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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파트 주민 98%가 관리비 인상에 찬성한 까닭

    입주민들이 아파트 관리비 인상에 적극 찬성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Shidong (upload.wikimedia.org/wikipedia/ko/0/0d/Prugio_apt.JPG), CC BY 3.0]

    입주민들이 아파트 관리비 인상을 적극 추진한 아파트가 있습니다. 

     

    경남 양산시 삼호동 웅상 신도시 푸르지오 입주자 대표회의가 최근 입주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투표에서 98%의 주민이 관리비 인상에 찬성했습니다. 

     

    이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비 인상에 찬성한 이유는 경비원과 환경미화원의 해고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2019년 최저임금이 시급 7530원에서 8350원으로 인상되면서 이 아파트는 경비원 10명 가운데 4명을 줄여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거둔 관리비로는 급여 지급이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원을 막으려면 가구당 월 관리비를 4093원 인상해야 했습니다.  

     

    입주자 대표회의는 입주민의 뜻을 묻기로 했습니다. 경비원을 감원할 것인지 아니면 관리비를 인상해서라도 고용을 유지할 것인지를 놓고 투표가 진행됐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전체 987가구 가운데 806 가구가 참여한 투표에서 795 가구가 관리비 인상안에 찬성했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투표용지에 ‘경비원 아저씨 사랑합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중국을 울린 한 소년의 눈물어린 호소

    중국 후난TV의 예능프로그램 '샤오녠슈어'에 출연한 한 소년의 연설이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미지 출처 : 텐센트]

    중국 텔레비전에 출연한 한 소년의 연설이 시청자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중국 후난TV가 제작한 예능프로그램 ‘샤오녠슈어(少年说)’에 출연한 리런즈 군은 자신의 어머니가 배달원이라고 밝힌 뒤 어머니를 존중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리런즈 군은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어떤 일을 하든지 무관하게 모든 사람은 존중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라고 연설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차분하게 연설을 시작했지만, “어떤 고객은 비가 오는 날 배달 시간이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어머니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한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할 때 그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가 우리 어머니와 같은 사람들에게 좀 더 호의를 베풀어 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고객들이 자신의 현관문을 열고 마주한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 아버지가 그토록 끔찍하게 아끼는 여자이자, 내게는 하나뿐인 어머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 주세요” 

     

    리 군의 어머니는 배달 음식 전문 택배업체인 와이마이 소속 배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리 군은 자신의 어머니를 “항상 늦은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전문 배달원”이라고 말하며 고객 중 일부는 배달원이라는 직업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는 “어머니는 자신의 일뿐만 아니라 일을 함으로써 나를 교육할 수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서 “저 역시 소수의 고객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한 영향력을 가진 이들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리런즈 군의 말을 들으며 현장에 있던 청중들은 눈물을 흘리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고 합니다.  

     

    [[IMAGE|264|center|샤오녠슈어 촬영현장에서 리런즈 군을 지켜보던 리런즈 군의 어머니. [이미지 출처 : 텐센트] ]]

     

    당시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 있던 리 군의 어머니는“아들이 나의 직업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할 줄만 알았다”면서 “아들의 말을 듣고 더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도“아들이 부족한 나로 인해서 너무 이른 나이에 철이 든 것은 아닌지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샤오녠슈어는 중국 청소년이 출연해 자신이 겪은 일화와 어려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전국적 인기를 얻어 올해로 세 번째 시리즈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택배 업체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배달 시간이 늦어질 경우 감점을 해 이를 급여에 반영하는 회사가 많다고 합니다. 배달원이 다녀간 뒤 후기를 쓰도록 하는 서비스도 함께 제공됩니다. 악성 댓글이 기준 이상으로 달릴 경우 1000위안(약 17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기도 합니다. 이런 방침 탓에 배달원들은 눈비 속에서도 도착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오토바이 고속 운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러 군의 사연이 방영된 뒤 온라인에는 직업에 귀천이 없는 만큼 모두를 존중하자는 글이 쏟아졌다고 합니다.

  • 제 밥을 덜게 하소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받아야 합니다.“

     

    나눔 단체 JTS의 생각입니다.

    아,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무슨 군더더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신영복 교수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창 밖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달콤한 잠을 잘 권리가 없다……“

     

    ARS라도 누르는 마음, 그것이 사랑 자비의 실천이겠지요.

    나눔의 평화!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제 밥을 덜어 그들과 나누게 하소서.”

  • 빌 게이츠가 지혜를 얻는 비밀 ‘씽크 위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이미지 출처 : 플리커 Steve Jurvetson (www.flickr.com/photos/jurvetson/4368494308), CC BY 2.0 라이센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로 20년 이상 세계 1위 부자에 올랐습니다. 

     

    30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출연해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공익사업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을 갖는 이로도 이름이 나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1년에 한 두 번씩 북서 태평양에 인접한 삼나무 숲 속의 작은 2층 집에 머물며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시간을 보냅니다. 

     

    이 때만큼은 가족과도 떨어져 지냅니다. 빌 게이츠 판 무문관이라고 할까요.

     

    씽크 위크를 통해 빌 게이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회사 경영과 관련한 생각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회사나 재단을 통해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제안도 검토합니다.

     

    [[IMAGE|260|center|빌 게이츠의 아이디어 비결 중 하나는 바로 1년에 1~2회 갖는 '생각주간(Think week)'이다. 이 기간에 그는, 문명과 고립된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회사 경영 등에 대해 생각한다.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게이츠노트] ]]

     

    빌 게이츠는 1995년의 씽크 위크에서 IT 기업 역사상 가장 통찰력 있는 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짧은 글 인터넷 물결(Internet Tidal Wave)을 씁니다.

     

    그는 이 글을 토대로 마이크로소프트 임직원들에게 다가오는 인터넷 서비스 물결이 기술과 산업 전반에 지각 변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를 개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태블릿PC도 씽크 위크에서 구상했다고 합니다.

     

    [[IMAGE|261|center|마이크로소프트사의 태블릿PC는 빌 게이츠의 '생각주간'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

     

    빌 게이츠가 생각주간을 보내는 공간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한 빌 게이츠의 ‘무문관’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자신에게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책들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고, 다른 벽에는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다이이트 음료가 들어 있는 작은 냉장고가 거의 유일한 전자제품이구요. 하루 두 끼를 먹으며 빌 게이츠가 하는 일은 생각하고 읽고 쉬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씽크 위크의 효과를 깨달은 뒤 마이크로소프트의 간부들도 1년에 2주씩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괜찮아'라는 말은 상대방을 신뢰하고 기대한다는 아름다운 언어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왜 그랬니?’

    ‘이거 어떻게 할 거야?’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추궁과 질책을 담고 있는

    과거의 언어라면

     

    ‘괜찮아’는

    그 존재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언어이며,

    기다림의 언어입니다.

     

    제가 한 잘못된 일에 잔뜩 주눅 들어있는 아이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가장 다정한 말투로, 표정으로, 눈길로 말해줍니다.


    “얘야, 괜찮아.”

    “야, 괜찮아, 임마!”

    “아빠, 괜찮아요.”

    “여보, 괜찮아.”

     

    그리고

     

    눈을 맞춥니다.

    꼬옥 안아줍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줍니다.

                     .

                     .

                     .

    자주 쓸수록 참 괜찮은 말

    ‘괜 ․ 찮 ․ 아’

  • 1640억 로또 당첨 부부, 당첨금 50명에게 기부하다

    유럽의 로또인 유로밀리언에 당첨된 코놀리 부부. 코놀리 부부는 당첨된 금액을 가족, 친구, 자선단체 등에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이미지 출처 : 야후뉴스 캡쳐

    새해 첫날 유로밀리언 로또에 당첨돼 1500만 파운드를 받게 된 부부가 당첨금을 지인과 자선단체들에 나눠주겠다고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북아일랜드에 사는 프랜시스 코놀리(52)와 패트릭 코놀리(54) 부부는 4일 수도 벨파스트 외곽의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첨금 1640억 원을 가족과 친구, 자선단체들에 나눠주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프랜시스는 “당첨금으로 우리 부부의 미래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이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싶었다"라며 “새해 첫날 당첨된 사실을 안 뒤 사흘 동안 당첨금을 나눠주고 싶은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한 일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부는 당첨을 확인한 순간 대략 50명의 이름이 떠올랐다면서 그들이 우리가 돈을 전했을 때 지을 행복한 표정을 보는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남편인 패트릭은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제겐 멋진 아내, 멋진 가족, 멋진 친구들이 있습니다. 돈이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행복합니다. 삶으로부터 이미 충분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IMAGE|257|center|유로밀리언에 당첨된 코놀리 부부가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다. 코놀리 부부는 당첨된 금액을 가족, 친구, 자선단체 등에 나눠주기로 결심했다. 이미지 출처 : BBC뉴스 캡쳐]]

     

    부부는 얼마를 나눠주기로 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습니다.  

     

    자원봉사자를 위한 온라인 미디어에서 일하다 퇴직한 프랜시스는 “은퇴 뒤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면서 “이제는 뭔가 할 수도 있게 된 만큼 상담 치료에 관한 박사학위를 따고 싶다"라는 뜻을 밝혔습니다.  

     

    부부는 로또 당첨금을 나누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이번에 돕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오면 가슴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 진묵조사(2) - 8년 정진 끝에 대각을 이루다

    진묵조사는 불문에 귀의한 지 8년 만에 대각을 이루었다. [위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주지 스님과 희 노장은 어린 동자의 말에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원래 희 노장은 봉서사 주지를 지낸 스님이었는데 성격이 불같고 괴팍했습니다. 시봉하는 사미를 번번이 쫓아내는 바람에 겨울에 거처하는 방의 불도 손수 때고 지낼 정도였습니다.  

     

    희 노장은 일옥을 자기 방에 데리고 들어가 저녁을 먹였고 그날 이후 일옥은 8년 동안 희 노장을 시봉하게 되었습니다. 

     

    주지스님은 일옥을 영리한 아이로 생각하고 신장을 모신 단에 향불을 올리고 예배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일을 맡기고 얼마 되지 않아 주지스님 꿈에 신장들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 모시는 것이 우리 신장의 할 일인데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향을 올리고 예배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발 다시는 아침저녁으로 예불하게 하지 마시고 우리가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해 주십시오.” 

     

    봉서사 스님들은 어린 동자승을 남달리 보아 ‘작은 부처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희 노장이 입적하자 일옥은 삼년상을 지내고 난 후,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름은 ‘진묵’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진묵이 200리 넘는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평야와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변산이었습니다. 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월명암은 신라시대(691년) 부설거사가 창건하여 가족이(묘화부인, 등운, 월명) 모두 수행하여 득도한 곳입니다. 월명사에서 진묵은 일체의 말을 끊고 묵언 정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오직 참선에 몰두했습니다. 

     

    낙조대에 앉아 수행을 하던 어느 날 석양 무렵이었습니다. 붉은 해가 서서히 내려오며 그 기운으로 바다를 시뻘겋게 물들이더니 진묵을 그대로 품어 안았습니다. 그 순간 진묵은 오랜 묵언 수행을 깨고 기뻐하며 소리치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습니다. 음력 칠월 보름 구순안거 해제 날 8년 적공 끝에 대각을 이룬 것입니다. 

     

    진묵은 깨달음을 얻은 뒤 궁벽하고 쇠락해가는 절을 주로 찾아다니며 민중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조선은 당파 싸움과 전쟁으로 극심한 혼란기였습니다. 진묵은 헐벗고 가난한 민중과 어울리며 그들의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부처님이라 불리며 그들의 의지처가 되었습니다. 초의선사가 쓴 <진묵대사유적고>에는 그와 관련된 신기한 일화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봉곡선생으로 불리던 유학자 김동준은 진묵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진묵스님에게 <주자강목>을 한 질을 빌려주며 사람을 딸려 보냈습니다. 스님은 걸어가면서 한 권씩 읽은 다음, 책을 떨어뜨리며 갔습니다. 따라가던 사람이 책을 모두 주워가지고 가서 봉곡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나중에 봉곡이 진묵을 만나 그 까닭을 묻자, 진묵이 대답했습니다. 

     

    “고기 잡은 뒤에는 고기 잡는 통발은 잊는 법이네.” 

     

    봉곡이 내용을 물어보니 진묵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내용을 꿰고 있었다고 합니다. (계속)

  • 불교 강의하는 푸른 눈의 신부 교수님

    서명원 베르나르도 신부는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처럼 그는 매일 1시간 가량 참선을 한다. [이미지 출처 : 경상북도 유튜브 캡쳐]

    25년 이상 불교 수행을 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 신부가 있습니다. 예수회 소속으로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를 가르치는 서명원 베르나르도(64) 신부입니다. 

     

    개량 한복을 자주 입고 다니는 베르나르도 신부는 매일 1시간가량 참선을 합니다. “중심을 잃어버릴 수 있어서”라는 게 이유입니다. 

     

    그는 참선을 시작한 시기를 1996년 12월 말이라고 또렷이 기억할 정도로 참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학자로서 20여 년간 성철 스님의 선사상을 연구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난 2015년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과 열반 20주년을 맞아 <가야산 호랑이의 체취를 맡았다-퇴옹성철, 이 뭣고?>(서강대 출판부)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베르나르도 신부는 조계종 법사로서 2007년부터 북미와 유럽에서 간화선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계 캐나다 사람으로 귀화한 그는 불어를 주로 쓰는 캐나다 퀘벡주, 스위스, 벨기에, 프랑스 등에서 참선을 가르칩니다.

     

    베르나르도가 세례명이지만 그에게는 천달이라는 법명도 있습니다. 법명을 주신 분이 천주교 신자여서 하늘 천 자에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라는 점에서 통달할 달자를 합해지었다고 합니다. 

     

    불교 경전 구절 가운데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 응당 머무르는 바 없이 마음을내라)을 가장 좋아한다는 베르나르도 신부는 법명대로 하늘의 이치를 통달하고 싶은 것이 희망사항이라고 합니다.

     

    종교와 종교 갈등에 대해 베르나르도 신부는 분명한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베르나르도 신부는 2018년 부처님 오신 날에 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종교라면 궁극적인 목적지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죽음을 벗어난 생사에서 하나의 경지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그 목적지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는 상호 상생적인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가능한 서로를 비판할 때 조심스럽게, 아소카 황제가 기원전 3세기경에 인도를 다스리셨을 때 말씀하신 대로 남을 비판하기 전에 자기 종단을 그만큼 비판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캐나다 관제사들, ‘셧다운’ 미 관제사에 피자 선물

    미국 관제사들이 캐나다 관제사들로부터 받은 피자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미국항공관제사조합 뉴어크국제공항 지부(NATCA EWR) 트위터]

    캐나다 관제사들이 연방정부의 셧다운으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일하는 미국 관제사들에게 피자를 선물했습니다.

     

    14일 CNN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 주말 동안 캐나다항공관제사연맹(CATCA)이 미국 연방항공청(FAA) 소속 관제탑 49곳에 피자 350여 판을 보냈다고 합니다.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사태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국 관제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피터 더피 캐나다 항공교통관제협회장은 언론에 “11일 월급날을 맞았지만 셧다운 사태로 급여를 받지 못하고 있는 미국 동료와의 연대를 보여줄 방법을 찾아왔다"라며 피자 보내기 운동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피자 보내기 운동의 시작은 캐나다 애드먼턴 관제탑 직원들이 미국 알래스카 앵커리지 관제사들에게 파이를 보내면서 시작됐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캐나다 다른 지역의 관제탑들도 동참하기로 하면서 피자 보내기 운동으로 발전했다고 합니다. 

     

    캐나다 관제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피자를 보낼 곳을 정하고 있습니다. 알버타 소속 포트 맥머레이 관제사들은 석유 마을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텍사스 알파소 관제사들에게 보냈습니다. 

     

    소셜미디어에는 피자 선물을 받은 미국 관제사들의 사진과 감사 인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IMAGE|254|center|caption]]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은 멕시코 국경의 장벽 설치에 57억 달러의 예산 투입을 트럼프 대통령과 이에 반대하는 민주당이 맞서며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발생했습니다.
     

  • 진묵조사(1) - 부처가 되려 절에 왔다는 일곱살 아이

    우리나라의 고승 중 한 분인 진묵조사는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해 스님이 되었다.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진묵조사는 조선의 대 선승으로 민중들이 살아있는 부처로 믿으며 따랐으며 수많은 일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진묵은 1562년 김제군 만경면 불거촌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이름은 일옥입니다.  

     

    일옥이 태어날 무렵 3년 동안이나 풀과 나무들이 시들자 사람들은 큰 인물이 날 징조라 했습니다. 일옥은 어릴 때부터 비린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며 마음이 어질고 총명하여 마을에서는 불거촌에 생불이 태어났다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5살에 여읜 일옥은 7살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전주 서방산에 있는 봉서사로 출가했습니다. 서방산은 ‘서방정토’ 즉 아미타불의 극락세계라는 뜻입니다. 그 서방산 산봉우리들이 양쪽으로 휘감은 자락 안에 봉황이 깃든다는 봉서사가 자리했습니다. 

     

    어느 날 봉서사 주지 대월 화상이 칠순을 갓 넘긴 희 노장에게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간밤에 석가모니불께서 천 이백 대중을 거느리시고 우리 절에 올라오시는 꿈을 꾸었습니다.” 

    “허, 아주 좋은 꿈을 꾸셨소. 귀한 손님이 오실 것이오.” 

     

    이 말을 들은 대중들은 마음이 설레어 도량을 쓸고 대웅전 큰 법당에서 예불을 드렸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나오는데 대웅전 마당에 칠팔 세 되는 동자가 서 있었습니다. 

     

    “너는 누구냐?” 

    “이름은 일옥이고 일곱 살 먹었습니다.” 

    “어디서 온 동자인고?” 

    “네, 저의 집에서 왔지요.” 

     

    대중들은 웃으며 겨우 일곱 살 된 아이가 왔다고 떠들며 뿔뿔이 자기 자리로 흩어졌습니다. 그 자리에 주지스님과 희 노장만 남았습니다. 

     

    “어떻게 왔느냐?” 

    “어머니가 일주문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무슨 일로 왔는고?” 

    “부처가 되려고 왔습니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느냐?” 

    “스님은 숨 쉬는 것을 누구한테 배우고 아셨는지요?”(계속)

     

     

    진목조사(2)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