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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극찬한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세계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3)가 이번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54)의 소설을 읽고 "잘 쓰인 작품"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19일,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난 후의 소감을 인터뷰한 동영상이 'KBS 다큐' 공식 유튜브 채널에 공개됐습니다.

     

    해당 영상에서 그는 한국은 현재 영화, 게임, 음악 등 모든 예술 분야에서 선두에 서 있다고 느껴진다고 운을 뗐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점은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해 "정말 잘 쓰인 작품"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은 끔직한 비극을 긴 호흡으로 다뤘다는 점이다"라면서, "1인칭으로 진행되어 주인공에게 완벽하게 몰입해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며 호평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제주 4.3 사건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고, 희생된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읽으며 한국인들의 용기가 가장 와 닿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은 어떤 비극, 전쟁이 찾아와도 굴하지 않고 맞서면서 열의를 갖고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고 하면서, "한국인의 굳센 의지를 알 수 있었다. (한국인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성공의 역사로 바꾸고,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라고 말했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호평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소설가인 주인공이 친구의 부탁으로 제주도의 빈 집에 갔다가,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였던 친구의 어머니를 꿈에서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꿈에서의 만남을 통해 4.3 사건에 대해 대해 되짚어 보는 이 책은, 4.3 사건 생존자의 길고 고요한 투쟁의 이야기가 섬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프랑스의 일간지인 르몽드지(Le Monde)는 이 책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역사적인 맥락을 놓지지 않고 경이로운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라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 50년 전 외상으로 먹은 홍합탕 한 그릇 값이 되돌아오다

    최근 신촌지구대는 미국 뉴욕에 사는 한 70대 노인으로부터 2000달러(약 226만 원) 수표와 함께 ‘존경하는 신촌파출소 소장님께’로 시작되는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사연을 보니, 미국에 사는 장 모 씨는 1970년대 중반 강원도 농촌 마을에서 서울 신촌으로 유학을 와서 생활하였는데, 어느 겨울밤 아르바이트를 하고 귀가하던 중에 신촌시장 골목을 지나게 됩니다. 마침 골목 시장에서 구수한 냄새를 풍기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홍합탕을 팔고 있었는데, 배고픔과 추위에 못 이겨 홍합탕 파는 아주머니에게 “지금 돈이 없는데 한 그릇만 주시면 내일 아침 돈을 가져다드리겠다.”라고 간청하였다고 합니다. 아주머니는 선뜻 뜨끈한 홍합탕 한 그릇을 내줬고, 장 모 씨는 허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돈이 없던 그는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 후 장 모 씨는 군에 입대하게 됐고 전역 후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5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장 모 씨는 홍합탕 한 그릇의 빚을 마음 한구석에 항상 담고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편지에서 “이제 삶을 돌아보면서 너무 늦었지만, 선행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에 돈과 함께 이런 편지를 보낸다”라고 하면서 “지역 내에서 가장 어려운 분께 따뜻한 식사 한 끼라도 제공해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라고 부탁했습니다.

     

    돈과 편지를 받은 신촌지구대는 2000달러를 환전하여 신촌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에 전달하였습니다. 이 협의체는 지역 내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 장애인 1인 가구 등 어려운 이웃을 돕는 서대문구 산하 단체입니다.

     

    황영식 신촌지구대장은 “기부자의 의사에 따라 가장 어려운 분들에게 연말에 따듯한 음식을 대접해 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어려운 시기에 이런 기부문화가 더욱 퍼져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 추수감사절 만찬 44년, 노숙인의 ‘시장’ 마티 로저스

    미국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마티 로저스는 무려 44년 동안 노인들과 노숙자들을 위해 만찬을 베풀었습니다.

     

    로저스는 남부 브롱크스에서만 66년째 살고 있는데, 브롱크스 지역사회에서는 그를 ‘마티 시장’ 그리고 ‘성 마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서 로저스는 그가 다니는 ‘순결한 수태 교회’에서 한 번도 빠짐없이 44번째 추수감사절 만찬을 준비해왔습니다.

     

    처음 만찬은 노인들을 위해서만 준비되었지만 곧이어 노숙을 경험하고 있는 분들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들이 문에 들어서면 환영의 인사와 함께 이름표를 받습니다. 그러면 저는 호텔지배인처럼 ‘음식을 드시겠어요?’ ‘여러분들 모두 다 괜찮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그들이 파이 조각들을 먹으러 모일 때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더는 배불러 못 먹겠다.’”

     

    이런 만찬의 전통은 작년 팬데믹 상황에서도 계속되었습니다. 특별 만찬의 ‘테이크아웃’ 버전으로요. 올해는 ‘테이크아웃’과 ‘배달’ 두 가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로저스의 두 아이인 조와 마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만찬과 지역사회의 봉사를 해왔습니다.

     

    “내가 아마도 5살 무렵이었을 거예요. 철자법도 몰랐을 때니까요. 그런데 웨이터가 되어 사람들의 테이블을 다니며 그들이 주문한 것을 그렸어요.”라고 조 로저스는 회상했습니다.

     

    “작은 칠면조를 그렸고... 혹은 크랜베리 소스를 의미하는 상징기호를 창조해냈습니다.”

     

    그는 “나에게 추수감사절은 항상 250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큰 명절이었어요. 항상 그래왔죠.”라고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그의 아버지가 남매에게 공동체 봉사의 정신을 심어줬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통해 참된 기부의 정신과 공동체의 중요성을 배웠으며 사람들을 존엄과 존경으로 대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덧붙였습니다.

  • 우리명산 답산기-서울의 앞산 관악산의 흉기와 요풍

    서울의 조산(朝山)인 관악산은 매우 흉하다. 또 너무 높다. 관악산의  높이는 해발 632미터다. 주산인 북악산보다 290미터쯤 높다. 게다가 거리가 가까워 더욱 높게 보인다. 아주 위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도읍지의 조산이 이렇게 위압적인 자세로 앞에 우뚝 서 있으니 외국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관악산도 북한산처럼 화성(火星)의 산이다. 관악산 연봉들은 모두 끝이 뾰족뾰족하다. 전형적인 화성이다.

     

    그런데 관악산 연봉들은 하나같이 쓰러질 듯 기울어 있다. 뾰족뾰족 날카로운 봉우리들이 옆으로 기우뚱하게 비뚤어진 형상이 흡사 톱날처럼 보인다. 이 모양이 아주 흉하다. 관악산 자체로는 그리 흉한 산이 아닌데, 한양땅인 서울 중심가에서 볼 때 그렇게 안 좋은 것이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화성의 산이 흉한 모습이면 전쟁 · 살육·전염병·화재·가뭄 등의 화를 불러온다. 또 조산은 외국에 해당된다.

    그래서 우리 나라는 외적의 침략으로 인해 많은 고초를 당했다. 왜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것도 이 관악산에서 뻗쳐오는 흉기 때문이었다.

     

    삼한산림비기〉에 이런 말이 나온다.

     

    관악산이 남쪽에서 엿보니, (이씨왕조가) 일어날 때는 남쪽 도둑으로 인해 왕업(王業)을 이루게 된다. 그 중간에는 남쪽 도둑이 크게 쳐들어와 백성이 도탄에 빠진다.

     

    이 예언대로 이성계는 남쪽 도둑인 왜구를 물리친 공으로 인망을 얻어 새 왕조를 세웠다. 또 왜적이 침략하여 우리 강토를 짓밟고 우리 겨레를 도탄에 빠뜨렸다.

     

    그럼 무학대사의 주장대로 인왕산 아래에다 궁궐을 세웠다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무학대사가 궁궐터로 잡은 데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필자의 짐작으로는 거기가 세종문화회관 뒤쪽이 아닌가 싶다. 세종문화회관 뒤쪽으로 몇백 미터쯤 가면 작고 아담한 산봉우리가 나온다. 이 산은 인왕산의 한 지봉(支峯)인데 생김새가 퍽 아름답고 단아하다. 이 산봉우리 아래에다 궁궐을 지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랬다면 주산이 단정하게 잘생겨서 밝고 어진 임금이 많이 나왔으리라. 백성들도 훨씬 평화롭게 살았을 것이다.

     

    이 경우, 한양의 청룡(왼쪽 산줄기)은 북악산이 되고, 백호(오른쪽 산줄기)는 남산이 된다. 또 낙산이 안산 (바로 앞산)이 되고, 조산(朝山; 앞에서 멀리 떨어진 산)은 불암산이다.

     

    북악산은 남산보다 80미터쯤 더 높다. 청룡이 백호보다 튼튼하고 높으니 장자세습사회에 잘 어울린다. 인왕산 아래에다 궁궐을 지었더라면 장자가 꺾이는 일이 드물었을 것이다. 왕권이 안정되고, 왕위를 놓고 골육다툼을 벌이지도 않았으리라.

     

    또 남산은 북악산보다 약간 낮지만, 그래도 상당히 튼튼한 편이다. 높이만 좀 낮을 뿐 크기는 비슷하다. 그래서 권력이나 부가 훨씬 고르게 분배됐을 것이다. 너무 호사스럽게 사는 자도 너무 비참하게 사는 이도 없었으리라.

     

    낙산은 한양땅을 둘러싼 산들 중에서 가장 낮은 산이다. 이렇게 낮은 것이 청룡 역할을 할 때는 문제가 되지만, 안산 역할을 할 때는 오히려 더 좋다. 높이가 아주 적당하다. 게다가 모양도 참 깨끗하다.

     

    낙산의 형상은 옥대(玉帶)다. 옥대는 임금의 허리띠다. 궁궐의 안산이 옥대니 금상첨화다.

     

    낙산은 생김새가 단아하고 온화해서, 인왕산 밑에 궁궐을 세웠더라면, 마음이 어질고 맑은 신하들이 많이 나와 임금을 도왔을 것이다. 그이들이 좋은 정치를 하여 백성들이 한결 평안하게 지냈으리라. 외세의 압박도 당당히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산인 불암산은 더욱 아름답다. 불암산의 높이는 해발 508미터다. 관악산보다 좀 낮다. 게다가 관악산보다 멀리 떨어져 있어 위압감을 전혀 안 준다.

     

    불암산의 형국은 송갓 (소나무 껍질로 만든 갓)을 쓴 스님의 형상이라 한다. 생김새가 후덕하며 의연하다. 도가 높은 스님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요히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도읍지의 조산이 이렇게 아름다우면 외국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롭게 지낸다. 외국의 군대가 아니라, 훌륭한 도인들이 자주 찾아와 친선을 도모하게 된다. 그래서 삼한산림비기〉는, 궁궐을 인왕산 아래에다 세우고 동향으로 앉히라 했던 것이다.

     

    경복궁터가 지닌 또 한 가지 큰 흠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가 움푹 들어간 것이다. 풍수학에선 산봉우리 사이가 이렇게 움푹 들어간 것을 요풍(回風) 이라 부른다. 요풍이 있으면 그곳을 통해서 흉한 기운이 뻗쳐온다.

     

    요풍의 흉기는 방향에 따라 다른 작용을 한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의 요풍은 경복궁에서 서북방 (西北方)인 술건방 (戌乾方)에 자리했다.

     

    술방 (戌方; 서북서)에 요풍이 있으면 흉악한 도적과 악질(惡疾)로 인한 재난이 침범한다. 광인과 흉포한 사람도 배출한다.

     

    한 나라로 볼 때 흉악한 도적은 외적이다. 〈삼한산림비기〉는, 서북쪽이 허하여 북쪽 오랑캐가 두 번 쳐들어 오리라 예언했다. 우리 나라를두 번 침략한 북쪽 오랑캐는 여진족이다.

     

    건방(乾方)에 요풍이 있으면 남자들이 단명하게 된다. 조선조의 왕들이 단명한 이유 중 하나가 이 요풍이다.

     

    인왕산과 남산 사이에도 요풍이 있다. 인왕산 줄기는 덕수궁과 남대문일대에서 납작 엎드렸다가 남산에 이르러 다시 우뚝 치솟았다. 그 바람에 요풍이 생겼는데 이 요풍은 남방인 병오정방(丙午丁方)에 있다. 남방의 요풍은 화재와 전쟁의 화를 불러온다.

     

    또 요풍 때문에 백호줄기가 중간에 끊긴 형상이 되어 더욱 안 좋다.청룡·백호가 중간에 끊기면 어려서 요사(夭死)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백호가 그렇게 되면 부부간에 불화가 잦고, 이혼하는 사람도 많이생긴다..

     

    옛날에는 이곳에 성곽이 있어서 결함을 보완해 주었었다. 그런데 성이없어지는 바람에 더욱 흉하게 되었다.(계속)

  • 구도소설 성자들의 시대 4-백두대간

    유필섭은 개심사에서 부목지기로 일했다. 그도 벽운 선생의 제자다. 지난 가을엔 계룡산에서 보름동안 석주네와 함께 지냈다. 그는 6년 전에 처음 벽운 선생과 인연을 맺었다. 벽운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직접 가르침을 받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두 달 만에 만난 혜원의 얼굴은 더욱 좋아 보였다. 티 하나 없이 희고 깨끗했다. 옥을 다음어 놓은 것처럼 맑고 투명했다. 커다란 두 눈에서는 아침 이슬같이  서글서글한 광채가 뿜어 나왔다. 또, 한없이 그윽하고 온화한 미소가 잔잔하게 어려 있었다.

    '수행을 참 잘했구나!'

    석주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찬탄했다. 혜원에겐서 풍겨 나오는 맑은 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필섭은 석주보다 일곱 살이나 위인데도 오히려 더 젊어 보였다. 40대 중반에 접어들었으나, 30대 초반 같았다. 체격이 다부져 바위처럼 단단해 보였고, 문에서는 번쩍이는 광채가 쏟아져 나았다. 네모난 얼굴, 단정한 입매, 짙은 눈썹이 필섭의 인상을 더욱 강렬하게 만들었다.

     

    벽운 선생은 여기저기 너덜너덜 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다. 기다란 얼굴은 구릿빛으로 그을렸고, 머리는 학처럼 눈부시게 희었다. 벽운 선생의 욤모와 옷차림은 수시로 변했다. 이날처럼 팔십이 넘은 나이에 맞게 백발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느때는 4,50대 장년의 모습으로 나타나 석주를 놀라게 만들었다. 도반들은 석주에게, 스승께선 오래 전에 나이를 초월하셨으며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경지에 오르셨다고 했다. 벽운 선생의 나이는 여든둘이다.

     

    네 사람은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백령자는 초막 뒤에 우뚝 선 소나무 가지에 앉아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겼다. 서쪽 하늘은 바다와 맞닿은 곳에서부터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숯불처럼 빨개진 저녁해가 천천히 기울어 갔다. 바다도 하늘도 물감이 번져 가듯 붉게 물들었다.

     

    그때, 노을을 헤치고 서편 하늘에 학한마리가 나타났다. 이 학은 동쪽을 향해 부지런히 날개를 퍼덕였다. 해가 막 바다에 잠길 무렵, 이 학이 운학산 상공에 이르렀다. 백령자가 그를 향해 길게 울었다. 이 학도 긴 울음으로 응답하고는 백령자가 있는 소나무 가지 위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백령자가 이제야 저희 무리 중에서 도반을 만났구나."

     벽운 선생니 초막안에서 두 학의 울음 소리를 듣고 말했다. 스승의 말씀에 모두들 신기해 하는 표정을 지었다.

     " 궁금하지 않느냐, 가서들 보고 오너라."

     

    세 사람은 스승을 남겨 두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백령자와 낯선 학은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낯선 학이 잠시 뒤에 머리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또 날개를 여러 모양으로 퍼덕였다. 낯선학의 몸짓이 끝나자, 이번엔 백령자가 머릴 움직이고 날개를 퍼덕였다. 둘이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양이었다.

    "도담을 나누는가 봐요."

    혜원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럴 거야. 자기 무리 중에서 도반을 얻었으니 백령자가 참 기쁘겠구먼."

    유필섭이 흐뭇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새도 성현을 찾는데……."

     

    석주는 하물며 사람들이 성현의 가르침을 외면한다고 말하려다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사람이라 해서 학을 무시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던 것이다. 석주는 찬탄을 금치 못하며 경이로운 눈빛으로 두 학을 지켜보았다.

     

    붉은 해가 바다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노을 속에서 마자막 잔광이 부옇게 빛났다. 그 잔광마저 스러지고 어둠이 조금씩 밀려오기 시작했다. 낯선 학과 백령자는 이야기를 끝냈는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낯선 학이 잠자리에 든 모양이었다. 잠시후, 백령자가 푸드득 날아와 유필섭의 어깨 위에 앉았다.

     

    세 사람은 백령자와 함께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온 백령자는 벽운 선생 앞에 다소곳이 앉았다. 낯선 학에 관하여 뭘 아뢰려는 모양이었다. "알고 있다. 나도 매우 기쁘다. 앞으로 백령자 네가 새 도반을 잘 인도하거라." 벽운 선생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니, 백령자는 머리를 몇 번 흔들어 대답했다.

     

    해가 지자 방안은 금방 어두워졌다. 석주는 초에다 불을 붙이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벽운 선생한테서 환한 빛이 뿜어 나왔다. 방안이 촛불을 켤때보다 훨씬 더 밝아졌다. 석주는 전에도 벽운 선생이 방광하는 모습을 보았던지라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번째는 석주가 약을 먹고 의식을 잃었다가 다시 눈을 떴을 때였다. 두 번째는 계룡산에서 함께 지내던 도반들과 해어지기 전날 밤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 아주 다른 느낌을 받았다. 벽운 선생힌테서 번져 나오는 빛의 알갱이들이 자신의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것 같았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그 빛에 쉽싸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벽운 선생이 그윽한 눈길로 석주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석주야, 그동안 마음을 아주 잘 닦았구나. 네 가슴에 맺혔던 것들이 모두 풀렸다. 이제 새로운 곰부를 시작해야겠다."

    석주는 기뻤다. 자신이 스승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는게 무엇보다 기뻤다. 또 '새로운 공부'라는 말씀에 가슴이 설렜다.`성자들의 세계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간다 생각하니 날아갈 듯 좋았다. 필섭과 혜원이도 석주와 마찬가지로 기뻤다. 석주가 그 참담한 고통을 이겨낸 것이 참으로 장해 보였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에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야기를 나누다  먼저 자라 이르고서 밖으로 나갔다. 백령자가 벽운 선생을 따라 나섰다. 벽운 선생과 백령자는 백학봉 정상으로 향했다.

     

    벽운 선생의 발걸음은 나는 것처럼 가벼웠다. 경신술을 써서 미끄러지듯 위로 올라갔다.백령자는 나무들 바로 위에  서 벽운 선생한테 딸려 가듯 그의 뒤를 좇았다. 백령자와 벽운 선생은 순식간에 정상으로 올라갔다. 정상에 올라가서 보니 동녘 하늘에 달이 떠 있었다. 교교한 달빛이 눈덮인 산봉우리들 위로 쏟아져 내렸다.

     

    벽운 선생은 동쪽을 향해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바람 한 줄기가 휘이 지나갔다. 벽운 선생의 긴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백령자는 벽운 선생과 두어 걸음 사이를 두고 자릴 잡았다. 백령자의 눈길도 벽운 선생처럼 동쪽으로 향했다. 둘은 수백  리 떨어진  백두대간 연봉들을 바라보았다.

    벽운 선생은 심안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흐르는 정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벽운 선생의 심안은 잠시 후 백두대간이 처음 출발한 백두산으로 옮겨 갔다. 다시 먼 길을 더듬어 히말라야에 이르렀다.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히말라야, 그 히말라야에 매우 성스러운 기운이 거대하게 용솟음치고 있었다. 이 기운은 우주의 중심인 하늘과 맞닿아 있는 기운, 성자들을 낳고 기르는 기운이었다.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정기는 산맥을 따라 사방으로 흘러갔다. 히말라야에서 뻗어 나간 여러 산맥 중에서 가장 힘차고 수려한 산맥은 동북쪽으로 뻗은 맥이었다. 그 산맥의 끝자락에 백두산이 우뚝 솟아 있었다. 백두산으로 뻗은 히말라야의 동북 지맥은 그 어느 지맥보다도 헌걸차고 수려했다. 그런 만큼 여기에 매우 웅혼한 성자들의 기상이 흘렀다.

    성스러운 정기가 거대한 강물처럼 백두산으로 도도히 흘러와 다시 사방으로 뻗쳐 갔다. 백두산에서 갈라져 나간  산맥들은 모두 이 아름다운 정기를 품고 의연하게 솟아 있었다.

     

    백두산의 여러 지맥 중에서 가장 헌걸차고 수려한 맥이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크게 굽이치며 뻗어 있다. 또, 곳곳에다 빼어난 명산들을 빚어 올렸다. 그리고 다시 백두대간에서 수많은 산맥들이 갈라져 나와 한반도 곳곳으로 뻗어 갔다. 이 백두대간의 지맥들 역시 방방곡곡에 훌륭한 명산들을 솟아 올렸다.

     

    히말라야의 성스러운 정기는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의 지맥들을 따라 한반도 곳곳에 흩어진 명산들 속으로 흘러들었다. 운학산에서 그 기운이 폭포처럼 밀려 왔다. 벽운 선생은 운학산으로 도도히 흘러오는 성스러운 정기를 바라보며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백령자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때가 이르렀구나."

    백령자는 백운 선생이 말하는 뜻을 알아듣고 머리를 끄덕였다.

     

    이날은 갑자년(甲子年; 1984) 음력 정월 열하루.입춘날로부터 이레가 지났다. 계해년(1983) 가을 이후, 한반도의 지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훌륭한 수도인과 성자를 배출할 성스러운 기운이 크게 피어날 조짐을 보였다. 그 아름다운 기운은 갑자기 입춘날이 지나면서 뭉클뭉클 피어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날은 더 한층 새로워졌다.

     

    벽운 선생, 그리고 그의 스승들과 도반들은 오래 전부터 이때를 기다려 왔다. 성스러운 기운이 활짝 피어나면 숱한 성자들이 배출된다. 그리하여 뭇 사람들이 성스럽게 살아가는 성자들의 시대가 열린다. 그 시대는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태평성대다. 그 시대엔 사람뿐 아니라. 뭇 중생이 다 함께 대평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

     

    성자들의 시대가 열리는 대사건을 옛 사람들은 후천개벽이라 일렀다. 후천개벽. 벽운 선생의 스승들과 도반들은 지금 이날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든 중생들이 성자가 되어 무한한 기쁨을 누리며 사는 시대, 찬란한 광명시대로 가는 길을 열고 있는 사람들이다.

     

    벽운 선생은 심안으로 사부 운허 도인, 사백(사부의 사형) 석파도인, 사조(사부의 스승)운정도인, 그리고 여러 도형과 도제들을 떠올렸다. 그들은 각각 인도와 중국, 우리나라의 여러 명산에서 벽운선생처럼 활짝 피어오르기 시작한 성스러운 지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사조 운정 도인은 히말라야에 계셨다. 세계 곳곳에서 온 대성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 선계의 선인들 모습도 많이 보였다. 운정 도인 역시 선계와 속계를 자우로이 넘나드는 선인이었다.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는 눈부시게 찬란한 빛을 뿜었다. 그 빛이 온 세상으로 퍼져 갔다. 땅속, 바닷속까지 히말라야가 뿜어낸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석파도인도 선계에서 내려왔다. 석파 도인은 중국의 곤륜산에 계셨다. 거기에더 많은 선인과 성자들이 모여 있었다. 히말라야에 이어 곤륜산에서도 휘황한 빛이 장엄하게 뿜어 나왔다.

     

    사부 운허 도인은 백두산에 계셨다. 백두산 천지 위에 수십명의 선인과 성자들이 모여 있었다. 백두산에서도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왔다.

     

    벽운 선생의 도반들은 우리 나라의 여러 명산에 흩어져 있었다. 묘향산, 금강산, 구월산, 오대산, 태백산, 속리산, 지리산, 가야산, 계룡산, 두륜산, 소백산……, 방방곡곡의 명산마다 도반들이 한 사람씩 있었다. 그 명산들도 찬란한 빛을 뿜었다. 사방의 명산에서 뿜어 나오는 빛이 서로 어우러져 한반도 전체가 광명 세계로 변했다.

     

    우리 나라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세계 도처에 솟아오르 명산들이 모두 엄청난 빛을 뿜었고, 온 세계가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지상에 깃들여 있던 성스러운 기운이 난만하게 활짝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부터 벽운 선생과 도반들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의 뒤를 좇아올 수도인들을 더욱 많이 길러내는 것이다. 이들은 몇 년 전부터 그 일을 위해 인연이 닿는 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이미 이 들의 가르침을 받기 시작한 제자들도 꽤 되었다.

     

    벽운 선생은 성혜원, 이석주, 유필섭, 홍명천, 지현 스님 등을 제자로 거두었다. 앞으로 이들 말고 더 많은 제자를 만나게 될 터였다. 벽운 선생의 심안에 새로 인연을 맺게 될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스쳐 갔다.

     

    이때, 백령자도 벽운 선생처럼 자기의 도반이 될 다른 학들을 생각했다. 많은 학들이 자기를 따라 도에 입문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백령자의 자슴에 지극한 기쁨이 샘물처럼 솟구쳤다. 이날은 처음으로 자신의 동족인 청령자와 도반이 되었으니 더욱 기뻤다.

     

    백령자가 벽운 선생을 처음 만난 지도 벌써 23년이 되었다. 당시 백령자의 나이는 세 살이었다. 벽운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을 시작한 지는 22년째다.

     

    백령자한테 벽운 선생은 생명의 은인이다. 23년 전 여름, 백령자는 독극물에 중독되어 죽은 물고기를 먹고 사경을 헤맸었다. 그때 벽운 선생이 나타나 백령자를 구해 주었다. 그 일이 있을 때까지 백령자는 여느 학들처럼 사람을 두려워했었다. 사람들이 자기네를 함부로 죽이거나 괴롭히지는 않았으나 가까이하기가 어려웠다. 사람들한테서 뿜어 나오는 살기가 무서웠다. 그래서 사람들이 접근하면 얼른 멀리 피했다.

     

    한데 벽운 선생에게서는 이 살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알에서 깨어나 엄마의 품에 안겼을 때 느꼈던 온화하고 아늑한 기운이 물씬물씬 느껴졌다. 그 평화로운 기운 때문에 백령자는 건강을 회복한 뒤에도 벽운 선생과 함께 지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자 다른 학들은 추위를 패해 모두 멀리 남쪽으로 날아갔다. 백령자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벽운 선생 곁을 떠나기가 싫었던 것이다.

     

    가을이 깊어져 나뭇잎이 지고 서리가 내렸지만, 백령자는 벽운 선생 곁에서만 맴돌았다. 어찌 된 영문인지 추위도 전혀 안탔다. 벽운 선생한테서 뿜어 나오는 진기가 늘 백령자를 감싸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 무렵, 백령자와 벽운 선생은 마음으로 의사소통을 완전히 할 수 있게 되었다. 서로의 의사를 마음으로 헤아려 알았다. 둘은 많은 얘기를 나눴다. 벽운 선생과 대화를 나누면서 백령자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때부터 백령자는 본능에 따라 사는 여느 학이 아니었다. 백령자의 정신과 마음은 자꾸 새로운 세계를 향해 열려갔다. (계속)

  • 우리명산 답산기-북한산3 산 기운과 우리 역사

    ● 한양 천도와 북한산의 기운

     

    이성계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한양땅을 둘러보았다. 북한산의 한 지봉(支峯)인 북악산 아래 자리잡은 한양땅은 도읍터가 될 만한 곳이었다. 북한산, 북악산의 기상은 매우 웅장했다. 만백성을 다스리는 왕자(王者)의 위용을 연상케 했다. 이성계는 곧 한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렇게 해서 우여곡절 끝에 한양땅이 조선조의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한양땅의 지기가 우리 겨레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우리 겨레가 겪은 불행과 행복, 고통과 평안, 슬픔과 기쁨 대부분이 한양땅의 지기에서 비롯되었다.

     

    그럼 한양땅에 서린 지기는 어떤 것일까.

     

    한양땅의 지기를 논할 때는 가장 먼저 북한산에 관해서 얘기해야 한다. 북한산은 한양땅의 주산(主山)인 북악산의 모산(母山)이기 때문이다.

     

    북한산의 주맥(主脈)은 정상인 인수봉과 백운대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뻗었다. 이 주맥을 따라 크고 작은 여러 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치솟아올랐는데, 대부분 바위봉우리다. 그 바위빛이 백설처럼 새하얘서, 푸르른 하늘 초록빛 나무들과 선명히 대조를 이룬다. 이 모습이 참 깨끗하고아름답다.

     

    북한산 연봉들은 거의가 다 끝이 뾰족하고 몸통이 날렵하다. 붓이나불꽃처럼 생긴 봉우리가 많다. 인수봉 하나만이 중후하게 생겼는데, 인수봉의 형상은 선비나 도인이 쓰는 굴건 (모자)이다.

    남산 쪽에서 북한산 연봉들을 바라보면 완연한 불꽃의 형상을 하고 있다. 흡사 커다란 불길이 너울너울 타오르는 모습이다. 북한산처럼 이렇게 불꽃같이 생긴 산을 풍수학에선 화성(火星)이라 부른다.

     

    화성의 산이 맑고 수려하게 생기면 학문, 문필, 예능의 기운이 크게감돈다. 이 기운으로 훌륭한 관리, 학자, 문인, 예술가들을 배출한다.총명하고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이 나오게 된다.

     

    한데 화성의 산이 흉하게 생기면 전쟁, 투쟁, 화재, 전염병 등의 악기(惡氣)가 서린다. 이 악기가 흉악한 사람들을 배출한다. 또 갖가지 흉한화를 불러온다.

     

    그럼 어떻게 생긴 산이 수려하고, 어떤 모양이 흉한 것일까. 풍수학에서는 산봉우리가 반듯하고 단정해야 수려하다고 본다. 모양이 비뚤어지면 흉하게 여긴다. 깨진 데가 있거나, 우악스럽게 생겼어도 흉하게 본다.

     

    북한산 연봉 중에서 제일 수려하게 생긴 봉우리는 인수봉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수봉은 매우 중후하고 온화하며 후덕한 자태를 지녔다.반듯하게 우뚝 서 있는 형상이 성현군자나 대도인의 풍모를 연상하게 한다.

     

    인수봉은 그 색깔도 새하얗다. 마치 하얀 옥(玉)으로 다듬어 놓은 조각품 같다. 이렇게 빛깔이 곱고 깨끗하며 생김새가 단아하니, 인수봉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가득 넘친다.

     

    인수봉의 형상은 타원형에 가깝다. 타원형의 봉우리를 풍수학에선 목성(木星)이라 부른다. 곧게 자란 나무처럼 훤칠하게 생겼기 때문이다.목성의 산봉우리가 수려하면, 그 기상으로 현군(賢君)과 성현(聖賢),훌륭한 학자와 도인 등이 나온다. 선인 (仙人)도 배출한다. 도읍지에 이런 봉우리가 있으면, 현인군자와 빼어난 수도인들이 많이 나와 그들이 나라의 풍속을 아름답게 가꾼다.

     

    한데 인수봉은 원래의 한양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그 아름다운 기운을 크게 떨치지 못했다. 참 아쉬운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더 자세히 얘기하겠다.

     

    북한산 연봉(連峯) 중에서 인수봉 다음으로 잘생긴 봉우리는 백운대다. 백운대는 모양이 반듯하며, 끝이 뾰족한 삼각형의 봉우리다.

     

    백운대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봉우리를 풍수학에선 자기성 (紫氣星) 이라 부르며 매우 귀하게 여긴다. 자기성에도 군자의 기상, 대학자, 문필가의 기상이 감돈다. 이 기상으로 현군과 고인달사(高人達士), 깨끗한 선비들을 배출하게 된다.

     

    그런데 백운대 역시 인수봉과 마찬가지로 원래의 한양땅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래서 백운대에 서린 빼어난 기운이 한양땅으로 크게 뻗치질 못했다. 그 점이 아쉽다.

     

    북한산의 다른 봉우리들은 백운대나 인수봉에 비해 수기 (秀氣 ; 수려한기운)가 너무 부족하다. 모양새가 하나같이 비뚤어졌는데 그게 가장 큰흠이다.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쓰러질 듯 기우뚱한 자세로 서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게 만든다. 또 이 불안감만큼 흉한 기운을 내뿜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끝이 뾰족한 화성의 산이 흉하게 생기면 전쟁·투쟁 · 화재로 인한 재난을 불러온다. 그로 인한 화도 생겨나며, 마음이 비뚤어진 사람, 거칠고 난폭한 사람들을 배출한다.

     

    도습지의 진산(鎭山)이 이렇게 생겼으니 포악한 자들이 득세하여 백성들을 괴롭히게 된다. 더구나 이 흉한 봉우리들은 원래의 한양땅 바로 뒤에 있다. 그래서 백운대나 인수봉 기운보다 이 봉우리들의 기운이 한양 땅으로 훨씬 강하게 뻗쳐온다.

     

    이 흉한 기운 때문에 우리 겨레는 오랫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부덕한 압제자가 자주 백성을 억압했고, 권세가들이 횡포를 부렸다. 때론 외적이 침노하여 우리 강토와 겨레를 짓밟았다.

     

    사악한 무리가 강성한 기세를 떨치니 참된 사람, 정인군자(正人君子)는 숨어지낼 수밖에 없었다. 조정에는 밝은 임금, 지혜로운 신하가 드물었다. 그러니 백성들이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계속)
     

  • 우리명산 답산기-북한산2 도읍터의 기상

    ● 도선국사의 예언

    북한산 기슭에 도읍이 세워지기 훨씬 이전부터 선지자들은 북한산에 감도는 도읍터의 기상을 알아보았다. 그이들 중 어떤 이들은 개성의 지기(地氣)가 다하여 고려조가 망한 뒤에 도읍이 북한산 아래로 옮겨가리라는 예언까지 했다. 북한산 밑에 도읍을 세우게 될 왕조가 이씨왕조라는 것까지 예언한 선지자들도 있었다.

     

    고려태조 왕건의 아버지 왕륭에게, 당신의 아들이 삼국을 통일하고 새 왕조를 세울 것'이라고 얘기해준 도선국사도 그것을 예견했었다. 왕륭은 도선국사와 헤어지기 전에 왕씨왕조가 얼마 동안 유지되겠느냐고 물었다. 도선국사는 처음에 “천 년은 가리다.”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아득히 먼 곳에 가물가물 보이는 북한산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아, 저 백악(白岳; 북한산) 때문에 5백 년 밖에 못 가겠소.”

     

    그후 도선국사는 북한산을 찾아갔다. 북한산을 둘러보고 지금의 왕십리 근방을 지날 때였다. 도선국사의 눈앞에 문득 5백 년 후에 일어날 일이 영화의 화면처럼 선명하게 스쳐갔다. 조선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 모습이 보였다. 무학대사가 도읍터를 찾아 왕십리 일대를 헤매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도선국사는 석공을 불러 돌장승과 석비를 세웠다. 그리고 석비에다 '왕십리(往十里)'라는 글자를 새기게 시켰다. 왕십리. 십 리 (十里)를 더 가라는 뜻이다. 훗날, 5백 년 뒤에 도선국사가 보았던 대로 무학대사가 왕십리를 찾아왔다. 이씨왕조의 새 도읍터를 잡기 위해서였다. 무학대사는 왕십리 일대를 헤매다가, 이곳 노인들한테서 옛날에 도선국사가 '왕십리’라는 글자를 석비에 새겨두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무학대사는 도선국사의 선견지명에 새삼 탄복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서북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곳에 우뚝 솟아오른 인왕산과 북악산이 무학대사의 눈길을 강하게 끌었다. 이 두 산에 매우 비범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았다. 기상이 엄청나게 강했다. 무학대사의 발길이 끌려가듯 그곳으로 향했다. 과연 인왕산과 북악산 아래에 왕자(王者)가 머물 도읍터가 있었다.

     

    인왕산과 북악산은 북한산 남쪽 줄기에 솟아오른 산들이다. 둘 다 북한산의 지봉(支峯) 이다. 북한산은 최고봉인 백운대의 높이가 해발 837미터에 이른다. 해발 천미터가 넘는 산이 수두룩한 우리 나라에선 그리 높은 산이라 할 수 없다.

     

    한데 북한산 근처엔 북한산보다 높은 산이 없다. 북한산 홀로 드높이 솟아 있다. 북한산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위로 올려다봐야 할 산이 하나도 눈에 띄지 않는다. 가까이에 낮은 산들만 있고, 북한산보다 높은 산들은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용문산 같은 산은 북한산보다 2백여 미터쯤 높지만 오히려 낮게 보인다.

     

    가까운 곳에 높은 산이 없으니 눈에 잡히는 시야가 매우 넓다. 동쪽으로는 강원도의 산들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서해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남쪽에는 충청도의 산들이, 북쪽에는 북한의 산들이 가물가물 보인다. 시야가 사방 수백 리에 이른다. 그만큼 기상도 크고 강하다. 과연 한나라를 이끌어갈 힘이 서려 있다.

     

    수도는 한 나라의 머리이며 심장부이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며, 권력이 집중되는 곳이다. 또 나라의 중요한 정책들이 모두 수도에서 결정된다. 그래서 도읍터에 서린 지기(地氣)는 모든 국민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미친다. 국민의 생활, 나라의 역사와 운명이 도읍터의 지기에 좌우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수도의 지기가 좋으면 그만큼 국민들이 복되게 살고, 나쁘면 나쁜 만큼 불행을 겪는다.

     

    조선태조 이성계도 도읍터가 나라의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잘 알았다. 그는 새 왕조를 세우자마자 서둘러 수도를 옮기려고 애썼다. 개성은 이미 지기가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여기서는 백성을 제대로 다스리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이성계는 신하들에게 어서 좋은 도읍터를 물색하라고 재촉했다. 신하들은 북한산 아래 옛 한양땅과 신촌일대, 그리고 계룡산 신도안을 후보지로 추천했다. 처음에는 계룡산이 이성계의 마음을 강하게 끌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친히 계룡산을 둘러보았다. 계룡산은 왕자(王者)가 머물 만한명산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이성계는 수도를 계룡산으로 옮기리라 결심하고 개성으로 돌아왔다.돌아오자마자 신하들한테 자신이 결심한 바를 통고했다. 그리고는 곧바로 새 도읍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한데 많은 신하들이 계룡산으로 도읍을 옮기는 데에 반대했다. 그들은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계룡산이 도읍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다.이성계는 결국 신하들한테 설득당하여 계룡산 천도계획을 포기했다. 건설공사를 중지시키고 새 후보지를 물색했다.

     

    많은 신하들이 북악산 아래 한양땅을 천거했다. 일설에는 무학대사가옛 선지자들의 예언을 들어 한양 천도를 강력하게 주장했다고 한다. 한양땅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이 이씨왕조의 도읍터가 되리라예언했던 곳이다. 이 예언은 세간에 은밀히 떠돌았다. 고려왕조도 이를알고 두려워했다.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이씨가 한양땅에 도읍을 정하려면 왕씨왕조가 망해야 했다.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예언에 이르기를, 고려조 다음에는 이씨가 북한산 아래에다 새 도읍을 세운다 했으니, 고려조가 오래 가려면 이씨가 받을 한양땅의 지기를 없애야 했다. 고려왕조는 한 가지 묘책을 짜냈다. 그 묘책이란 다름 아니라, 한양땅에 오얏나무를 잔뜩 심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베어내는 것이었다. '이'자는 오얏나무 이(李) 자이다. 그래서 오얏나무를 많이 심으면, 그 오얏나무들이 이씨왕조한테 돌아갈 한양땅의 지기를 대신 입게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부질없는 짓이었지만, 고려왕조는 이 묘책을 실행에 옮겼다. 오얏나무 묘목들을 많이 심었다가 어느 정도 자라면 모두 베어냈다. 몇 년에 한번씩 애꿎은 오얏나무들만 숱하게 죽어갔다.(계속)

  • 한 러시아인이 본 메르켈 총리의 아름다운 퇴임

    다음 글은 한 러시아 사람이 메르켈 총리의 퇴임을 보며 쓴 글입니다. 김진국 유엔 대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번역해 올렸습니다. 

    독일과 지구촌을 위한 메르켈 총리의 헌신과 아름다운 퇴임을 축하합니다.

     

    [잘가요! 메르켈!!]

     

    독일은 6 분간의 따뜻한 박수로 메르켈에게 작별 인사를했다.

    독일인들은 그녀를 선택 하였고, 그녀는 18년 동안 능력, 수완, 헌신 및 성실함으로 8천만 독일인들을 이끌었다.

    그가 나라를 18 년 동안을 통치하는 동안 위반과 비리는 없었고 그녀는 어떤 친척도 지도부에 임명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광스러운 지도자인 척 하지 않았고 자신보다 앞섰던 정치인 들과 싸우지도 않았다.

    그녀는 어리석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진 찍히려고 베를린 골목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인물이 "세계의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성 (Angelika Merkel)이며, 6백만 명의 남성에 해당하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메르켈은 어제 당의 지도부를 떠나 후임자들에게 뒷일을 넘겼고, 독일과 독일 국민은 더 성숙해 졌다.

    독일의 반응은 국가 역사상 전례가 없었다.

    도시 전체가 집 발코니로 나갔고, 인기 시인, 연주자들 및 기타 시민단체들도 없는 가운데 6분 동안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자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우리의 현실과는 달리, 찬사, 위선, 공연, 북소리도 없었고 아무도 "글로리 메르켈(Glory Merkel)"을 외치지도 않았다.

    독일은, 그녀가 전 동독 출신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로 뭉쳤고,

    패션이나 빛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고 다른나라 지도자들 처럼 부동산, 자동차, 요트 및 개인 제트기를 사지도 않은 화학물리학자인, 이 독일 지도자에게 작별을 고하였다.

    그녀는 독일의 지도부를 위임 한후, 그녀의 자리를 떠났다.

    그녀는 떠났고, 그녀의 친척들은 그들이 자기 나라에서 엘리트라고 여기지도 않았다.

    18년 동안 그녀는 한결같이 새로운 패션의 옷을 갈아 입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조용한 지도자와 함께 계셨다.

    독일의 위대함이 하나님과 함께하기를 ... !

    기자 회견에서 한 기자는 Merkel에게 물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같은 옷만 입고 있는 것을 주목 했는데, 다른 옷이 없지요?'

    그녀는 대답했다.

    "나는 모델이 아니라 공무원입니다."

    또 다른 기자 회견에서도, 한 기자가 물었다: '집을 청소하고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도우미가 있는지를?'

    그녀는

    “아니요, 저는 그런 도우미는 없고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집에서, 남편과 저는 매일 이 일들을 우리끼리 합니다.”

    그러자 다른 기자가 물었다.

    '누가 옷을 세탁합니까, 당신이나 당신의 남편?'

    그녀의 대답은

    "나는 옷을 손 보고, 남편이 세탁기를 돌립니다. 대부분 이 일은 무료 전기가 있는 밤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파트와 이웃사이에는 방음벽이 있어서 이웃에 피해를 주지 는 않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당신들이 우리 정부의 일의 성과와 실패에 대해 질문하여 주기를 기대합니다."고 말했다.

    Mrs. Merkel은 다른 시민들처럼 평범한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녀는 독일 총리로 선출되기 전에도 이 아파트에 살았고, 그 후에도 그녀는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며, 별장, 하인, 수영장, 정원도 없다.

    이 여인이 유럽 ​​최대 경제대국인 독일의 총리 메르켈이다!

    [위의 글은 어느 러시아인이 그들의 뽑내는 사치한 거부 푸틴 대통령과 비교한, 메르켈 총리에 관해 Facebook에 올린 내용이다.]

    * 그녀는 정직했고 진실했으며 자랑 하지도 않았고 꾸밈성도 없었다.

    참 존경스럽고 대단한 사람이다.

    우리와 비교할 때 낮 뜨거운 현실이다!

  • 슬픈 생일날, 네 살배기 아이에게 전해진 따뜻한 선물

    코로나19로 양친을 모두 잃은 레이든 곤살레스(4)를 위해 특별한 생일선물이 도착했다. 사진은 레이든과 코로나19로 사망한 레이든의 부모 [이미지 : GoFundMe]

    코로나19로 인해 양친을 모두 잃은 4살 아이에게 특별한 생일선물이 도착했습니다.

     

    오는 22일, 텍사스주에서 거주하는 레이든 곤살레스(4)가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특별한 생일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고 19일 ABC 방송이 보도했습니다.

     

    레이든은 지난 6월 트럭 운전기사였던 부친을 여의었으며, 지난달 5일에는 어린이집 교사였던 모친마저 여의었습니다. 사인은 모두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었습니다.

     

    부모를 모두 잃은 레이든을 위해 레이든의 친척들은 지역사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레이든의 안타까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레이든에게 조금씩 성금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모금이 진행 중인 '고 펀드 미(GoFundMe)'에는 10만 달러(한화 1억 1170만 원)가 넘는 성금이 모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레이든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레이든이 좋아하는 공룡을 주제로 지역 소방서, 오토바이 동호회, 트럭 동호회 등이 카 퍼레이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레이든의 고모 매기 브라이언트는 부모를 모두 잃은 레이든을 즐겁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레이든의 외할머니 로지 살리나스는 레이든은 부모님이 천사가 됐다고 믿고 있다면서, 언젠간 모든 것들을 이해할 날이 올 것이라 말했습니다.  

  • [영상] 수능을 앞둔 고3 부모님들이 읽어야 할 편지

    오늘은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이 꼭 아셔야 할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수능은 시험을 치르는 학생 뿐 아니라 가족에게도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수험생을 둔 가족들은 큰소리는 물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다고 하지요. 

     

    외국의 한 교장 선생님이 우리나라 수능과 비슷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의 부모님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수능 수험생을 자녀나 가족으로 둔 분들에게 꼭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친애하는 학부모님들께

     

    자녀들의 시험이 곧 시작됩니다.

    학부모님들 모두 자녀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리는 말씀을 명심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험을 보기 위해 앉아 있을 학생들 가운데 수학을 잘 이해할 필요가 없는 예술가가 될 아이가 있을 것입니다.

    역사나 영문학과는 상관없는 기업가가 될 아이가 있을 것이며, 화학 성적이 문제가 되지 않을 음악가가 될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물리학보다는 신체 단련이 더 중요한, 운동선수가 될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학부모님들의 자녀가 최고의 성적을 얻는다면 정말 좋은 일이겠지요. 하지만 여러분의 자녀가 좋은 성적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자존감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우선 자녀들에게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와도 괜찮다고 말씀해주세요. 이건 그저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인생에는 너희에게 더 잘 어울리는 더 의미있는 많은 일들이 있다고 말해주세요. 점수는 별 것 아니라고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부모님께서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으며, 점수로 그들을 판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꼭 그렇게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자녀들이 세상에 맞서 이겨나아가는 것을 지켜봐주세요. 한 번의 시험이나 낮은 점수가 우리 아이들의 꿈이나 재능을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의사들이나 엔지니어들만이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마음을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