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ALL : 사랑

Contents List 3

  •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

    가깝게 지내는 어느 목사님이 자신을 온전히 품고 긍정하는 것이 수행의 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진정으로, 온전하게 사랑하기가 어려운 탓이겠지요.

     

    또한 나 자신을 진정으로 온전히 사랑한다면 세상 만물도 그와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수행의 끝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오늘도 자신을 찬찬히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까지 제출하기로 한 과제를 못해 쩔쩔매고 있고, 하루 1시간 걷기운동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하지 못했고, 아이에겐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며 잔소리하고 화만 냈으니까요.

     

    만약 내 안의 완전한 사랑 그 자체라는 ‘참나’가 있다면 이런 나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먼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봐줄 것 같습니다. “과제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하루 1시간 걷기운동을 못 해서 자괴감이 들고 있구나.” “쓸데없는 잔소리로 아이에게 화를 낸 자신이 수치스럽구나.” “그렇구나!”

     

    그러고 나서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며 위로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판단하지 않는, 조건 없는 사랑과 공감에 저 자신은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오늘 명상 중에 가슴에 두 손을 포개 얹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네가 무엇이고 어떻든,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

  • 성자들의 시대9-모기 천사들

    날씨가 따뜻해지자 초막에도 모기가 생겼다. 한번 비가 오더니 부쩍 많아졌다.

    산모기는 들판의 모기보다 한결 독했다. 물리면 무척 따가웠다.

    하루는 날이 저문 뒤, 세 사람이 밖에서 얘길 나누고 있었다.

    주변에 날아다니던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석주와 필섭은 연신 두 손으로 모기들을 쫓았다. 그런데 혜원인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이를 보고 필섭이 혜원에게 물었다.

    "도제, 모기 안타? 모기 물려도 괜찮은가?"

    "전 안 물려요."

    "응? 어떻게?"

    "모기들이 근처에서 윙윙대기만 해요. 물 생각이 없나 봐요."

    "도력이 있으니까 그렇구먼. 야, 모기 같은 미물도 도인을 알아보네."

    필섭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또, 그런 말씀. 자꾸 그러지 마세요. 저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나나 보지요."

    혜원이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아니, 아니야. 무슨 이유가 있을 게야. 도제한테 비방이 있으면 가르쳐주시게.

    엊저녁부터는 모기가 너무 많아져서 공부하기가 힘들어."

    "실은 방법이 있어요. 전에 스승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럼, 우리한테도 좀 가르쳐 주시게."

    "그냥 마음 푹 놓고 물리세요. 모기들한테 이리 와서 마음껏 잘 먹으라 하세요.

    아주 기쁜 마음으로요. 그렇게 하시면 달라질 거예요.

    한데 모기가 떼지어 윙윙대거나 몸에 달라붙어도 긴장하시면 안 돼요.

    마음을 완전히 열어 놔야 효과가 있어요."

    "야아, 그건 보살행이네. 훌륭한 공부가 되겠구먼., 오늘부터 당장 해보세, 아우."

    필섭이 또 무릎을 치고 나서 석주에게 동의를 구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형님. 도제한테 참 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도제, 고마워."

    석주는 혜원일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혜원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혜원인 잠시 후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석주와 필섭은 저녁 수련을 시작했다.

    체조를 할 때는 자꾸 몸을 움직이니까 모기들이 덤벼들지 않았다.

    행공에 들어가자 멀찍이 물러갔던 모기들이 다시 몰려왔다.

    윙윙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두 사람의 살갗이

    무의식중에 바짝 긴장했다.

    필섭과 석주는 혜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모기들을 향해 마음으로

    '이라 와서 실컷 배를 불려라'고 했다. 그러나 기쁜마음은 들지 않았다.

    모기들은 사정없이 덤벼들었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자꾸 따갑고 근지러웠다.

    그래도 기쁜 마음을 지녀 보려고 애썼다. 한데 진심으로 기뻐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살갗이 저절로 굳어지며 모기들을 거부하려 했다.

    행공을 끝내고 고요히 선정 수행에 들어갔을 때였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흉년이 들어 굶기를 밥먹듯 하던 기억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물로 배를 채우던 자신들의 모습, 그 어린 자식들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두사람은 문득, 달려드는 모기들이 어린 시절의 자신들로 보였다.

    그저 하염없이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확 열렸다. 긴장했던 몸도 완전히 풀렸다.

    두 사람은 가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모기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얼른 와서

    맘껏 먹으라'고 했다. 온 세상의 모기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해도 모두 다 품어 안을

    심정이었다.

    보기들은 두 사람 주위를 계속 맴돌며 윙윙거렸다.

    석주와필섭인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기들을 불렀다.

    '나한테 오너라.'

    바로 그때였다. 두 사람의 가슴에 지극한 기쁨이 용솟음쳤다.

    또, 안개처럼 부드러운 기운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 부드러운 기운은 잠시 뒤에 두 사람의 살갗을 통해 몸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따스하고 잔잔한 봄바람이 살 속으로 솔솔 불어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살갗이 베로 만든 헝겊인 양 술술 들어왔다.

    몸 속으로 들어왔던 기운은 곧 다시 몸 밖으로 나갔다.

    한편으론 들어오고 한편으론 나가길 계속했다. 모기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윙윙대는 소리가 저잣거리의 소음처럼 시끄러웠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한 마리도 몸에 달라붙지 않는 것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가 두 사람을 에워 싸고

    이리저리 맴돌 뿐이었다.

    필섭인 그 이유를 알았다. 안개처럼 부드러운 기운은 바로 우주에 가득한 진기였다.

    혜원이 일러준 대로 마음을 완전히 여니까, 이 우주의 진기가 두 사람을 에워싸며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랬다가, 모기들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과 함께

    밖으로 뿜어 나갔고, 모기들은 진기에 휩싸여 저절로 허기가 사라진 것이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모기들은 여전히 한 마리도 달려들지 않았다.

    더욱 많은 모기들이 몰려와 두 사람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석주는 이렇게 신비로운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형님, 모기가 전혀 안 무네요. 형님도 그러세요?"

    "나도 그래."

    "이게 어찌 된 일이지요?"

    "자네 몸 속으로 뭐가 솔솔 들어오지 않았나?"

    "예, 마치 봄바람 같은 것이 살 속으로 자꾸 들어왔다 밖으로 나갑니다."

    "그게 진기야."

    "우리 마음이 크게 자비로워지니까 진기가 우리 몸을 둘러싸는게야,

    모기들도 이 진기를 먹어서 저절로 배가 불러진 것이고."

    "저번에 짐승들이 몰려왔을 때하고 같은 이치구먼요."

    "그렇지."

    "허, 참."

    석주는 감격에 겨워 더 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마음 하나로 미물중생들의

    배를 불려 주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이 엄청난 이치를 모든 사람이 알고

    실제로 행하면 이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혜원이 밖으로 나왔다. 혜원은 두 사람의 체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형들께서 큰 공부를 하셨어요."

    그녀는 무척 기뻐했다.

    "도제가 쉬한 가르침을 준 덕이네."

    "정말 고마워."

    석주와필섭인 혜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아니에요, 도형들께서 근기가 좋으셔서 하루 만에 깨우치신 거예요.

    평소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자비행을 실천하셨기 때문이에요.

    아무나 그리 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도

    이레가 지나서야 깨우쳤어요."

    "여자들은 워낙 물것을 싫어하잖아. 벌레 한 마리가 몸에 붙어도 소스라쳐 놀라고.

    벌레나 지렁이. 뱀 등속을 너무 무서워 하지."

    필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엔 그 마음을 떨치기가 참 어려웠지요. 모기들이 윙윙대면 소름이 돋았어요.

    그들 몸이나 내 몸이나 겉모습만 다르지 똑같다는 생각을 자꾸 했더니 그 마음이

    점점 엷어지데요."

    하늘에는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처럼 총총히 빛났다. 뻐꾸기 울음소리,

    소쩍새 울음 소리가 간간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왔다. 청령자는 소나무 위에서

    자고 있었다. 세 사람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 해 여름은 무척 가물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초막의 샘물도 많이

    줄어들었다. 초막 마당가에는 샘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넓이가 사방 한자 가웃에 깊이가 반 자 조금 넘었다. 이 샘물은 아주 맑고

    맛이 좋아 식수로 썼다.

    다른 하나는 깊이가 석 자쯤 되었다. 이 샘물로는 설거지, 빨래, 목욕등을 했다.

    개숫물이 잘 스며들어가 좀 탁한 편이었다. 가뭄이 계속되자 두 샘물 모두 크게 줄었다. 빨래와목욕은 계곡으로 내려가서 했는데 물이 모자랐다. 바닥물까지 긁어서 쓸때가 많았다.

    어느 날, 석주와 필섭인 수련을 마치고 물을 마시러 샘으로 갔다.

    샘물은 바닥에서 한 치도 못 되게 있었다.

    석주가 표주박으로 바닥을 긁으니 표주박에 물이 3분의 2쯤 찼다.

    석주는 먼저 필섭에게 권했다. 필섭이 표주박을 건네 받아 막 입에 대려던 참이었다.

    "필섭아."

    난데없이 스승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필섭은 벽운 선생이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벽운 선생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필섭이 헛소리를 들었나 보다 하며 다시 물을 마시려 하는데,

    또 벽운 선생의 음성이 들렸다.

    "필섭아, 그 물은 그냥 두고, 저 아래 샘물을 마셔라. 곧 목마른 중생이 여기로 온다."

    바로 앞에서 하는 말같이 들렸다. 필섭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석주한테 이얘길 했다.

    "이상한 일이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난데없이 스승님의 음성이 들릴까.

    헛소리는 분명 아니고

    선연하게 들렸어. 참 희한하구먼."

    "스승님께서 도력으로 말씀을 전하신게 아닐까요?"

    석주가 자신의 체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저쪽 샘으로 가지요."

    "그러세."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막 쓰는 샘물은 구정물처럼 흐릿했다.

    필섭은 물을 떠서 입에 대려다 좀 머뭇거렸다.

    물 속에 작운 티끌들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이 물을 마시고 행여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한데 또 스승의 음성이 들려왔다.

    "기쁘게 마셔라. 너희로 인해 다른 중생들이 덕을 입지 않느냐.

    기쁜 마음으로 마시면, 이 더러운 물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수가 되느니라.

    근심하며 먹으면 독이 된다."

    이 말은 석주도 똑같이 들었다. 필섭은 얼른 물을 마셨다.

    그의 가슴은 모기들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었을 때처럼 기쁨이 충만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스처럼 싸아하고 시원한 기운이 위와 식도에서부터

    온몸으로 펴져 갔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물파스가 스며든 것처럼 시원했다.

    석주도 물을 마신 다음 필섭과 똑같은 체험을 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쪼였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덥지 않았다.

    차디찬 계곡물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시원했다. 그리고 입에는 자꾸 침이 고였다.

    평소보다 몇 배 빨리 고이는 것 같았다.

    "형님, 온몸이 시원해지고 침이 굉장히 많이 생기네요. 형님도 그러십니까?"

    석주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나도 그래."

    "왜 침이 자꾸 나오나요?"

    "침이 좀 단 것 같지 않아?"

    석주는 잠시 자기의 침맛을 음미해 보았다. 필섭의 말대로 약간 단맛이 느껴졌다.

    "예, 정말 그런데요."

    "이건 감로수야. 옥수라고도 하지.

    스승님께서 좀 전에 기쁘게 마시면 약이 된다 이르셨잖나.

    이 침은 약술세. 또 우리 몸이 시원한 것은 약 기운 때문이네.

    그 기운이 더위를 막아 준 게야. 스승님께서 오늘 너무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구먼.

    스승님께 인사를 드리세."

    필섭과 석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스승께서 어디에계신지 몰라 초막 뒤편 백학봉을 향해 절을 바쳤다.

    한 번이 아니라, 거듭 수십 번을 되풀이했다.

    두 사람이 계속 절을 하는데 산 위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두 사람은 그제서야

    절을 멈췄다.

    잠시 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 셋이 산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약초를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이었다. 목이 심하게 말랐던지

    샘물을 바닥까지 긁어 마시고 골짜기 쪽으로 내려갔다.

    얼마 후, 혜원이 수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혜원인 석주와 필섭이한테

    일어났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형들께서 오늘도 좋은 공부를 하셨네요."

    "알고 있었구먼. 한데 우리 둘 다 스승님의 말씀을 똑똑히 들었어.

    선정 닦는 공부를 처음 할 때도 이 경험을 했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지?"

    석주가 눈을 빛내며 혜원에게 물었다.

    "멀리 있는 사람한테 말을 전하는 것을 천리전음이라고 해요.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도 바로 옆에서 하는 얘기처럼 들을 수 있어요.

    스승님께선 도가 아주 높으시니까 우주 밖으로도 말씀을 전하실 거예요."

    "그래!"

    석주의 눈이 더욱 휘둥그래졌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니 온몸이 파스를 바른 것처럼 시원해지데.

    지금도 내장까지 싸아하네. 이게 약 기운이 맞지?"

    필섭이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래요. 참 좋은 기운을 받으셨어요.

    아까 그 마음을 잃지 않으면 도형들 몸이 금방 깨끗해질 거예요."

    "침도 아주 많이 나와."

    "뱉지 말고 계속 삼키세요. 앞으론 배도 덜 고프고 목도 덜 마를 거예요.

    도형들께서 오늘 참으로 큰 공부를 하셨어요."

    혜원인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녀의 마음은 벌써 오래 전에 나와 남의

    분별을 거의 다 떨쳤던 것이다.

    세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나무 위에 있던 청령자가 땅으로 내려왔다.

    쳥령자는 혜원이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다음,

    날갯짓을 몇 번 하고 뭐라 소리를 냈다.

    "청령자가 참 좋아하네요. 축하드리려고 내려왔나 봐요."

    혜원이 청령자의 뜻을 헤아리고 두 사람에게 전했다.

    "얘가 어떻게 알지?"

    필섭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그 동안 청령자도 공부가 많이 됐어요. 몸이 열려서 기운으로 주변의 변화를 알아채요. 도형들한테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오늘 새로워진 것을 몸으로 느낀 거예요."

    "청령자야, 고맙다. 너도 부지런히 닦아서 큰 도를 깨우쳐라.

    네가 우리보다 먼저 득도하걸랑 혜원이 도제처럼 우릴 이끌어다오."

    필섭은 청령자가 매우 대견스러워 보여 날개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백령자는 사람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지만. 청령자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혜원이 필섭의뜻을 다시 전했다.

    청령자는 혜원의 말을 알아듣고 날갯짓을 했다.

    "고맙고 기쁘데요. 저도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겠대요."

    혜원이 또 청령자의 말을 대신 전해 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점심나절에 낯선 청년들 다섯이 초막을 찾아왔다.

    모두 20대로 보였는데 얼굴이 하나같이 불량스러웠다. 깡패처럼 보였다.

    그들은 처막에 오자마자 샘에 가서 세수를 하며 소란을 피웠다.

    석주와 필섭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저희끼리 한참 떠들어대더니

    그중 하나가 필섭이한테 여기서 야영을 좀 하겠노라고 핶다.

    말투가 매우 불손했다. 필섭인 내키지 않아 계곡에 가서 놀다 가라고

    무뚝뚝하게 거절했다.

    "경치가 근사해서 그러는데 하루만 쉬자고."

    녀석은 대뜸 반말을 하며 시비조로 나왔다.

    "거 되게 딱딱하게 구네."

    "야, 말씨름 하지 말고 이리 와서 텐트나 치자."

    "인심 더럽구먼.":

    다른 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필섭인 울컥 화가 치밀었다.

    "여긴 수도하는 데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서 떠나."

    필섭이 언성을 높였다.

    "젊은이들, 어른한테 그 무슨 말툰가."

    석주도 점잖게 타일렀다.

    "어쭈 병신까지 나서네."

    '병신도 도닦냐?"

    "저것들 손 좀 봐줄까."

    녀석들의 말투가 더욱 거칠어졌다.

    "야, 이놈들아! 말조심해~"

    필섭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석주가 모욕을 달하자 감정이 더욱 격해진 것이었다.

    "뭐야, 이 새끼가! 맛 좀 볼래!"

    한 녀석이 눈에 불을 켜고 외쳤다. 분위기가 사뭇 험악해졌다.

    이때 혜원이 밖으로 나왔다. 혜원인 그림자처럼 조용히 마당으로 나섰다.

    녀석들의 눈길이 일제히 혜원에게 쏠렸다.

    "계집애도 있었네."

    "거 쓸 만하게 생겼는데."

    "야, 저거나 가지고 놀아 볼까."

    "어이, 아가씨. 너도 도닦냐?"

     
  • 화온의 명상이야기 13 - 하늘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

    북한산 정상에 오르면 높은 아파트 빌딩들도 성냥갑처럼 보입니다. 길 위를 달리는 차들도 개미 새끼들처럼 작아 보입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아주 작아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하늘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수많은 별 중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는 아주 작은 별이라 점 하나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보자면 지구별에 사는 뭇 생명이 별 차이 없이 다 고만고만하게 보이겠지요. 살면서 키가 크네 작네, 예쁘네 추하네, 뚱뚱하네 날씬하네로 한참 고민했던 일들이 다 하찮게 보입니다.

    경허 스님이 토굴에서 용맹정진할 때 누더기 옷에 이가 들끓어 피부 위를 마치 비지처럼 허옇게 덮었는데도 이를 잡지도 않고 가려워 긁지도 않기에 사미승이 물었답니다. “스님 안 가려우세요? 왜 이를 잡지 않으세요?” “저 하늘에서 보자면 사람 몸에 붙어사는 이나 땅에 붙어사는 사람이나 다 티끌처럼 보일 뿐이다. 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다.” 이어 경허 스님은 이나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생명이니 다를 바 없이 소중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늘처럼 커졌다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그 전과 매우 달리 보입니다. 쩨쩨하고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크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니 세상일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명상을 할 때나, 마음공부를 할 때 하늘처럼 마음이 커졌다 생각하며 시작합니다. 전에는 크게 생각된 허물들이 이제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하늘처럼 마음이 커지니 모든 존재들이 다 똑같이 평등하고 소중합니다. 다 껴안고 사랑하며 축복하겠습니다.

  • 성자들의 시대8 - 바른 숨쉬기

    "그렇겠지."

    필섭은 아득히 먼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의 눈앞에 어떤 환상이 떠올랐다.

    벽운 선생이 수많은 중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침을 펴는 환상이었다. 스승 앞에 벌레, 풀같은 미물중생에서부터 사람까지, 온갖 중생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 무리에 끼여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초막의 풍경은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큰 축제가 끝난 뒤의 적막감과도 같은 것이 감돌았다. 간간이 들려 오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만이 깊은 고요를 깨뜨렸다.

     

    석주와필섭은 오랜만에 시장기를 느꼈다. 그들은 다시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청령자도 사냥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석주와필섭에게는 눈에 비치는 삼라만상이 모두 새롭게 다가왔다. 온갖 짐승들이 다 자기네와같은 수행자로 보였다. 짐승들만이 아니었다. 갖가지 풀과 나무들, 생명이 없는 돌과 물과 흙, 바람과구름 등도 그렇게 보였다. 만물중생이 다 함께 도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벽운 선생이 백령자를 데리고 초막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잘 닦았구나."

    벽운 선생이 제자들의 절을 받고 나서 흐뭇해 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스승님의 은덕입니다. 저희뿐 아니라 수많은 짐승들까지 큰 감화를 입었습니다."

    필섭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렸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공부를 하자. 이제 숨쉬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석주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스승을 쳐다봤다. 숨쉬는 공부라니, 숨이야 그냥 쉬는 것인데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석주야, 너는 무엇으로 숨을 쉬느냐?"

    석주의 마음을 읽고 벽운 선생이 석주에게 물었다.

     

    "코로 쉽니다."

    "공기를 마시느라 쉽니다."

    "숨은 어디로 들어가느냐?"

    "가슴으로 들어갑니다."

    벽운 선생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물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석주에겐 의외의 말씀이었다. 왜 틀렸다고 하실까. 석주는 그 이우를 궁금히 여기며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숨은 코로만 쉬는 게 아니다. 살갗으로도 쉰다. 숨쉴 때는 공기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천지의 기운도 같이 들어온다. 또 코로 숨을 쉴 때 공기는 가슴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기운은 배꼽아래 단전이라는 곳까지 들어간다. 여기가 단전이다."

    벽운 선생은 손으로 석주의 단전을 만져 주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은 모두 살갗만으로 숨을 쉰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 숨이 코로 들어온다. 그래도 살갗의 숨구멍이 많이 열려 있어 그리로도 공기가 드나든다. 그리고 코를 통해 마시는 공기는 폐까지 들어오지만, 공기와 함께 들어온 천지의 기운은 단전까지 쑥쑥 내려간다. 그래서 아기들은 숨쉴 때마다 아랫배가 불룩불룩 나온다.

    또 살갗의 구멍들을 통해서도 천지의 기운이 들어온다. 아기들은 천지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 몸이 매우 깨끗하다.

    한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온갖 번뇌에 시달리면서 살갗의 숨구멍이 조금씩 닫힌다.코로 들어오는 숨도 폐에서 멈춘다.숨을 따라 들어오는 기운이 단전까지 못 내려가게 된다.

    이때문에 어른들은 숨쉴 때 배가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

    "살갗의 구멍도 많이 닫혀 아주 적은 공기만이 드나든다. 이리하여 천지의 기운을 크게 못 받으니 자연히 몸이 탁해진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사람은 숨쉴 때 어깨가 오르내린다."

     

    석주는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숨을 살펴보았다. 숨을 쉴 때 배도 어깨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가다 말았다. 벽운 선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수행이 잘된 사람은 아기처럼 숨쉰다. 갓 태어난 아기같이 아랫배로 쉬다가, 나중엔 태아처럼 살갗만으로 숨쉴 수 있게 된다. 태아와 같이 쉬는 숨을 태식이라 부른다. 아기와 같이 숨쉬면 몸도 아기처럼 깨끗해진다. "

    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얼굴이 갓난아이 처럼 맑았기때문이었다. 혜원이도 그랬다. 

     

    "숨은 마음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의 숨은 가지런하다. 숨을 깊고 가지런하게 쉬면 마음도 따라서 고요히 가라앉는다.

    정신이 산란하고 마음이 괴로우면 숨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도는 마음 공부, 정신 공부와 함께 숨쉬는 공부를 한다. 숨은 모름지기 단전으로 쉬어야 한다. 그래야 천지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다. 또, 하늘의 진기가 몸에 가득 채워져야 하늘 사람 되는 길이 열린다."

     

    벽운 선생은 석주와 필섭에게 단전 호흡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단전이란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에 콩팥과 붙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운은 여기에 쌓였다가 온몸으로 퍼진다. 그러니까 단전은 바로 기운의 창고와 같은 것이다. 단전에 기운이 충만한 사람은 건강하다. 마음도 튼튼하다.기운이 허한 사람은 몸이 부실해진다.

    마음 역시 허약해진다. 한데 기운만 세고 마음과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단전의 기운을 나쁜 일에 쓴다. 그러다가 결국 기운이 소진되고 몸도 망가진다. 마음과 정신이 올바르나 단전이 기운이 약한 사람은 그 올바른 마음과 정신을 굳게 지키기 어렸다. 자기의 올바른 뜻을 크게 펴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수행을 바로하려면, 마음도 잘 닦고 단전의 힘도 길러야 한다.

    너희들도 한번 숨을 편안히 쉬어 보거라." 

     

    석주와 필섭이 자세를 가다듬고 숨을 쉬었다.

     

    "필섭아, 네 숨은 어디까지 내려가느냐?"

    잠시 후에 벽운 선생이 필섭에게 물었다.

     

    "아랫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꼽 윗배까지 오르내리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것은 단전 호흡이 아니다. 복식 호흡이다. 마음과 정신이 좀 들떠 있기 때문에 배꼽 위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단전 호흡은 배꼽 아래로만 내려가는 숨이다."

    "석주는 어떻더냐?"

    "숨이 배꼽 근처까지 밖에 안 내려갔습니다."

    "네 마음과 정신이 아직도 위축돼서 그렇다.오늘부터 단전으로 숨쉬는 공부를 하자.

    둘 다 바닥에 편안히 눕거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앞에서 벌렁 눕기가 죄스러워 좀 머뭇거렸다.

    "괜찮다. 어서 누워라."

    둘은 스승의 재촉을 받고서야 조심스레 나란히 누웠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의 두 손을 단전 부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일렀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안히 갖거라. 천지 우주 삼라만상과 너희가 한몸이라 여겨라. 또, 선정 공부를 할 때처럼 정신을 텅 비우거라. 그런 다음에 마음의 눈으로 단전을 바라보아라. 정신을 오로지 단전에만 집중시켜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의 가르침의 따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정신도 맑게 비웠다. 마음에는 아늑한 평화가 깃들였고, 정신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자, 숨을 아주 천천히 깊게 쉬어라."

    필섭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힘이 장사인 만큼 폐활량도 컸기 때문에 임신한 여인처럼 배가 불룩했다. 그런데 배꼽 위까지 올라왔다.

    "필섭아, 배꼽 아래로만 쉬어라. 그래야 좋은 기운이 단전에 잘 모인다."

    벽운 선생이 필섭의 호흡을 교정해 주었다.

    석주의 배는 그리 높게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이 이른 대로 배꼽 아래만 천천히 움직였다. 폐활량은 적지만 마음이 잘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열흘 동안 단전 호흡만 하도록 시켰다. 열흘쯤 되자 숨이 제대로 단전까지 내려갔다. 앉아서도 서서도 단전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전 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몸푸는 도인 체조를 배웠다. 여러가지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법도 익혔다. 혜원이 체조 동작과 행공 자세를 먼저 시범으로 보여 주면, 두 사람이 그대로 따라서 했다. 체조와 행공 자세가 몸에 배는 데 또 며칠이 걸렸다. 이것들을 가르치며 벽운 선생이 이런 얘길 했다.

    "이 체조와 행공 자세는 마디마디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동작을 제대로 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관절이 다 풀린다. 또, 단전을 키워 주고 온몸에 기운을 보내 몸을 아주 튼튼하게 만든다. 몸이 풀리면 숨쉬기가 편하다. 반대로 몸이 굳어 있으면 숨이 잘 막힌다.

    몸이 굳었을 때 숨을 단까지 끌어 내리려면 힘이 들어간다. 단전 호흡하면서 무리하게 힘을 들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숨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마음 또한 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몸이 무거우면 정신도 마음도 어두워지기 쉽고, 몸에 힘이 넘치면 마음 역시 가뿐해진다. 이 때문에 우리의 도는 몸 공부 마음 공부 정신 공부 숨 공부를 같이하는 것이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단전 호흡 수련을 부지런히 하라 이르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 제자들은 스승이 어디를 가는지 아무도 물랐다. 묻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백령자가 벽운 선생을 따라갔다.

    석주와 필섭은 하루에 세 번씩 벽운 선생이 가르쳐 준 행공법을 수련했다. 또 나머지 시간에는 틈틈이 선정을 닦으며 단전 호흡을 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체조로 몸을 풀고 나면 숨쉬기가 한결 더 편해졌다. 또,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취하고 단전 호흡을 하고 나면 아랫배가 든든했다. 전신에 기운이 차오른 느낌도 들었다.

    청령자는 여전히 초막에서 지냈다. 전과 다름없이 하루에 한번씩 사냥을 나갔다. 그 외의 시간은 초막 주변에서 보냈다.

     

    그런데 석주와 필섭이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배울 무렵부터 청령자도 특이한 몸짓을 자주 했다. 소나무 위나 땅바닥에서 여러 가지 날갯짓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했다. 날갯짓이나 비트는 동작 모두 다양했고, 언제나 그 순서가 똑같았다. 파란 풀밭이나 소나무 위에서 하얀 학이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루는 석주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혜원에게 물었다.

    "도제, 청령자가 왜 저러지? 날아오르지도 않으면서 자꾸 날개를 파닥이네. 이상한 날갯짓도 많이 하고. 날기 연습을 할 리도 없을 텐데. 몸은 또 왜 자꾸 비틀어댈까. 그리고 똑같은 순서대로 되풀이하네."

    "청령자도 도형들처럼 행공을 하는 거예요. 청령자의 동작은 도형들이 하는 도인 체조나 행공 자세와 마찬가지예요."

    "그래? 희한하구먼.  그 행공법은 백령자가 가르쳐 줬나 보지?"

    "맞아요. 그렇지만 백령자한테 행공법을 가르쳐 준 분은 우리 스승님이세요."

    "아, 그랬었구먼. 그런데 도제, 학도 단전이 있어? 단전으로 숨을 쉴 수 있나?"

    "그럼요. 짐승들도 다 단전이 있어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전 호흡도 하고요. 짐승들은 번뇌가 적으니까 더 잘할 수도 있을거예요."

    "득도하는 것도 사람보다 빠르겠네."

    "그렇진 않아요."

    "왜?"

    "정신이 사람만큼 맑지 못해서 그래요. 사람은 삼라만상 온 우주를 생갈할 수 있지만 짐승들에겐 그만한 능력이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신의 힘이 사람만 못하지요. 그러니까 크게 깨우치려면 정신의 힘을 많이 길러야 해요."

     

    어느덧 단전 호흡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다. 석주와 필섭인 자신들의 몸이 좋아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좀 이상한 체험도 하게 되었다.

    하루는 필섭이 행공을 끝낸 다음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 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따뜻해졌다. 처음엔 은은하게 따스하더니 나중엔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필섭이 수련을 마친 뒤 혜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아랫배가 뜨거워지더군. 지금도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어. 왜 그러지?"

    "단전에 기운이 차고, 또 마음이 단전에 자리잡아서 그래요. 도형, 스승님께서 단전은 콩팥과 붙어 있다 하셨죠. 콩팥이 오행으로 무엇인지 아시죠?'

    "수(水)지, 물이야."

    "그래요. 단전의 기운도 수, 즉 물이에요.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의지해 있죠?"

    "염통, 심장이지."

    "염통은 오행으로 불, 화잖아요."

    "그렇지."

    "마음도 화예요. 그런데 정신을 단전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도 따라서 단전으로 내려가요. 도형, 물은 어떤 성질을 지녔지요?"

    "밑으로 가라앉고 또 차갑지."

    "불은요?"

    "위로 치솟고 뜨겁지."

    "마음의 불성질이 기운의 차가운 물성질을 뜨겁게 달궈 주어서 아랫배가 후끈거린 거예요."

    "아하, 그랬었구먼!"

    필섭은 혜원의 설명을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 도형도 곧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혜원이 석주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석주는 이틀 뒤에 필섭과 똑같은 체험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전기에 감전된 듯 휘청휘청 흔들이기도 했다.  아랫배가 마구 떨릴 때도 있었다.  혜원이 그런 현상들이 생기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전에 기운이 차서 그래요. 단전이 채워지니까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도 평소보다 강하지요. 그 때문에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찌릿해요. 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스멀거리기도 하고요. 뜨거운 기운 대신 싸아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전에 아팠던 곳이 뜨거워지거나 떨려요."

    그랬다. 필섭인 몇 년 전에 어깨를 크게 다쳤던 적이 있는데, 다친 곳이 특히 후끈거렸다. 석주는 무릎이 안 좋았었다. 한동안 관절염을 앓았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무릎으로 자주 내려왔다. 무릎이 자주 저절로 떨리기도 했다. 벽운 선생과 백령자는 달포 만에 돌아왔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이 수행을 잘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똑같은 공부를 계속하라고 일렀다. 또, 이런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단전에 기운이 차면 정도 충만해진다. 정이 충만해지면 자칫 음욕에 빠지기 쉽다., 정은 생명력의 뿌리다. 정이 충만해야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음욕에 빠져 정을 빼앗기면 기운이 크게 소모된다. 그저 음욕이 일기만 해도 정이 탁해진다. 탁한 정은 몸도 마음도 탁하게 만든다.

    정을 자꾸 배출라면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다. 공부가 깊어지질 않는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음욕에서 온전히 헤어나야  참도인이 될 수 있다. 너희는 그래도 음욕을 많이 끊은 사람들이다. 하나 그 뿌리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음욕의 뿌리가 자라지 않도록 경계하거라. 음욕에서 헤어난다는 것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다. 훌훌 떨치고 넘어서는 것이니라.

    사람의 뇌신경 중에 송과선이란 게 있다. 송과선은 기맥을 따라서 기운이 잘 유통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이 송과선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몸은 기운이 잘 유통되어 아주 부드럽다.한데 사춘기가 되면 송과선이 퇴화한다. 대신 뇌하수체라는 게 왕성히 활동한다.

    뇌하수체가 활발히 작용하면서 남자 여자의 몸이 크게 달라진다.  또, 난자와 정액이 생기고 음욕이 강해진다. 음욕은 또 온갖 번뇌를  불러온다. 음욕으로 인해 몸과 마음과 정신이 크게 약해진다.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음욕을 승화시켜 삼라만상 모두를 품어 안는 크나큰 사랑으로 바꾼다.

    그리고 참수행자의 뇌하수체는 힘을 잃는다. 대신 송과선이 도로 소생하여 활발히 활동한다. 불현듯 여인을 향한 음욕이 생기거든 온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거라 마음으로 나를 남김없이 비우고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거라. 그리하면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게다."

     

    필섭은 애욕을 잊고 지낸 지 이미 오래였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여의고 절망 속에 헤매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괴로움 때문에 다시는 여자와 인연을 맺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가끔 여자가 그리워졌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절제를 잘해왔다. 자꾸 절제하다 보니 갈수록 애욕이 희미해졌다.

    석주 역시 아내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여자를 멀리하게 됐다. 또 상처를 입을까봐 더 이상 이성으로서 여자를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았다. 혜원과 함께 살지만, 혜원일 이성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동기간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애욕을 완전히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간혹 여인의 따스한 체온이 아련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애욕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백령자는 청령자에게 새로운 행공 자세들을 가르쳐 주었다. 청령자는 백령자가 시범을 보이는 대로 똑같이 따라서 했다. 새로 배우는 동작들은 전에 하던 동작들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목, 날개, 다리 등을 쫙 뻗기도 하고, 휘휘 돌리기도 하고, 이리 저리 꼬기도 했다. 백령자가 청령자에게 새 행공법을 가르쳐 준 다음, 벽운 선생은 백령자를 데리고 다시 초막을 떠났다.

    6월이 되었다. 온 산이 초록빛으로 짙게 물들었다. 나무들마다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아서 산소를 물씬물씬 뿜어냈다. 운학산의 공기는 매우 싱그럽고 신선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시원한 공기가 쏴아쏴아 단전까지 밀려들어왔다. 

  • 안정환, 유튜브 수익금 1억원 기부

    전(前) 축구 국가대표선수로, 스포츠 해설가로, 예능인으로 사랑받는 안정환이 유튜브를 통해 얻은 수익 1억원을 모두 어려운 이웃들에게 기부했다네요.

     

    지난 4월1일 시작한 유튜브 채널 <안정환19>는 개설 7개월 만에 구독자 20만 9천 명을 넘기며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이 채널을 오픈하면서부터 안정환은 공개적으로 기부가 목적이라고 분명하게 밝힌 바 있어요.

     

    좋은 일에 함께할 기업도 찾았습니다.

     

    안정환이 기부한 1억 원 중 5천만 원은 PPL(협찬) 수익과 에이클라가 운영하는 스포츠 OTT 서비스 스포티비 나우 기부금을 합친 금액이라고 합니다.

     

    이 돈은 NGO 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에 전달됐는데 저소득 조부모 가정과 아동을 후원하는 데 쓰일 예정이라고 해요. 나머지 5천만 원은 조회수 수익과 이랜드재단의 기부금을 합친 금액인데요, 약 20가구 내외의 어려운 가정에 도움을 줄 예정이에요.

     

    안정환은 “돈을 벌려고 한 것이 아니어서 유튜브 채널을 홍보하진 않았고,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단시간에 많은 사랑을 받아 이렇게 빨리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서 매우 기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잘한 것이 아니라 모두 구독자, 광고주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지난 11월 1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감사합니다’란 제목의 영상을 통해 “6개월간 많은 금액을 기부할 수 있도록 <안정환19>를 사랑해주신 구독자분들께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기부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잘 쓰여 그분들이 살아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유소년축구를 하고 싶은데 가정 형편이나 경제적 어려움으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신청을 통해 선정해서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고 앞으로의 기부 계획도 밝혔습니다.

     

    요즘 유튜브채널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고액의 수익을 내는 유튜버들이 많은데요, 안정환 선수처럼 그 수익을 좋은 일에 쓰는 분들도 많아지길 기대해 봅니다.

  • 성자들의 시대5 - 하늘사람되는 길에 들어서다

    예전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않았던 뭇 중생과 삼라만상의 이치가 백령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백령자에겐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신비롭기 그지 없었다. 또,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백령자는 온갖 세상사에 관해 의문을 품었다. 의문이 이는 대로 벽운 선생한테 물었다. 생명이 어찌하여 태어나고 왜 죽는지, 태어나기 전에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죽은 다음에는 또 무엇이 되는지, 왜 중생들은 갖가지 종류로 갈리었는지, 왜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혀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뭇 중생들이 짝을 찿아 헤매는지, 짝이 되고 어버이가 되고 자식이 되는 인연은 어찌해서 이루어지는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생겼다.

    벽운 선생은 일년여 동안 백령자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백령자의 정신은 무한한 우주를 향해 끝없이 넓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 벽운 선생에게 백령자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중생들이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아귀다툼에서 헤어날 길은 없는지요?"

    "있다."

    벽운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어찌하면 그리 될까요?"

    "아무것도 먹지 않고 살 수 있으면 그리 된다. 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벽운 선생의 이 대답은 백령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니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그동안 백령자는 허기를 느낄 때마다 강이나 논으로 날아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그리고 자기가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 벽운 선생 역시 뭘 먹는 줄 알았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령자는 자신도 벽운 선생처럼 살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허기를 채우기 위해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이 싫어졌던 것이다. 자기로 인해 죽어 가는 물고기들이 너무 불쌍했고,깊은 술픔을 느끼곤 했었다.

    "저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지요?"

     "아무렴, 그리 할 수 있고 말고."

     벽운 선생의 얼굴에선 은은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어떻게 하여 먹지 않고도 사는지요?"

    "다른 중생의 몸 대신 하늘 기운과 땅 기운을 먹으면 된다. 그러면 먹지 않아도 배무르고 마시지 않아도 목이 안 마르다. 기운은 더욱 넘친다. 또, 몸에 땅 기운 하늘 기운이 가득 차면, 그 누구한테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 아무도 감히 해치려 들지 못한다. 걱정 근심 하나 없이, 오로지 불쌍한 중생들을 돌봐 주며 자유로이 살 수 있다."

     "저도 땅 기운 하늘 기운을 먹을 수 있는지요?"

    "목숨을 지닌 중생은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

     "땅 기운 하늘 기운을 어떻게 먹는지요?"

    "공부를 해야 한다. 네가 어버이한테서 날아다니는 법이나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우듯이 그 법을 배우면 된다."

    "어서 배우고 싶습니다."

    "내가 오늘부터 가르쳐 주마."

     백령자는 이날부터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받으며 선도를 닦기 시작했다. 수행자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수행을 시작한 지 일년도 안 되어 백령자의 식성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맨 먼저, 먹는 양이 줄었다. 조금씩 먹어도 배가 불렀고 기운이 넘쳤다.

     두 번째 변화는 육식이 싫어진 것이었다. 학은 육식성 동물이다. 그런데 수행을 시작한지 2년쯤 되자  육식이 싫어졌다. 몸에서 안 받았다.

     백령자는 자연히 육식을 끊고 열매나 풀을 먹었다. 식욕도 날이 갈수록 줄었다. 하루에 한 번 먹던 것이 이틀에 한 번, 사흘에 한 번 꼴로 계속 줄어 갔다. 그러다가 10년쯤 후에는 곡기를 완전히 끊게 되었다. 우주의 진기가 몸 속에 충만해지니 먹고 마실 필요가 없었다. 

    곡기를 아주 끊자, 몸 속에 있던 노폐물이 모두 배출되었다. 몸이 정화되면서 마음은 더욱 고요해졌다. 정신도 한없이 맑아 졌다. 잠까지 사라졌다. 마음의 맨 밑바닥에 있던 번뇌의 뿌리도 남김없이 뽑혀 나갔다.

     백령자는 수행을 시작한 지 15년 후에 깨닭음을 얻었다. 삼라만상의 이치를 환히 꿰뚫어 알게 되었다. 또,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자재한 삶을 누렸다.

    백령자와 벽운 선생은 새벽녘까지 백학봉 정상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어느덧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멀리 백두대간 쪽 동녘하늘이 조금씩 붉게 물들어 갔다. 

    이때, 가없이 자비롭고 온화했던 벽운 선생의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탁하고 흉흉한 기운이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모습이 심안으로 보였던 것이다. 특히 생명을 죽이는 살기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백령자도 세상 곳곳에 감도는 살기를 몸으로 느꼈다. 백령자의 마음 역시 짙은 어둠으로 덮였다.

    '가엾은 중생들…….' 

    벽운 선생은 그 흉흉하고 탁한 기운에 휩쓸려 온갖 고초를 당하는 중생들을 떠올렸다. 몇십 년 후 살기가 극성을 부릴때, 이세상의 중생들에게 닥쳐올 대환난도 심안으로 똑똑히 보았다. 무수히 많은 중생들이 참혹하게 죽어 갔다. 그들의 처참한 신음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 왔다.

    살기는 온 세상 방방곡곡에 감돌았다. 산천에 감도는 살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흉포하게 만들었다. 흉포해진 사람들이 곳곳에 서 무자비하게 힘없는 중생들을 괴롭혔다. 사람들의 마음에서 뿜어 나온 살기가 또 산천의 기운을 더욱 탁하고 흉하게 만들었다.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되면서 악기.살기가 자꾸 쌓여 갔다. 명산 중의 명산이며 많은 성자들을 길러낼 운학산에도 그 흉흉한 기운이 곳곳에서려 있었다.

     벽운 선생의 심안에 상제봉과 천마봉이 나란히 떠올랐다. 곧이어 비룡봉, 장군봉도 보였다. 상제봉은 백학봉의 동남쪽에 솟아오른 봉우리다. 백학봉과 20여 리쯤 떨어져 있다. 천마봉은 백학봉 북쪽 시나리오쯤 떨어진 곳에 있는 봉우리다. 장군봉은 서남쪽으로 시오리쯤 떨어져 솟아있다.

     이 네 봉우리에는 제왕을 배출하는 대명당이 있다는 이야기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풍수가들이 찾아왔다. 어떤 풍수가들은 그 유명한 천하명당을 한 번 구경이라도 해보려고, 또 어떤 풍수가들은 자신이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이곳을 드나들었다.

     상제봉에 있는 명당은 상제봉조형(하늘의 임금님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는 형국)이라 한다. 천마봉에는 천마사풍형( 하늘을 나는 천마가 바람을 내뿜는 형국)의 명단이, 비룡봉에는 비룡상천형(용이 하늘을 날으는 형국) 의 명당이 있다고 한다. 또, 장군봉에는 장군대좌형(장군이 버티고 있는 형국)의 병장이 깃들여 있다고 한다.

    숱한 풍수가들이 드나들었지만, 누가 그 명당들을 찾았다는 이야기도, 명당의 빼어난 지기를 입어 제왕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지금까지 전해 오지 않는다. 또, 그 명당들이 양택지지(집터)인지 음택지지(묘지 자리)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풍수가들이 찾아오면, 산신령께서 그들의 눈을 흐려지게 만들어 어디가 명당터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 하거나, 길을 잃고 헤매게 하거나, 안개나 구름으로 가려 버린다는, 참으로 기이한 이야기들만 떠돈다.

    벽운 선생은 빼어난 대명당을 품고 있다는 그 네 봉우리에 엄청난 탁기가 서려 있는 것을 보았다. 봉우리마다 특정한 어느 한 장소에서 흉한 기운이 강하게 뿜어 나왔다. 그 기운은 매우 거칠고 음습했다. 흉한 기운들이 뿜어 나오는 곳에서 좀 떨어진데에는 숱한 풍수가들이 찾으려다 실패한 대명당들이 있다. 그곳들만은 아주 맑고 꺠꿋한 기운이 감돌았다. 숱한 생명을 살려 줄 좋은 기운이 었다.

     벽운 선생의 심안에 문득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네 봉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풍수가들이 아니었다.그들 무리에는 벽운 선생의 옛친구도 하나 끼여 있었다. 그들은 흉한 기운이 가득 감도는 곳으로 몰려왔다. 거기서 커다란 신통력을 얻기 위해 용맹정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들 뒤에는 그들을 따르는 제자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무리들.'

    마음속으로 이렇게 탄식하는 벽운 선생의 표정이 어욱 어두워졌다.백령자 역시 앞으로 많은 사도의무리가 운학산 곳곳에 들어오리라는 걸 예견했다. 벽운 선생의 제자들이 그들로 인해 종종 어려운 일을 당하는 모습이 심안으로 보이기도 했다. 백령자의 마음에도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얼마 후에 백두대간 위로 붉은 아침해가 둥실 떠올랐다.아직 눈에 뒤덮인 뭇 산줄기들이 새하얀 자태를 드러냈다. 그 위로 아침 햇살이 퍼져 나갔다.

    벽운 선생의 심안에 새로운 사람들이 떠올랐다. 벽운 선생과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그대로 좇아올 수행자들이었다.

    운학산뿐 아니라, 방방곡곡의 명산에 벽운 선생과 그의 도반들한테서 가르침을 받게 될 수행자들이 몰려들었다. 그 수행자들은 앞에서 보았던 사도의 무리들과 정반대되는 사람들이었다.그들의 발길은 자기도 모르게 아름다운 정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의 명당들로 향했다.거기서 빼어난 정기를 받아 참삶의 길을 깨우쳤다. 깨달음을 얻은 그들에게서 밝고 환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 빛이 세상을 뒤덮은 살기를 정화시켰다. 많은 중생들이 그 덕을 입었다.

    처음엔 그들의 수가 많지 않았다. 사도의 무리보다 훨씬 적었다. 백 명에 한 명꼴도 안 되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점덤 더 많아졌다. 그들이 사도의 무리보다 많아지는 몇십년 후의 광경이 벽운 선생의 심안에 떠올랐다.

    이때 어두워졌던 벽운 선생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가없이 온화한 미소가 얼굴 가득 감돌았다. 백령자의 마음도 아침 햇살처럼 환해졌다.

    벽운 선생은 자신과 인연이 닿을 모든 중생들을 향해 무한한 사랑을 보냈다. 그 사랑과 함께 지극히 맑고 깨끗한 기운, 성스러운 기운이 전해졌다. 백령자도 스승을 따라 자신과 인연이 닿을 이들에게 한없는 사랑을 보냈다.

    잠시 후 벽운 선생의 몸에서 은은한 광채가 뿜어 나왔다. 백령자의 몸에서도 빛이 번져 나왔다. 광채는 점점 더 환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백령자와 벽운 선생은 눈부신 광채에 휩싸였다가 곧 모습이 사라졌다. 둘 다 빛으로 화해 버렸다. 또, 두개의 빛덩이가 하나로 합쳐졌다.이 빛의 응어리는 산산이 흩어져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는 빛의 응어리까지 사라져 버렸다. 백학봉 정상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몇 분 후에 벽운 선생과 백령자의 모습이 허공에서 다시 나타났다. 그들은 나타나자마나 초막으로 내려갔다. 그들이 초막에 당도하니, 소나무 위에 앉아 있던 청령자가 반갑게 맞이했다.

    벽운 선생이 초막으로 돌아오자 석주는 아침 식사를 차렸다. 식사라야 미숫가루뿐이었다. 벽운 선생은 음식을 끊은 지 오래되어 한 숟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제자들만 미숫가루를 물에 타서 한 공기씩 마셨다. 식사를 마치고 제자들은 가르침을 받기 위해 벽운 선생 앞에 나란히 앉았다. 벽운 선생이 제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필섭이와 석주도 혜원이처럼 본격적인 수도의 길로 들어설 때가 되었다. 내 그동안 뒤에서 너희를 항상 지켜봤다. 둘 다 마음을 잘 다스려 왔으니, 우리의 도를 전해 받을 자격이 있다."

    이 말을 듣는 필섭의 두 눈이 기쁨으로 반짝였다. 얼굴엔 밝은 기운이 가득 감돌았다. 석주의 얼굴도 발갛게 상기되었다.     

     " 우리의 도는 아득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하늘의 도다. 하늘 뜻을 섬기며, 하늘 뜻 그대로 살아서, 하늘 사람으로 거듭나는 길을 밝힌 도이다. 하늘 사람이란 불가의 부처님. 보살님이요, 선가의 천상선과 같은 성인이다. 불도와 선도와 우리의 도는 수도 방법이 조금씩 다를 뿐이다.

    목표하는 바나 수도법의 중심 줄기는 별로 다르지 않다. 하늘 사람을 향해, 한단계 한단계 나아가면서 얻게 되는 것도 똑같다. 우리의 도가 중국에서는 선도로 알려졌고, 인도에서는 요가로 알려졌다. 불도의 뿌리는 또 바로 요가이다. 예수님이 전하신 도 역시 본래는 우리의 도와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석주에겐 생소한 이야기였다. 석주와 도반들은 스승이 대도인이란 사실만 알았지, 그가 어느 도에 입문하여 깨닭음을 얻었는지 전혀 몰랐다. 누구는 그가 예전에 스님이었는데, 수행을 잘하여 큰 도력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또, 누구는 스승이 선도를 닦아 선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추측했다. 제자들이 궁금하게 여겨 물어 보면,벽운 선생은 한결같이 그런 걸 알아서 뭣에 쓰려느냐고 반문했다. 그게 대답이었다. 그리고는 마음을 닦고 또 닦으라고만 일렀다. 벽운 선생의 말씀이 계속 이어졌다.제자들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필섭은 5년 전, 벽운 선생과 처음 인연을 맺기 전에 벽운 선생의 도반인 호산 스님한테 풍수를 배웠다.호산 수님은 풍수의 비법을 전수해 주고는, 훗날 자신의 도반을 만나게 될테니 그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라 일렀다.

    그때 필섭은 청련사에 있었다. 청련사 주지였던 상지 스님이 필섭의 고모였다. 상지 스님은 지현 스님의 은사 스님이었고, 벽운 선생과도 인연이 깊은 이였다.

    벽운 선생을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5년간은 필섭에게 스승으로부터 도를 전해 받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다. 그동안 많은 시헙을 거쳤다. 이제 비로소 수행의 길로 들어섰다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석주 역시 감개부량했다. 아내한테 배신당하고 자살까지 시도했는데, 벽운 선생을 만나 새 삶을 누리게 되었다. 이젠 자기가  하늘처럼 모시는 벽운 선생의 뒤를 좇는다 생각하니 지극한 기쁨이 용솟음쳤다. 또, 스승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게 느껴졌다

  • 지금 여기가 천국이었다

    새벽에 깊은 명상을 하고 나서 그만 늦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집이 불타는 꿈을 꾸었습니다. 어마어마한 불길에, 순식간에 집안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유황 냄새 비슷한 고약한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겨우 몸만 빠져나와 불타는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에 누군가 사람이 아직 남아있는 듯했습니다. “뭐해? 빨리 나와!” 울면서 안타깝게 고래고래 소리쳤습니다.

     

    깨어보니 꿈이라서 무척 다행입니다. 부드러운 감촉의 이불, 깨끗한 공기, 아늑한 공간이 새삼스럽고 딴 세상에 온 것 같습니다. 창문 너머로 밝은 햇빛 한 줄기가 쏟아져 들어오고,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렸습니다. 꿈이 지옥이라면 이곳은 천국입니다!

     

    세수하려고 수도꼭지를 트니 물이 저절로 나오고, 심지어 더운물까지 나옵니다. 그리고 새로 지은 아침밥을 먹습니다. 잘 익은 곡식과 야채들이 맛있게 요리되어 입속으로 쏙쏙 들어가니 얼마나 달콤하고 행복한지요.

     

    ‘아, 그렇구나! 하늘은 ‘나’를 위해 이렇게 모든 것을 마련하고, 생명을 주시는구나!’ 새삼 하늘의 크나큰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문득 하늘은 단 한순간도 나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살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사랑과 축복 속에서 매 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하늘의 큰 사랑을 깨달으니 이제부터 내가 받은 크나큰 사랑과 축복을 주변에 전하고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앞으로도 잊지 않고 매 순간 이곳이 천국임을 실감하며 무한한 사랑과 평화, 자유 안에서 살아가겠습니다. 나는 하늘이 매 순간 보살피고 있는 하늘의 참자녀입니다.

  • 구도소설 성자들의 시대3-우주와 하나가 되다

     

    방헌수가 이런 얘기를 한 지 한달밖에 안 되어 석주는 화를 입었다. 친구 떄문에 재산을 모두 날렸고, 아내와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때 석주한테 가장 큰 위안을 준 사람이 방헌수였다. 처음 방헌수가 관상을 봐줬을때, 석주는 그의 말을 반만 믿었다. 자신에게 좋지 않은 일이 닥쳐오리라는 얘기는 믿었지만, 말년에 큰 복을 누리리라는 예언은 믿지 않았다. 자기가 어찌 감히 그런 복을 바라겠는가 싶었다.더구나 만인을 가르치는 스승이 된다니 황당무계한 소리로 들릴 뿐이었다.

     

    그런데 방헌수의 예언이 정확하게 들어맞자 석주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자신이 참고 견디며 다시 살림을 일으키면 아내와의 관계도 좋아지리라 믿었다. 방헌수는 하늘이 자네를 크게 쓰시려고 시련을 주신 거라며 자주 석주를 위로했다.

     

    아내가 집을 나가기 며칠 전이었다. 방헌수는 또 이런 말을 했다.

    "아우, 며칠 후 또 아우한테 나쁜일이 생기네. 이번엔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하네. 이번 고비를 잘 넘겨야 대운을 맞네."  석주는 이 말을 듣고 어깨에 힘이 쭉 빠졌다. 

     

    방헌수의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봐서 이번엔 더욱 큰일이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석주가 또 무슨 일이 닥치겠느냐고 물었으나 방헌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렇게 덧붙였다. 

    "나도 잘 모르겠네. 다만 자네 마음이 너무 크게 상할까 걱정이네. 아우, 내 말 명심하게. 어떤일이 생겨도 희망을 잃지 말게나. 이번 시련을 겪고 나면 자네 운이 활짝 피네. 이후론 두번 다시 괴로움을 겪지 않게돼. 내 장담하네. 틀림 없어."

     

    그후 며칠 안 되어 아내가 집을 나갔다. 석주에겐 청천벽력 이었다. 재산을 날렸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더 고통 스러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내까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가출 했다는 것을 알았을때 절망감이 극에 달했다.

     

    이때 석주의 모습은 살아 있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허깨비나 다름 없었다. 삶의 의의를 전혀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한순간 한순간 살아가는 게 죽은 것보다 더 괴로웠다.

     

    석주는 그림자처럼, 혼이 빠진 사람처럼 일손을 놓고 시장바닥 여기저기 배회했다. 방헌수는 그런 석주를 매일 만나 위로 했다. 하지만 석주에겐 별로 위안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7 월이었다. 그때 석주는 목숨을 끊으려고 수면제를 모으고 있었다. 하루는 방헌수가 석주를 불러 이렇게 위로했다.

    "아우, 너무 상심 말게. 이제 제수씨를 잊어. 자네 한테 엄청난 광명이 비치고 있다네. 한달 안에 고귀하신 어른을 뵈올거야. 그 귀인께서 아우한테 큰 복을 주실거네. 제발 마음좀 단단히 먹어."

     

    이런 격려도 석주의 귀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석주는 시장에서 흘연히 자취를 감췄다. 목숨을 끊으려고 계룡산 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계룡산 보덕봉. 보덕봉은 계룡산 중에서 가장 인적이 뜸하며, 휴일에도 등산객 하나 오지 않을 만큼 호젓한 곳이다. 석주는 보덕봉 깊은 계곡에서 약을 먹고 정신을 잃었다. 약을 먹기 전에 한참 동안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살고 싶은 의욕이 전혀 일지 않았다. 그래서 담담한 마음으로 가져온 수면제를 남김없이 다 먹었다. 치사량이 훨씬 넘는 양이었다

     

    그런데 석주는 이튿날 의식을 되찾았다. 석주가 의식을 회복하고 제일 먼저 본 사람이 혜원이었다. 그 다음이 벽운 선생이었다. 그날 두 사람의 얼굴에서는 눈부신 빛이 뿜어 나왔다. 세상 사람들 같지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벽운 선생은 석주를 살려내어 제자로 삼았다. 석주는 벽운 선생의 다른 제자들과 몇 달간 함께 살았다. 그들한테서 벽운 선생이 큰 깨닭음을 얻으신 대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석주에겐 생소하기만 한 도담도 많이 나눴다.

     

    석주는 아직 벽운 선생으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 다른 도반들은 참선과 행공을 했지만, 석주한테는 오로지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닦으라고만 가르쳤다. 아내를 잊고, 아내를 잊듯이 세당에 대한 집착을 남김없이 여의라 일렀다. 처음엔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기가 너무 어려웠다. 아내가 불쑥불쑥 떠올랐고, 그때마다 분노심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또, 막막한 절망감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그런 석주에게 혜원이는 큰 위안을 주었다. 그녀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참 평안해졌다. 그저 기쁘고 환해졌다. 아내에게서는한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도반들이 들려주는 도화들도 석주에게 큰 기쁨과 위안이 되었다.

     

    스승을 찾아가는 수행자들과 깨닭음을 완성하고 대자유를 얻은 성자들의 삶은 석주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들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의 삶과 너무나 달랐다. 찬란해 보였다. 그들의 삶과 비교해 보면 세상 사람들의 삶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석주는 한발 한발 수행자들의 세계로 가까이 다가갔다. 아내를 향한 집착과 분노도 차츰차츰 사그라들었다. 아내의 모습도 자주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해 늦가을, 도반들은 벽운 선생의 명에 따라 뿔뿔이 흩어졌다. 계룡산 보덕봉에는 혜원이와 명천이가 남게 되었다. 벽운 선생은 석주를 운학산으로 데려왔다. 석주는 석달 동안 거의 홀로 지냈다. 개심사에 있는 도반 유필섭과 벽운 선생이 가끔들렀을 뿐이었다.

     

    혼자 지내게 되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또, 자주 번뇌에 시달렸다. 아내를 향한 미움이 자꾸 되살아났다. 벽운 선생은 석주더러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번뇌를 뿌리까지 뽑아 없애라고 했다.지난번에 들러서는 이런 가르침을 주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이르셨다. 이말씀은 그저 참고 희생을 감수하라는 뜻이 아니다. 지고의 기쁨과 복락을 누리며 살라는 뜻이다. 원수까지 사랑한다면 세상에서 사랑 못 할 께 하나도 없다.삼라만상 온 우주를 품어 안게 된다. 그만큼 크나큰 기쁨을 얻게 된다. 그런데 실제로 체험해 보지 않으면 손해 보는 줄 착각한다. 몸소 체험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지당한지 잘 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온갖 번뇌를 모두 버리고 해탈하는 길을 가르치셨다. 또 번뇌는 욕망과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번뇌를 버리려면 욕망을 남김없이 떨치고 집착을 끊으라 하셨다. 이를 실천하면 대자유를 얻는다. 푸른 창공에 훨훨 날아다니는 새들처럼 어디에도 걸림이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욕망을 모두 비우고 가진 것을 다 버리면, 사는게 허망하리라 생각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욕망과 집착을 완전히 떨치면 온 우주가 품안에 들어온다. 무한한 충만감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그 기쁨은 세속 사람들이 얻는 기쁨과 전혀 다르다. 영원무궁하고 지극하기 그지없다.

     

    네가 왜 아내를 미워하는지 아느냐? 집착하기 때문이다. 그 집착은 아내를 가지려는 욕망에서 생겨난다. 이 욕망과 온갖 나쁜 감정이 아내한테 집중된다. 아내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그것들이 한순간에 사라질게다."

     

    석주는 벽운 선생의 가르침대로 아내를 향한 집착을 끊으려고 애썼다. 처음엔 어려웠다. 아내의 모습이 자주 떠올랐고 그때마다 감정이 북받쳤다. 그러면 스승 벽운 선생과 혜원이와 도반들을 생각했다. 그들의 모습이 치솟는 감정을 가라앉혀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를 향한 나쁜 감정들이 자꾸 엷어져 갔다. 며칠 전이었다. 석주는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순간, 아내가 그저 불쌍하게만 보였다. 아내의 굴레에서 완전히 헤어나니 마음이 날아갈 듯 가뿐했다.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로워진다는 스승의 말씀을 실감했다. 정말 자유롭고 기뻤다. 또, 세상이 새롭게 보였다. 눈에 보이는 것 모두 사랑스러웠다. 땅속의 벌레들, 실낱 같은 풀뿌리들, 갖가지 나무들과 짐승들, 산과 들과 강물, 하늘의 별들, 구름과 눈......, 그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석주는 마음으로 삼라만상을 모두 품어 안았다. 그러자 자신이 온 우주만큼 커져 우주와 하나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석주가 이렇게 눈을 감고서 지난 일들을 회상하고 있는데, 백령자가 작은 울음 소리를 내며 날개를 가볍게 퍼덕였다. 석주는 얼른 눈을 떴다. 백령자는 날개짓을 한 번 더 했다.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뜻이었다. 석주는 백령자를 안아서 밖으로 데려갔다.

     

    어느새 백학봉 위로 해가 떠올라 있었다. 눈덮인 백학봉이 햇빛을 받아 새하얗게 빛났다. 날씨가 아주 포근해 초막의 지붕에서 눈녹은 물이 줄줄 쏟아져 내렸다. 바람 한 줄기가 골짜기를 타고 휘이 올라갔다. 소나무들에 쌓였던 눈이 우수수 떨어졌다.

     

    석주는 마당에다 백령자를 내려놓았다. 백령자는 날개를 몇번 퍼덕이다 하늘로 올라갔다. 백학봉을 한바퀴 돌고 나서는 관음봉 아래 개심사 쪽으로 향했다. 벽운 선생과 혜원이 개심사에 당도한 모양이었다.

     

    백령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석주는 팔짱을 끼고 사방을 둘러봤다. 눈에 덮인 뭇 생명들의 숨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다. 아직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 나무들. 벌레들......, 석주는 그들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석주의 숨과 뭇 생명의 숨이 하나로 녹아 들었다. 대자연, 우주의 숨도 거기에 합류했다. 석주의 마음속에서 온 우주가 만들어 내는 노래가 장엄하게 울려 퍼졌다. 벽운 선생과 혜원인 저녁나절에 왔다. 백령자와 유필섭도 그들과 함께 왔다.

  • 시골로 간 교수, 반찬가게를 내다

    푸른누리 임은상 대표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충북 옥천군으로 귀촌했습니다. 평소 마음공부에 관심이 많았는데 “삼라만상에 깃든 하늘을 섬기라”라는 가르침을 좌우명으로 삼아 산골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살피신다고 합니다. 또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불가에서는 우리는 물론 만물이 부처라고 하구요. 그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해보고 싶어요.”

     

    실제 임 대표는 자신이 받은 가르침대로 모든 자연물에 깃든 신성을 늘 생각하며 텃밭 농사를 짓고 반찬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기울입니다. 

     

    놀라운 일은 마음먹기에 따라 작물의 상태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지난해 고추를 기를 때 그를 확연히 깨달았습니다. 임 대표는 밭에서 자라는 고추를 향해 사랑하는 마음을 자주 보냈습니다. 또 하늘이 주시는 축복과 사랑의 에너지가 자신을 통해 고추는 물론 텃밭의 모든 생명에게 전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텃밭의 고추와 그 안에 있는 생명이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온 세상에 축복의 에너지를 보내주는 신성하고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고 그런 모습을 자주 떠올렸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고추 농사는 대성공이었습니다. 고추에 약을 뿌리지 않으면 탄저병이 찾아오는 일이 잦은 데 임 대표 텃밭의 고추는 빨갛게 익을 때까지 건강했습니다.

     

    임 대표는 산야초를 채취하고 텃밭 작물로 장아찌를 만들 때도 그 마음을 지키려 합니다.

     

    “원불교에서는 처처불상 사사불공 무시선 무처선이라고 합니다. 세상 만물이 부처님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불공드리듯 하라는 거지요 그렇게 하면 참선이라는 게 따로 없고 도량이나 기도처라는 것도 따로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텃밭 농사를 짓고 반찬을 만들어서인지 임 대표의 시골집에 놀러 온 이들은 모두 음식이 너무 맛있다고 놀라워했습니다.

     

    임 대표는 그런 마음을 담은 반찬을 도시인들에게 나눠보라는 지인들의 권고에 ‘겁 없이’ 반찬가게를 냈습니다. 자신이 사는 옥천군 청산면의 느낌을 담아 가게 이름을 푸른누리라고 지었습니다. 얼마 전 네이버를 포함 쇼핑몰에 등록도 했습니다. 

     

    반찬가게 주인장으로 만든 첫 ‘작품’은 바쁜 도시인들이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장아찌입니다. 임 대표는 오가피, 머위, 취나물, 두릅 등 산속에서 채취한 자연산 산야초로만 장아찌를 만들었습니다. 친환경 산양삼을 넣어 채수를 끓였고 설탕 대신 올리고당을 조금 넣고 산나무를 우려 넣어 단맛을 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다 갑자기 반찬가게 주인이 되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힘들지만 재미있습니다. 삶 속에서 명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좋구요”

     

    임 대표의 장아찌 가게를 찾아가는 링크입니다.

     
  • 꿈 깨니 또 꿈이네!

    남편이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화도 나고 슬프고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한참 지나 그는 죽을 병이 들어 집에 들어왔습니다. 원래는 그를 깊이 사랑하고 있던 터라 연민으로 그를 보살폈습니다. 앓다가 잠들은 그를 보며,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줬습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 나쁜놈아! 바람 핀 여자가 다섯이나 되지? 그러고도 사람이냐? 무슨 낯짝으로 이렇게 누워있냐?"하고 이불을 밀치며 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잠에서 깬 그는 슬픈 표정으로 일어나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분노와 배신감과 원망으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울면서 "가지마! 가지마!"하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다 눈물을 흘리고 소리치면서 꿈에서 깼습니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비참함과 슬픔으로 눈물이 나고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진짜로 가슴이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꿈이 아닌 것처럼 생생했습니다.

     

    도가나 불가에선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도 '꿈'이라고 했지요. 얼마 전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실상사를 다녀왔는데요. 안내책자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었습니다.

     

    "해가 뜨니 구름이 가리나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꿈에서 깨니 내가 삶의 주인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