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ALL :

Contents List 3

  • 개운조사(3)-분주히 다니면서 신발만 닿게 하다

    "개운조사(2) 보러가기(클릭)"

     

     

    그러나, 자애로운 은사님 밑에서 연달이 피붙이들을 여의여야 했던 상처를 어루만지며 생사고락을 넘을 수행의 기초를 닦아나가는 것마저도 잠시, 조사가 입산한 지 1년 후 혜암 선사께서 열반에 드십니다. 참으로 조사의 삶에서 삶의 풍파를 막아주는 어른들의 안락함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요. 

     

    죽음을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자 산으로 들어왔는데 이제 스승마저 돌아가시니 이제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은사 스님을 잃은 조사의 입에선 연신 장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 뼈 마디마디마다 무상함이 절절히 새겨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출가수행자의 몸으로 언제까지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조사는 그 후 다른 스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6년 동안 봉암사에서 경학과 참선 공부를 이어갑니다. 한 권 한 권 경학을 떼고 한 번 참선에 들면 밤을 넘기기가 일쑤……. 시간이 흐를수록 수행은 깊어갔지만 조사의 마음 한 켠 아쉬움은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봉암사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스님도, 죽음을 이기는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님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죽음을 넘어 자유자재한 삶에 이른 큰 스승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고 싶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이러한 열망은 점점 더 깊어지고……, 조사는 마침내 스스로 스승을 찾아 봉암사를 떠납니다. 조사의 나이 19세 되던 해였습니다.

     

    조사는 이후 11년 동안 만행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조사가 찾던 스승은 없었습니다. 세월만 쉼 없이 흘러 어느덧 조사의 나이 서른, 어느 날 조사는 홀연 “공연히 쇠신만 닳게 하면서 분주히 돌아다니네.”라는 옛 선사의 시를 읽게 됩니다. 꼭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그 길로 봉암사로 돌아옵니다.

     

     

    "개운조사(4)"에서 이어집니다.

  • 티베트의 탁월한 자녀 교육법 3가지

    나라마다 아이들을 올바로 키울 수 있는 훌륭한 교육 전통이 있습니다.

     

    그 전통은 출세를 목표로 하는 현대 교육과는 아주 다릅니다.

     

    티베트의 자녀교육법이 그렇다고 합니다. 대한 불교조계종 대원사 현장 스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전하고자 합니다. 

     

    티베트에서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시기를 세 단계로 나눈다고 합니다. 7세까지가 1단계, 14세까지가 2단계, 21세까지가 3단계입니다.

     

    처음 7세까지는 암탉이 알을 품듯이 키우라고 합니다. 그저 사랑하고 보살피기만 하라는 것이지요. 

     

    아이는 이때 부모로부터 받은 조건 없는 사랑을 통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고 자존감이 높아지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음으로 14세 까지는 원수처럼 키우라고 합니다. 선악을 구분할 줄 알고 다른 이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도록 엄격히 교육한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단계인 21세까지는 친구처럼 키우라고 합니다. 

     

    부모와 자녀, 돌보고 의지하고, 주고받는 그런 사이가 아니라 동등한 인격체로서 서로를 존중하며 지낸다는 것이지요. 부모가 자녀를 독립적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다면 세상 어느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 이태석 신부의 수단 제자, 한국에서 의사됐다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 이태석 신부의 뒤를 이을 의사가 탄생했습니다.  

     

    이 신부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쳐 도왔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한국에 와서 의사가 됐습니다.  

     

    인제대 의대 졸업생인 토마스 타반 아콧(33) 씨는 올해 초 이 신부의 모교인 인제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지난 21일 제83회 의사국가시험에 합격해 의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토마스는 2019년부터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 과정을 거친 뒤 남수단으로 돌아가 이 신부님처럼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합니다. 

     

    토마스와 한국과의 인연은 1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토마스는 교육과 의료봉사를 위해 남수단의 가난한 마을에 온 이 신부를 만났고 복사단원(천주교에서 사제의 미사 집전을 돕는 평신도)으로 미사 집전을 도왔습니다.  

     

    [[IMAGE|173|center|'남수단의 슈바이처'로 알려진 故 이태석 신부. 토마스씨는 故 이태석 신부를 만나 한국으로 유학을 오게 된다.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캡쳐]]

     

    이 신부가 진료를 다닐 때도 곁에서 도왔습니다. 붕대를 감아주거나 상처를 소독할 때 환자를 잡아주는 등 보조 역할도 했습니다.  

     

    이 신부는 그런 토머스를 눈여겨보다 2008년 한국에 귀국한 뒤 한국에서 공부할 것을 제안했다고 합니다. 

     

    토마스는 제안을 받고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언어 장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습니다.  

     

    부모님의 격려에 힘입어 토마스는 2009년 12월 한국에 왔고 연세대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어 공부에 힘을 쏟았습니다. 

     

    토마스는 한국어 가운데 특히 속담이 재미있었다고 말합니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속담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를 꼽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국에 온 지 한 달쯤 뒤에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토마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슬픔이었습니다. 임종 하루 전 병실을 찾았을 때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가쁜 숨을 쉬고 있는 이 신부를 보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이 신부가 선종한 뒤 토마스는 그의 뜻을 이어 2012년 김해시에 있는 인제대 의대에 진학했습니다. 한자까지 섞인 의학 용어를 익히는 것은 외국인인 토마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농구를 하며 땀을 흘리거나 개그콘서트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학업 스트레스를 날려보냈다고 합니다.  

     

    의사 고시도 한 번에 붙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낙방했을 때 잠깐 힘들기도 했지만 스스로 ‘노력파’라고 부를 정도로 끈기 있게 공부해 올해 마침내 의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토마스는 외과 전문의가 되려고 합니다. 수단에 가장 필요한 의사가 바로 외과 의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 개운조사(2) - 나이 아홉에 4번의 죽음을 겪은 효자

    "개운조사(1) 보러가기(클릭)"

     

     

    우리나라 불교사에서 개운조사만큼 신비로운 일화를 많이 남기신 고승도 없을 것입니다.  

     

    조사는 1790년 경상북도 상주군 개운동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속성은 김 씨였고 모친의 성은 양 씨 셨는데, 조사께서 모친의 태에 들 때 부모님께서 ‘태양 같은 금성’이 품에 들어오는 꿈을 꾸셨다 합니다. 

     

    조사는 일찍이 조실부모하여 천애 고아가 됩니다.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5살 때 어머니마저 돌아가셨어요.  

     

    다행히도 조사는 외삼촌댁에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 자식이 없던 외삼촌 부부는 어린 조카를 친자식처럼 정성껏 기릅니다. 하지만, 외숙과 외숙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속세의 행복을 맛보는 것도 잠시, 외삼촌께서 갑자가 돌아가시고 외삼촌의 3년 상이 끝나자마자 외숙모마저 세상을 뜨게 되니 그때 겨우 조사의 나이 아홉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지 아래 붉은 몸뚱이 하나, 혈혈단신이 되고 만 것이지요. 

     

    조사는 혼자서 외숙모의 3년 상을 치렀습니다. 산소 앞에 묘막을 짓고 시묘살이까지 했다고 해요. 이 모습을 본 이웃 사람들은 조사의 효심에 찬탄을 금치 못하며 조사를 ‘양효동(楊孝童)’이라 불렀습니다. 외삼촌의 성이 양 씨이니, 마을 사람들은 조사를 ‘양 씨의 효자 아들’로 여긴 것이지요. 

     

    채 열 살도 안 된 나이에 부모님과, 부모님과 진 배 없었던 외숙부모님을 차례로 여읜 조사의 외로움과 슬픔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것이었습니다.  

     

    무어라 설명할 길은 없지만 삶은 참으로 무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죽음을 이기는 길은 없을까요. 조사는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른들을 만날 때마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는 없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에끼 이놈! 죽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라는 호통뿐, 조사는 어느새 마을에서 놀림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조사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대답을 찾지 못한 의문을 가슴에 깊이 품곤 낯선 사람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물었습니다. “죽지 않는 길은 없을까요?”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 한 분이 대답을 해 주십니다. 먼 옛날 ‘싯다르타’라는 태자가 어느 날 왕궁의 동서남북 사대문 밖으로 유람 차 나갔다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인간의 삶을 직시하고는 왕의 자리도 버리고 출가하여 큰 깨달음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출가가 뭐예요?”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 중이 되는 것을 말한다.” 

     

    스님의 대답에 조사의 마음은 두둥실 부풀어 올랐습니다. 비로소 앞길에 광명이 비치는 기분이었을까요? 얼마나 기뻤던지 마치 ‘새 장에서 벗어난 새’와 같았다 합니다.  

     

    외숙모의 제사를 마치지 마자 조사는 바로 문경 희양산(曦陽山) 봉암사(鳳巖寺) 찾아갑니다. 혜암 선사(慧庵禪師)를 은사로 모시고 머리를 깎으니, 그때 조사의 나이 열세 살이었습니다. 

     

    봉암사는 신라시대 구산선문의 하나로, 보우국사를 비롯한 수많은 고승 대덕을 배출한 수행도량입니다. 오늘날에도 부처님 오신 날이 아니면 일반인에게 산문을 열지 않고 철저하게 청정한 수행 기풍을 이어오고 있지요. 

     

    조사는 바쁜 행자 시절, 짬만 나면 봉암사 마애불을 찾았습니다. 오른손은 위로 들어 연꽃 가지를 들고 왼손은 가슴에 얹어 연꽃 가지를 받치신 마애불의 묵묵히 내려앉은 눈동자를 따라가노라면 유리알처럼 맑고 찬 계곡물이 햇빛에 찬란하게 부서졌습니다. 그 빛을 받아 환하게 밝으신 마애 부처님 앞에서 조사는 오랜만에 어버이의 품에 안긴 듯 다사로움을 느꼈습니다. 밝고 환한 마애 부처님 앞에서 부처님 마냥 가부좌를 틀고 앉으면 연달아 어버이를 여읜 슬픔도 씻겨 가고, 그 물을 따라 흐르면 영원히 생사의 고락을 벗어나는 길이 보일 듯싶었습니다.

     

     

    "개운조사(3)"으로 이어집니다. 보러가기(클릭)

  • “엄마, 친구가 하늘나라 갔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12월10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것이라고는 늘 비가 오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창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처럼 비가 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며 아들을 맞으러 학교에 갔다.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 멀찍이 바라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학교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금요일이라면 주말에 놀 생각에 더 활짝 웃으며 나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진짜 슬픈 소식이었어. 진짜, 진짜, 진짜 슬픈 소식이야. 그 친구가 하늘 나라에 갔대."

     

     

     

    [[IMAGE|228|center|caption]]

     

    느닷없는 비보

     

     

    그 친구라 함은, 지난 학년부터 아들과 한 반이었던, 9월에 시작된 새로운 학년에 첫 짝궁이었던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휠체어에서 생활했고, 옆에는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이 늘 함께 했지만, 아들의 그 친구는 학교생활에 대부분 참여했었다.

     

    통합교육이 원칙인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몸이 불편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이 친구도 학급 활동에 늘 함께 했다. 지난해 그 친구의 생일 땐 반 전체에서 작은 축하파티도 열었었다. 반에서는 혼자 책을 읽기 힘든 이 친구에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두어 달 전 아들은 자신이 책 읽어줄 차례라며 영어발음을 연습해 갔었다. 몇 주 전 자원봉사로 따라간 현장학습 때도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과 함께 참가했던 아이였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먹먹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주친 선생님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 중 몇몇도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온 부모들 중 몇 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자,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 그것도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10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것을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건넨 종이

     

     

    아들이 비보를 접한 것은 등교하자마자였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몇몇 친구들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어 담임선생님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종이를 둘게요. 수업 도중에라도 마음이 힘들고 슬픈 기분이 들면 언제든지 가져다가 쓰고 싶은 것을 아무 거나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되고,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되고, 너무 슬퍼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도 돼요. 그리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안 될 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울고 와도 돼요."

     

    아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그 어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도, 그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충격을 이해해주고 그 슬픔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털어 놓았고, 지원 나온 대체교사가 이날 수업시간에 함께 했다.

     

    상실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심리적으로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기는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겪는 상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 준다.

     

    상실을 맞닥뜨릴 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힘들다고 해서 부인하거나 '괜찮다'고 포장해 버리면, 그 슬픔은 마음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슬픔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오랫동안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대처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날 아들과 반 친구들은 수시로 종이를 가져다가 슬픔을 표현했고, 도서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IMAGE|229|center|caption]]

     

    교장선생님의 메일 한 통

     

     

    그리고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전체 학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시 한 번 비보를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이어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속히 밴쿠버 교육청의 위기지원팀(VSB Critical Support Team)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위기지원팀은 학교 공동체에서 재난이나 구성원의 죽음 등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심리적 문제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슬픔에 빠진 선생님들도 돕고, 때로는 대체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아이들이 들를 수 있도록 상담센터를 열어 두었고, 학교와 교육청 소속의 상담사들이 도움을 제공할 채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또한 교장선생님은 강조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물을 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정직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나아가 학교에서도 언제든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집에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장 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여전히 먹먹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자세, 상실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태도, 공동체 차원에서 상처를 극복해 가려는 노력. 아들의 학교는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해내며 애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나와 내 아이를 비롯, 그 친구와 가까워 충격과 슬픔이 더 큰 몇몇만이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린 마음 한 켠에 훈훈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물론, 아무리 함께하고 서로 위로하더라도 상실을 경험해내는 것은 분명 힘들고 아픈 일일 것이다. 그 충격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까지 나서 함께 슬픔을 나누고 도우려는 모습들을 보니 이를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분명 이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 진정한 교훈이나 급훈은 이런 것

    한 초등학교 복도 벽에 쓰여진 글이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글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어.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멋진 옷을 입을 수도 있어.

    어떤 친구들이 너보다 운동을 더 잘 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런 건 결코 중요하지 않아.

    너 또한 너만의 무언가를 갖고 있거든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봐. 

    주위 사람에게 너그럽고 친절한 사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그런 사람,

    그리고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자고.

    그런 훌륭한 사람이 말야.

  • 지구인컴퍼니, ‘못생긴’ 농산물 구출회사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이 가치가 있습니다. 

     

    과일과 채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손길은 물론 빛, 바람, 비 등 우주가 함께 식물은 모두 독특합니다. 귀합니다.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이 빚은 창조물도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 차별합니다. 자연스럽게 자란 과일과 채소지만 보기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소외받고 외면당합니다. 버려지기도 합니다. 

     

    지구인컴퍼니는 ‘못생겼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이른바 ‘B급 농산물’에 담긴 가치를 귀하게 여기는 회사입니다. 그런 작물을 판매하기 위해 이 회사가 만든 쇼핑몰이 바로 superb입니다. 사람들이 B급이라고 여기지만 실제는 놀라운 맛과 성분을 지닌 작물이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지구인컴퍼니는 홈페이지(http://superb-store.com)에 superb를 시작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더 건강한 맛을 위해 농약을 쓰지 않고, 자연적 농법을 시도하고 있는 농부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 혹시 알고 계시나요? 하지만 이런 까다로운 기준으로 농사를 지어도 모두가 판매되지 못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리고 외모의 흠결이 있으면 아예 시장으로 나오지도 못하지요.” 

     

    이 회사는 ‘못난이 농산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생산자와 연결되는 고리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superb를 만든 이유입니다. 

     

    “발효식초, 전통차, 김치 등의 명인이 만든 음식도 제때 유통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적절한 판로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IMAGE|224|center|(주)지구인컴퍼니의 민금채 대표. 이미지 출처 : (주)지구인컴퍼니]]

     

    이 회사를 이끌고 있는 민금채 대표는 올해 7월 지구인컴퍼니를 만들었습니다. 이른바 B급 농산물을 수매해 팔거나 잼, 즙, 피클, 파우더 등으로 가공해 파는 게 이 회사의 사업모델입니다. 

     

    지구인컴퍼니는 원재료는 물론이고 제조 과정과 제품 용기까지 친환경을 추구하는 회사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 뉴욕, 프랑스 등 앞서 만들어진 해외의 친환경 식품업체를 벤치마킹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분말수프에 적합한 친환경 포장 용기를 찾기 위해 제품 출시를 미뤄야 하기도 했습니다. 생분해성 용기를 만드는 곳을 찾아다녔지만 마땅한 곳을 만나지 못했고 결국 중국에서 사탕수수를 재료로 용기를 만드는 회사를 찾아 고민을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IMAGE|223|center|B급 농산물을 그대로 팔거나, 위 사진과 같이 다른 제품으로 가공해 판매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 (주)지구인컴퍼니]]

     

    수퍼브는 자신들의 활동을 못생긴 농산물을 ‘구출'하는 일이라고 표현합니다. 

     

    지금까지 ‘구출’한 농산물은 47,000,000g이라고 홈페이지에 표시해뒀습니다. 

     

    “맛과 영양에는 문제가 없지만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외면받는 농산물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40억 톤에 달합니다. 이 고민에 함께 동참해주세요."

  • 아기에게 14년치 크리스마스 선물 남긴 할아버지

    영국의 한 할아버지가 ‘절친’처럼 지내던 이웃집 아이에게 14년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국 웨일즈 배리에 사는 오웬 윌리엄즈와 캐롤라인 윌리엄즈 부부는 지난 2년 동안 이웃집에 살던 켄(85) 할아버지가 두살배기 딸 카디에게 14년치 선물을 주고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17일 월요일 저녁 그가 세상을 떠난 날 할아버지의 딸이 윌리엄즈 가족의 집을 찾아와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오웬은 처음에 그가 들고온 검은 비닐 봉투를 보고 쓰레기를 버려달라는 줄 알았지만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는 그날 자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봉투에 담긴 건 카디를 위해 산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오웬은 선물꾸러미를 갖고 들어와 아내 캐롤라인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캐롤라인은 아일랜드에 사는 친정 어머니에게 화상통화를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웃집 할아버지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크리스마스 선물 얘기를 하면서 윌리엄스 부부는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오웬 윌리엄즈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너무 뜻밖의 선물이어서 감동을 표현할 길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윌리엄즈 가족은 선물 가운데 하나를 풀어보니 책이었다고 합니다. 나머지 선물은 책, 장난감 등일 것으로 짐작했습니다.

     

    [[IMAGE|221|center|caption]]

  • 개운조사(1) - 바위에 주먹으로 새긴 글씨 '동천(洞天)'

    경북 상주군 화북면 우복동 길가에 ‘동천’이라 새겨진 바위가 있습니다. ‘동천’은 흔히 신선이 살 만큼 경치 좋은 곳을 이르는 말이지요.  

     

    신기하게도 이 바위에 새겨진 글자의 총 길이와 바위 둘레의 길이가 오장(五丈)으로 같아 ‘오장비(五丈碑)’라고도 불립니다. 

     

    동천 바위 아래 표지판의 설명에 의하면 이 글씨는 조선 4대 서예가 중의 한 분으로 특히 초서에 능통하셨던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31-1586)이 각자한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 글씨는 또한 18세기 상주에서 태어난 고승 개운조사가 새기신 것이라 회자되기도 하지요.  

     

    아마도 그것은 바로 개운조사께서 주석하신 『유가심인 정본수능엄경 환해산보기(瑜伽心印正本首楞嚴經環解刪補記)』(이하 ‘정본수능엄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으로 ‘동천(洞天)’이란 글자를 쓰고 

    손톱으로 ‘한좌(閑坐)’라는 글귀를 새기니 

    돌이 물렁한 흙처럼 부드러워서 

    나의 현명(顯名)을 받아들이네 

    맑은 물 흐르는 반석(磐石) 위에 

    용자(龍子)를 놀게 했노라. 

     

    조사께서 바위를 물렁한 진흙처럼 주물러 ‘동천’ 두 글자를 새기고 맑은 물 흐르는 반석 위에 용으로 하여금 놀게 하였다는 이곳은 경상북도 문경시 농암면 도장산 자락을 흐르는 쌍룡계곡을 말합니다.  

     

    충주에서 문경으로 가는 이화령 터널을 빠져나와 가은과 농암을 지나면 쌍룡계곡에 닿지요. 직진하여 쌍용터널을 지나면 상주 화북면이고, 터널 앞에서 왼쪽으로 용추교(龍椎橋)를 건너 도장산(道藏山)에 안기면 개운조사가 머물며 『능엄경』을 주석하신 심원사(深源寺)에 오르게 됩니다.

     

     

    "개운조사(2)"로 이어집니다. 보러가기(클릭)

  • 불길 뚫고 90대 할머니 구한 스리랑카 불법체류자에 영주권

    화재 현장에서 할머니를 구한 니말 씨(가운데). 출처 : LG복지재단

    불길 속에서 90대 할머니를 구한 스리랑카 불법체류자가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니말 씨는 18일 오전 대구 동구 대구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에서 영주권을 받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편찮으신데 방문해 기쁨을 나누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니말 씨는 이어 “영주권을 받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에게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자신에 관심을 가져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법무부 관계자와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군위군청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경북 군위군의 한 과수원에서 일하던 니말 씨는 지난해 2월 한 가정 주택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주민 등과 함께 불길을 헤치고 들어가 혼자 살던 90대 할머니를 구했습니다.  

    니말 씨는 할머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목, 손목 등에 2도 화상을 입었고 유독가스를 마시는 바람에 폐를 다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법무부는 지난 13일 ‘외국인 인권 보호 및 권익 증진협의회’를 열어 참석위원 만장일치로 니말(Nimal) 씨에게 영주 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민의 생명 및 재산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영주권이 주어진 것은 니말 씨가 처음입니다.  

    니말씨는 지난해 3월 LG복지재단이 수여하는 ‘LG의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상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의상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부상을 입은 사람으로 보상금 등의 예우를 받게 됩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의상자가 된 것은 니말 씨가 처음입니다.  

    이어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니말 씨가 추방당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기타자격(G-1) 체류허가를 내주고 불법체류와 관련된 범칙금도 면제해 줬습니다.  

    또 기타자격(G-1)은 취업활동을 하거나 의료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영주권 부여를 추진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