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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이노베이션, 장애인 일자리 위해 카페와 세차장 오픈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은 21일 대전 유성구 기술혁신연구원에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행복키움’과 ‘행복디딤’의 개소식을 가졌습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은 직업 활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의 안정된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는 제도로, 관련 법이 정한 장애인 친화적 작업환경을 조성해 장애인고용공단으로부터 공식 인증을 받은 사업장을 말합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립입니다. 자신들이 없어도 홀로서기가 가능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SK이노베이션이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을 만든 이유입니다.

     

    장애인을 금전적을 돕거나 생활에 필요한 각종 보조용구를 지급하는 일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기업들로서도 부담이 적은 일입니다.

     

    하지만 자회사형 장애인 사업장은 기업이 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형태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SK이노베이션의 진심이 담긴 사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복키움은 SK이노베이션 기술혁신연구원 안에 카페 두 곳을 운영하게 되고, 행복디딤은 세차장을 운영할 예정입니다.

     

    ‘행복키움’은 SK이노베이션이, ‘행복디딤’은 SK에너지가 지난 1월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입니다. SK이노베이션과 SK에너지가 지난해 11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 MOU를 체결한 이후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행복키움’과 ‘행복디딤’에는 지난 4월과 5월에 걸쳐 교육, 훈련을 받은 중증 장애인 21명과 경증장애인 2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행복디딤에서 세차 일을 하는 유인태씨는 “행복디딤 세차장에서 일하면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라며 “세차 업무를 더 전문적으로 배워서 다른 누군가에게 저와 같은 기회를 소개해주고 싶은 꿈이 생겼다"라고 말합니다.

  • 걸어서 출근하며 장학금 만든 한남대 총장

    한남대학교의 이덕훈 총장은 취임 후 전용차를 없애고, 그 유지비를 장학금을 비롯한 각종 학교 발전기금으로 사용했다. [이미지 : 한남대학교]

    이덕훈 한남대 총장은 매일 걸어서 출퇴근합니다.
     

    날씨가 궂을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꿋꿋이 4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학교로 향합니다.

     

    대학 총장들은 대부분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을 이용합니다. 한남대의 경우 총장 차량 유지비가 1년에 1억5천만 원 가량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총장은 2016년 취임 뒤 총장 전용차를 없애며 절약한 예산으로 ‘다니엘 장학금’을 만들었습니다.

     

    ‘다니엘 장학금’은 한남대 최고의 장학금으로 학생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입학부터 졸업까지 등록금 전액은 물론 연간 400만 원의 도서구입비와 기숙사비도 지원합니다. 장학생이 일반대학원에 진학하면 또 학비를 대줍니다.

     

    이 총장이 매일 4만보씩 걸으며 아낀 예산 가운데 일부는 이 학교 환경미화원이 단체복을 마련하는 데 쓰이기도 했습니다.

     

    도보 출근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날씨가 더우면 온몸이 땀에 흥건하게 젖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총장은 배낭에 여분의 옷 한 벌을 넣어 다닙니다.

     

    이 총장은 하루 40분 가량 걸리는 출근시간이 더없이 유용하다고 합니다. 학교 정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10년 전쯤 건강에 이상신호가 오자 걷기 운동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걸어서 출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침에 출근할 때 학생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눌 때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 진다”고 말했습니다. 

  • 히말라야의 성자 밀라레빠 (4) - 대성취를 이루다

    밀라레빠는 고향에 도착해서 꿈속에서와 똑같이 폐허가 된 집을 보게 되었습니다. 흙먼지 속에서 어머니의 유골을 찾아 수습하며 말할 수 없는 고뇌를 느꼈습니다. 여동생은 집을 떠나고 없었습니다. 원수가 왔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쫓기기도 했습니다. 밀라레빠는 닥카르타소 동굴로 떠나며 수행을 위하여 어떤 마을이든 사람 사는 곳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

     

    허망한 속세의 향락에 유혹당하지 않고

    명상의 평화가 깊어지기를

     

    무의식의 평온에 빠지지 않고

    초의식의 꽃이 피어나기를

     

    밤낮으로 끊임없이 명상을 계속하며 삼 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밀라레빠는 식량이 떨어지자 동굴 근처에 있는 쐐기풀로 죽을 끓였습니다. 몸이 해골같이 야위고 피부도 쐐기풀과 똑같은 녹색을 띠기 시작했으며 털도 녹색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냥꾼들이 밀라레빠의 비참한 모습을 동정하여 세상에 나가 더 나은 삶을 살라고 권하였습니다.

     

    말(생각)을 전념(專念)의 올가미 밧줄로 붙잡아

    명상의 기둥에 묶어두고

    스승의 가르침을 먹이면서

    의식의 흐름을 마시게 하네.

     

    이 말은 드넓은 행복의 평원을 달리게 되니

    목적지는 모든 승리자들의 나라

    후미는 윤회하는 삶 벗어나고

    선두는 해탈의 안전한 곳으로 나아가네.

     

    이렇게 달리며 불성(佛性)을 전달하니

    당신들의 행복이 이와 같은지?

    속세의 행복을 나는 원하지 않노라.

     

    몇 년이 지나 누이동생 페타가 소식 듣고 동굴로 찾아왔습니다. 페타는 오빠를 잘 알아보지 못하다가 목소리를 듣고서야 울음을 터뜨리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었습니다. 동생은 자기가 본 부유하고 존귀한 라마승 밑에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간청했습니다.

     

    다음에는 어렸을 때 약혼했던 제세가 누이동생과 함께 잘 절여둔 고기와 버터, 보릿가루를 들고 찾아왔습니다.

     

    “먹을 것은 보시를 받으세요, 입을 것은 가져오겠어요.”

     

    “좋은 옷과 음식과 친구들에 둘러싸여 흉내만 내는 수행에 만족할 수 없소. 그리고 당신과 페타는 옷가지를 들고 여기 오지 않아도 돼요. 불법에 귀의한다면 오는 것을 허용하겠소. 먹을 것을 구하러 가라는 충고는 고맙지만 그런 말이 내겐 들리지 않소.”

     

    그 무렵 명상 중에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혼란이 왔던 밀라레빠는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고, 어려움이 닥칠 때 보라며 스승이 주었던 책에서 수행 중의 장애를 극복하는 행법을 찾아 실행하였습니다. 그러자 몸속에서 미세한 기도(氣道)가 열리고 배꼽 아래의 매듭이 풀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어서 모든 감각을 초월한 고요하고 맑은 의식 상태가 찾아왔습니다. 수행자에게 바친 음식의 공양이 깨달음의 공덕이 되어 높은 경지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꿈속에서 밀라레빠는 수백 개의 분신을 만들어 불국토에 가서 그곳의 가르침을 듣고 많은 사람들에게 설법을 하였습니다, 몸을 빛이나 물로 변화시킬 수도 있었습니다. 밀라레빠는 현실에서도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수행을 하였고 현실에서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밀라레빠는 생명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과 초월의 길로 나아갔습니다. 수많은 제자들을 수행시키고 대중들을 감화시키며 바른길로 인도했습니다. 밀라는 종교의 성자들에게 공통되는 거룩함으로 인류가 무지의 어둠을 벗어나도록 돕는 또 하나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 한센인 50년 섬긴 강칼라 수녀

    강칼리 수녀가 전북 고창군에서 열린 ' 나눔의 삶 50주년' 축하 행사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이미지 : 고창군청]

    강칼라 수녀는 한센인의 친구이자 어머니로 불립니다.

     

    ‘작은자매 관상수녀회’ 소속으로 1968년 한국에 파견된 강칼라 수녀는 그로부터 50년 동안 한센인들과 함께 살며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줬습니다.

     

    강칼라 수녀가 반평생을 산 전북 고창의 호암마을(옛 동혜원마을)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한센인들이 살기 시작한 곳입니다.

     

    강칼라 수녀는 이곳에서 한센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돼지를 키우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카를라라는 그의 세례명을 발음하기 어려워 칼라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는 한센인을 돌보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했습니다. 무엇보다 사회에서 소외된 그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한센인 치료를 위해 스페인에 있는 병원에 가서 공부를 하고 간호보호사 자격을 따기도 했습니다. 자신에게는 몸 하나 겨우 누일 수 있는 골방만을 허락했습니다.

     

    한때 200명 가까운 한센병 환자와 가족이 살았지만 지금은 10여 명만이 살고 있습니다. 강칼라 수녀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공동체 사업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호암마을 도자기는 꽤 이름난 제품이라고 합니다.

     

    한센인을 대신해 고무신을 신고 매일 자전거로 읍내를 오가는 젊은 수녀는 이제 반백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속명이 탈로네 리디아인 강칼라 수녀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19세에 ‘작은 자매 관상 수녀회’에 입회했습니다. 전쟁고아를 돌보던 그는 1968년 한국 파견을 자원해 지구 반대쪽의 작은 나라와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강칼라 수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센인과 함께 한 지난 50년은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며 “대신 아파 줄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호암상을 수상한 강칼라 수녀의 삶을 소개한 글입니다.

     

    강칼라 수녀는 사회에서 격리되고 외면당한 한센인의 마음을 보듬고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친 한센인의 친구이자 어머니다. 이탈리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달로네 리디아는 25세이던 1968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전북 고창 호암마을의 한센인 정착촌 동혜원에 도착하여 강칼라 수녀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50년 동안 한센인의 곁에서 헌신적인 삶을 살아왔다.

     

    한국에서 한센인은 감염 우려와 불편한 외모, 편견으로 인해 차갑게 외면당했다. 어디에도 그들의 자리는 없었고, 비참한 삶은 2세들에게 대물림됐다. 하지만 강칼라 수녀에게 한센인은 똑같이 고귀한 인간이자 가족이었다. 그는 가족조차 감당하기 힘든 한센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환자와 그 가족들을 가장 귀한 사람들로 섬기며 평생을 함께 했다. 무엇보다 그들이 존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바쳤다.

     

    1916년 소록도 자혜병원 설립 이후 한센병 치료와 관리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삶의 문제는 항상 뒷전이었다. 강칼라 수녀는 외롭고 구석진 개인의 삶에 다가갔다. 고통스러운 일상을 위로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희망의 불씨를 살리며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치유했다. 한센인들은 그가 절망의 순간을 견디게 해 준, 존재만으로도 희망이 되어 준 사람이라고 담담하게 고백한다. 강칼라 수녀의 삶은 한국 사회가 기억해야 할 실천적 사랑의 귀감이다.

     

    강칼라 수녀는 한센인 외에도 성매매 여성과 자녀들, 거리의 윤락여성과 그 아이들, 노숙자들, 병들고 가난한 이들처럼 가장 낮고 비참하고 외면당하는 사람들을 돌봤다. 생활과 의료, 교육 사업을 통해 절망 대신 희망을, 좌절보다 용기를 줄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을 꿈꿨다. 50년 동안 자신을 바쳐 헌신해 온 ‘푸른 눈의 천사’는 오늘도 변함없이, 검소하고 묵묵하게 어려운 이를 위해 살아가고 있다.

  • 히말라야의 성자 밀라레빠(2) - 밝은세계 향해 나아가다

    밀라레빠는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파괴한 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몹시 후회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 음식을 먹을 수도 없었고 잠을 잘 수도 없었습니다. 밀라레빠는 올바른 가르침을 찾기로 결심하고 길을 떠났습니다. 밀라레빠에게 가르침을 주던 한 라마승이 밀라레빠에게 마르파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남부 지역 로닥에 위대한 인도 성자이신 나로파님의 제자 마르파님이 계시다. 마르파님은 경전 번역의 일인자고 밀교 교리에 뛰어난 사람인데, 너와는 전생으로부터 인연이 있으니 거기로 가거라.”

     

    마르파의 이름을 듣는 순간 밀레르빠의 눈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마르파를 찾아가는 여러 달 동안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습니다.

    ‘언제 내 스승을 만나게 될 것인가? 언제 그의 얼굴을 우러러보게 될 것인가?’

     

    마르파는 밀라레빠가 오기 전날 밤, 꿈을 꾸었습니다. 스승 나로파가 나타나 녹이 슨 금강저를 주며 황금병에 담긴 감로수로 녹을 닦고 승리의 깃발 위에 세우라고 지시했습니다. 금강저를 닦아 깃발 위에 세우니 찬란한 빛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면서 중생들이 예배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르파는 행복한 마음으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마침내 밀라레빠가 찾아왔으나 마르파는 쉽게 가르침을 주지 않고 여러 가지 힘든 일만 하게 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오는 사람들의 예물을 약탈하는 마을에 가서 우박 폭풍으로 혼내주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밀라레빠는 마음의 고통을 억누르고 마르파가 말한 대로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약속한 대로 가르침을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뭐라고? 아니 그래, 내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인도에서 들여온 그 신성한 법을 너의 그 악업의 대가로 가르쳐 달란 말이지? 당장 마을에 입힌 피해를 모두 배상하고 죽은 사람들을 다시 되살려 놓고 오렴. 그러면 내가 너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겠다.”

     

    다음날 아침 밀라레빠를 찾아온 마르파는 산마루에 둥근 건물을 짓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계획을 잘못 세웠다며 흙과 돌들을 원래의 장소에 돌려놓게 하였습니다. 다음에는 반달 모양의 집을, 그 다음에는 삼각형 모양의 집을 짓게 한 다음 다시 부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는 사각형의 9층 집을 짓고 10층에 장식물을 얹으라고 하였습니다.

     

    밀라레빠의 등허리에 난 상처에서 피고름이 흘러 등 전체를 적셨습니다. 그래도 밀라레파는 짐을 나르며 일을 계속하였습니다. 마르파의 부인인 다메마는 안타까워하며 늘 좋은 음식을 가져다주고 밀라레빠를 위로하였습니다.

    “정말 알 수 없는 분이야. 보통 때 같으면 개를 만나도 불법을 가르치고 그 개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는 분이었는데……. 그러니까 스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는 마라.”

     

    수제자들을 위한 대관정 의식이 열리는 날, 다메마는 밀라레파에게 그 의식에 참석해 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파는 제자들에게 베푸는 의식이 있는 날마다 밀라레빠에게 트집을 잡고 머리카락을 잡아끌거나, 발길질하거나, 바닥에 거꾸러뜨려 쫓아냈습니다.

     

    다메마는 밀라레빠의 처지를 동정하여 마르파의 제자인 곡파스님이 사는 마을로 보내 교리를 배우게 하였습니다. 마르파 이름으로 된 편지를 써 주고, 나로파 스승님의 목걸이를 몰래 내어 주어 마르파가 보낸 증명으로 삼게 했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마르파는 자기 아내와 곡파스님에게 벌을 내렸습니다. 절망에 빠진 밀라레빠는 목숨을 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제가 악업이 너무 많아 저만 고통당한 것도 모자라 사모님과 스님까지 끌어들였네요. 저는 이생에선 스승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죄를 짓고 있으니 차라리 인생을 빨리 끝내는 게 훨씬 나을 것 같아요.”

  • 그림자로 더욱 빛난 최태원 SK그룹 회장

    지난 28일 최태원 SK 회장이 사회적 가치의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고 알리기 위한 ‘소셜밸류커넥트2019(Social Value Connect 2019 SOVAC)'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미지 : 미디어 SK]

    28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뜻깊은 행사가 열렸습니다.

     

    사회적 가치의 경험과 비전을 공유하고 알리기 위한 ‘소셜밸류커넥트2019(Social Value Connect 2019 SOVAC)'입니다.

     

    올해 처음 열린 이 행사에는 기업인, 비영리단체 회원, 대학생, 일반인 등 4천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참석자 수만으로 보면 첫 행사임에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당초 SOVAC 사무국은 최대 2천 명 정도의 참여를 예상하고 행사를 준비했는데 21일 홈페이지를 통해 등록한 참가 신청자만 5천 명을 넘자 등록창구를 닫아야 했을 정도입니다.

     

    ‘패러다임 전환, 사회적 가치의 시대가 온다’를 주제로 열린 SOVAC는 사실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행사입니다. 4천 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하는 행사의 경비를 대부분 부담하고 많은 도움을 준 것도 SK그룹입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서 최 회장은 그늘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최대 규모의 행사를 조용히 지켜보며 응원했습니다.

     

    이른바 재벌그룹 회장이 하루를 꼬박 내어 특정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날 하루 종일 행사장을 지켰습니다. 점심시간에도 샌드위치를 먹으며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최 회장은 행사 내내 무대 아래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이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주제는 휴대폰으로 직접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최 회장을 향해 쓴소리를 하는 이도 있었지만 최 회장은 묵묵히 들습니다.

     

    쓴소리를 뱉은 이는 중증 장애인을 고용해 회사를 꾸려가는 베어베터의 김정호 대표였습니다. 그는 사회적 가치를 강조하는 SK가 장애인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그 말에 대한 최 회장의 반응은 행사가 끝난 뒤에 나왔습니다. 이날 행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묻자 최 회장은 장애인 고용 문제에 대해 답했습니다.

     

    “(장애인 고용 문제는) 열심히 하려고 애를 썼는데 왜 안됐을까 당황했습니다. 무조건 하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하겠습니다.”

     

    SK는 이번 행사 준비에서부터 비용 대부분을 부담했지만 참가자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에 그룹이 드러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습니다. 행사장은 물론 팸플릿에도 SK라는 문구조차 적지 않았습니다.

     

    최 회장은 이날 행사가 끝난 뒤 기자들의 질문에 자신이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게 된 과정도 비교적 소상하게 밝혔습니다. 언론에 난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21년 전 어려운 시기에 회사를 물려받고는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 살아남는 것이었고 살아남았습니다. 십 년 전쟁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착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고 공감능력이 제로였으며 사람을 보지 않고 어떻게 돈을 벌까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저와 반대인 사람을 만났습니다. 돈에 관심이 없고 힘든 이들에게 다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나와 어떻게 다를까 가만히 관찰해보니 내가 잘못 살아온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공감능력을 배워서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고민하다 사회적 기업을 알게 됐고 영리 기업도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주주도 꼭 돈만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장애인 고용을 덜 했다고 야단을 맞았는데 예전 같으면 화를 냈겠지만 이제는 어떤 분은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SOVAC은 사회적 가치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맺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사회가 지속 가능해야 회사도 지속 가능하고 개인의 행복도 담보될 수 있습니다.”

  • 88살 ‘인사요정’의 행복한 은퇴식

    캐나다 브리티시콜롬비아주에 사는 티나 데이비슨 할머니가 약 400여 명의 학생들로부터 마지막 인사를 받으며 환하게 웃고 있다. [이미지 : CNN뉴스 유튜브 캡처]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주 코목스에 사는 수백 명의 학생들이 공유하는 추억이 있습니다.

     

    등굣길에 환하게 웃으며 자신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던 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지요.

     

    하일랜드 중학교 근처에 사는 티나 데이비슨 할머니는 지난 12년 동안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습니다.

     

    [[IMAGE|418|center|티나 데이비슨 할머니는 지난 12년 동안 매일,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다. [이미지 : CNN 유튜브 캡처] ]]

     

    하지만 할머니는 더 이상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지 못하게 됐습니다. 거동이 불편해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한 것이지요.

     

    이 소식을 들은 학생 400여 명이 지난 9일 할머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길을 가득 메웠습니다.

     

    학생들은 꽃다발과 직접 만든 손팻말 등을 들고 데이비슨 할머니 집으로 행진했습니다.

     

    ‘할머니 사랑해요’

    ‘당신이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IMAGE|420|center|학생들이 티나 할머니께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고 있다. [이미지 : CNN뉴스 유튜브 캡처] ]]

     

    티니 할머니는 학생들이 온다는 얘기를 듣고 현관문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활짝 웃으며 학생들을 환영했지만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내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IMAGE|419|center|티나 할머니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온 학생들. [이미지 : CNN뉴스 유튜브 캡처] ]]

     

    티니 할머니와 지금은 세상을 떠난 남편 켄은 2007년 이곳으로 이사 온 뒤부터 등교하는 십대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혼자가 된 뒤에도 계속했지요.

     

    학생들은 등굣길에 환한 미소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좋았나 봅니다.

     

    2016년 밸런타인데이 때에는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들이 집을 찾아와 붉은색과 분홍색으로 만든 하트 모양의 장식품으로 집을 꾸미기도 했습니다.

     

    [[IMAGE|421|center|학생들로부터 마지막 인사를 받는 티나 할머니가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미지 : CNN뉴스 유튜브 캡처] ]]

  • 스코틀랜드 의사들의 새로운 처방, 자연

    스코틀랜드 세틀랜드의 의사들은 지난해 10월부터 환자들에게 ‘자연’이라는 치료법을 처방할 수 있게 됐습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이 프로그램은 당뇨, 정신 질환, 스트레스, 심장병 등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한 ‘처방’입니다.

     

    자연 처방을 소개한 팸플릿에 담긴 내용을 보면 흥미롭기도 하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담겨 있습니다.

     

    바람막이를 만들어 바람의 속도를 느껴보기, 자연에서 얻은 소재로 해변에서 예술 작품 만들기, 개와 함께 산책하기, 풀밭에 얼굴을 묻고 있어 보기, 해변 청소하기, 야외에서 식사하기, 누워서 구름 바라보기, 새에게 모이주기 등등

     

    자연이 주는 치료 효과를 알려주는 증거는 많습니다. 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하루에 90분 이상을 보내면 우울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뇌의 활동량이 줄어듭니다. 혈압이 낮아지고 불안감이 줄어들며 행복 관련 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합니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를 떨어뜨려준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자연휴양림에서 머물면 심박동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일본 니혼 의과대에서 연구한 결과 직장인이 일정 기간 삼림욕을 하게 되면 암세포를 없애주는 자연살상세포(NK세포)의 활성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독일은 숲의 치유 효과를 인정하고 의료보험에 이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처방을 받으면 무료로 숲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것이지요.

     

    자연이 의사나 약사의 처방전에 포함될 날도 멀지 않은 듯합니다.

  • 마음으로 올리는 공양 12가지

    불가의 가르침에 의하면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에는 의연(意緣) 공양과 의환(意幻) 공양이 있습니다. 의연 공양은 마음의 인연에 따라 외부의 실물을 취하여 공양 올리는 것이고, 의환 공양은 실제의 물질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관상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삼계 만물은 모두 마음의 환현(幻現)이기에, 마음을 모아서 사물을 관상하여 성스러운 존재들께 공양을 올리는 것은 실물을 공양하는 것과 사실상 구별이 없다고 합니다.

     

    산티데바는 그의 「입보살행론」에서 마음으로 드리는 12가지 의환 공양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목욕, 찰식(擦拭, 몸을 닦는 것), 의복, 장식품, 향수, 꽃, 향, 음식물, 보배 등(寶燈), 지면(地面, 향수와 꽃으로 장식한 땅), 궁전, 보배 우산(寶傘) 등 12가지를 공양 올리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미묘한 향기 가득한 깨끗한 욕실, 밝게 빛나는 수정이 깔린 바닥,

    보석으로 빛나는 찬란한 기둥, 드높이 드리워진 눈부신 진주 꽃다발 장식,

    여러 종류의 진귀한 보병에 가득 채운 기쁨이 샘솟는 향수,

    아름다운 노랫가락 가득 넘치는 곳에, 제불 보살님 오셔서 목욕하기를 청하옵니다.

    향기 가득한 목욕을 마치면 수건으로 그 몸을 닦아드리고,

    깨끗한 의복을 바치나니 향기 가득한 미묘한 색의 의복입니다.

     

    먼저 전단 향기 가득 찬 깨끗한 욕실을 관상합니다. 수정이 깔린 바닥, 보석으로 빛나는 기둥, 기둥에 높이 매달려 눈부신 광채를 발하는 진주 꽃다발 장식을 관상합니다. 욕조 가득 향수를 채우고 꽃잎을 뿌렸으며, 아름답고 우아한 노랫가락이 흐릅니다.

     

    이토록 고귀하고 아름다운 곳에 제불 보살이 오셔서 목욕하시길 청해봅니다. 목욕이 끝나면 미묘한 향이 정갈히 배인 수건으로 성스러운 존재의 몸을 닦아 드립니다. 그리고 가장 향기롭고 미묘하며 장엄한 의복 일습을 바칩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옷과 강하고 화려한 장신구로

    보현보살, 문수보살, 관자재보살님을 장엄합니다.

    향이 삼천 대천 세계에 두루 퍼지니

    정련을 거친 순금처럼 찬란한 빛을 내는 제불의 몸에 미묘한 향냄새 덮이네.

     

    섬세하고 부드러운 옷과 장신구로 거룩한 제불 보살님들을 장식해 드립니다. 이어 제불 보살께 향수 공양을 올리는 것을 관상합니다. 그 향기가 삼천 대천 세계에 두루 퍼집니다.

     

    수승한 공양처인 제불보살 앞에 향기로운 연꽃,

    만다라 꽃, 청색 연꽃과 그윽하고 아름다운 꽃 타래 공양을 올리나이다.

    가장 좋은 향을 바치나니 향기가 넘쳐흘러 구름을 이루옵니다.

    갖가지 신령스러우며 비할 데 없이 맛있고 오묘한 음식을 올리나이다.

    그윽하고 아름다운 꽃 타래 공양을 올립니다. 또한 갖가지 미묘한 향을 올립니다. 이 향이 타면서 온 세계가 향기에 물드는 것을 관상합니다. 이어 각종 비할 데 없이 맛있고 신령스러운 음식을 공양 올립니다.

     

    황금빛 연꽃 사이로 나란히 배열된 진귀한 보배등寶貝燈을 올리오며

    묘향으로 칠한 바닥 위에 향기로운 꽃송이를 뿌리옵니다.

    아리따운 찬탄가 흘러넘치고 매달린 진주 구슬 찬란하게 빛나며,

    무량한 장식들이 허공을 장엄한 청정 궁전을 대자비의 주인께 바치나이다.

    금 자루 달린 보물 우산의 가장자리에 아름다운 장식이 매달려 있네.

    오묘하고 장엄한 모양의 보배 우산을 펼치어 제불께 공양 올리나이다.

     

    황금 연꽃 사이로 배열된 보배 등燈을 바칩니다. 향기 배인 땅 위에 꽃송이를 뿌리고, 선녀들이 부르는 찬송가 가락이 흘러넘치고 공중에 매달려 있는 미묘한 장신구들이 밝은 빛을 찬란하게 뿜는 청정궁전을 모든 여래께 올리는 것을 관상합니다.

     

    마지막으로 금 자루가 달린 보배 우산寶傘을 제불보살께 공양 올립니다. 우산 끝을 따라 아름다운 장식이 단장되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모양은 미묘하면서 장엄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12가지 공양물을 온 세상의 성스러운 존재들께 바칠 수 있습니다. 다시 거리로 나가 봅니다. 오밀조밀 빨갛고 파랗고 노란 등이 걸려있는 길거리 전체가 장엄 궁전처럼 느껴집니다.

     

    마음으로 이 아름다운 궁전을 부처님 앞에 올립니다. 그리고 나직하게 읊조려 봅니다.

     

    부처님,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기원하나이다. 부처님,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고통 여의기를 기원하나이다. 부처님, 세상의 모든 존재들의 기쁨을 따라 기뻐합니다. 부처님,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평화롭기를 기원하나이다.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당신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 고인이 조문객들에게 남긴 편지

    환자 치료와 제자 양성에 한평생을 바친 의대 교수님이 세상을 떠나며 조문 올 이들을 위해 글을 남겼습니다.  

     

    그 교수님은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가족들에게 조의금을 받지 않도록 가족에게 당부하셨다 합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인사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내가 사겠다”라면서요. 

     

    빈소에 조문 온 이들은 생전에 소탈하고 정이 많았던 고인의 글을 읽으며 추억을 회고했습니다. 

     

     

    “저 000는 일천구백삼심육년에 이 땅에 와서 
    긴 세월을 살았지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 털어 버리고 태어났던  
    그곳으로 찾아가려 합니다. 

     

    저를 너그럽고 다정히 대해 주시며 아껴주신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원망과 오해가 있으셨던 분들에게는  
    제가 너무 미숙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부디 잊어 주십시오.  

     

    여러분들께서는 좀 더 따뜻하게 사시다가 
    운명의 뜻에 따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지금보다 더 사랑하며 살고 싶습니다. 

     

    별나고 거칠었던 저를 잘 감싸 주셔서 
    큰 탈 없이 떠나게 되어 행복합니다.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이천십구년 사월 이십이일 
    000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