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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9보다 더 빠른 응급치료 자원봉사단, 유나이티드 헤지젤라

    응급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골든타임'입니다.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통이 혼잡하거나, 앰뷸런스가 가기 어려운 지역이라든지 등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루살렘에서는 '유나이티드 헤지젤라(United Hatzalah)' 덕분에 어디든 3분 내로 응급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United Hatzalah)'는 1992년에 엘리 비어(Eli Beer)가 설립한 '무료 응급의료 서비스 단체 (EMS)'입니다. 현재 약 50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앰뷰사이클(Ambucycle)'이라고 불리는 응급치료용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 대원이 타는 앰뷰사이클에는 의료장비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응급 의료장비, 산소공급기, 자동심장충격기(AED)를 포함해, 앰뷸런스에서 볼 수 있는 의료 장비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대원들은 이 모든 장비들을 다룰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분입니다. 환자가 발생하면 단체의 지휘본부는 GPS 기반의 첨단 파견 기술을 사용해 가장 가까운 대원을 확인하고, 모바일 장치를 통해 그를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혼잡한 교통, 골목길 등 앰뷸런스에겐 장애가 되는 요소들도 앰뷰사이클에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엘리 비어가 이 단체를 만들게 된 것은 그가 어릴 때 목격한 사고 현장 때문이었습니다.

     

    비어가 6살이었을 때, 버스가 그의 근처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과 장비가 부족해 구조와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비어는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15살이 되면서 앰뷸런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비어가 17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응급상황에 더 빨리 대처하려면 좀 더 유연한 응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변에서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달려와 생명을 구할 자원봉사 구조대를 만든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구조대는 규모가 점차 커져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연간 300,000 명이 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5,000 명 이상의 자원봉사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서비스는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단체의 대변인인 다니엘 캐츤스테인(Daniel Katzenstein)은 '브레이킹 이스라엘 뉴스(Breaking Israel News)'와의 인터뷰에서 단체가 운용하는 앰뷰사이클과 일반적인 앰뷸런스의 차이점은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해지는) 트위터와 다음날 볼 수 있는 신문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대원 1명 당 연간 평균 480건의 출동 전화를 받는데, 그중 25%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위급한 상황이며, 3년간 360여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심장질환 학회(Israel Heart Society)에 따르면 단체가 가 설립된 이래로 심장 마비로 사망한 비율이 50 % 감소했다고 합니다. 심장마비에 대한 응급치료 여부는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척도입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이러한 활동은 세계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설립자 엘리 비어는 2011년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대통령으로부터 '자원봉사자를 위한 대통령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어 2012년에는 세계 경제포럼인 다보스(Davos)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으며, 2016년에는 랍비 쉬무엘리 보테크(Rabbi Shmueli Boteach)가 설립한 '세계 가치 네트워크(World Values Network)'로부터 '인간 생명의 챔피온 상(Champion of Human Life Award)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단체는 2015년 3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AIPAC (American-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의 혁신 쇼케이스에서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긴급 구조에 대한 신기술을 선보여 세계 응급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목표는 전 세계에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구명활동 모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2015년부터 그들은 미국 뉴저지 주의 저지시티를 포함해, 남미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 지점을 설립해 구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5년 네팔 지진, 2016년 아이티 허리케인 등 국제적 원조가 필요한 재난에도 적극 나서 구명활동을 펼쳤습니다.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국가는 (환자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불과 2분 35초로 단축되었습니다. 큰 재난에는 우리의 응급 의료 전문가가 가장 피해가 심한 마을과 도시로 출동했으며,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앞서 활동했습니다. 우리 대원들의 열정과 전문성은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배우 하정우의 에세이 ‘걷는 사람, 하정우’

    "티베트어로 '인간'은 '걷는 존재' 혹은 '걸으면서 방황하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한다. 나는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도 계속 걸어나가는 사람이기를. 어떤 상황에서도 한 발 더 내딛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이기를." (<걷는 사람, 하정우> 291~292쪽)

     

    '신과 함께’ 두 편과 ‘암살’로 1000만 관객을 세 번이나 모은 ‘삼 천만 배우’하정우. 감독이자 그림 그리는 사람 등으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가고 있는 그가 걷기와 관련한 책을 냈습니다. <걷는 사람, 하정우>

     

    배우나 아이돌을 다룬 TV프로그램을 보면 대부분의 인기 연예인들은 잠잘 시간조차 부족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대 배우로 스케줄이 꽉 차 있을 것 같은 하정우 씨가 걷기 책을 냈다는 게 조금은 의아합니다.

     

    책의 띠지가 그런 궁금증에 답을 합니다.

    “그에게 걷기란, 두 발로 하는 간절한 기도, 나만의 호흡과 보폭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 아무리 힘들어도 끝내 나를 일으켜 계속해보는 것”

     

    하정우 씨에게 걷기는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훌륭한 도구입니다. 이 책에는 "자연인 하정우가 실제로 두 발로 땅을 밟으며 몸과 마음을 달랜 걷기 노하우와 걷기 아지트"가 담겨 있고, 걷기가 가져다준 몸과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화려해 보이지만 배우는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입니다. 연기가 잘 안될 때도 있고 특히 출연한 영화가 관객의 외면을 받을 때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늘 따라다닙니다. 하정우 씨는 그럴 때면 운동화를 싣고 길을 나선다고 합니다.

     

    하정우 씨는 걸어서 출퇴근하는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루 3만 보씩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10만 보를걷기도 합니다. 집이 있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약속 장소인 홍대까지 13km를 걸어서 가고 김포공항까지 8시간을 걸은 적도 있다고 합니다. 손목에는 걸음수를 체크하는 피트니스 밴드를 차고 있고 주변 연예인들에게도 걷기의 즐거움과 효용을 알리고 있어 ‘걷기교 교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가 감독한 영화 <577 프로젝트>는 공효진 등 16명의 배우들과 함께 577km를 걷는 과정을 담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하정우 씨가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지난해 수상자로서 말하면서 연속 수상하면 국토대장정을 하겠다는 ‘호언’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서 기획됐습니다.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았던 과거의 어느 막막한 날에도, 이따금 잠까지 줄여가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하는 지금도 꾸준히 나를 유지하는 방법" 하정우 씨의 걷기 예찬입니다. 

  • 캐나다 10달러 신권에 새겨진 첫 여성흑인

    캐나다가 여성 흑인 인권운동가를 새긴 10달러 새 지폐를 만들었습니다. 

     

    캐나다 중앙은행인 캐나다은행은 19일 스티븐 폴로즈 총재가 참석한 가운데 위니펙에 있는 캐나다 인권 박물관에서 10달러 신권 발매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지폐에 새겨진 인물은 캐나다 흑인 인권운동의 선구자인 고 비올라 데스몬드 여사입니다. 그는 1946년 11월 8일 한 극장에서 백인 전용 좌석에 앉은 채 자리를 옮겨달라는 요구를 거부하면서 흑인 인권운동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데스몬드 여사는 화장품을 만들어 방문판매했는데 하룻밤 머물게 된 노바스코샤주 헬리팩스에서 극장을 찾았다가 백인 전용석에 앉게 됐습니다. 

     

    직원이 흑인석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요구했으나 그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출동한 경찰에 체포돼 12시간 구류와 함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데스몬드 여사의 행동은 노바스코샤주에 만연하던 인종차별에 정면으로 맞선 불복종 운동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데스몬드 여사가 살던 노바스코샤주 정부는 데스몬드 여사를 탈세 혐의로 기소하면서 보복을 했습니다. 극장에서 흑인들이 앉는 발코니석과 백인 전용 좌석의 가격차이 1센트에 대한 세금포탈을 시도했다는 게 죄명이었습니다. 1센트 비싼 좌석에 앉았으니 1센트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게 기소 이유였습니다.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데스몬드 여사에게 26달러의 벌금을 부과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2010년 노바스코샤주 정부와 법원은 그녀의 1센트 탈세에 대해 사후 무죄를 판결했고 공식 사과했습니다. 캐나다 정부는 2012년 데스몬드 여사를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했습니다. 

     

    데스몬드 여사는 캐나다은행이 지폐에 새길 여성을 선정하기 위해 실시한 공모와 여론조사를 거쳐 지난 3월 선정됐습니다.  데스몬드가 새겨진 10달러 신권은 캐나다 지폐 가운데 처음으로 세로 디자인으로 만들어졌으며 뒷면에는 그의 고향인 핼리팩스 북부의 흑인 밀집 지역 지도가 담겼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이날 열린 행사에 참석한 데스몬드 여사의 여동생 완다 롭슨(91)은 "인권과 평등을 위한 위대한 전진의 날"이라며 감격해 했습니다. 

     

    데스몬드의 얼굴이 새겨진 10달러 지폐는 11월 26일부터 시중에 유통됩니다.  

  • 농민빚 대신 갚는 인도 영화배우

    인도의 인기 영화배우가 농민의 은행 빚을 대신 갚아줬습니다.

     

    영화 <블랙>과 <위대한 캣츠비> 등에 출연한 인도의 인기 영화배우 아미타브 바찬(76)은 사재를 털어 1398명의 은행 빚을 갚았습니다. 

     

    그가 농민의 빚을 갚기 위해 쓴 돈은 4000만 루피, 우리 돈으로 약 6억 4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바찬이 도와준 농민들은 바찬의 고향인 인도 북부의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찬은 올해 초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마하라슈트라 주 농민 350명의 빚을 갚아줬습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농민들이 겪고 있는 부담 중 일부를 덜어주고 싶다”면서 “그 바람이 이뤄질 때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라고 선행의 이유를 밝혔다.

     

    인도는 수십 년간 가뭄, 지하수 고갈, 시설 부족, 생산성 저하 등으로 농업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수만 명의 농민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 농민이 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어려움 때문에 1995년 이후 최소 30만 명 이상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찬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19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는 지난 2015년 8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많은 남자배우’ 7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포브스가 당시 밝힌 그의 1년 수입은 약 3350만 달러(약 378억 4500만 원)였습니다. 

  • GS칼텍스 미얀마에 고효율 취사도구 5만 대 지원

    GS칼텍스가 미얀마 저소득층 가구에 고효율 취사도구 5만 대를 지원합니다. 

     

    적정기술이 적용된 쿡스토브는 미얀마 서민들이 사용하는 화로보다 연료 비용이 최대 66% 줄어들고, 조리시간도 50% 줄여주는 취사도구라고 GS칼텍스는 소개했습니다. 

     

    GS칼텍스는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쿡스토브를 보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해마다 5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지난해 11월 미얀마 정부로부터 쿡스토브 지원 사업을 승인받았고 올해 8월에는 유엔에 청정개발체제(CDM) 사업 계획서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CDM 이란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배출권으로 전환해 거래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또 9월에는 기후변화 대응 전문 컨설팅업체 에코아이와 쿡스토브 지원 사업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 히말라야의 선인 라히리 마하사야(1)

    <<히말라야의 선인 라히리 마하사야와 그의 아내 이야기>>

     

     

    라히리 마하사야(Lahiri Mahasay, 1828-1895)를 아시나요? 마하사야는 전설의 요기 바바지의 가르침을 받은 히말라야의 선인(仙人)입니다. 

     

    오늘날 구도자들이 행하는 수행 방편 중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 크리야 요가(Kriya-Yoga)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대 초반 출간된 파라마한사 요가난다(Paramahansa Yogananda, 1893-1952)의 자서전을 통해서 크리야 요가가 소개되지요. 그런데 마하사야는 바로 요가난다의 사조(師祖)입니다. 

     

    마하사야는 생전 20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유크테스와르(Swami Yukteswar Giri, 1855-1936)이고, 유크테스와르의 14명의 제자 중의 한 명이 요가난다입니다. 

     

    요가난다는 미국에서 진아실현회(SRF)라는 공동체를 만들고 통신과정으로 크리야 요가를 배울 수 있게 하지요. 그런데 크리야 요가는 바바지가 전생에서 자신의 제자였던 라히리 마하사야를 히말라야 산속의 한 동굴로 이끈 뒤 그에게 전수해 준 것입니다. 

     

    마하사야는 깨달음을 얻은 뒤에도 세속에서 보통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스리마티 카시 모니’라는 여자와 결혼도 했습니다. 그런데 카시 모니는 자기 남편이 성자였다는 것을 전혀 몰랐어요. 단지 가난하게 살면서도 돈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남편이 늘 못마땅할 뿐, 그로 인해 바가지도 종종 긁었다고 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카시 모니는 남편과 함께 잠을 자다가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납니다. 자기 머리 위에 아름다운 천사들이 떠 있는 꿈을 꾼 것이었어요. 그런데 눈을 뜨고 보니 더욱 놀라운 장면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가부좌를 튼 채 방 한가운데에 떠 있고, 그를 둘러싼 천사들이 그를 향해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찬란한 광경에 넋이 나간 카시 모니는 여전히 자기가 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하사야는 아내를 향해 “여인이여, 꿈이 아니다. 영원히 꿈을 깨라. 영원히”라고 말하며 서서히 방바닥으로 내려왔습니다. 그제서야 꿈이 아니고 현실임을 깨달은 아내는 감격에 겨워 남편의 발치에 엎드려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곤 그동안 남편을 구박해 온 자신의 행실에 대해 용서를 빌며 남편을 스승으로 모시겠노라 약조를 올리지요. 그러자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던 천사들도 오간 데 없이 사라졌습니다.  

     

    그날 이후 마하사야는 아내와 각방을 썼습니다. 매일 낮이나 밤이나 제자들과 같이 지내며 성자의 일에만 전념하였습니다. 카시 모니는 남편을 빼앗긴 기분이었습니다. 비록 남편을 스승으로 모시겠노라 다짐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하사야는 스승이기 전에 자기의 남편이었습니다. 게다가 대 성취자와 함께 산다고 해서 먹고사는 모든 일들이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카시 모니 가슴엔 또다시 불만이 차곡차곡 싸여 갔고, 참다 참다 어느 날 그녀는 마하사야에게 또 이렇게 쏘아붙입니다. 

     

    “당신은 온종일 제자들하고만 함께 있어요! 처자식은 어떻게 할래요?! 제발 돈 좀 버세요!”

     

    마하사야는 한동안 아내를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모습을 감추었어요. 아내는 순간 두려움에 몸을 떨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이러다가 영영 남편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두려움과 회한에 떠는 카시 모니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그때, 텅 빈 방 안에서 갑자기 커다란 음성이 울려 나옵니다.

     

    “그대는 그게 얼마나 헛된 일이라는 걸 모르는가? 또 나같이 형체가 없는 존재가 어떻게 재물을 모은단 말인가?”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겨우 정신을 차린 카시 모니는 제발 모습을 보여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남편의 모습을 다시는 못 볼까 봐 너무나도 두렵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그러자 “나는 여기 있네.”라는 말이 바로 머리 위에서 들려왔습니다. 고개를 드니 남편의 모습이 보이는데,  남편의 머리는 천장에 닿아 있었고 눈은 타오르는 불길 같았습니다. 카시 모니는 또다시 남편의 발밑에 엎드려 하염없이 흐느꼈습니다. 마하사야는 흐느끼는 카시 모니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가르침을 내렸습니다. 

     

    “오직 성스러운 풍요만을 찾아라. 재물에 마음을 두지 마라. 마음의 보화를 얻으면 필요한 물질은 저절로 생긴다.”

     

    그리고는 한 제자가 그녀에게 필요한 재물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정말로 제자 중 한 사람이 그들을 위해 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 아침이면 동이 나는 빵집의 비밀

    미국 캘리포니아 실 비치(Seal Beach)에는 오전 10시도 되기 전에 그날 만든 도넛이 다 팔리는 가게가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8시도 되기 전에 도넛이 동이 납니다. 

    도넛 시티라는 이름의 이 가게는 1979년 캄보디아에서 이민 온 존 찬(Chhan)과 스텔라 찬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2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열었을 정도로 성실한 운영으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가게의 도넛 매진 사태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뤄낸 작은 기적입니다. 

     

    도넛 시티의 단골인 돈 카비올라는 어느 날 가게를 들었다가 스텔라가 자리에 없자 존에게 물었습니다. 

     

    “아내분은 안 보이시네요?” 

     

    존은 아내가 뇌동맥류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겨우 의식을 회복했지만 온몸이 마비됐다는 겁니다. 

     

    스텔라는 9월 22일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했다 어지럼증과 방향감 상실을 호소했고, 병원에서 뇌동맥류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텔라는 한동안 의식이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2주가 지나서야 의식을 찾았고 말문이 트였다고 합니다. 

     

    존은 아내의 재활을 돕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었지요. 

     

    카비올라는 도넛 가게에 다녀온 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계속 생각났다고 합니다. 

     

    “맞아. 우리가 도넛과 빵을 일찍 다 사주면 존이 아내 곁을 지키게 도와줄 수 있잖아.” 

     

    카비올라는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존과 스텔라의 사연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된 동네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도넛 시티를 찾았습니다.  

     

    평소 새벽 4시 30분에 일을 시작해 오후 3시까지 가게 문을 열었던 존은 9시에서 10시면 도넛과 빵을 다 팔고 아내에게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빵이 일찍 다 팔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존은 이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많은 이웃이 찾아와 빵을 서너 박스씩 사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수험생 울린 엄마의 ‘통장편지’

    어머니가 딸에게 쓴 통장편지 일부. 이미지 출처 : 트위터

    한 어머니가 수험생 딸에게 쓴 ‘통장편지’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최근 수능을 치른 한 학생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통장을 찍어 올렸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수능 100일 전부터 1만 원씩 저축하면서 최대 7자까지 적을 수 있는 입금 메시지에 4~7자씩 글을 적어 ‘통장편지’를 완성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학생은 트위터에 “엄마가 수능 100일 때부터 1만 원씩 모아서 통장을 만들어 줬다”면서 “읽다가 눈물 펑펑 쏟았다”라고 적었습니다.  

     

     

     

    다음은 ‘통장편지’의 내용입니다. 

     

     

     

    수능 백일 파이팅. 수능 끝나고 놀아. 너는 빛나는 존재. 사랑스러운 우리 딸, 네가 선택하는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그리고 행복한 너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 나가길 바란다.  

     

    그러니 수능이 끝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를 꼭 안고 토닥거리며. 그동안 고생했다. 괜찮다. 모두 다 괜찮다. 애쓰고 애썼다. 그걸로 충분하다. 사랑하는 예쁜 우리 딸 삶의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하고 싶은 거 모두 다 하렴. 

     

    바른 인생관, 바른 인간관, 바른 세계관, 중요한 삶의 가치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고 삶의 무게나 삶의 의미 등 진지한 고민을 공유하고픈 나의 바람을 알아주길 바란다. 좀 더 성숙해진 이야기들을 나눈 후에 너를 독립시켜야 내 맘이 편할 듯싶구나. 미래는 그리하여 그 의미를 갖는다 하니 자신의 힘으로 멋진 인생을 이루길 바란다. 

     

    You're my present. 선물 같은 너를 만나서 엄마는 정말 행복해. 늘 건강해서 다행이었고 잘 자라줘서 참 고맙다. 더할 나위 없이 묵묵히 잘 커 준 예쁜 우리 딸아, 지금도 충분히 예쁘고 예쁘다. 어젯밤 앨범을 함께 보며 추억해보니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시간의 소중함, 추억의 소중함을 느꼈단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 있단다. 뒤돌아볼 때 후회 없는 선택은 별로 없단다. 그러니까 진정한 행복을 찾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언제나 너의 뜻을 존중하고 이해하니, 너는 늘 당당하게 웃음 넘치는 00이가 되기를.

  • 故 이태석 신부, 남수단 교과서에 실리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인술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남수단의 국정교과서에 실렸습니다. 

     

    남수단 교육부는 지난 9월 이 신부님의 삶을 수록한 교과서를 펴냈는데 2019년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온 슈바이처’라고 불린 이 신부님의 삶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3쪽, 중학교 시민권 과목에 교과서에 2쪽에 걸쳐 소개됐습니다. 

     

    교과서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가 되어 남수단의 가난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그는 남수단에서도 열악한 지역인 톤즈에 작은 병원을 세웠고, 하루 300명의 환자를 돌봤다. 학교를 지어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고 80여 개의 마을에 백신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의 병원은 가톨릭과 개신교, 무슬림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을을 파괴한 군인들도 치료를 받았다”  

     

    남수단 정부는 이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2015년부터 신부님의 삶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뎅뎅 호치 야이 남수단 교육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을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의사·음악가·선교사로서 10년 넘게 희생과 봉사를 몸소 실천하신 이 신부님의 삶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이 신부님은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을 놀이터로 삼아 자랐습니다.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이 신부님은 성당에서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를 다룬 영화를 보고 사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부근의 한 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49세에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인제대 의대에 진학한 이 신부님은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졸업 뒤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200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부님은 곧바로 남수단 톤즈로 떠났습니다.  

     

    이 신부님은 그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굶주리고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하고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 방청객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판사

    미국 대공황 때 있었던 일입니다. 

     

    1935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밤에 뉴욕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나이 든 여성이 법정에 나와 판사 앞에 섰습니다. 빵 한 덩이를 훔쳐 절도죄로 기소된 그 여성은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떨군 채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판사가 그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빵을 훔친 것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절도죄라는 것을 모르셨나요?"

     

    그 여성은 고개를 들고 판사를 보며 답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사위가 가족을 버렸고 딸은 병이 들어  어린 두 손자가 굶고 있습니다. 너무 어린아이들입니다"

     

    나이 든 여성이 말을 마치자 법정이 술렁였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빵 가게 주인은 단호했습니다. 

    “판사님,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저 여성을 처벌해야 합니다.”

     

    판사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잠시 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본 법정은 10달러의 벌금형에 처합니다."

     

    판결을 마친 뒤 판사는 주머니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내 자신의 모자에 담았습니다.

     

    “이 돈은 벌금입니다. 그리고 나는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여성처럼 가난한 이웃이 빵을 훔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함에도 무관심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벌입니다.”

     

    순간 방청석은 침묵에 쌓였습니다.

    판사의 모자가 방청객들에 넘겨졌고 모두가 기꺼이 벌금을 냈습니다. 

    판사는 10달러의 벌금을 뺀 나머지 돈을 그 여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재판정을 나서는 여성의 빰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판결을 내린 판사가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입니다.  그는 공정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우호적인 명판결을 많이 내린 판사로 이름났습니다. 

     

    후에 시민들의 추대로 뉴욕시장이 돼 세 번이나 연임하며 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고 합니다. 시장 시절에는 뉴욕의 지하경제를 주무르고 있던 마피아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벌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 그가 사망하자 뉴욕시는 퀸스에 설립된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 지어 그를 기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