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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문파’의 탄생 비화

    아주 먼 옛날 부지국이라는 나라에 성인이 계셨습니다.

     

    많은 이들이 그 성인을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출가해서 수행자의 길에 들어선 이들도 있었지만 생업을 꾸려가면서 열심히 수행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성인은 제자들을 덕으로 품어 안았고 성품은 물론 생활환경까지 고려해 가르침을 폈습니다.

     

    어느 날 한 제자가 그를 찾아와 물었습니다.

     

    “스승님,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데 하루에 두 끼 정도면 충분하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아침 점심 저녁 중에 어느 끼니를 걸러야 하는지요?”

     

    성인은 그 제자가 식당을 운영하고 있어서 밤늦게 식당 문을 닫은 뒤 저녁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까지 먹는다면 전날 밤에 먹은 음식이 소화되기도 전에 또다시 음식을 먹게 되어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당연히 아침을 먹지 않아야 한다. 아침에 수행할 때 배가 부르면 정신이 흐트러지니 절대 아침을 먹지 않도록 해라. 이 가르침은 네게만 주는 것이니 다른 이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고 혼자서만 지키도록 하라.”

     

    어느 날 또 다른 제자가 스승을 찾아와서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스승님 수행자로서 살아가는 데 하루에 두 끼 정도면 충분하다 하셨는데 그렇다면 아침 점심 저녁 중에 어느 끼니를 걸러야 하는지요?”

     

    그 제자는 농부였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와 일찍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동트기도 전에 들에 나가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녁을 일찍 먹기 때문에 아침을 먹지 않는다면 농사일을 할 때 힘에 부쳐 건강을 해칠 수도 있었습니다.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을 했습니다.

     

    “반드시 아침을 먹어야 한다. 배가 든든해야 잡념이 들어오지 않는 법이다. 다만 아침을 먹기 전에 반드시 네 배를 채워주는 음식을 하늘처럼 섬기는 마음을 길러라. 들에 나가서 농사를 지을 때도 곡식을 하늘처럼 섬겨라. 대신 점심은 굶어라. 다만 참은 끼니가 아니니 가능하면 챙겨 먹어라. 이 가르침은 특별히 네게만 주는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 절대 얘기하지 말고 혼자서만 지키도록 하라.”

     

    두 제자는 스승이 자신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줬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수행도 상당한 경지에 이르러 두 제자를 따르는 이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스승이 세상을 떠난 뒤 아침을 먹지 않던 제자는 혼자서만 지키라고 한 스승의 말을 잊고 자신을 따르던 이들에게 아침을 절대로 먹지 못하게 했습니다. 자신을 굳게 믿고 따르는 제자 몇몇에게만 스승의 비밀한 가르침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아침을 꼭 챙겨 먹던 제자 또한 혼자서만 지키라고 했던 스승의 말을 잊고 자신을 따르던 이들에게 반드시 아침을 챙겨 먹으라고 했습니다. 신심이 깊은 이들이 이유를 물으면 스승으로부터 받은 특별한 가르침이라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두 제자가 전한 ‘특별한’ 가르침은 점점 퍼져 나가 아침을 먹지 않는 이들은 아침을 먹는 이들을 업신여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을 먹는 이들 또한 아침을 먹지 않는 이들을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자신들이 특별한 가르침을 계승하고 있다는 우월감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며 두 제자가 이끄는 ‘모임’은 점점 사이가 멀어지고 심지어 잘못된 법을 전하고 있다며 서로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제자마저 세상을 떠난 뒤 두 ‘모임’은 아예 담을 쌓고 교분조차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을 판단할 때 모두 아침을 먹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목불을 쪼개 땔감으로 쓴 쓰님

    

    단하천연(丹霞天然)은 당나라 때의 고승입니다. 저녁노을을 뜻하는 단하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선사이지요.

     

    단하 선사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일화가 <전등록>에 실려 있습니다. 단하소불, 다시 말하면 단하선사가 목불을 태웠다는 뜻입니다.

     

    단하 선사가 만행을 하며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추운 겨울날 낙양에 있는 한 절에서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객실이 너무 추워서 잠을 자기 힘들자 단하 선사는 대웅전에 올라가서 목불을 가져다 도끼로 쪼개 불을 지폈습니다.

     

    불이 활활 타오를 때 그 절을 지키던 스님이 깜짝 놀라 달려 나와 소리쳤습니다. “불상을 쪼개서 불을 피우다니 당신 미쳤소?

     

    단하 선사는 태연하게 막대기로 재를 뒤지면서 “목불을 다비(화장)해서 사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절의 스님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스님은 고함을 쳤습니다. “목불에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요?”

     

    그러자 단하 선사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사리 없는 부처라면 나무토막이지 어찌 부처이겠습니까?”

     

    단하 선사의 이런 기행은 부처님의 가르침 대신 불상을 모시는 행태,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 대로 살지 않는 세태에 각성의 죽비를 내리친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죽비소리는 오늘날 더 유용해 보이기도 합니다.

  • 17세기 어느 수녀의 기도

    인터넷에 올라 있는 아름다운 기도문이 있어 소개합니다.

     

    17세기에 어느 수녀님이 쓴 기도문으로만 알려져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가져야 할 태도를 곱씹어 보게 해줍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제가 늙어가고 있고

    언젠가는 늙어 버릴 것을

    저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모든 일에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문제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소서.

    사려 깊지만 시무룩하거나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그 사람을 쥐고 흔드는

    그런 사람은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 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제게도 결국에는 친구 몇 명은 남아 있어야 함을 주님께서는 아시지 않습니까.

     

    끝없이 이런저런 얘기를 떠드는 대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내 팔다리, 머리, 허리의 고통에 대해서는

    아예 입을 막아주소서.

    내 신체의 고통은 해마다 늘어나고

    그에 대해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나날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를 기꺼이 들어줄

    은혜까지야 바라지 않지만

    적어도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제 기억력을 좋게 해 주십사고 감히 청할 순 없사오나

    겸손함을 주시어

    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과 부딪칠 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들게 하소서.

    나도 가끔 틀릴 수 있다는 영광된 가르침을 주소서.

     

    적당히 착하게 해주소서.

    저는 성인까지 되고 싶진 않습니다. 어떤 성인들은 더불어 살기가 너무 어려우니까요……

    그렇더라도 심술궂은 늙은이는 그저 마귀의 자랑거리가 될 뿐입니다.

     

    제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선한 것을 보고

    뜻밖의 사람에게서 훌륭한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소서.

    그리고 그들에게 그것을 선뜻 말해 줄 수 있는 은총을 주소서.

     

    아멘.

     

    

  • 진표율사(4) - 물고기와 자라에게 법을 베풀다

    금강산 발연사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님이 명주(강릉) 앞바다를 가는데 물고기와 자라가 바다에서 나와 육지처럼 만들어 주어 스님은 그것을 밟고 바다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계법을 외워주었다. 고성군에 들어가 발연사를 세우고 점찰법회를 열고 7년간 머물러 가르침을 폈다.”

     

    강릉지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고 흉흉한 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강릉지방에 가서 바다에 가서 계법을 베풀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닷가에는 무수한 고기들이 저절로 죽어 나와 그 지방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표율사의 이 같은 법력이 알려지자 경덕왕이 계를 청했습니다. 왕과 외척은 물론 궁중의 중신들을 모두 불러놓고 보살계를 설했는데 이에 감읍한 왕이 쌀과 비단, 황금 등을 공양하였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전국 여러 사찰에 나눠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은 다시 백성들 속으로 떠났습니다.

     

    말년에 발연사에 지내다가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올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뼈가 모두 삭아 내릴 때까지 그대로 공양하고 흙으로 덮어 무덤으로 삼으니 무덤에서 푸른 소나무가 났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진표율사가 수행하던 변산을 찾아가 썼다는 글이 전하고 있습니다.

     

     

    大千猶可筒中藏

    무지개 같은 사다리 다리 밑이 길어서

     

    回身直下萬尋强

    몸을 돌려 곧장 내리니 만 길이 넘네

     

    至人已化今無迹

    도인은 이미 가고 자취마저 없는데

     

    古屋誰扶尙不疆

    옛집은 누가 붙들었기에 아직도 쓰러지지 않나

     

    丈六定從何處現

    일장육척의 불상은 어느 곳으로 좇아 나타날런지

     

    大千猶可筒中藏

    대천의 세계는 그 가운데 감추어져 있네

     

    完山吏隱忘機客

    완산의 벼슬아치 숨어들어 나그네임을 잊으니

     

    洗手來焚一辨香

    손씻고 들어와 한 조각 향을 사르네

    

    (끝)

  • 진표율사 (3) - 소에게 절을 받다

    진표율사가 가르침을 베푸는 금산사는 1백 년 전에 멸망하여 소외받는 백제인들의 귀의처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널리 퍼져나가는 미륵신앙이 자칫 현실도피나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실천 없이 미륵불의 내려오심만 기다리지 말라’고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죄를 참회하면서 선업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진표율사는 퇴락해가는 절을 다시 새롭게 고치고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고 속리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속리산에 거의 이를 무렵 소달구지를 탄 사람을 만났는데 소들이 갑자기 스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아니, 이 소들이 왜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웁니까? 스님께선 어디서 오십니까?”

     

    “나는 진표라는 사람으로 금산사에서 오는 길입니다. 저는 훌륭한 도량 터를 찾아 속리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들은 내가 미륵부처님한테서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도 불법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꿇어앉아 우는 것입니다.”

     

    “짐승도 이렇게 신심이 깊은데 사람인 제가 어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달구지에 탔던 사람이 낫으로 자기의 머리칼을 잘랐습니다. 진표율사는 그를 갸륵하게 여겨 다시 머리를 깎아주고 계를 받게 하였습니다.

     

    진표율사가 속리산으로 들어가니 길상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 있었습니다. 과연 성스러운 수행도량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여 그곳에다 표시를 해두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는 속리산에서 세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스님들은 자신들을 영심, 융종, 불타라 소개하며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진표율사는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스님은 자신들의 죄업이 깊다고 생각하고 뜨락에 있는 복숭아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지며 참회하였습니다.

     

    진표율사는 그제서야 스님들을 부르고 자기의 가르침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륵부처님한테서 받은 간자 두 개를 건넨 뒤에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너희는 이 간자들을 가지고 속리산으로 돌아가거라. 속리산에 길상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 표식이 있다. 거기에다 절을 세우고 미륵부처님의 교법을 널리 전하라.”

     

    세 스님은 속리산으로 돌아와서 진표율사가 당부한 대로 길상초가 우거진 곳에다 절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길상사(법주사)’라고 지었습니다.

  • 진표율사(1) - 개구리 울음 소리에 출가를 결심하다

    진표율사는 신라시대 고승으로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시조입니다. 처절한 수행을 통해 미륵보살의 수기(부처님의 예언)를 받은 이후 많은 이적과 법회를 통해 민중을 일깨우고 가르쳤습니다. 중국 <송고승전>에 전기가 실려 있고, <해동고승전>에 출가 당시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성덕왕 때(71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진표율사가 11살 때의 일입니다. 친구들과 놀던 소년은 논둑에서 개구리 30마리를 잡아 산 채로 버들가지에 꿰어놓고 물에 넣어둔 뒤 산으로 갔습니다.

     

    다음 해 봄날이었습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소년의 귀에 처연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와 가보니, 예전의 그 장소에서 개구리들이 꿰미에 묶인 그대로 살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산 생명을 해를 지나도록 괴롭혔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소년은 불도에 뜻을 두고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진표율사는 12살에 출가하여 금산사에서 숭제 스님께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숭제 스님이 혜안으로 보니 진표는 석가모니 부처 다음에 오실 미륵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수행자였습니다. 스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10년 넘게 수행을 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당나라 선도스님 밑에서 공부하고,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현신께 직접 5계를 받았다. 너도 미륵보살께 지성으로 참회하고 용맹 정진하여 직접 계를 받도록 하여라.”

    “얼마나 부지런히 수행해야 스님처럼 그렇게 계를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정성이 지극하다면 1년이라도 되는 일이다.”

     

    진표스님은 자신도 그렇게 부처님의 계를 받고 싶다는 간절한 서원을 했습니다. 스님은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다가 변산에 있는 불사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변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의상봉에 올라가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한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아슬아슬한 좁은 길이 있고 서너 평 될 만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앞이 탁 트여 마치 구름 속에 앉은 것 같고 신성한 기운이 어려 있는 이곳에서 진표율사는 자나 깨나 미륵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습니다.

     

    (계속)

    

  • 명상의 시작과 끝, 믿음

    명상은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에 따라 효과가 크게 달라집니다.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믿음입니다.

     

    현대인들에게 명상의 목적은 다양합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하나는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어디에서 사는 누구가 아닌 진짜 ‘나’ 말입니다.

    물론 명상을 통해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믿음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불교에서는 우리 안에 불성이, 부처의 씨앗이 있다고 하지요.

    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존재입니다.

    반야심경의 구절처럼 불생불멸, 부증불감, 불구 부정한 존재이지요.

    요가에서는 이를 진아라고 합니다.

    선도에서는 참나, 하늘사람, 진인, 금선 등으로 불렸구요.

    제가 아는 목사님 말씀으로는 기독교에서도 우리 안에 우리의 참모습이 있는데 이를 그리스도라 부른다고 합니다.

     

    종교나 수행 문파는 다르지만 우리 안에 ‘진짜 나’가 있다는 가르침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많은 성자들과 성현들이 이를 체험하고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불교에서는 불상을 금빛으로 단장합니다.

    금이 귀해서가 아니라 우리 안의 ‘참나’가 금빛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성화에도 성인들 주변에 황금빛 오라가 보입니다.

    요가에서는 이를 ‘황금의 몸’이라고 부릅니다.

     

    명상은 마음 근육을 단련시키는 훈련이라고 합니다.

    그 시작은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지구를 다녀간 성인들이 설마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셨겠습니까?

    매일 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면서, 아니면 틈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말씀해주세요.

     

    내 안에 ‘참나’가 있다. 나는 오늘 ‘참나’로 살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있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스도의 삶을 살 것이다.

    내 안에 부처가 있다. 내가 부처다. 나는 오늘부터 부처로 살 것이다.

     

    이런 믿음으로 살 때 우리는 거듭나게 됩니다.

     

    명상의 시작은 이런 확고한 믿음에서 비롯됩니다. 믿음이 확고하면 굳이 명상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에 따라 그저 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하셨습니다.

    

  • 행복해진다는 것

    

    우리는 자주 삶에 대해 고민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내가 이 세상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헤르만 헤세가 그런 질문에 시로 답을 했습니다.

     

     

    행복해진다는 것

     

    헤르만 헤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단 한 가지 의무는 행복하라는 것

    우리가 이 세상에 온 유일한 이유라네.

     

    온갖 의무, 온갖 도덕률, 온갖 계명에도

    우리는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런 것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반드시 행복해진다네

    우리가 행복하기만 하면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다른 말로 사랑을 하는 한 말일세.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남긴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헤겔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을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생명을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Being happy

     

    Hermann Hesse

     

    There is no other mission in the life

    There is only one mission : to be happy.

    It is our only reason for being in this world.

    With all our mission, all our morals, all our commandments,

    we seldom make one another happy, because these do not make us happy.

     

    A person’ll surely be happy

    If he or she do a good

    As long as we are happy

    and find the balance in the hearts,

    in other words, as long as we love …

     

    It is the only lesson that the world has left,

    thus taught Jesus; thus taught Buddha; thus taught Hegel.

     

    The most important one thing for all human is the ability to love his or her deepest site,

    he or her soul,

    he or her capacity for love.

     

    Eat barley gruel or delicious bread,

    Put a tattered or jewels,

    As long as the ability to love lives,

    The world rang pure harmony of spirits

    It will be a good world, a world going on in proper order.

    

  • 이집트의 은수자 마카리우스 (3)

    마카리우스 성인의 가르침은 영적인 삶의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가 남긴 가르침 가운데 50가지가 <마카리우스의 신령한 설교>라는 책으로 출판되어 있습니다. 일부를 소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으로 하여금 생명으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그로 하여금 울며 돌아와 회개하게 하려 하십니다. 만일 타락한 사람에게 은혜가 남아 있다면, 그것은 그로 하여금 보다 더 확실하게 이전의 잘못된 행실을 회개하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표적은 사람들의 주목을 힘껏 피하면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으려 하며, 비록 왕의 보물을 맡았을지라도 그것을 감추고,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내게 맡긴 것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분이 원하시면 언제라도 가져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영혼도 죄악의 깊은 바다와 정욕으로 어두워진 악한 세력들이 도사리고 있는 위험한 바다를 혼자서 무사히 지나갈 수 없습니다. 그는 가볍고 천상적인 날개가 달린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은 모든 악한 것을 지나고 통과하여 좁고 올바른 과정을 밟아 하늘의 안식의 항구, 즉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만이 주님의 뜻을 알고 계시며, 우리가 성령 안에서 완전케 되고 성령 자신도 우리 안에서 완전케 되어 우리가 죄의 모든 더러움과 허물이 없이 깨끗해진 후, 성령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순결한 신부처럼 깨끗하고 허물이 없이 그리스도께 인도할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영원히 안식하실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항상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기도 처소로 들어갈 때만 아니라 길을 갈 때나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에도 주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랑하고 하나님께 대해 성실한 애정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과 속사람에 관한 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있으며” 그곳에서 활동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육신의 눈이 맑으면 언제나 태양을 분명히 볼 수 있듯이, 완전히 정결케 된 마음의 눈은 항상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광채를 바라보며, 신성과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항상 성령과 함께 거하시듯 밤낮으로 주님과 함께 거합니다.

     

    (끝)

  • 이집트의 은수자 마카리우스 (2)

    마카리우스는 마을 사람이 용서를 빌기 위해 자신에게 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곧바로 도망쳐 마을을 떠나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막에서 마카리우스는 은수자로 자신을 온전히 버리는 삶을 이어갑니다. 악마는 이런 수도자를 넘어 뜨리려 온갖 술수를 부린다고 합니다.

     

    악마의 방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집니다.

     

    어느 날 마카리우스가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악마는 마카리우스가 지나갈 때 낫을 들고 달려들어 쓰러뜨렸습니다. 하지만 마카리우스는 불평도 대꾸도 않고 다시 일어나 가던 길을 갔다고 합니다.

     

    악마는 그 뒤 마카리우스에게 다음과 같이 털어놓았다고 합니다.

     

    “너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너를 도저히 넘어뜨릴 수 없으니 말이다. 네가 하는 일이라면 나도 다 할 수 있다. 금식하면 나도 먹지 않고, 잠을 자지 않으면 나도 자지 않는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네가 날 앞서는 게 있다. 그것 때문에 내가 널 어찌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마카리우스는 악마에게 그게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악마는 "너는 스스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내가 너를 당할 수 없게 만드는 게 바로 겸손”이라고 답했습니다.

     

    실제로 마카리우스는 가르침을 받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이들에게 겸손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수련은 우리 마음의 모든 영역을 성령으로 온전히 채워가는 일인데 그를 위해서는 겸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비우는 겸손은 교만에서 벗어나게 해줘 우리 마음에서 성령의 영토를 넓히게 해준다고 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한때 그가 너무 수척하다고 뒤에서 수근대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마카리우스는 "가시나무를 불태우느라 이리저리 쓰이는 지팡이는 늘 불에 그을립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 심령을 연단할 때 경외심은 사람의 뼈까지도 수척하게 만듭니다. 그건 큰 영광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카리우스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지만 몇 가지 일화가 전해져 옵니다.

     

    하루는 마카리우스가 아토스의 성인으로 불리는 안토니오가 사는 동굴로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니 "누구세요?"라는 말만 들리고 기척이 없었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을 기다리자 문이 열리고 안토니오가 끈을 만드는 재료를 들고 나왔습니다. 일을 돕겠다고 하자 안토니오는 “마음대로 하시구려”라고 승낙합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말없이 끈을 엮어 문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저 일과 하나가 되고 두 사람이 하나가 된 듯이 시간을 잊고 일을 했습니다.

     

    다음 날 안토니오 성인이 동굴에서 내려가 보니 끈이 큰 무더기로 쌓여 있었습니다. 안토니오는 몹시 감탄하여 두 손에 입을 맞추며 "그 훌륭한 덕행이 바로 이 손에서 나온 것이군요"라고 칭송했습니다

     

    어느 날 도적이 마카리우스의 집에서 물건을 훔치고 있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순례자인 척하고 도둑을 도와서 수레에 모든 것을 실어 주었습니다 배웅해 주면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니 여호와의 이름만을 찬미하리이다"하고 말하며 기쁘게 보내주었습니다

     

    마카리우스는 홀로 동굴에서 기도하다가 앉아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저 온 곳으로 돌아갈 때에는 밝아진 영혼만을 가지고 연처럼 홀연히 떠나는 길입니다 마카리우스 성인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