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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자들의 시대8 - 바른 숨쉬기

    "그렇겠지."

    필섭은 아득히 먼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의 눈앞에 어떤 환상이 떠올랐다.

    벽운 선생이 수많은 중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침을 펴는 환상이었다. 스승 앞에 벌레, 풀같은 미물중생에서부터 사람까지, 온갖 중생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 무리에 끼여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초막의 풍경은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큰 축제가 끝난 뒤의 적막감과도 같은 것이 감돌았다. 간간이 들려 오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만이 깊은 고요를 깨뜨렸다.

     

    석주와필섭은 오랜만에 시장기를 느꼈다. 그들은 다시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청령자도 사냥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석주와필섭에게는 눈에 비치는 삼라만상이 모두 새롭게 다가왔다. 온갖 짐승들이 다 자기네와같은 수행자로 보였다. 짐승들만이 아니었다. 갖가지 풀과 나무들, 생명이 없는 돌과 물과 흙, 바람과구름 등도 그렇게 보였다. 만물중생이 다 함께 도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벽운 선생이 백령자를 데리고 초막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잘 닦았구나."

    벽운 선생이 제자들의 절을 받고 나서 흐뭇해 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스승님의 은덕입니다. 저희뿐 아니라 수많은 짐승들까지 큰 감화를 입었습니다."

    필섭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렸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공부를 하자. 이제 숨쉬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석주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스승을 쳐다봤다. 숨쉬는 공부라니, 숨이야 그냥 쉬는 것인데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석주야, 너는 무엇으로 숨을 쉬느냐?"

    석주의 마음을 읽고 벽운 선생이 석주에게 물었다.

     

    "코로 쉽니다."

    "공기를 마시느라 쉽니다."

    "숨은 어디로 들어가느냐?"

    "가슴으로 들어갑니다."

    벽운 선생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물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석주에겐 의외의 말씀이었다. 왜 틀렸다고 하실까. 석주는 그 이우를 궁금히 여기며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숨은 코로만 쉬는 게 아니다. 살갗으로도 쉰다. 숨쉴 때는 공기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천지의 기운도 같이 들어온다. 또 코로 숨을 쉴 때 공기는 가슴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기운은 배꼽아래 단전이라는 곳까지 들어간다. 여기가 단전이다."

    벽운 선생은 손으로 석주의 단전을 만져 주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은 모두 살갗만으로 숨을 쉰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 숨이 코로 들어온다. 그래도 살갗의 숨구멍이 많이 열려 있어 그리로도 공기가 드나든다. 그리고 코를 통해 마시는 공기는 폐까지 들어오지만, 공기와 함께 들어온 천지의 기운은 단전까지 쑥쑥 내려간다. 그래서 아기들은 숨쉴 때마다 아랫배가 불룩불룩 나온다.

    또 살갗의 구멍들을 통해서도 천지의 기운이 들어온다. 아기들은 천지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 몸이 매우 깨끗하다.

    한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온갖 번뇌에 시달리면서 살갗의 숨구멍이 조금씩 닫힌다.코로 들어오는 숨도 폐에서 멈춘다.숨을 따라 들어오는 기운이 단전까지 못 내려가게 된다.

    이때문에 어른들은 숨쉴 때 배가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

    "살갗의 구멍도 많이 닫혀 아주 적은 공기만이 드나든다. 이리하여 천지의 기운을 크게 못 받으니 자연히 몸이 탁해진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사람은 숨쉴 때 어깨가 오르내린다."

     

    석주는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숨을 살펴보았다. 숨을 쉴 때 배도 어깨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가다 말았다. 벽운 선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수행이 잘된 사람은 아기처럼 숨쉰다. 갓 태어난 아기같이 아랫배로 쉬다가, 나중엔 태아처럼 살갗만으로 숨쉴 수 있게 된다. 태아와 같이 쉬는 숨을 태식이라 부른다. 아기와 같이 숨쉬면 몸도 아기처럼 깨끗해진다. "

    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얼굴이 갓난아이 처럼 맑았기때문이었다. 혜원이도 그랬다. 

     

    "숨은 마음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의 숨은 가지런하다. 숨을 깊고 가지런하게 쉬면 마음도 따라서 고요히 가라앉는다.

    정신이 산란하고 마음이 괴로우면 숨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도는 마음 공부, 정신 공부와 함께 숨쉬는 공부를 한다. 숨은 모름지기 단전으로 쉬어야 한다. 그래야 천지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다. 또, 하늘의 진기가 몸에 가득 채워져야 하늘 사람 되는 길이 열린다."

     

    벽운 선생은 석주와 필섭에게 단전 호흡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단전이란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에 콩팥과 붙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운은 여기에 쌓였다가 온몸으로 퍼진다. 그러니까 단전은 바로 기운의 창고와 같은 것이다. 단전에 기운이 충만한 사람은 건강하다. 마음도 튼튼하다.기운이 허한 사람은 몸이 부실해진다.

    마음 역시 허약해진다. 한데 기운만 세고 마음과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단전의 기운을 나쁜 일에 쓴다. 그러다가 결국 기운이 소진되고 몸도 망가진다. 마음과 정신이 올바르나 단전이 기운이 약한 사람은 그 올바른 마음과 정신을 굳게 지키기 어렸다. 자기의 올바른 뜻을 크게 펴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수행을 바로하려면, 마음도 잘 닦고 단전의 힘도 길러야 한다.

    너희들도 한번 숨을 편안히 쉬어 보거라." 

     

    석주와 필섭이 자세를 가다듬고 숨을 쉬었다.

     

    "필섭아, 네 숨은 어디까지 내려가느냐?"

    잠시 후에 벽운 선생이 필섭에게 물었다.

     

    "아랫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꼽 윗배까지 오르내리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것은 단전 호흡이 아니다. 복식 호흡이다. 마음과 정신이 좀 들떠 있기 때문에 배꼽 위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단전 호흡은 배꼽 아래로만 내려가는 숨이다."

    "석주는 어떻더냐?"

    "숨이 배꼽 근처까지 밖에 안 내려갔습니다."

    "네 마음과 정신이 아직도 위축돼서 그렇다.오늘부터 단전으로 숨쉬는 공부를 하자.

    둘 다 바닥에 편안히 눕거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앞에서 벌렁 눕기가 죄스러워 좀 머뭇거렸다.

    "괜찮다. 어서 누워라."

    둘은 스승의 재촉을 받고서야 조심스레 나란히 누웠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의 두 손을 단전 부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일렀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안히 갖거라. 천지 우주 삼라만상과 너희가 한몸이라 여겨라. 또, 선정 공부를 할 때처럼 정신을 텅 비우거라. 그런 다음에 마음의 눈으로 단전을 바라보아라. 정신을 오로지 단전에만 집중시켜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의 가르침의 따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정신도 맑게 비웠다. 마음에는 아늑한 평화가 깃들였고, 정신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자, 숨을 아주 천천히 깊게 쉬어라."

    필섭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힘이 장사인 만큼 폐활량도 컸기 때문에 임신한 여인처럼 배가 불룩했다. 그런데 배꼽 위까지 올라왔다.

    "필섭아, 배꼽 아래로만 쉬어라. 그래야 좋은 기운이 단전에 잘 모인다."

    벽운 선생이 필섭의 호흡을 교정해 주었다.

    석주의 배는 그리 높게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이 이른 대로 배꼽 아래만 천천히 움직였다. 폐활량은 적지만 마음이 잘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열흘 동안 단전 호흡만 하도록 시켰다. 열흘쯤 되자 숨이 제대로 단전까지 내려갔다. 앉아서도 서서도 단전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전 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몸푸는 도인 체조를 배웠다. 여러가지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법도 익혔다. 혜원이 체조 동작과 행공 자세를 먼저 시범으로 보여 주면, 두 사람이 그대로 따라서 했다. 체조와 행공 자세가 몸에 배는 데 또 며칠이 걸렸다. 이것들을 가르치며 벽운 선생이 이런 얘길 했다.

    "이 체조와 행공 자세는 마디마디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동작을 제대로 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관절이 다 풀린다. 또, 단전을 키워 주고 온몸에 기운을 보내 몸을 아주 튼튼하게 만든다. 몸이 풀리면 숨쉬기가 편하다. 반대로 몸이 굳어 있으면 숨이 잘 막힌다.

    몸이 굳었을 때 숨을 단까지 끌어 내리려면 힘이 들어간다. 단전 호흡하면서 무리하게 힘을 들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숨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마음 또한 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몸이 무거우면 정신도 마음도 어두워지기 쉽고, 몸에 힘이 넘치면 마음 역시 가뿐해진다. 이 때문에 우리의 도는 몸 공부 마음 공부 정신 공부 숨 공부를 같이하는 것이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단전 호흡 수련을 부지런히 하라 이르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 제자들은 스승이 어디를 가는지 아무도 물랐다. 묻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백령자가 벽운 선생을 따라갔다.

    석주와 필섭은 하루에 세 번씩 벽운 선생이 가르쳐 준 행공법을 수련했다. 또 나머지 시간에는 틈틈이 선정을 닦으며 단전 호흡을 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체조로 몸을 풀고 나면 숨쉬기가 한결 더 편해졌다. 또,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취하고 단전 호흡을 하고 나면 아랫배가 든든했다. 전신에 기운이 차오른 느낌도 들었다.

    청령자는 여전히 초막에서 지냈다. 전과 다름없이 하루에 한번씩 사냥을 나갔다. 그 외의 시간은 초막 주변에서 보냈다.

     

    그런데 석주와 필섭이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배울 무렵부터 청령자도 특이한 몸짓을 자주 했다. 소나무 위나 땅바닥에서 여러 가지 날갯짓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했다. 날갯짓이나 비트는 동작 모두 다양했고, 언제나 그 순서가 똑같았다. 파란 풀밭이나 소나무 위에서 하얀 학이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루는 석주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혜원에게 물었다.

    "도제, 청령자가 왜 저러지? 날아오르지도 않으면서 자꾸 날개를 파닥이네. 이상한 날갯짓도 많이 하고. 날기 연습을 할 리도 없을 텐데. 몸은 또 왜 자꾸 비틀어댈까. 그리고 똑같은 순서대로 되풀이하네."

    "청령자도 도형들처럼 행공을 하는 거예요. 청령자의 동작은 도형들이 하는 도인 체조나 행공 자세와 마찬가지예요."

    "그래? 희한하구먼.  그 행공법은 백령자가 가르쳐 줬나 보지?"

    "맞아요. 그렇지만 백령자한테 행공법을 가르쳐 준 분은 우리 스승님이세요."

    "아, 그랬었구먼. 그런데 도제, 학도 단전이 있어? 단전으로 숨을 쉴 수 있나?"

    "그럼요. 짐승들도 다 단전이 있어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전 호흡도 하고요. 짐승들은 번뇌가 적으니까 더 잘할 수도 있을거예요."

    "득도하는 것도 사람보다 빠르겠네."

    "그렇진 않아요."

    "왜?"

    "정신이 사람만큼 맑지 못해서 그래요. 사람은 삼라만상 온 우주를 생갈할 수 있지만 짐승들에겐 그만한 능력이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신의 힘이 사람만 못하지요. 그러니까 크게 깨우치려면 정신의 힘을 많이 길러야 해요."

     

    어느덧 단전 호흡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다. 석주와 필섭인 자신들의 몸이 좋아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좀 이상한 체험도 하게 되었다.

    하루는 필섭이 행공을 끝낸 다음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 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따뜻해졌다. 처음엔 은은하게 따스하더니 나중엔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필섭이 수련을 마친 뒤 혜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아랫배가 뜨거워지더군. 지금도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어. 왜 그러지?"

    "단전에 기운이 차고, 또 마음이 단전에 자리잡아서 그래요. 도형, 스승님께서 단전은 콩팥과 붙어 있다 하셨죠. 콩팥이 오행으로 무엇인지 아시죠?'

    "수(水)지, 물이야."

    "그래요. 단전의 기운도 수, 즉 물이에요.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의지해 있죠?"

    "염통, 심장이지."

    "염통은 오행으로 불, 화잖아요."

    "그렇지."

    "마음도 화예요. 그런데 정신을 단전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도 따라서 단전으로 내려가요. 도형, 물은 어떤 성질을 지녔지요?"

    "밑으로 가라앉고 또 차갑지."

    "불은요?"

    "위로 치솟고 뜨겁지."

    "마음의 불성질이 기운의 차가운 물성질을 뜨겁게 달궈 주어서 아랫배가 후끈거린 거예요."

    "아하, 그랬었구먼!"

    필섭은 혜원의 설명을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 도형도 곧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혜원이 석주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석주는 이틀 뒤에 필섭과 똑같은 체험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전기에 감전된 듯 휘청휘청 흔들이기도 했다.  아랫배가 마구 떨릴 때도 있었다.  혜원이 그런 현상들이 생기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전에 기운이 차서 그래요. 단전이 채워지니까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도 평소보다 강하지요. 그 때문에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찌릿해요. 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스멀거리기도 하고요. 뜨거운 기운 대신 싸아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전에 아팠던 곳이 뜨거워지거나 떨려요."

    그랬다. 필섭인 몇 년 전에 어깨를 크게 다쳤던 적이 있는데, 다친 곳이 특히 후끈거렸다. 석주는 무릎이 안 좋았었다. 한동안 관절염을 앓았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무릎으로 자주 내려왔다. 무릎이 자주 저절로 떨리기도 했다. 벽운 선생과 백령자는 달포 만에 돌아왔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이 수행을 잘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똑같은 공부를 계속하라고 일렀다. 또, 이런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단전에 기운이 차면 정도 충만해진다. 정이 충만해지면 자칫 음욕에 빠지기 쉽다., 정은 생명력의 뿌리다. 정이 충만해야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음욕에 빠져 정을 빼앗기면 기운이 크게 소모된다. 그저 음욕이 일기만 해도 정이 탁해진다. 탁한 정은 몸도 마음도 탁하게 만든다.

    정을 자꾸 배출라면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다. 공부가 깊어지질 않는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음욕에서 온전히 헤어나야  참도인이 될 수 있다. 너희는 그래도 음욕을 많이 끊은 사람들이다. 하나 그 뿌리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음욕의 뿌리가 자라지 않도록 경계하거라. 음욕에서 헤어난다는 것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다. 훌훌 떨치고 넘어서는 것이니라.

    사람의 뇌신경 중에 송과선이란 게 있다. 송과선은 기맥을 따라서 기운이 잘 유통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이 송과선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몸은 기운이 잘 유통되어 아주 부드럽다.한데 사춘기가 되면 송과선이 퇴화한다. 대신 뇌하수체라는 게 왕성히 활동한다.

    뇌하수체가 활발히 작용하면서 남자 여자의 몸이 크게 달라진다.  또, 난자와 정액이 생기고 음욕이 강해진다. 음욕은 또 온갖 번뇌를  불러온다. 음욕으로 인해 몸과 마음과 정신이 크게 약해진다.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음욕을 승화시켜 삼라만상 모두를 품어 안는 크나큰 사랑으로 바꾼다.

    그리고 참수행자의 뇌하수체는 힘을 잃는다. 대신 송과선이 도로 소생하여 활발히 활동한다. 불현듯 여인을 향한 음욕이 생기거든 온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거라 마음으로 나를 남김없이 비우고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거라. 그리하면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게다."

     

    필섭은 애욕을 잊고 지낸 지 이미 오래였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여의고 절망 속에 헤매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괴로움 때문에 다시는 여자와 인연을 맺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가끔 여자가 그리워졌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절제를 잘해왔다. 자꾸 절제하다 보니 갈수록 애욕이 희미해졌다.

    석주 역시 아내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여자를 멀리하게 됐다. 또 상처를 입을까봐 더 이상 이성으로서 여자를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았다. 혜원과 함께 살지만, 혜원일 이성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동기간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애욕을 완전히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간혹 여인의 따스한 체온이 아련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애욕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백령자는 청령자에게 새로운 행공 자세들을 가르쳐 주었다. 청령자는 백령자가 시범을 보이는 대로 똑같이 따라서 했다. 새로 배우는 동작들은 전에 하던 동작들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목, 날개, 다리 등을 쫙 뻗기도 하고, 휘휘 돌리기도 하고, 이리 저리 꼬기도 했다. 백령자가 청령자에게 새 행공법을 가르쳐 준 다음, 벽운 선생은 백령자를 데리고 다시 초막을 떠났다.

    6월이 되었다. 온 산이 초록빛으로 짙게 물들었다. 나무들마다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아서 산소를 물씬물씬 뿜어냈다. 운학산의 공기는 매우 싱그럽고 신선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시원한 공기가 쏴아쏴아 단전까지 밀려들어왔다. 

  • 성자들의 시대7-정기가 피어오르다

    "도형, 제가 깨우친 게 아니고 스승님 도력이었어요. 또, 이 터의 정기가 활짝 피어났고요. 스승님 도력하고 좋은 지기가 어우러져서 그런 일이 생긴 거예요."

    혜원이 필섭을 일으켜 세우고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에 관해 설명했다.  

    "스승님께선 여기에 계시지도 않잖아."

    필섭인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심쩍은 듯 말했다.

    "만리 밖인들 스승님께서 도력을 못 보내시겠어요. 시공을 초월하신 어른이신데요." 

    "하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지. 한데 이곳 지기가 활짝 피어 났다고?"

    필섭인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느낌이 그래요. 어젯밤부터 기운이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혜원의 짐작이 맞았다. 초막터의 지기는 전날 밤부터 크게 달라졌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거기에 반비례해서 탁한 기운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침나절에 혜원이 마당으로 나와서 수련할 무렵엔 초막 일대의 지기가 극도로 깨끗해져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 또 벽운 선생이 초막을 향해 지극히 맑은 진기를 보내 주었다. 혜원인 수련을 하면서 스승의 모습을 심안으로 보았다. 벽운 선생 바로 옆에는 백령자가 있었다.

    혜원의 심안에 나타난 백령자와 벽운 선생의 모습은 새하얀 빛의 응어리였다. 그들의 몸에서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리고 백령자와 벽운 선생이 혜원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 순간, 수많은 빛줄기들이 혜원의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혜원인 스승과 백령자한테서 뿜어 나오는 빛으로 목욕을 하는 느낌이었다. 빛의 폭포가 몸 속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 내는 것 같았다. 전신이 파스를 바른 듯이 시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피부를 통해 시원한 공기가 쏴아쏴아 마구 밀려았다. 피부의 기공이 활짝 열려 피무 호흡이 되었던 것이다. 피부 호흡이 되자 또 엄청난 진기가 몸 속으로 들어왔다.

    몸 속에 진기가 차오르니, 몸이 깃털허럼 가벼워졌다. 몸이 없어지고 형체만 어렴풋하게 남은

    기분이었다. 또, 풍선처럼 둥실 떠올라 하늘 높이 날아갈 것 같았다.

    공기는 계속 피부를 통해 드나들었다. 코로는 숨을 쉴 필요가 없었다. 거의 피부만으로 숨을 쉬었으나  조금도 답답하지 않았다.

    정신은 가없이 투명했다. 티끌만한 잡념도 침범하지 못했다. 번뇌의 그림자까지 말끔하게 씻겨 나간 듯 했다.

    얼마 후, 혜원인 자신의 몸이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투명한 의삭만 남고 몸은 허공으로 변해 버렸다. 아니, 온 우주, 삼라만상과 한몸이 된 기분이었다.

    백령자와 벽운 선생한테서 뿜어 나온 빛은 혜원의 몸 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석주, 필섭, 초막에 몰려온 짐승들, 이들이 모두 그 빛에 휩싸였다.

    해가 서해 바다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노을이 마지막 잔광을 받아 더욱 붉어졌다.

    세 사람은 말없이 서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초막은 깊고 깊은 고요에 잠겼다. 잠자리에 드는 새들의 푸덕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없이 아늑한 평화가 세 사람의 마음을 감쌌다.

      곧이어 어둠이 내리고 하늘 가득 번졌던 노을이 스르르 지워졌다. 혜원이 먼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석주와 필섭은 굳어버린 듯이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둘다 침묵 속에서 이날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아직도 가슴은 진한 감동으로 뭉클거렸다.

    " 아우, 놀랍지?"

    이윽고 필섭이 침묵을 깼다.

    "참말 신기하네요. 짐승들이 모여들어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있는 모양이 정말로 희한하더군요. 말도 못 하는 짐승들이 어찌 그리 영검하지요? 스승님께서 도력을 보내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짐승들이 사람보다 더 나을 때도 많아. 사람들이 전혀 몰라 보는 성인을 짐승들은 알아. 성인들의 마음을 몸으로 느낀다네. 자비로운 마음에서 뿜어나오는 좋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에 여기로 몰려든 게야."

    "사람들은 왜 못 느끼지요?"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 욕심이 가득하니 늘 번뇌 속에 빠져 살지. 번뇌에 휘감겨 몸이 굳어 버렸어."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석주는 의형 방헌수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지. 아주 극소수이지만 더러 있지. 하지만 그들도 번뇌가 많아. 근심 걱정이 떠나질 않고, 자꾸 뭘 생각하지. 마음도 정신도 편히 쉴 때가 없어. 번다한 생각도 몸을 굳게 만든다네."

    "그런데, 형님. 아까 보니까 혜원이 도제 힘이 대단하던데요.

    형님께서 꼼짝못하시는 거같더군요. 체구도 작은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지요? 전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놀랐네. 보통 기운이 아니더라고. 도력이 틀림없어. 혜원이 도제의 임독이 벌써 열린 모양이야."

    "임독이라니요? 그게 뭐지요?"

    "사람의 원기는 단전에 있다는 거 알지?"

    "예."

    "그 단전에서 등뒤 척추를 타고 머리로 기운이 올라가는 길을 독맥이라고 한다네. 또, 머리에서 다시 단전으로 내려오는 길을 임맥이라 하지. 단전에 큰 기운이 모이면 뜨거운 기운덩이가 임독맥을 타고 오르내려. 그럴 임독유통이 된 사람은 기운이 엄청나다네."

    "임독이 어떻게 해서 열리지요."

    석주는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수행이 깊어지면 그리 된다네."

    석주의 뇌리에 방헌수와그의 큰아들 한솔이가 떠올랐다. 한솔이도 아버지처럼 난쟁이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친구들한테서 자꾸 놀림을 받았다. 한솔이가 임독유통이 된다면 괴로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형님, 어린아이들도 수도할 수 있나요?"

    "근기가 되고 인연이 닿으면 할 수 있지. 왜?"

    석주는 필섭에게 헌수의 가족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양반 도심이 깊은 분이구먼. 부인하고 아이들도 예사 사람들이 아닌 것 같네. 언젠가는 다 도인이 되겠네. 아우가 인도할지도 모르겠구먼."

    두 사람은 이야기를 좀더 나누다가 자기네 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석주는 이날도 전날처럼 신기한 일이 일어날까 매우 궁금히 여기며 아침을 맞았다. 혜원은 전날보다 일찍 밖으로 나와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자 전날과 마찬가지로 짐승들이 몰려왔다.

    그들 중에는 백학봉 근처에 살지 않는 짐승들도 있었다.

    토끼, 비둘기. 꾀꼬리 등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엔 노루 네 마리와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멧돼지는 뒷다리를 절었다. 오른쪽 뒷다리에 상처가 있었다. 사냥꾼의 총에 맞았는지 허벅지에서 발등까지 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노루 중에도 다리를 저는 놈이 하나 있었다. 이놈 역시 뒷다리를 절룩거렸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뼈를 다친 모양이었다.

    멧돼지나 노루나 평소에는 백학봉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어디서 왔는지 이상했다. 그들도 작은 짐승들처럼 혜원이 앞에 다소곳이 엎드렸다.

    석주와 필섭은 잠시 후에 깊은 선정에 들었다. 혜원인 이날도 헤질녘에야 수련을 끝냈다. 짐승들은 그때까지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혜원이 수련을 끝내자. 그제서야 꼼지락거리며 모두들 일어났다.

    그런데 또 희한한 일이 있었다. 아침에 절룩이며 왔던 노루와 멧돼지의 다리가 멀쩡해진 것이었다. 석주가 그걸 보고 깜짝 놀라며 필섭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형님, 저기 저 노루하고 멧돼지를 보십시오. 아침에는 절룩절룩 간신히 걸었는데 멀쩡해졌어요. 웬일이지요?"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 나은 게야."

    "기운으로 병을 고쳐요?"

    "하늘의 진기를 받으면 불치병도 다 나을 수 있지."

    "그 기운을 어떻게 받나요?"

    "수행이 잘된 사람은 몸이 진기로 채워진다네. 그 기운을 남에게 보내 줄 수도 있고."

    석주는 외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혜원이를 쳐다봤다. 석주의 뇌리에 문득 중병을 앓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내는 신음 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 석주는 자신도 수행을 잘하여 병고로 신음하는 중생들을 건져 주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은 혜원이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짐승들이 몰려왔다. 초막 주변에 사는 다람쥐와 산새들은 동이 트자마자 마당으로 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침해가 백학봉 위로 떠오르기 전에 이미 전날보다 더 많은 짐승들이 모였다. 석주와 필섭인 수련도 미루고 짐승들을 지켜보았다.

    이날도 새로운 짐승들의 모습이 보였다. 뻐꾸기 두 마리와 함께 꿩 한 마리가 날아왔다. 뒤를 이어 족제비 몇 마리가 나타났다.

    석주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더니 족제비를 쫓으려 했다. 다람쥐나 산새들이 족제비한테 잡혀 먹힐까봐 걱정이 됐던 것이다. 족제비들은 석주가 쫓을 사이도 없이 잽싸게 마당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석주는 그들에게 작은 짐승들이 잡혀 먹힐까봐 몸을 움찔했다.

    한데 석주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족제비들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새와 다람쥐 또한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모두들 태평하게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족제비들도 마당 한가운데에 이르러서는 다른 짐승들처럼 가만히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족제비에 이어 고양이 몇 마리가 나타났다. 고양이 역시 작은 짐승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쥐와 산새들도 도망칠 생각을 안 했다.

    그 다음엔 뱀들이 기어왔다. 능구렁이, 살무사, 까치독사 등 여러 마리가 미끄러지듯 마당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뱀을 보고 석주는 바짝 긴장했다. 소름까지 돋았다. 뱀들이 작은 짐승들을 잡아 먹으려고 초막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뱀들도 다른 짐승들과 똑같았다. 마당 한가운데로 오더니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석주의 눈이 더욱 휘둥그래졌다.

    " 극락 선경이 따로 없구먼. 고양이와 쥐가 함께 선정에 들다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고 극락일세."

    필섭이 짐승들을 바라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가 다람쥐를 봐도 그냥 두네요. 족제비와 뱀도 그렇고요. 어찌 된 영문이지요?"

    "마음이 지극히 화평해져서 그래. 또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게야..

    "형님, 짐승들이 먹지 않고서 어떻게 배가 부릅니까? 이미 잔뜩 잡아먹어서 더 먹을 맘이 없는 게 아닌가요? 스승님이나 백령자처럼 크게 깨우쳤다면 몰라도요."

    석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우, 자네 요 며칠간 허기를 느껴 본 적 있나? 나는 한번도 안 그랬어. 끼니때가되면 그냥 습관적으로 미숫가루를 먹었지. 자네도 마찬가지일걸."

    필섭의 얘기가 맞았다. 2,3일 동안 석주도 시장기를 느껴 보지 못했다. 끼니때가 되면 필섭이처럼 그저 습관적으로 미숫가루를 먹었던 것이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숫가루만 먹으니 자주 속이 허했었다. 끼니때가 가까워 오면 배가 꽤 고팠다.

    "그럼 우리도 아주 좋은 기운으로 배를 채웠었구먼요."

    "맞아."

    "도를 조금도 깨우치지 못했는데 어찌 그럴 수 있지요?"

    "백령자와 스승님께서 도력으로 여기에다 좋은 기운을 듬뿍 보내신 거야. 또 기운이 우리 몸 속으로 들어왔고. 몸이 맑은 진기로 채워지니 허기도 안 지고 아픈 데도 없게 됐어. 어제 그 멧돼지하고 노루 좀 봐. 다리가 저절로 멀쩡해졌지. 또, 배부르고 마음이 화평해져서 싸울 생각도 안 해."

    "참 기막힌 일이구먼요. 이 얘길 다른 사람들한테 하면 누가 믿겠어요."

    "못 믿지. 이치를 모르니까. 이런 세계가 있다고 상상도 못 하지. 하나, 앞으로 달라진다는 게야.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아 성인이 된다더구먼. 머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 모두 큰 도인이 되는 시대가 온다는 게야.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걸 후천개벽이라 하지."

    "형님, 정말 그리 될까요?"

    석주는 경이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옛날의 뛰어난 선지자들께서 다 그 말씀을 전하셨네. 우리가 스승님을 만나게 된 것도 그 때가 가까웠기 때문일 게야. 앞으론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많아지겠지. 그중에 스님처럼 크게 깨우치는 이들도 꽤 나올 게고. 옛 어른들께서 이르시길, 세계 방방곡곡에서 성자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하셨어."

    "야, 그럼 굉장하겠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중생들이 그 은덕을 입겠구먼요. 스승님 한 분의 도력으로도 이 여러 중생들이 대복을 누리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성인이 되면 어찌 되겠어요?"

    "이 세상이 곧 극락이요 선경이지."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 마음은 그저 화평하니 싸움이 없겠지요? 잡아먹고 먹히는 일도 없겠고요. 정말 태평성대가 오겠네요."

    "그렇고말고. 대평화의 시대지."

    "정말 그리 될까요, 형님?"

    "나는 확신하네. 옛 선지자들 말씀이 지금까지 하나도 안 틀렸어."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올까요?"

    "글쎄, 어느 선지자께선 앞으로 40년 후라 이르셨네. 두고 봐야지. 하지만 스승님께선 정확히 아실 거야."

    "40년요?  그럼 우리도 잘하면 보겠구먼요."

    석주는 기뻤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남들한테 지기만 했던 석주에게 연약한 짐승들은 자기의 분신과도 같았다. 강한 짐승들에게   쫒기고 잡아멱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이 짐승들을 무자비하게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학대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괴로웠다. 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석주는 오래 전부터 육식을 끊었다. 이런 석주한테 필섭이 전한 선지자들이 예언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날 저녁 석주와 필섭은 식사를 하지 않았다. 허기를 느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아 보자고 필섭이 제안했던 것이다. 석주는 그 제안에 쾌히 동의했다.

    짐승들은 그 후에도 닷세 동안 초막으로 몰려왔다. 갈수록 수가 불어났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닷새째 되는 날에는 마당이 꽉 찼다.

    병들고 상처받은 짐승들도 많이 왔다. 그들은 몰라보게  좋아져서 돌아갔다. 그들 중에 중병을 앓거나 상처가 깊은 짐승들은 며칠 동안 초막에 계속 머물렀다, 2,3일 지나자 그들 역시 병이 나았고, 상처가 아물었다.

    석주와 필섭은 닷새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장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처음 이틀간은 가끔 물만 마셨다. 사흘째부터는 물도 끊었다. 갈증까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때 청령자도 사냥을 나가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내내, 가지 위에 고요히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있었다.

    혜원이 밖에서 수련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이날은 짐승들이 모두 돌아갔다. 중병으로 시달리던 짐승들도 하루만에 씻은 듯이 병이 나았던 것이다.

    그 이튿날이었다. 이날도 석주는 짐승들이 몰려오는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거 동트기 전에 마당으로 나갔다. 오늘은 또 어떤 짐승들이 올까, 얼마나 많이 올까, 이런 생각을 하는 석주의 가슴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밖으로 나온 지 반시간쯤 지나서 동이 텄다. 다른 날 같으면 짐승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날이 환하게 밝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아무도 안 올까요? 이상하네요?"

    필섭이 밖으로 나오자 석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글쎄, 왜 그런지 모르겠네. 좀더 두고 보세."

    두 사람은 한 시간 가량 더 기다렸다. 산새 한마리 마당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초막의 마당은 썰물이 빠져 나간 바다처럼 공허하고 적막했다.

    혜원인 해가 백학봉 위로 떠오른 뒤에댜 마당에 나왔다.

    "도제, 오늘은 짐승들이 하나도 안 오네. 어찌 된 일일까?"

    석주가 혜원에게 물었다. 혜원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일을 끝내셨나 봐요. 인연이 닿는 중생들은 모두 다녀갔나 보군요."

    "스승님께서 하시는 일이 뭐지, 도제?"

    필섭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혜원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스승님께서 하시는 일은 전부 하늘의 도를 널리 펼치시는 게 아닐까요?"

     
  • 성자들의 시대 6-깨어 있으면서 비우라

    "무릇 참된 도는 마음 닦는 것을 수도의 주춧돌로 삼는다. 마음이 닦이면 정신이 환하게 밝아진다. 몸도 따라서 깨끗해진다. 흔히들 선도인은 몸만을 닦아서 불로장생을 누리고, 불도인은 마음만을 닦아서 해탈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마음은 몸의 주인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다. 이들은 종이의 앞뒷면과 같다. 그래서 마음이 제대로 잘 닦이면 몸도 닦인다. 몸이 상하면 마음도 번거롭다. 마음이 탁하면 몸도 따라서 약해진다. 그러니 마음 닦는 게 곧 몸 닦는 것이요, 몸 닦는 게 마음 닦는 것이다.

     

    그런데 선도인 중에는 몸만을 중히 여기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 닦기를 소홀히 한다. 거꾸로 불도인 중에는 마음만을 중히 여기고 몸을 아무렇게나 대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수도인들은 올바르게 수행하기 어렵다.

     

    우리 도는 마음과 몸을 똑같이 함께 닦는 도이다. 어느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의 몸과 마음과 정신을 하늘몸, 하늘 마음, 하늘 정신으로 바꿔 놓는다. 우리 도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하늘의 도라 일컬을 수 있다. 석주와 필섭인 오늘부터 얼마간 마음과 정신을 닦는 공부에 전념하라.혜원인 그동안 해오던 공부를 계속하고."

     

    벽운 선생은 혜원일 방에 남겨둔 채 석주와 필섭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해는 백학봉 위로 불쑥 솟아올라 있었다. 햇살이 퍽 따스했다.

     

    따뜻한 햇살을 받고 눈이 마구 녹아 내렸다. 온 산에 봄기운이 가득 감돌았다. 벽운 선생은 눈이 모두 녹아 내린 마당가 너럭바위에 두 사람을 나란히 앉혔다. 그리고는 손으로 관음봉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저 관음봉만 쳐다보거라. 멀리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정신을 오로지 관음봉에 집중하거라. 잡념이 떠오르면 즉시 지워 버려야 한다. 눈길도 절대 딴 데로 돌리지 말고."

     

    벽운 선생은 이렇게 이르고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석주와 필섭은 서로 1미터쯤 떨어져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는 시선을 관음봉에 모았다.

     

    초막 위편 소나무 위에는 청령자와 백령자가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소나무 가지 아래로는 눈녹은 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필섭은 관음봉의 아름다운 자태에 찬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수려하구나! 예사 봉우리가 아니야. 신령스런 기운이 넘쳐흘려.'

     

    이런 생각을 하는 필섭의 머리에 문득 호산 스님이 떠올랐다.

     

    관음봉처럼 생긴 산봉우리를 그려 놓고, 이런 봉우리는 성현이나 선인, 대학자를 배출한다고 가르쳐 주던 모습이었다.

     

    이때 벽운 선생이 잔기침을 하더니,

     

    "필섭아, 왜 벌써 엉뚱한 생각을 하느냐"고 조용히 나무랐다.

     

    필섭은 흠찟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한데 벽운 선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막 안에 있으면서 음성만을 보냈던 것이다. 필섭은 스승의 기이한 도력에 다시 한번 놀라면서 초막 쪽을 향해 깊이 머리 숙여 사죄했다.

     

    잡념이 일기는 석주도 마찬가지였다. 관음봉을 뚫어지게 바라보노라니, 갑자기 관음봉에 겹쳐 돌아가신 부모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석주는 스승의 분부를 생각하고 얼른 부모님의 모습을 마음에서 지워 버렸다.

     

    두 사람은 고삐를 바짝 죄듯 마음을 다잡고 관음봉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채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다시 잡념이 일었다. 푸르른 하늘, 초막 아래 골짜기, 관음봉 너머 겹겹으로 펼쳐진 산줄기, 아스라이 보이는 서해 바다 등으로 눈길이 자꾸 옮겨 갔다. 바람이 불면 바람 소리가, 새가 울면 새소리가 의식을 어지럽혔다. 두 사람은 미끄러지듯 다른 곳으로 달려가려는 시선을 붙들어 매고, 머리에 떠오르는 잡념들을 생기는 대로 떨쳐 냈다.

     

    이것은 자신과의 지루한 싸움이었다. 쉴새없이 움직이려는 마음과 정신을 한곳에 잡아 매기란 참으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힘든 노동보다 훨씬 더 어려운 고행이었다.

     

    정신을 한곳에 모으는 것을 '응념'이라고 한다. 불가, 선가, 요가에서는 '응념'이 수행의 기초가 된다. '응념'은 모든 번뇌에서 해방되어 해탈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여러 관문 중 첫번째 것이다.

     

    두 사람이 관음봉과 씨름하는 사이 어느덧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점심때가 되자 혜원이 초막에서 나와 두사람을 불렀다.

     

    "도형들, 스승님께서 그만 들어오시래요. 들어와 식사들 하세요."

     

    두사람은 그제야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석주는 다리가 굳어져서 잠시 주물러 준 다음에댜 일어설 수 있었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이 점심 식사를 한 다음에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

     

    "수도란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사람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번뇌에 물든다. 태아 시절엔 그래도 번뇌가 적은 편이나, 세상에 태어난 뒤에는 온갖 번뇌로 시달린다. 번뇌에 물들어 살다가 자기의 본래 모습을 거의 다 잃게 된다.

     

    그러니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면 번뇌를 모두 끊어야 한다. 사람은 몸과 마음과 정신으로 이뤄졌다. 몸을 백이라고도 하고, 마음을 혼이라고도 하며, 정신을 영이라고도 한다. 번뇌가 침범하면 영·혼·백 모두가 탁해진다. 유리에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는 것처럼 본래의 진면목을 잃어버린다.

     

    너희가 오늘 시작한 공부는 번뇌를 끊는 공부다. 번뇌는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일어난다. 번뇌를 뿌리까지 뽑아 없애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도가 아주 높아져야 완전히 없앨 수 있다. 또, 뽑아 버릴 만한 힘을 길러야 한다."

     

    석주와 필섭은 보름 동안 관음봉을 바로 보며 응념 수련을 했다. 열흘쯤 지난 뒤에는 잡념을 모두 떨치고 시선을 집중할 수 있었다. 보름이 지난 후,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새로운 공부를 시켰다.

     

    "오늘부터는 눈을 감고 앉아 있어라. 눈을 감은 채 관음봉을 떠올리거라. 양눈썹 사이 약간 위쪽에 마음의 눈이 있지 않느냐. 그 마음이 눈을 심안이라고도 하고, 천목이라 부르기도 한다. 심안으로 관음봉만을 보고 있어라."

     

    심안의 눈길을 한곳에 집중시키기는 육안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웠다. 관음봉의 모습이 자꾸 사라지고 엉뚱한 것들이 대신 그 자리를 차지 했다. 석주와 필섭은 옅은 그림자처럼 희미한 관음봉의 모습을 심안에 잡아 두려고 애를 썼다.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이번 공부에도 차츰 익숙해졌다.

     

    열흘쯤 지나자 관음봉의 아름다운 모습이 심안에 불쑥 솟아올라 움직일 줄 몰랐다. 두 사람은 한번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몇 시간씩 심안의 관음봉만을 바라볼 수 있었다.

     

    또, 보름이 지났다.이제 산마루에도 완연한 봄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따스한 마파람이 몰려와 응달에 남았던 잔설을 모두 녹였다. 땅속에서는 씨앗들이 싹을 틔웠다.

     

    청령자는 여전히 백령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백학봉에 머물렀다. 한 번 허기를 채우려고 산에서 내려갈 뿐, 나머지 시간은 석주네처럼 수련에 전념했다.     

     

    백령자는 거의 늘 청령자와 함께 지냈다. 청령자는 백령자한테서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 안겨 있을 때보다 더 큰 평화를 느꼈다. 백령자와 함께 지내는 동안엔 한번도 두려움이나 불안에 휩싸이지 않았다.

     

    알에서 깨어난 이후, 청령자가 이때 처럼 평안히 지내 본 적이 없었다. 자기를 해칠 적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마음 깊은 곳에 서려 있었다. 그 때문에 늘 긴장했고, 불안해 했으며, 경계심을 풀기가 어려웠다.

     

    백령자를 만난 뒤, 알 수 없는 적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이 어느새 사라졌다. 그 자리에 아늑한 평화가 대신 깃들였다 백령자의 도력이 청령자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었다.

     

    백령자는 청령자가 사냥을 나갈 때는 함께 따라가지 않았다. 혼자 가도록 내버려두었다 청령자는 백령자와 떨어져 홀로 사냥을 나가면서도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끼지 않았다. 먹이를 빨리 찾으려고 초조해  하지도 않았다. 운학산에서 가까운 영주천에 날아가 어슬렁거리다 물고기 몇마리를 잡아먹고 천천리 돌아오곤 했다,

     

    날씨가 아주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 청령자가 사냥을 나갔는데. 처음 보는 학 다섯 마리가 먼저 와서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들을 보자 고요했던 청령자의 마음에 파문이 이렀다. 무리에서 떠난 외로움, 무리 속에서 지낼 때 느꼈던 흥겨움과 아늑함, 짝을 맺고 싶은 열망 등이 한데 뒤섞여 소용돌이쳤다.

     

    청령자는 낯선 학들과 어우러져 사냥을 했다 그러면서 백령자와 같이 있을때는 느껴 보지 못했던 즐거움을 맛보았다.

     

    얼마 후, 낯선 학들이 저희 무리가 모여 사는 곳으로 돌아가려 했다 청령자는 자신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갔다.

     

    청령자가 낯선 학들과 함께 5리쯤 날아갔을 때였다. 갑자기 백령자의 울름 소리가 들려 왔다. 청령자는 잠시 동안 어찌할까 망설였다. 청령자의 날갯짓이 점점 느려졌다. 낯선 학들은 청령자를 훨씬 앞질러 날라 갔다.

     

    드디어 청령자의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청령자는 운학산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아득히 먼 서해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청령자가 개심사 입구에 이르자 백령자가 마중을 나와서 청령자와 함께 백학봉으로 갔다.

     

    석주와 필섭이 심안으로 관음봉만을 바라보는 수련을 시작한지 보름 만에,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또 새로운 수련을 시켰다. 이번 공부는 마음과 정신을 텅 비워 허공과 같은 상태를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은 불가 선정(禪定) 수련과 똑같은 공부였다.

     

    공부에 들어가기 전에, 벽운 선생은 머릿속어 떠오르는 모든 상(象)을 먼지로 여기고 남김없이 떨쳐 버리라고 신신당부했다.

     

    "도를 이루려면 마음과 정신이 잘 닦인 거울처럼 깨끗해야 한다. 심혼(心魂)을 바람 한 점 없는 바다같이 고요하게 가라앉히거라. 또, 정신은 또렷이 깨어 있으되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거라. 너희가 굳이 뭘 생각하지 않아도 눈을 감고 있으면 온갖 상념이 계속 떠오를 게다.머릿속에 무엇이 떠올라도 그것에 끌려가지 마라. 그냥 내버려두면 스스로 물러간다.

     

    또, 눈을 감고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으면 잠이 잘 온다. 정신이 몽롱해지며 졸음이 몰려오는 수가 있다. 그러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잠에 떨어지면 영(靈)이 탁해진다."

     

    이번 수련은 지난번 수련보다 더욱 어려웠다.또렷이 깨어 있으면서 정신을 환하게 비우기가 참 힘들었다. 머릿속에 갖가지 상념들이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필섭인 그래도 절간 생활을 하면서 더러 참선도 해봤던 터라 석주보다 빨리 익숙해졌다. 석주는 한참 동안 온갖 잡념에 시달렸다. 지금까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 경험한 일들, 갖가지 중생들과 물건들……, 별의별 상념들이 돌아가며 떠올랐다. 자신과 친했던 사람들이 떠오르면 마음이 자꾸 그들에게 끌려가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스승의 당부를 생각하고는 퍼뜩 놀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석주는 무엇보다 사람들한테 끌리는 마음을 끊어버리기가 어려웠다. 부모형제나 친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그들한테로 딸려 갔다. 특히, 많은 괴로움을 겪으며 사는 이들이 석주의 마음을 깊이 끌었다.

     

    자기와 같은 불구자들, 부모가 일찍 죽은 아이들, 의지할 데 없는 노인들, 버려지는 아기들, 중병에 걸려 신음하는 환자들……, 이런 사람들이 자주 떠올랐다. 그들이 심안으로 보일 때마다 가슴이 무거웠다. 그들의 애처로운 모습이 마음을 휘어잡았다. 한없이 애틋하고 안쓰러웠다.

     

    하루는 스승의 당부를 잊고 수련 시간 내내 그들을 생각했다. 쉬는 시간이 되자 벽운 선생이 석주를 따로 불렀다. 석주는 스승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못한 게 죄스러워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벽운 선생 앞에 무릎을 끓고 앉았다. 그리고는 스승께서 큰 꾸지람을 내리시길 기다렸다.

     

    "석주야."

     

    뜻밖에도 석주를 부르는 벽운 선생의 음성이 매우 부드러웠다.

     

    "예."

     

    석주는 송구스러워하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불쌍한 중생들이 그리도 안타까우냐?"

     

    "죄송합니다, 스승님.  그 사람들이 생각나면 저도 모르게 가슴이 저미고 안타깝습니다."

     

    벽운 선생은 그윽한 미소로 제자를 내려다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자비심이 매우 깊어 그리 되는 것이다."

     

    벽운 선생의 음성이 더욱 따뜻해졌다. 봄바람처럼 온화한 기운이 석주의 마음을 감싸 주었다.

     

    벽운 선생은 잠시 뒤에 다시 입을 열었다.

     

    "석주야, 윤회전생에 관해 들은 바가 있느냐?"

     

    석주는 방헌수를 떠올렸다.

     

    "예. 전에 제가 형님으로 모시던 분한테서 들었습니다."

     

    "중생들이 당하는 고통은 전생의 업보다. 자기가 뿌린 씨앗을 그대로 거두는 것이다.

     

    네가 도를 이루면 그 이치를 환히 알게 된다."

     

    "하나 전생의 업이라 해도 너무 안됐습니다."

     

    "그 업보를 네가 대신 받고 싶을 때도 자주 있지 않았더냐?"

     

    "예, 그랬습니다."

     

    석주는 자신이 과거에 지녔던 마음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모두 알고 있는 스승의 도력에 새삼 놀라면서 대답했다.

     

    "그게 보살의 마음이다. 그런 마음을 지녀야 바른 도를 깨우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대신 업보를 받지는 못한다. 다만, 더 이상 업을 짓지 않도록 이끌어 주는 길이 있다. 석주야, 네가 안타까워한다고 해서 중생들의 고통이 사라지겠느냐?"

     

    "모릅니다."

     

    "네 힘으로 중생들을 윤회업보의 고통에서 건져 줄 수 있겠느냐?"

     

    "못 합니다."

     

    "그러니까 힘을 길러야 하느니라. 네가 도를 끼우치면 그 힘이 저절로 생긴다. 참된 도인이 될 때까지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놓도록 해라."

     

    "예, 명심하겠습니다."

     

    석주는 머리를 조아리고 물러났다. 돌아서는 석주의 가슴엔 환희로 가득 찼다. 벅찬 감동을 주채하기 어려웠다. 수행을 잘하면 언젠가 자신이 온갖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중생들을 건져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기뻤다.

     

    벽운 선생의 말씀을 들은 이후에도 며칠간은 정신을 깨끗이 비우기가 쉽지 않았다. 갖가지 상념들이 계속 떠올랐다. 그렇지만 그것들에 마음을 오래 빼앗기지는 않았다. 얼른얼른 지울 수가 있었다.

     

    선정 수련을 시작한 지 보름 가까이 되자 비로소 한참씩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는 환히 깨어 있는 상태에서 의식을 비워 둘 수 있었다.

     

    이때부터 벽운 선생은 제자들을 초막에 남겨 두고 어디론가 떠났다 며칠 만에 돌아오곤 했다. 제자들은 스승이 어디에 가서 뭘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백령자는 더러 벽운 선생과 동행했다. 청령자는 백령자가 없어도 함께 있을 때와 똑같이 지냈다. 하루에 한 번 사냥을 나가고, 나머지 시간에는 수행에 몰두했다.

     

    이제 완연한 봄이 되었다. 새싹들이 땅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나비와 개미들도 분주히 돌아다녔다.

     

    다람쥐들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쉴새없이 움직였다. 나뭇가지들은 물을 먹어 푸른빛을 진하게 띠었다.

     

    필섭과 석주가 선정 닦는 공부를 하는 사이에 혜원은 도인 체조를 하며 단전 수련을 했다. 그녀는 주로 방안에서만 수련했는데, 날씨가 풀리자 종종 밖에서도 수련했다.

     

    석주는 휴식 시간에 혜원이 수련하는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다. 도인 체조를 하는 혜원의 모습은 참으로 우아했다. 동작 하나하나가 학의 날갯짓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웠다. 그러면서도 힘이 넘쳐 보였다.

     

    체조를 마치면, 몇 가지 다른 자세를 취하고 단전 호흡을 했다. 한 가지 자세를 취하면 반시간 정도 꼼짝 않고 있다가 다시 새로운 자세로 바꿨다.

     

    혜원이 취하는 자세는 서 있는 것과 앉아 있는 것, 그리고 누워 있는 것, 세 가지였다. 누워 있는 자세는 엎드려 누운 자세와 옆으로 누운 자세, 둘이었다. 혜원은 이런 자세들을 취하고 선정에 들어 단전 호흡을 했다. 선정에 든 혜원의 모습은 잘 만들어 놓은 서고상 같았다.

     

    날씨가 아주 화창한 어느 날이었다.벽운 선생은 출타중었고, 혜원이는 이날도 밖에서 수련을 했다. 석주와 필섭은 마침 휴식 시간이라서 혜원이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혜원이는 몸푸는 체조를 한 다음 단전 수련을 시작했다. 석주와 필섭이도 휴식을 마치고 수련에 들어가려던 차였다. 이때 다람쥐 한마리가 나타나 쪼르르 혜원이 앞으로 달려갔다. 다람쥐는 혜원이로부터 2미터 떨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았다.

     

    채 1분도 안 되어 또 다람쥐 세 마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먼저 온 다람쥐 옆으로 달려가 나란히 앉았다. 다람쥐 네 마리가 나란히 엎드린 모습이 참 신기했다.

     

    석주와 필섭은 예삿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수련도 잊고 다람쥐들을 지켜봤다. 다람쥐들은 마치 선정에 든 것처럼 꼼짝 않고 엎으려 있었다.

     

    조금 뒤에는 더욱 이상한 일이 생겼다. 초막 근처에 있던 새들 몇 마리가 혜원이 옆으로 날아든 것이었다. 또 새로운 다람쥐들이 달려왔다. 새들도 불어났다. 고슴도치와 들쥐까지 떼지어 혜원이 옆으로 다가왔다. 초막 주변에서 사는 길짐승과 날짐승들이 모두 모여드는 것 같았다.

     

    이들은 혜원을 둥글게 둘러싸고 앉았다. 그리고는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석주와 필섭인 숨을 죽이고 그 신기한 광경을 지켜봤다.

     

    한 시간쯤 지나서 혜원인 자세를 바꿨다. 혜원인 서 있던 자세에서 아주 천천히 몸을 낮춰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움직임이 어찌나 고요한지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짐승들은 혜원이 자세를 바꿀 때도 그냥 그대로 있었다. 초막 뒤 왕소나무 위에는 청령자가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필섭인 문득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어 버린 느낌을 받았다. 시간이 없는 세계, 영원불변의 세계로 홀연히 들어선 기분이었다. 필섭 자신도 그 세계의 한 부분이 된 것 같았다. 육신과 정신의 활동이 한순간에 멎었다. 몸은 한없이 가벼웠고, 정신은 지극히 투명했다.

     

    석주도 필섭과 비슷한 체험을 했다. 더할 수 없이 아늑한 평화속으로 영원무궁한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런 다음 몸도 마음도 사라지고 맑디맑은 정신만 남았다. 자신이 투명한 거울로 화했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날, 혜원의 수련 시간은 매우 길었다. 평소의 두 배는 되었다. 한 가지 자세에 1시간 이상 걸렸다. 마지막에 가부좌를 틀고 수련하는 시간은 무척 길었다. 3시간 가량 되었다.

     

    아침나절에 수련을 시작했는데. 해가 거의 다 진 뒤에야 끝났다. 혜원이 가부좌를 풀고 일어섰을 때는 이미 서편 하늘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숯덩이 처럼 빨간 저녁해가 서해 바닷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다.

     

    혜원이 수련을 끝내고 움직이자, 초막에 몰려들었던 짐승들도 눈을 뜨고 꼼지락거렸다. 길짐승들은 귀를 쫑긋 거리거나 몸을  흔들었다. 날짐승들은 앉은 채로 가볍게 날개짓을 했다. 석주와 필섭이도 선정에서 깨어났다.

     

    승들은 초막 마당에서 잠시 더 머문 뒤에 뿔뿔이 흩어져 각기 제 집으로 돌아갔다. 혜원인 한없이 자비로운 미소로 그들을 배웅했다. 그 순간

     

    필섭은 혜원이 보살이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석주가 보기에도 그녀는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였다. 석주와 필섭은 잠시 동안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도제, 크게 깨우쳤구만!"

     

    짐승들이 모두 돌아간 뒤, 필섭이 혜원에게 격한 어조로 말했다. 감격에 겨운 말투였다.

     

    "예? 도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혜원이 깜짞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짐승들까지 큰 은덕을 입지 않았나. 장하시네. 높은 도를 얻으셨구먼."

     

    필섭은 외경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혜원일 쳐다보며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는 갑자기 땅에 넙죽 엎으려 큰절을 올렸다. 

     

    "아유, 도형. 왜 이러세요. 잘못 아신 거예요."

     

    혜원인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손을 마구 내젓더니, 자기에게 자꾸 절을 바치는 필섭의 어깨를 부여 잡았다.

     

    "제발, 그만 좀 하세요."

     

    필섭인 절을 더 올리려 했다. 그러나 혜원의 손에 잡혀 꼼짝못했다.

     

    석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두 사람을 쳐다봤다.

     

    필섭인 체격이 아주 다부졌다.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다. 그만큼 힘도 매우 좋았다. 키는 보통이었으나 기운이 장사였다. 그런 필섭이 갈대처럼 연약해 보이는 혜원이 한테 잡혀 꼼짝못하는 것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석주는 저런 힘이 어떻게 나올까 매우 궁금했다.       

  • 레고 “성 편견 없는 장난감 만들겠다”

    레고가 젠더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제품을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레고는 10월 11일 유엔이 정한 ‘세계 소녀의 날(International Day of The Girl)’을 맞아 이런 방침을 발표했습니다. 여아용과 남아용이라는 구분도 없앤다고 합니다.

     

    레고는 이날 7개 나라 6~14세 어린이와 부모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도 공개했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아의 71%가 다른 성별과 관련된 장난감을 갖고 놀 때 놀림을 받을까 걱정한다고 답했습니다. 여아는 42%가 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이 결과를 놓고 보면 여자아이들이 남자아이들보다 젠더 고정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여자가 축구를 하고 남자가 발레를 해도 괜찮다’는 말에 여자아이의 82%가 동의했는데 남자아이는 71%만 동의했습니다.

     

    부모들이 남아에게 스포츠, 과학, 수학, 공학 등을 권장하는 반면 여아에게는 춤과 분장을 장려할 가능성이 5배, 제빵을 권장할 가능성은 3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레고는 젠더 고정관념과 관련해 이전에도 지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4년 7살 소녀가 보낸 편지입니다. 샬롯이라는 이름의 소녀는 자신이 레고를 좋아하지만 남자 인형이 여자 인형보다 많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적었습니다.

     

    샬롯은 이어 여자 인형은 집에 머물러 있거나 해변에 가거나 쇼핑을 하고 직업이 없는 반면 남자 인형은 모험을 하고 일을 하고 심지어 상어와 같이 수영을 한다고 레고의 젠더 고정관념을 꼬집었습니다.

     
  • 구도소설 성자들의시대2-석주의 운명

    안개낀 소나무 숲 licensed by Pixbay

    "백령자, 이리 와." 석주는 두 팔을 치켜들고 백령자를 불렀다.

     

    백령자는 반갑다는 표시로 목을 뽑고 한 번 길게 울더니, 석주한테 날아와 어깨위에 앉았다. "혜원 누이가 벌써 출발했니?" 백령자는 석주의 물음에 머리를 끄덕여 대답했다. 그렇다는 뜻이었다. 혜원이 벽운 선생과 함께 운학산을 향해 길을 떠나자, 백령자는 먼저 석주에게로 온것이었다.

     

    석주는 백령자를 두팔로 안았다. 백령자한테서 봄바람처럼 따스한 기운이 뿜어나왔다.

     

    석주는 백령자를 안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온 백령자는 고요히 눈을 감았다. 우주의 진기에 몸을 맡기고 깊은 명상에 잠겼다. 석주의 도반들 중에서 맨 처음 벽운 선생과 인연이 닿은 도반이 백령자였다. 석주는 벽운 선생한테서 백령자가 20 여년 전부터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했다는 얘길 들었다.

     

    백령자는 벌써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3년 전부터 우주의 진기만으로 살게 되었던 것이다. 석주는 시장기를 느꼈다. 구석에 놓인 비닐봉지에서 미숫가루를 꺼냈다. 백령자의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소리 안 나게 조심조심 숟가락으로 퍼서 공기에 담았다. 그리고는 물을 붓고 잘 저은 다음 천천히 마셨다. 이것이 석주의 아침 식사였다. 석주가 먹는 미숫가루는 칡, 콩, 솔잎, 깨 등을 섞어서 만든 것이다.

     

    석주는 처음 산에 들어왔을때부터 이 미숫가루만 먹고 지냈다. 식사를 마친 다음 석주도 가부좌를 틀고 앉아 백령자처럼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방안은 지극히  고요했다. 백령자도 석주도 조각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백령자한테서 또 훈훈한 기운이 피어나와 석주를 에워쌌다. 석주의 마음은 한없이 아늑해졌다. 마치 어린아기로 돌아가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것 같았다.

     

    석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아버지의 따스한 미소가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렸다. 6.25 때, 끌려가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며 울어대던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아버지는 그 뒤로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어디선가 학살당했다는 소식만 들려 왔다. 아버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석주는 유년 시절을 보냈다.

     

    석주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파문은 곧 가라앉았다. 전에는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할 떄마다 가슴이 막힐 듯 고통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와 이념이 달랐던 사람들이 집에 와서 행패를 부리던 일도 생겨났다. 그들이 몰려올 때마다 석주는 공포에 질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어머니는 석주 남매들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었다. 석주는 그들을 죽이고 싶도록 미워했다. 이젠 그때의 두려움과 미움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석주는 평온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석주는 초등학교에 다닐때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꼽추가 되었다. 그로 인해 다른 아이들한테 숱한 놀림을 받았다. 아이들이 편을 갈라 놀이를 할떄도 석주는 낄 수가 없었다. 석주가 자기네 편에 들면 불리하다고 따돌리기 일쑤였다. 석주는 뒷전에 서서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보습을 구경이나 해야 했다. 석주를 따돌리고 놀려대던 아이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곱추라고 놀려대던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울려왔다. 그때 느꼈던 슬픔과 외로움이 다시 일듯 하다가 스르르 가라앉았다.

     

    석주는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며 학교를 다녔다. 방학때를 제외하고는 하루도 그 두려움에서 헤어날 수 없었다.그러니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

     

    석주에겐 위로 누나와 형,그리고 아래로 남동생이 하나있다. 맏이인 누나는 학교에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 어머니는 행상을 하고 누나가 동생들을 길렀다. 동생들이 큰뒤에는 남의집 식모살이를 하여 살림을 보탰다. 석주의 형과 동생은 공부를 아주 잘했다.석주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게의 점원이 되었다. 형을 가르치기도 벅찼던 어머니는 공부를 못하는 석주까지 가르칠수가 없었던 것이다.

     

    석주도 누나처럼 어머니를 도와 형과 동생 뒷바라지를 했다. 석주는 점원으로 있다가 시장에서 행상을 했다.석주가 번돈은 모두 형과 동생의 학비로 들어갔다. 동생이 대학을 졸업했을때 석주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석주는그제서야 자신을 위해서 돈을 모았다. 그때까지는 결혼도 하지 못했다.불구자에다 많이 배우지도 못한 석주에게 시집 오겠다는 여자가 없었던 것이다.

     

    석주는 3년동안 돈을 모아 시장에다 작은 가게를 열었다. 가게는 제법 잘됐다.석주를 좋아하는 단골 손님이 꽤 많았다. 돈도 잘벌고 성품이 참좋다는 소문이 나자 여기저기서 중매가 들어왔다. 석주는 서른네 살때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났다. 석주보다 세살 아래였는데 소박하고 성실한 여자였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2년 동안 별 탈없이 잘살았다.아기를 못가져 근심이 되기는 했지만 금슬이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2년 후인 서른여섯이 되던해에 큰 불행이 닥쳐왔다. 석주가 형제처럼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보증을 섰는데,그만 그 친구가 부도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석주는 가게를 팔아서 그 친구의 빚을 갚았다.졸지에 빈털털이가 되었다.

     

    석주는 다시 행상을 시작했다.생활이 어려웠다. 그러자 아내의 마음이 조금씩 변해갔다.남편한테 자주 불만을 터트리고 싸움을 걸었다. 아내의 불평불만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졌다.석주는 모두 자기 탓이다 싶어 참고 참았다.그럴수록 아내한테 잘해 주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내의 마음은 돌아서지 않았다. 아내는 결국 집을 나가고 말았다. 그것도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것이었다.

     

    그 무렵 어머니가 돌아가셨다.석주는 어머니 죽음도 자기탓이라고 생각했다.자기가 가정을 잘못 꾸려나가 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다고 믿었다. 죄책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아내의 얼굴과 임종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서 떠올랐다. 아내를 향한 미움과 그리움,어머니에 대한 죄책감이 잔잔히 일다가 사라졌다. 석주는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아내와 어머니를 지켜 보았다.

     

    어머니 마저 돌아가신 뒤,석주는 절망에서 헤어날수 없었다. 입에 잘 대지도 않던 술로 세월을 보냈다.시장에서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기며 위로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런데 시장 사람들 중에 방헌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석주보다 몇 살위였고 난쟁이였다. 두사람은 성품도 비슷했으며 같은 불구자라 친형제 보다 훨씬 더 친하게 지냈다. 방헌수도 시장에서 행상을 했다.

     

     방헌수는 마음이 무척 넓고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불구자였으나 의연했다.게다가 기품이 있었다. 시장 사람들은 아무도 그를 얕보지 못했다. 그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었다. 또, 묘한 재주를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관상을 잘 보는 재주였다. 여간해선 남의 관상을 봐주지 않았는데, 그가 관상을 보고 하는 얘기는 언제나 적중했다.

     

    석주가 친구로 인해 가게를 날리기 한달 전이었다. 하루는 장사를 마치고 나서 방헌수가 할말이 있다며 같이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두 사람은 저녁밥을 먹은 다음, 다방으로 갔다. 할말이 있다던 방헌수는 선뜻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

    "형님, 하실 말씀이 뭔가요?" 석주가 궁금해 하는 문밑으로 물은 뒤에야 방헌수는 입을 열었다.

    "아우,내가 관상을 좀 보는 거 알지?"

    "그럼요, 형님이 용하신 거 제가 한두 번 겪어 봤나요."

    "그런데 내 여태까지 아우 관상을 한번도 안 봐줬어. 아우 역시 내게 뭘 물어 보지도 않았고."

    "그동안 뭐 별로 어려운 일이 없었으니까 그랬지요."

    "내 오늘은 아우 관상이나 봐주려고 하네."

    "아이고, 감사합니다, 형님."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한다. 석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방헌수와 가장 친하게 지내면서도 자기의 관상을 봐달라고 하지 못했다. 행여 어린 시절에 겪었던 고통과 불행이 다시 찾아오리라고 하지 않을까 두려워서였다.

     

     방헌수는 석주의 관상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아우 관상은 참 특이하네. 보통 사람 상이 아닐세. 초년운과 말년운이 전혀 상반되는 사람은 처음 보네. 초년은 날개 부러진 봉황이요. 개천에 떨어진 용이나 마찬가지로구먼. 그러니 얼마나 힘들겠나. 알아주는 사람도 하나 없고. 아우는 만인을 가르치는 스승이 될 사람이야. 옛날 같으면 큰 도인이 됐을거야. 아우가 스님이 되었다면 아주 고명한 스님으로 많은 사람한테 존경을 받을 텐데…….

     

    관상을 보는 법 중에 유년법이란 게 있다네. 몇 살에 어떻게 되는가 알아보는 법이지. 사람의 운은 열네 살까지는 주로 귀에 나타난다네. 열다섯부터 서른 네살까지는 이마가 큰 작용을 하지. 서른다섯부터 마흔까지는 눈과 간문이라는 데 나타나고. 간문이란 눈꼬리하고 귀 사이라네."

     

    방헌수는 손가락으로 자기의 간문을 가리켜 보인 다음에 계속 말을 이었다.

     

    "마흔한 살에서 쉰까지는 운이 코로 들어. 쉰 살부터는 쉰 아홉살까지 운은 코하고 입 사이로 오고. 예순 살부터는 입하고 턱에 있다네. 또 사람의 얼굴을 상정, 중정, 하정으로 나누지. 상정이란 이마야. 중정은 눈썹 아래에서 코끝까지라네. 하정은 코 아래, 입과 턱이야. 상정엔 초년운, 중정엔 중년운, 하정엔 말년운이 깃들지. 

     

    자네 이마는 움푹 들어갔어. 귀는 너무 얇고. 그래서 초년에 고생이 많았다네. 한데, 중정과 하정은 매우 잘생겼어. 눈썹, 눈, 코, 입, 턱 모두 빼어나게 좋아. 간문이 좀 약한게 흠이지. 나머지는 특츨해. 서른일고 여덟 운은 눈동자에 있네. 자네 눈은 매우 귀한 눈이야. 게다가 번쩍번쩍 광채가 뿜어 나오고.

     

    서른 일곱 살이 되면 자네 운이 크게 바뀔거네. 귀인의 도움으로 새로운 인생이 시작돼. 서른일곱에 맞는 대운은 정말 굉장해. 날개 부러진 봉황이 상처가 아물어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격이야. 개천에 엎드려 때를 기다리던 용이 풍운을 만나 승천하는 거와 같지. 그후로는 평생 큰 복을 누리게 되네. 자네 복은 여느 사람들 복하고 달라.

     

    세상 사람들은 돈 잘 벌고, 출세하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걸 대복으로 여기지. 자네 복은 그런 세간의 복이 아니네. 하늘이 내려 주시는 것이야. 그런데 아우, 호사다마라는 말 들어 봤지?  좋은 일에 마가 끼듯이, 큰 복이 올때도 흉화를 입는 경우가 있어, 혹 자네한테 한두달쯤 후에 나쁜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게나. 내 생각엔 머지 않아서 화를 입을것 같네. 그런 일이 있으면 마음 단단히 먹고 견뎌야 하네. 많이 괴롭겠지만, 그 고통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걸세."

  • 상처 명상

    한 꼬마랑 놀다 손등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다운증후군 아이였는데 그 아이가 무심코 한 동작이 제게 아픈 흔적을 남긴 겁니다.

    그때 결심했습니다. 상처를 볼 때마다 그 아이에게 축복을 보내기로. 그 뒤로 상처를 볼 때면 저부터 행복해졌습니다.

     

    제게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있습니다. 가끔 그 사람이 떠오를 때면 그 사람에게 축복을 보냅니다.

    그러다 보면 그 사람이 제 삶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음을, 그 사람으로 인해 제가 크게 성장했음을 깨닫고 감사하게 됐습니다.

  • 에픽테토스의 부동심

    어떤 것을 잃게 되면 “나는 그것을 잃었다”라고 말하지 말라. 대신 “그것이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갔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대의 아이가 죽었는가. 그 아이는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대의 아내가 죽었는가. 그대의 아내 또한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대의 재산을 잃었는가? 그 재산 또한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그대는 자신에게서 그것을 빼앗은 자를 사악한 도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을 준 사람이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어떻게 해서 문제가 되는가?

     

    그것이 그대에게 주어지는 동안에는 그것을 돌보되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말라. 마치 나그네가 여인숙을 대하듯이 그것들을 대하라.

  • 세계적 힙합스타 에이콘(Akon), 아프리카의 빛이 되다

    에이콘은 미국의 유명한 힙합, R&B 가수입니다.

     

    2004년 싱글 'Locked Up'으로 데뷔했고 2007년 'Smack That'으로 그래미 어워드 대상을 받은 세계적 인기가수입니다. 그의 노래 가운데 23곡이 빌보드 차트 톱100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에이콘은 2014년 한국을 찾아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에이콘에게는 유명 가수 아닌 또 다른 얼굴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가수가 아닌, 태양광을 이용해 지속가능하고 값싼 전기를 공급하는 운동가의 모습입니다.

     

    ‘에이콘 라이팅 아프리카(Akon Lighting Africa)’는 그가 아프리카 대륙에 전기를 공급하는 프로젝트 이름입니다.

     

    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으로 7살 때 미국에 이민을 간 에이콘은 인기가수로 성공한 뒤에도 늘 아프리카의 가난한 이웃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도우려는 방안을 찾다 자신이 세네갈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전기가 그들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네갈에서 자신처럼 가난한 집 아이들은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해야 했는데 전기가 없이는 공부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게다가 값싼 등유는 건강을 해쳤습니다.

     

    에이콘 라이트닝 아프리카 프로젝트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에이콘은 중국 태양열 업체와 함께 10억 달러의 신용한도를 설정하기로 하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성과는 놀라웠습니다.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단 1년 만에 기니, 세네갈, 시에라리온 등 아프리카 14개국에 태양열 발전을 통해 전기를 제공했습니다.

     

    2016년에는 16개국 480개 마을에 10만 개의 가로등을 보급했고 1200개의 태양열 발전 전력망을 구축했습니다. 이를 통해 창출된 일자리만 5500개에 이릅니다.

     

    ‘에이콘 라이트닝 아프리카’를 통해 서민들은 늦게까지 가게를 열어 소득을 늘릴 수 있게 됐고, 어린이들은 유해한 등유 램프 없이도 공부할 수 있게 됐습니다. 또 어두운 지역을 밝히는 가로등은 범죄율도 크게 줄였습니다.

     

    현재 ‘에이콘 라이트닝 아프리카’는 아프리카 25개국 2880만여 명의 사람들에게 태양열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를 싼값에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많은 나라가 정치적으로 불안해 정부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황이라 금융기관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융통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자립을 돕는 문제였습니다. 에이콘은 자신의 프로젝트가 자선사업이 아닌 아프리카 사람들의 자립을 돕는 지속가능한 프로젝트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에이콘 라이트닝 아프리카’를 비영리 자선 단체가 아닌 영리회사로 설립한 이유입니다. 대신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태양열 발전 기술을 교육하는 학교 Solektra Solar Academy를 설립해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에이콘 라이트닝 아프리카’의 목표는 2030년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2억 5천만 명에게 태양열 발전 전력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에이콘은 또 다른 목표도 세웠습니다. 이른바 ‘Akon City입니다. 세네갈에 세워질 이 도시는 태양열 발전으로 전력을 충당하고 자체 암호화폐인 ACoin을 사용할 미래 도시입니다.

     

    약 60억 달러(약 7조1천억 원)가 투자되는 이 도시에 대해 에이콘은 “인종차별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돌아갈 고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하느님과 대화를 나눈 아이

    <울지마 톤즈>는 이태석 신부님의 헌신적인 생애와 죽음이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영화입니다.

     

    한 엄마가 아이와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엄마는 영화가 끝났지만 감동과 함께 슬픔의 쓰나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아이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그렇게 슬퍼?"

    "신부님이 저렇게 애쓰다 돌아가셨는데 넌 안슬퍼?"

     

    "그래서 하느님께 물어봤어. 왜 그렇게 신부님을 빨리 데려가셨냐고."

    "그랬더니 뭐라셔?"

     

    "신부님이 이 세상 할 일을 다 마치셨기 때문이래."

    "그럼 저 불쌍한 아이들은 어떡하라고?"

     

    "그건 남은 우리들 몫이래. 슬퍼만 하지 말고 나와 엄마가 할 일을 찾으면 돼."

  • 엄마 아빠가 뒤바뀐 아이에게 찾아온 행운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사는 카테리나 알리그나와 멜리사 포데라는 올 해 둘 다 스물 세 살 입니다. 두 여성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두 명입니다. 조부모는 친가와 외가를 합해 모두 8명이나 됩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1998년 12월 31 밤 시칠리아의 한 포구인 마자라 델 발로에서 두 가정에 아기가 15분 간격으로 태어났습니다. 둘 다 딸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뒤 카테리나의 엄마는 보육원에서 자신의 두 딸과 너무나 똑같이 생긴 아이를 발견했습니다. 얘기를 나눠보니 그의 딸과 자신의 딸이 같은 병원에서 비슷한 시각에 태어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두 엄마는 유전자 검사를 했고, 아이가 바뀌었다는 충격적인 검사결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뒤였습니다. 아이를 다시 원래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쉬웠지만, 아이들이 받을 충격을 가늠하기 어려웠습니다.

     

    석 달 동안 고민한 끝에, 두 가족은 놀라운 결정을 합니다. 두 아이를 함께 키우기로 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두 가족이 모두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해 이사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여덟 살이 됐을 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스무 해가 흘렀습니다. 두 아이는 쌍둥이 자매처럼 함께 자랐고, 두 가족은 더 큰 가족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