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한 일이 해결됐을 때 흔히 하는 말로
"숨통이 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숨통은 '후두에서 허파에 이르는, 숨 쉴 때 공기가 흐르는 관'을 뜻합니다.
즉 실제로 숨이 드나드는 통로를 말하지요.
"숨통이 트이다"라는 말처럼,
숨의 통로가 활짝 열려야 숨이 깊어지고 커질 수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서, 숨의 통로를 열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갑갑한 일이 해결됐을 때 흔히 하는 말로
"숨통이 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숨통은 '후두에서 허파에 이르는, 숨 쉴 때 공기가 흐르는 관'을 뜻합니다.
즉 실제로 숨이 드나드는 통로를 말하지요.
"숨통이 트이다"라는 말처럼,
숨의 통로가 활짝 열려야 숨이 깊어지고 커질 수 있습니다.
영상을 보시면서, 숨의 통로를 열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사람은 오로지 생각의 부산물이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존재가 결정된다.
A man is but the product of his thoughts. What he thinks, he becomes.
- 마하트마 간디
어느덧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모자와 장갑을 챙기는 겨울이 왔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따듯한 햇볕의 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해님이 없었다면 이 세상 만물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해님의 위대함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질 정도입니다.
요즘 제가 한낮에 하고 있는 <햇빛명상>을 소개합니다.
햇빛이 잘 들고 통풍이 잘되는 장소면 어디든 좋습니다. 햇빛을 향해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앉습니다. 허리를 똑바로 세우고 서서 해도 상관없습니다. 손은 살포시 무릎 위에 놓던지, 배 위에 놓아도 됩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배를 부풀리고, 길고 가늘게 뱉어 배를 홀쭉하게 만드는 복식호흡을 합니다. 눈은 살짝 감고 내면의 의식은 이마 정수리 부분 인당 쪽을 바라봐도 좋고 단전 쪽을 향해도 좋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편안하게 호흡을 계속합니다. 얼마 안 가서 온몸이 빛으로 환해지고 따스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해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온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입니다. 해님은 세상 만물에게, 평등하게 골고루 생명의 에너지를 보내주십니다. 해님이 주시는 그 생명의 빛과 에너지로 세상 만물이 살아갑니다.
그렇게 모든 사랑을 쏟아붓지만, 지구의 생명들에게 무얼 바란 적이 없습니다. 조건 없는, 가없는 해님의 사랑에 깊이 고개를 숙입니다.
“고맙습니다.”
“해님의 가없는 사랑을 본받아 저도 그렇게 사랑과 축복을 나누는 삶을 살겠습니다.”
"저 새끼들 계집앤가 보다. 늙은 것들이 어떻게 조런 물건을 낚았지?"
녀석들은 제각각 한마디씩 뱉어 냈다. 필섭과 석주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이 자식들아, 빨리 꺼져!"
필섭이 녀석들 앞으로 다가서며 외쳤다.
"이게 그냥."
한 녀석이 다짜고짜 필섭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필섭이 녀석의 팔목을 홱 잡아채며 앞으로 밀쳤다.
녀석은 엉겹결에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자 세 녀석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한 녀석은 석주한테 덤벼들었다.
넘어졌던 녀석은 잽싸게 일어나더니 지팡이 삼아 짚고 왔던 몽둥이를 들고 나섰다.
순식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석주는 명치를 한 대 얻어맞고 꼼짝못했다. 필섭인 힘이 장사였으나
넷이 한꺼번에 덤벼드니 중과부적이었다. 한 녀석을 번쩍 들어 메어치고는
자신도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먼저 필섭이한테 당했던 녀석이 몽둥이로 필섭일 내리치려고 했다.
그때 혜원이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혜원인 필섭이 쪽으로 날아가는 몽둥이를
잽싸게 낚아챘다. 녀석은 몽둥이를 빼앗기고 옆으로 나귕굴었다.
혜원인 또 나머지 녀석들을 밀쳐냈다. 별로 힘도 안 들이고 슬쩍슬쩍 밀었는데도
녀석들은 나무토막처럼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땅바닥에 넘어져 꼼짝못했다.
그 사이에 석주와 필섭이 기운을 차리고 혜원이 옆으로 왔다.
녀석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혜원일 쳐다봤다. 모두들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혜원인 말없이 녀석들을 훑어보고 나서 두 손으로 몽둥이의 양끝을 잡았다.
팔뚝만한 몽둥이가 조금씩 안으로 구부러지더니 딱 하고 부러졌다.
무서운 괴력이었다. 녀석들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그런데 혜원인 부러진 두 몽둥이를 한꺼번에 잡았다. 모두들 혜원의 행동을 주시했다.
잠시 후에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두 개의 몽둥이가 나무젓가락처럼 동시에 휘어지더니 뚝 부러지는 것이었다.
"어서들 가십시오."
혜원인 이 말을 남기고 다시 초막 안으로 들어갔다.
녀석들은 기가 질려 석주와필섭에게 사과를 하고 허겁지겁 초막을 떠났다.
벽운 선생과 백령자가 오랜만에 운학산으로 돌아왔다.
벽운 선생은 세 제자에게. 백령자는 청령자에게 새로운 수행법을 가르쳤다.
석주와필섭이 새로 배운 행공 자세는 먼저 배운 것보다 어려웠다.
호흡법도 많이 달랐다. 숨을 들이쉬고 나서 잠시 멈췄다가 내쉬고,
또 내쉬고 나서도 멈췄다가 다시 들이쉬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쉬는 시간과 들이쉬는 시간, 멈추는 시간의 길이를 같게 했다.
벽운 선생은 새로운 수련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공부는 천지의 기운이 너희 몸 속에 모이고, 또 몸 속에서 움직이게 만드는 공부다.
숨을 멈추고 쉴 때 진기가 모이고 활발히 돌아간다. 한데 숨을 억지로 길게 하지 마라.
그저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이쉬고 내쉬고 멈춰라. 그리고 마음과 정신을 먼저와같이
항상 단전에 집중시켜야 한다."
혜원이도 새로운 가르침을 받았다. 벽운 선생은 혜원일 따로 불렀다.
"이제 살갗으로 숨쉬는 게 아주 수월해졌구나."
"네, 피부의 기공이 자주 활짝 열립니다."
"그럴 땐 살갗만으로 숨쉴 수 있지 않느냐?"
"네, 한참씩 그래요."
"이제 음식을 끊어도 되겠다. 곡기를 끊지 않으면, 몸 속에 탁기가 자꾸 생겨난다.
이 탁기 때문에 번뇌가 완전히 사라지질 않는다. "
이튿날부터 혜원인 곡기를 끊고 깊은 선정에 들었다.
마음도 생각도 한 점 남김없이 모두 여의었다. 거울처럼 투명한 정신을 굳게 지키고
고요히 앉아 있었다.
혜원이의 의식은 오로지 안으로만 향하여 마음을 환히 비춰 주었다.
벽운 선생은 한동안 운학산을 떠나지 않았다.
석주와필섭일 데리고 운학산 이곳저곳을 둘러보거나 초막에서 선정에 들곤했다.
백령자도 청령자를 지도하며 운학산에 머물렀다.
혜원이 음식을 끊자 잠이 사라졌다. 피부의 기공도 활짝 열렸다.
선정에 들면 몇 시간씩 피부로만 숨을 쉬었다.
혜원인 밤 낮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피부 호흡이 완전하게 이뤄지니 항상 진기가 충만했다.
몸에 가득한 진기 때문에 허기가 전혀 일지 않았다.
또, 추위나 더위가 일절 침범하지 못했다. 가없이 화평한 기운이 몸을 에워쌌다.
몸 속에도 몸 밖에도 화기(和氣)가 가득 감돌았다.
마음도 마찬가지였다. 기쁨, 성냄, 애착, 미움, 싫어함, 두려움, 슬픔, 즐거움,
안타까움, 괴로움 등 모든 감정이 씻은 듯 사라졌다. 가슴에는 따스한 화기만이 넘쳐흘렀다.
감정이 사라지듯 몸의 감각도 없어졌다. 피부는 촉감에 끌리지 않았고,
입은 맛에 이끌리지 않았다. 귀는 소리에 이끌리지 않고, 코는 냄새를 좇아가지 않았으며,
눈은 색(色)과 형상에 끌려들지 않았다. 머리에는 잡념이 일지 않았다.
모든 감각을 끊어 버리니 기운이 전혀 흩어지지않았다.
감각 기관들은 이제 쓸데없이 기운을 소모할 필요가 없었다.
마음처럼 청허(淸虛)하게 비워졌다. 그러자 그 빈자리가 진기로 채워졌다.
모든 감각 기관에서 지혜의 빛이 뿜어 나왔다.
지혜의 빛으로 인해 눈은 더할 수 없이 밝아졌다. 깜깜한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보이고,
땅속 깊은 곳이나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사물들도 코앞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천안통(千眼通)을 얻었던 것이다.
천이통(千耳通)도 얻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가 뚜렷이 들렸다.
그리고 전부터 지니고 있던 탁기는 진기에 밀려 밖으로 배출되었다.
진기가 가득 쌓이자 몸이 극도로 가벼워졌다.
어느 날 새벽이었다. 혜원인 자신의 몸이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속이 텅 비워지고 거기에 맑은 공기만 가득 채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잠시 뒤에 몸이 붕 떠올라 바닥에서 한 자쯤 떨어진 곳에 멈췄다.
더 이상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혜원인 이상히 여겨 가부좌를 풀고서
어떻게든 바닥으로 내려오려 했다.
이때, 벽운 선생의 음성이 들려 왔다.
"괜찮다. 그대로 앉아 있거라. 마음을 쓰지 말고 맑은 정신을 굳게 지켜라."
혜원은 얼른 마음을 가다듬었다. 허공에 앉은 채, 그대로 다시 선정에 들었다.
얼마 후에 몸이 도로 방바닥에 내려왔다.
이날부터 자주 공중에 떠올랐다. 또,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한 길이 넘은 허공에 앉아서 수련할 때가 많았다.
떠오르고 내려오는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기도 했다.
그후, 몸 움직임이 더욱 가벼워졌다. 산에 오를 때는 날개가 달려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어떤 기운에 이끌려 다리가 저절로 움직였다. 발바닥이 땅에 닿는 감촉도 느끼지 못했다.
구름을 타고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늦게서야 장마가 시작됐다.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온 산의 초목군생들이 모처럼 생기를 얻었다.
소나기가 퍼붓는 날이었다. 돌풍이 불고 천둥 번개가 쳤다.
혜원인 방안에 앉아 고요히 선정에 들어 있었다. 폭풍이 문고리를 흔들어대고 우르릉 쾅쾅
천둥이 울렸지만, 혜원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티 하나 없이 맑디맑은 그녀의 의식은
오직 내면의 한 점 빛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의식 속에서는 이 내면의 불빛만이 홀로 반짝였다.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간의 흐름이 영원히 멈춰 버린것 같았다.
한밤중이었다. 운학산 가까이에 벼락이 떨어졌다. 산을 무너뜨리는 기세로 천둥이 울렸다.
그 순간, 혜원의 내면에서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왔다. 혜원도 방안도 휘황한 빛에
휩싸였다. 혜원의 주변에 있던 모든 것이 형체를 잃고 빛으로 화했다.
빛은 잠시 후에 사라졌다. 그런데 그 빛과 함께 혜원 자신의 몸도 어디론가 없어졌다.
몸은 사라지고 맑은 정신만 남아 아득한 하늘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에는 오색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오색 구름은 혜원의 의식을 부드럽게 감싸 주었다.
혜원인 자신의 몸이 어디로 갔는지 궁금했다. 잃어버린 몸을 찾고 싶었다.
혜원이 몸을 찾기 위해 막 고개를 돌리려 하는데, 벽운 선생이 혜원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혜원아, 두려워 마라. 네 몸은 제자리에 있다. 마음을 움직이지 말거라. 정신을 굳게 지키고,
무엇이 나타나도 거기에 끌려선 안 된다."
이 말을 마치자마자 벽운 선생의 모습이 사라졌다.
혜원인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디선가 음악 소리가 들려 왔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마음이 이 음악 소리에 끌려가려고 했다. 혜원인 밖으로 빠져 나가려는 마음을 돌이켜 세웠다.
음악이 그쳤다. 이번에는 온갖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정원이 나타났다.
정원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예뻤다. 몸은 우리처럼 투명했다.
옷에서는 빛이 뿜어 나왔다. 선계에 사는 선동들 같았다.
아이들이 혜원일 향해 이리 오라 손짓했다. 혜원인 아이들한테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갔다.
얼마쯤 가니 화려한 왕궁이 보였다. 옥으로 만들어 놓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이 왕궁의 뜰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왕과 왕비, 그리고 신하들이 모두 일어서서 절을 올리며 혜원일 맞이했다.
혜원인 그들에게도 마음을 보내지 않았다. 왕궁을 떠나 위로 위로 올라갔다.
얼마를 더 올라가니 찬란한 빛의 세계가 나타났다. 빛을 뿜는 새들이 날아다녔다.
빛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선인 선녀들 같았다.
빛사람들 여럿이 혜원일 호위했다. 혜원인 그들도 돌아보지 않았다. 외부로 향하려는
마음을 굳게 지키고, 오로지 자신의 내면에 의식을 집중했다.
곧 빛사람들의 모습이 사라졌다. 혜원인 더 높이 올라갔다. 홀연히 붉은 노을 같은 광채가
온 하늘을 가득 메웠다. 또 보랏빛 불꽃이 사방에서 일었다. 그리고 천지를 진동시키는 굉음이
들렸다.
그 순간, 모든 환상이 사라졌다. 혜원의 눈에 비로소 자신의 몸이 보였다. 환상에서 깨어나자
혜원인 머리에 통증을 느꼈다. 머리가 깨지는 것처럼 아팠다. 불로 지지는 것처럼 화끈거리기도
했다. 혜원인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혜원이 걱정하며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는데, 벽운 선생이 방으로 들어왔다.
둥그런 원광이 벽운 선생을 둘러싸고 있는 게 보였다.
벽운 선생은 혜원과 1 미터쯤 떨어져 앉았다. 혜원도 벽운 선생의 원광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자 통증이 약해졌다.
"스승님, 갑자기 머리가 터질 듯 아프네요. 제가 수련을 잘못했나 봐요."
혜원인 육신의 고통보다 행여 공부가 잘못되었을까 그게 더욱 걱정이었다.
"아니다, 공부가 잘됐다. 너의 진신이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다. 가슴의 중단전에 잉태됐던
진신이 갓 태어나 머리의 천궁으로 나오느라 그런다. 통증은 며칠만 지나면 없어진다."
머리의 통증은 사흘 후에 없어졌다. 통증이 사라지자 빛의 응어리 같은 게
가슴의 중단전에서 머리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혜원인 이 빛의 응어리에 대해
벽운 선생에게 여쭤 보았다.
"그것이 너의 진신이다. 진신이란 세상에 태어나기 전부터 하늘에서 가지고 온 몸이다.
이 진신이 너의 본 모습이며, 진신이 잘 자라서 성인이 돼야 하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진신을 양신이라고도 한다.순수한 양기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순양의 기운은 곧 하늘의 진기다. 이제 너의 마음과 생각을 양신에 모아라.
앞으로 또 여러 가지 환상이 나타날게다. 부처님도 나타나고 신선도 나타난다.
그들은 진짜가 아니다. 모두 헛것이니 마음을 뺏기지 마라. 생각과 마음을 일체 여의고 잊으면
네 몸에서 한 줄기 빛이 뿜어 나온다. 그때 네 양신을 그 광채 앞으로 옮겨라.
그런 다음 생각으로 광채를 끌어 모아라. 그리하면 광채가 엽전만해진다.
이 광채를 양신 속에 집어 넣어라.
그러면 양신이 네 가슴의 중단전으로 옮겨 간다. 이 진신을 다시 천궁으로 겨둬들이고 깊은
선정에 들어라. 광채는 진신을 키우는 보약이다."
혜원이 또 깊고 깊은 선정에 들었다. 의식을 천궁(상단전이라고도 함)으로 집중시켰다.
천궁에 또 하나의 자기가 앉아 있는게 심안으로 보였다. 바로 벽운 선생이 말한 양신이었다.
양신도 혜원의 육신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벽운 선생은 혜원의 방을 떠나지 않았다. 혜원이 이 관문을 무사히 넘기도록 가까이에서 보살폈다.
혜원의 눈앞에 또 환상이 나타났다. 부처님, 예수님, 신선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느 신선은 책을 내밀기도 했다.
혜원인 미동도 하지 않고 천궁의 양신만을 생각했다. 그러자 환상들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이틀이 지났다. 혜원인 이틀 내내 선정에 들어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었다.
오색 구름이 홀연히 혜원의 앞에 피어올랐다. 또, 혜원의 몸에서 한 줄기 광채가 뿜어 나와
구름 속으로 뻗쳤다. 광채와 구름이 어우러져 둥그런 금빛 원광이 생겼다.
혜원인 자기의 양신을 앞으로 내보냈다. 양신이 원광 속에 자리를 잡고 단정히 앉았다.
그런 다음 마음으로 광채를 응축시켰다.
광채가 동전만해졌다. 이것을 양신 속으로 빨아들였다. 그리고 양신을 다시 거둬들였다.
이러기를 몇 번 거듭했다. 그러자 양신의 형체가 더욱 뚜렷해졌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형체가 분명했다. 안개처럼 하얀 빛깔에다 크기는 10센티쯤 되었다.
장마가 물러갔다. 하늘이 푸르러지고 무더위가 몰려왔다. 햇빛은 더욱 강렬해졌다.
장마가 끝난 지 며칠 후였다. 벽운 선생은 혜원이더러 거처를 옮기라고 했다.
혜원이 새로 옮긴 거처는 기린봉 중턱이었다. 기린봉은 초막의
내 청룡(제일 가까운 왼쪽 산줄기) 끝에 솟아오른 봉우리다. 초막에서는 백 미터쯤 떨어져 있다.
기린봉의 생김새는 기린의 머리와 흡사하다. 늘씬하게 솟아오른데다 꼭대기가 일자형이어서
기린의 머리를 연상시킨다.
기린봉 아래쪽은 사방이 절벽이다. 절벽의 높이가 여섯 길은 족히 넘었다. 절벽 사이사이에는
소나무들이 자랐다.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서 특수한 장비가 없이는 기린봉에 오르기
어려웠다.
하루는 벽운 선생이 혜원일 데리고 기린봉 아래로 갔다. 거기는 절벽이 제일 낮은 곳이었다.
그래도 네 길은 충분히 되었다. 절벽 위쪽은 평평한 바위였다.
"저 위로 올라가자. 혜원이 너부터 뛰어올라라."
벽운 선생이 절벽 위쪽을 가리켰다. 혜원인 위를 올려다보았다. 올라갈 자신이 없었다.
"걱정 마라. 너는 이미 그만한 힘을 지녔다. 어서 올라가라."
벽운 선생이 재촉하자, 혜원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한데 놀랍게도 몸이 붕 떠올랐다.
다섯 길이 넘게 솟구쳐 올랐다가 바위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어서 벽운 선생도 위로 올라왔다. 벽운 선생은 눈깜짝할 사이에 몸을 옮겼다.
너무나 짧은 순간이라서 혜원인 위로 올라오는 스승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두 사람은 기린봉 중턱까지 올라갔다. 중턱에 스무 평쯤 되는 평지가 있었다. 평지 뒤쪽엔 바위굴도 있었다.
오른쪽에는 아주 작은 샘이 있었다. 바위에 동그란 홈이 파였는데, 거기서 물이 솟아나왔다.
크기는 지름이 한 자, 깊이가 반자쯤 되었다. 그동안 비가 많이 내려서인지 물이 철철 넘쳤다.
벽운 선생은 혜원일 굴 안으로 데려갔다. 굴 입구는 문짝 하나만했다. 안은 굴 같지 않게 밝고
습기가 없었다. 넓이는 두 평 남짓 되었다. 천장은 꽤 높았다. 3미터가 넘을 듯싶었다.
이 굴은 자연굴이 아닌 것 같았다. 내부의 벽이 자로 재어 다듬은 것처럼 반듯반듯했다.
입구도 직사각형이었다. 바닥은 흙이었다. 물기가 잘 빠지는 마사토가 깔려 있었다.
벽운 선생은 바깥쪽을 향해거 먼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혜원을 자기 옆에 나란히 앉혔다.
입구를 통해 밖이 내다보였다.
골짜기 맞은편에 관음봉, 세지봉, 수정봉, 보현봉, 문수봉, 이 다섯 봉우리가 가지런히
솟아 있었다. 초막에서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
그들의 자태는 가부좌를 틀고 앉은 선인이나 보살이 형상과 흡사했다.
다섯 봉우리 뒤편으로 또 수많은 산봉우리들과 서해 바다가 보였다.
작은 산봉우리들이 볼록볼록 아스라하게 펼쳐진 모습이 꽃잎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하늘 가득 피어오른 구름송이 같기도 했다.
"여기는 너처럼 양신이 몸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공부한 곳이다.
갓 태어난 양신을 탈없이 키우기에 참 좋은 도량이다.
임독맥이 열려 소주천이 이뤄진 사람을 인선이라고 한다.
인선은 건강하게 무병장수를 누릴 수 있다.
너와 같이 임독유통도 되고 또 양신이 태어난 사람을 지선이라 부른다.
지선은 육신통을 깆추고 자기의 본성, 참모습을 찾은 사람이다.
지선이 돼야 비로소 세속을 초월하여 성스러운 세계에 입문하는 것이다.
지금 너의 양신은 막 태어난 아기와 마찬가지다.
이제부터는 아기가 어른이 되도록 잘 키워야 한다.
양신이 완전히 다 자라야 신성의 경지에 오은다. 그런 사람을 천선이라 부른다.
천선은 불사불멸한다. 양신은 하늘과 하나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양신을 어른으로 키우는 공부를 하거라,
오로지 마음과 몸을 잊고 청허한 정신을 지켜야 양신이 자란다.
선정에 들어 네 몸과 마음이 흩어져 허공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해라. 거울처럼 맑은 정신만 남기고 모두 잊어야 한다."
벽운 선생은 양신을 키우는 방법과 함께 출입시키고 활동시키는 요령을 일러주었다.
"아기들은 자꾸 움직여야 잘 자란다. 몸이 골고루 발달하고 힘이 붙으려면 활동을 많이 해야 한다. 양신도 마찬가지다. 움직이고 활동해야 굳건해지며 자유자재한 능력을 얻는다.
자, 한번 네 양신을 밖으로 내보냈다가 거둬들여 보자.
깊은 선정에 든 다음 고요히 앉아 있으면 네 정수리가 열리고 한 줄기 빛이 밖으로 뻗쳐 나간다.
그 빛을 좇아 양신을 내보내라.
도로 거둬들이려면 빛을 먼저 양신 안으로 끌어 넣은 뒤에 갔던 길을 따라 돌아오게 하거라.
처음부터 멀리 내보내면 위험하니 한 걸음 밖까지만 보냈다 얼른 거둬들여라."
혜원은 곧 선정에 들었다.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경지에 이르러 한 줄기 광채가 정수리를 열고
밖으로 뻗쳐 나갔다. 그런 다음에 양신을 내보냈다.
양신은 50센티쯤 사이를 두고 혜원과 마주앉았다. 양신의 모습은 전보다 더 뚜렸했다.
눈처럼 희고 은은한 광채가 감돌았다.
혜원인 먼저 내뿜는 빛을 양신 안으로 거둬들였다.
그리고 양신으로 하여금 되돌아오게 했다. 양신이 되돌아와 상단전 천궁에 자리를 잡았다.
"잘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다. 정수리를 열고 광채가 뻗쳐 나가면, 즉시 양신을 출입시키거라.
그런데 날씨가 나쁜 날이나 밤에는 내보내지 마라. 위험한 일이 생긴다.
해가 쨍쨍 내리쬘때도 안 된다.
갓 태어난 양신은 바람이 불면 넘어지고 강한 햇빛을 쬐면 말라 버린다.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면 놀라며 두려워한다.
양신이 처음 출입할 때는 네 몸 주위에서만 움직이게 하고, 차츰차츰 더 멀리까지 내보내라.
나중에는 천리 만리 밖에 보내도 괜찮다.
양신이 다 자라면 온 우주가 양신의 집이 된다. 천하가 양신의 방이다.
단걸음에 수만 리를 가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화신을 나타낸다.
삼천대천 세계가 꽉차게 분신을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변화무쌍하여 못 해내는 게 없다.
양신을 키우는 동안에도 도력이 일취월장 높아진다. 이미 얻은 육신통이 더욱 깊어진다.
그러나 이 도력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 꼭 필요할 때만 쓰거라."
벽운 선생은 이 말을 남기고 운학산을 떠났다. 혜원인 다시 깊은 선정에 들었다.
가깝게 지내는 어느 목사님이 자신을 온전히 품고 긍정하는 것이 수행의 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자신을 진정으로, 온전하게 사랑하기가 어려운 탓이겠지요.
또한 나 자신을 진정으로 온전히 사랑한다면 세상 만물도 그와 같이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수행의 끝 지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오늘도 자신을 찬찬히 바라보면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오늘까지 제출하기로 한 과제를 못해 쩔쩔매고 있고, 하루 1시간 걷기운동 하기로 했는데 그것도 하지 못했고, 아이에겐 ‘누굴 닮아 그 모양이냐’며 잔소리하고 화만 냈으니까요.
만약 내 안의 완전한 사랑 그 자체라는 ‘참나’가 있다면 이런 나를 어떻게 대했을까요?
먼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공감하고 봐줄 것 같습니다. “과제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 “하루 1시간 걷기운동을 못 해서 자괴감이 들고 있구나.” “쓸데없는 잔소리로 아이에게 화를 낸 자신이 수치스럽구나.” “그렇구나!”
그러고 나서 “괜찮다. 다 괜찮다.”라고 어깨를 토닥토닥해주며 위로할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판단하지 않는, 조건 없는 사랑과 공감에 저 자신은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오늘 명상 중에 가슴에 두 손을 포개 얹고 진심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네가 무엇이고 어떻든, 그냥 있는 그대로 사랑해!”
날씨가 따뜻해지자 초막에도 모기가 생겼다. 한번 비가 오더니 부쩍 많아졌다.
산모기는 들판의 모기보다 한결 독했다. 물리면 무척 따가웠다.
하루는 날이 저문 뒤, 세 사람이 밖에서 얘길 나누고 있었다.
주변에 날아다니던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었다.
석주와 필섭은 연신 두 손으로 모기들을 쫓았다. 그런데 혜원인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있었다. 이를 보고 필섭이 혜원에게 물었다.
"도제, 모기 안타? 모기 물려도 괜찮은가?"
"전 안 물려요."
"응? 어떻게?"
"모기들이 근처에서 윙윙대기만 해요. 물 생각이 없나 봐요."
"도력이 있으니까 그렇구먼. 야, 모기 같은 미물도 도인을 알아보네."
필섭이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또, 그런 말씀. 자꾸 그러지 마세요. 저한테서 고약한 냄새가 나나 보지요."
혜원이 웃으며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아니, 아니야. 무슨 이유가 있을 게야. 도제한테 비방이 있으면 가르쳐주시게.
엊저녁부터는 모기가 너무 많아져서 공부하기가 힘들어."
"실은 방법이 있어요. 전에 스승님께서 제게 가르쳐 주신 거예요."
"그럼, 우리한테도 좀 가르쳐 주시게."
"그냥 마음 푹 놓고 물리세요. 모기들한테 이리 와서 마음껏 잘 먹으라 하세요.
아주 기쁜 마음으로요. 그렇게 하시면 달라질 거예요.
한데 모기가 떼지어 윙윙대거나 몸에 달라붙어도 긴장하시면 안 돼요.
마음을 완전히 열어 놔야 효과가 있어요."
"야아, 그건 보살행이네. 훌륭한 공부가 되겠구먼., 오늘부터 당장 해보세, 아우."
필섭이 또 무릎을 치고 나서 석주에게 동의를 구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형님. 도제한테 참 귀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도제, 고마워."
석주는 혜원일 향해 두 손을 합장하고 머리를 숙였다. 혜원의 이야기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세상 사람들이 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이 세상이
곧 극락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혜원인 잠시 후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석주와 필섭은 저녁 수련을 시작했다.
체조를 할 때는 자꾸 몸을 움직이니까 모기들이 덤벼들지 않았다.
행공에 들어가자 멀찍이 물러갔던 모기들이 다시 몰려왔다.
윙윙대는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그 소리를 듣고 그만 두 사람의 살갗이
무의식중에 바짝 긴장했다.
필섭과 석주는 혜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모기들을 향해 마음으로
'이라 와서 실컷 배를 불려라'고 했다. 그러나 기쁜마음은 들지 않았다.
모기들은 사정없이 덤벼들었다. 모기에 물린 자리가 자꾸 따갑고 근지러웠다.
그래도 기쁜 마음을 지녀 보려고 애썼다. 한데 진심으로 기뻐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살갗이 저절로 굳어지며 모기들을 거부하려 했다.
행공을 끝내고 고요히 선정 수행에 들어갔을 때였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흉년이 들어 굶기를 밥먹듯 하던 기억이었다.
너무 배가 고파 물로 배를 채우던 자신들의 모습, 그 어린 자식들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던 어머니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두사람은 문득, 달려드는 모기들이 어린 시절의 자신들로 보였다.
그저 하염없이 안쓰럽고 가여웠다.
그 순간, 두 사람의 마음이 동시에 확 열렸다. 긴장했던 몸도 완전히 풀렸다.
두 사람은 가없이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모기들을 향해 마음속으로 '얼른 와서
맘껏 먹으라'고 했다. 온 세상의 모기가 한꺼번에 달려든다. 해도 모두 다 품어 안을
심정이었다.
보기들은 두 사람 주위를 계속 맴돌며 윙윙거렸다.
석주와필섭인 한없이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기들을 불렀다.
'나한테 오너라.'
바로 그때였다. 두 사람의 가슴에 지극한 기쁨이 용솟음쳤다.
또, 안개처럼 부드러운 기운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이 부드러운 기운은 잠시 뒤에 두 사람의 살갗을 통해 몸 속으로 밀려들어왔다.
따스하고 잔잔한 봄바람이 살 속으로 솔솔 불어오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의 살갗이 베로 만든 헝겊인 양 술술 들어왔다.
몸 속으로 들어왔던 기운은 곧 다시 몸 밖으로 나갔다.
한편으론 들어오고 한편으론 나가길 계속했다. 모기들은 점점 더 많아졌다.
윙윙대는 소리가 저잣거리의 소음처럼 시끄러웠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한 마리도 몸에 달라붙지 않는 것이었다. 수백 수천 마리가 두 사람을 에워 싸고
이리저리 맴돌 뿐이었다.
필섭인 그 이유를 알았다. 안개처럼 부드러운 기운은 바로 우주에 가득한 진기였다.
혜원이 일러준 대로 마음을 완전히 여니까, 이 우주의 진기가 두 사람을 에워싸며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랬다가, 모기들을 사랑하는 두 사람의 마음과 함께
밖으로 뿜어 나갔고, 모기들은 진기에 휩싸여 저절로 허기가 사라진 것이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났다. 모기들은 여전히 한 마리도 달려들지 않았다.
더욱 많은 모기들이 몰려와 두 사람 주위를 맴돌기만 했다.
석주는 이렇게 신비로운 일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형님, 모기가 전혀 안 무네요. 형님도 그러세요?"
"나도 그래."
"이게 어찌 된 일이지요?"
"자네 몸 속으로 뭐가 솔솔 들어오지 않았나?"
"예, 마치 봄바람 같은 것이 살 속으로 자꾸 들어왔다 밖으로 나갑니다."
"그게 진기야."
"우리 마음이 크게 자비로워지니까 진기가 우리 몸을 둘러싸는게야,
모기들도 이 진기를 먹어서 저절로 배가 불러진 것이고."
"저번에 짐승들이 몰려왔을 때하고 같은 이치구먼요."
"그렇지."
"허, 참."
석주는 감격에 겨워 더 이상 말을 잇지못했다. 마음 하나로 미물중생들의
배를 불려 주다니 참으로 기막힌 일이었다. 이 엄청난 이치를 모든 사람이 알고
실제로 행하면 이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워질까, 생각하니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다.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혜원이 밖으로 나왔다. 혜원은 두 사람의 체험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형들께서 큰 공부를 하셨어요."
그녀는 무척 기뻐했다.
"도제가 쉬한 가르침을 준 덕이네."
"정말 고마워."
석주와필섭인 혜원에게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아니에요, 도형들께서 근기가 좋으셔서 하루 만에 깨우치신 거예요.
평소에도 몸을 아끼지 않고 자비행을 실천하셨기 때문이에요.
아무나 그리 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스승님의 가르침을 듣고 나서도
이레가 지나서야 깨우쳤어요."
"여자들은 워낙 물것을 싫어하잖아. 벌레 한 마리가 몸에 붙어도 소스라쳐 놀라고.
벌레나 지렁이. 뱀 등속을 너무 무서워 하지."
필섭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처음엔 그 마음을 떨치기가 참 어려웠지요. 모기들이 윙윙대면 소름이 돋았어요.
그들 몸이나 내 몸이나 겉모습만 다르지 똑같다는 생각을 자꾸 했더니 그 마음이
점점 엷어지데요."
하늘에는 별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릴 것처럼 총총히 빛났다. 뻐꾸기 울음소리,
소쩍새 울음 소리가 간간이 골짜기를 타고 올라왔다. 청령자는 소나무 위에서
자고 있었다. 세 사람은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이 해 여름은 무척 가물었다.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다. 초막의 샘물도 많이
줄어들었다. 초막 마당가에는 샘이 두 개 있었다.
하나는 넓이가 사방 한자 가웃에 깊이가 반 자 조금 넘었다. 이 샘물은 아주 맑고
맛이 좋아 식수로 썼다.
다른 하나는 깊이가 석 자쯤 되었다. 이 샘물로는 설거지, 빨래, 목욕등을 했다.
개숫물이 잘 스며들어가 좀 탁한 편이었다. 가뭄이 계속되자 두 샘물 모두 크게 줄었다. 빨래와목욕은 계곡으로 내려가서 했는데 물이 모자랐다. 바닥물까지 긁어서 쓸때가 많았다.
어느 날, 석주와 필섭인 수련을 마치고 물을 마시러 샘으로 갔다.
샘물은 바닥에서 한 치도 못 되게 있었다.
석주가 표주박으로 바닥을 긁으니 표주박에 물이 3분의 2쯤 찼다.
석주는 먼저 필섭에게 권했다. 필섭이 표주박을 건네 받아 막 입에 대려던 참이었다.
"필섭아."
난데없이 스승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필섭은 벽운 선생이 돌아온 줄 알고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벽운 선생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필섭이 헛소리를 들었나 보다 하며 다시 물을 마시려 하는데,
또 벽운 선생의 음성이 들렸다.
"필섭아, 그 물은 그냥 두고, 저 아래 샘물을 마셔라. 곧 목마른 중생이 여기로 온다."
바로 앞에서 하는 말같이 들렸다. 필섭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석주한테 이얘길 했다.
"이상한 일이네. 이런 적이 없었는데. 왜 난데없이 스승님의 음성이 들릴까.
헛소리는 분명 아니고
선연하게 들렸어. 참 희한하구먼."
"스승님께서 도력으로 말씀을 전하신게 아닐까요?"
석주가 자신의 체험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저쪽 샘으로 가지요."
"그러세."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겼다. 막 쓰는 샘물은 구정물처럼 흐릿했다.
필섭은 물을 떠서 입에 대려다 좀 머뭇거렸다.
물 속에 작운 티끌들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이 물을 마시고 행여 배탈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도 되었다.
한데 또 스승의 음성이 들려왔다.
"기쁘게 마셔라. 너희로 인해 다른 중생들이 덕을 입지 않느냐.
기쁜 마음으로 마시면, 이 더러운 물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수가 되느니라.
근심하며 먹으면 독이 된다."
이 말은 석주도 똑같이 들었다. 필섭은 얼른 물을 마셨다.
그의 가슴은 모기들을 향해 마음을 활짝 열었을 때처럼 기쁨이 충만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스처럼 싸아하고 시원한 기운이 위와 식도에서부터
온몸으로 펴져 갔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물파스가 스며든 것처럼 시원했다.
석주도 물을 마신 다음 필섭과 똑같은 체험을 했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강하게 내리쪼였지만, 두 사람은 조금도 덥지 않았다.
차디찬 계곡물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시원했다. 그리고 입에는 자꾸 침이 고였다.
평소보다 몇 배 빨리 고이는 것 같았다.
"형님, 온몸이 시원해지고 침이 굉장히 많이 생기네요. 형님도 그러십니까?"
석주가 이상히 여겨 물었다.
"나도 그래."
"왜 침이 자꾸 나오나요?"
"침이 좀 단 것 같지 않아?"
석주는 잠시 자기의 침맛을 음미해 보았다. 필섭의 말대로 약간 단맛이 느껴졌다.
"예, 정말 그런데요."
"이건 감로수야. 옥수라고도 하지.
스승님께서 좀 전에 기쁘게 마시면 약이 된다 이르셨잖나.
이 침은 약술세. 또 우리 몸이 시원한 것은 약 기운 때문이네.
그 기운이 더위를 막아 준 게야. 스승님께서 오늘 너무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구먼.
스승님께 인사를 드리세."
필섭과 석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땅바닥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스승께서 어디에계신지 몰라 초막 뒤편 백학봉을 향해 절을 바쳤다.
한 번이 아니라, 거듭 수십 번을 되풀이했다.
두 사람이 계속 절을 하는데 산 위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두 사람은 그제서야
절을 멈췄다.
잠시 뒤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자 셋이 산에서 내려왔다.
그들은 약초를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이었다. 목이 심하게 말랐던지
샘물을 바닥까지 긁어 마시고 골짜기 쪽으로 내려갔다.
얼마 후, 혜원이 수련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혜원인 석주와 필섭이한테
일어났던 일을 이미 알고 있었다.
"도형들께서 오늘도 좋은 공부를 하셨네요."
"알고 있었구먼. 한데 우리 둘 다 스승님의 말씀을 똑똑히 들었어.
선정 닦는 공부를 처음 할 때도 이 경험을 했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지?"
석주가 눈을 빛내며 혜원에게 물었다.
"멀리 있는 사람한테 말을 전하는 것을 천리전음이라고 해요.
수만 리 떨어진 곳에서도 바로 옆에서 하는 얘기처럼 들을 수 있어요.
스승님께선 도가 아주 높으시니까 우주 밖으로도 말씀을 전하실 거예요."
"그래!"
석주의 눈이 더욱 휘둥그래졌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니 온몸이 파스를 바른 것처럼 시원해지데.
지금도 내장까지 싸아하네. 이게 약 기운이 맞지?"
필섭이 자신의 몸을 여기저기 어루만지며 물었다.
"그래요. 참 좋은 기운을 받으셨어요.
아까 그 마음을 잃지 않으면 도형들 몸이 금방 깨끗해질 거예요."
"침도 아주 많이 나와."
"뱉지 말고 계속 삼키세요. 앞으론 배도 덜 고프고 목도 덜 마를 거예요.
도형들께서 오늘 참으로 큰 공부를 하셨어요."
혜원인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녀의 마음은 벌써 오래 전에 나와 남의
분별을 거의 다 떨쳤던 것이다.
세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소나무 위에 있던 청령자가 땅으로 내려왔다.
쳥령자는 혜원이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다음,
날갯짓을 몇 번 하고 뭐라 소리를 냈다.
"청령자가 참 좋아하네요. 축하드리려고 내려왔나 봐요."
혜원이 청령자의 뜻을 헤아리고 두 사람에게 전했다.
"얘가 어떻게 알지?"
필섭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그 동안 청령자도 공부가 많이 됐어요. 몸이 열려서 기운으로 주변의 변화를 알아채요. 도형들한테서 뿜어 나오는 기운이 오늘 새로워진 것을 몸으로 느낀 거예요."
"청령자야, 고맙다. 너도 부지런히 닦아서 큰 도를 깨우쳐라.
네가 우리보다 먼저 득도하걸랑 혜원이 도제처럼 우릴 이끌어다오."
필섭은 청령자가 매우 대견스러워 보여 날개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백령자는 사람의 말을 모두 알아들었지만. 청령자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래서 혜원이 필섭의뜻을 다시 전했다.
청령자는 혜원의 말을 알아듣고 날갯짓을 했다.
"고맙고 기쁘데요. 저도 오로지 수행에 전념하겠대요."
혜원이 또 청령자의 말을 대신 전해 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뒤였다. 점심나절에 낯선 청년들 다섯이 초막을 찾아왔다.
모두 20대로 보였는데 얼굴이 하나같이 불량스러웠다. 깡패처럼 보였다.
그들은 처막에 오자마자 샘에 가서 세수를 하며 소란을 피웠다.
석주와 필섭일 거들떠보지도 않고 저희끼리 한참 떠들어대더니
그중 하나가 필섭이한테 여기서 야영을 좀 하겠노라고 핶다.
말투가 매우 불손했다. 필섭인 내키지 않아 계곡에 가서 놀다 가라고
무뚝뚝하게 거절했다.
"경치가 근사해서 그러는데 하루만 쉬자고."
녀석은 대뜸 반말을 하며 시비조로 나왔다.
"거 되게 딱딱하게 구네."
"야, 말씨름 하지 말고 이리 와서 텐트나 치자."
"인심 더럽구먼.":
다른 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필섭인 울컥 화가 치밀었다.
"여긴 수도하는 데니까 시끄럽게 굴지 말고 어서 떠나."
필섭이 언성을 높였다.
"젊은이들, 어른한테 그 무슨 말툰가."
석주도 점잖게 타일렀다.
"어쭈 병신까지 나서네."
'병신도 도닦냐?"
"저것들 손 좀 봐줄까."
녀석들의 말투가 더욱 거칠어졌다.
"야, 이놈들아! 말조심해~"
필섭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석주가 모욕을 달하자 감정이 더욱 격해진 것이었다.
"뭐야, 이 새끼가! 맛 좀 볼래!"
한 녀석이 눈에 불을 켜고 외쳤다. 분위기가 사뭇 험악해졌다.
이때 혜원이 밖으로 나왔다. 혜원인 그림자처럼 조용히 마당으로 나섰다.
녀석들의 눈길이 일제히 혜원에게 쏠렸다.
"계집애도 있었네."
"거 쓸 만하게 생겼는데."
"야, 저거나 가지고 놀아 볼까."
"어이, 아가씨. 너도 도닦냐?"
저번에 이어 몸과 마음을 이완시키는 '깊은 호흡'에 대한 영상입니다.
'풍부한 숨'으로 몸과 정신 모두 건강해지는 한 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보이거나 만질 수 없습니다.
단지 가슴으로만 느낄 수 있습니다.
- 헬렌 켈러
북한산 정상에 오르면 높은 아파트 빌딩들도 성냥갑처럼 보입니다. 길 위를 달리는 차들도 개미 새끼들처럼 작아 보입니다. 거기 사는 사람들은 아주 작아서 먼지처럼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물며 하늘에서 이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수많은 별 중에서 우리가 사는 지구는 아주 작은 별이라 점 하나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곳에서 보자면 지구별에 사는 뭇 생명이 별 차이 없이 다 고만고만하게 보이겠지요. 살면서 키가 크네 작네, 예쁘네 추하네, 뚱뚱하네 날씬하네로 한참 고민했던 일들이 다 하찮게 보입니다.
경허 스님이 토굴에서 용맹정진할 때 누더기 옷에 이가 들끓어 피부 위를 마치 비지처럼 허옇게 덮었는데도 이를 잡지도 않고 가려워 긁지도 않기에 사미승이 물었답니다. “스님 안 가려우세요? 왜 이를 잡지 않으세요?” “저 하늘에서 보자면 사람 몸에 붙어사는 이나 땅에 붙어사는 사람이나 다 티끌처럼 보일 뿐이다. 이나 사람이나 다 똑같다.” 이어 경허 스님은 이나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생명이니 다를 바 없이 소중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늘처럼 커졌다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그 전과 매우 달리 보입니다. 쩨쩨하고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크고 넓은 시각으로 바라보니 세상일에 대처하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명상을 할 때나, 마음공부를 할 때 하늘처럼 마음이 커졌다 생각하며 시작합니다. 전에는 크게 생각된 허물들이 이제 사소하게 느껴집니다. 하늘처럼 마음이 커지니 모든 존재들이 다 똑같이 평등하고 소중합니다. 다 껴안고 사랑하며 축복하겠습니다.
"그렇겠지."
필섭은 아득히 먼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의 눈앞에 어떤 환상이 떠올랐다.
벽운 선생이 수많은 중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침을 펴는 환상이었다. 스승 앞에 벌레, 풀같은 미물중생에서부터 사람까지, 온갖 중생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 무리에 끼여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초막의 풍경은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큰 축제가 끝난 뒤의 적막감과도 같은 것이 감돌았다. 간간이 들려 오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만이 깊은 고요를 깨뜨렸다.
석주와필섭은 오랜만에 시장기를 느꼈다. 그들은 다시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청령자도 사냥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석주와필섭에게는 눈에 비치는 삼라만상이 모두 새롭게 다가왔다. 온갖 짐승들이 다 자기네와같은 수행자로 보였다. 짐승들만이 아니었다. 갖가지 풀과 나무들, 생명이 없는 돌과 물과 흙, 바람과구름 등도 그렇게 보였다. 만물중생이 다 함께 도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벽운 선생이 백령자를 데리고 초막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잘 닦았구나."
벽운 선생이 제자들의 절을 받고 나서 흐뭇해 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스승님의 은덕입니다. 저희뿐 아니라 수많은 짐승들까지 큰 감화를 입었습니다."
필섭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렸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공부를 하자. 이제 숨쉬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석주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스승을 쳐다봤다. 숨쉬는 공부라니, 숨이야 그냥 쉬는 것인데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석주야, 너는 무엇으로 숨을 쉬느냐?"
석주의 마음을 읽고 벽운 선생이 석주에게 물었다.
"코로 쉽니다."
"공기를 마시느라 쉽니다."
"숨은 어디로 들어가느냐?"
"가슴으로 들어갑니다."
벽운 선생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물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석주에겐 의외의 말씀이었다. 왜 틀렸다고 하실까. 석주는 그 이우를 궁금히 여기며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숨은 코로만 쉬는 게 아니다. 살갗으로도 쉰다. 숨쉴 때는 공기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천지의 기운도 같이 들어온다. 또 코로 숨을 쉴 때 공기는 가슴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기운은 배꼽아래 단전이라는 곳까지 들어간다. 여기가 단전이다."
벽운 선생은 손으로 석주의 단전을 만져 주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은 모두 살갗만으로 숨을 쉰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 숨이 코로 들어온다. 그래도 살갗의 숨구멍이 많이 열려 있어 그리로도 공기가 드나든다. 그리고 코를 통해 마시는 공기는 폐까지 들어오지만, 공기와 함께 들어온 천지의 기운은 단전까지 쑥쑥 내려간다. 그래서 아기들은 숨쉴 때마다 아랫배가 불룩불룩 나온다.
또 살갗의 구멍들을 통해서도 천지의 기운이 들어온다. 아기들은 천지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 몸이 매우 깨끗하다.
한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온갖 번뇌에 시달리면서 살갗의 숨구멍이 조금씩 닫힌다.코로 들어오는 숨도 폐에서 멈춘다.숨을 따라 들어오는 기운이 단전까지 못 내려가게 된다.
이때문에 어른들은 숨쉴 때 배가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
"살갗의 구멍도 많이 닫혀 아주 적은 공기만이 드나든다. 이리하여 천지의 기운을 크게 못 받으니 자연히 몸이 탁해진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사람은 숨쉴 때 어깨가 오르내린다."
석주는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숨을 살펴보았다. 숨을 쉴 때 배도 어깨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가다 말았다. 벽운 선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수행이 잘된 사람은 아기처럼 숨쉰다. 갓 태어난 아기같이 아랫배로 쉬다가, 나중엔 태아처럼 살갗만으로 숨쉴 수 있게 된다. 태아와 같이 쉬는 숨을 태식이라 부른다. 아기와 같이 숨쉬면 몸도 아기처럼 깨끗해진다. "
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얼굴이 갓난아이 처럼 맑았기때문이었다. 혜원이도 그랬다.
"숨은 마음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의 숨은 가지런하다. 숨을 깊고 가지런하게 쉬면 마음도 따라서 고요히 가라앉는다.
정신이 산란하고 마음이 괴로우면 숨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도는 마음 공부, 정신 공부와 함께 숨쉬는 공부를 한다. 숨은 모름지기 단전으로 쉬어야 한다. 그래야 천지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다. 또, 하늘의 진기가 몸에 가득 채워져야 하늘 사람 되는 길이 열린다."
벽운 선생은 석주와 필섭에게 단전 호흡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단전이란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에 콩팥과 붙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운은 여기에 쌓였다가 온몸으로 퍼진다. 그러니까 단전은 바로 기운의 창고와 같은 것이다. 단전에 기운이 충만한 사람은 건강하다. 마음도 튼튼하다.기운이 허한 사람은 몸이 부실해진다.
마음 역시 허약해진다. 한데 기운만 세고 마음과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단전의 기운을 나쁜 일에 쓴다. 그러다가 결국 기운이 소진되고 몸도 망가진다. 마음과 정신이 올바르나 단전이 기운이 약한 사람은 그 올바른 마음과 정신을 굳게 지키기 어렸다. 자기의 올바른 뜻을 크게 펴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수행을 바로하려면, 마음도 잘 닦고 단전의 힘도 길러야 한다.
너희들도 한번 숨을 편안히 쉬어 보거라."
석주와 필섭이 자세를 가다듬고 숨을 쉬었다.
"필섭아, 네 숨은 어디까지 내려가느냐?"
잠시 후에 벽운 선생이 필섭에게 물었다.
"아랫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꼽 윗배까지 오르내리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것은 단전 호흡이 아니다. 복식 호흡이다. 마음과 정신이 좀 들떠 있기 때문에 배꼽 위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단전 호흡은 배꼽 아래로만 내려가는 숨이다."
"석주는 어떻더냐?"
"숨이 배꼽 근처까지 밖에 안 내려갔습니다."
"네 마음과 정신이 아직도 위축돼서 그렇다.오늘부터 단전으로 숨쉬는 공부를 하자.
둘 다 바닥에 편안히 눕거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앞에서 벌렁 눕기가 죄스러워 좀 머뭇거렸다.
"괜찮다. 어서 누워라."
둘은 스승의 재촉을 받고서야 조심스레 나란히 누웠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의 두 손을 단전 부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일렀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안히 갖거라. 천지 우주 삼라만상과 너희가 한몸이라 여겨라. 또, 선정 공부를 할 때처럼 정신을 텅 비우거라. 그런 다음에 마음의 눈으로 단전을 바라보아라. 정신을 오로지 단전에만 집중시켜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의 가르침의 따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정신도 맑게 비웠다. 마음에는 아늑한 평화가 깃들였고, 정신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자, 숨을 아주 천천히 깊게 쉬어라."
필섭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힘이 장사인 만큼 폐활량도 컸기 때문에 임신한 여인처럼 배가 불룩했다. 그런데 배꼽 위까지 올라왔다.
"필섭아, 배꼽 아래로만 쉬어라. 그래야 좋은 기운이 단전에 잘 모인다."
벽운 선생이 필섭의 호흡을 교정해 주었다.
석주의 배는 그리 높게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이 이른 대로 배꼽 아래만 천천히 움직였다. 폐활량은 적지만 마음이 잘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열흘 동안 단전 호흡만 하도록 시켰다. 열흘쯤 되자 숨이 제대로 단전까지 내려갔다. 앉아서도 서서도 단전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전 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몸푸는 도인 체조를 배웠다. 여러가지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법도 익혔다. 혜원이 체조 동작과 행공 자세를 먼저 시범으로 보여 주면, 두 사람이 그대로 따라서 했다. 체조와 행공 자세가 몸에 배는 데 또 며칠이 걸렸다. 이것들을 가르치며 벽운 선생이 이런 얘길 했다.
"이 체조와 행공 자세는 마디마디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동작을 제대로 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관절이 다 풀린다. 또, 단전을 키워 주고 온몸에 기운을 보내 몸을 아주 튼튼하게 만든다. 몸이 풀리면 숨쉬기가 편하다. 반대로 몸이 굳어 있으면 숨이 잘 막힌다.
몸이 굳었을 때 숨을 단까지 끌어 내리려면 힘이 들어간다. 단전 호흡하면서 무리하게 힘을 들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숨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마음 또한 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몸이 무거우면 정신도 마음도 어두워지기 쉽고, 몸에 힘이 넘치면 마음 역시 가뿐해진다. 이 때문에 우리의 도는 몸 공부 마음 공부 정신 공부 숨 공부를 같이하는 것이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단전 호흡 수련을 부지런히 하라 이르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 제자들은 스승이 어디를 가는지 아무도 물랐다. 묻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백령자가 벽운 선생을 따라갔다.
석주와 필섭은 하루에 세 번씩 벽운 선생이 가르쳐 준 행공법을 수련했다. 또 나머지 시간에는 틈틈이 선정을 닦으며 단전 호흡을 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체조로 몸을 풀고 나면 숨쉬기가 한결 더 편해졌다. 또,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취하고 단전 호흡을 하고 나면 아랫배가 든든했다. 전신에 기운이 차오른 느낌도 들었다.
청령자는 여전히 초막에서 지냈다. 전과 다름없이 하루에 한번씩 사냥을 나갔다. 그 외의 시간은 초막 주변에서 보냈다.
그런데 석주와 필섭이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배울 무렵부터 청령자도 특이한 몸짓을 자주 했다. 소나무 위나 땅바닥에서 여러 가지 날갯짓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했다. 날갯짓이나 비트는 동작 모두 다양했고, 언제나 그 순서가 똑같았다. 파란 풀밭이나 소나무 위에서 하얀 학이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루는 석주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혜원에게 물었다.
"도제, 청령자가 왜 저러지? 날아오르지도 않으면서 자꾸 날개를 파닥이네. 이상한 날갯짓도 많이 하고. 날기 연습을 할 리도 없을 텐데. 몸은 또 왜 자꾸 비틀어댈까. 그리고 똑같은 순서대로 되풀이하네."
"청령자도 도형들처럼 행공을 하는 거예요. 청령자의 동작은 도형들이 하는 도인 체조나 행공 자세와 마찬가지예요."
"그래? 희한하구먼. 그 행공법은 백령자가 가르쳐 줬나 보지?"
"맞아요. 그렇지만 백령자한테 행공법을 가르쳐 준 분은 우리 스승님이세요."
"아, 그랬었구먼. 그런데 도제, 학도 단전이 있어? 단전으로 숨을 쉴 수 있나?"
"그럼요. 짐승들도 다 단전이 있어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전 호흡도 하고요. 짐승들은 번뇌가 적으니까 더 잘할 수도 있을거예요."
"득도하는 것도 사람보다 빠르겠네."
"그렇진 않아요."
"왜?"
"정신이 사람만큼 맑지 못해서 그래요. 사람은 삼라만상 온 우주를 생갈할 수 있지만 짐승들에겐 그만한 능력이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신의 힘이 사람만 못하지요. 그러니까 크게 깨우치려면 정신의 힘을 많이 길러야 해요."
어느덧 단전 호흡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다. 석주와 필섭인 자신들의 몸이 좋아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좀 이상한 체험도 하게 되었다.
하루는 필섭이 행공을 끝낸 다음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 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따뜻해졌다. 처음엔 은은하게 따스하더니 나중엔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필섭이 수련을 마친 뒤 혜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아랫배가 뜨거워지더군. 지금도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어. 왜 그러지?"
"단전에 기운이 차고, 또 마음이 단전에 자리잡아서 그래요. 도형, 스승님께서 단전은 콩팥과 붙어 있다 하셨죠. 콩팥이 오행으로 무엇인지 아시죠?'
"수(水)지, 물이야."
"그래요. 단전의 기운도 수, 즉 물이에요.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의지해 있죠?"
"염통, 심장이지."
"염통은 오행으로 불, 화잖아요."
"그렇지."
"마음도 화예요. 그런데 정신을 단전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도 따라서 단전으로 내려가요. 도형, 물은 어떤 성질을 지녔지요?"
"밑으로 가라앉고 또 차갑지."
"불은요?"
"위로 치솟고 뜨겁지."
"마음의 불성질이 기운의 차가운 물성질을 뜨겁게 달궈 주어서 아랫배가 후끈거린 거예요."
"아하, 그랬었구먼!"
필섭은 혜원의 설명을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 도형도 곧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혜원이 석주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석주는 이틀 뒤에 필섭과 똑같은 체험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전기에 감전된 듯 휘청휘청 흔들이기도 했다. 아랫배가 마구 떨릴 때도 있었다. 혜원이 그런 현상들이 생기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전에 기운이 차서 그래요. 단전이 채워지니까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도 평소보다 강하지요. 그 때문에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찌릿해요. 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스멀거리기도 하고요. 뜨거운 기운 대신 싸아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전에 아팠던 곳이 뜨거워지거나 떨려요."
그랬다. 필섭인 몇 년 전에 어깨를 크게 다쳤던 적이 있는데, 다친 곳이 특히 후끈거렸다. 석주는 무릎이 안 좋았었다. 한동안 관절염을 앓았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무릎으로 자주 내려왔다. 무릎이 자주 저절로 떨리기도 했다. 벽운 선생과 백령자는 달포 만에 돌아왔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이 수행을 잘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똑같은 공부를 계속하라고 일렀다. 또, 이런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단전에 기운이 차면 정도 충만해진다. 정이 충만해지면 자칫 음욕에 빠지기 쉽다., 정은 생명력의 뿌리다. 정이 충만해야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음욕에 빠져 정을 빼앗기면 기운이 크게 소모된다. 그저 음욕이 일기만 해도 정이 탁해진다. 탁한 정은 몸도 마음도 탁하게 만든다.
정을 자꾸 배출라면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다. 공부가 깊어지질 않는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음욕에서 온전히 헤어나야 참도인이 될 수 있다. 너희는 그래도 음욕을 많이 끊은 사람들이다. 하나 그 뿌리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음욕의 뿌리가 자라지 않도록 경계하거라. 음욕에서 헤어난다는 것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다. 훌훌 떨치고 넘어서는 것이니라.
사람의 뇌신경 중에 송과선이란 게 있다. 송과선은 기맥을 따라서 기운이 잘 유통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이 송과선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몸은 기운이 잘 유통되어 아주 부드럽다.한데 사춘기가 되면 송과선이 퇴화한다. 대신 뇌하수체라는 게 왕성히 활동한다.
뇌하수체가 활발히 작용하면서 남자 여자의 몸이 크게 달라진다. 또, 난자와 정액이 생기고 음욕이 강해진다. 음욕은 또 온갖 번뇌를 불러온다. 음욕으로 인해 몸과 마음과 정신이 크게 약해진다.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음욕을 승화시켜 삼라만상 모두를 품어 안는 크나큰 사랑으로 바꾼다.
그리고 참수행자의 뇌하수체는 힘을 잃는다. 대신 송과선이 도로 소생하여 활발히 활동한다. 불현듯 여인을 향한 음욕이 생기거든 온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거라 마음으로 나를 남김없이 비우고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거라. 그리하면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게다."
필섭은 애욕을 잊고 지낸 지 이미 오래였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여의고 절망 속에 헤매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괴로움 때문에 다시는 여자와 인연을 맺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가끔 여자가 그리워졌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절제를 잘해왔다. 자꾸 절제하다 보니 갈수록 애욕이 희미해졌다.
석주 역시 아내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여자를 멀리하게 됐다. 또 상처를 입을까봐 더 이상 이성으로서 여자를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았다. 혜원과 함께 살지만, 혜원일 이성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동기간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애욕을 완전히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간혹 여인의 따스한 체온이 아련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애욕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백령자는 청령자에게 새로운 행공 자세들을 가르쳐 주었다. 청령자는 백령자가 시범을 보이는 대로 똑같이 따라서 했다. 새로 배우는 동작들은 전에 하던 동작들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목, 날개, 다리 등을 쫙 뻗기도 하고, 휘휘 돌리기도 하고, 이리 저리 꼬기도 했다. 백령자가 청령자에게 새 행공법을 가르쳐 준 다음, 벽운 선생은 백령자를 데리고 다시 초막을 떠났다.
6월이 되었다. 온 산이 초록빛으로 짙게 물들었다. 나무들마다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아서 산소를 물씬물씬 뿜어냈다. 운학산의 공기는 매우 싱그럽고 신선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시원한 공기가 쏴아쏴아 단전까지 밀려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