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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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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라이 라마의 아침기도문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을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보다도

    더 뛰어난 존재로 여겨

    최고의 목적을 이루려는 결심을 지니고

    나로 하여금 언제나 중생을 사랑하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언제나 나 자신을 가장 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내 가슴 속 깊이

    그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보내게 하소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번뇌가 마음 속에 들어오는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그것에 맞서 물리치게 하소서.

     

    악한 본성을 가진 이들이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것을 보면

    마치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이 질투심에서 나를 비난하고 

    터무니없이 욕을 퍼부어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승리를 주게 하소서.

    큰 기대를 품고 

    내가 은혜를 베푼 사람이 

    나를 심하게 상처 입힐지라도

    나는 그를 거룩한 영혼의 친구로 여기게 하소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나의 어머니인 모든 중생에게

    행복과 이익을 함께 바칠 수 있게 하소서.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를 주는 모든 것을 

    남몰래 내가 대신 받을 수 있게 하소서.

     

    그들로 하여금

    세속의 여덟 가지 이해 관계에서 생겨난 

    생각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환상임을 깨닫게 하소서.

     

    모든 중생이 집착에 묶인 상태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하소서.

     

     

    출처 : 달라이 라마의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변한다> 중에서

  • 기독교 성자 썬다 싱(4) - 신비체험을 남기고 사라지다

    썬다 싱은 22세인 1911년부터 본격적인 전도 활동을 시작합니다.

     

    기독교 전통이 거의 없는 인도와 티베트에서 썬다 싱의 전도 활동은 쉽지 않았습니다. 복장을 보고 사두로 여겨 존경을 표하던 사람들도 그가 기독교인임을 알고 나면 외면했습니다. 

     

    굶주림이 일상이었습니다. 추위에 몸이 얼고 더위에 지쳐 주저 앉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썬다 싱은 인도 대륙을 횡단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박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경찰이 그를 감옥에 가둔 채 거머리 때를 풀어 놓기도 했고, 시체가 썪고 있는 우물에 던져져서 팔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썬다 싱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발길은 티베트로도 향했습니다. 서른살이 될 때까지 티베트 방문을 위해 열 번이나 히말라야를 넘었습니다. 

     

    썬다 싱은 기독교의 본고장이던 서구 여러 나라에도 전도를 위해 방문했습니다. 1920년과 1922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아일랜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을 다니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썬다 싱은 기도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체험도 했다고 합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썬다 싱이 경험한 상태를 입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썬다 싱이 신비현상을 체험한 것은 1922년 티베트에 가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길이 막혀 꼼짝 못하게 되어 기도를 하던 중 자신이 천사들 무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자신이 죽어서 영혼이 하늘나라에 온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썬다 싱은 이를 시작으로 이런 신비 체험을 자주 하게 됐습니다. 

     

    썬다 싱은 영안으로 보이는 존재에게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며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썬다 싱이 영안으로 본 존재들로부터 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죽음은 잠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질병이 없다면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오는 데 아무런 고통도 없습니다. 마치 몹시 피곤한 사람이 깊이 잠드는 것처럼 인간은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죽음은 너무나 뜻밖에 찾아오기 때문에 죽은 이들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들어간 것을 알아채기조차 힘듭니다. 그들은 충분히 가르침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이 육체가 아니라 영체이며 자신이 물질 세계에서 영적 세계로 옮겨온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죽을 때 무지각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죽은 뒤에 자신의 주변에 모여든 사납고 무서운 악마들의 얼굴을 보고 말도 못하고 공포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이들의 죽음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을 맞으려고 오는 천사들과 거룩한 영들을 보고 극도의 행복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때 먼저 죽은 사람들도 그를 영계로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썬다 싱은 1924년 또 다시 티베트로 향했으나 얼마가지 못해 돌아오게 됩니다.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양실조 상태였고 폐결핵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2년 동안의 서구 전도 여행으로 피로도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의사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썬다 싱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몸을 추스리면서 글과 편지를 통해 전도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28년 썬다 싱은 다시 티베트로 향합니다. 하지만 며칠 뒤 길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다 상인들에 구출돼 돌아옵니다.

      

    이듬해인 1929년 그는 다시 티베트에 가겠다면서 길을 나섭니다. 그 뒤로 썬다 싱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으러 나섰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썬다 싱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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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수까지 용서해야 할 이유

    하늘 나라에는 사랑만이 가득한 곳입니다. 

     

    그곳에서 지내는 모든 이들은 하루하루가 행복했습니다.

     

    어느날 한 천사가 하늘나라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사랑 못지 않은 가치를 지닌 행동이 용서라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그 천사는 용서를 체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하늘 나라를 다 뒤졌지만 용서를 경험해볼 수 있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 천사는 하늘나라를 다스리는 대천사를 찾아갔습니다.

     

    “대천사님, 용서를 체험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대천사가 말했습니다. 

     

    “여기에서는 체험을 할 수 없단다. 하늘 나라를 떠나 지구라는 곳에 가야만 가능하다.”

     

    “그럼 저 지구로 갈게요"

     

    “문제는 혼자 가서는 체험이 불가능하단다. 반드시 두 명 이상이 짝을 지어 가야 돼"

     

    천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누가 하늘 나라를 떠나 저 낯선 지구라는 곳에 같이 가려고 할 것인가.

     

    그때 천사를 사랑하고 아끼는 가장 친한 친구 천사가 나섰습니다.

     

    “친구야, 내가 같이 갈게"

     

    천사는 너무 기뻤습니다. 

     

    지구로 떠나는 날이었습니다. 두 천사는 대천사 앞에서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그때 대천사가 용서를 체험하고 싶어하는 천사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지구에 가면 너는 여기에서 살던 기억을 잊게 될거야. 하지만 용서를 체험하기 위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단다.”

     

    대천사는 그 천사를 꼬옥 안아준 뒤 눈을 마주보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살다보면 너를 너무너무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거야. 도망가려고 해도 그럴 수도 없는 관계라서 너는 그 사람이 죽이고 싶도록 미울 수도 있어.”

     

    대천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지구를 향해 떠나는 천사의 두 손을 꼭 잡고 간절한 마음을 담아 당부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때가 네가 용서를 체험할 수 있는 순간이란다.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기억하렴. 너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네가 용서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늘 나라를 떠나 지구로 함께 떠난 지금 네 옆에 있는 친구라는 걸"

  • ‘카페 교회’ 운영하는 목사님

    서울 상일동 주택가 골목에는 에클레시아라는 작은 카페가 있습니다.

     

    이 카페의 주인이자 바리스타이며 유일한 직원은 양광모 목사님(바로세움정립교회) 입니다.

     

    양 목사님은 일주일에 6일은 카페에서 일하고 일요일에는 미사리의 공장 건물 2층에 있는 15평 남짓한 예배당에서 20여 명의 교인들과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에클레시아는 그리스어로 ‘밖으로 불러 모으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말을 교회를 가리킬 때 씁니다.

     

    양 목사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분입니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양 목사님의 목회 생활은 순탄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서울 이문동 동안교회와 지구촌교회 수석 무목사를 거쳐 교인수 1000명이 넘는 정릉제일교회 담임목사를 맡았습니다. ‘잘 나가는 목사’라며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양 목사님은 늘 괴로웠습니다. 한국 교회가 처한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교회에 손가락질하고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 자체가 불신받고 있었습니다.

     

    양 목사님은 2012년 부임 2년 만에 담임목사직을 내려놨습니다. 대안이 될 건강한 교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자신이 꿈꾸는 작지만 건강한 교회를 찾아가는 5년의 여정을 담은 책 ‘고백 에클라시아’(선율 펴냄)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말이 떠오르는 행복의 시작이었지만 위기의 현실을 극복하고 어두운 미랠르 밝게 비출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몸부림이라도 쳐야 했다”

     

    올바른 목회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면서 그들의 아픈 마음을 치유하고 영성을 고양시켰습니다.

     

    양 목사님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깊이 들어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건강한 교회”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서점 겸 카페의 형태로 출발한 미국의 세이비어 교회를 모델로 삼아 카페 교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2012년 카페 에클레시아의 문을 열었고 같은 해 바로세움정립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러 들른 사람 가운데 바리스타인 목회자의 말 한 마디가 필요한 이들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카페 운영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과 커피 품질 평가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목회자 이기 전에 자영업자로 시장 조사와 매장 운영 방법에 대해서도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2012년 문을 연 카페의 운영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수입은 카페를 유지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해 결국 택시 운전대를 잡는 ‘투잡족’이 되어야 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는 자신이 섬겼던 교회의 교인을 만날까 노심초사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목사와 택시운전사를 대하는 것은 너무도 다름을 뼈저리게 느꼈겠지요.

     

    양 목사님은 택시 운전을 통해 모든 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섬기는 법을 배우면서 끊임없이 자신을 낮추고 또 낮췄을 것입니다.

     

    2년 쯤 시간이 지나자 카페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카페운영을 하면서도 당연히 주일 예배는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예배당은 불교신자인 한 단골손님의 도움으로 2015년에 마련했습니다. 

    그 손님이 자신이 운영하는 미사리 식품공장 건물 2층에 15평 짜리 예배당을 마련해준 겁니다. 

     

    가수 노영심씨는 카페 에클레시아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를 외면하고 있는 저에게 카페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게 해 주는 공간입니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여전히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제게 하나님과의 끈만은 놓지 않게 해 주시는 분들입니다.

    표현도 못하고 말도 예쁘게 하지 못하고 투정만 부리는 저지만, 마음속에 목사님과 사모님의 진심 어린 사랑을 항상 느끼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버티며 이겨 내고 있습니다. - 단톡방 에클레시아 멤버 노영심." (<고백 에클레시아>, 37쪽)

  • 타임지 표지 장식 음바페 “존중, 겸손, 평정이 좌우명"

    겸손한 천재 음바페(파리 셍제르망)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타임지는 12일 ‘축구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우승을 이끈 19살의 축구천재 킬리안 음바페를 표지에 실었습니다.

     

    축구 선수가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것은 리오넬 메시, 마리오 발로텔리, 네이마르 등 3명에 불과했고, 10대 축구선수로서는 음바페가 처음입니다. 

     

    재치 있고 의미 있는 제목을 다는 타임지는 메시에게는 ‘왕 레오(King Leo)’, 네이마르는 ‘제2의 펠레(The Next Pele)’라고 표시했습니다. 

     

    축구계 안에 만연한 인종 차별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표지에 실은 발로텔리의 경우엔 ‘마리오의 의미(The Meaning of Mario)’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타임지는 음바페를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메시와 호날두 시대를 이을 차세대 리더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음바페는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함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이끌어 줄 좌우명이 존중, 겸손, 평정심이라고 밝혔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모두 겸손하고 사람들을 존중한다며 자신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아프리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파리 교외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음바페는 가진 것을 벌써부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있기도 합니다.

     

    음바페는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당초 약속대로 출전 수당과 보너스 전액인 30만 유로(약 4억 원)를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들에 기부했습니다. 


    그가 기부한 단체 가운데 하나인 프르미에 데 코르데 재단의 세바스티앙 뤼팽 대표는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음바페가 틈날 때마다 재단을 찾아와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습니다. 

     

    음바페는 아이들보다 더 즐겁게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뤼팽 대표는 덧붙였습니다.

     

    이 재단은 투병 중인 아동이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음바페는 자신이 나고 자란 파리 외곽 봉디의 청소년 25명을 러시아 월드컵에 자비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카메룬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지 가정 2세입니다.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파리 외곽 봉디에서 유소년 축구클럽을 다니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겸손하고 가슴 따뜻한 천재 음바페는 축구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16살에 프로에 데뷔한 음바페는 2016~2017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4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그로부터 올해까지 그는 프랑스 1부 리그 우승 2회, 컵대회 우승 2회를 경험했습니다. A매치를 포함한 개인 통산 득점은 68골로 같은 나이 때 메시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축구를 이끌고 있는 메시와 호날두도 못 이룬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게다가 결승전에서 골까지 넣었지요. 10대 선수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것은 1958년 펠레 이후 60년 만입니다.

     

    음바페가 속한 파리 생제르맹은 지난해 음바페 영입에 24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이적료입니다.

     

    생제르맹은 1조 원을 줘도 음바페를 팔지 않겠다며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음바페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음바페는 누구나 자신처럼 꿈을 이룰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꿈을 믿는다면 언젠가 여러분 중 누군가가 지금의 제 자리에 있을 겁니다.”

  • 기독교 성자 썬다 싱(2) - 성자 마하리쉬 만나다

    예수님의 현현은 썬다 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썬다 싱은 그 순간부터 평생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시크교도인 아버지와 가족 친지들은 썬다 싱의 그런 변신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해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은 썬다 싱에게 싸준 점심밥에 독약을 넣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썬다 싱은 성공회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 일을 도우며 틈날 때마다 고요히 묵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33일이 지난 뒤 썬다 싱은 사두로서 길을 나섰습니다. 사두는 인도에서 집을 떠나 길에서 생활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듬해 썬다 싱은 코드갈이라는 곳에서 스토크스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청빈한 삶을 살고자 인도에 온 사람이었습니다. 썬다 싱은 그와 2년 동안 동행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가르침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습니다.

     

    썬다 싱은 전도 여행 중에 귀한 만남을 가집니다. 그가 힌두신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알려진 성산 카일라스에 이르렀을 때 그는 돌십자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힌두교의 성산에 십자가라니.

     

    그는 십자가의 ‘주인'을 찾아 주변을 다니다 몸의 균형을 잃고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를 지났을까 의식을 되찾고 보니 큰 동굴 입구에 백발로 전신이 뒤덮인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노인의 모습은 기괴했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과 눈썹이 길게 자라 온몸과 얼굴을 덮고 있어서 얼핏 봐서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생 곰이나 전설의 히말라야 설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하리쉬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 성자는 당시 자신의 나이를 318세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원래 이슬람교도였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조카  제르나우스자비에르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그는 썬다 싱에게 함께 기도하자면서 자비에르가 줬다는 양피지 신약성경을 꺼내더니 썬다 싱에게 산상수훈을 읽어줬습니다. 마하리쉬는 이 양피지 성경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썬다 싱에게 선물로 줍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하리쉬는 그동안 썬다 싱이 겪은 일들을 직접 본 듯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표범과 함께 밤을 지낸 일, 산길에서 굴러떨어진 일 등등.

     

    마하리쉬는 썬다 싱에게 천국과 지옥,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세계 등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줬습니다.

     

    썬다 싱은 마하리쉬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고 텅 빈 마음에 사랑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베푸는 일에는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썬다 싱이 열 번째 히말라야를 넘을 때였습니다. 티베트 사람 한 명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폭설로 산길이 모두 막힌 데다 눈보라가 쳤습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다 눈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사람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썬다 싱은 그 사람을 업고 가자고 했지만 동행인은 그러다가 우리도 함께 죽는다며 혼자 길을 재촉했습니다.

     

    썬다 싱은 그 사람을 들쳐 업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길을 헤쳐나갔습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몇 시간을 지났을까 길에서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얼어 죽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함께 길을 갔던 티베트 사람이었습니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사람을 업은 썬다 싱은 힘이 들어 몸에 열이 났고 그 열기가 얼어서 죽어가던 사람에게 전달되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썬다 싱도 힘은 들었지만 몸에서 나온 뜨거운 열기로 히말라야의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이지요.(계속)

     

     

    바로가기(클릭) : 기독교 성자 썬다 씽(1)

    바로가기(클릭) : 기독교 성자 썬다 씽(3)

  • 요셉의원, 큰 병원보다 더 큰 병원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서울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한 요셉의원은 성경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자들’을 무료 진료하는 곳입니다.


    병원에는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옵니다.


    대부분 노숙인이나 행려병자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감기약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진료받을 곳이 없어 병을 키우기 일쑤인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곳을 찾습니다.


    병원 운영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서울카톨릭사회복지회 부설인 요셉의원은 의료인 외에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단식하며 하루에 500원씩 모은 돈을 보내주는 버스 기사, 후원금을 내기 위해 미국에서 온 본, 시주 받으러 왔다가 후원금을 내도 간 스님까지 많은 분들이 요셉의원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은 몸이 병들었지만 마음이 더 아픈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데 더욱 신경을 씁니다.


    한 목욕 봉사자는 악취가 진동하는 환자의 발에 입을 맞추고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닦았다고 합니다. 세상 누구도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 자신의 발에 따듯한 입술이 닿았을 때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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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원은 2008년 세상을 떠난 고 선우경식 박사가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1987년 세운 무료병원입니다.


    1969년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 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한 선우 박사는 귀국한 뒤 한림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1983년부터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진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87년 선우 박사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아예 병원을 세웠습니다. 요셉의원의 시작입니다. 개원 첫 달 1000만 원의 적자가 날 정도로 병원 운영이 어려웠지만 선우 박사는 직접 나서서 쌀을 얻어오고 의약품을 기부받았습니다.


    선우 박사가 요셉의원을 만든 것은 처음 의학을 공부할 때 사람을 살리는 데 의술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 알입니다.


    퇴근길에 길가에 쓰러진 환자를 데리고 가 치료하면 그렇게 마음을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선우 박사에게 어느 날 병마가 찾아옵니다. 2006년 위암 수술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병원을 찾았던 그는 2008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선우경식 박사의 뒤를 이은 사람은 신완식 박사입니다.


    감염내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가톨릭의대 교수였던 신 박사는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과장으로 ‘잘 나가던’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신 박사는 2009년 정년을 6년 앞두고 월급 한 푼 없는 요셉의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전문의가 됐을 때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힘들게 공부했으니 세상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몇 번을 당부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그때 다시 생각났다고 합니다.


    신 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셉의원에서 가슴으로 웃는 법을 알았고 세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찾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처럼 요셉의원에서 참 행복을 찾은 이들이 많습니다.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1만 1000여 명의 후원자들이 그들입니다.


    한 여중생은 요셉의원 소식지에 쓴 글에서 “커다란 병원보다 더 큰 병원”이라고 적었습니다.


    요셉의원 홈페이지에 원장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라”

  • 행복의 문이 닫혀도, 다른 문들이 열립니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닫힌 문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우리를 위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합니다.

     

                             - 헬렌 켈러 -

  • 홍콩 대표 영화배우 주윤발 8000억 대 전 재산 기부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8000억 원대의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주윤발은 최근 홍콩의 한 영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영화 홍보를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 팬들 앞에서도 같은 다짐을 했습니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주윤발은 19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 배우입니다. 
    그 뒤에도 '와호장룡', '황후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등 중화권과 할리우드의 여러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주윤발은 많은 팬을 갖고 있습니다. 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주윤발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달 용돈으로 12만 원을 쓰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개인 차량도 없습니다. 

     

    휴대폰이 고장 나기 전까지 17년 동안 썼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서민들이 가는 식당을 즐겨 찾기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그와조우할 때가 많습니다. 주윤발은 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구에도 늘 기쁘게 응합니다. 

     

    팬들은 주윤발의 말과 행동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윤발의 아내 천우리롄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87년 주윤발과 결혼한 그는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남편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출연료를 투자해 자산을 늘렸을 뿐 아니라 주유발의 기부활동을 돕기 위해 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두 부부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웃음이야기

    하하하(下下下)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웃음의 출발입니다

     

    호호호(好好好)

    호감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이미지 메이킹입니다

    웃음속에 관계를 갈망하는 의지가 새겨집니다

    그래서 웃음은 만국공통 여권입니다

     

    희희희(喜喜喜)

    웃다보면 좋은 일만 생깁니다

    그래서 희(喜)에는 좋은 길(吉)이 새겨져 있습니다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

     

    허허허(虛虛虛)

    웃음은 '비움'입니다

    웃는 순간 가슴에는 태평양보다 더 큰 바다가 생겨납니다

    여유로움입니다

     

    해해해(解解解)

    웃다보면 근심걱정이 도망갑니다

    웃음은 마음의 해우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웃을 때는 '하하하'로 끝나면 안됩니다

    하하하, 호호호, 희희희, 허허허, 해해해로

    마무리 되는 순간! 웃음이 완성 ^^

     

    - 출처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