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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도소설 성자들의 시대3-우주와 하나가 되다

     

    방헌수가 이런 얘기를 한 지 한달밖에 안 되어 석주는 화를 입었다. 친구 떄문에 재산을 모두 날렸고, 아내와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때 석주한테 가장 큰 위안을 준 사람이 방헌수였다. 처음 방헌수가 관상을 봐줬을때, 석주는 그의 말을 반만 믿었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닥쳐오리라는 얘기는 믿었지만, 말년에 큰 복을 누리리라는 예언은 믿지 않았다. 자기가 어찌 감히 그런 복을 바라겠는가 싶었다.더구나 만인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다니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방헌수의 예언이 정확하게 들어맞자 석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자신이 참고 견디며 다시 살림을 일으키면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지리라 믿었다. 방헌수는 하늘이 자네를 크게 쓰시려고 시련을 주신 거라며 자주 석주를 위로했다.

     

    아내가 집을 나가기 며칠 전이었다. 방헌수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아우, 며칠 후 또 아우한테 나쁜일이 생기네. 이번엔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네. 이번 고비를 잘 넘겨야 대운을 맞네."  석주는 이 말을 듣고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방헌수의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봐서 이번엔 더욱 큰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석주가 또 무슨 일이 닥치겠느냐고 물었으나 방헌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잘 모르겠네. 다만 자네 마음이 너무 크게 상할까 걱정이네. 아우, 내 말 명심하게. 어떤일이 생겨도 희망을 잃지 말게나. 이번 시련을 겪고 나면 자네 운이 활짝 피네. 이후론 두번 다시 괴로움을 겪지 않게돼. 내 장담하네. 틀림 없어."

     

    그후 며칠 안 되어 아내가 집을 나갔다. 석주에겐 청천벽력 이었다. 재산을 날렸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고통 스러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내까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 했다는 것을 알았을때 절망감이 극에 달했다.

     

    이때 석주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허깨비나 다름 없었다. 삶의 의의를 전혀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순간 한순간 살아가는 게 죽은 것보다 더 괴로웠다.

     

    석주는 그림자처럼, 혼이 빠진 사람처럼 일손을 놓고 시장바닥 여기저기 배회했다. 방헌수는 그런 석주를 매일 만나 위로 했다. 하지만 석주에겐 별로 위안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7 월이었다. 그때 석주는 목숨을 끊으려고 수면제를 모으고 있었다. 하루는 방헌수가 석주를 불러 이렇게 위로했다.

    "아우, 너무 상심 말게. 이제 제수씨를 잊어. 자네 한테 엄청난 광명이 비치고 있다네. 한달 안에 고귀하신 어른을 뵈올거야. 그 귀인께서 아우한테 큰 복을 주실거네. 제발 마음좀 단단히 먹어."

     

    이런 격려도 석주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석주는 시장에서 흘연히 자취를 감췄다. 목숨을 끊으려고 계룡산 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계룡산 보덕봉. 보덕봉은 계룡산 중에서 가장 인적이 뜸하며, 휴일에도 등산객 하나 오지 않을 만큼 호젓한 곳이다. 석주는 보덕봉 깊은 계곡에서 약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 약을 먹기 전에 한참 동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살고 싶은 의욕이 전혀 일지 않았다. 그래서 담담한 마음으로 가져온 수면제를 남김없이 다 먹었다. 치사량이 훨씬 넘는 양이었다

     

    그런데 석주는 이튿날 의식을 되찾았다. 석주가 의식을 회복하고 제일 먼저 본 사람이 혜원이었다. 그 다음이 벽운 선생이었다. 그날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 나왔다. 세상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벽운 선생은 석주를 살려내어 제자로 삼았다. 석주는 벽운 선생의 다른 제자들과 몇 달간 함께 살았다. 그들한테서 벽운 선생이 큰 깨닭음을 얻으신 대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석주에겐 생소하기만 한 도담도 많이 나눴다.

     

    석주는 아직 벽운 선생으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다른 도반들은 참선과 행공을 했지만, 석주한테는 오로지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닦으라고만 가르쳤다. 아내를 잊고, 아내를 잊듯이 세당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여의라 일렀다. 처음엔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내가 불쑥불쑥 떠올랐고, 그때마다 분노심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또, 막막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석주에게 혜원이는 큰 위안을 주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참 평안해졌다. 그저 기쁘고 환해졌다. 아내에게서는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도반들이 들려주는 도화들도 석주에게 큰 기쁨과 위안이 되었다.

     

    스승을 찾아가는 수행자들과 깨닭음을 완성하고 대자유를 얻은 성자들의 삶은 석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의 삶과 너무나 달랐다. 찬란해 보였다. 그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세상 사람들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석주는 한발 한발 수행자들의 세계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내를 향한 집착과 분노도 차츰차츰 사그라들었다. 아내의 모습도 자주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늦가을, 도반들은 벽운 선생의 명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계룡산 보덕봉에는 혜원이와 명천이가 남게 되었다. 벽운 선생은 석주를 운학산으로 데려왔다. 석주는 석달 동안 거의 홀로 지냈다. 개심사에 있는 도반 유필섭과 벽운 선생이 가끔들렀을 뿐이었다.

     

    혼자 지내게 되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 자주 번뇌에 시달렸다. 아내를 향한 미움이 자꾸 되살아났다. 벽운 선생은 석주더러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번뇌를 뿌리까지 뽑아 없애라고 했다.지난번에 들러서는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이르셨다. 이말씀은 그저 참고 희생을 감수하라는 뜻이 아니다. 지고의 기쁨과 복락을 누리며 살라는 뜻이다. 원수까지 사랑한다면 세상에서 사랑 못 할 께 하나도 없다.삼라만상 온 우주를 품어 안게 된다. 그만큼 크나큰 기쁨을 얻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체험해 보지 않으면 손해 보는 줄 착각한다. 몸소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지당한지 잘 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온갖 번뇌를 모두 버리고 해탈하는 길을 가르치셨다. 또 번뇌는 욕망과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번뇌를 버리려면 욕망을 남김없이 떨치고 집착을 끊으라 하셨다. 이를 실천하면 대자유를 얻는다. 푸른 창공에 훨훨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모두 비우고 가진 것을 다 버리면, 사는게 허망하리라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욕망과 집착을 완전히 떨치면 온 우주가 품안에 들어온다. 무한한 충만감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 기쁨은 세속 사람들이 얻는 기쁨과 전혀 다르다. 영원무궁하고 지극하기 그지없다.

     

    네가 왜 아내를 미워하는지 아느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집착은 아내를 가지려는 욕망에서 생겨난다. 이 욕망과 온갖 나쁜 감정이 아내한테 집중된다. 아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그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게다."

     

    석주는 벽운 선생의 가르침대로 아내를 향한 집착을 끊으려고 애썼다. 처음엔 어려웠다. 아내의 모습이 자주 떠올랐고 그때마다 감정이 북받쳤다. 그러면 스승 벽운 선생과 혜원이와 도반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이 치솟는 감정을 가라앉혀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를 향한 나쁜 감정들이 자꾸 엷어져 갔다. 며칠 전이었다. 석주는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순간, 아내가 그저 불쌍하게만 보였다. 아내의 굴레에서 완전히 헤어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진다는 스승의 말씀을 실감했다. 정말 자유롭고 기뻤다. 또,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 사랑스러웠다. 땅속의 벌레들, 실낱 같은 풀뿌리들, 갖가지 나무들과 짐승들, 산과 들과 강물, 하늘의 별들, 구름과 눈......, 그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석주는 마음으로 삼라만상을 모두 품어 안았다. 그러자 자신이 온 우주만큼 커져 우주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석주가 이렇게 눈을 감고서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있는데, 백령자가 작은 울음 소리를 내며 날개를 가볍게 퍼덕였다. 석주는 얼른 눈을 떴다. 백령자는 날개짓을 한 번 더 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석주는 백령자를 안아서 밖으로 데려갔다.

     

    어느새 백학봉 위로 해가 떠올라 있었다. 눈덮인 백학봉이 햇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날씨가 아주 포근해 초막의 지붕에서 눈녹은 물이 줄줄 쏟아져 내렸다. 바람 한 줄기가 골짜기를 타고 휘이 올라갔다. 소나무들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졌다.

     

    석주는 마당에다 백령자를 내려놓았다. 백령자는 날개를 몇번 퍼덕이다 하늘로 올라갔다. 백학봉을 한바퀴 돌고 나서는 관음봉 아래 개심사 쪽으로 향했다. 벽운 선생과 혜원이 개심사에 당도한 모양이었다.

     

    백령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석주는 팔짱을 끼고 사방을 둘러봤다. 눈에 덮인 뭇 생명들의 숨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아직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 나무들. 벌레들......, 석주는 그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석주의 숨과 뭇 생명의 숨이 하나로 녹아 들었다. 대자연, 우주의 숨도 거기에 합류했다. 석주의 마음속에서 온 우주가 만들어 내는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벽운 선생과 혜원인 저녁나절에 왔다. 백령자와 유필섭도 그들과 함께 왔다.

  • 구도소설 성자들의시대2-석주의 운명

    안개낀 소나무 숲 licensed by Pixbay

    "백령자, 이리 와." 석주는 두 팔을 치켜들고 백령자를 불렀다.

     

    백령자는 반갑다는 표시로 목을 뽑고 한 번 길게 울더니, 석주한테 날아와 어깨위에 앉았다. "혜원 누이가 벌써 출발했니?" 백령자는 석주의 물음에 머리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혜원이 벽운 선생과 함께 운학산을 향해 길을 떠나자, 백령자는 먼저 석주에게로 온것이었다.

     

    석주는 백령자를 두팔로 안았다. 백령자한테서 봄바람처럼 따스한 기운이 뿜어나왔다.

     

    석주는 백령자를 안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백령자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우주의 진기에 몸을 맡기고 깊은 명상에 잠겼다. 석주의 도반들 중에서 맨 처음 벽운 선생과 인연이 닿은 도반이 백령자였다. 석주는 벽운 선생한테서 백령자가 20 여년 전부터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는 얘길 들었다.

     

    백령자는 벌써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3년 전부터 우주의 진기만으로 살게 되었던 것이다. 석주는 시장기를 느꼈다. 구석에 놓인 비닐봉지에서 미숫가루를 꺼냈다. 백령자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 안 나게 조심조심 숟가락으로 퍼서 공기에 담았다. 그리고는 물을 붓고 잘 저은 다음 천천히 마셨다. 이것이 석주의 아침 식사였다. 석주가 먹는 미숫가루는 칡, 콩, 솔잎, 깨 등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석주는 처음 산에 들어왔을때부터 이 미숫가루만 먹고 지냈다. 식사를 마친 다음 석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백령자처럼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방안은 지극히  고요했다. 백령자도 석주도 조각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백령자한테서 또 훈훈한 기운이 피어나와 석주를 에워쌌다. 석주의 마음은 한없이 아늑해졌다. 마치 어린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것 같았다.

     

    석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아버지의 따스한 미소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6.25 때, 끌려가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며 울어대던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아버지는 그 뒤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학살당했다는 소식만 들려 왔다.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석주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석주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파문은 곧 가라앉았다. 전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할 떄마다 가슴이 막힐 듯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와 이념이 달랐던 사람들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던 일도 생겨났다. 그들이 몰려올 때마다 석주는 공포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석주 남매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었다. 석주는 그들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다. 이젠 그때의 두려움과 미움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석주는 평온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석주는 초등학교에 다닐때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꼽추가 되었다. 그로 인해 다른 아이들한테 숱한 놀림을 받았다. 아이들이 편을 갈라 놀이를 할떄도 석주는 낄 수가 없었다. 석주가 자기네 편에 들면 불리하다고 따돌리기 일쑤였다. 석주는 뒷전에 서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보습을 구경이나 해야 했다. 석주를 따돌리고 놀려대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곱추라고 놀려대던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려왔다. 그때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이 다시 일듯 하다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석주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며 학교를 다녔다. 방학때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그 두려움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그러니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

     

    석주에겐 위로 누나와 형,그리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있다. 맏이인 누나는 학교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행상을 하고 누나가 동생들을 길렀다. 동생들이 큰뒤에는 남의집 식모살이를 하여 살림을 보탰다. 석주의 형과 동생은 공부를 아주 잘했다.석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게의 점원이 되었다. 형을 가르치기도 벅찼던 어머니는 공부를 못하는 석주까지 가르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석주도 누나처럼 어머니를 도와 형과 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석주는 점원으로 있다가 시장에서 행상을 했다.석주가 번돈은 모두 형과 동생의 학비로 들어갔다. 동생이 대학을 졸업했을때 석주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석주는그제서야 자신을 위해서 돈을 모았다. 그때까지는 결혼도 하지 못했다.불구자에다 많이 배우지도 못한 석주에게 시집 오겠다는 여자가 없었던 것이다.

     

    석주는 3년동안 돈을 모아 시장에다 작은 가게를 열었다. 가게는 제법 잘됐다.석주를 좋아하는 단골 손님이 꽤 많았다. 돈도 잘벌고 성품이 참좋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왔다. 석주는 서른네 살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 석주보다 세살 아래였는데 소박하고 성실한 여자였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2년 동안 별 탈없이 잘살았다.아기를 못가져 근심이 되기는 했지만 금슬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2년 후인 서른여섯이 되던해에 큰 불행이 닥쳐왔다. 석주가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보증을 섰는데,그만 그 친구가 부도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석주는 가게를 팔아서 그 친구의 빚을 갚았다.졸지에 빈털털이가 되었다.

     

    석주는 다시 행상을 시작했다.생활이 어려웠다. 그러자 아내의 마음이 조금씩 변해갔다.남편한테 자주 불만을 터트리고 싸움을 걸었다. 아내의 불평불만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석주는 모두 자기 탓이다 싶어 참고 참았다.그럴수록 아내한테 잘해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아내는 결국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것도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것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석주는 어머니 죽음도 자기탓이라고 생각했다.자기가 가정을 잘못 꾸려나가 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다고 믿었다. 죄책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내의 얼굴과 임종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다. 아내를 향한 미움과 그리움,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잔잔히 일다가 사라졌다. 석주는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아내와 어머니를 지켜 보았다.

     

    어머니 마저 돌아가신 뒤,석주는 절망에서 헤어날수 없었다. 입에 잘 대지도 않던 술로 세월을 보냈다.시장에서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며 위로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시장 사람들 중에 방헌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석주보다 몇 살위였고 난쟁이였다. 두사람은 성품도 비슷했으며 같은 불구자라 친형제 보다 훨씬 더 친하게 지냈다. 방헌수도 시장에서 행상을 했다.

     

     방헌수는 마음이 무척 넓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불구자였으나 의연했다.게다가 기품이 있었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얕보지 못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또, 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관상을 잘 보는 재주였다. 여간해선 남의 관상을 봐주지 않았는데, 그가 관상을 보고 하는 얘기는 언제나 적중했다.

     

    석주가 친구로 인해 가게를 날리기 한달 전이었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나서 방헌수가 할말이 있다며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두 사람은 저녁밥을 먹은 다음, 다방으로 갔다. 할말이 있다던 방헌수는 선뜻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형님, 하실 말씀이 뭔가요?" 석주가 궁금해 하는 문밑으로 물은 뒤에야 방헌수는 입을 열었다.

    "아우,내가 관상을 좀 보는 거 알지?"

    "그럼요, 형님이 용하신 거 제가 한두 번 겪어 봤나요."

    "그런데 내 여태까지 아우 관상을 한번도 안 봐줬어. 아우 역시 내게 뭘 물어 보지도 않았고."

    "그동안 뭐 별로 어려운 일이 없었으니까 그랬지요."

    "내 오늘은 아우 관상이나 봐주려고 하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형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석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방헌수와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도 자기의 관상을 봐달라고 하지 못했다. 행여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불행이 다시 찾아오리라고 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방헌수는 석주의 관상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아우 관상은 참 특이하네. 보통 사람 상이 아닐세. 초년운과 말년운이 전혀 상반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초년은 날개 부러진 봉황이요. 개천에 떨어진 용이나 마찬가지로구먼.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나. 알아주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아우는 만인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사람이야. 옛날 같으면 큰 도인이 됐을거야. 아우가 스님이 되었다면 아주 고명한 스님으로 많은 사람한테 존경을 받을 텐데…….

     

    관상을 보는 법 중에 유년법이란 게 있다네. 몇 살에 어떻게 되는가 알아보는 법이지. 사람의 운은 열네 살까지는 주로 귀에 나타난다네. 열다섯부터 서른 네살까지는 이마가 큰 작용을 하지. 서른다섯부터 마흔까지는 눈과 간문이라는 데 나타나고. 간문이란 눈꼬리하고 귀 사이라네."

     

    방헌수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간문을 가리켜 보인 다음에 계속 말을 이었다.

     

    "마흔한 살에서 쉰까지는 운이 코로 들어. 쉰 살부터는 쉰 아홉살까지 운은 코하고 입 사이로 오고. 예순 살부터는 입하고 턱에 있다네. 또 사람의 얼굴을 상정, 중정, 하정으로 나누지. 상정이란 이마야. 중정은 눈썹 아래에서 코끝까지라네. 하정은 코 아래, 입과 턱이야. 상정엔 초년운, 중정엔 중년운, 하정엔 말년운이 깃들지. 

     

    자네 이마는 움푹 들어갔어. 귀는 너무 얇고. 그래서 초년에 고생이 많았다네. 한데, 중정과 하정은 매우 잘생겼어. 눈썹, 눈, 코, 입, 턱 모두 빼어나게 좋아. 간문이 좀 약한게 흠이지. 나머지는 특츨해. 서른일고 여덟 운은 눈동자에 있네. 자네 눈은 매우 귀한 눈이야. 게다가 번쩍번쩍 광채가 뿜어 나오고.

     

    서른 일곱 살이 되면 자네 운이 크게 바뀔거네. 귀인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돼. 서른일곱에 맞는 대운은 정말 굉장해. 날개 부러진 봉황이 상처가 아물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격이야. 개천에 엎드려 때를 기다리던 용이 풍운을 만나 승천하는 거와 같지. 그후로는 평생 큰 복을 누리게 되네. 자네 복은 여느 사람들 복하고 달라.

     

    세상 사람들은 돈 잘 벌고, 출세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걸 대복으로 여기지. 자네 복은 그런 세간의 복이 아니네. 하늘이 내려 주시는 것이야. 그런데 아우, 호사다마라는 말 들어 봤지?  좋은 일에 마가 끼듯이, 큰 복이 올때도 흉화를 입는 경우가 있어, 혹 자네한테 한두달쯤 후에 나쁜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게나. 내 생각엔 머지 않아서 화를 입을것 같네. 그런 일이 있으면 마음 단단히 먹고 견뎌야 하네. 많이 괴롭겠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걸세."

  • 구도소설 성자들의 시대1 - 운학산

    운학산에는 밤새 눈이 내렸다.

    온세상을 덮어버릴 기세로 함박눈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눈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그쳤다.

    먹구름이 동녘 하늘 멀리 몰려갔다.

    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총총히 빛났다.

    운학산 주능선의 한가운데 솟아오른 백학봉,이 백학봉의 정상 부근에

    작은 초막이 하나 있었다.

    먼동이 트기 전에 이 초막에서 한 사내가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곱추였다.나이는 서른여덟,이름은 이석주다.

     

    석주는 초막 앞마당에 서서 잠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백학봉 정상을 향해 눈을 헤치고 걸음을 옮겼다.

    키가 작아서 허벅지까지 눈 속에 빠졌다.

     

    석주가 백학봉 정상에 오르니 동녘 하늘이 부옇게 밝아 오기 시작했다.

    동이 트면서 어둠은 서쪽으로 몰려갔다.

    별똥별 하나가 꼬리를 끌며 날아가다 곧 스러졌다.

     

    석주가 두팔을 벌리면서 심호흡을 했다.차갑고 맑은 공기가

    가슴깊이 밀려 들어왔다.아랫배까지 시원했다.

     

    잠시후 하늘이 붉게 물들고 이어서 숯불처럼 빨간 태양이

    백두대간 위로 솓아오르기 시작했다.석주는 태양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계속했다.

    숨을 들이 쉴때마다 태양의 붉은 기운이 밀물 처럼 쏴아쏘아 밀려와

    온갖 번뇌를 녹여주었다.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있는 집착과 욕망,분노와 미움,슬픔까지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석주는 아내와 정부情夫를 떠올렸다.그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런데도 분노가 일지 않았다.붉은 태양이 아내의 모습을 지웠다.

    그 사내의 모습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스승 벽운선생의 음성이 귓전에 울렸다.

    "욕망을 남기없이 비워라 그러면 온 우주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욕망은 고통의 씨앗이다.

    집착은 너를 얽매는 사슬이다.

    아내에 대한 집착을 끊어라.

    그래야 네 마음이 미움에서 헤어난다.

    아내에 대한 집착을 우주 삼라만상을 향한 자비심으로 바꿔라"

     

    어느덧 태양이 아득히 먼 백두대간 위로 불쑥 떠올랐다.

    운학산에서 백두대간까지는 2백여리가 넘는다.

    속리산에서 지리산으로 뻗어간 백두대간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그모습은 거대한 용이 약동하며 치달리는 것과 흡사했다.

     

    운학산과 백두대간 사이에는 수많은 산줄기들이 겹겹으로 펼쳐져있다.

    눈에덮인 그 산줄기들의 모습은 하늘에 떠있는 흰 구름처럼 보였다.

    새하얀 산봉우리들 위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내렸다.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푸르렀다.

     

    푸르른 하늘과 새하얀 산줄기들.     

    하늘에도 대지에도 티끌하나 눈에 뜨지 않았다.하얀색과

    파란색,그리고 붉은 태양의 선명한 대비가 무척 아름다웠다.

    석주는 아스라이 펼쳐진 산들과 태양을 바라보았다.

    혜원의 얼굴이 태양에 겹쳐 떠올랐다.

    그녀의 얼굴에서 한없이 자비롭고 평화로운 미소가 번져나왔다.

    삼라만상을 모두 품어 줄 듯한 미소였다.

    혜원의 미소가 눈부신 햇살과 함께 온 세상으로 퍼져가는 것 같았다.

     

    오늘은 혜원이 벽운 선생과 운학산으로 온다고 한 날이다.

    석주는 지난여름 계룡산에서 여러도반들과 함께 지냈다.

    그들은 모두 벽운선생의 문하생들이었다.

    혜원은 그들중 한 사람으로 수행이 깊었다..

    그녀는 석주보다 두 살 아래였다.

     

    해가 꽤 높이 떠올랐다.운학산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눈덮인 운학산은 완연한 학이었다.

    백학봉,청학봉,관음봉,보현봉,미륵봉,기린봉...봉우리마다 학이

    날개를 접고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온통 새하얬다.

    산도 강도 들녘도 모두 눈에 파묻혀 청량한 기운을 품었다.

    석주는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심호흡을 한 다음 초막으로 돌아왔다.

     

    초막은 방 둘에 부엌 하나가 딸린오두막 집이었다.

    집에 비해 터는 꽤 넓었다.3백평은 족히 되었다.

    초막 뒤에는 백학봉이 솟아 올랐다.

    오른쪽과 왼쪽에는 백학봉에서 뻗어 온 기린봉과

    문필봉이 우뚝 서있다.

     

    세 봉우리 다 타원형으로 생겼는데,그중에서 백학봉이 제일 높고 중후하다.

    기린봉,문필봉은 높이와 생김새가 거의 똑같은데 정상부분만

    약간 다르다.기린봉 꼭대기는 뭉툭하고 문필봉 머리는 날렵하다    

     

    초막 바로 앞은 계곡이다.계곡 건너편에는 수정봉,관음봉,세지봉,

    보현봉,문수봉, 이 다섯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있다.

    봉우리 뒤에는 아득히 2백여리 밖까지 수천 수만의 산봉우리들이

    구름처럼 펼쳐졌다.또 그 너머에는 서해 바다가 아득하게 보인다.

     

    옛날,어는 유명한 풍수객이 여기 들렸다가 무릎을 치며

    이런 얘기를 했다.

    "천하명당이로다.여덟명의 신선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등천하는

    형국이다.

    누가 이 터와 인연이 닿아 그 정기를 받을것인가.

    뭇 중생이 그 은덕을 크게 입으리라"

    석주는 세수를 하려고 샘으로 갔다. 마당의 가장자리,석주보다

    조금 더 큰 바위 밑에 샘이 있었다.

    사방 두어자쯤 되는 옹달샘 이었는데 물이 아주 잘 나왔다.

     

    여름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솟아 나오는 샘이었다.

    거울처럼 잔잔하고 맑은 수면위에서 김이 모락 모락 피어나왔다.

     

    석주는 세수를 마치고 막 일어설 때였다.

    서북쪽 하늘에 하얀 학한마리가 나타났다.학은 천천히 날아서

    백학봉쪽으로 다가왔다.

     

    백학봉 상공에서 몇바퀴 맴돌더니 초막뒤쪽의 소나무에 내려 앉았다.

    백령자!

    석주가 학을 발견하고 반갑게 소리쳤다.

    백령자는 학의 이름이다.

    벽운 선생이 그 이름을 붙여주었다.

    백령자도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있다..벽운선생의 제자들 중에서

    백령자의 도가 가장 높다.            

  • 프란치스코, 사나운 늑대를 순한 양으로 만들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년에 아씨시 북쪽의 구비오라는 마을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구비오에는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해치는 거대한 늑대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를 잡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실패했고 도리어 늑대의 공격을 받아 희생된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성밖을 나갈 때는 혼자 나가지 못했고 반드시 무장을 했습니다. 늑대가 성을 포위한 형국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 얘기를 듣고 늑대를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구비오 주민들은 늑대가 성인을 해칠까 걱정해 만류했지만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성을 나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을 주민 몇몇이 멀찍이서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무런 동요 없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가니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십자 성호를 긋고 자신에게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천천히 프란치스코에게 다가와 엎드렸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늑대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늑대 형제님, 당신은 이 도시에 너무 많은 피해를 입혔고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허락없이 하느님의 피조물을 죽였습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까지 해쳤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늑대 형제님, 나는 형제님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형제님이 더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과거 모든 죄를 용서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나 개도 형제님을 더 이상 쫓지 않을 것입니다.”

     

    늑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에 승복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숙이고 성인이 내민 손에 앞발을 올리고 맹세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늑대를 데리고 구비오 성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광장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늑대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중재를 했습니다. 이미 늑대는 사람들이 기르는 개나 마찬가지로 순한 모습으로 바뀐 상태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주민들에게는 늑대는 그동안 배가 고파서 가축을 해치고 사람들을 공격했으니 주민들은 늑대에게 정기적으로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대신 늑대는 더 이상 가축이나 사람들을 해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안에 사는 개들에게도 늑대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성인은 늑대는 물론이고 성안의 모든 존재를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구비오 마을에서는 더 이상 늑대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늑대는 성안에서 평화롭게 살다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늑대가 마을을 다닐 때마다 그로부터 풍겨나오는 평화로운 기운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애로움이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가 사실이었다고 믿습니다. 비슷한 얘기가 더러 전해오기 때문입니다. 더욱 믿는 것은 성경 이사야서 11장에 적힌 평화의 나라를 묘사한 구절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장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뜻도,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이런 평화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호랑이도 따른 정암 스님, 무소유 자비행 한평생

    

    조선시대 정암스님(1738~1794)은 무상의 자비심을 실천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동사열전>의 ‘정암선사전’에는 그의 보시행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암스님 이름의 ‘정’(晶)은 ‘맑다’ ‘밝다’ ‘빛나다’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청정한 마음으로 무소유를 실천하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9세부터 미황사에 있는 재심스님의 손에서 자란 스님은 16세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20세 때부터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깨달음을 구했고 송파 스님과 연담 스님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30세에 송파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스님에게는 유난히 학문을 배우겠다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기록에는 제자가 구름처럼 안개처럼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설법을 하면서도 마음은 오로지 곤궁한 대중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정작 자신은 늘 찌그러진 모자에 해진 옷을 입고 다니고 팔꿈치가 보이기 일쑤여서, 춥고 배고픈 거지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친척이나 제자들이 비단옷을 선물하면 밖으로 나가서 헌 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시봉하는 스님이 이유를 물어보면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에게 벗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절에 거지가 찾아왔습니다.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더덕더덕 때가 낀 몸에 너무 오래 입어 시커멓게 미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거지의 몸에 이가 많은 것을 보고 문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그 꼴을 하고는 절에 발을 들여놓다니, 어서 썩 나가거라!”

     

    마침 외출했다가 돌아오던 정암스님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얼른 그 걸인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잘 먹인 후에 밤이 되자 함께 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스님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스님에게 아쉬운 형편을 말하면 누구에게나 즉시 내어주므로 스님의 옷 궤짝에는 남은 옷이 없고,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면 몽땅 내주어 항아리에는 남아나는 곡식이 없었습니다. 스님이 오히려 끼니를 굶을 지경이라는 소식을 듣고, 거지들 수십 명이 시장에 모여 약속하였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든지 정암스님이 계시는 방에 가서 곡식을 얻어 오면, 우리가 다 같이 그를 쫓아내고 우리 축에 끼지 못하게 하자.”

     

    날이 저물어 정암스님이 산사로 돌아오는데 숲속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와 스님의 옷자락을 발로 거머잡고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가 집주인을 반갑게 맞이하듯 하였습니다.

     

    “이 녀석아, 길을 비키거라.”

     

    스님이 지팡이를 휘둘러 쫓아오지 못하게 했지만, 호랑이는 계속 스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서 돌아가거라, 사람들이 놀라겠구나.”

     

    호랑이는 절 문 앞에 이르러서야 꼬리를 흔들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암스님 비문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은 추워 떨면서도 남을 입히시고

    당신은 배고파도 남을 먹이셨네.

    맹수도 순종하고 걸인들도 자비심을 내었거늘

    아아, 편한 길 제쳐두고 험한 길 가시었네.

  • 진표율사(2) - 부처님 친견 서원을 이루다

    간절한 소원은 3년이 지나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가 많아서라고 생각하여 나중에는 먹고 자는 것조차 거르고 정진하였지만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 깊게 참회한다고 스스로 바위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돌로 자신의 몸을 쳐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래도 미륵부처님을 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참회하며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괴로워하던 진표율사는 미련 없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온몸을 날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날아와 진표율사를 감싸 안고 절벽 위로 솟구치더니 우금 바위 밑에 올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진표율사는 미륵부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며 마음을 남김없이 텅 비웠습니다. 온갖 욕망과 바라는 마음까지 비우고 나니 그 자리가 오롯이 기쁨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표율사의 천안통이 열려 하늘이 환해지더니 찬란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존재들이 나타났습니다. 미륵부처님과 보살들 그리고 도솔천에 머무는 성자들이었습니다. 감격하며 절을 올리는 진표에게 미륵부처님이 다가왔습니다.

     

    “장차 내가 이 세상에 내려와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할 것이다. 너는 이 소식을 널리 전하여라. 그리고 속리산에 성스러운 도량 터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서 후세 사람에게 알리도록 해라.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뼈이다. 너는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 법을 전하고, 나루터와 뗏목의 역할을 하여 무명(無明)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여 사람들을 건너게 하여라.”

     

    진표율사는 미륵부처님을 친견하고 금산사로 돌아갔습니다.

     

    〈고승전〉에는 “이때 진표 스님이 산에서 내려오자 남녀 대중들이 그가 지나는 길에 옷을 벗어 진창길을 덮고, 길에 자리를 깔고 펴서 밟고 지나가게 하니... 진표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정성스레 밟고 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명상의 시작과 끝, 믿음

    명상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믿음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명상의 목적은 다양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사는 누구가 아닌 진짜 ‘나’ 말입니다.

    물론 명상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안에 불성이, 부처의 씨앗이 있다고 하지요.

    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입니다.

    반야심경의 구절처럼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구 부정한 존재이지요.

    요가에서는 이를 진아라고 합니다.

    선도에서는 참나, 하늘사람, 진인, 금선 등으로 불렸구요.

    제가 아는 목사님 말씀으로는 기독교에서도 우리 안에 우리의 참모습이 있는데 이를 그리스도라 부른다고 합니다.

     

    종교나 수행 문파는 다르지만 우리 안에 ‘진짜 나’가 있다는 가르침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자들과 성현들이 이를 체험하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상을 금빛으로 단장합니다.

    금이 귀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참나’가 금빛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화에도 성인들 주변에 황금빛 오라가 보입니다.

    요가에서는 이를 ‘황금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명상은 마음 근육을 단련시키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그 시작은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지구를 다녀간 성인들이 설마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셨겠습니까?

    매일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아니면 틈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말씀해주세요.

     

    내 안에 ‘참나’가 있다. 나는 오늘 ‘참나’로 살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삶을 살 것이다.

    내 안에 부처가 있다. 내가 부처다. 나는 오늘부터 부처로 살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됩니다.

     

    명상의 시작은 이런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이 확고하면 굳이 명상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에 따라 그저 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 이집트의 은수자 마카리우스 (3)

    마카리우스 성인의 가르침은 영적인 삶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가 남긴 가르침 가운데 50가지가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일부를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그로 하여금 울며 돌아와 회개하게 하려 하십니다. 만일 타락한 사람에게 은혜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로 하여금 보다 더 확실하게 이전의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표적은 사람들의 주목을 힘껏 피하면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으려 하며, 비록 왕의 보물을 맡았을지라도 그것을 감추고,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맡긴 것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가져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도 죄악의 깊은 바다와 정욕으로 어두워진 악한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바다를 혼자서 무사히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는 가볍고 천상적인 날개가 달린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모든 악한 것을 지나고 통과하여 좁고 올바른 과정을 밟아 하늘의 안식의 항구, 즉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만이 주님의 뜻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성령 안에서 완전케 되고 성령 자신도 우리 안에서 완전케 되어 우리가 죄의 모든 더러움과 허물이 없이 깨끗해진 후,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순결한 신부처럼 깨끗하고 허물이 없이 그리스도께 인도할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영원히 안식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도 처소로 들어갈 때만 아니라 길을 갈 때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하나님께 대해 성실한 애정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과 속사람에 관한 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으며” 그곳에서 활동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육신의 눈이 맑으면 언제나 태양을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완전히 정결케 된 마음의 눈은 항상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광채를 바라보며, 신성과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항상 성령과 함께 거하시듯 밤낮으로 주님과 함께 거합니다.

     

    (끝)

  • 이집트의 은수자 마카리우스 (2)

    마카리우스는 마을 사람이 용서를 빌기 위해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도망쳐 마을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막에서 마카리우스는 은수자로 자신을 온전히 버리는 삶을 이어갑니다. 악마는 이런 수도자를 넘어 뜨리려 온갖 술수를 부린다고 합니다.

     

    악마의 방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마카리우스가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악마는 마카리우스가 지나갈 때 낫을 들고 달려들어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마카리우스는 불평도 대꾸도 않고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갔다고 합니다.

     

    악마는 그 뒤 마카리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너를 도저히 넘어뜨릴 수 없으니 말이다. 네가 하는 일이라면 나도 다 할 수 있다. 금식하면 나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으면 나도 자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네가 날 앞서는 게 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널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카리우스는 악마에게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악마는 "너는 스스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내가 너를 당할 수 없게 만드는 게 바로 겸손”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마카리우스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겸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수련은 우리 마음의 모든 영역을 성령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일인데 그를 위해서는 겸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겸손은 교만에서 벗어나게 해줘 우리 마음에서 성령의 영토를 넓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가 너무 수척하다고 뒤에서 수근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마카리우스는 "가시나무를 불태우느라 이리저리 쓰이는 지팡이는 늘 불에 그을립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심령을 연단할 때 경외심은 사람의 뼈까지도 수척하게 만듭니다. 그건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카리우스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지만 몇 가지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하루는 마카리우스가 아토스의 성인으로 불리는 안토니오가 사는 동굴로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니 "누구세요?"라는 말만 들리고 기척이 없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안토니오가 끈을 만드는 재료를 들고 나왔습니다. 일을 돕겠다고 하자 안토니오는 “마음대로 하시구려”라고 승낙합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말없이 끈을 엮어 문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저 일과 하나가 되고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듯이 시간을 잊고 일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안토니오 성인이 동굴에서 내려가 보니 끈이 큰 무더기로 쌓여 있었습니다. 안토니오는 몹시 감탄하여 두 손에 입을 맞추며 "그 훌륭한 덕행이 바로 이 손에서 나온 것이군요"라고 칭송했습니다

     

    어느 날 도적이 마카리우스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순례자인 척하고 도둑을 도와서 수레에 모든 것을 실어 주었습니다 배웅해 주면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여호와의 이름만을 찬미하리이다"하고 말하며 기쁘게 보내주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홀로 동굴에서 기도하다가 앉아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저 온 곳으로 돌아갈 때에는 밝아진 영혼만을 가지고 연처럼 홀연히 떠나는 길입니다 마카리우스 성인처럼 말입니다.

    

  • 이집트의 은수자 마카리우스 (1)

    마카리우스는 이집트의 기독교 수사이자 은수자입니다. ‘사막의 등불’로 불리는 분입니다.

     

    이집트의 시골에서 태어난 마카리우스는 어린 시절 목동으로 가축을 돌보며 지냈습니다. ‘직업’의 특성상 혼자 고독하게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래서인지 마카리우스는 말과 행동이 범상치 않았다고 합니다. 친구들은 그런 그를 노인의 지혜를 부여받은 청년(파이다리오게론)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했지만 영적 삶에 대한 동경이 컸던 것 같습니다.

     

    아내가 젊은 나이에 죽고 부모도 세상을 떠나자 그는 전 재산을 주위에 나눠주고 성 안토니우스의 지도를 받으며 구도의 길에 들어섭니다.

     

    수도자가 됐지만 그는 성직을 받고 싶지 않아 나일강 부근의 어느 섬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그곳에서 돗자리와 바구니를 짜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낯선 지방에서 머무는 중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마을의 처녀가 임신을 한 것입니다. 그녀는 두려운 나머지 아기 아버지가 마카리우스라고 말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격분하여 몰려왔습니다. 마카리우스를 끌고 그의 목에 솥을 매달았습니다. 마을 골목골목을 다니며 솥을 두드리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놈이 우리 마을의 깨끗한 처녀를 더럽혔습니다. 이놈을 마을에서 내쫓아 버립시다"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들어 마카리우스를 때리며 모욕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됐지만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을의 원로가 지나다가 마을 사람들의 행동을 가로막고 나섰습니다. "이 수도자를 죽일 작정이오?" 처녀의 친척들은 "우리 딸을 데려다가 먹이고 책임진다면 놓아 주겠소"라고 외쳤습니다

     

    마카리우스는 원로에게 간청하여 어르신께서 보증을 서 주면 그러겠노라고 말하였습니다. 원로의 중재로 간신히 풀려난 마카리우스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그동안 짜놓은 바구니를 전부 주면서 팔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뜻하지 않게 부인이 생겼으니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도 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그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바구니 판돈을 모아 ‘처가’에 꼬박꼬박 전했습니다.

     

    처녀는 해산할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이나 진통을 해도 아기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의 걱정은 태산 같았습니다.

     

    이 때 그 여인이 고백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래도록 진통이 지속되는 이유는 저 때문입니다. 제기 죄 없는 은수자를 중상모략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뒷집 청년입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을 하자 거짓말처럼 아이가 머리를 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이 처녀의 고백을 들은 원로는 마카리우스에게 달려가 기쁨으로 말했습니다

     

    "친척과 마을 사람들이 당신께 오고 있습니다. 잘못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