검소하고 묵묵하게 어려운 이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 친구 위해 단체 삭발한 어린이들

    항암치료 때문에 삭발을 해야하는 레이튼을 위해, 그녀의 친구들이 그녀와 함께 삭발을 하고 있다. [이미지 : INSIDE EDITION 유튜브 캡처]

    미국 애리조나의 소프트볼 선수들이 진정한 팀워크가 무엇인지를 보여줬습니다.

     

    올해 일곱 살인 레이튼 아카도는 얼마 전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복부, 간, 폐 등에 여러 개의 종양이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레이튼은 치료를 위해서는 머리를 깎아야 했습니다. 소프트볼과 하키를 즐기는 레이튼은 29일 소프트볼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에서 머리를 깎기로 했습니다.

     

    머리를 깎기에 앞서 레이튼은 “두렵지 않아요.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요”라고 말했습니다.

     

    [[IMAGE|444|center|삭발을 마치고 팀 마스코트와 함께 사진을 찍는 레이튼과 친구들 [이미지 : INSIDE EDITION 유튜브 캡처] ]]

     

    실제 레이튼의 팀 동료들은 그가 외롭게 머리를 깎게 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소프트볼과 하키 팀 동료인 에밀리아, 케이티가 함께 머리를 깎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들 세 친구는 손을 꼭 잡고 나란히 앉아 동시에 까까머리가 됐습니다. 남자친구들 10여 명도 함께 머리를 깎았습니다.

     

    [[IMAGE|443|center|레이튼을 위해 소프트볼 팀원들이 단체 삭발에 참여했다. [이미지 : INSIDE EDITION 유튜브 캡처] ]]

     

    친구들은 ‘레이튼을 위한 삭발’ ‘레이튼 힘내’ 등의 글을 쓴 손팻말을 만들어 와서 레이튼을 격려했습니다.

     

    에밀리는 “레이튼에게 힘을 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정말 좋은 친구이고 나는 그를 돕고 싶었어요”라고 언론에 말했습니다.

     

    레이튼의 코치도 함께 삭발을 했습니다.

     

    레이튼은 치료를 받는 동안 팀 동료들과 함께 게임을 즐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암과의 싸움을 함께 할 든든한 동료들이 있습니다.

  • 히말라야의 성자 밀라레빠(3) - 마르파의 가르침과 수행의 길

    나중에 마르파는 마음이 누그러져 밀라레빠를 데려오게 하였습니다. 밀라레빠가 오자 마르파는 여러 제자들 앞에서 말했습니다.

     

    “분노에도 신성한 분노가 있다. 내가 나의 영적인 아들 밀라레빠에게 행한 것이 그런 분노였다. 내가 밀라레빠를 아홉 번 크게 절망시켰으면 그의 모든 죄업이 소멸되었을 것이다. 다메마의 동정심 때문에 죄업이 약간 남았지만 여덟 번의 큰 고난을 겪어 큰 죄는 벗어났다. 이제 내 심장처럼 소중히 여기는 가르침의 세계로 밀라레빠를 입문시킬 생각이다.”

     

    그날 밤 제단에 공물이 놓인 뒤 밀라레빠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마르파는 요가의 여러 단계와 방법, 그리고 체계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밀라레빠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처음부터 나는 네가 훌륭한 제자임을 알았다. 너는 스승님이 내게 은총으로 하사하신 제자다.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모든 시련을 순종과 인내심으로 견디었으니 훌륭한 자격을 갖춘 제자들을 많이 두게 될 것이다.”

     

    밀라레빠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뒤 로닥탁냐라는 바위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거의 잠을 자지 않고 머리 위에 등불을 밝히고 정진하였습니다. 11개월이 지나 마르파가 찾아와 동굴의 문을 허물게 하고 그동안 수행하며 생각한 것을 물었습니다. 밀레르빠는 노래를 불렀고 그것을 들은 마르파는 기뻐하였습니다.

     

    해탈을 염원하는 자들에겐 이 몸이

    자유와 축복을 얻을 수 있는 훌륭한 그릇이지만

    죄업을 일삼는 자들에게는

    보다 낮은 존재 상태로 끌어내리는 사슬입니다.

    이승의 삶은 위로 오르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사닥다리입니다.

    현재가 가장 중요한 순간이며

    현재의 선택에 따라서 미래의 좋고 나쁨이 결정되니

    현시점에서의 올바른 선택이 가장 중요합니다.

     

    밀라레빠는 몇 년 동안 더 가르침을 받으며 관정의례를 받고 나로파가 예언한 장푹동굴로 갔습니다. 동굴 속에서 지내는 동안 밀라레빠는 크게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꿈속에서 허물어진 집이 보였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여동생은 외톨이가 되어 방랑하고 있었습니다. 밀라레빠는 연로한 어머니를 만나야겠다고 마음먹고 스승에게 잠시 고향에 다녀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들아, 그렇게 하여라. 그러나 네가 집에 간다고 해도 살아계신 어머니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번 생에서 너와 나는 다시 만나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준 가르침은 신성하여 세속적인 허영으로 변질되면 신들의 분노가 있으니 주의해라. 나중에 네가 너의 제자들을 만나게 되면 정성을 다해 돌보고, 진리의 빛을 찾도록 힘껏 도와라.”

  • 이강인 선수의 감동 인터뷰

    U-20 월드컵 4강전 후 진행된 이강인 선수의 인터뷰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 : 이강인 선수 페이스북]

    이강인 선수의 인터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세네갈과의 U20 월드컵 4강전에서 드라마 같은 승리를 따낸 뒤 여전히 가쁜 숨을 내쉬면서 한 인터뷰 내용은 놀라웠습니다.

     

    늘 자신을 낮추고 모든 이를 배려하는 인터뷰에서 그가 이제 겨우 18세의 청소년이라는 걸 잊게 만듭니다.

     

    “이렇게 좋은 경기 이렇게 힘든데 이렇게 형들과 좋은 경기를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진짜 경기 안 뛴 형들도 그렇고 경기 뛴 형들도 그렇고 코칭 스태프 분들도 그렇고 한국에서 응원해주신 분, 여기까지 와주셔서 응원 크게 해주신 분들한테 너무 감사하고 이제 4강 잘 준비해서 더 열심히 해서 꼭 결승까지 가고 싶어요”

     

    자신이 교체된 뒤에 무승부가 되면서 자신이 승부차기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교체 당하기 전부터 제가 경기 시작하기 전부터 이 팀을 믿었고, 모든 형들 또는 코칭스태프분들 경기 안 뛴 형들 다 믿었고 꼭 이렇게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후반전에서 활약이 돋보였다는 질문에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췄습니다.

     

    “다른 것보다는 최대한 팀에 도움이 되려고 열심히 한 것 같고, 이렇게 좋은 성적 낼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이렇게 제가 잘 할 수 있는 건 진짜 형들이 많이 옆에서 도와주고 많이 응원해주셔서 진짜 너무 잘한 것 같고 다음 경기도 진짜 잘 준비해서 꼭 좋은 성적 내고 싶어요.”

     

    이강인 선수는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상대팀인 세네갈에게도 감사한다는 말을 하는 걸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네티즌들은 이강인 선수의 사려 깊은 인터뷰 내용에 대해 ‘막내형’이라고 부르며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 줄탁(茁啄)이란

    줄탁(茁啄)이란 말이 있습니다.

     

    줄(茁)이란

    알 속의 새끼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기 위하여 껍질을 쪼는 것을 말합니다.

     

    탁(啄)이란

    병아리가 나오는 것을 돕기 위하여 어미가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 말하지요.

     

    안과 밖, 어미와 새끼

    그 둘의 시기가 딱 맞아야 한답니다.

    너무 이르거나 늦으면 질식해 죽거나 미숙아로 죽고 만다는군요.

     

    '줄탁(茁啄)'

    이것은 병아리와 어미의 마음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어긋나지 않은 사랑의 정점이지요.

    관심과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보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살면서 절실할 때 느닷없이 다가온 은인들

    어느 순간 섬광처럼 눈앞을 환히 밝혀주던 경구 혹은, 한 소식

    그 순간이, 그 만남이 그 지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그대와 나,

    일체의 욕심과 바람과 허위를 버리고

    오랜 기다림과 관심과 사랑이어야만 보이는 마음의 자리

     

    그래야만 알 수 있는 바로 그때.

    그래서 창조되고 완성되는 새로운 세계

     

    줄탁!

     

    아, 사랑 아닌 것이 없군요.

  • 류현진, 동료가 세운 희귀병 연구재단에 기부

    야구선수 류현진이 '5월의 투수상'으로 뽑혀 받은 상금을 기부해 화제가 되었다. [이미지 : 플리커(https://www.flickr.com/photos/27003603@N00/8667165230), CC BY-SA 2.0]

    류현진 선수가 ‘5월의 선수’로 뽑혀 받은 상금을 기부했습니다.

     

    류현진 선수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스폰서 업체인 바이오프리즈가 선정한 ‘5월의 선수’로 뽑히면서 상금 1000달러를 받았습니다.

     

    그가 기부한 재단은 같은 팀 동료이자 투수인 리치 힐과 부인 케이틀린 힐이 세운 자선재단 ‘필드 오브 진스’입니다.

     

    힐 부부는 5년 전 생후 2개월인 아들을 희귀병으로 잃은 뒤 관련 질병을 연구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힐 부부는 이 재단을 통해 모은 돈을 유전적 희귀질환을 연구하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스위처 박사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부부는 57만 5천 달러를 내놓았고 10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을 잃는 뒤 몇 년 동안 치료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몇 가족이 여전히 치료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구의 진척이 빨라지고 있는 만큼 치료법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경남 합천군의 우체통 기부 천사

    지난 2015년부터 경남 합천군 우체통에 익명으로 9차례에 걸쳐 약 530만 원을 기부한 이가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 : 경남 합천군]

    경남 합천군에는 우체통 기부 천사가 있습니다.

     

    군민들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달라는 메모지와 함께 몇 년째 우체통에 현금이 든 봉투를 넣고 있는 사람을 그렇게 부릅니다.

     

    지난 5월 24일에도 합천군 합천읍의 한 우체통에서 수신자와 발신자의 주소가 없는 봉투가 발견됐습니다.

     

    이 봉투를 발견한 집배원은 5만 원 권 지폐 20장과 함께 다음과 같이 적힌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보다 어려운 주위 분들을 한 번쯤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합니다. 얼마 안 되는 금액입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합천군에 따르면 필체와 기부 방식을 놓고 볼 때 이 봉투를 남긴 사람이 2015년부터 합천군 우체통을 통해 기부한 사람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합천군 관계자는 이 사람이 지금까지 관내 우체통 2곳을 통해 모두 9차례에 걸쳐 530만 5000원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 별을 좋아하던 꼬마 철학자

    어린 시절 무척 더운 지방에서 자랐다.

    비도 자주 오지 않는 곳이라 여름밤은 고통스러웠다. 선풍기 하나로 열대야를 나기는 쉽지 않았다. 낮에 달궈진 시멘트벽은 새벽까지 더위를 뿜어냈다.

     

    그런 여름날이면 옥상에 올라가 모기장을 쳤다.

    바닥에 물을 뿌려 열기를 날려 보낸 뒤 얇은 이부자리를 펴면 옥상은 훌륭한 피서지로 바뀌었다. 아무리 더운 날이라도 자정이 지나면 밤공기는 서늘해졌다.

     

    ‘옥상 침실’에서는 별을 보다 잠이 들었다.

    하늘이 맑은 시절이었다. 봄날 황사는 있었지만 미세 먼지나 공기질과 같은 말 자체가 없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수많은 별이 자신을 드러냈다.

     

    여름날 잠자리에 누워 올려다보는 밤하늘의 별은 너무 아름다웠다.

    초등학생(당시는 국민학생이라 불렀다)은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등 학교에서 배운 몇 안 되는 별자리를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뻤다.

     

    어느 여름밤 문득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 별 때문이었다. 죽은 뒤에도 저 별을 볼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은 죽으면 땅에 묻혀 흙이 된다는데, 그렇다면 저 별을 보는 내 생각(의식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었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죽은 뒤에는 저 아름다운 별들을 영원히 볼 수 없다는 건가?

     

    처음으로 영원이라는 단어가 체감됐다.

    저 별들은 언제까지나 저렇게 아름답게 빛날 것이지만 나는 영원히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상태는 끝없이 계속된다고.

     

    슬프지는 않았다. 이상하게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밤이면 별을 보며 죽음을 생각했다. 저 별을 보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중학교 때 옥상이 없는 집으로 이사 가면서 꼬마 ‘철학자’의 죽음에 대한 탐구는 막을 내렸다. 죽음을 그렇게 가까운 실체로 느꼈었다는 생각조차 잊었다.

     

    대학 시절 그렇게 좋아했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나이 서른이 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죽음을 그때처럼 실감하지 못했다.

     

    정확히는 자신도 죽는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 어린 꼬마가 별을 보며 죽음을 어떤 사람보다 진지하게 생각했었다는 기억조차도.

  • 52년 만에 반납된 책

    대출됐던 책이 52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21일 영국 서퍽주 로스토프트 도서관에 책 한 권이 우편으로 배달됐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이 책은 1967년 9월에 반납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돌아오지 않았지요.

     

    도서관에 도착한 우편물에는 “너무나도 당혹스러웠습니다”라는 편지와 함께 연체료 100파운드가 함께 들어 있었습니다.

     

    조 와일드 도서관장은 책을 반납한 사람에 대해 “집을 이사하면서 빌렸던 책을 발견했다고 합니다”라고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책을 빌려 갔을 당시 연체료가 일주일에 3펜스였는데 지금 물가로 환산하면 대출자는 약 33파운드를 더 낸 셈이라고 말했습니다.

     

    와일드 관장은 “깜짝 놀랐습니다”라며 “사람들 대부분은 이 책을 발견해도 반납하려고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라고 놀라움을 표시했습니다.

     

    반납된 책은 <형이상학파 시인들(The Metaphysical Poets)>이라는 책으로 상태가 아주 양호했다고 합니다. 이 책의 대출과 반납에 담긴 사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찾을 것이라고 와일드 관장은 ‘예견’했습니다.

     

    책과 함께 동봉된 연체료 100파운드는 자선단체인 이 도서관에 기증 처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