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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김남길과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배우 김남길이 대표로 있는 '길스토리'는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예술 NGO다. [이미지 : 김남길 페이스북]

    김남길. ‘대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배우입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호칭이 있습니다.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대표가 그의 두 번째 ‘직함’입니다.

    길스토리의 목적은 “문화예술 캠페인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Rla 김 대표는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김 대표가 길스토리를 만든 것은 2012년 3월입니다. 길스토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김 대표가 걸어온 ‘길’이 있습니다.

    길의 시작에는 ‘라파엘의 집’이 있습니다. 그는 2009년쯤 지인의 소개로 중증 장애 어린이를 돌보는 ‘라파엘의 집’에서 처음 경험한 봉사활동에서 조건없이 베푸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배우로서 인정받으며 점점 바빠졌지만 그는 ‘라파엘의 집’을 오가는 길 위에 더욱 자주 섰습니다.

    김 대표의 나눔이 알려지면서 팬들도 봉사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축하할 일이 생기면 쌀 화환을 만들어 ‘라파엘의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길은 김 대표를 인도네시아 재난구호 현장으로도 이끌었습니다. 2010년 1월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다녀온 다음날 이번에는 강진이 아이티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아이티의 피해 현장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세계와 나 W-재난과 인간’의 나래이션을 자원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김 대표는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민도 됐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선행을 베풀고 싶었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그를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자신의 활동이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위선적 행동으로 비칠까 걱정도 됐습니다.

    ‘길스토리’는 그런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배우 김남길의 활동이 아니라 길스토리의 활동에 김남길이 참여하는 틀을 만들면 오해로부터 좀더 자유로울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지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길스토리는 2013년 비영리단체로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됩니다. 계기는 필리핀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하이옌이었습니다. 필리핀의 한 팬이 그에게 ‘필리핀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태풍 피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길스토리는 그해 12월 이재민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한달만에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400명 가까운 후원자들이 3500만 원의 성금을 보내줬습니다. 당시 길스토리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모금과 집행 전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내용을 모두 올렸고요.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길스토리를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기로 했고 2015년 1월 서울시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가 됐습니다.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표방하는 NGO로서 길스토리는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길이야기, 길을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알리고 그 길에 담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입니다. 

    지금까지 북촌, 성북동, 제주, 한양도성 등을 주제로 영상과 오디오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김 대표가 나래이션을 맡았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국 언어를 지원합니다.

    길스토리의 프로그램 제작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작곡가, 통번역사, 카피라이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프로보노로 참여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길스토리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게 된 이유에 대해 한 방송사에 출연해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며 겸손해 합니다. 김 대표의 활동에 대해 주위에서 “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어서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일을 하면서 조금씩 변하다보니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 대표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열혈사제’에 나왔던 대사를 늘 떠올린다고 합니다. 

    “성인에게도 과거는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는 있다”

  • WHO, 2020년대 인류 위협 요인에 기후변화 포함

    기후변화가 다가올 10년 동안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주요 요인으로 꼽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최근 2020년대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요인과 그에 따른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기후변화와 함께 전염병, 항독소와 항균 내성, 안전하지 않은 음식 등이 앞으로 10년 동안 인류의 건강을 위협할 요인에 포함됐습니다. 이 리스트는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작성됐다고 WHO는 밝혔습니다.

    WHO는 인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기후변화’를 건강위기 요인으로 규정하고 기후변화가 식량 문제, 말라리아와 같은 전염병의 확산과 관련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WHO는 갈등과 분쟁 지역 거주민의 건강 관리, 건강 서비스의 보편적 접근, 전염병 예방, 안전하지 않은 음식과 담배류 규제, 노동자와 청소년의 건강 관리를 위한 투자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습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건강이 미래에 대한 투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라며 "많은 국가들이 테러 공격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지만 그보다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 공격에는 투자를 않고 있다"라고 경고했습니다.

  • 매일 사람과 포옹하는 캥거루

    호주의 앨리스 스프링스 캥거루 보호구역에 사는 퀸 애비(Queen Abi)라는 캥거루가 매일 아침 자원봉사자들을 찾아 포옹을 하며 인사를 하고 있다. [이미지 : The Kangaroo Sanctuary Alice Springs]

    

     

    호주의 앨리스 스프링스 캥거루 보호구역에는 포옹을 좋아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진 캥거루가 있습니다.

     

    퀸 애비(Queen Abi) 라는 이름의 캥거루는 매일 아침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를 찾아 포옹을 합니다.

     

    애비가 매일 사람들과 포옹을 하는 이유는 자신을 구해준 이들에게 애정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애비는 12년 전 생후 5개월이었을 때 발견됐습니다.

     

    당시 보호구역에서 일하던 한 종사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후 5개월 된 고아였던 애비를 발견했을 때 무언가에 베이고 긁힌 상처 투성이었다"라고 적었습니다.

     

    보호구역 전문가들은 지극정성으로 애비를 돌봤고 애비는 마침내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때부터 애비는 자신을 돌봐준 사람들과 매일 아침 포옹을 한다고 합니다.

     

    하루도 빼먹지 않는 애비의 아침 포옹 인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 교황, 가톨릭 교리에 ‘생태에 대한 죄악’ 포함 검토

    프란치스코 교황 [이미지 : 바티칸 뉴스 유튜브 캡쳐]

    프란치스코 교황이 환경을 파괴하거나 보호하지 않는 행위를 ‘생태에 대한 죄악’으로 가톨릭 교리에 담는 것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바티칸뉴스, 라이프사이트뉴스 등에 따르면 교황은 15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국제형법학회(AIDP) 총회에서 “우리 모두의 집인 생태계가 위기에 처해있기 때문에 생태계의 보호에 반하는 행동을 ‘생태에 대한 죄악’으로 규정해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도입해야 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이는 지난달 열린 아마존 주교 시노드의 제안에 따른 것입니다. 시노드란 교회의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모여 토론하고 결정하는 회의를 뜻합니다.

     

    아마존 시노드에서 발표한 문서에는 ‘생태에 대한 죄악’을 하느님과 미래 세대에 대한 죄로 정의했다고 교황은 전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연설에서 공기, 토양, 수질 등의 대규모 오염을 초래하거나 동식물 군의 대규모 파괴 등 생태적 재앙을 일으키거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는 행동은 반드시 처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형법 전문가들에게 전쟁이나 오염을 통한 의도적인 생태계 파괴 행위를 ‘평화에 반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형법 전문가들에게 지구를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법적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 야생으로 돌려보낸 고릴라와의 감동적 재회

    10년 전 쯤에 있었던 일입니다.

     

    야생동물 보호운동가인 다미안 아스피널은 자신이 길렀던 고릴라가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영국인인 그는 2000년쯤 어미를 잃은 새끼 고릴라를 입양해 크위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자식처럼 돌보다 5살이 되자 아프리카 가봉의 정글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10년 아스피널이 크위비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위험하다고 말렸습니다.

     

    그럼에도 아스피널은 아프리카 가봉으로 가서 수소문 끝에 크위비를 방사한 지역을 찾아내 정글 속을 뒤지고 다녔습니다.

     

    현지의 전문가들도 크위비가 지금은 야생 고릴라인 만큼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크위비가 이전에 자신과 접촉하려 한 사람들 두 차례나 공격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스피널은 크위비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보트를 빌려 정글 속을 찾아 다니며 “크위비”하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크위비가 자신의 목소리를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한 고릴라가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세상에나, 크위비였습니다. 비록 5년 동안 만나지 못했지만 크위비는 아스피널의 목소리를 기억했습니다.

     

    크위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었지만 아스피널은 강기슭으로 뛰어 올라가 크위비 곁에 다가가 앉았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그랬듯이 풀을 입에 물었다 건넸고 크위비는 곧바로 예전처럼 받아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IMAGE|599|center|야생동물 보호가인 다미안 아스피널이 10년 전 자신이 길렀던 고릴라 크위비를 만나고 있다. [이미지 : WolfstarTV 유튜브 캡처] ]]

     

    크위비는 이어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아스피널을 바라보다 아스피널의 팔을 끌어 당기고 그를 그를 껴안았습니다. 놀랍게도 크위비는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까지 아스피널에 소개했습니다.

     

    크위비는 아스피널과 헤어지기 싫다는 듯 그를 껴안고 놔주지를 않았습니다. 아스피널과 크위비는 한참 동안 마주 앉아 회포를 풀었습니다.

     

    [[IMAGE|601|center|아스피널에게 크위비가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하는 모습 [이미지 : WolfstarTV 유튜브 캡처] ]]

     

    해가 지기 시작하자 아스피널은 정글을 떠나기 위해 보트를 탔습니다. 크위비는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 아스피널을 따라왔고 아스피널이 머무는 반대편 강둑에서 가족들과 함께 그를 지켜봤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스피널은 멱을 감기 위해 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놀랍게도 크위비는 그때까지 강 건너편에서 꼼짝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 법무법인 율촌, 로펌에 장애인 고용의 물꼬를 트다

    법무법인 율촌은 2010년부터 중증 장애인을 지속적으로 고용하고 있다. [이미지 : 법무법인 율촌 홈페이지]

    법무법인 율촌이 장애인 고용을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율촌은 2010년부터 로펌 최초로 장애인고용공단을 통해 복사와 우편물 업무에 중증 장애인을 고용해 화제를 모은 곳입니다.

     

    초기에는 장애인을 고용해 주로 청소업무를 맡겼으나 사무직 업무로까지 고용 영역을 확대했습니다.

     

    이런 공로로 율촌은 지난 25일 고용노동부와 일자리 위원회가 함께 주최한 행사에서 국내 로펌 가운데 처음으로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율촌은 1997년 각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명성을 갖춘 법률가들이 모여 만든 법무법인입니다. 뜻을 모으고 실력을 합쳐 법률가의 마을을 세우다’라는 뜻에서 율촌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율촌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우리가 가진 것으로 사회의 필요를 채워준다”라는 경영이념에 따라 장애인 고용을 시작했습니다.

     

    2010년 회의실 환경 정리 직무에 정신장애인 3명을 채용하면서 장애인 고용을 시작했고 그 뒤 정신장애, 지체장애, 뇌병변장애, 지적장애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인들이 채용됐습니다.

     

    율촌은 수시 면담, 업무 교육, 업무 시간 조정 등 장애인 직원의 사회 및 직무적응을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편견의 벽을 허물기 위해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장애 유형별 특성 등 교육도 시행했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율촌은 지난 2014년과 2017년 로펌 최초로 '장애인 고용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됐고 2015년 장애인 고용 촉진 유공자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 말기암 40살 백만장자 의사의 마지막 강의

    싱가포르의 의사 리차드 테오 컹 시앙씨가 세상을 떠나기 전 후배 의학도를 대상으로 한 강의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이미지 : 리차드 테오 페이스북]

    부와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던 의사가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젊은 의학도들 앞에서 자신의 ‘잘못된’ 삶을 돌아보는 강의를 했습니다.

     

    싱가포르의 의사 리차드 테오 컹 시앙씨는 성형외과 의사로 30대에 부와 명예를 함께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2011년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됐습니다.

     

    그가 했던 강의가 유튜브에 올라온 뒤 많은 사람들이 보고 “내 인생 최고의 강의” “당신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놀라운 강의”라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다음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오늘 인생에 대한 저의 생각을 나누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를 초대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이 치과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하는 여러분들에게 생각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저는 현대 사회가 만든 전형적인 상품이었습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꽤 성공적인 상품이었지요.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저는 미디어와 주위 사람들로부터 행복은 성공에서 오는 것이고 그 성공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이 생각을 갖게 되면서 저는 어려서부터 남들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게 됐습니다. 학교에서 1등을 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운동경기나 달리기 등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고 했습니다.

     

    저는 의대에 진학해 안과 의사가 됐고 의료기기와 레이저 관련 특허를 두 개나 보유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안과 의사는 돈을 많이 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형외과에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아파서 병원에 갈 때는 20 싱가포르 달러(1만 7100원)도 아까워하던 사람들이 성형수술에는 1만 싱가포르 달러(855만 원)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성형외과는 아주 잘 됐습니다. 환자들이 계속 늘어 처음에 1주일씩 기다리던 환자들이 3개월까지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환자가 밀려들자 의사도 4명이나 고용했습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수백만 싱가포르 달러(수십억 원)를 벌 수 있었습니다. 단 1년 만에 말입니다.

     

    저는 거기에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인도네시아 부유층을 고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망설임 없이 인도네시아로 병원을 확장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차고 넘치는 이 돈으로 무엇을 할까,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여러 경주용 자동차 동호회에 가입했습니다. 주말이면 레이싱을 하러 말레이시아에 갔고 경주용 차량을 사 모으기도 했습니다. 페라리도 샀습니다.

     

    차를 산 다음에는 저택을 마련했습니다. 각계각층의 유명인들, 부자들, 그리고 미인들과 파티를 즐겼습니다.

     

    저는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때가 제 삶의 정점이었습니다.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3월 등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요. 의대를 같이 다닌 친구에게 찾아가 디스크가 아닌지 MRI를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그날 밤 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등뼈에서 다발성 골수종이 발견됐다고 했습니다. 친구에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지요. 그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다음날 PET를 했습니다. 의사들은 제가 폐암 4기라고 진단했습니다. 암세포는 척추는 물론 뇌와 간 등 여러 장기에 전이되어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항암치료를 해도 3~4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제 삶은 박살이 났습니다. 저는 심한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성공, 트로피, 차, 집 이 모든 것이 내게 행복을 준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어떤 것도 나를 기쁘게 하지 못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가 소유한 어떤 것도 단 한순간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저를 기쁘게 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친구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웃고 울었습니다.

     

    저는 설날에 고급차를 몰고 가 친구나 친척들을 태우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들과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부러워하고 질투하게 만들었을 뿐입니다. 저를 증오하는 사람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지난 얘기를 하나 해드리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제니퍼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좋은 친구로 지내고 있지요.

     

    제니퍼와 함께 걸을 때 땅바닥에 달팽이가 있으면 제니퍼는 달팽이를 집어서 풀밭에 내려줬습니다. 저는 “왜 그러는 거야? 손이 더러워지잖아. 달팽이일 뿐인데”라고 핀잔을 주곤 했습니다.

     

    제니퍼는 달팽이에 공감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에게는 달팽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고 저는 그냥 달팽이일 뿐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때 저는 자비심과 공감능력을 가진 의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의대를 졸업하고 종양학과를 거칠 때 거의 하루 건너 한 번씩은 죽음을 목격했습니다. 환자들이 겪는 고통도 다 봤지요. 통증을 느끼지 않도록 몇 분마다 모르핀을 맞는 것도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건 그저 일이었습니다. 매일 출근해 병동에 갔지만 그건 제게 와닿는 현실이 아니라 그저 일일뿐이었습니다. 의사로서 처치를 하고 병동에서 나와 곧바로 집으로 갔지요.

     

    물론 환자들이 느끼고 겪는 상황을 묘사하는 의학 용어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환자가 되기까지 저는 그들이 무엇을 느끼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누가 제가 오래 살 수 있게 된다면 이전과 다른 의사가 될 수 있게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환자들이 겪는 것을 진짜 느낄 수 있게 됐으니까요.

     

    여러분들도 의사가 되기 위해 힘들게 공부해야 할 겁니다. 치과의사가 되기 위한 첫해를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 모두는 개업을 하게 될 겁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부를 쌓을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임플란트 시술로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놀랄만한 돈을 벌 것이고 부자가 되고 성공하실 겁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 하나 문제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저처럼 우리가 얻는 부를 다룰 능력이 없다는 겁니다.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제가 부를 축적하기 시작하자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더 탐욕스럽게 되더라는 겁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지금까지 한 일이라고는 더 많이 소유하는 방식으로 성공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 것뿐이었습니다.

     

    오로지 성공에만 매달렸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는 돈벌이의 수단일 뿐이었고, 환자들로부터 1원이라도 더 쥐어짜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주위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고 삽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자신밖에 모르고 다른 사람을 돌보는데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바로 그랬습니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의료인 동료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건 우리는 지금이라도 환자들에게 굳이 치료받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있다고 조언해야 한다는 겁니다. 불필요해 보일지라도 우리는 의료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옹호하고 지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자신만을 섬기다 도덕이라는 나침반을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은 그 나침반을 잃지 마시라는 겁니다.

     

    저는 (암이라는) 힘든 과정을 통해 그를 깨달았지만 여러분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대부분의 의사들이 진료를 할 때 환자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공립병원이나 민간병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환자의 진료기록을 수많은 폴더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면 빨리 삭제하려고 했습니다. 환자들에 대한 상담을 가능하면 빨리 종결짓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환자들과의 상담은 그저 늘상 반복되는 일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대할 때 환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겪을 고통과 걱정을 제가 진정으로 이해했을까요? 제가 암에 걸릴 때까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의료인 교육 시스템에 큰 결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인들이 전문가로만 길러지기 때문에 환자들과 공감하지 못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감성적으로 접근하라는 게 아닙니다. 전문가로서뿐만 아니라 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는 게 필요합니다. 잊지 마십시오.

     

    다음으로 부탁드리는 것은 여러분들이 언제나 환자들의 입장을 생각하시라는 겁니다. 여러분이 실감하지 못하지만 환자들이 느끼는 고통, 걱정, 두려움은 현실입니다.

    저는 지금 5회차 항암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치료를 받을 때마다 두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은 심지어 원수라도 그런 일을 겪기를 바라서는 안됩니다.

     

    저는 여력이 없지만 다른 암 환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늦었습니다.

     

    여러분은 밝은 미래가 앞에 있습니다. 자원도 에너지도 갖고 있습니다. 눈앞의 환자를 넘어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만 힘들어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들은 처음부터 가진 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만족합니다. 그분들이 여러분이나 저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재정적으로 그리고 여러 이유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외면할 수 있고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굳이 알아야 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들의 삶에 큰 변화를 줄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저는 지금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있고 그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고 있습니다. 당신을 진정으로 돌보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 저를 많이 바꾸고 있습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라는 책에 있는 글로 오늘 강의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은 죽는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만약 죽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될 겁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우리가 어떻게 죽을지를 알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된다는 겁니다.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지 마십시오. 미디어가 하는 말대로 살지 마십시오.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시길 빕니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을 섬기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 굴뚝청소부를 꿈꾸는 18세 소녀

    루이사 토네토(19)는 유명함을 추구하는 다른 10대들과는 달리, 굴뚝 정비사를 꿈꾸는 독특한 소녀이다. 사진은 그녀가 굴뚝 정비를 하는 모습. [이미지 출처 : BBC 뉴스 캡처]

    화려한 꿈을 꾸는 이들이 많습니다. 

     

    10대 때는 가수, 배우, 스포츠 등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의 스타가 되거나 큰 회사를 만들어 큰돈을 버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독일 바이에른 주에 사는 루이사 토네토(19) 양은 굴뚝 청소와 정비의 ‘달인’이 되는 게 꿈입니다. 

     

    [[IMAGE|275|center|루이사 토네토(19)는 유명함을 추구하는 다른 10대들과는 달리, 굴뚝 정비사를 꿈꾸는 독특한 소녀이다. 그녀는 유명인 보다는 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이미지 출처 : BBC 뉴스 캡처] ]] 

    루이사는 굴뚝 정비사라는 직업을 가족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가 일하는 회사의 사장은 아버지의 친구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인턴으로 일해봤는데 그 가운데 굴뚝 청소 일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루이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오늘날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고 싶아거나 인터넷을 통해 유명해지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걸 믿지 않습니다. 누가 더 예쁜가, 누가 더 날씬한가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겁니다. 저는 유명인보다 장인이 되고 싶어요” 

     

    굴뚝청소는 화재나 일산화탄소 중독을 막기 위해 배기 시스템과 굴뚝을 검사하는 일입니다. 연중 내내 일거리가 있고 특히 겨울이 바쁜 때라고 합니다. 

     

    [[IMAGE|276|center|루이사 토네토가 굴뚝 정비를 위해 벽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모습. [이미지 출처 : BBC 뉴스 캡처] ]]

     

    루이사는 3년 동안 견습생 시절을 거친 뒤 시험을 통과하면 ‘게젤레’가 됩니다. 게젤레를 거친 뒤에는 마이스터라고 불리는 장인이 됩니다. 

     

    게젤레가 되면 굴뚝 청소와 정비 이외에도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화재 방지 기술자나 에너지 컨설턴트 등과 같은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친구들이 여자들이 잘 하지 않는 직업을 선택한 데 대해 놀랐어요. 하지만 제가 설명을 하고 나니 모두 이해했어요.” 

     

    루이사는 높은 굴뚝에 오르면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지붕에 올라갔을 때 자유가 느껴져요. 작은 세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키 큰 사람이 되는 거지요. 굴뚝 위에서 바라보는 호수, 특히 일출과 일몰은 정말 아름다워요.” 

     

    루이사는 6월에 게젤레가 되는 시험을 앞두고 있습니다.

  • 119보다 더 빠른 응급치료 자원봉사단, 유나이티드 헤지젤라

    응급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 것은 다름 아닌 '골든타임'입니다. 골든타임 내에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통이 혼잡하거나, 앰뷸런스가 가기 어려운 지역이라든지 등으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경우도 있는데요.

    예루살렘에서는 '유나이티드 헤지젤라(United Hatzalah)' 덕분에 어디든 3분 내로 응급치료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United Hatzalah)'는 1992년에 엘리 비어(Eli Beer)가 설립한 '무료 응급의료 서비스 단체 (EMS)'입니다. 현재 약 50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앰뷰사이클(Ambucycle)'이라고 불리는 응급치료용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구조대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 대원이 타는 앰뷰사이클에는 의료장비함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응급 의료장비, 산소공급기, 자동심장충격기(AED)를 포함해, 앰뷸런스에서 볼 수 있는 의료 장비들이 담겨 있습니다. 물론 대원들은 이 모든 장비들을 다룰 수 있습니다. 

     

    이들이 현장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분입니다. 환자가 발생하면 단체의 지휘본부는 GPS 기반의 첨단 파견 기술을 사용해 가장 가까운 대원을 확인하고, 모바일 장치를 통해 그를 현장으로 안내합니다. 혼잡한 교통, 골목길 등 앰뷸런스에겐 장애가 되는 요소들도 앰뷰사이클에겐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엘리 비어가 이 단체를 만들게 된 것은 그가 어릴 때 목격한 사고 현장 때문이었습니다.

     

    비어가 6살이었을 때, 버스가 그의 근처에서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람과 장비가 부족해 구조와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비어는 사고 현장에서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15살이 되면서 앰뷸런스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비어가 17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응급상황에 더 빨리 대처하려면 좀 더 유연한 응급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주변에서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달려와 생명을 구할 자원봉사 구조대를 만든 이유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구조대는 규모가 점차 커져 전국적으로 확대되었고, 현재는 연간 300,000 명이 넘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5,000 명 이상의 자원봉사 단체로 성장했습니다. 모든 서비스는 인종이나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무료로 제공됩니다.

     

    단체의 대변인인 다니엘 캐츤스테인(Daniel Katzenstein)은 '브레이킹 이스라엘 뉴스(Breaking Israel News)'와의 인터뷰에서 단체가 운용하는 앰뷰사이클과 일반적인 앰뷸런스의 차이점은 (실시간으로 소식이 전해지는) 트위터와 다음날 볼 수 있는 신문과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대원 1명 당 연간 평균 480건의 출동 전화를 받는데, 그중 25%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위급한 상황이며, 3년간 360여 명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심장질환 학회(Israel Heart Society)에 따르면 단체가 가 설립된 이래로 심장 마비로 사망한 비율이 50 % 감소했다고 합니다. 심장마비에 대한 응급치료 여부는 긴급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척도입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이러한 활동은 세계적으로 성과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설립자 엘리 비어는 2011년 이스라엘 시몬 페레스(Shimon Peres) 대통령으로부터 '자원봉사자를 위한 대통령 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어 2012년에는 세계 경제포럼인 다보스(Davos)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선정되었으며, 2016년에는 랍비 쉬무엘리 보테크(Rabbi Shmueli Boteach)가 설립한 '세계 가치 네트워크(World Values Network)'로부터 '인간 생명의 챔피온 상(Champion of Human Life Award)을 받았습니다. 

     

    또한, 이 단체는 2015년 3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AIPAC (American-Israel Public Affairs Committee )의 혁신 쇼케이스에서 이스라엘에서 개발된 긴급 구조에 대한 신기술을 선보여 세계 응급 기술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목표는 전 세계에 유나이티드 헤지젤라의 구명활동 모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2015년부터 그들은 미국 뉴저지 주의 저지시티를 포함해, 남미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 지점을 설립해 구조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2015년 네팔 지진, 2016년 아이티 허리케인 등 국제적 원조가 필요한 재난에도 적극 나서 구명활동을 펼쳤습니다.

     

    "우리가 활동을 시작한 국가는 (환자의 연락을 받고) 현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불과 2분 35초로 단축되었습니다. 큰 재난에는 우리의 응급 의료 전문가가 가장 피해가 심한 마을과 도시로 출동했으며, 가장 열악한 지역에서 앞서 활동했습니다. 우리 대원들의 열정과 전문성은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 20대에 '수백명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다.

    "전 우리 모두가 이 세계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믿음 하나로 20대에 '수백 명의 아이들의 어머니'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블링크나우(BlinkNow) 재단의 창립자인 매기 도인(Maggie Doyne)은 네팔의 내전으로 고아가 된 49명의 아이들의 법적 후견인입니다. 

    또한, 네팔에 코필라 벨리 스쿨(Kopila Valley School)이란 학교를 세워, 380명 이상의 아이들을 무료로 교육시키는 등 불우한 환경의 아이들에게 행복한 삶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도인이 자신의 삶을 네팔의 아이들을 돕는 데에 바치기로 결심한 것은 2006년, 네팔을 여행하다 두 소녀를 만난 것이 계기였습니다.

     

    당시 18살이었던 도인은 장래 무엇을 해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도인은 자신의 미래를 찾기 위해, 자아성찰 여행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세계를 여행하기 했습니다. 그러던 중, 도인은 네팔에서 라코라(Lacora)라는 매우 어린 소녀를 만납니다.

     

    라코라는 네팔의 고아 중 한명이었습니다.

    라코라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하루종일 무거운 짐을 버스 정류장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까지 머리에 이고 옮기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고생해서 번 돈은 겨우 하루에 1~2달러였습니다. 

    네팔 고아들의 비참한 삶을 보고, 그는 "이 아이들이 이렇게 힘들게 사는데, 같은 인류로서 우리는 대체 뭘 하고 있었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도인은 히마(Hema)라는 소녀도 만납니다.

    당시 6살이었던 히마는 마른 강바닥에서 돌을 깨고 그것을 팔아서 얻은 몇 루피의 돈으로 근근히 살아가던 고아였습니다.

    "전 세계의 고아는 도울 수 없겠지만, 이 아이 한명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도인은 히마의 학비, 교복, 교재비 등을 지불하면서 그녀가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히마를 도우면 도울수록, 도인의 마음속에는 다른 고아들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점차 싹텄습니다. 

    날이 갈 수록 도인은 고아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집, 마음껏 배울 수 있는 학교,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는 마을을 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7년, 도인이 19살이 되던 해에 그녀는 블링크나우(BlinkNow) 재단을 설립해 본격적으로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12살부터 18살까지 6년간 용돈으로 조금씩 모아뒀던 5000달러와 함께, 전 세계에서 기부를 받아 코필라 벨리(Kopila valley)의 땅을 일부 구입했습니다.

     

    그 해에 도인은 그곳에 '코필라 벨리 어린이의 집(Kopila Valley Children's Home)'을 열었으며, 네팔의 고아들을 한명 두명 입양하면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에는 코필라 벨리 스쿨(Kopila Valley School)을 세웠으며, 이후 병원, 자매의 집 등 아이들이 질병, 범죄 등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시설들을 차례로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도인의 노력은 조금씩 전 세계 사람들에게 퍼져나갔고, 점차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2009년에는 '25 세 이하의 젊은이들이 지역 사회와 세계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사람'을 선정하는 두 섬씽 어워즈(Do Something Awards)에서 대상을 받아 10만 달러를 수상했으며, 2013년에는 포브스(Forbes)의 교육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2014년에는 달라이 라마가 선정하는 '알려지지 않은 자비의 영웅(Unsung Hero of Compassion)'으로 선정됐고, 2015년에는 CNN에서 선정한 '올해의 영웅(Hero of the Year)'에 뽑혔습니다. 

     

    "이 아이들을 만났음에도 아이들을 위한 어떤 것도 하지 않은 채 사는 것 보다는, (아이들의 현 상황에 대해) 어떻게서든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낫다고 당시에 전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방법인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올 지 등등 전혀 몰랐지만, 그래도 (이러한 삶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인은 자신의 집에서 49명의 아이들과 함께 사는 것이 너무나도 재밌고, 그 곳이 자신을 위한 조그마한 파라다이스라로 합니다.

     

    도인은 현재의 코필라 벨리 캠퍼스를 대체할 새로운 캠퍼스를 건설하려고 합니다.

    엔지니어, 건축가, 개발자 및 환경 전문가 팀이 지속 가능한 녹색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캠퍼스를 건설하고 있으며, 그 넓이는 1만 2140 제곱미터 (약 3672평)에 달합니다. 새로운 캠퍼스의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직업 센터까지 있으며, 500명의 학생들을 위한 18개의 강의실로 이뤄집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음식을 식량을 제공할 농장과 과수원도 있습니다.

     

    그녀는 어려운 아이들을 도우려는 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 수록 ('우리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와 사람을 돕는 데 있어서는 모든 이들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감각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인은 우리 모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교육을 잘 받았고, 자유롭고, 능력이 있고, 안전하다면, 당신의 힘을 당신과는 달리 가지지 못한 우리 인류 가족들을 위해 써야 합니다. 전 우리 모두가 이 세계를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