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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라질의 소도시, 전 주민에게 기본소득 지급 추진

    브라질 마라카시에서 발행하고 있는 몸부카. [이미지 : AFP 뉴스 유튜브 캡쳐]

    브라질의 한 도시가 담대한 실험에 나섰습니다. 모든 주민에게 기초 생활비 수준의 기본소득을 나눠주기로 한 것입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브라질의 마리카시는 이르면 11월부터 2만 7천 명의 시민들에게 월 130헤알(약 3만 6천 원)을 지급합니다.
     
    기본소득은 현금이 아닌 이 도시의 지역화폐 뭄부카(Mumbuca)로 지급됩니다. 주민들은 해당 금액이 적립된 신용카드를 받거나 모바일앱에 해당 금액을 충전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을 받습니다.
     
    마리카시는 대상자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2021년에는 모든 시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월 130헤일은 브라질의 최저생계비 수준에 해당되는 돈입니다. 브라질 정부는 극빈층의 월 가계소득을 145헤알로 보고 있습니다.
     
    뭄부카는 브라질 정부에서 빈곤층에 사실상 현금으로 지급하는 수당과는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브라질은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대통령 집권 때인 2004년부터 전 국민의 1/4에 해당하는 극빈층에게 월 40헤알을 지급해왔습니다. 이는 현금으로 인출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마리카시에서 지급하는 뭄부카는 현금으로 인출할 수 없고 마리카시 안에서만 쓸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 실험에 필요한 재원은 마리카시 예산에서 나옵니다. 마리카시의 주요 수입원은 원유 로열티 수입이라고 합니다.
     
    마리카시는 이번 실험이 지역 경제와 고용 창출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합니다.
     
    파비아노 호르타 마리카시 시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본소득 지급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공공정책”이라며 “우리는 이번 실험을 통해 지역화폐인 뭄부카가 어떻게 마리카시의 사회적 자산으로 전환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IMAGE|649|center|브라질의 마라카시 시청에서 몸부카를 발행하고 있다. 몸부카는 마라카시의 지역화폐로, 마라카시 지자체에서 이 몸부카로 전 시민에게 생활비 수준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이미지 : AFP 뉴스 유튜브 캡쳐] ]]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의 비밀, 공감교육

    덴마크의 모든 학교에서는 매주 'Klassens tid'라 불리는 공감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이미지 : GAF NEWS 유튜브 캡쳐]

    세계에서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덴마크입니다. UN은 2102년부터 해마다 세계 155개 나라 거주자를 대상으로 행복도 조사를 하는 데 덴마크는 지금까지 3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습니다.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 교육을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주요한 이유로 꼽습니다.

     

    미국 언론인 록산느 셰프레비는 “공감능력이 덴마크를 가장 행복한 나라로 만들었다"라며 “높은 수준의 공감 능력이 사회적 관계를 더 원만하게 만들었고 이는 행복지수의 상승으로 이어졌다"라고 전했습니다.

     

    공감 능력은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상대 감정을 잘 읽고 배려하는 능력입니다.

     

    덴마크는 1993년부터 모든 학교에서 6세에서 16세에 이르는 아이들에게 공감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받도록 했습니다. ‘Klassens tid’라고 불리는 덴마크의 공감 교육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닙니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에 다양한 감정을 표현한 감정 카드를 보여주며 아이들이 상대방의 표정을 보면서 그의 감정을 알아챌 수 있도록 합니다.

     

    고민 해결이라는 수업도 진행됩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고민을 털어놓는 시간입니다. 해결책에 대해 함께 얘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친구의 말을 경청하고 그의 처지를 이해하는 데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IMAGE|635|center|고민해결 시간에 학생들이 둘씩 짝지어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다. [이미지 : GAF NEWS 유튜브 캡쳐] ]]

     

    고민은 굳이 학교 문제가 아니어도 됩니다. 얘기할 고민이 없으면 대화를 나눠도 됩니다. 친구들과 마음을 터놓고 얘기를 나누는 일은 서로의 감정을 알아채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내가 요리가’라는 수업도 공감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이는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친구들에게 줄 케이크를 만들어 와 나눠주는 시간입니다. 친구들을 위해 자신이 몸소 무언가를 직접 만들면서 나눔의 기쁨을 느끼도록 하는 것입니다.

     

    공감 교육을 시작하면서 학생들이 친구를 괴롭히는 일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공감능력을 키운 아이들이 자라면서 덴마크에는 다른 이를 배려하는 마음을 지닌 성인들이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그로 인해 사회 전체가 바뀌어 나갔습니다.

     

    물론 덴마크 학교에도 경쟁이 있습니다. 하지만 덴마크 학생들의 경쟁상대는 친구가 아닌 오로지 자신이라고 배웁니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을 경쟁하도록 해 너 나은 능력을 기르도록 하는 거죠. 쓸 데 없는 경쟁을 부추기는 상장이나 트로피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 목소리 기부 이어가는 배우 유인나

    인기인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더빙이나 광고 등에 그들의 목소리가 자주 쓰입니다.

     

    목소리도 자산인 시대, 인기 배우 유인나 씨는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목소리를 좋은 일에 적극적으로 내놓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KBS 쿨FM <볼륨을 높여요>를 진행하며 ‘꿀보이스’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유인나 씨는 도시풍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많은 팬층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최근 MBC가 기획한 <같이펀딩>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책을 모아 오디오북을 제작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이 오디오북의 수익금은 청각장애 어린이들의 인공달팽이관 수술비를 지원하는 데 기부될 예정입니다. 유인나 씨는 이 활동을 지원하는 사회복지단체 ‘사랑의 달팽이’에 3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유인나 씨의 목소리 기부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그는 지난해 4월 열린 ‘샤갈특별전-영혼의 정원전’ 오디오가이드 제작에 참여해 수익금 일부를 루게릭환우를 위한 요양병원 건립기금에 내놓았습니다.

     

    2016년 시각장애인을 위한 오디오북 제작에 목소리 기부를 했고 2017년에는 SBS ‘오지로 간 낭만닥터이재훈’의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습니다.

     

    2017년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MBC플러스가 진행한 ‘2017 휴먼다큐 사랑플러스’에도 목소리 재능을 나눴습니다.

     

    목소리뿐 아니라 금전적 지원에도 적극적입니다. 지난해 연말 청소년 식사지원 사업에 3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유인나 씨는 <같이펀딩>에 참여하게 된 계기를 묻자 “내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힘이 되거나 위로가 될 때 가장 기뻐요. 목소리를 친근하게 여겨 주시니까 오디오북을 만들어서 많은 분들에게 위로를 드리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 대륙을 감동시킨 두 다리 없는 여성

    중국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웨이 메이뉘(31)는 어린 시절부터 두 다리가 없었으나, 수많은 도전을 하면서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생활한다. [이미지 : South China Morning Post 유튜브 캡처]

    중국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는 웨이 메이뉘(31)는 두 다리가 없습니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두 다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도 알 수 없습니다. 웨이는 3살 때 산시성의 한 복지관 근처에서 발견됐습니다.

     

    그 복지관에서 웨이는 구김살 없이 자랐습니다. 누구도 자신을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고 웨이는 회상합니다.

     

    두 팔로만 움직여야 하지만 웨이는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생활합니다. 팔굽혀 펴기와 물구나무 서기로 건강을 챙깁니다. 스케이트보드, 트램펄린, 탁구 등 여러 스포츠를 즐기고 수영도 하지요. 두 팔만으로 수영은 힘들지 않냐고요? 웨이는 6회 산시성 장애인 체전에 수영 선수로 출전해 금메달 3개를 땄습니다.

     

    두 다리가 없지만 웨이는 베이징, 시안, 달리, 리장 등 많은 곳을 여행했습니다.

     

    [[IMAGE|426|center|웨이 메이눼는 두 팔로만 움직여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생활하고 있다. 사진은 웨이가 여행을 하는 장면이다. [이미지 : South China Morning Post 유튜브 캡처] ]]

     

    웨이는 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자신을 길러준 복지관으로 돌아가 2017년까지 학생을 가르쳤고 이듬해 상하이에 가서 1년 동안 판매와 고객 응대 등의 일을 했습니다.

     

    상하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웨이는 지금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의류를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며 자립에 나선 것이지요.

     

    웨이는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자신의 일상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의 밝고 긍정적인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삶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웨이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멈춰 서 있는 것보다 계속 전진하는 게 낫습니다. 목표가 있다는 것은 없는 것보다 언제나 좋은 일입니다. 목표에 도달할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되니까요”

  • 100세 봉사 꿈꾸는 93세 의사 한원주

    매그너스 요양병원의 한원주 내과 과장(93). [이미지 : 극동방송TV 유튜브 캡처]

    내과 의사 한원주(93) 선생님이 오랜 기간 의술을 베풀면서 얻은 경험에서 나온 말입니다. ‘100세 현역’을 꿈꾸는 한 선생님은 지금도 여느 의사처럼 환자를 진료합니다.

     

    한 선생님의 직장은 경기도 남양주시의 매그너스 요양병원. 일요일 저녁 병원으로 출근해 금요일 오후 진료를 마친 뒤 서울 자택으로 퇴근하는 게 한 선생님의 일주일입니다.

     

    이곳에서 한 선생님이 돌보는 환자는 가끔 자신보다 나이 많은 이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동생뻘 되는 ‘어린’ 분들입니다. 한 선생님은 정성과 마음을 다해 겸손한 자세로 환자를 돌봐 존경을 받고 있습니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 손길을 주고 그들의 말을 들어주고, 어떨 때는 함께 찬송가를 부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 선생님은 정말 훌륭한 의사 대의(大醫)는 환자의 정신적인 부분까지도 책임을 져 전인치료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록 힘들고 수입이 적을지 몰라도 의사라면 그 길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1926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한 선생임은 1949년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고려대에서 내과 박사 학위를 딴 뒤에는 물리학자였던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전문의 자격을 따기도 했습니다.

     

    귀국한 뒤 개인 병원을 운영하던 그는 1978년 남편이 갑자기 사망하자 삶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이듬해인 1979년 병원을 정리하고 한국기독교의료선교협회 부설 의료선교의원 원장으로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시작합니다.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니 내가 배운 기술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한 선생님은 의료선교의원에서 가난한 환자를 대상으로 무료 진료를 시작했고, 1982년에는 ‘전인치유소’라는 이름의 기관을 만들었습니다. 가난이 병이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가난한 환자에게 생활비와 장학금까지 지원하며 자립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한 선생님이 봉사의 길에 들어선 것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도 컸습니다. 역시 의사였던 한 선생님의 아버지는 평생을 의료봉사에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그는 82세 되던 2008년 의료선교의원 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곧바로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매그너스 요양병원 내과 의사로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남은 생을 노인요양병원에서 어르신들을 돌보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사랑만 가지고도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위로만으로도 병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거든요."

     

    한 선생은 2017년 JW중외제약의 공익 재단인 중외학술복지재단이 주는 제5회 성천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성천상은 JW성천재단 창업자인 고 성천 이기석 선생의 생명존중 정신을 기려 음지에서 헌신적인 의료 봉사활동을 펼치는 의료인에게 주는 상입니다.

     

    한 선생님의 건강 유지 비결은 규칙적인 생활 덕분이라고 합니다. 그는 진료를 마친 뒤에는 어김없이 한 시간 가량 병원 주변을 산책합니다.

     

    의사로 평생을 봉사하며 살다 세상을 떠난 알버트 슈바이처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진정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떻게 베풀 수 있는지 터득한 사람뿐입니다.”

  • 불길 뚫고 90대 할머니 구한 스리랑카 불법체류자에 영주권

    화재 현장에서 할머니를 구한 니말 씨(가운데). 출처 : LG복지재단

    불길 속에서 90대 할머니를 구한 스리랑카 불법체류자가 영주권을 받았습니다.  

    스리랑카 출신 니말 씨는 18일 오전 대구 동구 대구출입국ㆍ외국인사무소에서 영주권을 받고 “고향에 계신 아버지가 편찮으신데 방문해 기쁨을 나누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니말 씨는 이어 “영주권을 받게 되어 너무 행복하고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에게 너무 감사드린다"라고 자신에 관심을 가져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법무부 관계자와 주한 스리랑카 대사관, 군위군청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경북 군위군의 한 과수원에서 일하던 니말 씨는 지난해 2월 한 가정 주택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동네 주민 등과 함께 불길을 헤치고 들어가 혼자 살던 90대 할머니를 구했습니다.  

    니말 씨는 할머니를 구하는 과정에서 목, 손목 등에 2도 화상을 입었고 유독가스를 마시는 바람에 폐를 다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법무부는 지난 13일 ‘외국인 인권 보호 및 권익 증진협의회’를 열어 참석위원 만장일치로 니말(Nimal) 씨에게 영주 자격을 부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국민의 생명 및 재산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영주권이 주어진 것은 니말 씨가 처음입니다.  

    니말씨는 지난해 3월 LG복지재단이 수여하는 ‘LG의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같은 해 6월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의상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의상자는 다른 사람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부상을 입은 사람으로 보상금 등의 예우를 받게 됩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의상자가 된 것은 니말 씨가 처음입니다.  

    이어 대구출입국·외국인사무소는 니말 씨가 추방당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기타자격(G-1) 체류허가를 내주고 불법체류와 관련된 범칙금도 면제해 줬습니다.  

    또 기타자격(G-1)은 취업활동을 하거나 의료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해 영주권 부여를 추진했다고 합니다..

  • 옛 ‘국민 신발’ 고무신, 동티모르 아이들의 희망이 되다

    고무신은 한때 ‘국민 신발’이었습니다.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았지요. 검정 고무신, 흰 고무신, 그리고 알록달록한 색동 고무신 정도가 종류의 전부였습니다.  

     

    운동화가 생산되면서 고무신은 한동안 가난의 상징이 되기도 했습니다.  

     

    형편이 넉넉한 집에서 아이들에 운동화를 사줄 때 가난한 집 아이들은 고무신을 신어야 했습니다.  

     

    그런 고무신이 동티모르 빈곤층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신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동티모르는 산골마을로 갈수록 환경이 열악합니다. 고산지대의 아이들은 맨발로 산길을 다니며 커피콩을 줍고 두 시간을 걸어 등하교를 합니다. 발을 다치는 아이들이 많은 이유입니다.  

     

    이런 아이들을 돕기 위해 대구의 사회복지법인 가정복지회가 동티모르 어린이들에게 고무신을 보내는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착한고무신 보내기 프로젝트입니다. 

     

    도움을 주고 싶은 분은 월 1만 원씩 정기후원을 하거나 1켤레 당 3~5천 원 하는 고무신을 직접 사서 가정복지회로 보내주면 됩니다. 

     

    ‘착한고무신’은 동티모르 현지의 비영리 알롤라재단을 통해 어린이에게 전달됩니다. 

     

    만화 ‘검정고무신’을 그린 이우영 작가는 착한 고무신을 손에 든 ‘기영이’를 캐릭터로 기부했고 대구에 본사를 둔 베트남 음식 프랜차이즈 ‘더포’는 계산서에 ‘기영이’ 스티커를 붙이면 1000원을 더 결재해 그렇게 모은 돈으로 ‘착한고무신’을 사서 보내고 있습니다. 

     

    고무신을 받은 아이들은 너무 좋아한다고 합니다. 가정복지회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고무신을 신고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얼굴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복지회는 착한고무신 프로젝트를 아이들의 교육사업으로 확장하고 있습니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해서입니다. 

     

    동티모르는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작은 섬나라입니다. 인구 절반이 하루 0.88달러로 생활하고 5세 이하 어린이 절반이 체중미달을 겪고 있으며 초등학교에 다니는 비율도 56%에 불과한 곳입니다. 

  • 요셉의원, 큰 병원보다 더 큰 병원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서울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한 요셉의원은 성경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자들’을 무료 진료하는 곳입니다.


    병원에는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옵니다.


    대부분 노숙인이나 행려병자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감기약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진료받을 곳이 없어 병을 키우기 일쑤인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곳을 찾습니다.


    병원 운영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서울카톨릭사회복지회 부설인 요셉의원은 의료인 외에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단식하며 하루에 500원씩 모은 돈을 보내주는 버스 기사, 후원금을 내기 위해 미국에서 온 본, 시주 받으러 왔다가 후원금을 내도 간 스님까지 많은 분들이 요셉의원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은 몸이 병들었지만 마음이 더 아픈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데 더욱 신경을 씁니다.


    한 목욕 봉사자는 악취가 진동하는 환자의 발에 입을 맞추고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닦았다고 합니다. 세상 누구도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 자신의 발에 따듯한 입술이 닿았을 때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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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의원은 2008년 세상을 떠난 고 선우경식 박사가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1987년 세운 무료병원입니다.


    1969년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 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한 선우 박사는 귀국한 뒤 한림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1983년부터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진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87년 선우 박사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아예 병원을 세웠습니다. 요셉의원의 시작입니다. 개원 첫 달 1000만 원의 적자가 날 정도로 병원 운영이 어려웠지만 선우 박사는 직접 나서서 쌀을 얻어오고 의약품을 기부받았습니다.


    선우 박사가 요셉의원을 만든 것은 처음 의학을 공부할 때 사람을 살리는 데 의술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 알입니다.


    퇴근길에 길가에 쓰러진 환자를 데리고 가 치료하면 그렇게 마음을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선우 박사에게 어느 날 병마가 찾아옵니다. 2006년 위암 수술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병원을 찾았던 그는 2008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선우경식 박사의 뒤를 이은 사람은 신완식 박사입니다.


    감염내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가톨릭의대 교수였던 신 박사는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과장으로 ‘잘 나가던’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신 박사는 2009년 정년을 6년 앞두고 월급 한 푼 없는 요셉의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전문의가 됐을 때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힘들게 공부했으니 세상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몇 번을 당부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그때 다시 생각났다고 합니다.


    신 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셉의원에서 가슴으로 웃는 법을 알았고 세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찾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처럼 요셉의원에서 참 행복을 찾은 이들이 많습니다.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1만 1000여 명의 후원자들이 그들입니다.


    한 여중생은 요셉의원 소식지에 쓴 글에서 “커다란 병원보다 더 큰 병원”이라고 적었습니다.


    요셉의원 홈페이지에 원장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