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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햇살과 나뭇잎 느끼며 “느리게 걷고 감사하며 숨 쉬다”

    “스트레스가 점점 커지는 세상에서 숲이 마음의 평화와 육체적 활력을 준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제인 구달)

     

    숲에는 시대를 초월해 존재하는, 인간에게 아주 유익한 무언가가 있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어 바닥에 춤추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숲속에 서 있으면 자연과 깊은 연결감이 느껴진다.

     

    나뭇가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새의 울음소리, 발밑에서 나뭇잎이 부서지는 부드러운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진다. 숲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간다. 숲은 우리를 침묵하게 하고 마음을 고요의 세계로 이끈다.

     

    숲은 오랜 세월 동안 피난처이자 치유의 장소로 여겨졌다. 신성한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구하는 고대의 현자부터 자연의 길을 따라 위안을 찾는 현대의 등산객에 이르기까지.

     

    그런 점에서 숲은 육체적인 것 이상의 무언가, 즉 정신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촌에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넘어 인간의 힐링까지 책임지는 셈이다.

     

    이 가을, 단풍이 드는 숲으로 가서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어보자.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

     

    이 시간대에 숲으로 가는 게 좋다. 햇빛이 가장 풍부하고 피톤치드 방출이 활발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특히 기온이 상승하는 정오 무렵에 피톤치드 방출량이 최대치에 달한다.

     

    오후 2시 늦어도 3시가 넘으면 숲에서 나오는 게 좋다. 가을에는 해가 짧아 기온이 빠르게 낮아지기 때문이다.

     

    디지털 디톡스와 함께

     

    숲에서 머물 때만이라도 디지털 기기를 멀리하라. 휴대전화나 태블릿은 가방 안에 넣어두라. 전원까지 끄면 좋지만 그렇게까지 하기 힘들면 무음으로라도 해놓아라. 디지털 디톡스를 통해 자연과 온전히 교감하는 시간을 갖게 되면 정신적 피로를 더 빨리 해소할 수 있다.

     

    느리게 여유 있게

     

    치유 목적의 숲 방문은 등산과 다르다. 등산은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목표 지점까지 이르기 위해 애쓰는 행위다. 반면 숲 치유는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수준으로 활동하는 게 중요하다. 천천히 산책하며 숲속의 나무와 풀, 꽃들을 즐겨보라.

     

    깊은 호흡

     

    숲에서는 숨이 가쁘지 않게 움직이는 게 좋다. 천천히 걸으며 평소보다 깊은 호흡을 해보라. 깊은 호흡은 몸속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하고 피톤치드와 같은 유익한 물질들을 체내로 흡수하는 데 효과적이다.

     

    가능하면 코로 숨을 쉬라. 깊은 호흡에 신경 써서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숨을 들이마시면 안 된다. 자신이 들이마실 수 있는 호흡의 70% 정도를 마신다고 생각하라.

     

    내쉬는 숨도 마찬가지다. 천천히 부드럽게 그리고 깊게 숨을 쉬되 가슴이 답답하지 않을 정도로 쉬면 된다.

     

    숲속 명상

     

    마음에 드는 장소에 앉아 명상하라. 다양한 명상을 할 수 있겠지만 감사 명상을 권한다.

     

    눈을 감고 마음속으로 숲의 구성원들을 하나씩 떠올리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이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나무를 떠올리고 숨을 내쉬면서 나무에 감사의 인사를 한다. 다음으로 숨을 들이마시면서 풀을 떠올리고 숨을 내쉴 때 풀에 감사 인사를 한다.

     

    이렇게 바위, 냇물, 흙, 바람 등 숲을 이루는 존재들을 떠올리면서 감사 인사를 해보라. 마음이 편해지고 가슴이 따뜻해진다. 행복한 기운이 몸을 감싸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숲길 20분만 걸어도 스트레스 호르몬 크게 낮아져”

    과학이 밝힌 ‘숲의 이로움’

     

    과학은 숲이 몸과 마음에 많은 이로움을 준다는 것을 밝혀냈다. 대표적인 몇 가지를 소개한다.

     

    스트레스 감소

     

    2023년 미국 스탠퍼드대학이 2023년 ‘환경심리학’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숲속에서 20분간 걸을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평균 21% 감소했다고 한다. 일본 닛폰의과대학 연구팀은 숲길 15분 걷기로 코르티솔 수치가 15.8% 줄었다고 발표했다. 도심 속에서의 산책보다 숲에서의 산책이 스트레스 감소 효과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면역력 강화

     

    숲이 면역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다양한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암 수술을 받은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숲 체험을 한 사람의 경우 체내 면역세포인 자연살해세포(NK세포) 활성도가 16.2%에서 22.8%로 증가했다. 또 다른 대표적 면역세포인 T세포도 38.0%에서 39.3%로 늘었다.

     

    닛폰의과대학 한리큉 교수와 일본 삼림총합연구소가 공동연구한 바에 따르면 도시 직장인에게 일정 기간 삼림욕을 시키자 암세포를 죽이는 NK세포의 활성도가 삼림욕 전 18%에서 첫날 21%, 둘째 날 26%로 높아졌다.

     

    혈압 및 심박수 안정

     

    숲 체험은 혈압을 낮추고 심박수를 안정화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산림청이 33명의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숲에서 혈압이 평균 9.6㎜Hg(수축기)~4.5㎜Hg(확장기) 낮아졌다. 한림대 연구팀이 2011년 발표한 데 따르면, 건강한 20대 성인 남성 14명에게 3박4일 동안 숲에서 명상과 걷기 운동을 시킨 결과 이완기 혈압이 유의하게 긍정적으로 높아지거나 낮아졌다. 또 미국 하버드대학이 2023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숲에서의 활동이 혈압을 평균 5㎜Hg 낮추는 효과가 있었다.

     

    우울증 및 불안 감소

     

    국립산림과학원이 산림치유의 의과학적 효과를 입증한 연구 논문 32건을 분석한 결과, 산림치유 효과가 가장 뛰어난 활동은 걷기로 우울증과 불안증세 완화에 효과를 보였다.

     

    수면의 질 개선

     

    자연환경에서 활동은 수면의 질을 향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주말에 캠핑을 즐긴 사람들은 평소보다 평균 2.5시간 더 일찍 잠들었고 수면의 질도 개선됐다. 또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신경과 김혜윤 교수팀은 산림치유가 갱년기 여성의 불면증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 왕초보 위한 명상…부정적 생각 떠오를 땐 ‘한숨 세 번’

    명상이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로 정의가 가능하지만 쉽게 말하면 평화로운 마음으로 생각을 비우고 쉬는 겁니다.

     

    우리는 늘 생각을 합니다.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른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많은 생각을 하지요. 또 많은 감정에 휩싸여 삽니다. 생각에 따라 감정이 생기고 감정으로 인해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는 생각과 느끼는 감정 가운데는 부정적인 것이 많다는 점입니다. 부정인 생각과 감정은 건강을 해칩니다. 인간관계도 나쁘게 만듭니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줄일 수 있을까요? 가장 쉬운 방법은 내 안에 그런 생각과 감정이 떠오를 때 그걸 알아채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생각을 알아채지 못하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면 감정은 더욱 격해집니다.

     

    알아채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거나 감정이 생겨날 때 한숨을 세 번 쉬어줍니다. 그러면 내게 떠오른 생각이나 감정을 알아챌 수 있습니다.

     

    알아채고 나면 그 생각이나 감정은 확대되거나 재생산되지 않습니다. 이어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지요. 한숨 세 번. 언제 어디서든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명상법입니다.

  • 정토회 '한국 800년 대운 기원' 만민법회 13일 개최

    법륜 스님이 이끄는 정토회에서 한반도 평화와 국민통합을 기원하는 대규모 법회를 엽니다.

     

    정토회는 6월 13일 전북 장수군 죽림정사에서 '6.13 만민 대법회'를 개최합니다.

     

    용성 조사 탄신 160주년을 맞아 열리는 법회로, 정부 3부 요인과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천도교 등 종교 지도자와 국내외 각계 대중 1만여 명이 참석합니다.

     

    용성 조사는 전북 남원군 하번암면 죽림리(현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올해 법회에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 입니다. 다음은 법륜 스님의 말씀입니다.

     

    "올해는 용성 조사님의 탄생 160주년입니다. 불심도문 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용성조사님께서는 1939년 독립운동이 일망타진되는 그 해로부터 60년이 지난 1999년부터 대한민국의 대운이 열리게 되니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4년에 이것을 고정확정하는 대법회를 열라고 유훈을 남기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용성 조사 탄생 160주년이 되는 올해 용성 조사님의 유훈에 따라서 용성 조사님의 탄생지인 장수 죽림정사에서 대한민국 800년 대운의 길을 여는 만인대법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6.13 만민대법회에서는 용성조사님의 유훈에 따라 세 가지를 염원하고자 합니다. 첫째, 지금 남한과 북한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고자 합니다. 둘째, 남한 안에서도 동서가 갈려서 국민이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 대통합을 염원하고자 합니다. 셋째, 대한민국이 고속 성장을 해오다가 지금 정체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염원하고자 합니다. 이 세 가지를 기원하는 국민 대법회가 바로 6.13 만민대법회입니다." (정토회 '스님의 하루'에서 발췌)

     

    물론 이 법회는 대한민국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법륜 스님의 스승이신 도문 스님은 종교를 초월해 대한민국의 진리의 조국이 되자는 바람을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일에는 길조가 생긴다고 하는데, 6.13 만민대법회를 앞두고도 그런 신기한 일이 생겼습니다.

     

    법륜 스님이 행사 준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전북 장수 죽림정사를 찾았을 때 선명한 해무리가 떴습니다.

     

    한반도와 세계평화, 그리고 인류의 영적 성장을 기원하는 '6.13 만민대법회'를 축복하는 부처님의 가피가 아닐까요.

  • 성자들의 시대19-최상승의 경지는 가장 낮은 마음

    두 사람이 선정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장보러 갔던 식구들이 돌아왔다. 혜원일 보고 모두들 매우 반가워했다.

     

    "언니, 아휴, 더 젊어졌네요. 십대 소녀 같아요! 공부가 아주 잘됐나 봐요."

    지법 스님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녀는 혜원이보다 10살 정도 아래였다. 긴 얼굴과 커다란 두 눈이 서글서글한 부위기를 자아냈다. 용모처럼 성품도 시원시원했다.

     

    "어쩜 이렇게 예뻐졌어. 선녀가 다 됐네."

    박보살은 혜원의 등을 토닥여 주며 말했다. 그녀는 지현 스님보다 위였다. 마흔 여덟인데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흰머리가 꽤 많았다. 그래도 개심사에 온 뒤로는 얼굴이 환하게 피었다. 달덩이처럼 둥그런 얼굴과 온순한 눈빛이 후덕하게 보였다.

     

    윤처사와 혜원인 서로 초면이었다. 지현 스님이 인사를 시켰다. 윤처사는 쉰셋이었다. 키가 작았으나 체격이 단단했고 활기가 넘쳤다. 흰머리가 얼마 안 보였다. 얼굴은 네모 반듯했고, 조그마한 눈에서 맑은 광채가 뿜어 나왔다. 당차면서 지혜로워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런데 곰보였다.

     

    윤처사, 윤석칠도 필섭이처럼 벽운 선생의 도반인 호산 스님에게서 풍수학을 배웠다. 그는 본래 심마니였다. 정을 나누는 여자는 있으나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았다.

     

    그는 산중에서 우연히 호산 스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 호산 스님은 그에게 풍수학과 불법을 가르쳤다. 다가오는 새 시대, 후천시대에 대해서도 많은 얘길 해주었다. 그런 다음 지난 봄에 그를 개심사로 데려왔다.

     

    윤처사와 박보살, 지법 스님, 이들 세 사람은 아직 벽운 선생을 모른다. 하지만 이들도 벽운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될 사람들이었다. 혜원인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튿날 오후였다. 불공드리러 왔던 신도들이 돌아가고, 개심사 식구들은 법당에서 정진중이었다.

    모두들 고요히 앉아 있는데 젊은 남자 여덟이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여덟 명 다 감색 도복을 입고 있었다. 그들은 성큼성큼 법당 문 앞까지 왔다. 박에서 안을 잠시 기웃거리더니 안마당으로 내려가 서성거렸다.

     

    이들이 오자 개심사 경내의 기운이 약간 달라졌다. 이들한테서 탁하고 거친 기운이 뿜어 나왔다. 그 때문에 지극히 순수했던 정기가 많이 흐려졌다. 그러나 법당 안의 기운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없이 맑고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 감돌았다.

     

    혜원인 진작부터 심안으로 사내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이 아랫마을을 지나 개심사 입구로 들어섰을 때부터였다. 그들은 이틀 전 묘법대로 몰려왔던 남자들이 사형제들이었다. 그들의 공력은 묘법대로 몰려왔던 남자들의 사형제들이었다. 그들의 공력은 묘법대에 왔던 패보다 훨씬 높았다. 그네들 문중에서 최고의 고수들이었다.

     

    지현 스님이 인기척을 듣고 밖으로 나갔다. 사내들이 지현 스님에게 인사를 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지현 스님이 그들에게 물었다.

     

    "주지 스님 좀 뵈려고 합니다."

    그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섰다. 얼굴이 해맑고 안광이 강렬한 젊은이였다. 말투는 정중했다.

     

    "제가 주집니다. 왜 그러시죠?"

     

    "아, 저희는 수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묘법대에서 며칠간 공부 좀 했으면 하는데요. 허락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묘법대엔 지금 다른 분이 공부중이십니다. 그분 공부에 방해가 될까봐 저희도 가지 않습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시지요."

     

    지현 스님의 말에 사내들은 실망스런 낯빛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냥 물러간 게 아니었다. 그들은 개심사 경내를 벗어나 급히 묘법대로 향했다.

     

    혜원인 밥당에 앉아 심안으로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현 스님이 법당으로 되돌아와 다시 선정에 들자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리로 진기를 끌어내린 다음 묘법대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혜원인 길로 가지 않고 숲속으로 들어가 산비탈을 타고 올라갔다. 그녀가 지나치는 데마다 나뭇가지가 거세게 흔들렸다. 그녀는 사내들보다 한참 앞서 묘법대에 이르렀다.

     

    명천인 여전히 굴속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혜원인 굴 앞 평지에 앉아 사내들을 기다렸다. 이윽고 사내들이 근처에 왔다.

     

    사내들한테서 날카로운 흉기가 뿜어 나왔다. 혜원이 타심통으로 사내들의 마음을 얼른 헤아려 보았다. 사내들은 혜원일 만나면 가차없이 공격할 계획이었다.

     

    사내들이 가까이 오자 나뭇가지 사이에서 노닐던 새들이 바짝 긴장했다. 지저귀지도 않고, 날갯짓도 멈췄다. 혜원인 그들이 다치게 될까봐 심언법을 써서 그들에게 머릴 피하라고 일렀다. 새들은 혜원이가 마음으로 전하는 말을 알아듣고 멀찌감치 날아갔다.

     

    혜원인 명천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지닌 공력의 반으로 굴앞을 막았다. 나머지 반으로는 마당에 기막을 만들었다. 그리고 얼른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모아 선정에 들었다.

     

    선정에들며 양신을 밖으로 내보냈다. 혜원의 양신은 20여 미터쯤 되는 허공 위에 혜원과 똑같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사내들의 눈에는 그 양신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묘법대로 올라온 사내들은 선정에 든 혜원에게 의혹에 찬 눈빛을 보내면서 잽싸게 그녀를 둘러쌌다. 혜원이 그들의 포위망에 꼼짝없이 갇혀 버린 형세였다.

     

    "여보세요!"

     

    한 사내가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혜원을 깨우려 했다. 혜원인 미동도 않고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여보세요!"

     

    사내가 더욱 큰소리로 불렀다. 혜원인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또 다른 사내가 혜원에게 접근하려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세 걸음을 옮기고는 튕기듯 뒤로 미끄러져 나갔다. 혜원이 만들어 놓은 기막에 밀렸던 것이다.

     

    그러자 사내들은 일제히 손을 들어올렸다. 양손에다 공력을 최대한 모은 다음 동시에 혜원일 향해 힘껏 내뻗었다. 그들의 공력을 맞고 혜원의 기막이 약간 흔들렸다. 그렇지만 뜷리지는 않았다.

     

    사내들이 내뿜은 공력이 기막에 반사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나무 몇 그루가 그 공력을 맞았다. 나뭇가지가 세차게 흔들리고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혜원은 자신의 몸을 잊고 의식을 오로지 양신에게 집중했다. 혜원 자신과 양신 속으로 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기막이 더욱 견고해졌다.

     

    여덟 명의 협공을 받고도 혜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을 보고 사내들은 깜짝 놀랐다.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은 재빨리 두 사람씩 짝을 이뤄서 다시 공격했다. 이번에도 기막은 뚫리지 않았다. 혜원인 잠든 사람처럼 고요히 앉아 있었다.

     

    사내들은 네 사람씩 짝을 이뤄 온 힘을 다해 세 번째로 공격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 공격도 허사였다. 사내들이 날린 장력이 사내들 쪽으로 되돌아왔다. 사내들은 탈진한 데다가 강한 장력까지 맞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여기저기서 신음 소리가 났다. 사내들은 무척 괴로워했다. 곳곳의 혈도가 막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이 때, 혜원이 얼른 양신을 거둬들이고 선정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재빨리 사내들에게 다가갔다. 차례차례 돌아가며 그들이 몸에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사내들은 그제야 기운을 되찾았다. 막혔던 혈도가 풀리고, 온몸에 생기가 돌았다. 숨이 트이며 맑고 시원한 기운이 공기과 함께 쑥쑥 들어왔다.

     

    "최고의 무공은 세상에서 가장 낮은 사람이 되려고 할 때 얻을 수 있어요. 누굴 이기려고 하는 사람은 최상승의 경지에 못 올라요. 눈에 안 보이는 미물중생까지 하늘처럼 섬겨 보세요. 그러면 무상의 공력을 얻을 거예요."

     

    혜원이 여덟 명 모두에게 자신의 진기를 불어넣어 주고 나서 타이르듯 말했다. 사내들은 고개를 푹 꺾었다. 너무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랐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서들 돌아가세요. 그리고 앞으로는 항상 정도를 따르세요."

     

    혜원인 보살의 웃음처럼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사내들을 둘러 보았다 한없이 온화한 혜원의 말에서 사내들은 거역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인 채 밑으로 내려갔다.

     

    "안녕히 가세요."

     

    혜원이 인사를 했으나 단 두사람만 돌아서서 혜원에게 목례를 건넸다. 두 사람 다 눈빛이 깨끗했다. 삿된 사람들 같지 않았다. 혜원인 타심통으로 두 젊은이의 마음을 보았다. 그들은 의롭지 않은 일에 동참한 걸 괴로워했다. 자신들의 처지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또, 혜원이 한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두고 있었다.

     

    혜원인 문득 그들과 자신 사이에 깊은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다. 숙명통으로 그들의 미래를 보았다 언젠가 그들이 자신을 찾아와 도반이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모습도 보였다.

     

    바깥 세상에서는 무협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 여파로 특이한 무술을 배우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꽤 생겨났다. 그들 중 일부는 산으로 들어와 무예를 닦았다. 오직 남을 제압하기 위해 닦는 무술은 사도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초능력에 관한 사람들의 관심도 매우 높아졌다. 신통한 초능력의 비법을 소개한 책들도 많이 출간되었고, 그것을 지도하는 단체들도 생겨났다. 그저 신통한 능력이나 얻으려는 사람들도 사도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사도가 창성하는 시대이니 두 젊은이는 이 시대의 탁류에 휩쓸려 헤매는 것이었다. 하나 그것은 또 그들이 전세에 지은 인과의 과보이기도 했다. 과보를 다 받은 뒤에 정도를 밟게 될것이 분명했다.

     

    혜원이 두 젊은이를 생각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마음으로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었다. 그 내면의 소리는 고통에 겨운 신음 소리 같았다.

     

    혜원일 부른 것은 나무들이었다, 묘법대 주변의 나무들이 사내들이 내뿜은 장력에 상처를 입고 괴로워했다. 외상은 별로 없었다. 나뭇잎이 떨어진 것뿐이었다. 그런데 내상은 심했다.

     

    혜원인 마음으로 자신의 진기를 나무들에게 보내 주었다. 혜원의 몸에서 깨끗한 진기가 뭉클뭉클 안개처럼 솟아나와 나무들을 휘감았다. 얼마 안 되어 나무들의 내상이 말끔하게 나았다. 그러자 멀찍이 피했던 새들이 돌아와 마음껏 지저귀며 날아다녔다.

     

    산란해졌던 묘법대의 기운이 전처럼 맑게 정화되었다. 명천인 굴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여전히 선정에 들어 있었다. 그는 모든 번뇌를 여의고 순수한 빛의 세계에 머물렀다. 혜원인 명천을 남겨 두고 개심사로 내려왔다.

  • 성자들의 시대18-우주와 하나라는 느낌

    청련사 주지로 있는 동안에는 선방(禪房)과 강원(講院)을 세웠다. 강원에서는 50 여 명의 학인(學人)들이 불경을 공부하고 선방에서는 40여 명의 수좌(首座)들이 참선 수행중이었다.

    청련사를 큰 수행 도량으로 만든 다음에 개심사로 옮겼다. 이것은 벽운 선생의 뜻이기도 했다.

    지현 스님이 처음 왔을 때 개심사는 아주 퇴락한 절이었다. 그녀가 서둘러 불사를 일으켜 면모를 새롭게 바꿔 놓았다.

     

    벽운 선생은 지현 스님더러 개심사를 3,40 명 정도가 거처할만한 도량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일렀었다.  쓸모가 있다는 것이었다. 지현 스님은 여름까지 그 일을 마무리했다.

    이제 살림을 맡은 사판승(事判僧)으로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거의 다 끝냈다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녀에겐 수행 정진민큼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일이 없었다. 젊어서는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수행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

    " 참, 내가 산에 올라가면 여기 살림은 어떻게 하지? "

    지현 스님은 살림 걱정을 했다. 사판승 생활을 하면서 몸에 밴 버릇이었다.

    " 언닌 산에서 오래 안 계셔도 될 거예요. 그동안 지법 스님이 맡으면 되지요. "

    "걔가 잘할 수 있을까? "

    개심사엔 식구가 많지 않아 살림의 규모도 작았다. 그러나 도와줘야 할 곳이 많았다. 고아원, 양로원, 주변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보시를 자주 했다. 지현 스님은 또 민주화 운동을 하는 스님들을 남몰래 후원했다. 이런 일들을 지법 스님이 제대로 해낼지 걱정이었다.

     

    " 염려 마세요. 그런 걱정도 다 공부에 큰 장애가 돼요. 번뇌잖아요. 언니가 공부를 잘하시면 지법 스님도 따라서 지혜가 열려요. 스승님께서도 보살펴 주실 거고요. "

    혜원의 말이 맞는 말이다. 그런데 몸에 밴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 참, 언니. 채소들을 살려야죠. "

    " 그럴까. "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 언니, 양동이하고 분무가 있어요? "

    " 있어. "

     

    지현 스님이 양동이와 분무기를 가져왔다. 혜원인 양동이에다 물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손에 진기를 가득 모은 뒤에 물 속에다 손을 집어 넣었다. 진기가 물 속으로 스며들었다.

    혜원인 이 물을 분무기로 채소밭에 골고루 뿌렸다. 그러자 반 시간도 안 돼 시들어 가던 채소들이 생기를 되찾았다. 축 늘어졌던 잎새들이 생동생동 일어섰다.

     

    " 아니! 벌써 살아나네! 이게 웬일이야! "

    지현 스님은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물주기가 끝난 뒤 그녀는 혜원이더러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느냐고 물었다.

     

    " 물에 충만한 생긱를 마시고 채소들이 금방 기운을 차린 거예요. 이제 병균들도 잎을 괴롭히지

    않고 그 생기만 먹게 돼요. 그러다가 없어지지요. "

    " 그것들도 기운이 왕성하면 번식을 많이 하지 않을까? "

    " 아니에요. 번식하려는 욕망이 사라져요, 중생들이 자손을 퍼뜨리는 것은 죽음이 두렵기 때문이에요.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서 대를 이으려고 하지요. 온 우주와 내가 하나라는 느낌이 들면 죽음이 안 무서워요. 그래서 깨달은 이들이 자손을 가지려는 욕망을 완전히 떨칠 수 있어요.

    미물중생도 마찬가지예요. 무한한 평화를 느끼면 번식을 안 해요. "

    " 채소뿐 아니라 병균들까지 큰 복을 누리네. "

    " 그래요. "

     

    지현 스님은 혜원의 법력(法力)에 감격했다. 혜원일 이렇게 이끌어 준 스승 벽운 선생에 대한 외경심도 더욱 깊어졌다.

    그녀는 경이로운 눈빛으로 채소밭을 둘러봤다.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잡아먹고 먹히는 싸움이 숨가쁘게 전개되던 곳이 우주적인 평화에 휩싸였다. 여기가 바로 극락정토요 선경이었다. 삼라만상을 다 부처로 보고, 이 세상 어디나 불국토(佛國土)로 보라고 이르시던 벽운 선생의 가르침이 새삼 실감났다.

     

    두 사람은 채소밭에서 돌아와 사시(巳時; 오전 10시) 예불을 드렸다. 지현 스님이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 가사장삼을 차려 입었다.

    혜원이 청수(淸水)를 떠가지고 막 법당으로 향할 때였다. 그녀의 눈에 법당 위로 거대한 빛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게 보였다. 둥근 원통형의 찬란한 빛줄기가 하늘 높이 뻗쳤다.

    이 빛줄기는 점점 커졌다. 법당 앞마당과 그 양쪽에 마주 선 요사채까지 빛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개심사 경내가 모두 눈부신 광채로 화했다. 개심사 터에 깃들인 빼어난 정기가 활짝 피어 오른 것이었다.

     

    혜원이 법당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물을 올리고 절을 드린 다음 고요히 앚아 있었다. 지현 스님은 종부터 쳤다. 은은한 종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개심사의 빼어난 정기도 종소리에 실려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혜원의 심안에 온갖 중생들의 모습이 보였다. 사람, 학, 노루, 멧돼지, 뱀, 물고기...., 갖가지 중생들이 개심사의 정기에 휩싸였다. 개심사에 치솟아 오른 빛기둥이 그들을 향해 빛을 뿜엇다. 그들은 모두 개심사와 인연이 깊은 중생들이었다.

    혜원인 잠시 후 심안을 닫고 선정에 들었다. 육체의 몸이 사라져 허공으로 화하고 티 하나 없이 맑은 정신만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활짝 열린 기공을 통해 우주의 진기가 바람처럼 드나들었다.

     

    지현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외웠다, 그러나 혜원의 귀에는 목탁 소리도 염불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20 분쯤 지났다. 혜원의 몸이 가부좌를 튼 채 허공에 떠올랐다. 부처님이 앉아 있는 높이만큼 떠오르더니 그대로 허공에 머물렀다. 지현 스님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염불을 멈췄다.

    둥그런 원광이 나타나 혜원일 둘러쌌다. 부처님의 원광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 순간, 지현 스님은 시원한 바람처럼 맑고 청량한 기운이 온몸에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몸과 마음과 정신에 묻은 온갖 때가 말끔히 씻겨 나가는 것 같았다. 날아갈 듯 가뿐했다.

     

    지현 스님도 얼른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녀는 자신의 단전에 의식을 집중했다. 단전에 야구공만한 허공이 생겼다. 그리고 진기가 쏟아져 들어왔다.

    단전의 허공은 자꾸 커져 갔다. 야구공에서 축구공으로, 축구공에서 커다란 풍선으로 커졌다.

    나중엔 몸 전체가 허공으로 화했고, 단전이 진기로 가득 채워졌다.

     

    지현 스님과 혜원인 3시간쯤 뒤에 선정에서 깨어났다. 지현 스님이 눈을 떴을 때엔 혜원의 몸이 마룻바닥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녀를 둘러쌌던 원광도 보이지 않았다. 지현 스님은 자신이 보았던 그 신기한 광경에 대해 물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매우 무더운 날씨였다. 그런데 지현 스님은 조금도 덥지 않았다. 원래 더위를 많이 탔는데, 어쩐지 서늘한 기운이 자꾸 몸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살 속까지 시원했다. 발걸음도 예불을 드리기 전보다 훨씬 더 가벼워졌다. 지현 스님은 혜원의 도력이 자신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 류인학의 우리명산 답산기-인수봉에 서린 성스러운 기상과 우리나라의 미래

    ● 인수봉과 우리 나라의 미래

     

    앞에서 필자는 서울의 산 중에서 인수봉이 가장 아름다우며, 인수봉에는 성자의 기상이 가득 감돈다고 했다.

     

    인수봉은 원래의 한양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인수봉에 서린 성스러운 기상이 한양땅으로 크게 뻗쳐오질 않았다. 이 때문에 성자들이 많이 나올 수가 없었다. 설령 그런 이들이 있다 해도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수봉도 서울시내 복판으로 들어왔다. 인수봉 아래는 어느덧 시가지가 되었다. 이제 인수봉에 서린 성자의 기상이 활짝 피어난다.

     

    인수봉 아래에 시가지가 크게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일이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성자(聖者)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인수봉의 정기가 크게 떨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는 또 우리 나라에서 소비풍조 · 물질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때이다. 한편에선 많이 갖고 쓰고 버리는 데서 기쁨을 찾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안 갖고 적게 쓰는 데서 참자유와 행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언서 격암유록>에 이런 내용의 예언들이 들어 있다.

     

    을유년 (1945) 에 해방이 되고 나라가 둘로 쪼개진다.

     

    무자년 (1948) 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 (이승만) 이 권력을 잡는다. 이씨가 12년간 독재정치를 한다.

     

    인년 (1950) 에 남과 북이 서로 싸운다.

     

    계사년 (1953) 에 전쟁이 끝난다.

     

    경자년 (1960) 에 독재정권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다.

     

    신축년 (1961) 에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그들도 이승만 정권처럼 독재정치를 한다. 국민들 입에 재갈을 물린다.

     

    군사독재정권이 물러갈 때가 되면 물질주의가 판친다. 종이돈이 세상을 지배하리라. 이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돈이면 못할 게 없다고 한다.

     

    물질주의가 사람들을 타락시키며 온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물질주의로 인해 인류는 파멸의 위기를 맞는다. 자칫하면 천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때 성자들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다. 물질주의에서 헤어나, 성스러운 마음을 기르고, 무소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이들은 성자들을 따라 성자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성자들의 세계.

     

    그곳은 오랫동안 인류가 꿈꿔온 낙원이며, 천국 · 극락 같은 이상향이다. 파멸의 위기가 사라진 다음에는 온 세계가 그 이상향으로 변한다.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진 암흑의 시대가 가고, 모든 사람·모든 생명이 찬란한 자유와 평화를 함께 누리는 광명시대가 밝아온다.

     

    인수봉은 지금 이 광명시대의 여명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다가오는 성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또 물질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깨어나라' 외치며, 가슴에 품고 있는 성스러운 기상을 보내고 또 보낼 것이다.(계속)
     

  •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종, 김하종 신부

    성남 사회복지 법인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의 몸에선 항상 반찬 냄새가 배어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때로는 역한 냄새를 풍기는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주고, 직접 안아주기도 한다.

     

    코로나 여파로 많은 급식소가 문을 닫았지만, <안나의 집> 노숙자 급식은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급식 장소인 성남성당 앞마당은 언제나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 인근 서울에 있는 분들도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성남까지 온다고 한다. 김하종 신부는 이들에게 언제나 친근한 목소리로 “환영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라고 인사를 한다.

     

    1957년, 이탈리아 피안사노 지방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하종 신부의 원래 이름은 빈센조 보르도.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90년 선교사 자격으로 서울에 왔다. 1992년 성남 신흥동 성당의 보좌신부로 일하게 되었고, 1993년 <평화의집> 운영을 맡아 독거노인 급식 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부터는 성남과 분당 지역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공부방을 열었다. 1998년 IMF 사태로 노숙자가 급증하자 <안나의 집>을 열고 독거노인뿐만 아니라 노숙자에게도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말도 서툴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낯선 한국에서 청소년, 독거노인,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후원금을 모으러 다니고 밥 짓고 배식하고 밤에는 공부방을 챙겨야 하니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아프고 쑤시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종’이란 뜻으로 지은 한국 이름, 김하종 신부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의 종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마도 하느님이 신부님에게 특별한 힘을 불어넣어 주시나 보다.

     

    그래서 지금까지 1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여기 <안나의 집>에서 땀을 흘렸고,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과 물품 지원을 계속하였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250만 명이 이곳에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김하종 신부의 페이스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왜 주님은 천국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며, 왜 코로나의 혼란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지 않으십니까?”

     

    “나 역시 많이 울었다. 나는 고통과 문제들을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마법처럼 없애주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마법을 쓰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너와 함께 걷고 있고 언제나 너의 곁을 지키고 있단다.”

  • 성자들의 시대13-정도와 사도

    "아니에요. 구세주는 이 세상 분이세요.

    하늘의 천신들과 선인들도 모두 우리 스승님을 공경하며 따릅니다.

    스승님의 가르침도 받습니다."

    보화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이 말을 할 때, 보화의 눈에서 번쩍이는 광채가 뿜어 나왔다.

    눈빛이 매우 날카롭고 강렬했다. 전형적인 광신자의 눈빛과 비슷했다.

     

    "아아, 그러시구먼요. 도력이 대단하시겠네요."

    필섭인 미심쩍었다. 산에서 지내는 동안 스스로 구세주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만났었다.

    그들은 대개 한두 가지 신통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신통력을 이용해서 혹세무민했다.

    보화의 스승도 그런 무리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도력을 지니셨죠. 우주 삼계를 손바닥 안에 놓고 들여다보세요.

    기운이 천하장사시고, 죽어 가는 사람도 살려내세요. 저도 죽을 몸이었는데 스승님의

    크나크신 도력으로 소생했지요. 여기 이 동생들도 그랬어요."

    보화의 도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들이 몹시 안 좋으셨던 모양이지요?"

     

    "우리 셋다 불치병으로 고생했어요. 저는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고요.

    한달 넘기기도 어렵다고 했어요. 식구들은 각오하고 있었지요.

    그때 스승님을 처음 되었어요. 한달 안에 죽는다는 사람이 열흘리 못 돼 다 나았지요."

     

    "스승님을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스승님께서 저를 환히 보시고서 저희 집을 손수 찾아 주셨어요.

    저희 집 대문 앞에서 어머니더러 이 집에 오늘 내일 하는 중환자가 있지 않느냐고

    물으시더래요. 그렇다고 대답하니까, 당신께서 고쳐 주겠다고 하시더래요.

    당시 저희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얼른 저를 스승님께 맏겼죠. 스승님께서 열흘 만에 고쳐 주셨어요."

     

    "도력이 굉장하시구먼요."

     

    "그럼요. 저희 스승님은 겉모습만 사람이지, 사람이 아니세요. 하느님의 분신이십니다.

    하느님꼐서 권능을 주셨지요. 못하시는 일이 없어요.  지금 우리가 하는 얘기도 다

    들으실 수 있어요."

     

    "천이통을 얻으셨나 보지요?"

     

    "천이통, 천안통, 숙명통, 신족통, 누진통, 타심통 다 얻으셨어요.

    도가 높다 하는 사람 중에 이렇게 육신통을 두루 갖춘 이가 있나요?

    고승대덕이라 추앙받는 스님들도 지식이나 좀 얻었지 도력을 지닌 도인은 없잖아요."

     

    필섭인 보화가 자기네 스승한테 푹 빠진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보화의 스승보다 훨씬 못한 가짜 구세주들도 신도들한테 하느님처럼 추앙받았다.

    보화의 스승 같은 사람이 세상에 나오면 숱한 사람들이 그의 문하로 몰려들 것이었다.

     

    어쨌든 보화의 스승은 정도를 가는 이가 아님이 분명했다. 더구나 구세성인이라니

    어이없는 얘기였다.

     

    보화와 그녀의 도반들이 안돼 보였다.

    왠지 모르게 보화가 삿된 스승은 만난 게 너무 안타까웠다.

    보화의 인상은 다른 여자들보다 훨씬 선하고 맑았다.

    정도를 닦으면 크게 깨우칠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저씨들꼐선 여기서 무슨 공부를 하세요?"

    보옥이란 여자가 필섭에게 물었다.

     

    "저희는……."

    필섭인 저희 스승님이야말로 도인 중에 도인이시며,

    그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는 중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스승님이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갑자기 혀가 마비되었다.

    그리고 난데없이 혜원의 음성이 귓전에서 울렸다.

     

    "말하지마세요."

     

    벽운 선생은 제자들에게 당신에 관한 얘기를 때가 이를 때까지 다른 사람들한테는 절대로

    말하지 말라고 엄히 일렀었다. 필섭은 아차 했다. 스승께 큰 누를 끼칠 뻔했던 것이다.

     

    "저희는 뭐 그저 마음이나 좀 닦아서 사람답게 살려고………."

    필섭인 혜원이가 천리전음법을 써서 말을 전해 준 것을 신기해 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이렇게 깊은 산중에서 사시는데. 큰 뜻이 있지 않으시겠어요? 그냥 쉬러 오신 분들은 아닌

    것 같네요. 두 분한테서 풍겨 나오는 기운이 보통 사람들과 아주 달라요. 수도하시죠?

    요즘엔 선도 공부하는 분들이 많던데. 선도를 닦으세요?"

    보화가 매우 궁금해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불도, 선도, 모두 조금씩 공부합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이야 모두 귀중하지 않습니까.

     예수님 가르침도 참 좋고요."

    필섭인 참된 도가 어떤 것인지 빙 돌려서 말하고자 했다.

     

    "예수, 석가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나요?" 후천시대가 곧 열리는데 수도를 하려면

    후천시대에 맞는 도를 닦아야지요."

    보연이란 여자가 얼굴을 찌푸리며 끼여들었다. 눈빛이 좀 차디차고 날카로웠는데

    목소리도 딱딱했다.

     

    "진법이야 우주가 다 무너진다 해도 올바른게 아닐까요. 참성인들의 가르침은 다 진법에

    뿌리를 두었겠지요."

    필섭이 부드럽게 응수했다.

     

    "선천시대에 얼마나 많은 성인들이 나왔어요. 그렇지만 그들은 세상을 구하지 못했어요.

    또 예수의 제자들, 석가의 제자들을 보세요. 진짜 도인이 몇이나 되겠어요.

    백 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예요. 중들은 절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목사들은 서로 신도들을 많이 잡으려고 난리들이지요."

     

    "그건 성현님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 경우이지요."

    석주가 모처럼 끼여들며 보연의 말에 이의를 달았다.

     

    "타락한 제자들이 생긴 것은 스승들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에요.

    잘못된 도는 빨리 없어져야 해요. 그래야 세상이 좋아져요. 우리……."

     

    "그만해."

    보연이 우리 도야말로 선천시대의 잘못된 도를 바로잡기 위해 나온 도라고 말하려 했으나,

    보화가 나서서 막았다. 자칫 말다툼을 벌이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워서였다.

    그건 호의를 베풀어 준 필섭이네한테 큰 결례라고 생각했다.

     

    또, 보화는 두 사람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처음 만나 순간, 이들이 인상이 너무 좋게 보였다.

    한없이 평화롭고 자비로운 기운이 얼굴 가득 넘쳐흘렀다.

    두 사람에게서 맑고 온화한 기운이 뭉클뭉클 전해져 오기도 했다.

    수행이 참 잘된 사람들이 틀림없었다.

     

    보화의 도반들은  3백 명이 넘었다. 남자가 2백여 명, 여자가 백여 명이었다.

    보화는 자신의 도반들과 두 사람을 견주어 보았다. 두사람은 격이 다른 것 같았다.

    공부가 꽤 잘됐다고 스승이 인정해 주는 사람들도 두 사람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보화는 이들이 무슨 도를 어떻게 닦았길래 이처럼 맑고 자비로운 모습을 지녔을까가

    궁금했다. 또, 만난 지 몇 시간밖에 안됐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낸 도반들 못지않게

    친밀감이 느껴졌다. 필섭이한테는 더욱 그랬다. 필섭이 그녀를 처음 봤을 때,

    언제 어디선가 아주 가까이 지낸 사람처럼 느꼈듯이,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문에 자꾸 필섭에게 말을 걸었다.

     

    "두 분께선 여기 오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보화는 어색해진 분위기를 바꾸려고 화제를 다른 데로 돌렸다.

     

    "이 친구는 일년 가까이 됐고, 저는 반년쯤 됐습니다."

     

    "여긴 전망이 탁 트여서 참 좋네요. 앞을 보면 가슴이 확 열리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보화네와 필섭이네는 잠시 더 얘길 나누고는 각자 수련을 시작했다.

    필섭이와 석주는 방으로 들어갔고, 보화 일행은 텐트 안에서 정진했다.

     

    필섭인 행공을 마치고 선정에 들려 했으나 어쩐지 정신을 한곳으로 모으기가 어려웠다.

    보화 때문이었다. 보화의 얼굴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의식을 단전에 집중하려고 애쓰니, 그녀의 모습이 단정에서 아른거렸다.

    가슴에 훈훈한 기운이 감돌며 애틋한 감정이 피어오르기도 했다.

     

    보화도 마찬가지였다. 필섭이와 석주의 모습이 그녀의 의식을 꽉 채웠다.

    필섭의 얼굴은 아주 또렷하게, 석주의 얼굴은 좀 흐릿하게 떠올랐다.

    심안으로 필섭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왠지 가슴이 설레고 미묘한 환희심이 솟아났다.

    그것은 사춘기 소녀가 느끼는 첫사랑의 감정과 비슷한 것이었다.

     

    보화는 깜짝 놀랐다. 생전 처음 본 낯선 사내에게 자기가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애욕을 끊고 이성을 잊고 지낸 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는데, 기막힌 일이었다.

     

    스스로 너무 부끄러웠다. 행여 스승께서 자기를 보고 있지나 않을까 두려웠다. 

    얼른 필섭의 모습을 떨쳐 내려 했다. 필섭이 대신 스승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곧 필섭의 얼굴이 또렷이나타났다.

     

    저녁때가 되었다. 보화네는 저녁밥을 지어 먹었다.

    필섭이와 석주는 미숫가루를 먹고 밖에 나가 쉬었다.

     

    해가 지려 했다. 서편 하늘과 바다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머! 저 해 좀 봐!"

     

    "어휴, 굉장하네."

    여자들은 넋을 잃고 낙조을 감상했다. 서편 하늘에는 뭉게 구름이 떠 있었다.

    노을이 뭉게구름으로 번져 갔다. 태양과 가까운 쪽은 빨갛게 물들었고,

     바깥쪽은 연분홍빛이었다. 구름이 엷은 곳으로는 태양의 마지막 잔광이 뿜어 나왔다.

     

    참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보화는 한없이 깊은 평화를 느꼈다.

    온 우주와 자신이 붉은 노을 속으로 함께 녹아 드는 느낌이었다.

     

    해가 졌다. 석주는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필섭은 좀더 있고 싶었다. 보화 때문이었다.

     

    "언니, 이제 수련을 해야죠."

    노을이 조금씩 스러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때 보연이 보화에게 말했다.

     

    "응?"

    보화는 막 잠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보연을 돌아봤다.

     

    "뭘 그리 생각하세요? 들어가서 공부해야죠."

     

    "으응."

     

    보화의 눈에 필섭의 뒷모습이 들어왔다. 노을을 향해 앉아 있는 필섭이가 그녀의 마음을

    강하게 끌었다. 왠지 자꾸 필섭에 대해, 그가 하는 공부에 대해 알고 싶었다.

     

    "먼저 들어가, 난 좀더 있다 갈게."

    모화는 도반들이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필섭에게 다가갔다.

     

    "저어, 선생님."

    보화는 조용히 필섭일 불렀다.

    "예?"

    돌아보는 필섭의 눈에서 별빛처럼 투명한 광채가 쏟아져 나왔다.

     

    "저어, 선생님과 말씀 좀 나누고 싶어서요."

     

    "여기 앉으시죠."

    보화는 필섭이와 마주보고 앉았다.

     

    "선생님께선 왜 이런 깊은 산중에서 수도하세요? 뭘 얻으려고 그러시죠?"

     

    "얻으려는 게 아니라 버리려는 거지요?"

    필섭인 갑작스런 질문에 당황하여 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보화에겐 뜻밖의 대답이었다. 그녀는 도력을 얻는다든지, 구제창생의 뜻을 편다든지 하는

    등의 대답을기대했었다.

     

    "뭘 버리시려고요?"

     

    "남김없이 다요. 번뇌, 지식, 마음, 버릴 게 많지요. 내가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뜻하시는 바가 있지 않겠어요? 모두 버린 다음에 어떻게 되지요?"

     

    "글쎄요. 아직 그렇게 되어 보지 못했으니까, 다음 일은 전혀 모릅니다."

     

    "뭔가 추구하는 게 있으실 것 같은데요."

     

    "보화 씨, 아까 노을 감상하실 때 뭘 느끼셨어요?"

     

    "아주 평화로웠어요."

     

    "굳이 따지자면 그런 평화를 얻자는 겁니다."

    필섭의 얼굴에 노을 같이 평화로운 미소가 가득 피어올랐다.

    보화는 참으로 아름다운 미소라고 생각했다. 왠지 그녀의 가슴에 봄바람처럼 훈훈한

    기운이 일었다.

     

    "보화 씬 뭘 얻기 위해 수도하시지요?"

    이렇게 물어 보는 필섭의 음성이 매우 따스했다. 부드럽게 어루만져 주는 듯한 어조였다.

     

    "저흰 후천시대를 맞이하려고 수도해요. 후천의 선경에서 살려고요.

    스승님 말씀으론 후천시대가 오기 전에 숱한 사람이 죽는대요. 백에 하나 살까 말까래요.

    말세의 환난이죠. 수도자만이 이 환란을 피한다고 하셔요. 또 한가지 저희가 하려는 일은

    구제창생이에요. 수도를 잘하면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큰 능력을 주신대요.

    지금도 많이들 받고 있어요. 도통군자가 되어 구제창생하는 게 제 도반들의 희망이지요."

     

    "큰 포부들을 지니고 계시구먼요. 그런데 짐이 무거우시겠습니다."

    필섭인 그동안 구제창생의 뜻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꽤 만났다. 가짜 구세주들은 오로지

    자기만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질 수 있노라고 큰소리쳤다. 그들은 그 짐 때문에 온갖

    번뇌에 빠졌다.

    보화와 그녀의 도반들도 그러리라 생각했다.

     

    필섭이 전 같으면 그 허황된 꿈을 버리라고 했을 터였다. 그런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시비비를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이 또한 번뇌라 생각했다.

     

    "선생님, 불쌍한 중생들을 구제하는 게 수도인의 도리 아닐까요. 선생님께서도 구제창생의

    대업에 동참해 보시지요. 큰일을 하셔야 될 분 같아요. 한번 저희 스승님을 만나 보시지

    않으시겠어요? 한달 후면 스승님께서 상제봉으로 오세요. 스승님께서도 선생님을 보시면

    참 좋아하실 것 같아요."

    보화는 간곡히 권했다.

     

    "저는 제 몸 하나도 바르게 못 닦는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제 한 몸이나 제대로 닦아도

    원이 없겠습니다. 구제는 보살님들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엄두를

    내겠습니까."

     

     

     

    필섭인 완곡하게 사양했다.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저희들은 다 엉터리예요.

    하지만 저희 스승님께선 다르세요. 저희가 반딧불이라면 스승님께선 태양이지요.

    그분께서는 일체 사욕이 없으세요. 오로지 구제창생 일념뿐이세요. 스승님을 뵈면

    큰 힘을 얻으시겠어요."

     

    필섭이 지금까지 만나 본 가짜 구세주들이 대부분 보화의 스승 같았다.

    그들에겐 다른 욕심이이 없었다. 오로지 세상을 구하겠다는 마음 하나였다.

    한데,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가 구해야 한다는 게 무서운 욕망이었다.

     

    "인연이라면 만나지겠지요, 허허."

     

    "오늘 뵌 게 어쩐지 큰 인연 같아요. 선생님을 처음 뵙는 순간 보통 어른이 아니시라

    생각했어요. 또, 전에 어디선가 많이 뵌 분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언젠가 아주 가까이 지냈던 분 같았어요."

     

    "보화 씨도 그러셨습니까? 실은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상하군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모르겠는데."

     

    "저도 자꾸 옛날을 회상해 봤어요."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과거를 맞춰 보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차례로 맞춰 봤는데,

    과거에 둘이 만났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서로의 과거를 알면서 왠지

    더욱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때 텐트에서 이상한 주문 소리가 새어 나왔다.

     

    "궁궁을을 천기지기 궁궁을을 천기지기……."

    보연과 보옥이 똑같은 주문을 거듭 되풀이하여 읊조렸다.

     

    "무슨 주문입니까?"

    필섭이 잠시 귀기울여 듣다가 물었다.

     

    "하늘과 땅의 정기를 받는 주문입니다. 저 주문을 잘 공부하면 큰  힘을 얻어요."

     

    두 사람은 좀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반들한테로 돌아갔다.

    각자 수련에 들어갔으나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한밤중이었다. 필섭이 보화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는데, 낯선 노인의 얼굴이 보화의 얼굴과

    겹쳐서 나타났다. 그 순간, 바람도 불지 않았는데 방문이 덜컹덜컹 흔들렸다.

     

    또다시, 보화의 얼굴이 사라지고 노인의 얼굴만 뚜렷이 보였다.

    노인의 얼굴은 길고 좁았다.눈에서는 형형한 광채가 뿜어 나왔다.

    눈빛이 매우 날카롭게 보였다. 눈썹은 굵고 짙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선명했다.

     

    노인이 뚫어져라 필섭을 쳐다보는 것 같았다. 그때, 필섭인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에 끌려가듯, 몸 속의 기운이 바깥으로 쭈욱쭈욱 빨려 나갔다.

     

    필섭인 금방 탈진했다.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쓰러지듯 벌렁 누웠다.

    몸이 바위처럼 무러워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기 어려울 만큼 까라졌다.

    나중엔 정신도 가물가물했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사방이 깜깜했다.

     

    또, 뭔가에 의해 온몸이 짓눌렸다. 목이 졸려 숨쉬기도 어려웠다.

    필섭인 석주를 불러 보려고 했다. 그러나 혀가 굳어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석주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정에 들어 있다.

     

    "도형, 도형!"

    필섭이 막 의식을 잃으려는 찰나 혜원이 목소리가 들려 왔다.

     

    "도형! 정신차리세요~"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혜원의 얼굴이 보였다. 필섭인 의식을 회복하고 눈을 떴다.

    혜원인 방안에 없었다. 그런데 혜원의 음성이 또다시 들려 왔다.   

  • 남아공 인권운동의 상징, 투투 대주교 별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인권 운동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투투 대주교가 타계했습니다.

     

    26일(현재시간),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재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의 철폐에 앞장섰던 데스몬드 투투 성공회 대주교가 케이프타운의 요양소에서 향년 90세를 일기로 선종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분리, 격리'를 뜻하는 아파르트헤이트는 냉전시대부터 1990년대까지 있었던 백인과 유색인종에 대한 신분제도였습니다. 이 정책으로 인해 유색인종은 대도시 중심가에 사는 것 자체가 불법이었으며, 거주지를 옮기는 것도,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주권마저 박탈당한 것과 마찬가지였으며, 각종 공공시설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고, 유색인종과 백인 간의 결혼 또한 금지되었습니다. 백인들 또한 언론, 문화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러 이유로 검열과 통제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이런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를 없애기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1958년 세인트피터스 신학대에 입학해 성직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75년 44세의 나이로 요하네스버그 대성당의 주임 사제에 올랐습니다. 이는 당시에 유색인종으로써 가장 높은 성직에 오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흑인 빈민가에 살면서 흑인들을 위해 살았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백인들 중 일부가 그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운동은 단순히 유색인종 집회에 참석해 철폐운동을 독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인들도 인종차별의 종식에 동참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인종차별정책이 흑인 뿐만 아니라 백인에게도 인간성에 큰 손상을 입히고, 각종 검열을 정당화하는 등 다양한 악영향을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 보스터에게 <교인이 다른 교인에게>라는 공개서한을 보내, 아파르트헤이트의 문제점과 그로 인해 벌어질 유혈사태를 경고했으며, 일반 백인들에게 유색인종의 열악한 삶을 알리고 그들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해 남아공의 실태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등, 전세계의 도움을 받기 위해 수없이 노력했습니다.

     

    당시 백인 정권은 그의 활동을 보고 그를 요주의 인물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1979년에는 그의 여권을 압수했으며, 다음 해에는 집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를 체포하고 벌금형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1981년 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방문해 인종차별 철폐에 대해 논의하자, 정부는 다시 그의 여권을 압수했습니다. 투투 대주교의 요청으로 서방국가가 약간의 경제제재를 취하자, 그에 대해 잘 모르던 백인들, 그리고 그를 따르던 흑인들도 그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기회로 삼아 정부는 그가 소속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를 표적조사해 투투 대주교를 압박했습니다.

     

    그러던 1984년 투투 대주교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면서 투투 대주교의 노력은 빛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노벨 위원회는 투투 대주교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인간의 존엄과 우애,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남아프리카의 모든 개인과 단체에게 보내는 세계의 격려"라고 밝히면서 그의 운동을 지지했습니다. 또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인사들로부터 축하가 쇄도했습니다. 그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남아공의 흑인들에게 힘을 실어줬으며, 나아가 아파르트헤이트가 세계적인 문제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1986년, 그가 케이프타운의 대주교로 선출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운동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유엔(UN)에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는 나치즘 만큼 부도덕하고 사악한 것"이라고 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의 부당함을 세계에 더더욱 알리고자 했습니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투투 대주교는 남아공 국가와 국민 통합을 위한 '무지개 국가(Rainbow Nation)' 운동을 제안했으며, 1995년에는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벌어졌던 인권침해를 조사히기 위한 '진실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약칭 TRC)'의 위원장으로 임명됐습니다.

     

    투투 대주교는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이후에도 다양한 차별을 언급하며 인권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는 새롭게 등장한 흑인 엘리트들에게 너무 큰 권력과 부가 집중됐다고 말하면서, 대다수 민중의 빈곤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교단의 동성애 차별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1996년 남아공 헌법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 명문화에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등 동성애와 관련된 차별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1997년 전립선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이어갔고, 지난 2019년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한 자선재단 행사에 참석해 해리 영국 왕손 가족을 만난 후 공개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습니다.

     

    투투 대주교의 선종 소식에 세계의 수많은 인사들이 애도를 표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대주교의 선종 소식을 듣고 가슴이 무너졌다면서, "그의 유산은 국경을 초월하고 시대를 초월해 울려퍼질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또한 "투투 대주교는 많은 이들에게 멘토이자 친구이자 도덕적 나침반이었다"라면서, 그에 대한 그리움과 애도를 표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의 딸 버나스 킹 또한 그의 선종 소식을 듣고 "전 지구적인 현자이자, 인권 지도자이자, 이 땅의 강력한 순례자였던 이의 죽음에 슬픔에 잠겼다"라며 애도를 표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과거사의 진실을 통해 용서와 화해를 이루고자 했던 그의 삶은 인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가 하느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길 기도한다고 밝혔습니다.

  • 성자들의 시대11- 명천의 수행

    계룡산 보덕봉

    운학산을 떠난 백령자와 벽운 선생이 이리로 왔다. 보덕봉에도 그의 제자가 하나 있었다.

    홍명천이란 젊은이다.

    명천인 앞을 못 보는  맹인으로 나이는 서른넷이었다.

    어려서 백내장을 앓는 바람에 눈이 멀었다.

    혜원과 함께 지내다가 혜원이 운학산으로 간 뒤에는 줄곧 혼자 살아왔다.

    가끔 벽운 선생과 백령자가 다녀갈 뿐 찾아오는 이가 전혀 없었다.

    그가 머무는 초막은 보덕봉 정상에서 남쪽으로 백 미터쯤 아래쪽에 있었다.

    벽운 선생은 보덕봉 정상에 앉아 초막을 내려다보았다.

     

    명천인 마당에서 외공을 수련하고 있었다.권법을 연습하는 중이었다.

    팔다리를 이리저리 쭉쭉 내뻗고 휘두르며 가끔 기합 소리를 터뜨렸다.

    기합 소리가 호랑이의 포효보다 더욱 우렁찼다. 대단한 공력이 실려 있어

    온 산이 쩌렁쩌렁 울렸다.

    움직임은 전광석화처럼 빨랐다. 손발을 내뻗을 때에도 강한 기운이 뿜어 나갔다.

    단전에 가득 쌓인 진기가 경락을 타고서 손끝발끝으로 뻗쳐  가는 것이었다.

    명천인 권법 수련을 끝낸 다음, 커다란 돌을 집어 들었다.돌의 두께가 두어 자,

    길이가 석 자쯤 되었다. 이것을 공중에 집어 던졌다.

    돌은 포물선을 그리면서 높이 솟구쳤다가 10미터쯤 앞쪽으로 떨어졌다.

    명천은 한 길 이상 몸을 날려 내려오는 돌을 향해 손을 뻗었다.

    명천의 손끝이 돌에 채 닿기도 전에 단전에서 뿜어 나온 공력이 돌을 쳤다.

    돌은 굉음을 울리며 산산조각났다. 파편 조각들이 돌을 쳤다.돌은 굉음을 울리며 산산조각났다.

    파편 조각들이 총알처럼 앞으로 날아갔다.

    그러고 나서 명천인 땅바닥에 놓여 있던 목검을 집어 들었다. 검과 명천인 한몸이 되어 움직였다. 번개같이 움직이며 전후 좌우 상하로 검을 뻗었다.

    검을 내뻗을 때마다 단전에 충만한 진기가 손을 지나서 검 끝으로 뿜어 나갔다.

    잠시 후, 동작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더니 땅바닥에서 왼손으로 나무 막대기들을 주워 들었다.

    길이가 30센티쯤 되고 지름이 1센티쯤 되는 막대기들이었다.

    명천은 이것들을 자기의 머리 위에 던졌다.

    나무들이 위로 올라갔다가 막 내려오기 시작하자, 명천의 몸이 두 길 가까이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는 공중에 뜬 채로 칼을 휘둘렀다.

    칼이 막대기들한테 닿기 직전에 칼끝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뻗쳐 나와 나무들을 반쪽으로 갈랐다. 

    막대기들이 모두 두 쪽으로 갈라져서 우수수 땅바닥에 떨어졌다.

    명천인 막대기들이 다 떨어진 다음에야 사뿐히 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또 먼저 것보다 조금 더 큰 돌을 집어 올렸다. 이것을 높이 던졌다.

    돌이 무게 때문에 먼저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내려왔다.

    명천이 위로 솟구치며 칼을 상하 좌우로 휘둘렀다. 돌은 칼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을 맞고

    네 조각으로 갈라졌다. 

    명천인 맹인이라 앞이 안 보였다. 그러나 물체의 움직임을 기운으로 감지했다.

    눈으로 보는 거와 다름없이 물체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냈다.  검술 수련이 끝났다.

     명천인 이어서 경신술 공부를 했다.

     

    초막 마당 한켠에 바위 두 개가 있었다. 높이가 한 길 가까이 되는 바위였다.

    두 바위의 간격은 4,5 미터쯤 되었다.

    명천인 가늘고 기다란 대나무 막대를 이 두 바위 위에다 걸쳐 놓았다.

    대나무의 굵기는 엄지손가락 두 개를 합쳐 놓은 것만 했다.

    명천이 바위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 두 손을 합장하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서서히 풀어져서 허공에 흩어져 버리는 모습을 상상했다.

    자신이 허공으로 변한다고 생각했다.

    상상 속에서 몸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뒤에는 장대를 떠올렸다.

    가느다란 장대가 쇠막대처럼 강해지고, 아름드리 통나무 만큼 굵어지는 모습을 상상했다. 

    명천인 장대가 거대한 통나무로 변하는 모습에 온 정신을 집중시켰다.

    그런 다음 대나무 뒤에 발을 올려놓았다.  한 발, 두 발,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명천이 가운데로 이르렸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앞으로 나갔다. 명천이 가운데로 이르렀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전혀 휘어지지 않았다. 진짜 통나무인 것처럼 명천의 몸무게를 잘 감당했다.  명천이 사뿐사뿐 걸어서

    반대편 바위로 올라섰다.

    명천인 대나무를 바꿨다. 이 대나무는 먼저 것보다 더 가늘었다.

    명천인 앞서와 똑같이, 자신의 몸이 허공으로 변하고, 대나무가 통나무로 변하는

    상상을 한 뒤에 대나무 위로 올라섰다. 두 발이 모두 올라가자 대나무가 약간 휘어졌다.

    한발 한발 가운데로 갈수록 대나무는 점점 더 밑으로 내려왔다.

    명천이 대나무의 정중앙에 이르렀다. 대나무가 1미터 이상 휘어졌다. 다시 발을 옮기자

    조금씩 퍼졌다. 명천인 무사히 반대편 바위로 건너갔다.

     

    이때 벽운 선생의 모습이 정상에서 사라졌다. 그의 몸은 눈깜짝할 사이에 초막으로 옮겨졌다.

    명천인 스승이 온 것을 기운으로 알았다. 그의 뒤쪽에서 따스하고 평화로운 화기가 바람처럼

    밀려왔다.

    얼른 돌아서서 스승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그동안 평안히 지내셨는지요?"

    "별고 없었다. 부지런히 닦았느냐?"

    "예, 형님들과 누님도 무고들 한가요?"

    "잘 있다."

    "공부는 잘들 되는지요?"

    명천인 도반들의 수행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궁금했다.

    "열심히 닦는다. 혜원인 한 경계 더 높아졌고, 석주와 필섭인 머지않아 단을 이룰 게다."

    "아, 그래요 !"

    명천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너도 공부가 많이 됐구나. 살갗의 숨구멍이 꽤 열렸어, 공력이 예전 같지 않다."

    "아직은 완전치 못합니다. 피부의 숨이 자주 막힙니다."

    "네가 한을 품고 있어서 그렇다. 그게 없어져야 큰 도를 이루느니라."

    명천인 혜원이보다 조금 늦게 임독맥이 열렸다. 이제 피부 호흡 수련을 하는 중이었다.

    피부로 숨을 쉬노라면 온몸의 기공을 통해 우주의 진기가 쏴아쏴아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나 명천의 피부 호흡은 아직 불완전했다. 기공이 활짝 열렸다가도 곧 스르르 닫혔다.

    가슴에 응어리진 한 때문이었다.  그는 네 살 때 부모를 모두 잃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날 한시에 죽었다. 그것도 처참하게  총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명천의 고향은 지리산 기슭이다.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1950년 9월 북한군이 후퇴하자 지리산으로 들어가 빨치산이 되었다.

    그때 명천의 나이 겨우 한 살이었다.

    3년 후 어느 날 밤이었다. 명천인 잠을 자다가 가슴이 답답하여 잠깐 잠을 깼다.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그를 꼭 껴안고 있었다. 그는 명천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댔다.

     감촉이 꺼칠꺼칠했다. 무성한 수염 때문이었다. 명천인 깜짝 놀랐다.

    자기를 안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분명 아니었다. 명천인 엄마를 몇 번 부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명천인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걸레쪽 같은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었다.

    턱과 볼에는 기다란 수염이 무성했다. 어머닌 명천이더러 그가 먼데 사는 아저씨라고 했다.

     그는 명천일 무릎에 앉혀 놓고 이것저것 말을 시켰다. 또, 자꾸 머리를 쓰다듬고 꼬옥 껴안아

    주곤 했다.

    아침밥을 먹은 뒤 그는 다락으로 올라갔다.

    명천인 그가 왜 비좁고 컴컴한 다락에 숨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날, 명천인 방안 에만 있어야 했다. 어머니가 밖으로 못 나가게 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도 갑자기 아프다며 머리에 수건을 동여매고 누워 있었다.

    어머니는 명천에게 혹시 누가 오면 다락에 있는 아저씨 얘길 절대 하지 말라고 자꾸 다짐을

    주었다.

    아침나절이었다. 밖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어머니는 질겁을 하며 명천일

    끌어안았다.

    "홍인규, 항복하라."

    총소리가 그치고 누군가 크게 외쳤다. 그 소리를 듣고 어머니는 부들부들 떨었다.

    "네가 숨어 있는 줄 알고 왔다. 나와서 항복하라."

    또 총소리가 들렸다.

    "빨리 나와라. 안 그러면 너희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

    다락에 숨어 있던 아저씨가 방으로 내려왔다. 그의 손엔 총이 한 자루 들려 있었다.

    "나가 봐야겠소. 어차피 죽을 목숨, 싸우다 죽겠소."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여보! 자수하세요."

    어머니가 명천일 내려놓고 그의 다리를 부여잡았다.

    "자수해도 결국 죽이고 말 게요."

    "명천이와 나는 어떻게 살라고요, 흐흑."

    어머니는 울음을 터뜨렸다. 사내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보, 미안하오. 명천아, 내가 네 아버지다."

    사내는 어머니와 명천일 꼭 끌어안았다.

    "항복하라. 홍인규, 항복하라."

    사내들의 거센 외침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 왔다.

    "아버지."

    명천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버지를 불렀다. 그에게는 너무나 낯설고 그리운 낱말이었다.

    "여보, 명천아."

    아버지는 다시 한번 아내와 아들을 꼬옥 안았다가 놓았다.

    그리고 총을 집어든 다음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군복 입은 사내들이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가 뛰어나가자 사방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명천의 아버지는 열 걸음도 못 가서 총을 맞고 쓰러졌다.

    아버지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어머니는 "여보 !" 외치며 뛰어나갔다.

    군복 입은 사내들이 어머니를 향해 또 총을 쏘았다. 어머니는 아버니보다 조금 떨어져서 쓰러졌다.

    "엄마 !"

    명천이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다. 총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머니의 가슴에

    엎어져 울었다.

    "명천아, 명천아아."

    어머니는 명천일 부르며 숨을 거뒀다.

     

    고아가 된 명천인 고모 집에서 자랐다. 고모는 명천일 자기 자식처럼 위해 주었다.

    그런데 고모부는 명천일 박대했다. 그는 난폭하고 매정한 사람이었다.

    고모부는 걸핏하면 명천이더러 빨갱이 새끼라고 했다. 명천이 조금만 잘못해도 매를 댔다.

     손찌검도 예사로 했다. 고모는 명천이 때문에 숱한 눈물을 흘렸다.

    명천인 초등학교 3학년 때 백내장을 앓았다. 그는 병원 한번 못 가보고 눈이 멀었다.

    고모부는 눈까지 먼 명천일 더욱 미워했다.

    결국, 명천인 유일한 피붙이인 고모와 헤어져 장애인 복지 시설로 가야 했다.

    명천이 고모 집을 떠난 지 3년 후에 웬 스님이 명천일 찾아왔다. 지관이란 스님이었는데,

    그 스님이 후원하여 명천인 맹아 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 지관 스님은 자기가 아버지의 친구 되는 사람이라고 했다.

    명천인 그를 아버지의 친구로만 알았다.

    명천이와 벽운 선생이 처음 만난 곳은  지관 스님이 주지로 있던 문수사였다.

    맹아 학교를 졸업한 뒤, 명천인 지관 스님한테서 한문과 불경을 배웠다.

    그때, 벽운 선생은 일년에 두세 차례 문수사엘 들렀다. 지관 스님의 은사 스님이 벽운 선생의

    친구였다.

    명천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을 단 하루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그들에게 총을 쏜 군복 입은

    사내들이 떠오르면 분노로 치가 떨렸다. 그들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런데 지관 스님으로부터 불법을 배우면서 증오심이 서서히 사라졌다.

    인간사가 모두 인과려니 생각하며 분노를 떨쳐내려 애썼다.

    지관 스님은 60이 못 돼서 입적했다. 열반에 들던 날, 그가 놀라운 사실을 밝혔다.

    숨이 끊어지기 전에, 지관 스님은 명천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명천아, 나는 오늘 간다. 업이 무거워 금세에는 도를 못이뤘다. 다음 세를 기약한다.

    너는 금세에 업을 다 벗고 성불하거라. 벽운 선생께서 앞으로 너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실게다.

    또, 떠나기 전에 너한테 꼭 밝혀야 할 일이 있다.

    나는 네 아버지의 친구가 아니다.

     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던 날, 네 아버지를 잡으러 갔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때 나는 경찰이었다.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네 어머니와 너의 모습을 나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다. 그리고 너를 찾아 나섰다.

    명천아, 부디 속세의 원한을 떨치고 해탈의 기쁨을 누리거라."

    지관 스님은 이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명천인 큰 충격을 받았다.

    그토록 미워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지관 스님이라니 믿을 수 없었다.

    그에게 지관 스님은 아버지나 마찬가지였다. 명천인 지관 스님을 생각하며

    가슴에 품은 원한을 없애려고 애썼다.

    지관 스님이 입적한 지 얼마 안 되어 벽운 선생이 그를 인도하기 시작했다.

    고모는 지관 스님보다 조금 뒤에 세상을 떴다.

    그녀는 죽기 전에 명천의 아버지를 누가 밀고했는지 알려 주었다. 밀고자는

    한동네에 살았던 김덕배라는 사람이라 했다.

    "김덕배란 놈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다.

    그놈은 면서기였는데 몹쓸 짓을 많이 했다. 명천아, 꿋꿋하게 살거라.

    장가를 가서 애들이라도 잘 길러라. 그놈보다 네가  잘살아야 한다.

    그놈 자손보다 네 자손이 더 잘되는 게 내 소원이다. 불구자라고 좌절해선 안 된다."

    고모의 말은 명천의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분노와 증오심에 불을 질렀다.

    김덕배.

    그를 죽이고 싶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처절한 죽음이 생각날 때마다 그의 이름이 함께 떠올랐다.

    벽운 선생이 그 증오심과 분노를 다시 가라앉혀 주었다.

    격렬한 증오심은 사라졌으나 가슴속의 응어리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덕배나 아버지, 어머니에게 총을 쏜 사내들을 만난다면 그 응어리가

    증오와 분노로 폭발할 것 같았다.

     

    벽운 선생은 이 한을 풀어 주기 위해 명천이한테 외공을 가르쳐 주었다.

    명천인 칼을 휘두르고, 공력으로 돌을 깨고, 공중에 날아오르면 가슴이 좀 후련해졌다.

    원수가 아니라, 그들을 향한 분노와 미움이의 뿌리를 향해 칼을 휘두르고 손발을 내뻗는 것이었다.

    그를 한스럽게 만드는 것은 부모의 비참한 죽음만이 아니었다.

    강한 자에게 짓밟히는 연약한 중생들의 고통이 가슴에 사무쳤다.

    부모형제가 없는 천애  고아로서, 앞을 못 보는 불구자로서 자신이 겪은 아픔 때문에

    동병상련의 정을 깊이깊이 느꼈다. 힘없는 중생들의 한이 곧 그의 한이었다.

    명천이가 기꺼이 벽운 선생을 좇아 수도인이 된 것도 연약한 중생들을 건져 주기 위해서였다.

    도를 이루어 그들을 돕고 싶었다. 자신의 한과 함께 그들의 한을 풀어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벽운 선생은 다른 어느 제자보다 명천이와 많은 얘길 나눴다.

     어려서 따뜻한 정을 많이 못 받은 명천의 가슴 깊은 데 자리한 외로움을 없애 주려는 뜻이었다.

    명천인 벽운 선생을 스스럼없이 대했다. 시시콜콜한 신변 얘기도 잘했고,

    이것저것 여쭤 보는 것도 많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자상한 아버지와 활달한 아들 사이 같았다.

    벽운 선생과 함께 있으면 명천의 마음은 한없이 평화로워졌다.

    그토록 증오했던 사람들도 가슴을 활짝 열고 품어 안을 수 있었다.

    벽운 선생은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라고 당부했다.

    "명천아, 땀을 뺐으니 폭포에 가서 목욕을 하거라. 나와 함께 가자."

    백령자를 초막에 남겨 두고 명천이와 벽운 선생은 계곡의 폭포로 갔다.

    높이가 두세 길쯤 되는 폭폭였다. 물줄기가 시원하게 쏟아져 내렸다.

    폭포 밑에는 깊은 못이 있었다. 깊이가 한 길쯤 되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렸다. 물이 바위에 부딪쳐 분수처럼 치솟았다.

    폭포 주위엔 잠자리와  나비들이 떼지어 날아다녔다. 명천이 옷을 걸친 채 물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명천아, 못에 들어가 살갗으로 숨을 쉬어 보거라. 들어가기전에 마음과 정신을 잘 가다듬어라.

     네 몸도 물 떨어지는 소리도 모두 잊거라."

    벽운 선생이 폭포 옆 바위에 걸터앉아 말했다.  명천인 천천히 못 가운데로 들어갔다.

    물이 가슴께까지 닿는 곳에 멈춰 서서 합장을 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몸이 완전히 물 속에 잠겼다.

    코로 공기가 드나들 수 없으니 피부가 숨을 쉬었다. 물에 섞여 있던 공기가 기공을 통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반시간쯤 지났다. 가슴이 좀 답답했다. 명천이 그제서야 물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자 시원한 공기와 함께 우주의 진기가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세찬 바람이

    살가죽을 뚫고 불어오는 것 같았다. 몸 안과 몸 밖의 경계가 사라진 기분이었다.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우주의 진기는 단전에 모였다가 온몸 구석구석으로 돌아다녔다.

    이 엄청난 진기에 밀려 몸 안에 조금 남아 있던 탁기가 밖으로 씻겨 나갔다.

    명천의 몸은 진기로 가득 채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