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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밥을 덜게 하소서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교육받아야 합니다.“

     

    나눔 단체 JTS의 생각입니다.

    아, 진실은 이처럼 단순합니다.

    무슨 군더더기가 더 필요하겠습니까.

     

    신영복 교수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창 밖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달콤한 잠을 잘 권리가 없다……“

     

    ARS라도 누르는 마음, 그것이 사랑 자비의 실천이겠지요.

    나눔의 평화! 

    그래서 오늘 우리의 기도는 이렇습니다.

     

    “제 밥을 덜어 그들과 나누게 하소서.”

  • 빌 게이츠가 지혜를 얻는 비밀 ‘씽크 위크’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이미지 출처 : 플리커 Steve Jurvetson (www.flickr.com/photos/jurvetson/4368494308), CC BY 2.0 라이센스]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로 20년 이상 세계 1위 부자에 올랐습니다. 

     

    300억 달러가 넘는 재산을 출연해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딴 ‘빌 앤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을 만들어 세계 최고의 공익사업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생각하는 주간(Think week)을 갖는 이로도 이름이 나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1년에 한 두 번씩 북서 태평양에 인접한 삼나무 숲 속의 작은 2층 집에 머물며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시간을 보냅니다. 

     

    이 때만큼은 가족과도 떨어져 지냅니다. 빌 게이츠 판 무문관이라고 할까요.

     

    씽크 위크를 통해 빌 게이츠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회사 경영과 관련한 생각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회사나 재단을 통해 세계로부터 쏟아지는 수많은 제안도 검토합니다.

     

    [[IMAGE|260|center|빌 게이츠의 아이디어 비결 중 하나는 바로 1년에 1~2회 갖는 '생각주간(Think week)'이다. 이 기간에 그는, 문명과 고립된 숲 속의 작은 집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나 회사 경영 등에 대해 생각한다.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게이츠노트] ]]

     

    빌 게이츠는 1995년의 씽크 위크에서 IT 기업 역사상 가장 통찰력 있는 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짧은 글 인터넷 물결(Internet Tidal Wave)을 씁니다.

     

    그는 이 글을 토대로 마이크로소프트 임직원들에게 다가오는 인터넷 서비스 물결이 기술과 산업 전반에 지각 변동을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깨닫고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터넷 브라우저를 개발하도록 이끌었습니다. 태블릿PC도 씽크 위크에서 구상했다고 합니다.

     

    [[IMAGE|261|center|마이크로소프트사의 태블릿PC는 빌 게이츠의 '생각주간'에서 나온 아이디어 중 하나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

     

    빌 게이츠가 생각주간을 보내는 공간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전한 빌 게이츠의 ‘무문관’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자신에게 통찰력을 줄 수 있는 책들이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고, 다른 벽에는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가 걸려 있습니다. 다이이트 음료가 들어 있는 작은 냉장고가 거의 유일한 전자제품이구요. 하루 두 끼를 먹으며 빌 게이츠가 하는 일은 생각하고 읽고 쉬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는 씽크 위크의 효과를 깨달은 뒤 마이크로소프트의 간부들도 1년에 2주씩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 진묵조사(2) - 8년 정진 끝에 대각을 이루다

    진묵조사는 불문에 귀의한 지 8년 만에 대각을 이루었다. [위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주지 스님과 희 노장은 어린 동자의 말에 껄껄 웃고 말았습니다.  

     

    원래 희 노장은 봉서사 주지를 지낸 스님이었는데 성격이 불같고 괴팍했습니다. 시봉하는 사미를 번번이 쫓아내는 바람에 겨울에 거처하는 방의 불도 손수 때고 지낼 정도였습니다.  

     

    희 노장은 일옥을 자기 방에 데리고 들어가 저녁을 먹였고 그날 이후 일옥은 8년 동안 희 노장을 시봉하게 되었습니다. 

     

    주지스님은 일옥을 영리한 아이로 생각하고 신장을 모신 단에 향불을 올리고 예배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일을 맡기고 얼마 되지 않아 주지스님 꿈에 신장들이 나타났습니다. 

     

    “부처님 모시는 것이 우리 신장의 할 일인데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향을 올리고 예배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발 다시는 아침저녁으로 예불하게 하지 마시고 우리가 마음 편히 지내도록 해 주십시오.” 

     

    봉서사 스님들은 어린 동자승을 남달리 보아 ‘작은 부처님’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희 노장이 입적하자 일옥은 삼년상을 지내고 난 후,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이름은 ‘진묵’으로 바꾸어 불렀습니다.  

     

    진묵이 200리 넘는 길을 걸어 도착한 곳은 평야와 바다 사이에 우뚝 솟은 변산이었습니다. 봉래산 중턱에 자리 잡은 월명암은 신라시대(691년) 부설거사가 창건하여 가족이(묘화부인, 등운, 월명) 모두 수행하여 득도한 곳입니다. 월명사에서 진묵은 일체의 말을 끊고 묵언 정진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8년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오직 참선에 몰두했습니다. 

     

    낙조대에 앉아 수행을 하던 어느 날 석양 무렵이었습니다. 붉은 해가 서서히 내려오며 그 기운으로 바다를 시뻘겋게 물들이더니 진묵을 그대로 품어 안았습니다. 그 순간 진묵은 오랜 묵언 수행을 깨고 기뻐하며 소리치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었습니다. 음력 칠월 보름 구순안거 해제 날 8년 적공 끝에 대각을 이룬 것입니다. 

     

    진묵은 깨달음을 얻은 뒤 궁벽하고 쇠락해가는 절을 주로 찾아다니며 민중들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조선은 당파 싸움과 전쟁으로 극심한 혼란기였습니다. 진묵은 헐벗고 가난한 민중과 어울리며 그들의 위안이 되고 희망이 되었습니다. 살아있는 부처님이라 불리며 그들의 의지처가 되었습니다. 초의선사가 쓴 <진묵대사유적고>에는 그와 관련된 신기한 일화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봉곡선생으로 불리던 유학자 김동준은 진묵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루는 진묵스님에게 <주자강목>을 한 질을 빌려주며 사람을 딸려 보냈습니다. 스님은 걸어가면서 한 권씩 읽은 다음, 책을 떨어뜨리며 갔습니다. 따라가던 사람이 책을 모두 주워가지고 가서 봉곡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나중에 봉곡이 진묵을 만나 그 까닭을 묻자, 진묵이 대답했습니다. 

     

    “고기 잡은 뒤에는 고기 잡는 통발은 잊는 법이네.” 

     

    봉곡이 내용을 물어보니 진묵은 한 자도 틀리지 않고 내용을 꿰고 있었다고 합니다. (계속)

  • 올해 100세 된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말하는 삶의 지혜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없어집니다.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습니다.”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님이 하신 말입니다. 김 교수님이 올해 100세를 맞았습니다. 

     

    100년은 간단치 않은 세월입니다.  

     

    김 교수님은 1920년 평남에서 태어나 윤동주 시인과 함께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셨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마지막 대중 강연을 들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해방, 한국전쟁 등 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를 살아오신 김 교수님이 세월을 통해 얻은 삶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다음은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김 교수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4살, 15살 때 건강이 너무 나빴어요. 건강 때문에 중학교도 못 가고 인생이 끝날 것 같은 데 하나님께 건강을 주시면 주시는 동안은 내 일보다는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건강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일하기 위한 건강이지 건강을 위한 건강은 별로 생각을 안 합니다.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건강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 좋아요.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곧 끝나버리고 마는데 일을 사랑하는 사람한테는 언제나 돈이 따라와요. 

     

    경제는 일을 사랑하는 개인과 사회에 주어지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일하는 개인이나 사회는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수입보다는, 소유보다는 일을 사랑하는 것, 그다음에 또 하나는 일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돈 벌기 위해 출세하기 위해 명예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행복과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가 접촉하는 사람들이 나 때문에 조금 더 행복해지고 지금보다 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까 그것에 제게는 일의 목적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는 예수님의 교훈이 바로 그거죠. 그러니까 일의 목적은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때문에 조금 더 행복해졌다, 좀 더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됐다. 그 이상의 목표를 나는 없다고 봐요. 

     

    젊었을 때는 누구나 즐겁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장년기에는 일을 성공하는 게 목표죠.  

     

    그런데 나무도 마지막에는 열매를 맺어야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인생도 60이 넘으면 사회를 위해서 열매를 맺어줄 나이가 됐거든요.  

     

    내 인생에 목표가 있다 하면 아까 얘기한 그대로 내가 있기 때문에 주변의 여러분들이 좀 더 행복하고 인간답게 살아가는 데 내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그 목표죠."

     

    김 교수님은 인생의 황금기를 65세에서 75세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 나이로 돌아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 나이가 되어서야 생각이 깊어지고 행복이 무엇인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 실리콘벨리의 컴퓨터 없는 학교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컴퓨터와 아이패드가 없는 학교가 있습니다. 그린우드 학교가 그곳입니다. 

     

    이 학교 학부모 가운데는 구글이나 애플과 같은 세계 최고의 IT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런 부모들이 컴퓨터와 IT 관련 도구가 차단된 학교에 자녀를 보내는 셈이지요. 

     

    그린우드의 교육 목표는 여느 학교와 조금 다릅니다. 

     

    “상상력, 자연에 대한 사랑, 탐구심을 길러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사고와 조화로운 태도로 세상에 기여하는 사람을 기르는 것”이 이 학교의 교육 목표입니다. 

     

    이 학교가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학교와 많이 다릅니다. 물론 배우는 즐거움과 성취는 당연히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학교의 특별함은 다양한 영적, 문화적 전통의 경험, 다른 이를 존중하고 공감, 자연과 지구에 대한 경외심, 한교 안팎의 공동체에 대한 봉사 등에 높은 가치를 두는 데 있습니다. 

     

    아이들을 지적, 감성적, 사회적, 육체적, 영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모든 교과가 맞춰져 있습니다.  

     

    그린우드는 아이들에게 특히 부, 명성, 지위와 같은 가치가 아니라 연결, 공감, 정직, 봉사 등을 강조합니다.  

     

    그린우드 학교는 특히 아이들이 컴퓨터, 아이패드, 휴대폰 등에 접근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럽게 생각합니다. 

     

    너무 일찍 컴퓨터 기기를 접하는 것이 아이들의 성장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린우드 교사들은 태블릿이나 휴대폰을 갖고 노는 것보다 보디페인팅이나 그림 그리기, 무용 등과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배우는 게 아이들의 성장에 훨씬 많은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린우드 학교에 가보면 아이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며, 수공예품을 만들고, 시와 소설을 쓰는 등의 활동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IT 기기의 사용을 무조건 막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나이에 맞게 아이들이 그런 도구를 접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이는 미국의 IT 산업을 이끌고 있는 많은 리더들의 생각과도 비슷합니다. 페이스북을 만든 마이크 저커버그도 자신의 딸에게는 13살까지 페이스북을 접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린우드 학교는 8학년제입니다. 우리로 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합쳐진 곳이지요. 

     

    이 학교는 발도르프 교육을 하는 학교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이 어떤 것이냐고요? 

     

    청계자유발도르프학교의 홈페이지에는 발도르프 교육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919년 오스트리아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루돌프 슈타이너에 의해 시작된 발도르프 학교 혹은 슈타이너 학교는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과 영혼이 조화롭게 발달하도록 돕는 것을 교육 이념으로 삼고 있으며, 이와 같은 교육 이념 위에 현재 전 세계 800여 개 학교가 설립 운영되고 있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어린이들의 몸과 마음이 일정한 주기를 거쳐 성장함을 믿으며, 어린이들이 천성적으로 부여받은 모든 능력을 고르게 발달시킬 수 있도록 모든 감각들을 자극하는 총체적이고 예술적인 경험들을 어린이들에게 주려고 합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성과도 좋습니다. 

     

    북미발도르프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발도르프식 수업을 받은 학생의 대학 진학률은 94%나 됩니다. 북미지역 전체 평균(65%)에 비해 30% 가까이 높습니다.

  • “엄마, 친구가 하늘나라 갔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12월10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것이라고는 늘 비가 오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창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처럼 비가 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며 아들을 맞으러 학교에 갔다.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 멀찍이 바라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학교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금요일이라면 주말에 놀 생각에 더 활짝 웃으며 나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진짜 슬픈 소식이었어. 진짜, 진짜, 진짜 슬픈 소식이야. 그 친구가 하늘 나라에 갔대."

     

     

     

    [[IMAGE|228|center|caption]]

     

    느닷없는 비보

     

     

    그 친구라 함은, 지난 학년부터 아들과 한 반이었던, 9월에 시작된 새로운 학년에 첫 짝궁이었던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휠체어에서 생활했고, 옆에는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이 늘 함께 했지만, 아들의 그 친구는 학교생활에 대부분 참여했었다.

     

    통합교육이 원칙인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몸이 불편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이 친구도 학급 활동에 늘 함께 했다. 지난해 그 친구의 생일 땐 반 전체에서 작은 축하파티도 열었었다. 반에서는 혼자 책을 읽기 힘든 이 친구에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두어 달 전 아들은 자신이 책 읽어줄 차례라며 영어발음을 연습해 갔었다. 몇 주 전 자원봉사로 따라간 현장학습 때도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과 함께 참가했던 아이였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먹먹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주친 선생님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 중 몇몇도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온 부모들 중 몇 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자,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 그것도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10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것을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건넨 종이

     

     

    아들이 비보를 접한 것은 등교하자마자였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몇몇 친구들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어 담임선생님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종이를 둘게요. 수업 도중에라도 마음이 힘들고 슬픈 기분이 들면 언제든지 가져다가 쓰고 싶은 것을 아무 거나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되고,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되고, 너무 슬퍼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도 돼요. 그리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안 될 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울고 와도 돼요."

     

    아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그 어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도, 그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충격을 이해해주고 그 슬픔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털어 놓았고, 지원 나온 대체교사가 이날 수업시간에 함께 했다.

     

    상실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심리적으로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기는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겪는 상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 준다.

     

    상실을 맞닥뜨릴 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힘들다고 해서 부인하거나 '괜찮다'고 포장해 버리면, 그 슬픔은 마음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슬픔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오랫동안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대처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날 아들과 반 친구들은 수시로 종이를 가져다가 슬픔을 표현했고, 도서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IMAGE|229|center|caption]]

     

    교장선생님의 메일 한 통

     

     

    그리고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전체 학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시 한 번 비보를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이어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속히 밴쿠버 교육청의 위기지원팀(VSB Critical Support Team)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위기지원팀은 학교 공동체에서 재난이나 구성원의 죽음 등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심리적 문제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슬픔에 빠진 선생님들도 돕고, 때로는 대체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아이들이 들를 수 있도록 상담센터를 열어 두었고, 학교와 교육청 소속의 상담사들이 도움을 제공할 채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또한 교장선생님은 강조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물을 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정직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나아가 학교에서도 언제든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집에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장 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여전히 먹먹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자세, 상실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태도, 공동체 차원에서 상처를 극복해 가려는 노력. 아들의 학교는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해내며 애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나와 내 아이를 비롯, 그 친구와 가까워 충격과 슬픔이 더 큰 몇몇만이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린 마음 한 켠에 훈훈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물론, 아무리 함께하고 서로 위로하더라도 상실을 경험해내는 것은 분명 힘들고 아픈 일일 것이다. 그 충격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까지 나서 함께 슬픔을 나누고 도우려는 모습들을 보니 이를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분명 이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 아기천사를 도운 비행기 안의 천사

    투병 중인 생후 11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를 탄 엄마에게 1등석을 양보한 승객이 있습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켈시 즈윅(Kelsey Rae Zwick)은 지난 6일 올랜도에서 필라델피아로 가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만성 폐 질환을 앓고 있는 딸을 필라델피아에 있는 어린이병원에 데리고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즈윅은 아기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장비와 기저귀 가방을 들고 유모차를 밀며 좌석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다가와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한 승객이 자신의 일등석을 모녀에게 양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입니다. 즈윅은 그 얘기를 듣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즈윅은 그때의 감동과 감사의 뜻을 페이스북에 편지로 남겼습니다. 예쁜 아기와 함께 찍은 사진도 함께 말입니다.  

     

     

     

     

    다음은 즈윅이 페이스북에 남긴 글입니다. 

     

     

    "1등석 2D 좌석을 양보해 준 분께 

     

    당신은 올란도에서 필라델피아로 여행 중이셨죠. 당신이 어딘가에서 저와 딸아이를 보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팔에 기저귀 가방과 딸아이를 위한 산소 발생기를 들고 유모차를 밀고 가고 있었습니다.  

     

    저와 딸은 선 탑승을 해 창가의 편안한 좌석에 앉았고 이따금 소리를 지르지만 행복한 아기와 함께 주위 분들과 유쾌한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때 승무원이 다가와서 당신이 좌석을 바꾸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대신 자신이 예약한 편안한 1등석을 저희에게 주고 싶다고요.  

     

    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통로를 걸어가면서도 계속 울었습니다. 딸아이 루시는 당신의 배려를 아는 듯 웃음을 지었습니다.  

     

    당신에게 웃음 지으며 감사하다고 말했지만 고맙다는 뜻을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 같아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자리를 양보해준 것뿐만 아니라 저와 딸아이를 보고 힘들어할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주신 데 대해서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저희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런 친절을 베풀었을 겁니다. 당신이 베푼 친절로 저는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습니다.  

     

    루시가 빨리 커서 오늘 일을 얘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받은 친절을 되갚을 날도 있겠지요.  

     

    아메리칸 에어라인 AA 588편 1등석 2D 좌석을 예약했던 선생님, 당신이 베푼 친절로 저와 딸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언론의 취재 결과 자신의 1등석을 양보한 사람은 엔지니어로 일하는 제이슨 쿤셀만(Jason Kunselman)이라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쿤셀만은 당시를 회상하며 자리를 양보할 때 자신도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즈윅이 그의 아름다운 양보를 페이스북에 올리면서 세계 각지에서 쿤셀만에 찬사가 쏟아졌습니다. 

     

    비행기 안의 인연으로 쿤셀만은 즈윅과 아기를 다시 만날 계획도 세웠다고 합니다. 

  • 진짜 재산이란

    동물은 배가 부르면 아무리 맛난 게 눈앞에 있어도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지구상의 생명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만이 먹을 게 썩어들어갈 정도로 많아도  더 쌓아두려고 합니다. 

     

    재산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진 게 차고 넘쳐도 더 가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세고 관리하기 위해 사람을 채용해야 할 정도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 조금 더 가지려고 다른 이의 재산을 탐냅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은 재산은 자신이 죽은 뒤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쌀 한 톨도, 단 돈 십 원도갖고 가지 못합니다. 

     

    진짜 재산은 죽을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 작은 친절, 부드러운 말 한마디, 조건 없는 베풂, 다른 존재를 위한 기도, 어려운 이를 돕는 봉사, 핍박받는 이를 위한 지원 등.

     

    이런 것들이야말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에 쌓는 부입니다.
    죽은 뒤에도 지니고 있게 되는 참된 재산입니다. 

  • 다시 몬드라곤을 생각한다

    청년 실업률이 높다고 합니다. 

    바늘구멍만 한 취업의 문을 통과한다고 해도 평탄한 삶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년의 직장인들 가운데 일부는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면 정리해고됩니다. 

    노인들 가운데 적지 않은 분들이 정부의 보조금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세상이 됐습니다. 

     

    모두가 생존의 두려움을 느끼는 시대라서 그런지 협동조합의 ‘롤모델’로 여겨지는 몬드라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한 신부님이 가난한 이들의 자립을 위해 시작한 몬드라곤은 지금 스페인의 10대 기업 집단에 속할 정도로 큰 조직으로 성장했습니다. 

    100개가 훨씬 넘는 협동조합 120개가 넘는 자회사 등 260여 개의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는 곳이지요. 3만 5천여 명의 노동자 조합원의 평균 연봉도 우리 돈으로 7000만 원이 넘습니다. 해마다 출자금을 쌓아 퇴직할 때 거액의 ‘퇴직금 ‘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많은 기업을 운영하지만 몬드라곤에는 해고가 없습니다. 몬드라곤이 설립된 1956년 이래로 단 한 명의 해고자도 없습니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로 수많은 은행과 기업이 파산하고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었지만 몬드라곤은 급여의 80%를 지급하며 노동자를 재교육해 다시 취직시켰습니다. 그때 몬드라곤은 오히려 1만 4938명을 새로 채용해 고용을 늘렸습니다. 

     

    왜 그럴까요? 몬드라곤의 기업 목표가 고용 확대이기 때문입니다. 

     

    몬드라곤을 설립한 이는 돈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아리에타 신부입니다. 그가 1941년 주임신부로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시골마을에 왔을 때 전쟁으로 마을은 폐허 상태였습니다. 사람들도 다 떠나고 없었습니다. 

     

    돈 호세 신부는 지역민들의 가난 극복을 위해 기술학교를 설립하고 졸업생과 지역민이 중심이 되어 석유난로 공장을 만들었습니다. 몬드라곤의 첫 협동조합 울고(ULGOR)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하나씩 회사를 만들어 지금 몬드라곤에서 운영하는 회사는 금융, 제조업, 유통, 지식 등 4개 부문에서 260개가 넘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변함없는 단 하나의 원칙은 바로 고용 확대입니다. 

     

    몬드라곤 협동조합도 기업이므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또한 실패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어려울 때 함께 나누고 실패한 이들에게도 또 다른 기회를 주며 공동운명체로 살아갑니다. 

     

    창립자인 돈 호세 신부는 몬드라곤에 대해 다름과 같이 말했습니다. 

     

    "인간의 정직성을 제도화하는 것, 나아가 인간의 위대성을 제도화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사상입니다.” 

      

    몬드라곤의 성공은 이런 가치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 숲에 들어 하는 명상

    자주 숲으로 가십시오. 

    바람결과 햇볕, 숲의 향기,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맨발에 전해져 오는 대지의 생생한 감촉, 눈 푸른 숲의 질감. 

     

    숲은 화들짝 그대의 오감을 자극하여 몸과 마음이 춤을 추게 합니다. 

    숲은 그대의 전 존재를 깨우고, 그대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그대의 감정을 정화해 줍니다. 

     

    숲에 드세요. 

    오랜 나무들이 있는.... 

     

    함께 숲으로 가실까요? 

     

    - 따갑지 않으면 햇볕 속에 앉는 것이 더 좋지요. 나무 그늘에 자릴 잡아도 됩니다. 

     

    - 그대의 몸 상태, 주변 환경을 고려해 가장 편한 자세를 가지셔요. 

     

    - 먼저 주변을 둘러보세요. 나무, 바위, 풀, 꽃, 새, 흙 등과 눈 맞추며 반갑게 인사하셔요. 

      명랑하게 소리를 내서 하시면 더 좋지요. 

    - 이제 지그시 눈을 감고, 숲의 신선한 공기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 생각하시며 

      큰 숨 여러 번 쉬셔요. 

     

    - 자, 고요해지셨나요? 그러면 들리는 것, 맡아지는 것, 느껴지는 것들을 아무런 판단을 하지 마시고 

      한동안 그저 가만히 듣고 맡고 느끼며 내 몸의 감각을 활짝 깨워 보셔요. 

     

    - 그런 뒤, 이번엔 내 피부의 모든 세포들이 활짝 열린다 생각하셔요. 

      그 세포들이 환호하며 그 소리, 냄새, 느낌들을 내 몸으로 다 받아들인다고 상상하며 실감해 보셔요. 

     

    - 숲의 초록의 생명 에너지가 피부의 열린 세포를 통해 내 몸에 들어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을 가득 채운다 생각하시며 그 충만감에 젖어 보셔요. 

     

    - 내 몸 전체가 푸르고 눈부신 생명력으로 되살아나 빛이 나고 풀어져 숲 전체로 퍼져나간다 생각하시며 실감해 보셔요.  

     

    - 숲의 빛나고 푸른 기운과 하나 된 그 느낌 속에서 오래 머물러 행복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