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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성자들의 시대17-공덕이 원만해야 공부에 성공한다

작성자 : 피스우드

 

 

<개심사 주지 지현 스님>

 

개심사(開心寺)는 관음봉 서쪽 기슭에 오롯이 깃들여 있었다.

개심사 쪽에서 본 관음봉의 형상은 신선이 단정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풍수가들은 개심사 터를 선인독서형(仙人讀書形 ; 신선이 책을 읽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했다.

개심사 바로 앞에는 네모 반듯한 봉우리가 솟아 있다.

이것은 책을 올려놓는 서대(書臺)였다.

서대 뒤에는 꼭 책을 펼쳐 놓은 것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다.

또, 그 뒤쪽에는 여러 겹의 산줄기가 30리 밖까지 펼쳐져 있다.

이 산줄기들의 생김새는 구름과 흡사했다.

그러나 개심사 터는 신선이 구름 위에 앉아 책을 읽는 형국이 분명했다.

옛날에 어느 풍수의 달인이 개심사에 들러 무릎을 치며 이런 얘길 했다고 한다.

" 천하의 보배가 여기에 숨어 있구나. 보물 중의 보물이로다.

 신선이 책을 익는 형국이니 훌륭한 도인들이 쏟아져 나올 명당이다.

때가 되어 아름다운 지기가 활짝 피어나면 수천 수만의 도인이 구름처럼 몰려와

모두 크게 깨우치리라. "

혜원이 개심사 가까이에 다다르자 전과는 아주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개심사 일대의 지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난 겨울보다 몇 배 더 청정했다.

산굽이를 돌아 막 경내로 들어서서 보니 개심사 건물들이 은은한 광채에 휩싸여 있었다.

" 아, 참으로 좋은 정기가 활짝 피어나는구나. "
혜원이 미소를 지으며 문득 옛 풍수가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녀의 심안에 숱한 사람들이 깨달음의 길을 찾아 개심사로 오는 광경이 스쳐 갔다.

머지 않아 드디어 옛 사람의 예언이 실현될 것이었다.

 

개심사 주변에는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느티나무, 팽나무. 굴참나무 등이 커다란 숲을 이뤄 햇빛을 막아 주었다.

나뭇가지 사이에서는 갖가지 새들이 지저귀고 다람쥐들이 뛰어놀았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흘러내렸다.

걔심사 주지 지현 스님은 채소밭에 잇었다.

" 언니, 뭐하세요? "

지현 스님은 혜원이 보다 몇 살 위였다. 그들은 친자매처럼 다정하게 지냈다.

" 어! 동생! 어쩐 일이야? "
지현 스님은 활짝 웃으며 혜원에게 달려와 손을 내밀었다.

" 스승님께서 보내셨어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어요? "

혜원이 지현 스님의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 덕분에 잘 지내.  정말 반갑다.

식전에 까치들이 울어대더니만 동생이 오려고 그랬나 보네. "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걸었다.

" 밭에서 뭘 하셨어요? "

" 배추하고 무를 갈았는데 병이 심해. 

병균도 살아 있는 중생이니 농약을 뿌릴 수도 없고..... 올해 채소 농사는 실패하겠어.

어려운 신도들한테도 나눠 주려고 많이 심었는데 우리 김장 담기도 어렵겠네. "

" 어떻게 병들었나 한번 볼까요? "

혜원인 채소밭으로 들어가 보았다. 손바닥만한 배추들이 대부분 병들어 있었다.

잎새마다 누런 점이 얼룩얼룩 보였다. 병균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 언니, 좋은 방법이 있어요. 약을 안 주고도 살릴 수 있겠어요. "

혜원이 뭔가 잠깐 생각해 보고 말했다.

" 어떻게? "

" 물만 있으면 돼요. "

" 그냥 물로? "

" 네. 이따가 해볼게요. "

" 그럼, 그래 봐. "


 

지현 스님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혜원에게 무슨 묘방이 있나 보다 생각했다.

두 사람은 절 쪽으로 갔다. 혜원인 먼저 대웅전에 들러 참배를 한 다음 요사채로 내려왔다.

절에는 지현 스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방으로 들어갔다.

" 모두 어디 갔어요 ? "
" 응, 법성인 강원으로 떠났어. 지법이하고 박보살하고 윤처사님은 장보러 운강에 갔고,

내일 불공이 있어서. 

 참, 동생 아침 공양 들었어? "

지현 스님은 혜원이 아무것도 안 먹고 진기만 마시며 사는 줄 아직 몰랐다.

" 전 안 먹어도 돼요. "

" 안 먹어도 돼다니. 가서 차려 올게." 

지현 스님은 밥상을 차리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괜찮아요, 언니. 전 요새 아무것도 안 먹어요. 그런 지 꽤 됐어요. "

" 그래? 벽곡을 하는구나. 동생, 공부가 아주 잘됐나 보다. 크게 깨우쳤나 봐."

지현 스님은 눈을 크게 뜨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외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혜원을 쳐다보았다.

" 깨우치기는 요. 아직 멀었어요. 기운이 좀 찼을 뿐이에요. "

" 아무나 벽곡하나. 이제 보니 동생 얼굴이 더욱 맑아졌네.

 환해. 빛이 서려 잇어. 서기(瑞氣)가 뿜어 나오네. 도가 아주 높아진 게 틀림없어. 

지현 스임은 머리까지 설레설레 흔들며 감탄했다.

 도반이 큰 깨달음을 얻은 것이 그녀를 무척 기쁘게 만들었다.

" 부끄러워요. 자꾸 그러지 마세요, 언니. "

혜원이 얼굴을 붉히며 손을 저었다.

" 그럼 차나 끓일까? 

" 그만두세요. "

" 마시지도 않는구나."
" 그렇게 됐어요. 한데 언니, 다른 식구들에겐 제 얘기 하지 마세요. "
" 염려 마. "

" 언니, 여기 큰일들은 거의 다 끝났죠? "

" 기와 불사와 대웅전 단청은 마무리했어.

요사채 수리도 모두 끝냈고. 크게 손볼 곳은 없어. "

" 이제 일을 놓고 용맹정진하실 때가 됐나 봐요.

스승님께서 언니를 백학봉으로 데려오라 하셨어요. "

" 그래? 어제? "

" 아흐레 후에요. 저더러 그때까지 여기서 지내라 했어요. "

" 아이고, 바라고 바라던 소원이 이워졌네. "

 

지현 스님은 너무나 좋아했다.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지현 스님의 상호(相好)는 보살상이었다. 너부죽하면서 상이 아주 복스럽게 붍어 있었다.

눈빛은 맑고 온화했다. 활짝 웃으니 틀림없는 보살상이었다.

그녀는 발써부터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중(門中)의 사형제들이 놓아주질 않았다.

사형제들은 포용력이 커서 모든 사형제들한테 사랑받는 그녀가 주지직을 맡아 주길 워했다.

개심사와 청련사는 종단에 속한 절이 아니고, 지현 스님네 문중에서 세운 도량이었다.

지현 스님의 사조(師祖) 스님이 창건했다. 그후 계속 지현 스님네 문중에서 관리해 왔다.

지현스님은 문중을 위해 자신의 공부를 뒤로 미뤘다.

대신 사형제들이 수행에 전면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했다.

 

벽운 선생도 그걸 바랐다.

먼저 공덕을 충분히 닦은 다음에 용맹정진하라는 것이었다.

공덕이 원만해야 공부에 실패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