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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여인이 부처님에게 바친 선물

    시내 곳곳에 부처님 오신 날을 기리는 알록달록한 연등이 걸렸습니다. 해가 지면 밤거리에 화사한 꽃등이 피지요.

     

    공연히 마음이 설렙니다. 두근두근, 거리의 꽃등을 따라 하염없이 가고 싶어집니다. 그 길의 끝에 서면, 조금 더 마음 가난해져서 오롯이 정성과 공경으로 부처님께 공양 올렸던 난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사위성의 가난한 여인이었던 난타의 이야기는 비교적 널리 퍼져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셨을 때, 당시 사위성에는 문전걸식을 하는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머물며 법을 설하고자 오셨습니다. 온 성안이 부처님을 맞이할 준비로 떠들썩했지요. 그 모습을 보고 난타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요? 성안이 마치 축제라도 여는 듯 흥성거리네요.”

     

    “왕이 석 달 동안 부처님과 출가자들께 옷과 음식, 침구와 약을 공양하고 오늘 밤에는 수만 개의 등에 불을 밝혀 연등회를 연다고 해요. 그래서 성 안이 이렇게 북적거리는 거예요.”

     

    난타는 그 말을 듣고 스스로 한탄하며 생각하였습니다.

     

    “왕은 저렇게 복덕을 짓는데, 나는 가난하여 아무것도 할 것이 없구나….”

     

    그러나 난타는 슬퍼하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겠다고 결심하고 온종일 구걸하여 동전 두 닢을 얻었습니다. 난타는 기쁨에 들떠 곧장 기름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주인어른, 저에게도 기름을 주세요.”

     

    수줍은 듯 내민 난타의 손에 올려 있는 동전을 보고 기름집 주인이 물었습니다.

     

    “그 돈어치 기름을 사서 도대체 무엇에 쓰려고 하오?”

     

    “살면서 부처님을 만나 뵈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요. 저는 가난하여 부처님께 올릴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하루 종일 애를 써서 겨우 이 동전 두 닢을 얻었을 뿐이지요. 하지만 이 돈으로 기름을 사서 저도 부처님께 등 공양을 올리고 싶어요. 공양을 올리며 저도 기원하렵니다. 다음 생에서는 저도 구걸하는 가난에서 벗어나 부처님 법을 닦는 수행자가 되리라, 라고요.”

     

    “난타야, 너의 마음이 참으로 갸륵하고도 아름답구나. 내 너의 말을 들으니 덩달아 기쁘다. 내 너에게 기름을 두 배로 주겠다. 이 기름으로 불을 밝혀 온 세상을 부처님 법으로 환하게 비춰다오.”

     

    이렇게 사위성에서 가장 가난한 여인 난타도 부처님께 올리는 등불을 켜서 세상을 밝히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깊었습니다. 기원정사의 숲을 밝히던 등불들도 기름이 다 떨어져 하나 둘 그 빛을 잃어갔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난타가 밝힌 등불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환하게 타올랐습니다. 부처님을 곁에서 시중들던 아난존자가 아무리 그 등불을 끄려 해도 끌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조용히 이릅니다.

     

    “그만두어라, 아난아. 그 등불은 한 가난한 여인이 지극한 정성으로 밝힌 것이어서 너의 힘으로 그 불을 끌 수 없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그 여인은 마침내 깨달음을 이루어 부처가 될 것이다.”

  • 베네딕토 성인 (3) - 독살 위기를 면하게 한 기적

    베네딕토 성인은 독수자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성인이 머물던 지역에 있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찾아와 전임 수도원장이 선종했다며 후임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성인은 거절했지만 수도자들이 거듭거듭 요청하자 마침내 그 자리를 수락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장이 되어 흐트러진 규율을 다시 세우고 올바른 수도자로서의 삶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유분방한 삶에 물들어버린 그들은 성인의 엄격한 규율에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모셔온 수도원장을 쫓아내기가 어렵자 이들은 성인을 독살하기 위해 포도주에 독을 탔습니다. 성인이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축복 기도를 하기 위해 성호를 긋자 그 잔이 그 자리에서 깨져 버렸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상황을 짐작하고 미련 없이 수도원을 떠나 수비아코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성인은 자신을 죽이려 한 이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을 떠나기에 앞서 하느님께 그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성인이 수도원을 떠날 때 그를 따르던 수도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성인과 수도자들은 수비아코 근처에 작은 수도원들을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성인은 수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한 본당 사제가 성인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인이 이끄는 수도자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빵에 독을 넣어 성인에게 바쳤습니다. 평소 성인은 빵을 먹을 때 까마귀에게 부스러기를 던져주곤 했는데 그날 성인이 빵을 먹으려 하자 까마귀가 나타나 빵을 물어다 버렸습니다.

     

    그 사제는 성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쉽지 않자 생각을 바꿔 성인을 따르던 수도자들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아리따운 여성들을 수도원에 보내 수도자들을 유혹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그를 따르던 수도자들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가꿔온 수도 공동체를 미련 없이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도원별로 책임을 나눠 맡긴 베네딕토 성인이 그곳을 떠나던 날이었습니다. 성인을 괴롭히던 사제는 자신의 처소 발코니에서 성인이 떠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그가 서 있던 발코니가 무너져 그 사제는 돌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수도자가 기뻐하며 성인에게 이를 알렸지만 성인은 그의 마음 또한 세상을 떠난 사제와 별반 다름없음을 한탄하며 그를 엄히 꾸짖고 속죄하도록 했습니다.

  • 아웃도어기업 파타고니아의 놀라운 선언

    친환경 기업인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유해하지 않은 제품을 고집하고,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액의 1%를 환경보호에 쓰는 '1% FOR THE PLANET'을 실천하는 기업이다. [이미지 :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친환경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사명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변경했습니다.

     

    미국 3대 아웃도어 회사로 꼽히는 파타고니아는 환경에 유해하지 않은 제품을 고집하고 적자가 나더라도 매출액의 1%를 환경보호에 쓰는 기업입니다.

     

    파타고니아가 사명선언문을 변경한 것은 1991년 이를 만든 지 27년 만입니다.

     

    1991년 파타고니아는 비즈니스를 이용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내용의 사명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 세상에 불필요한 피해를 유발하지 않는다. 환경 위기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결 방안을 실행하기 위해 사업을 이용한다”

     

    그 뒤 파타고니아는 사명선언문 대로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직접 수행하거나 지원해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파타고니아는 자신들의 임무를 좀 더 명확하게 규정하는 사명선언문을 만들었습니다. 기존의 사명선언문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해서입니다.

     

    “파타고니아는 고향별 지구를 구하기 위해 사업을 합니다(Patagonia is in business to save our home planet)”

     

    파타고니아를 만든 이본 쉬나드 회장은 ‘죽은 지구에서는 어떤 사업도 할 수 없다’는 데이비드 브로우어의 말을 인용하며 환경 위기의 심각함과 절박함, 그리고 시급함을 표현하기 위해 사명선언문을 좀 더 날카롭게 다듬어야 했다고 변경 이유를 밝혔다고 합니다.

     

    [[IMAGE|401|center|파타고니아의 창립자 이본 쉬나드 회장. [이미지 : 파타고니아 홈페이지] ]] 

     

    쉬나드 회장은 직원들에게 새로운 사명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고 합니다. 파타고니아는 직원을 채용할 때도 이를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습니다. 심지어 광고를 위해 협력하는 파트너들을 고를 때도 이 원칙이 적용됩니다.

     

    파타고니아는 2025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한 만큼 이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100% 탄소중립기업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사명선언문 변경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구촌의 모든 기업들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며 “파타고니아가 내딛는 첫걸음이 많은 기업들에게 영감을 주고, 나아가 지구를 되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이끌어 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 정학 대신 명상, 그 놀라운 결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로버트 W 콜먼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명상을 시킨다. [이미지 : EducateInspireChangeTV 유튜브 캡처]

    학생이 말썽을 피우면 징계를 합니다. 교실 밖에 세워두거나 봉사활동을 시키고 심하면 정학 또는 퇴학을 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선택을 하는 학교들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로버트 W 콜먼 초등학교에서는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명상을 시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바뀌냐고요? 물론입니다. 그것도 놀랍게요. 지난해 명상을 도입한 뒤 지금까지 이 학교에서는 정학 조치를 당한 학생이 한 명도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이 학교 근처에 있는 패터슨 파크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을 도입했는데 역시 정학 조치를 받는 학생 수가 줄어들고 출석률이 높아졌다고 합니다.  

     

    홀리스틱 라이프 재단이 지역 자선단체와 함께 만든 이 프로그램에 따르면 말썽을 일으킨 학생들은 정학 대신 ‘마음챙김방(Mindful moment room)’으로 가서 명상을 합니다.  

     

    [[IMAGE|397|center|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의 로버트 W 콜먼 초등학교에서는 방과 후에 ‘완전한 나(Holistic Me)’라는 마음챙김 운동법과 요가 등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지 : EducateInspireChangeTV 유튜브 캡처] ]]

     

    명상만 하지는 않습니다. 이 학교는 방과 후에 ‘완전한 나(Holistic Me)’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5학년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프로그램으로 마음을 챙기면서 하는 운동법과 요가 등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명상을 안내하는 커크 필립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아이들이 침묵 속에서 명상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아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명상을 잘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필립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에 앞서 명상을 했던 예를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선물 꾸러미를 앞에 뒀을 때는 흥분하기 마련입니다.  

     

    “어린아이가 선물이 든 가방을 앞에 두고 고요히 앉아 명상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아이들이 그렇게 했어요. 우리 모두 그 장면을 보면서 미소 지었습니다.”

  • 선한 마음과 200톤의 순무가 낳은 기적

    선한 마음이 기적을 낳았습니다.

     

    중국 베이징청년보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에 사는 탕 샤오룽씨는 혈우병으로 입원 중인 두 살배기 아들에게 먹을 것을 사러 가다 지갑을 하나 주웠습니다.

     

    지갑 안에는 2만 위안(약 336만 원)의 현금과 은행 카드, 운전면허증 그리고 명함이 들어 있었습니다.

     

    탕씨는 처음에 지갑을 주운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이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탕씨의 아들은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만 40만 위안(6739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친척들로부터 빌린 12만 위안을 포함해 20만 원을 냈지만 아직도 20만 위안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꿔 먹었습니다. 병원 주변에서 발견한 지갑 안의 돈이 자신처럼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료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탕씨는 지갑에 든 명함을 보고 채소상인 딩 이롱씨를 찾아가 지갑을 돌려줬습니다. 딩씨가 보답을 하고자 했지만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줬을 뿐인데 그만한 일로 대가를 받을 수는 없다고 거절하고 SNS를 통해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나중에 딩씨는 SNS를 통해 탕씨가 아이의 골수이식 수술을 위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딩씨는 그를 돕고 싶었지만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현금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창고에 쌓여 있는 200톤의 순무를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딩씨는 “우리 두 사람이 순무를 함께 팔면 탕씨 아들을 위한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언론에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가 산둥 지역 언론에 알려지자 사흘 만에 순무가 모두 팔려나갔고 50만 위안이 생겼습니다. 골수이식 수술비와 친척으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골수이식 수술은 한 달 안에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MAGE|387|center|탕 샤오룽과 혈우병으로 입원 중인 그의 두 살배기 아들. [이미지 : Handout] ]]

  • 학습장애 아이를 바꾼 선생님의 한마디

    레스 브라운은 오하이오 주 하원 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It's Possible!"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유명한 동기부여 연사이기도 하다. [이미지 : 레스 브라운 페이스북]

    레스 브라운은 생전에 자기개발과 동기부여 분야에서 이름난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작가이면서 라디오 DJ를 했었고 레스브라운쇼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삶은 불행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주 리버티시의 버려진 건물 바닥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뿐 아니라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에게는 ‘교육적 정신장애자’라는 딱지가 붙었고 6학년에서 5학년으로 강등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쌍둥이 동생은 너무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 다른 학생들은 레스를 ‘멍청한 쌍둥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한 선생님이 레스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레스에게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을 때 레스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님이 “넌 할 수 있어”라고 격려했지만 레스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레스의 그런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교탁 뒤에서 걸어 나와 레스와 눈을 맞추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레스, 너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현실로 만들 필요는 없단다”

     

    그 한 마디가 어린 레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바보, 학습장애자 등 자신을 향한 친구들의 놀림은 그들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레스는 변했습니다. 평생 그 말을 잊지 않고 온갖 역경을 딛고 노력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강사가 됐습니다.

     

    레스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위대함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힘들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여행이라고 믿지만 우리 모두는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 인분 덕에 250명을 고용한 기업

    새너지(Sanergy)의 퇴비를 들고 있는 직원의 모습. [이미지 : 새너지 공식 홈페이지]

    우리 조상들은 똥을 거름으로 썼습니다. 

     

    지금도 친환경 농사를 짓는 농민 가운데 재래식 화장실을 짓고 거기서 나오는 인분으로 거름을 만들어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케냐에도 인분을 재활용해 퇴비를 만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새너지(Sanergy)라는 이름의 회사는 빈민가에 화장실을 짓고 거기서 나오는 인분으로 퇴비를 만들어 팝니다. 

     

    새너지는 2011년부터 지금까지 800여 개의 공중 화장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매일 나오는 10톤가량의 인분을 모아 공장으로 갖고 갑니다. 여기에 식물성 재료와 미생물을 넣어 6개월 동안  숙성 시키면 퇴비가 됩니다. 우리나라 예전에 시골에서 인분에 낙엽이나 부엽토를 넣어 ‘발효’시키는 것과 비슷합니다.  

     

    새너지가 인분을 퇴비로 만드는 사업을 시작한 것은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새너지의 설립자인 데이비드 아우레르바흐, 린제이 스트레들리, 아니 발라바네니 세 사람은 2009년 미국 MIT에서 10억 명의 사람들이 겪고 있는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상 국가와 도시에서 작동할 수 있는, 그곳 사람들의 경험을 활용한다는 원칙 아래 고민을 거듭하다 도시 빈민가의 위생 문제를 해결하면서 빈곤 문제에도 대처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안으로 화장실 개선 사업을 생각해냈습니다. 새너지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실제 가난한 나라나 지역의 화장실 문제는 심각합니다. 세계 인구의 30%를 훨씬 넘는 25억 명이 위생상태가 좋지 않은 화장실을 쓰고 있습니다. 길에다 대소변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고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화장실이 없어 비닐봉지에 대변을 받아 버리기도 한다고 합니다. 

     

    2011년 11월 19일 세계 화장실의 날에 새너지는 케냐 무쿠르 콰응가 빈민지역에 프레시 라이프(Fresh Life)라는 브랜드의 파란색 간이 화장실을 내면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새너지의 인분 퇴비화 사업은 괄목할 성장을 이뤘습니다. 현재 새너지가 만들어 비치한 파란색 화장실은 하루에 9만 명이 이용합니다. 그를 통해 새너지가 지난해 모은 인분은 6000톤이고 그를 통해 만들어진 퇴비는 유기농 농사에 쓰여 농작물 생산을 30%나 늘렸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새너지회사에는 지금 250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직원의 60%는 화장실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지역 주민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새너지의 공동창업자인 린제이 스트레들리는 TED 강연에서 “새너지의 방식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며 도시화와 물 부족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에 대처하기 위해 새로운 위생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시급한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 인터넷 서비스 기사의 친절이 준 감동

    한 인터넷 서비스 기사의 친절한 행동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 픽사베이]

    캘리포니아 남부에 사는 한 간호사가 인터넷 관리회사 대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는 제시카 도나후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수리기사의 친절에 감동한 내용을 글로 쓰고 그 기사가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다음은 도나후가 올린 글 내용입니다.

     

    "스펙트럼 인터넷사 귀하

     

    오늘 인터넷 기술자 로버트가 집에 와서 인터넷을 업그레이드하고 TV 스트리밍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그는 엉망진창인 우리 집에 왔습니다. 세 살배기 아들인 세일러는 뇌에 문제가 있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할 줄도 모르지요.

     

    오늘은 세일러가 기분이 좋지 않은지 아침 내내 울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일하는 동안 우는 아들을 달래고 두 살배기 딸을 돌보면서 청소, 설거지, 세탁 등을 해야 했지요.

     

    로버트가 방문하자 세일러는 그에게 달려가 안겼습니다. 로버트는 귀찮아하는 대신 집안에 머물던 45분 동안 세일러를 안아줬습니다. 로버트는 제가 빨래를 개는 동안 제 아들을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피곤에 절은 엄마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줬습니다.

     

    로버트는 잽싸게 자신이 할 일만 하고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고객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을 알자 도움을 줬습니다.

     

    로버트의 행동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훨씬 넘어서는 최고의 인간애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로버트는 칭찬을 받아 마땅하고 승진이나 어떤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는 귀사의 훌륭한 일꾼입니다. 저는 오늘 그가 보여준 친절한 행동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도나후가 올린 글은 SNS를 통해 퍼져나가 스펙트럼사의 부회장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 역시 장애를 가진 자녀가 있어서 도나후의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텍트럼사는 “우리도 로버트가 무척 자랑스럽다. 그에게 반드시 보상을 하겠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준 제시카씨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밝혔습니다.

     

    로버트 키드니는 네 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대디로 9년 동안 스펙트럼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IMAGE|375|center|제시카는 인터넷 수리기사 로버트가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는 사진과 함께 사연을 SNS에 업로드했다. 로버트의 친절함은 SNS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상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미지 : 제시카 도나후 페이스북] ]]

  • 1000번의 감사를 위해 세계를 누빈 작가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의 저자로 유명한 에이제이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 TED 캡처]

    미국 작가인 A. J.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 아이들에게도 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북돋워 줬습니다. 그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감사 노트를 쓰게 하기도 했습니다. 버스 운전사는 물론이고 날씨를 알려주는 인공지능 로봇 알렉사에게도 말이지요. 

     

    추수감사절에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식탁에 오른 음식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제인이 제이콥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감사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아세요? 아빠가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직접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이콥스는 아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이 작가는 모닝커피를 마시도록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감사 인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제이콥스가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을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할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관여된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동네 커피점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대상으로 시작한 감사 인사는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동네 커피가게의 바리스타, 원두커피 판매자, 원두커피가 담긴 포장지를 만든 사람, 원두커피를 싣고 온 운전기사, 원두커피를 실은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도로를 만들어 준 사람 등등. 

     

    그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 컵의 뚜껑을 발명한 더그 플레밍이라는 발명가에도 연락을 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가 매일 마시는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었고 그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도로의 중앙선을 그어준 사람도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는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남미의 콜롬비아에까지 찾아갔습니다. 자신을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벼랑길을 운전하는 기사에게도 당연히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이콥을 텔레마케터나 다단계판매원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감사 인사를 받고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제이콥스는 이 프로젝트에 ‘천 명에 감사하기(Thanks a thousan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국 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상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연결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 부정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심굴 궂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사 여행을 하면서 그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감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3세계의 식수 문제 해결을 돕는 단체를 알게 되어 후원도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결과는 감사하면 삶이 여유롭고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행동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 100세 봉사 꿈꾸는 93세 의사 한원주

    매그너스 요양병원의 한원주 내과 과장(93). [이미지 : 극동방송TV 유튜브 캡처]

    내과 의사 한원주(93) 선생님이 오랜 기간 의술을 베풀면서 얻은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100세 현역’을 꿈꾸는 한 선생님은 지금도 여느 의사처럼 환자를 진료합니다.

     

    한 선생님의 직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매그너스 요양병원. 일요일 저녁 병원으로 출근해 금요일 오후 진료를 마친 뒤 서울 자택으로 퇴근하는 게 한 선생님의 일주일입니다.

     

    이곳에서 한 선생님이 돌보는 환자는 가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생뻘 되는 ‘어린’ 분들입니다. 한 선생님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 겸손한 자세로 환자를 돌봐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손길을 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어떨 때는 함께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의사 대의(大醫)는 환자의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책임을 져 전인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의사라면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한 선생임은 1949년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려대에서 내과 박사 학위를 딴 뒤에는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전문의 자격을 따기도 했습니다.

     

    귀국한 뒤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1978년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듬해인 1979년 병원을 정리하고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 원장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 내가 배운 기술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한 선생님은 의료선교의원에서 가난한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시작했고, 1982년에는 ‘전인치유소’라는 이름의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가난이 병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난한 환자에게 생활비와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자립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한 선생님이 봉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도 컸습니다. 역시 의사였던 한 선생님의 아버지는 평생을 의료봉사에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는 82세 되던 2008년 의료선교의원 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매그너스 요양병원 내과 의사로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남은 생을 노인요양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위로만으로도 병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선생은 2017년 JW중외제약의 공익 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제5회 성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천상은 JW성천재단 창업자인 고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는 의료인에게 주는 상입니다.

     

    한 선생님의 건강 유지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진료를 마친 뒤에는 어김없이 한 시간 가량 병원 주변을 산책합니다.

     

    의사로 평생을 봉사하며 살다 세상을 떠난 알버트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베풀 수 있는지 터득한 사람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