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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달 장애인을 위한 '보호자 품 같은 스마트 조끼'

    발달 장애인에게 심적 안정감을 주는 특수한 조끼가 국내 스타트업 기업에서 개발됐습니다.

     

    "허기(HUGgy) 조끼"라 불리는 이 조끼는 발달 장애인의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돌봄드림'이라는 스타트업에서 개발한 공기 주입식 조끼입니다. 조끼를 체형에 맞게 잘 착용한 상태에서 손펌프를 통해 공기를 주입해, 상체에 압력을 주어 마치 누군가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주어 안정감을 주는 방식입니다. 디자인 또한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 없이 누구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디자인이라, 조끼로 인해 차별받을 가능성을 줄였습니다. 

     

    각종 학술 연구, 논문에서 포옹이나 무게감 있는 조끼 착용 등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합니다. 신체의 적절한 압력이 가해지면, 감각적으로 예민하게 느껴지는 자극을 줄여주기 때문인데요. 한 연구에 의하면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무게감이 있는 중량조끼를 착용하게 한 결과,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이 약 57% 감소하고, 수업의 참여도도 평균보다 약 28% 증가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발달장애 아동들을 위한 중량조끼들이 만들어 졌지만, 납을 채워 중량을 주는 방식이라 아동의 성장에 방해되고,
    오래 입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가격 또한 비싸고 구하기도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돌봄드림의 김지훈 대표는 발달 장애인을 돕는 봉사활동을 하던 중, 발달 장애 아동에게 기존의 중량조끼를 입히는 것을 보고, 기존 제품에 단점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안아주는 느낌을 다른 방식으로 구현할 수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허기조끼를 개발하게 됐다고 합니다.

     

    현재는 조끼와 손펌프로만 구성된 제품만 있지만,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 버전도 곧 선보일 계획입니다. 허기 스마트 버전은 생체신호 측정 센서가 추가돼, 조끼 착용자의 피부 전도, 심박수 등의 생체 데이터를 분석, 조끼의 공기압을 자동으로 조절한다고 합니다.

     

    허기 조끼의 개발로 김지훈 대표는 작년 8월 포브스의 '아시아의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 4월 '혁신의 오스카상'으로도 불리는 '에디슨 어워드'에서 동상을 수상했습니다. 

     

    김지훈 대표는 허그 조끼가 발달 장애인뿐만 아니라 우울증, 수면 장애, 돌봄이 필요한 시니어 등 다양한 사람들에게 사용되고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착용자의 정신건강 관리에 도움을 주는 멘탈 헬스리포트를 발행하는 것을 목표로 나아갈 것이라며 포부를 내세웠습니다.

  • 정토회 '한국 800년 대운 기원' 만민법회 13일 개최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국민통합을 기원하는 대규모 법회를 엽니다.

     

    정토회는 6월 13일 전북 장수군 죽림정사에서 '6.13 만민 대법회'를 개최합니다.

     

    용성 조사 탄신 160주년을 맞아 열리는 법회로, 정부 3부 요인과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천도교 등 종교 지도자와 국내외 각계 대중 1만여 명이 참석합니다.

     

    용성 조사는 전북 남원군 하번암면 죽림리(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 법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입니다. 다음은 법륜 스님의 말씀입니다.

     

    "올해는 용성 조사님의 탄생 160주년입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용성조사님께서는 1939년 독립운동이 일망타진되는 그 해로부터 60년이 지난 1999년부터 대한민국의 대운이 열리게 되니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4년에 이것을 고정확정하는 대법회를 열라고 유훈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성 조사 탄생 160주년이 되는 올해 용성 조사님의 유훈에 따라서 용성 조사님의 탄생지인 장수 죽림정사에서 대한민국 800년 대운의 길을 여는 만인대법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6.13 만민대법회에서는 용성조사님의 유훈에 따라 세 가지를 염원하고자 합니다. 첫째, 지금 남한과 북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자 합니다. 둘째, 남한 안에서도 동서가 갈려서 국민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 대통합을 염원하고자 합니다. 셋째, 대한민국이 고속 성장을 해오다가 지금 정체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염원하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를 기원하는 국민 대법회가 바로 6.13 만민대법회입니다." (정토회 '스님의 하루'에서 발췌)

     

    물론 이 법회는 대한민국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법륜 스님의 스승이신 도문 스님은 종교를 초월해 대한민국의 진리의 조국이 되자는 바람을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일에는 길조가 생긴다고 하는데, 6.13 만민대법회를 앞두고도 그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법륜 스님이 행사 준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전북 장수 죽림정사를 찾았을 때 선명한 해무리가 떴습니다.

     

    한반도와 세계평화, 그리고 인류의 영적 성장을 기원하는 '6.13 만민대법회'를 축복하는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까요.

  • 비만, 과체중일 때 저녁 운동이 가장 효과적

    과체중, 비만 또는 대사 장애가 있는 사람은 중·고강도 운동(Moderate to Vigorous Physical Activity, MVPA)을 저녁에 하는 것이 혈당 수치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습니다.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의 조나탄 R 루이스(Jonatan Ruiz Ruiz) 교수의 연구팀은 현지시간 6월 10일, 학술지 비만(Obesity)에서 “저녁 시간에 이뤄지는 중·고강도 운동이 혈당을 조절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은 과체중, 비만 또는 하나 이상의 대사 장애가 있는 총 186명의 성인(평균 연령 46세)을 대상으로 시간별 포도당의 패턴을 측정했습니다. 이들은 참가자들의 손목에 부착된 분석장치를 통해, 신체활동 시간과 그 강도, 그리고 포도당 수치의 변화를 14일 간 수집했습니다.

     

    수집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일 총 중·고강도 운동량의 50% 이상을 저녁(오후 6시~자정)에 한 이들은 혈당 수치가 유의미하게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설명했습니다. 특히 혈당 조절 장애가 있는 참가자에게 이러한 현상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고 연구팀은 덧붙였습니다.

     

    연구팀은 “그간 중·고강도운동과 성인의 포도당 항상성과의 상관관계는 충분한 연구가 이뤄져 왔었다. 그러나 언제 중·고강도 운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았었다”고 실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번 연구결과는 중·고강도 운동을 할 때 시간 역시 중요함을 시사한다. 특히 저녁에 중·고강도 운동을 하면 과체중, 비만 또는 하나 이상의 대사 장애가 있는 이들의 포도당 항상성에 유익한 효과가 있다”라며 운동 시간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 이효리의 서울체크인, 새 장르 힐링 예능 ‘힐능’의 시작

    서울체크인에 출연한 이효리와 박나래

    이효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얼마전 시작된 서울체크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울체크인은 서울에스 스케줄을 마친 이효리씨가 누구를 만나고 어디서 자고 무엇을 할지를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입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 공개되자 이 프로그램이 방영된 OTT 채널의 가입자가 늘어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체크인을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겠지만 저는 힐링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합니다. 억지로 조어를 한다면 힐링과 예능을 합한 힐능이라고나 할까요?

    서울체크인 1화를 보면서 그 생각은 확신이 됐습니다. 1화에서 이효리씨가 깊게 만나는 사람은 박나래씨입니다. 두 사람은 칵테일바에서 만나 술을 마시고 박나래씨 집으로 갑니다.

     

    재미있는 장면이 많았지만 저는 이효리씨가 직접 만들어서 전해준 향꽂이에 특히 눈길이 갔습니다.

    긴 머리의 여성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의 향꽂이인데 머리 위에 향을 올려두면 입으로 연기가 나옵니다. 이 여성의 가슴에는 하트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효리씨는 박나래씨에게 향꽂이를 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나래가 이제 사랑의 말만 하라고..사랑에서 나오는 말만 하라고 이걸 만든거야.”

     

    이효리씨가 한 말은 어마어마한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살면서 사랑에서 나오는 말만 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효리씨는 박나래씨가 그런 삶을 살기를 기도하고 그렇게 되기를 굳게 믿으면서 이 향꽂이를 만들었을 겁니다.

    이효리씨는 지난해 성희롱 논란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박나래씨에게 “사람이니까 실수는 피할 수가 없지만 진짜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미안해한다면 시청자분들도 결국 이해해주시는 것 같아“라고 위로했습니다.

     

    첫 화를 보면서 저는 이효리씨가 서울체크인을 통해 많은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는 연예인들에게 큰 위안과 힘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에서도 이효리씨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말을 꽤 많이 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행복한 삶에 대한 조언입니다.

    “제주도에서도 마음이 지옥같이 사는 사람도 많아. 서울에서도 얼마나 즐기며 사는 사람이 많니, 어디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있는 자리 그대로 그냥 너무 좋다 만족하면서 그렇게 사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

     

    이효리씨는 연예인 가운데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눈에는 이효리씨가 어떤 삶을 사는 것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지 깨달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어떤 언론에서는 ‘힐능’ 프로그램에 등장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이효리씨를 ‘마더 효레사’라고까지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효리씨가 세상에 미칠 선한 영향력을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 류인학의 우리명산 답산기-새 시대를 여는 곳 계룡산

    계 룡 산

     

    ● 새 시대를 여는 곳

     

    계룡산 (鷄龍山). 
    이 산은 세상을 구하고 새 시대를 열어줄 대성자(大聖者), 구세성인 (救世聖人)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의 간절한 꿈이 가득 서려 있는 산이다. 옛 선지자들은 조선조의 도읍인 한양(서울) 땅의 지기(地氣)가 쇠약해지면 계룡산이 나라의 중심지가 되리라고 예언했다.


    예언서 〈삼한산림비기 (三韓山林秘記)》에 이런 얘기들이 나온다.


    계룡산 아래에 서울이 될 만한 땅이 있다. 정씨(鄭氏)가 여기에다 서울을 세우리라. 계룡산 시대는 한양 시대보다 짧을 것이나, 밝고 훌륭한 임금과 올바른 신하가 연이어 나오리라.

     

    또 때를 맞아 불교가 크게 일어난다. 어진 재상, 슬기로운 장수, 훌륭한 종교인과 문인들이 무수히 출현한다. 이들이 아름다운 문화(풍속)를 활짝 꽃피우리니 보기 드문 일이로다. 참으로 드문 일이로다.

     

    나라의 도읍터로는 (계룡산 아래) 금강(錦江)이 가장 좋고 송악(개성)이 그 다음이다. 한양(서울) 땅은 셋째요, 넷째는 평양, 다섯째는 경주다. 한데 경주는 바다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다. 그 다음은 원주인데 터가 너무 좁다.

     

    강화도의 마리산은 비록 바다 한가운데에 있으나 반드시 왕이 머물 땅이다. 그렇지만 얼마 못 가서 떠나게 된다.

     

    〈감결 (艦))이라는 예언서에는 또 이런 얘기들이 들어 있다.

     

     곤륜산에서 뻗어온 산맥이 백두산에 다다랐다. 곤륜산 · 백두산 정기(精氣)가 평양에 뻗치었으나, 평양의 천년운(千年運)이 이미 끝났다.

    (이에) 그 정기가 송악 (개성)으로 옮기어 송악땅이 (고려) 5백 년 도습지가 되었다……. 곤륜산·백두산 정기가 다음엔 한양(서울) 땅으로 옮아갔다….

     

    한양의 운수가 다한 다음에는 도읍지의 기운이 금강산, 태백산, 소백산을 거쳐 계룡산으로 들어온다. 이에 정씨(鄭氏)가 계룡산 밑에 도습을 세우니 계룡산 시대는 8백 년을 간다.

     

    그 다음엔 가야산이 조씨(趙氏)의 천 년 도읍터가 된다. 이어서 범씨(范氏)가 전주에 도읍을 세우니 그 시대는 6백 년간 이어진다. 전주의 지기가 다하면 왕씨(王氏)가 다시 일어나 송악을 도읍으로 삼는다.

     

    옛 선지자들은 왜 계룡산을 우리 나라 최고의 도읍터로 꼽았을까. 계룡산에 서린 정기가 그만큼 빼어나기 때문이리라.

     

    동해바다를 옆에 끼고 남으로 내려오던 백두대간은 태백산을 빚어올린 다음 거기서 방향을 서남쪽으로 튼다. 소백산을 거쳐 삼남(三南) 지방을 동서(東西)로 가르며 계속 남하한다. 월악산, 속리산, 덕유산 등을 솟아올린 다음에 마지막으로 지리산에 이르러 크게 용틀임한 다음 긴 여정을 마친다.

     

    백두대간이 지리산에 이르기 전, 백운산 어름에서 큰 산맥 하나가 백두대간과 갈라져 서쪽으로 뻗어간다. 이 산맥을 금남호남정맥 (錦南湖南正脈)이라 부른다.

     

    금남호남정맥은 덕대산에서 다시 방향을 틀어 북쪽으로 향하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 등을 솟아올린다. 마이산에서는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남북으로 향한다. 여기서 북쪽으로 뻗는 산맥은 금남정맥 (錦南正脈), 남쪽으로 뻗는 산맥은 호남정맥 (湖南正脈)이라 불리운다.

     

    계룡산은 금남정맥의 끝자락에 솟아오른 명산이다. 금남정맥은 마이산을 지나 운장산, 대둔산 등을 빚어올리며 계속 북상하다가 금강에 이르러 긴 여정을 마치면서 남은 기운을 모두 떨쳐 우뚝 일어서니 바로 계룡산이 된다.

     

    백운산에서 출발하여 계룡산에 이르기까지, 금남정맥은 태극(太極) 형상으로 굽이치며 뻗는다. 그래서 계룡산을 산태극(山太極)이라 부르기도 한다.

     

    금남정맥이 백두대간과 갈라진 곳은 또 금강의 발원지(發源地)다. 금강은 금남정맥의 동쪽 기슭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다가 계룡산을 북쪽에서 휘감아주며 서해바다로 들어간다. 금강 또한 금남정맥처럼 태극 형상으로 흐른다. 이에 수태극(水太極)이라 불리우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풍수가들은 계룡산을 산태극·수태극이 어우러진 천하명산이라 높이 예찬하며 우러른다.

     

    <주역>에 따르면 태극은 삼라만상의 근원이다. 태극에서 만물(萬物).만상(萬像)이 갈라져 나왔다. 산맥도 강물도 태극 형상으로 굽이쳐 왔기 때문에 계룡산을 극히 귀하게 평가한 것이다.

     

    계룡산은 최고봉이 해발 845미터 밖에 안 된다. 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곳곳에 수두룩하게 솟아오른 우리 나라에서 계룡산은 그리 높은 산이 아니다.

     

    한데 계룡산 최고봉인 천황봉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엄청나게 넓은 시야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맑은 날, 계룡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소백산 어름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연봉(連峯)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백두대간의 모습은 흡사 거대한 용과 같다.

     

    서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금북정맥 (錦北正脈)과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북쪽으로는 경기도로 뻗어간 한남정맥(漢南正脈)이, 남쪽으로는 내장산 · 무등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 (湖南正脈)이 보인다.

     

    전망이 이렇게 탁 트여 그 시야가 남북 천여 리, 동서 5백여 리에 이르니 과연 엄청난 기상을 품고 있는 산이다. 계룡산만큼 전망이 넓은 산은 우리 나라에 몇 안 된다.(계속)

  • 성자들의 시대19-최상승의 경지는 가장 낮은 마음

    두 사람이 선정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장보러 갔던 식구들이 돌아왔다. 혜원일 보고 모두들 매우 반가워했다.

     

    "언니, 아휴, 더 젊어졌네요. 십대 소녀 같아요! 공부가 아주 잘됐나 봐요."

    지법 스님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녀는 혜원이보다 10살 정도 아래였다. 긴 얼굴과 커다란 두 눈이 서글서글한 부위기를 자아냈다. 용모처럼 성품도 시원시원했다.

     

    "어쩜 이렇게 예뻐졌어. 선녀가 다 됐네."

    박보살은 혜원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그녀는 지현 스님보다 위였다. 마흔 여덟인데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흰머리가 꽤 많았다. 그래도 개심사에 온 뒤로는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달덩이처럼 둥그런 얼굴과 온순한 눈빛이 후덕하게 보였다.

     

    윤처사와 혜원인 서로 초면이었다. 지현 스님이 인사를 시켰다. 윤처사는 쉰셋이었다. 키가 작았으나 체격이 단단했고 활기가 넘쳤다. 흰머리가 얼마 안 보였다. 얼굴은 네모 반듯했고, 조그마한 눈에서 맑은 광채가 뿜어 나왔다. 당차면서 지혜로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곰보였다.

     

    윤처사, 윤석칠도 필섭이처럼 벽운 선생의 도반인 호산 스님에게서 풍수학을 배웠다. 그는 본래 심마니였다. 정을 나누는 여자는 있으나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았다.

     

    그는 산중에서 우연히 호산 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호산 스님은 그에게 풍수학과 불법을 가르쳤다. 다가오는 새 시대, 후천시대에 대해서도 많은 얘길 해주었다. 그런 다음 지난 봄에 그를 개심사로 데려왔다.

     

    윤처사와 박보살, 지법 스님, 이들 세 사람은 아직 벽운 선생을 모른다. 하지만 이들도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될 사람들이었다. 혜원인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오후였다. 불공드리러 왔던 신도들이 돌아가고, 개심사 식구들은 법당에서 정진중이었다.

    모두들 고요히 앉아 있는데 젊은 남자 여덟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여덟 명 다 감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성큼성큼 법당 문 앞까지 왔다. 박에서 안을 잠시 기웃거리더니 안마당으로 내려가 서성거렸다.

     

    이들이 오자 개심사 경내의 기운이 약간 달라졌다. 이들한테서 탁하고 거친 기운이 뿜어 나왔다. 그 때문에 지극히 순수했던 정기가 많이 흐려졌다. 그러나 법당 안의 기운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없이 맑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 감돌았다.

     

    혜원인 진작부터 심안으로 사내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아랫마을을 지나 개심사 입구로 들어섰을 때부터였다. 그들은 이틀 전 묘법대로 몰려왔던 남자들이 사형제들이었다. 그들의 공력은 묘법대로 몰려왔던 남자들의 사형제들이었다. 그들의 공력은 묘법대에 왔던 패보다 훨씬 높았다. 그네들 문중에서 최고의 고수들이었다.

     

    지현 스님이 인기척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들이 지현 스님에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지현 스님이 그들에게 물었다.

     

    "주지 스님 좀 뵈려고 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얼굴이 해맑고 안광이 강렬한 젊은이였다. 말투는 정중했다.

     

    "제가 주집니다. 왜 그러시죠?"

     

    "아, 저희는 수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묘법대에서 며칠간 공부 좀 했으면 하는데요.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묘법대엔 지금 다른 분이 공부중이십니다. 그분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저희도 가지 않습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시지요."

     

    지현 스님의 말에 사내들은 실망스런 낯빛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냥 물러간 게 아니었다. 그들은 개심사 경내를 벗어나 급히 묘법대로 향했다.

     

    혜원인 밥당에 앉아 심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현 스님이 법당으로 되돌아와 다시 선정에 들자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리로 진기를 끌어내린 다음 묘법대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혜원인 길로 가지 않고 숲속으로 들어가 산비탈을 타고 올라갔다. 그녀가 지나치는 데마다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는 사내들보다 한참 앞서 묘법대에 이르렀다.

     

    명천인 여전히 굴속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혜원인 굴 앞 평지에 앉아 사내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사내들이 근처에 왔다.

     

    사내들한테서 날카로운 흉기가 뿜어 나왔다. 혜원이 타심통으로 사내들의 마음을 얼른 헤아려 보았다. 사내들은 혜원일 만나면 가차없이 공격할 계획이었다.

     

    사내들이 가까이 오자 나뭇가지 사이에서 노닐던 새들이 바짝 긴장했다. 지저귀지도 않고, 날갯짓도 멈췄다. 혜원인 그들이 다치게 될까봐 심언법을 써서 그들에게 머릴 피하라고 일렀다. 새들은 혜원이가 마음으로 전하는 말을 알아듣고 멀찌감치 날아갔다.

     

    혜원인 명천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지닌 공력의 반으로 굴앞을 막았다. 나머지 반으로는 마당에 기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모아 선정에 들었다.

     

    선정에들며 양신을 밖으로 내보냈다. 혜원의 양신은 20여 미터쯤 되는 허공 위에 혜원과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내들의 눈에는 그 양신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묘법대로 올라온 사내들은 선정에 든 혜원에게 의혹에 찬 눈빛을 보내면서 잽싸게 그녀를 둘러쌌다. 혜원이 그들의 포위망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 형세였다.

     

    "여보세요!"

     

    한 사내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혜원을 깨우려 했다. 혜원인 미동도 않고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여보세요!"

     

    사내가 더욱 큰소리로 불렀다. 혜원인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또 다른 사내가 혜원에게 접근하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세 걸음을 옮기고는 튕기듯 뒤로 미끄러져 나갔다. 혜원이 만들어 놓은 기막에 밀렸던 것이다.

     

    그러자 사내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올렸다. 양손에다 공력을 최대한 모은 다음 동시에 혜원일 향해 힘껏 내뻗었다. 그들의 공력을 맞고 혜원의 기막이 약간 흔들렸다. 그렇지만 뜷리지는 않았다.

     

    사내들이 내뿜은 공력이 기막에 반사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나무 몇 그루가 그 공력을 맞았다.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리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혜원은 자신의 몸을 잊고 의식을 오로지 양신에게 집중했다. 혜원 자신과 양신 속으로 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기막이 더욱 견고해졌다.

     

    여덟 명의 협공을 받고도 혜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고 사내들은 깜짝 놀랐다.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재빨리 두 사람씩 짝을 이뤄서 다시 공격했다. 이번에도 기막은 뚫리지 않았다. 혜원인 잠든 사람처럼 고요히 앉아 있었다.

     

    사내들은 네 사람씩 짝을 이뤄 온 힘을 다해 세 번째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공격도 허사였다. 사내들이 날린 장력이 사내들 쪽으로 되돌아왔다. 사내들은 탈진한 데다가 강한 장력까지 맞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났다. 사내들은 무척 괴로워했다. 곳곳의 혈도가 막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 때, 혜원이 얼른 양신을 거둬들이고 선정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재빨리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들이 몸에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내들은 그제야 기운을 되찾았다. 막혔던 혈도가 풀리고,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숨이 트이며 맑고 시원한 기운이 공기과 함께 쑥쑥 들어왔다.

     

    "최고의 무공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 되려고 할 때 얻을 수 있어요. 누굴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최상승의 경지에 못 올라요. 눈에 안 보이는 미물중생까지 하늘처럼 섬겨 보세요. 그러면 무상의 공력을 얻을 거예요."

     

    혜원이 여덟 명 모두에게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고 나서 타이르듯 말했다. 사내들은 고개를 푹 꺾었다. 너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서들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항상 정도를 따르세요."

     

    혜원인 보살의 웃음처럼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사내들을 둘러 보았다 한없이 온화한 혜원의 말에서 사내들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채 밑으로 내려갔다.

     

    "안녕히 가세요."

     

    혜원이 인사를 했으나 단 두사람만 돌아서서 혜원에게 목례를 건넸다. 두 사람 다 눈빛이 깨끗했다. 삿된 사람들 같지 않았다. 혜원인 타심통으로 두 젊은이의 마음을 보았다. 그들은 의롭지 않은 일에 동참한 걸 괴로워했다. 자신들의 처지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또, 혜원이 한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두고 있었다.

     

    혜원인 문득 그들과 자신 사이에 깊은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숙명통으로 그들의 미래를 보았다 언젠가 그들이 자신을 찾아와 도반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보였다.

     

    바깥 세상에서는 무협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여파로 특이한 무술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꽤 생겨났다. 그들 중 일부는 산으로 들어와 무예를 닦았다. 오직 남을 제압하기 위해 닦는 무술은 사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초능력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신통한 초능력의 비법을 소개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고, 그것을 지도하는 단체들도 생겨났다. 그저 신통한 능력이나 얻으려는 사람들도 사도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사도가 창성하는 시대이니 두 젊은이는 이 시대의 탁류에 휩쓸려 헤매는 것이었다. 하나 그것은 또 그들이 전세에 지은 인과의 과보이기도 했다. 과보를 다 받은 뒤에 정도를 밟게 될것이 분명했다.

     

    혜원이 두 젊은이를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마음으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었다. 그 내면의 소리는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 같았다.

     

    혜원일 부른 것은 나무들이었다, 묘법대 주변의 나무들이 사내들이 내뿜은 장력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했다. 외상은 별로 없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내상은 심했다.

     

    혜원인 마음으로 자신의 진기를 나무들에게 보내 주었다. 혜원의 몸에서 깨끗한 진기가 뭉클뭉클 안개처럼 솟아나와 나무들을 휘감았다. 얼마 안 되어 나무들의 내상이 말끔하게 나았다. 그러자 멀찍이 피했던 새들이 돌아와 마음껏 지저귀며 날아다녔다.

     

    산란해졌던 묘법대의 기운이 전처럼 맑게 정화되었다. 명천인 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여전히 선정에 들어 있었다. 그는 모든 번뇌를 여의고 순수한 빛의 세계에 머물렀다. 혜원인 명천을 남겨 두고 개심사로 내려왔다.

  • 성자들의 시대18-우주와 하나라는 느낌

    청련사 주지로 있는 동안에는 선방(禪房)과 강원(講院)을 세웠다. 강원에서는 50 여 명의 학인(學人)들이 불경을 공부하고 선방에서는 40여 명의 수좌(首座)들이 참선 수행중이었다.

    청련사를 큰 수행 도량으로 만든 다음에 개심사로 옮겼다. 이것은 벽운 선생의 뜻이기도 했다.

    지현 스님이 처음 왔을 때 개심사는 아주 퇴락한 절이었다. 그녀가 서둘러 불사를 일으켜 면모를 새롭게 바꿔 놓았다.

     

    벽운 선생은 지현 스님더러 개심사를 3,40 명 정도가 거처할만한 도량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일렀었다.  쓸모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현 스님은 여름까지 그 일을 마무리했다.

    이제 살림을 맡은 사판승(事判僧)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거의 다 끝냈다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녀에겐 수행 정진민큼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 없었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수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 참, 내가 산에 올라가면 여기 살림은 어떻게 하지? "

    지현 스님은 살림 걱정을 했다. 사판승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버릇이었다.

    " 언닌 산에서 오래 안 계셔도 될 거예요. 그동안 지법 스님이 맡으면 되지요. "

    "걔가 잘할 수 있을까? "

    개심사엔 식구가 많지 않아 살림의 규모도 작았다. 그러나 도와줘야 할 곳이 많았다. 고아원, 양로원, 주변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자주 했다. 지현 스님은 또 민주화 운동을 하는 스님들을 남몰래 후원했다. 이런 일들을 지법 스님이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었다.

     

    " 염려 마세요. 그런 걱정도 다 공부에 큰 장애가 돼요. 번뇌잖아요. 언니가 공부를 잘하시면 지법 스님도 따라서 지혜가 열려요. 스승님께서도 보살펴 주실 거고요. "

    혜원의 말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 참, 언니. 채소들을 살려야죠. "

    " 그럴까. "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 언니, 양동이하고 분무가 있어요? "

    " 있어. "

     

    지현 스님이 양동이와 분무기를 가져왔다. 혜원인 양동이에다 물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손에 진기를 가득 모은 뒤에 물 속에다 손을 집어 넣었다. 진기가 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혜원인 이 물을 분무기로 채소밭에 골고루 뿌렸다. 그러자 반 시간도 안 돼 시들어 가던 채소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축 늘어졌던 잎새들이 생동생동 일어섰다.

     

    " 아니! 벌써 살아나네! 이게 웬일이야! "

    지현 스님은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물주기가 끝난 뒤 그녀는 혜원이더러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물었다.

     

    " 물에 충만한 생긱를 마시고 채소들이 금방 기운을 차린 거예요. 이제 병균들도 잎을 괴롭히지

    않고 그 생기만 먹게 돼요. 그러다가 없어지지요. "

    " 그것들도 기운이 왕성하면 번식을 많이 하지 않을까? "

    " 아니에요. 번식하려는 욕망이 사라져요, 중생들이 자손을 퍼뜨리는 것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에요.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서 대를 이으려고 하지요. 온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느낌이 들면 죽음이 안 무서워요. 그래서 깨달은 이들이 자손을 가지려는 욕망을 완전히 떨칠 수 있어요.

    미물중생도 마찬가지예요. 무한한 평화를 느끼면 번식을 안 해요. "

    " 채소뿐 아니라 병균들까지 큰 복을 누리네. "

    " 그래요. "

     

    지현 스님은 혜원의 법력(法力)에 감격했다. 혜원일 이렇게 이끌어 준 스승 벽운 선생에 대한 외경심도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채소밭을 둘러봤다.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고 먹히는 싸움이 숨가쁘게 전개되던 곳이 우주적인 평화에 휩싸였다. 여기가 바로 극락정토요 선경이었다. 삼라만상을 다 부처로 보고, 이 세상 어디나 불국토(佛國土)로 보라고 이르시던 벽운 선생의 가르침이 새삼 실감났다.

     

    두 사람은 채소밭에서 돌아와 사시(巳時; 오전 10시) 예불을 드렸다. 지현 스님이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 가사장삼을 차려 입었다.

    혜원이 청수(淸水)를 떠가지고 막 법당으로 향할 때였다. 그녀의 눈에 법당 위로 거대한 빛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게 보였다. 둥근 원통형의 찬란한 빛줄기가 하늘 높이 뻗쳤다.

    이 빛줄기는 점점 커졌다. 법당 앞마당과 그 양쪽에 마주 선 요사채까지 빛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개심사 경내가 모두 눈부신 광채로 화했다. 개심사 터에 깃들인 빼어난 정기가 활짝 피어 오른 것이었다.

     

    혜원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물을 올리고 절을 드린 다음 고요히 앚아 있었다. 지현 스님은 종부터 쳤다. 은은한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개심사의 빼어난 정기도 종소리에 실려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혜원의 심안에 온갖 중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 학, 노루, 멧돼지, 뱀, 물고기...., 갖가지 중생들이 개심사의 정기에 휩싸였다. 개심사에 치솟아 오른 빛기둥이 그들을 향해 빛을 뿜엇다. 그들은 모두 개심사와 인연이 깊은 중생들이었다.

    혜원인 잠시 후 심안을 닫고 선정에 들었다. 육체의 몸이 사라져 허공으로 화하고 티 하나 없이 맑은 정신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활짝 열린 기공을 통해 우주의 진기가 바람처럼 드나들었다.

     

    지현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웠다, 그러나 혜원의 귀에는 목탁 소리도 염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20 분쯤 지났다. 혜원의 몸이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떠올랐다. 부처님이 앉아 있는 높이만큼 떠오르더니 그대로 허공에 머물렀다. 지현 스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염불을 멈췄다.

    둥그런 원광이 나타나 혜원일 둘러쌌다. 부처님의 원광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 순간, 지현 스님은 시원한 바람처럼 맑고 청량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몸과 마음과 정신에 묻은 온갖 때가 말끔히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날아갈 듯 가뿐했다.

     

    지현 스님도 얼른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단전에 의식을 집중했다. 단전에 야구공만한 허공이 생겼다. 그리고 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단전의 허공은 자꾸 커져 갔다. 야구공에서 축구공으로, 축구공에서 커다란 풍선으로 커졌다.

    나중엔 몸 전체가 허공으로 화했고, 단전이 진기로 가득 채워졌다.

     

    지현 스님과 혜원인 3시간쯤 뒤에 선정에서 깨어났다. 지현 스님이 눈을 떴을 때엔 혜원의 몸이 마룻바닥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녀를 둘러쌌던 원광도 보이지 않았다. 지현 스님은 자신이 보았던 그 신기한 광경에 대해 물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매우 무더운 날씨였다. 그런데 지현 스님은 조금도 덥지 않았다. 원래 더위를 많이 탔는데, 어쩐지 서늘한 기운이 자꾸 몸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살 속까지 시원했다. 발걸음도 예불을 드리기 전보다 훨씬 더 가벼워졌다. 지현 스님은 혜원의 도력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 류인학의 우리명산 답산기-인수봉에 서린 성스러운 기상과 우리나라의 미래

    ● 인수봉과 우리 나라의 미래

     

    앞에서 필자는 서울의 산 중에서 인수봉이 가장 아름다우며, 인수봉에는 성자의 기상이 가득 감돈다고 했다.

     

    인수봉은 원래의 한양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인수봉에 서린 성스러운 기상이 한양땅으로 크게 뻗쳐오질 않았다. 이 때문에 성자들이 많이 나올 수가 없었다. 설령 그런 이들이 있다 해도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수봉도 서울시내 복판으로 들어왔다. 인수봉 아래는 어느덧 시가지가 되었다. 이제 인수봉에 서린 성자의 기상이 활짝 피어난다.

     

    인수봉 아래에 시가지가 크게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일이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성자(聖者)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인수봉의 정기가 크게 떨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는 또 우리 나라에서 소비풍조 · 물질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때이다. 한편에선 많이 갖고 쓰고 버리는 데서 기쁨을 찾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안 갖고 적게 쓰는 데서 참자유와 행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언서 격암유록>에 이런 내용의 예언들이 들어 있다.

     

    을유년 (1945) 에 해방이 되고 나라가 둘로 쪼개진다.

     

    무자년 (1948) 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 (이승만) 이 권력을 잡는다. 이씨가 12년간 독재정치를 한다.

     

    인년 (1950) 에 남과 북이 서로 싸운다.

     

    계사년 (1953) 에 전쟁이 끝난다.

     

    경자년 (1960) 에 독재정권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다.

     

    신축년 (1961) 에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그들도 이승만 정권처럼 독재정치를 한다. 국민들 입에 재갈을 물린다.

     

    군사독재정권이 물러갈 때가 되면 물질주의가 판친다. 종이돈이 세상을 지배하리라. 이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돈이면 못할 게 없다고 한다.

     

    물질주의가 사람들을 타락시키며 온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물질주의로 인해 인류는 파멸의 위기를 맞는다. 자칫하면 천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때 성자들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다. 물질주의에서 헤어나, 성스러운 마음을 기르고, 무소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이들은 성자들을 따라 성자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성자들의 세계.

     

    그곳은 오랫동안 인류가 꿈꿔온 낙원이며, 천국 · 극락 같은 이상향이다. 파멸의 위기가 사라진 다음에는 온 세계가 그 이상향으로 변한다.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진 암흑의 시대가 가고, 모든 사람·모든 생명이 찬란한 자유와 평화를 함께 누리는 광명시대가 밝아온다.

     

    인수봉은 지금 이 광명시대의 여명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다가오는 성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또 물질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깨어나라' 외치며, 가슴에 품고 있는 성스러운 기상을 보내고 또 보낼 것이다.(계속)
     

  • 성자들의 시대17-공덕이 원만해야 공부에 성공한다

     

     

    <개심사 주지 지현 스님>

     

    개심사(開心寺)는 관음봉 서쪽 기슭에 오롯이 깃들여 있었다.

    개심사 쪽에서 본 관음봉의 형상은 신선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풍수가들은 개심사 터를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 ; 신선이 책을 읽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했다.

    개심사 바로 앞에는 네모 반듯한 봉우리가 솟아 있다.

    이것은 책을 올려놓는 서대(書臺)였다.

    서대 뒤에는 꼭 책을 펼쳐 놓은 것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다.

    또, 그 뒤쪽에는 여러 겹의 산줄기가 30리 밖까지 펼쳐져 있다.

    이 산줄기들의 생김새는 구름과 흡사했다.

    그러나 개심사 터는 신선이 구름 위에 앉아 책을 읽는 형국이 분명했다.

    옛날에 어느 풍수의 달인이 개심사에 들러 무릎을 치며 이런 얘길 했다고 한다.

    " 천하의 보배가 여기에 숨어 있구나. 보물 중의 보물이로다.

     신선이 책을 익는 형국이니 훌륭한 도인들이 쏟아져 나올 명당이다.

    때가 되어 아름다운 지기가 활짝 피어나면 수천 수만의 도인이 구름처럼 몰려와

    모두 크게 깨우치리라. "

    혜원이 개심사 가까이에 다다르자 전과는 아주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개심사 일대의 지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겨울보다 몇 배 더 청정했다.

    산굽이를 돌아 막 경내로 들어서서 보니 개심사 건물들이 은은한 광채에 휩싸여 있었다.

    " 아, 참으로 좋은 정기가 활짝 피어나는구나. "
    혜원이 미소를 지으며 문득 옛 풍수가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녀의 심안에 숱한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을 찾아 개심사로 오는 광경이 스쳐 갔다.

    머지 않아 드디어 옛 사람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었다.

     

    개심사 주변에는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느티나무, 팽나무. 굴참나무 등이 커다란 숲을 이뤄 햇빛을 막아 주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는 갖가지 새들이 지저귀고 다람쥐들이 뛰어놀았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흘러내렸다.

    걔심사 주지 지현 스님은 채소밭에 잇었다.

    " 언니, 뭐하세요? "

    지현 스님은 혜원이 보다 몇 살 위였다. 그들은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 어! 동생! 어쩐 일이야? "
    지현 스님은 활짝 웃으며 혜원에게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 스승님께서 보내셨어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

    혜원이 지현 스님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 덕분에 잘 지내.  정말 반갑다.

    식전에 까치들이 울어대더니만 동생이 오려고 그랬나 보네. "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걸었다.

    " 밭에서 뭘 하셨어요? "

    " 배추하고 무를 갈았는데 병이 심해. 

    병균도 살아 있는 중생이니 농약을 뿌릴 수도 없고..... 올해 채소 농사는 실패하겠어.

    어려운 신도들한테도 나눠 주려고 많이 심었는데 우리 김장 담기도 어렵겠네. "

    " 어떻게 병들었나 한번 볼까요? "

    혜원인 채소밭으로 들어가 보았다. 손바닥만한 배추들이 대부분 병들어 있었다.

    잎새마다 누런 점이 얼룩얼룩 보였다. 병균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 언니, 좋은 방법이 있어요. 약을 안 주고도 살릴 수 있겠어요. "

    혜원이 뭔가 잠깐 생각해 보고 말했다.

    " 어떻게? "

    " 물만 있으면 돼요. "

    " 그냥 물로? "

    " 네. 이따가 해볼게요. "

    " 그럼, 그래 봐. "


     

    지현 스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혜원에게 무슨 묘방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두 사람은 절 쪽으로 갔다. 혜원인 먼저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한 다음 요사채로 내려왔다.

    절에는 지현 스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 모두 어디 갔어요 ? "
    " 응, 법성인 강원으로 떠났어. 지법이하고 박보살하고 윤처사님은 장보러 운강에 갔고,

    내일 불공이 있어서. 

     참, 동생 아침 공양 들었어? "

    지현 스님은 혜원이 아무것도 안 먹고 진기만 마시며 사는 줄 아직 몰랐다.

    " 전 안 먹어도 돼요. "

    " 안 먹어도 돼다니. 가서 차려 올게." 

    지현 스님은 밥상을 차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괜찮아요, 언니. 전 요새 아무것도 안 먹어요. 그런 지 꽤 됐어요. "

    " 그래? 벽곡을 하는구나. 동생, 공부가 아주 잘됐나 보다. 크게 깨우쳤나 봐."

    지현 스님은 눈을 크게 뜨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외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혜원을 쳐다보았다.

    " 깨우치기는 요. 아직 멀었어요. 기운이 좀 찼을 뿐이에요. "

    " 아무나 벽곡하나. 이제 보니 동생 얼굴이 더욱 맑아졌네.

     환해. 빛이 서려 잇어. 서기(瑞氣)가 뿜어 나오네. 도가 아주 높아진 게 틀림없어. 

    지현 스임은 머리까지 설레설레 흔들며 감탄했다.

     도반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 그녀를 무척 기쁘게 만들었다.

    " 부끄러워요. 자꾸 그러지 마세요, 언니. "

    혜원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 그럼 차나 끓일까? 

    " 그만두세요. "

    " 마시지도 않는구나."
    " 그렇게 됐어요. 한데 언니, 다른 식구들에겐 제 얘기 하지 마세요. "
    " 염려 마. "

    " 언니, 여기 큰일들은 거의 다 끝났죠? "

    " 기와 불사와 대웅전 단청은 마무리했어.

    요사채 수리도 모두 끝냈고. 크게 손볼 곳은 없어. "

    " 이제 일을 놓고 용맹정진하실 때가 됐나 봐요.

    스승님께서 언니를 백학봉으로 데려오라 하셨어요. "

    " 그래? 어제? "

    " 아흐레 후에요. 저더러 그때까지 여기서 지내라 했어요. "

    " 아이고,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 이워졌네. "

     

    지현 스님은 너무나 좋아했다.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지현 스님의 상호(相好)는 보살상이었다. 너부죽하면서 상이 아주 복스럽게 붍어 있었다.

    눈빛은 맑고 온화했다. 활짝 웃으니 틀림없는 보살상이었다.

    그녀는 발써부터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중(門中)의 사형제들이 놓아주질 않았다.

    사형제들은 포용력이 커서 모든 사형제들한테 사랑받는 그녀가 주지직을 맡아 주길 워했다.

    개심사와 청련사는 종단에 속한 절이 아니고, 지현 스님네 문중에서 세운 도량이었다.

    지현 스님의 사조(師祖) 스님이 창건했다. 그후 계속 지현 스님네 문중에서 관리해 왔다.

    지현스님은 문중을 위해 자신의 공부를 뒤로 미뤘다.

    대신 사형제들이 수행에 전면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했다.

     

    벽운 선생도 그걸 바랐다.

    먼저 공덕을 충분히 닦은 다음에 용맹정진하라는 것이었다.

    공덕이 원만해야 공부에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   

  • 성자들의 시대16 명천의 양신과 묘법대

    초가을이었다. 아침 저녁에는 바람이 꽤 서늘했다.

    벽운 선생은 명천을 운학산으로 데려왔다. 명천인 묘법대의 석굴에서 정진했다.

    묘법대는 관음봉 중턱에 있었다.

    하루는 벽운 선생이 혜원이에게 묘법대와 개심사엘 다녀오라 일렀다.

     

    "지금 빨리 가서 명천일 만나고, 개심사에 들러 한 열흘 지내고 오너라,

    네가 해야 할 일이 있다."

     

    혜원인 운학산 주능선을 타고 묘법대로 향했다. 발걸음이 바람처럼 가볍고 빨랐다.

    발바닥이 채

    땅바닥에 닿기도 전에 강한 기운이 그녀의 몸을 위로 밀어 올리곤 했다.

     

    혜원은 달려가면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뭔가 생각했다.

    고요히 선정에 든 명천의 모습이 보였다.

    네 사내가 개심사 쪽에서 묘법대로 올라오는 모습도 떠올랐다.

    그들한테서 삿된 기운이 강하게 뿜어 나왔다. 그들은 무공을 닦는 사람들이었다.

    공력이 대단했다.

     

    명천은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그는 묘법대로 온 이후 음식과 잠을 끊었다.

    머지않아 양신이 완전한 형체를 갖고 태어날 참이었다.

     

    이런 때에 심신이 흔들리면 공부가 허사로 돌아간다. 자칫 큰 위험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주변이 번잡하지 않도록 누가 잘 지켜 줘야 한다.

     

    백령자와 벽운 선생은 석주와 필섭을 돌보느라 백학봉을 떠날 수 없었다.

    그래서 혜원을 대신 보냈다.

     

    묘벋대로 올라오는 사람을은 인상이 좋지 않았다. 앞장 선 사내는 눈빛이 매우 독했다.

    또 두 번째는 음험했고, 세 번째 사람은 날카롭고 냉정해 보였다.

    맨 뒤의 사내는 안광(眼光)이 아주 강렬했다. 번갯불같이 번쩍였다.

    넷 중에서 공력이 첫째였다. 소주천이 열려 있었다.

     

    그들의 목적지는 묘법대가 분명했다. 거기서 무공을 연마할 모양이었다.

    각자 등에 배낭을 짊어진 것으로 보아 며칠 묵어 갈 것 같았다.

     

    혜원이 묘법대에 이르렀다. 명천인 혜원이가 온 줄도 모르고 굴 안에서 명상에 잠겨 있었다.

    혜원인 명천을 깨우지 않고 굴 앞 공터에 앉아 사방을 둘러봤다.

     

    묘법대엔 새끼줄이 둘리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공부를 방해할까봐 출입을 금한 것이었다.

     

    새끼줄 안쪽과 굴에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한 진기가 물씬 감돌고 있었다.

    혜원의 눈에 사방에서 이곳으로 맑은 정기가 뻗쳐 오는 게 보였다.

    새끼줄 바깥쪽의 기운은 안쪽과 확연히 달랐다. 흉하고 탁한 기운이 넘실댔다.

     

    묘법대에 충만한 진기는 끊임없이 명천의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이 기운을 받아 명천의 마음과 정신과 몸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단에 잉태된 양신은 출신할 날 만을 기다렸다.

     

    네 사내는 혜원이보다 20분쯤 늦게 올라왔다. 모두 20대로 보였다.

    앞장선 사내가 다짜고짜 새끼줄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저어, 잠깐만요. 지금 저 안에서 수행하는 분이 계십니다.

    여기는 수행 도량입니다. 그냥 돌아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혜원이 정중하게 제지했다.

     

    " 뭐라고요? 우리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며칠 쉬었다 가려고 왔습니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십시오."

     

    사내의 말투가 곱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탁한 기운이 뿜어져 나와 혜원을 향해 뻗쳐 왔다.

    그러나 묘법대에 가득한 진기가 탁기를 밀어냈다.

    이 탁기가 빛이 거울에 반사되듯 그한테 되돌아갔다.

    그가 자신의 탁기를 맞고 어깨를 움찔했다.

     

    "안 됩니다."

     

    혜원이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 저 사람 무슨 공불 합니까? "

     

    세 번째로 올라온 사내가 명천일 올려다보며 언성을 높여 물었다.

    혜원인 명천이가 깨어날까봐 밖의 소리가 굴 안으로 못 들어가도록

    얼른 자신의 기운을 보내 굴 입구를 막았다.

     

    " 참선중이십니다. "

     

    "우리도 조용히 사흘만 지내고 돌아갈 것입니다. 이 공터에서 지내면 됩니다.

    굴에는 근처에도 안 가겠습니다."

     

    네 번째 사내는 눈을  번쩍이며 말했다. 목소리엔 강한 공력이 실려 있었다.

    이 공력도 그대로 사내한테 되돌아갔다.

     

    헤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들이 새끼줄 안으로  들어오면 묘법대의 기운이 매우 혼탁해질 것이다.

    그 혼탁해진 기운이 명천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다.

    명천의 마음 밑바닥에는 아직도 번뇌의 뿌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 죄송합니다. 어쩔 수 없군요. 다른 데 가서 쉬시지요. "

     

    혜원이 온화한 음성으로 사정했다.

    그리고 사내들이 왜 자뀨 묘법대에서 머물려고 하는지

    헤아려 보았다. 사내들이 40 대의 다른 사내와 얘기하는 광경이 보였다.

     

    ' 지금 관음봉 묘법대의 정기가 활짝 피어나고 있다.

    거기 가서 사흘 동안 좋은 정기를 받고 와라. 너희들의 공력이 크게 향상될 것이다. '

     

    ' 예, 스승님. 다녀오겠습니다.'

     

    혜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두 번째 사내가 냅다 소리를 쳤다.

     

    " 여기가 당신네 땅이오? "

     

    " 개심사 땅이지요."

    혜원의 음성은 여전히 온화했다.

     

    " 보아하니 당신네는 스님도 아니잖아. 주인도 아니면서 왜 그래? "

    사내는 반말로 나왔다.

     

    " 주지 스님께서 허락해 주셨습니다."

     

    " 우리도 오는 길에 허락을 받았다고. "

     

    " 그럴 리가 없을 텐데요. "

     

    " 당신이 어떻게 알아? 하여튼 우린 개심사 주지한테 얘기하고 왔어.

    못 믿겠으면 가서 물어 봐. "

     

    " 거짓말하지 마세요. "

     

    " 거짓말? 내려가서 물어 보라니까.  자, 안으로들 들어가자고."

     

    사내들이 막무가내로 새끼줄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 했다.

    혜원인 순식간에 양신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들의 눈에는 혜원의 양신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양신이 번개같이 움직이며 사내들을 슬쩍슬쩍 앞으로 밀었다.

    사내들은 두세 걸음씩 뒤로 밀려났다.

     

    " 어어, 왜 이래! "

     

    사내들은 당황했다.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저희끼리 쳐다봤다.

    네 번째 사내가 눈을 반쯤 감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눈을 번쩍 뜨고 혜원을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 아하, 아가씨도 무공을 꽤 닦았나 보구먼요. 내공이 대단하십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습하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정식으로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 "

     

    사내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다른 세 사내는 혜원과 네 번째 사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혜원이한테 무슨 공력이 있다는 말인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 저는 그런 거 모릅니다. "

     

    " 시치미 떼지 마십시오. "

     

    네 번째 사내는 말을 하면서 단전의 기운을 오른손에 끌어당겼다. 

    혜원의 눈에 기운이 움직이는 게 환히 보였다. 그러자, 묘법대에 가득 감도는 진기가

    혜원일 보호막처럼 에워쌌다.

     

    사내가 혜원일 향해 오른손을 날카롭게 뻗었다.

    싸늘한 살기가 비수처럼 날아와 혜원일 둘러싼 진기와 부딪치더니 그대로 되돌아갔다.

     

    사내는 자기가 보낸 살기를 맞고 뒤로 넘어졌다.

    사내의 머리와 등이 땅바닥에 닿기 직전에 혜원이 자신의 기운을 보내 그를 부축했다.

    그냥 내버려두었다면 사내의 머리가 커다란 돌과 부딪칠 뻔했다.

    " 조심하세요. 그리고 괜한 짓 하지 마시고 어서들 돌아가세요. "

     

    혜원이 쓰러진 사내를 향해 조용히 말했다.

    사내의 얼굴이 부끄러움과 분노로 흉하게 일그러졌다. 눈에는 사나운 독기가 서렸다.

     

    사내가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바로 그때였다. 사내의 스승이 보였다.

    그가 자신의 제자한테 강한 기운을 보내 주었다.

    엄청난 공력이 사내의 몸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사내의 표정이 확 달라졌다. 자신감에 넘쳤다.

    사내는 천천히 양손에 기운을 모았다가 동시에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벽운 선생이 혜원이 쪽으로 기운을 보내 주었다.

    혜원일 둘러싼 진기의 막이 더욱 견고해졌다.

    사내가 보낸 살기가 이번에도 사내한테로 되돌아갔다.

    사내가 땅바닥에서 떼구르르 굴렀다.

     

    사내의 도반들은 이 모습을 보고 하얗게 질렸다.

    감히 혜원일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들은 얼른 사내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사내는 도반들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났다.

    혼자서는 서지도 못했다.

     

    " 곧 괜찮아질 거예요. "

     

    혜원이 사내한테 맑은 진기를 보내 주며 말했다. 그녀는 조금도 노여워하지 않았다.

    사도에 빠진 그들이 그저 불쌍할 뿐이었다.

     

    " 안 되겠어. 보통이 아니야. 그냥 돌아가자. 할 수 없어. "

     

    쓰러졌던 사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도반들에게 속삭였다. 사내들은 황급히 내려갔다.

     

    " 잘들 가세요.

    그리고 앞으론 싸움하는 술법일랑 닦지 말고 중생을 살리는 도를 닦도록 하세요. "

     

    혜원이 그들의 등뒤에 대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그리고는 사내들이 저만치 내려간 뒤에 굴 입구를 막았던 기운을 거둬들였다.

    명천인 아무것도 모르고 계속 선정에 들어 있었다.

     

    혜원이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멀리 서해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바다의 정기가 묘법대를 향해 뭉클뭉클 밀려오는 것도 보였다.

    밤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 별들이 반짝였다. 바람도 잠들고 묘법대는 깊은 적막에 휩싸였다.

     

    명천인 여전히 선정에 들어 있었다.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명천의 단전에 뜨거운 불기운이 움직였다.

    단에 잉태된 원신이 성숙해져 삼매진화(三昧眞火)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삼매진화는 곧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붉은 광채가 굴 안을 가득 채웠다.

    화광(火光)은 박으로도 치솟아 나왔다. 묘법대 일대가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것 같았다.

     

    이때는 차가운 기운으로 화기(火氣)를 잠재워야 한다.

    그런데 명천인 그걸 깜박 잊고 있었다. 화기가 더욱 강성해지면 선태를 태워 버릴 판이었다.

    원신의 태반인 단이 타버리면 이제까지 해온 공부가 허사로 돌아간다. 매우 위험했다.

     

    " 도제, 불을 꺼야 해. 커다란 얼음덩이를 생각해. 그것을 떠올렸다가 단전으로 보내. "

     

    혜원이 얼른 마음으로 이 말을 전했다.

    명천이 혜원의 말을 알아듣고서 자기가 앉아 있는 굴이 얼음굴이라고 상상했다.

    그러자 차가운 기운이 몸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이 냉기가 단전의 화기를 조금 식혀 주었다.

     

    명천이 또 심안으로 둥그런 얼음덩이를 떠올렸다. 커다란 얼음덩이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것을 또 단전에 끌어넣었다. 화기가 꽤 식었다.

     

    " 한 번으로 끝내지 말고 계속해. "

    혜원의 음성이 들려 왔다. 명천은 얼음덩이를 떠올리고 단전에 빨아들이기를 되풀이했다.

    밖으로 뿜어 나오는 화광이 점점 엷어지더니 드디어 사라졌다.

    명천은 그제서야 선정에서 깨어났다.

     

    " 도제!  "
    혜원이가 조용히 그를 불렀다.

     

    " 어! 누님 언제 오셨습니까? "
    명천이 반갑게 웃으며 밖으로 나와 혜원이 곁에 앉았다.

     

    " 낮에 왔어. "

    " 웬일이세요? "

    "스승님께서 보내셨지. 도제를 보살피라고. "

    " 아, 그럼 제가 아까 본 환상이 실제 있었던 일이었나 보군요. "


    " 뭘 봤는데? "

    " 누님께서 어떤 젊은이들과 다투는 걸 봤습니다. 무술하는 사람들 같던데..... "
    " 맞아. 그런 일이 잇었지. "

    " 제가 정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승님께서 누님을 보내셨군요. "

    " 그렇지. "

     

    " 한데, 왜 난데없이 무술 닦는 사람들이 여기로 몰려왔나요? "

    " 공력을 크게 얻으려고 왔었어. 이곳의 정기가 아주 빼어난 것을 알고서. "

    "무술인들이 그런 것까지 다 알아요? "


    " 그 사람네 스승이 꽤 신통력을 얻었나 봐. 그가 제자들을 보냈어.

    그는 여기 묘법대의 정기가 오늘 활짝 피어난다는 걸 알았어. "

     

    명천인 좀 음산한 기운을 느꼈다. 삿된 사람들한테서 잘 풍겨나오는 기운이었다.

    무술인들의 스승이란 자가 사도의 거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제가 있는 것도 알았을가요? '

    " 몰랐을 거야, 스승님께서 지켜 주시니까."

     

    문득 명천의 눈에 그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있는 곳도 보였다.

    거기는 운학산 북쪽 기슭이었다.

    40대로 보이는 사내의 지도를 받으며 젊은이 열댓 명이 내공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40대의 사내는 눈빛이 호랑이처럼 형형했다.

     

    " 그 사람들도 운학산에서 사는군요. "
    " 그래."
    " 스승이란 사람, 공력이 대단해 보이네요. "

    " 보통이 아니야. 야심도 대단하고. "

    " 야심요? 무슨 야심을..... 무술계를 평정하려고요? "

     

    명천이 재미잇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 아니, 그보다 훨신 더큰 야심이야. 어마어마한 신총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하지. "

    " 정말요? "

    " 그럼. 그런 야심을 지닌 사람들이 꽤 많아. 운학산에도 몇 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거야."


    " 왜 하필 운학산으로 옵니까, 번잡하게? "

    " 운학산 정기가 워낙 빼어나니까. 그들은 운학산의 기운이 무척 탐나겠지. "

    " 우리가 공부하는 데 여러 가지 장애가 많겠군요. "

     

    " 그래. 하지만 스승님께서 잘 막아 주실 거야.

    우리도 더욱 열심히 정진해야 되고, 그들을 이기는 길은 오직 하나야."

    " 무엇이죠? "


    " 그 사람들은 뭘 얻으려는 욕심에 사로잡혔어.

     

    우린 거꾸로 다 버려야지.

    그들은 세상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되려고 해.

    우린 낮은 사람이 되어 모두를 섬겨야지. "

     

    " 결국 득도하는 수밖에 없군요. "

    " 그렇지. 무공이나 신총력으로 다툴 일도 아니고. "

     

    명천은 자기를 두고 하는 말 같아서 가슴이 뜨끔했다.

    자기가 혜원이였다면 어찌하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젊은이들을 호되게 혼내 주고 싶었을 것 같았다.

     

    " 스승님처럼 큰 도인들께서 사도의 무리를 일망타진 못 하나요? "
    " 아직은 어렵지. 삿된 기운이 매우 강하니까.

    영계(靈界)의 사령(邪靈)들도 사람들 마음을 자꾸 탁하게 만들고,

    훌륭한 도인들이 지금보다 몇 배 더 많이 나오면 달라지겠지. "

     

    " 우리도 어서어서 부지런히 닦아야겠네요."
    " 스승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아야지.

    스승님을 만난 게 얼마나 큰 복이야. 동생, 이제 들어가서 정진해. "

     

    " 누님은요? "

    명천이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 만났는데 훌쩍 가려는 줄 알고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명천에게 혜원인 친누나와 다름없었다.

     

    " 나는 여기서 정진하다 아침에 개심사로 갈 거야. 열흘 동안 개심사에서 지내게 왰어.

    종종 올라올게. "

     

    혜원이 명천의 마음을 헤아리고 따뜻하게 말했다.

     

    " 그러세요. 전 들어갈게요, 누님. "

     

    명천인 다시 굴로 들어가 명상에 잠겼다.

    혜원인 날이 환하게 밝은 뒤묘법대를 떠나 개심사로 향했다.

    명천인 그때까지 선정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혜원이 개심사에서 1킬로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웬 노루 한 마리가 길을 마고 엎드려 있었다.

    노루는 혜원일 보더니 벌떡 일어나 머리를 주억거렸다. 반갑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혜원의 몸에 머리를 비비댔다.

     

    혜워인 타심통(他心通)이 열려 잇어서 노루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있었다.

    도움을 청하는 것이었다. 노루한테 뭣 때문에 그러느냐고 심언법(心言法)으로 물었다.

    노루가 혜원이 마음으로 전하는 말을 알아듣고 무어라 웅얼거렸다.

     

    자기 새끼를 구해 달라는 것이었다.

    혜원의 심안에 어린 노루 두 마리가 보였다. 그중 한 마리가 덫에 걸려 있었다.

    상처가 매우 깊어 보였다.

     

    " 어휴, 굉장히 아프겠구나. 어서 가자. "

     

    혜원인 어미 노루와 함께 새끼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덫에 걸린 새끼 노루는 고통스러워하며 신음 소리를 냈다.

    어미가 혀로 새끼 노루의 등을 핥아 주었다. 너를 구해 줄 분이 오셨으니 안심하라는 뜻이었다.

     

    혜원인 덫부터 풀어내고 상처를 살펴보았다. 피가 많이 엉켜 있었고 뼈가 허옇게 드러났다.

    나쁜 병균에 감염되어 염증도 심했다.

    염증 때문에 열도 높았다. 새끼 노루는 오한으로 몸을 떨었다.

    상처 부위에 탁한 병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그것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혜원인 두 손에 진기를 모은 다음 상처 부위에 갖다댔다.

    손에서 강한 진기가 뿜어 나와 탁한 병기(病氣)를 몸 밖으로 밀어냈다.

    5분쯤 지났다. 새끼 노루가 신음을 그쳤다. 떨지도 않았다. 오한과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 이제 안 아프지? 상처도 곧 나을 게다. "

    혜원이 어린 노루의 등을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어미 노루는 무척 좋아했다. 다른 새끼 노루도 그랬다.

    그들은 혜원의 몸에 자꾸 머리를 비비댔다.

     

    " 나는 이제 가야겠다. 잘들 지내거라. "

     

    혜원이 노루들에게 심언법으로 작별 인사를 전했다. 노루들이 동시에 무러라고 중얼거렸다.

    너무나 고맙다는 얘기였다.

    어미 노루는 길에까지 와서 혜원일 배웅했다.

     

    " 어린 새끼들 잘 길러라. 덫이나 독약을 조심하고. "

    혜원이 헤어질 때 어미 노루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노루가 혜원의 말을 받아 또 뭐라고 웅얼거렸다. 다시 보고 싶다는 얘기였다.

     

    " 나는 기린봉에 있단다. 그리로 놀러 오렴. "

    혜원이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어미 노루는 혜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새끼들한테로 돌아갔다.

     

    산을 내려가는 혜원의 노리에 노루 가족이 자꾸 떠올랐다.

    이렇게 만나 것도 예사 인연이 아닌 듯 싶었다.

    전세에도 깊은 인연이 있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았다.

     

    혜원인 자신과 그들의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아득한 전세의 모습이 보였다.

    그 전세에 노루 일가는 사냥꾼이었다. 혜원인 스님이었다.

    그녀는 만행을 떠났다가 깊은 산중에서 큰 부상을 당했다.

    사냥꾼 일가가 부상당한 그녀를 구해 주었다.

     

    사냥꾼 일가는 살생을 많이 한 응보로 몇 생에 걸쳐 짐승이 되었다.

    짐승으로 환생을 거듭하면서 업보를 받아 왔다.

    또 비록 살생을 많이 했지만 선량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 과보도 받았다.

    혜원이 어린 노루를 구해 준 것도 인과응보였다.

     

    이제 그들이 받아야 할 살생의 업보는 끝났다. 그러나 시련은 많이 남아 있었다.

    혜원이 앞로 닥쳐올 시련에서 그들을 구해줘야 했다.

    전세에 그들이 혜원일 보살펴 주었기 빼문이었다.

     

    전세의 사냥꾼 일가는 혜원에게서 불법을 좀 배웠다.

    그들은 언젠가 다음 세(世)에는 수도인이 되겠다고 맹세했다.

    혜원이도 자기가 만약 크게 깨달으면 그들을 인도 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들의 언약이 실현될 때가 가까웠다.

    노루 일가도 머지 않아 백령자, 청령자처럼 수행자가 될 것이었다.

     

    혜원인 무척 기뻤다.

    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있는 곳을 한참 동안 올려다본 뒤에 다시 걸음을 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