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ALL : 아이

Contents List 3

  • 멍 때리기가 건강에 좋은 이유

    멍 때리기가 뇌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상태를 뜻하는 속어입니다. 예전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지만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6년부터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을 정도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정보에 노출되기 때문에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멍 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주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는 몸무게의 3% 정도를 차지하지만 20%의 에너지를 사용할 정도로 활동량이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 때도 뇌는 움직이지요.

     

    멍 때리기는 그렇게 쉼 없이 일하는 뇌에 꿀맛 같은 휴식을 주는 방법입니다.

     

    멍 때리기는 의학 용어로는 ‘디폴트 모드’라고 합니다. 컴퓨터를 껐다 켜면 초기 설정인 디폴트로 돌아가듯이 뇌도 휴식을 취해야 다시 일할 준비가 된다는 뜻입니다.

     

    디폴트 모드는 뇌의 ‘성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창의력과 학습력이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지도록 한다는 겁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일상에서 벗어나 쉴 때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하게 과거의 일이 기억나는 것도 디폴트 모드의 ‘힘’일 수 있습니다.

     

    멍 때리기가 무념무상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일종의 명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 지미 카터 “죽음에 대해 완전히 마음 편해”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부부 [이미지 : 카터 센터 홈페이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올해 95세입니다.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최장수 기록을 써가고 있지요.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지만 카터는 한평생을 지구촌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죽음과 관련한 발언으로 또 한번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카터 전 대통령은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죽음에 대해 완전히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밝혔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이들도 거의 없으며,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는 사람들조차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다고 얘기한다는 점에서 카터 전 대통령의 말은 놀라움을 줍니다.
     
    다음은 카터 전 대통령이 미국 조지아주 플레인의 마라나타 침례교회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이타적 행동으로 자신의 삶을 헌신한 이의 지혜가 가슴을 울립니다.
     
    “나는 빨리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신에게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죽음에 대해 적절한 태도를 갖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죽음에 대해 절대적이고 완벽하게 편안함을 갖게 됐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더 이상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 가족과 카터 센터에서 했던 일, 주일학교에서의 아이들을 가르쳤던 일 등 저를 기쁘게 했던 일들은 그리울 겁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이 가야 할 올바른 길에 대해서도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미국이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가장 힘이 센 나라라면 좋지 않을까요? 미국이 환경 정책에서 가장 앞서나가는 초강대국이 되는 것은 어떤가요? 미국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하는 데 가장 뛰어난 강국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친구가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미국은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더 평화로운 나라가 되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평생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중동 평화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2015년 암세포가 뇌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그때도 “이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느낀다”라며 “멋진 인생이었고 흥분되고 모험에 가득 찬 감사한 삶이었다”라고 자신의 삶을 회고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그날 밤에도 “이제 몇 주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놀랍게도 아주 편안하게 느껴졌다”라고 말해 많은 이들에게 특별한 감동을 줬습니다.

  • 힘내라 물고기

    일주일 정도 된 듯합니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 자고 있는데 밤 11시쯤 됐을까 아이가 급하게 엄마를 부르는 거예요.

     

    "이리 좀 와 보세요. 물고기가 이상해요."

     

    일어나 어항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금붕어가 반쯤 몸이 꺾여있고 비늘이 떨어질 것처럼 서 있었습니다.

     

    가족으로 함께 한 지가 12~13년쯤 된 흰색 금붕어입니다. 지느러미가 길고 멋진 꼬리를 가진 아이입니다.

    다른 금붕어들이 모두 먼저 세상을 떠나 외로울 것 같아 친구를 데려다 놓았는데 그도 먼저 하늘나라에 가버렸습니다. 몇 차례 그러고 나서는 이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마땅히 어떻게 해줄 것이 없었는데 몇 년 전쯤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다 죽어가는 물고기에게 "힘내라. 힘내라. 힘내라."했더니 살아나고 있다는 글을 읽었던 생각이 떠올라 아이와 함께 몇 번을 금붕어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젯밤하고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숨은 쉬고 있었지요. 그날은 틈틈이 자주 들여다보며 "힘내라. 금붕어. 힘내.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

     

    하루가 지나자 금붕어가 제법 잘 움직였습니다. 물론 건강했을 때와 똑같진 않지만 많이 좋아졌는지 수면에만 주로 있던 녀석이 가끔씩은 깊은 곳까지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 이제는 잘 돌아다니고 건강해졌습니다. "힘내라"라는 말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이제는 딸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힘내. 사랑해"라고 말하며 박장대소를 터트리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그렇게 말과 마음을 전해보려고 합니다.

  • 100인분 나눔 요리 만들던 ‘그랜파’ 영면에 전 세계 눈물바다

    지난 27일, 600만의 구독자를 보유한 '그랜파 키친' 채널의 나라야나 레디(73)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의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이미지 : 그랜파 키친 유튜브 캡처]

    음식 기부를 위해 100인분 요리를 하던 나라야나 레디(73)가 2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 ‘그랜파 키친(Granpa Kichen)’은 31일 동영상을 통해 “할아버지가 27일 자신의 마지막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곁에 없지만 우리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레디의 부고를 전했습니다.

     

    영상에는 그의 생전 모습과 가족과 많은 이들이 오열하는 가운데 치러진 장례식 장면들이 담겼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각지에서 슬픔을 가득 담은 추모의 글이 쏟아졌습니다.

     

    그랜파 키친의 유튜브 채널에만 12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고 SNS에도 추모글이 이어졌습니다.

     

    네티즌들은 “사랑하고 나누고 돌보자"라는 그의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고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에 “그랜파 안녕히 가시길, 사랑이 가득 담긴 요리를 보여줘서 정말 고마워요. 사랑하고 나누고 돌보자”라고 적었습니다.

     

    다른 네티즌은 “우리는 인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세계의 가장 큰 어른을 잃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레디는 ‘가난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자’면서 한 번에 100인분 이상의 요리를 직접 만들어 불우한 처지의 아이들에게 기부했습니다.

     

    2017년 8월부터는 햄버거, 피자, 치킨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요리하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렸습니다. 이를 통해 나오는 수익금으로는 보육원에 책가방이나 학용품을 사서 보냈습니다.

     

    레디가 요리하는 장면은 네티즌들에게 ‘힐링 영상’으로 알려져 널리 퍼졌고 그가 운영한 유튜브 채널 ‘그랜파 치킨’은 구독자만 610만이 넘습니다.

     

    레디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족들에게 평소에 강조했던 “지구에 머무르는 동안은 남을 도와야 한다"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 로저 페더러, 말라위, 그리고 100만 명의 아이들

    로저 페더리가 자신이 도운 아프리카 말라위의 어린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있다. [이미지 : BBC News 유튜브 캡처]

    로저 페더러는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라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2019년 3월 남자 프로 테니스(ATP) 투어 단식에서 미국의 지미 코너스에 이어 두 번째로 통산 100번째 우승을 달성한 선수입니다.

     

    2004년부터 2008년까지 237주 동안 세계 랭킹 1위에 올라 역대 최장 연속 랭킹 1위를 기록했고 302주 동안 세계 랭킹 1위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들이 페더러가 써나가는 위대한 테니스 역사를 알고 있지만 아프리카 말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그의 담대한 프로젝트를 아는 이들은 적습니다.

     

    페더러의 어머니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입니다. 페더러는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아프리카를 자주 찾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처한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고 합니다.

     

    페더러는 2004년 아프리카 말라위에 로저 페더러 재단을 만들어 아이들의 교육과 급식 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2018년까지 100만 명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이를 달성했습니다.

     

    로저 페더러 재단을 이끌고 있는 제니 핸델 CEO는 목표를 달성한 뒤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로저 페더러가 늘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듯이 우리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100만 명의 아이들이 학교, 유치원 등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보다 나은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로저 페더러는 BBC와 인터뷰에서 “아이들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 환상적인 일”이라며 “테니스 선수가 된 뒤에 늘 이곳이 내가 돌아와서 도와야 할 곳이라고 늘 생각했고 그럴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 부동산 중개하며 마음닦기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분의 말씀이 크게 와닿아 소개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무실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를 가야 하는데 집이 제때 팔리지 않으면 계획이 어그러지고 여러 사람이 혼란이 올 것을 생각하면 그 사람의 고민이 자신의 고민이 된다고 하셨지요.

     

    전세나 월세를 사는 분들이 맘 편하게 이사를 가려면 새로운 세입자가 제때 나타나야 하기에 중개업을 하지만 그분들의 입장이 되어 같이 고민을 하신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그 문제를 해결할까 생각하게 되어 여기저기 알아보기도 하고 이사를 잘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마음을 쓴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중개를 하면서 다양한 경우를 많이 보셨다고 합니다.

     

    같은 조건의 집도 다른 거래 조건에 사고 팔리기도 하고 어떤 집은 이삿날 일주일을 남겨두고 거래가 성사가 된 경우도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집 주인은 성격이 고약한데 거래가 잘 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사람이 굉장히 좋은데 거래가 잘 안돼 애를 먹기도 하는 것을 보면서 알 수 없는 하늘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것 같다고 하십니다.

     

    부동산 중개 수수료와 관련해서도 정해진 가격이 있지만 마음을 열어놓고 꼭 깎고 싶어 하는 분이 있으면 그분이 하자는 대로 하기도 한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부동산 중개인이 아닌 집을 사고팔거나 세를 놓고 드는 당사자의 마음을 갖게 됐다고 했습니다.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지금은 먹고살기 위해 중개업을 한다는 생각이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언젠가는 멀리 사는 분이 오랜만에 찾아오셨길래 다른 부동산도 많은 데 제 사무실까지 오게 되셨는지 물으니 “왠지 믿음이 가서 오게 됐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분이 내놓은 상가는 목이 좋은 곳이지만 많은 걸림돌이 있어 매매가 어려웠는데 결국 돌고 돌아서 이 분께 와서 성사가 되었답니다.

     

    그분은 그 상가가 팔리는 것을 보고 하늘의 뜻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이루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이 점점 커지자 지금은 근심 걱정 없이 일을 하게 되고 식구들 밥 먹고 사는 데도 지장이 없게 됐다고 하십니다.

     

    큰 부자는 아니지만 마음 편하고 즐겁게 살며 부모님 곁에서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찾아오는 분들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 정성을 기울이며 그럼에도 그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는 마음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 베트남 스포츠 영웅이 금메달을 경매에 부친 이유

    지난 21일, 2016년 리우 패럴림픽 역도 부문 금메달리스트인 레 반 꽁 씨가 간암 투병 중인 이웃집 아이의 치료비를 부담하기 위해 메달을 경매에 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 : 유튜브 캡처]

    베트남의 역도 영웅이 자신이 딴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았습니다.

     

    세계선수권 우승자이자 2016년 리우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 반 꽁 씨는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금메달을 팔기로 했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오래 생각한 끝에 2016년 월드컵에서 딴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로 했습니다. 이 금메달은 몇 년 동안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내 몸의 일부와 같은 소중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간암 투병 중인 이웃집 아이의 치료비를 위해 메달의 새 주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는 2016년 패럴림픽에서 베트남 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땄고 49kg 급에서 세계 신기록을 갖고 있는 베트남 스포츠계의 영웅입니다.

     

    그가 자신의 메달을 경매에 내놓은 것은 간암 투병 중인 이웃집 아이를 돕기 위해서입니다.

     

    레 반 꽁 씨는 지난 7월 이웃집에 사는 여학생이 간암 진단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1학년에 재학 중인 그 소녀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자신도 부상으로 1년 동안 운동조차 하지 못한 채 전자제품 수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상황이라 고민이 됐습니다.

     

    그는 자신의 물건을 팔아서라도 치료비에 보태겠다 마음먹었는데 그때 금메달이 생각났습니다. 이 메달은 경매 사이트에 올린 지 이틀 만에 레 반 꽁 씨의 한 달 수입의 10배가 훨씬 넘는 약 300만 동(약 150만 원)의 제시가를 받았습니다. 경매는 31일까지 진행됩니다.

    

  • 5명의 어린이 탐정, 실종된 97세 치매 할머니 찾다

    지난 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로건 헐트만 등 5명의 어린이들이 실종 신고가 접수된 할머니를 찾아내 화제가 되었다. [이미지 : FOX 40 News 유튜브 캡처]

    4명의 어린이가 실종된 치매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미국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즈빌 경찰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에 실종 신고가 접수된 한 할머니를 찾는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 할머니는 97세의 글렌타 벨포드 할머니로 치매를 앓고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찰의 페이스북 계정에는 할머니를 걱정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댓글로 걱정하는 데서 나아가 직접 할머니를 찾아 나선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동네에 사는 5명의 어린이들이었습니다.

     

    로건 헐트만 등 10살 전후의 친구들 5명은 이 소식을 듣자 각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며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서성이고 있던 벨포드 할머니를 찾았습니다. 

     

    경찰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린 지 4시간쯤 지났을 때 헐트만과 친구들은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할머니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아이들은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 할머니를 곁에서 지켰습니다.

     

    이들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저 돕고 싶었어요. 우리는 다른 이를 돕는 게 좋아요”라고 말했습니다.

  • 베트남 오지 마을에서 인술 펴며 20명 입양한 의사

    진 덕 티엔(51)은 베트남의 국경 인근인 어 바오의 단 한 명뿐인 의사이다. [이미지 : tuio tre 유튜브 캡처]

    오지 마을에서 20년째 인술을 베푸는 의사가 있습니다.

     

    진 덕 티엔(51)은 1998년 후에 의약학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베트남 중부 꽝찌 근처의 어 바오로 갔습니다. 어 바오는 600가구가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큰 도시 다낭이 있었지만 그는 돈이나 명예 대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일에 마음이 갔습니다.

     

    그는 자신이 20년 넘게 살고 있는 어 바오에 처음 간 날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베트남과 라오스 국경 근처의 어 바오에 가기 위해 흙먼지 날리는 길 8km를 걸어서 갔고 도중에 강도 건너야 했습니다.

     

    환경은 더 열악했습니다. 마을 보건소 건물은 나뭇조각으로 얼기설기 엮은 판잣집이어서 환자를 치료하고 돌보기에는 너무 허술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몸이 아픈 것이 악령이 작용한 때문이라고 생각해 기도를 하면 낫는다고 믿었습니다. 진 덕 티엔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처음 2주 동안 아무도 보건소를 찾지 않아 할 일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 덕 티엔은 이 마을의 임산부들이 가장 큰 위험에 처처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 마을의 임산부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에 세워진 텐트에서 혼자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집에서 아이를 낳으면 가정에 불행이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이 마을의 신생아 사망률은 무척 높았습니다.

     

    그는 치료에 앞서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일에 나섰습니다. 그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가족들을 설득해 텐트로 가서 여성의 출산을 도왔습니다. 보건소 옆에 임산부가 의료지원을 받으며 출산할 수 있도록 판잣집도 지었습니다.

     

    이와 함께 마을의 지도자들을 찾아가 의료의 중요성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이어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건소에서 치료받으면 병이 낫는다는 확신을 갖는 데 무려 5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임산부들이 이전과 달리 별 탈 없이 건강한 아이를 낳는 경우가 늘어나자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출산일이 가까워지면 보건소를 찾는 여성들이 늘었고 아플 때 치료를 받으러 오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지방 정부의 지원을 받아 보건소 건물도 세웠습니다. 판잣집을 허물고 지은 2층 콘크리트 보건소 건물에는 진료실과 함께 14개의 병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보건소가 자리를 잡자 진 덕 티엔은 다음으로 마을 주민들의 삶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교육이었습니다. 어 바오에 사는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반나절이나 걸어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와 논의해 그런 아이들을 입양하기로 했습니다. 두 아이를 키우고 있던 터라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부부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부부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집 근처에 밭을 일궜습니다. 학기기 시작되기 2개월 전부터는 부근 도시의 자선단체를 찾아가 옷가지와 학용품 교재 등을 얻어오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부부가 입양해 키운 아이들은 20여 명이나 됩니다.

     

    진 덕 티엔의 아내 호앙 티 후옹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남편과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에 개의치 않았어요.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을 뿐입니다.”

  • 놀림당한 소년의 그림 ‘완판 굿즈’ 되다

    테네시대학 마스코트 '스모키'가 한 초등학생이 디자인한 테네시대학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미지 : 테네시대학 페이스복]

    미국 테네시 대학교가 친구들로부터 놀림당한 학생의 그림을 대학교 티셔츠로 제작했습니다.

     

    테네시대학은 나아가 그 학생의 재능을 칭찬하고 입학할 경우 4년간 장학금을 주겠다는 제안도 했습니다.

     

    플로리다주의 초등학교 4학년인 한 학생은 테네시 대학교에 진학하는 게 꿈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학교에서 열린 ‘대학의 날’ 행사에 테네시대학 티셔츠를 입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의 날’ 행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대학을 상징하는 옷을 입거나 물품을 갖고 가는 날입니다.

     

    하지만 학생은 테네시대학 티셔츠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 학생은 직접 테네시대학의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도화지에 펜으로 이 대학을 뜻하는 약자 UT를 적고, 테네시대학의 상징 색깔인 오렌지색 티셔츠에 이 도화지를 앞면에 붙여 갖고 간 것이지요.

     

    로라 스나이더 선생님은 이 학생의 ‘노력’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하지만 점심시간 때 이 학생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이 그림이 이상하다며 놀렸다는 겁니다.

     

    로라 선생님은 친구를 놀린 학생들을 나무라기보다 놀림당한 아이의 자존감을 살려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만들어주고자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 얘기를 전해 들은 테네시대학은 그 학생에게 테네시대학 굿즈를 한가득 보내줬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테네시대학은 그 학생의 그림으로 티셔츠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수익금을 괴롭힘 방지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테네시대학의 상징 색깔로 디자인된 티셔츠에는 그 학생이 그린 그림을 그대로 새겼습니다.

     

    이 티셔츠는 테네시대학 온라인 스토어에서 아주 많은 인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동창회, 테네시대학 팬들, 테네시대학의 특별한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이들의 도움으로 이 티셔츠는 5만 장 이상이 예약판매됐습니다.

     

    테네시대학은 이 학생에게 테네시대학에 입학할 수 있도록 허가했고 2028년부터 2032년까지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IMAGE|611|center|초등학생이 디자인한 테네시대학 로고(좌)와 실제 제작된 테네시대학 티셔츠(우). [이미지 : 테네시 대학교 홈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