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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객들이 결혼식에서 검은 안대를 한 이유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검은 안대를 썼습니다. 

     

    지난달 25일 호주 퀸즐랜드에서 열린 스테파니와 로버트 캠벨 부부의 결혼식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호주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호주의 한 국립공원에서 열린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혼인서약이 시작되자 모두 준비해 온 검은 안대를 꼈습니다. 

     

    그들은 혼인서약이 끝날 때까지 안대를 쓴 채 두 사람이 평생 서로를 사랑하겠다는 다짐을 들었습니다.  

     

    검은 안대 착용은 아내 스테파니의 아이디어에 따른 이벤트였습니다. 

     

    스테파니는 19살 때 원뿔세포 이영양증 진단을 받았고 29살인 3년 전 시력을 잃었습니다. 원뿔세포 이영양증은 망막 세포 중에 색각과 시력을 맡고 있는 원뿔세포가 변성이 되어 볼 수 없게 되는 질병을 말합니다.  

     

    스테파니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과 똑같이 그 순간을 함께 하고 기억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들에게 자신과 로버트가 혼인서약을 할 때 안대를 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하객들은 야외 식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소리를 통해 경험했고, 두 사람의 결혼 서약을 집중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스테파니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이 완전히 현존을 경험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결혼식을 준비한 회사에서는 예식 진행되는 동안 10가지의 천과 10가지 향의 에센셜 오일을 써서 스테파니가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 배우 이주실 씨의 암 투병과 이타심이라는 묘약

    지난 11월 27일 MBC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에는 배우 이주실 씨의 암 투병기가 방영됐습니다.  

     

    마흔셋에 남편과 헤어지고 두 딸을 홀로 키워야 했던 그는 나이 쉰에 유방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로 한쪽 유방을 다 떼냈지만 병마는 더욱 기승을 부려 그의 생명을 갉아먹었습니다. 

     

    살 날이 15일밖에 남지 않았을 때 그는 서울을 떠나 전남의 한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앞뒀을 때 후회하는 것이 하고 싶은 데 못한 것과 베풀지 못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주실 씨도 남은 생명을 다른 이를 위해 쓰고 싶었나 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봉사하는 삶을 시작하면서 건강이 조금씩 회복됐다고 합니다. 물론 그 뒤로도 13년 동안 암은 이따금씩 그를 찾아와 괴롭히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삶>에 출연한 이 씨는 무척 건강해 보였습니다. 

     

    암 투병 동안에도 그는 학생들에게 연극을 가르치고 암 환자를 돕는 일을 하는 등 자원봉사를 지속했습니다. 

     

    이주실 씨의 삶을 보면서 타인을 위한 봉사가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한의사로부터 들은 또 다른 사례가 있습니다. 간경화가 많이 진행돼 병원에서도 치료가 어렵다고 했다는 환자가 한의원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한의사는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으실 때 자원봉사라도 하면서 남은 삶을 가치있게 쓰시는 게 어떠냐고 권했습니다. 환자도 수긍했고요. 

     

    그로부터 몇 달 뒤 그 환자가 건강한 모습으로 한의원을 다시 찾아와 한의사를 놀라게 했다는 겁니다. 

     

    한의사는 다른 이를 돕고자 하는 마음, 이타심이 치유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힘은 참 묘한 것 같습니다.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연구해봤으면 합니다. 

  • 수도사가 알려준 기도의 비밀

    도시의 삶에 힘들고 지칠 때면 수도원을 찾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저 고요히 쉴 수 있다는 게 좋았습니다.  

     

    그는 수도원에 갈 때마다 한 수도사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수도원에서 가장 바빠 보이는 수도사로 보였습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늘 부지런히 움직이는 수도사는 파리에 사는 여느 도시인처럼 분주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그 사람은 그렇게 정신없이 움직이면서도 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그는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신부님은 언제 기도를 하세요?” 

    “늘 기도를 한다네" 

     

    “어떻게 기도를 하세요?”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고 그러지" 

     

    “그건 저도 하는데요" 

    “아니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밥을 먹으면서 딴 생각을 하고 자면서도 다음날 걱정을 해. 나는 밥을 먹을 때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하고, 졸릴 때는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지.”

  • 옛 ‘국민 신발’ 고무신, 동티모르 아이들의 희망이 되다

    고무신은 한때 ‘국민 신발’이었습니다.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지요.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동 고무신 정도가 종류의 전부였습니다.  

     

    운동화가 생산되면서 고무신은 한동안 가난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아이들에 운동화를 사줄 때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습니다.  

     

    그런 고무신이 동티모르 빈곤층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동티모르는 산골마을로 갈수록 환경이 열악합니다. 고산지대의 아이들은 맨발로 산길을 다니며 커피콩을 줍고 두 시간을 걸어 등하교를 합니다. 발을 다치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대구의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가 동티모르 어린이들에게 고무신을 보내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착한고무신 보내기 프로젝트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분은 월 1만 원씩 정기후원을 하거나 1켤레 당 3~5천 원 하는 고무신을 직접 사서 가정복지회로 보내주면 됩니다. 

     

    ‘착한고무신’은 동티모르 현지의 비영리 알롤라재단을 통해 어린이에게 전달됩니다.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는 착한 고무신을 손에 든 ‘기영이’를 캐릭터로 기부했고 대구에 본사를 둔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 ‘더포’는 계산서에 ‘기영이’ 스티커를 붙이면 1000원을 더 결재해 그렇게 모은 돈으로 ‘착한고무신’을 사서 보내고 있습니다. 

     

    고무신을 받은 아이들은 너무 좋아한다고 합니다. 가정복지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고무신을 신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복지회는 착한고무신 프로젝트를 아이들의 교육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동티모르는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인구 절반이 하루 0.88달러로 생활하고 5세 이하 어린이 절반이 체중미달을 겪고 있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비율도 56%에 불과한 곳입니다. 

  • 베를린의 포장지 없는 가게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독일 베를린에는 포장지 없는 가게가 있습니다. 

     

    오리기날 운페어팍트(Original Unverpackt). 이곳에서 물건을 사려면 구입한 물품을 담을 수 있는 용기를 갖고 가야 합니다. 곡물을 사려는 고객들은 종이봉투를 가져와 곡물통의 버튼을 누르고 원하는 만큼 담은 뒤 무게를 달아 돈을 지불합니다. 액체 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포도주나 샴푸, 세제 등을 사고 싶은 사람들은 유리병이나 항아리를 들고 옵니다.   

     

    [[IMAGE|206|center|아이가 자신이 가져온 유리병에 원하는 만큼 젤리를 담고 있다. 출처 : 오리기날 운페어팍트 페이스북]]

     

    이 가게는 베를린에 사는 두 명의 젊은이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사라 볼프와 릴레나 글림보프스키가 그들입니다. 두 사람은 어느 날 포장지가 제품 무게보다 더 무겁다는 것을 깨닫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재활용보다는 ‘예방적 환경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오리기날 운페어팍트는 2014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은 돈으로 만든 세계 최초의 포장지 없는 슈퍼마켓입니다. 시민 4000여 명이 참여해 목표액 4만 5000유로를 훨씬 넘는 7만 유로를 모았다고 합니다.  

     

    오리기날 운페어팍트의 첫 번째 목표는 포장지를 없애는 것이고 다음으로는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은 83억 톤을 넘습니다. 문제는 플라스틱의 재활용 비율이 9%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땅속에 매립되거나 바다로 흘러갑니다. 이렇게 버려진 플라스틱은 미세 플라스틱으로 잘게 쪼개져 플랑크톤이나 해양생물의 몸속에 들어가고 먹이사슬에 따라 결국 사람 몸에도 쌓이게 됩니다.

  • 홍수 때 동물을 구한 멕시코의 작은 ‘노아’

    홍수 때 동물을 구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지난달 26일 멕시코 언론들은 이 나라 중서부 나야리트주 루이스에 사는 호스틴 딜란이 홍수 때 동물을 구한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호스틴이 살던 마을은 허리케인으로 폭우가 쏟아지고 강풍이 몰아쳐 물에 잠겼습니다. 주민들은 집 안에 물이 차오르자 대피소로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지요. 

     

    하지만 호스틴은 자신들이 다 떠나고 난 뒤에 남겨질 동물들을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이들 동물들은 살아남기 어려울 수도 있다고 걱정한 것이지요. 

     

    호스틴은 힘없는 작은 동물들과 함께 대피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집에서 큰 고무대야를 가져와 동물들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호스틴은 자신의 ‘구명보트’에 강아지는 물론 닭과 앵무새까지 실어 날랐습니다. 

     

    어린 ‘노아’의 모습을 어떤 사람이 찍어서 페이스북에 올렸고, 그 사진을 본 이들은 호스틴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호스튼에게 구호물품과 동물 사료를 보내는 사람도 줄을 이었습니다.

  • 솔로몬 왕자가 다윗 왕에게 준 지혜

    유대 왕국을 다스리던 다윗 왕이 어느 날 보석 세공인을 불러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나를 위해 반지 하나를 만들고 그 반지에 내가 큰 승리를 거두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할 때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글귀를 새겨 넣어라. 그 글귀는 내가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도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글귀여야 한다.” 

     

    보석 세공인은 왕의 명령대로 매우 아름다운 반지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글귀가 문제였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많은 사람을 찾아 물어봐도 그런 글귀를 얘기해주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고민하던 보석 세공인은 지혜롭다고 소문난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다윗 왕이 요구한 글귀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솔로몬 왕자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새겨 넣으라고 말했습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 프란치스코 교황이 어린이를 대하는 법

    프란치스코 교황은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28일 로마 바티칸 바오로 6세 홀에서 열린 일반 알현에서 교황이 앉아 있는 단상에 6살짜리 어린이가 뛰어올라와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줬습니다. 

     

    소년은 사제들이 교리 문답서를 낭독할 때 단상에 올라 교황 옆에 선 근위병의 창과 손을 잡아당기고 교황이 앉아 있는 의자 주위를 돌아다녔습니다. 

     

    잠시 후 아이의 어머니가 단상에 올라와 교황에게 아이가 언어장애로 말을 못 한다고 설명하고 데리고 내려가려 하자 교황은 아이가 놀도록 그냥 내버려 두라고 만류했습니다. 

     

    어머니는 자리로 돌아갔고 그 어린이는 한동안 무대를 놀이터 삼아 마음 편히 뛰놀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여한 행사에서 단상에 ‘난입’한 어린이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2013년 10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설교하는 동안에 한 꼬마가 단상에 올라 교황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교황은 설교를 마친 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이듬해인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용 무개차를 타고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을 지나다 페루자에서 단체 여행 온 초등학생을 만났습니다. 

     

    학생들이 교황에게 다가가 학교 티셔츠를 선물로 주자 교황은 “나와 함께 광장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느냐"라고 묻고 두 아이를 차에 태워 광장을 돌았습니다.

  • 패션위크, 모피 추방 시작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잔혹하게 죽이는 일을 멈추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모피를 사용한 제품을 사지 않으면 됩니다. 사지 않으면 만들지 않게 되고 만들지 않으면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학살하는 일도 사라질 것입니다. 모피 사용 반대 운동은 그래서 소비자와 생산자를 목표로 이뤄집니다.  

     

    모피 사용 반대 운동이 올해는 큰 성과를 냈습니다. 생산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하나인 패션위크에서 모피가 추방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파리, 뉴욕, 밀라노 등과 함께 세계 4대 패션위크 가운데 하나인 런던패션위크가 지난 9월에 가장 먼저 퍼프리(fur-free) 선언을 했습니다.  

     

    런던패션위크를 주관하는 영국패션협회(BFC)는 지난 9월 패션위크가 열리기 전에 “올해 패션위크 무대에 서는 디자이너 가운데 모피를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BFC의 이런 결정에는 동물보호운동을 펴는 단체 PETA의 압력도 작용했습니다.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가수 팔로마 페이스는 BFC에 모피 사용을 금지하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BFC는 획득 과정이 너무나도 잔혹해 영국에서 법으로 금지된 물질이 패션쇼에서 사용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시장에는 모피를 대신할 친환경적인 유사 모피 제품이 많습니다. 모피를 얻기 위해 동물을 학살하는 일은 더 이상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데 BFC가 동의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모피 사용 중단 움직임은 의류 제조 브랜드로도 확산되고 있습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버버리는 영국패션위크를 앞두고 모피 사용을 중단하고 모피가 사용된 제품의 판매도 단계적으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버버리는 그동안 토끼, 여우, 밍크, 라쿤 등의 모피를 의류 제작에 써왔습니다. 

     

    베르사체, 구찌, 스텔라 매카트니 등의 업체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윤리적 패션’을 내걸고 모피 사용을 중단했습니다.

  • 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의 아름다운 ‘버림’

    이재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교회 목사의 퇴임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이 목사는 지난달 11월 17일 주일예배를 끝으로 경남 거창군 시골마을로 낙향했습니다. 2005년 7월 100주년기념교회 초대 담임목사를 맡아 13년 4개월 동안 사역했는데 정년을 7개월 앞두고 조기 퇴임 한 것입니다. 

     

    이 목사는 퇴임식, 이취임식, 감사예배 등 일체의 행사를 열지 않았습니다. 그날 1~4부 예배에서 4차례 설교한 뒤 짐을 정리해 아내와 함께 표표히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 목사는 교회로부터 퇴직금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남은 삶은 국민연금으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설교는 울림이 컸습니다. 이 목사는 버림을 강조했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침없이 버려야 깊은 영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을 거침없이 버려야 새로운 내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낡은 부대를 거침없이 버려야 새 포도주를 담그고, 새 부대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 자신부터 버림을 실천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유익을 취하기 위해 100주년기념교회 담임이 된 게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른 마르튀스(증인)와 휘페르테스(종)의 소임을 다한 뒤에 100주년기념교회를 떠나기 위해 담임이 됐고,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신도들에게 오랫동안 이끌어온 목사인 자신도 당연히 버림의 대상임을 일깨웠습니다. 자신의 버림은 신도들의 버림으로 완성된다고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얻기 원하신다면 교우님들은 이제부터 이재철을 버리셔야 합니다. 이재철을 버리시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이재철을 크게 버리면 크게 버릴수록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더 크게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목사는 자신이 시골로 낙향하는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후임자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양화진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희 부부를 위해 택정해 놓으신 땅으로 낙향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이재철 목사의 자취는 특별합니다. 교계에서는 이 목사가 한국 교회에 남긴 가장 큰 공로는 예수님의 자리에 결코 자신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예수님의 자리에 놓는 잘못을 범하곤 합니다. 자신이 키운 교회라는 왕국의 제왕이 되어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목사는 버림을 잊지 않음으로써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1988년 서울 강남에 주님의교회를 개척했으나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의 약속대로 10년 임기가 끝나자 곧바로 사임한 뒤 파송 선교사로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를 맡았습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의 한 작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일하다 초기 선교사들의 무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2005년 양화진에  100주년기념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개척했다는 얘기가 퍼져나가면서 100주년 기념교회에 신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신도 수가 1만 6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또 다른 버림을 준비했습니다. 은퇴 3년 전인 2016년부터 퇴임 준비를 위해 교회 안에 미래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정관 개정과 후임자 인선 등을 추진한 것이지요. 목사 신임투표제를 도입하고 장로와 권사를 직분에서 호칭으로 바꿨습니다. 장로와 권사를 교회 안의 직급이 아니라 존경할만한 연장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쓰도록 한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장로나 권사와 같은 직분이 목사의 수족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도들에게 군림하기도 합니다.  

     

    이 목사는 자신의 뒤를 이어 4명의 목사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제왕적 목회자의 탄생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100주년기념교회는 정한조(영성 총괄), 이영란(교회학교 총괄), 김광욱, (목회 총괄), 김영준(대외 업무 총괄) 4명의 목사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인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성탄절을 되새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