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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까지 이기고 딴 은메달을 선뜻 내놓은 감동사연

    폴란드 여자 창던지기 국가대표 마리아 안드레이칙은 2016년 브라질 올림픽에 출전에서 불과 2Cm 차이로 아쉽게 메달을 놓치고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드디어 은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어요. 

     

    그녀는 브라질 올림픽 출전 다음해에 어깨 부상을 당했고, 그 다음해에는 뼈에 악성종양 판정까지 받는 등 불운의 연속이었는데, 이 모든 역경을 이기고 얻어낸 값진 승리였죠. 

     

    그런데 돌연 안드레이칙은 이 소중한 메달을 경매로 내놓았습니다. 어떤 사연 때문이었을까요? 

     

    그녀는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생후 8개월 남자아기가 수술비가 없어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접하고, 수술비를 마련하기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거였어요. 

     

    안드레이칙의 메달은 폴란드 슈퍼마켓 체인인 ‘자브카’라는 회사에게 낙찰되었고, 아기는 무사히 미국 스탠포드 대학 메디컬센터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좋은 일은 또 다른 좋은 일을 부르게 되는 걸까요? 메달을 낙찰 받은 ‘자브카’ 회사는 안드레이칙의 선행에 감동을 받아, 대가 없이 그녀에게 그대로 다시 메달을 돌려주었답니다. 

     

    안드레이칙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메달의 진정한 가치는 언제나 가슴 속에 남아 있어요. 은메달이 옷장 안에 처박혀 먼지만 쌓이는 것보다 사람 목숨을 살리는 게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죠.”

  • 방호복 입은 간호사가 화투장을 든 이유

    중증 치매 환자인 93세의 박모 할머니는 지난해 8월1일 코로나19에 감염돼 삼육서울병원 음압병상에 입원했습니다. 

     

    간호사들은 할머니가 떨어질까봐 침대를 두려워하자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지낼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치매 치료 경험이 있던 양소연 간호사가 할머니를 위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화투를 이용한 꽃 그림 맞추기와 그림 도안 색칠하기였습니다. 

     

    이 사진은 방호복을 입은 이수련 간호사가 할머니의 치매치료를 위해 화투를 치는 장면입니다. 올해 대한간호협회가 공모한 간호사 현장 수기·사진전’ 출품되며 알려져 감동을 줬습니다. 

  • 도쿄 올림픽 화제 인물, 13세 영국 국가대표 스카이 브라운

    스카이 브라운(13)은 영국의 스케이트 보더로, 도쿄 올림픽에 역대 최연소 영국 국가대표로 선발됐습니다. [Jordan Matter Youtube]

    도쿄 올림픽에 참가한 영국 최연소 국가대표 선수가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스카이 브라운 선수로 올해 13살의 소녀입니다. 

     

    “여자 아이들은 남자 아이들이 하는 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여자아이들도 남자아이들이 하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어요.” 

     

    실제 브라운은 8살에 2016년 프로 스케이드보드 대회에 최연소로 출전했고, 2019년 11살 때 브라질에서 열린 '월드 스케이트보딩 챔피언십'에서 3위를 차지했습니다. 그해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X게임'에서는 '프론트사이드 540도'의 기술을 성공시킨 최초의 여성이 됐습니다. 

     

    시련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5월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훈련 도중 크게 넘어져 두개골이 골절되고 왼쪽 손목과 손이 부러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병상에서 그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팬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제가 경험한 최악의 추락 사고였어요. 하지만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다시 일어나 더 강하게 앞으로 나아갈 겁니다." 

     

    그는 어려운 지역의 또래 소녀들이 스케이트보드를 즐길 수 있도록 후원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어려운 지역을 찾아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보드를 가르치는 겁니다. 보드를 탈 때면 그들이 겪은 어려움을 잊고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스케이트보드를 만들어서 팝니다.” 

     

    스케이트보드 판매수익금은 모두 스케이티스탄(Skateistan)을 통해 캄보디아, 아프가니스탄, 남아프리카의 아이들의 교육과 스케이트보드를 전달하는 데 기부가 됩니다. 스케이티스탄은 스케이트보드를 매개로 아이들에게 교육, 급식 등을 제공하는 글로벌 엔지오입니다.

  • 의사당 청소하는 한국계 하원의원, 미국 사회에 감동

    한국계 미국 연방 하원의원인 앤디 김 민주당 의원이 난장판이 된 연방의회 의사당을 청소하는 모습이 미국 사회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7일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시위대가 떠난 뒤 비닐 봉지를 들고 의사당 바닥에 널린 쓰레기를 주워 담았습니다. 

     

    양복을 입은 채 무릎을 꿇고 페트병 등을 주워담는 그의 모습이 언론에 보도되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유되면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김 의원은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것이 망가졌을 때 누구라도 고치고 싶을 것입니다”라며 겸손해 했습니다.

     

    이어 “나는 의회를 사랑합니다. 그 자리에 있어 영광이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전날 오후1시 미 연방의회에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하는 상·하원 합동회의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그 시각에 맞춰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 수천 명이 의사당 건물에 난입했고 일부 시위대는 유리창을 깨고 의사당 안에 들어와 기물을 파손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이 의사당을 빠져 나간 뒤 김 의원은 참담한 마음으로 의사당 안을 걷다가 쓰레기를 치우는 경찰관을 보고 봉투를 달라고 해서 같이 청소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같은 민주당 소속 뉴저지주 하원의원인 톰 맬리나우스키가 그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멜리나우스키 의원은 “새벽 1시쯤누군가가 벤치 아래 무릎 꿇고 뭔가 줍는 걸 봤는데 앤디였습니다”라며 “앤디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려고 청소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언론에 전했습니다.

     

    1982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서 태어나 뉴욕 근처 뉴저지에서 자란 앤디 김 의원은 시카고대 정치학사, 영국 옥스퍼드대 국제관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인 2009년 국무부에 들어간 그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사령관의 전략 참모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의 이라크 담당 보좌관 등을 역임한 중동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임대료 절반 돌려드릴게요”

    광주광역시의 한 임대인이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임차인을 돕기 위해 임대료 절반을 돌려줬습니다.

     

    광주시에 사는 홍영수씨는 지난해 12월29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자신이 겪은 감동적인 일을 소개했습니다. 홍씨는 성당에서 기도할 때 쓰는 ‘컵초’를 만들어 납품하는 일을 합니다. 컵초는 작은 유리컵 안에 들어 있는 초입니다. 

     

    홍씨는 많이 벌지 못해도 생활에 큰 어려움을 없었는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위기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성당 미사가 중단되고 성당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져 컵초 사용량이 크게 줄었기 때문입니다. 매출이 거의 반토막이 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2월22일 임대인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합니다. 11년째 가게를 임차해서 쓰면서 건물주가 연락을 한 것은 처음이어서 걱정부터 됐습니다.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임대인은 ‘코로나 때문에 힘드시죠’라는 격려와 함께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면서 1년 임대료의 절반을 돌려주려하니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했습니다. 계좌번호를 알려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1년치 임대료의 절반에 해당하는 금액이 입금됐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홍씨는 임대인이 11년 동안 임대료를 한 번도 올린 적이 없었다며 자신도 힘닿는 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고 싶다고 돌려받은 임대료의 일부를 나눔단체에 기부하겠다고 했습니다.

  • 해변에 휩쓸린 사람을 구한, 따뜻한 "인간 사슬"

    한순간에 생명을 잃을 뻔한 남성이 "인간 사슬"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의 남부 쥬라기 해안에서 한 남성이 파도에 휩쓸렸고, 해변에 있던 수많은 관광객들이 "인간 사슬"을 만들어 남성을 구출했습니다.

     

    사고 당시, 이 남성은 해변에 있다가 갑작스럽게 몰아친 큰 파도에 휩쓸렸습니다. 이를 본 한 관광객이 바디 보드를 던져 남성을 구조하려 했으나, 막상 바디 보드가 남성에게까지 가지 못해 구조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이에 해변에 있던 관광객들이 서로의 손을 잡아 "인간 사슬"을 만들었고, 그 상태로 파도를 헤치며 바다에 빠진 남성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사슬의 앞에 위치한 사람이 그를 끌어당겨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해변을 관광하던 에밀리 푸트 씨는 "몇 사람이 구조를 시도했지만 전부 실패했었다" 라며, 많은 사람들이 인간 사슬을 만든 후에야 그를 구조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 100만명 마음을 사로잡은 7살 소녀 춤꾼의 사연

    최근 중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바로 한 소녀의 춤 영상인데요.

     

    영상에서 소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신나게 춤을 춥니다.

    그런 소녀의 익살맞으면서도 현란한 춤사위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불편해보이는 왼쪽 다리와 발입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올해로 7살이 된 중국 산둥성에서 사는 양쥔시입니다.

    쥔시는 낭창성 지방층염이라는 면역체계 이상으로 생긴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이 질환 때문에 두 살 때부터 쥔시의 왼쪽 다리와 발이 점차 변형되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3년 뒤에야 겨우 쥔시의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쥔시를 치료하기 위해 쥔시의 부모님은 집을 팔기까지 했고, 지금도 타지로 나가 쥔시의 치료비를 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쥔시가 익살맞은 춤을 추게된 것은 작년 4월 어른들이 다같이 춤을 추는 광장무를 보면서였습니다.

    광장무를 보고 춤의 매력에 푹 빠진 쥔시는, 하루도 안 쉬고 매일 밝게 웃으며 춤을 췄고, 그것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런 쥔시의 영상과 사연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점차 퍼지게 되었고, 어느덧 쥔시는 구독자 1백만 명의 인터넷 스타가 됐습니다. 

     

    쥔시는 "춤을 추면 다리를 단련할 수 있고, 다리가 더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며 춤을 춥니다.

    그런 쥔시의 장래희망은 "돈을 많이 벌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중국의 네티즌들 또한 "꿈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라며 그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 ‘1000 고아의 어머니’ 신두타이 삽칼

    인도 푸네에 살고 있는 신두타이 삽칼은 ‘1천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1968년부터 지금까지 1500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그에게는 282명의 사위와 49명의 며느리가 생겼습니다.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육원을 지어 운영하며 ‘어머니’의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삽칼은 1948년 인도의 가난한 마을인 마하라슈트라주의 작은 마을 핌프리 메게에서 태어났습니다. 찢어진 옷이라는 뜻의 친디가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가난한 목동이었지만 딸을 학교에 보내길 원했습니다. 아내가 반대하자 그는 함께 소를 돌보겠다며 데리고 나가 몰래 학교에 보냈습니다. 삽칼은 필기용 석판을 살 돈이 없어서 나뭇잎에 글자를 적어가며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그만둬야 했습니다.

     

    대신 삽칼은 인도 풍습에 따라 열 살 때 서른 살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19세에 이미 아들 셋을 뒀고 또 임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삽칼이 사는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숲속에서 소똥을 모아 지주에게 연료로 팔고 있었는데 그가 여성들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난폭한 지주가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삽칼은 지주가 자신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앞장서서 이 일을 문제 삼았고 지방 관청을 움직여 마을 여성들이 소똥 판매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상대로 지주는 복수를 위해 남편을 찾아가 거짓말을 합니다. 삽칼이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고 자신도 그랬다는 겁니다. 뱃속의 아기도 누구 아이인지 모른다는 말도 했습니다. 삽칼을 죽이지 않으면 남편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고요.

     

    남편은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와 임신 9개월째인 삽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져 바닥에 쓰러지자 발로 배를 걷어찼지요.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짐짝처럼 끌고 가 소 우리게 던져뒀습니다. 소에 밟혀 죽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 있던 소 한 마리가 삽칼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소의 접근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가 죽었는지 살펴보러 온 사람들까지 쫓아냈습니다.

     

    삽칼은 외양간에서 딸 맘타를 낳고 돌멩이로 탯줄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준 소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가장 절박할 때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삽칼은 핏덩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지만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기찻길 옆이나 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힌두 사원을 찾아 먹을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잠은 근처 공동묘지에서 잤고요. 한때는 너무 힘이 들어서 딸을 안고 기차선로 위에 지나가는 기차에 치여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길에서 걸식을 하면서 삽칼은 부모에게서 버려져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많이 많이 만났습니다. 자신의 먹을 것을 그 아이들에게 나눠 주면서 간신히 연명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삽칼의 삶에 큰 전환점을 주는 일이 생깁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그를 찾아와 물 한 모금만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온몸이 열로 펄펄 끓었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삽칼은 물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던 음식까지 모두 그 사람에게 줬습니다. 곧 죽을 것 같던 그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신두타이는 자신이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거리에서 만난 버려진 아이들을 품어서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했고 그렇게 얻은 돈과 음식으로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수가 빠르게 늘자 그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푸네 마하라슈트라 등 4곳에 보육원을 지어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삽칼이 운영하는 보육원은 여느 보육원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보육원은 18세가 되면 아이들을 독립시키지만 그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얻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삽칼을 어머니라는 뜻의 ‘마이’라고 부릅니다. 테레사 수녀 앞에 마더라는 말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그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삽칼의 사랑 속에서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 어엿한 성인으로 인도 사회의 구성원이 됐습니다.

     

    삽칼은 남편이었던 슈리하리 삽칼이 70살에 용서를 구하러 찾아왔을 때 그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가난 때문에 굶주리던 그를 보호소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이제 그가 자신의 가장 큰 아들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삽칼은 방문객들에게 그를 “가장 큰 아이”로 소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남편을 용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헌신으로 신두타이는 지난 40년 동안 마더 테레사 상, 아마디야 무슬림 평화상 등 750여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상금은 모두 고아들을 위한 시설을 짓고 교육하는 데 쓰였습니다.

     

    신두타이 삽칼의 감동적인 삶은 2010년 영화 ‘미 신두타이 삽칼’로 만들어져 런던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삽칼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도움을 준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 것”이라며 “그것이 내 삶에서 이뤄낸 가장 귀한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 마음을 바꿔 먹었더니 암이 사라졌다

    오늘은 기적적인 체험을 한 분의 얘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저와 가까운 한의사 선생님의 어머님 얘기입니다. 20년도 지난 일이지요,

     

    그 분의 연세가 여든인가 여든하나였을 때입니다. 어느날 가슴에 멍울 같은게 만져졌다고 합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그 분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멍울이 커지고 만저지는 멍울의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기운이 없어 거동이 힘드실 정도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병원을 찾으신거죠.

     

    병원에 갔더니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유방암 말기라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길어야 3개월 정도 사실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어머님은 물론 가족들도 깜짝 놀랐지요. 병원에서는 더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가족들은 아드님인 한의사 선생님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편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한의학은 물론 서양의학의 장점에도 이해가 많으셨죠. 무엇보다 그 분은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 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외과의학적 처치가 불가능하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두 가지 처방을 했습니다. 어머님은 독실한 크리스챤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그런 점까지 고려해 처방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기도이고, 하나는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어머님에게 매일 기도를 하시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보시기에 아드님이 알려주는 기도법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아랫배에 십자가를 떠올리며 고요히 묵상을 하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랫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곳은 한의학에서 에너지 저장고로 여기는 하단전이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마음이 가는 곳에 에너지가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처방은 마음을 하단전에 둠으로써 에너지 창고를 채우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그냥 아랫배를 바라보면 생각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어머님에게 익숙한 대상인 십자가를 떠올리시라고 했습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십자가를 말이지요.

     

    다행히 어머님은 아드님을 무척 신뢰하셨다고 합니다. 틈날 때마다 열심히 아랫배에 십자가를 떠올리는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 처방은 생각의 전환입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하루 날을 잡아 어머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두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어머니는 3개월 뒤면 하늘나라에 가셔서 예수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평생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고 뵙고 싶어하셨잖아요. 이제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사람 같으면 3개월 뒤에 죽는다는 생각에 두려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머님은 믿음이 훌륭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드님의 얘기를 듣고는 두려움 대신 기쁜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 말씀처럼 살다가 가시면 예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이웃은 물론 세상 만물에 사랑을 전해보세요. 그저 어머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만나는 모든 존재에게 전해진다고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

     

    어머님은 이 말을 듣고 더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어머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친절하게 대하고 좋은 말을 건네고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옷, 그릇, 음식 등 생활용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고 그 모든 것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빌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혹 당신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지 모르는 분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님의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가슴에 만져지던 멍울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느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다 사라졌습니다.

     

    의사와 가족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 어머님 몸에서 자라던 암세포가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의사 선생님은 어머님께서 사랑으로 만물을 대하는 마음을 먹자 치유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10여 년을 건강하게 살다가 당신이 그리던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안팎에서 존경받는 이유

    추추 트레인으로 불리는 추신수 선수는 올해 1월 뜻 깊은 상을 받았습니다. 헤럴드 맥키니 굿가이 어워드인데요.

     

    텍사스 레인저스 출입기자들이 투표로 수상자를 뽑는데 ‘클럽하우스 리더’에게 이 상을 줍니다. 야구 실력은 물론 다른 선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말이지요.

     

    동양인 선수가 클럽하우스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안팎에서 존경받는 선수입니다. 

     

    추신수가 존경받는 이유는 뛰어난 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실함과 겸손함, 다른 선수들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이 추신수를 존경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최근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행이 알려져 다시 한번 미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그 사연을 공개한 사람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마이너리거 엘리 화이트 선수입니다. 그는 코로나19로 훈련이 중단 되자 주급이 끊겨 생활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끊기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일이 막막했습니다. 훈련을 계속해야 했지만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추신수 선수가 그를 조용히 불렀다고 합니다. 혹시 네가 기분나빠할까봐 걱정되기는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화이트는 실질적인 도움보다 존경하는 선수가 자신을 돕겠다고 하니까 그 말 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추신수 선수는 화이트를 포함해 마이너리그에 있는 190명의 선수들에게 1인당 1000달러(123만원)씩을 개인적으로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에게는 자신에게 지급되던 식대를 모두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야구와 가족에게 집중하라는 조언과 함께 말입니다. 화이트의 아내는 통장에 추신수가 보낸 식대를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화이트는 추신수가 캠프 때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고 전했습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에서 코치,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마사지사, 매니저 등의 복지를 위해 가장 앞서는 선수라는 말도 전했습니다. 

     

    화이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추, 고맙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당신이 돈 뿐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보내줘서 우리 가족들에 더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받은 마이너리그 선수들 몫까지 포함해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보인 마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텍사스 산하 싱글A구단인 다운 이스트우드 덕스의 웨이드 하웰 단장은 “추신수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얼마전 한국의 코로나19 극복을 돕기 위해 2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서거 소식을 듣고 잠을 못이뤘다는 얘기, 구단을 찾아가 검은색 리본을 달겠다고 했다가 메이저리그 규약 때문에 거부당했다는 얘기를 적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한국의 모든 국민들이 비통함에 잠겨 있는데 혼자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경기에 출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고도 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신수 선수는 화이트 선수를 비롯해 많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줬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끼친 선한 영향력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세상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올해 38세인 추신수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생활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그가 꾸려갈 제2의 인생이 더욱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