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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난기본소득 기부운동 시작

    재난기본소득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기본소득인 만큼 누구에게나 줘야 한다는 주장과 형편이 넉넉한 이들에게까지 지급해야 하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두 주장의 간극을 메우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재난기본소득을 모두에게 지급하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기부를 하자는 겁니다.

     

    수원시에서는 이미 이런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수원시와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지난 9일 코로나19 재난기본소득 나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이 캠페인에는 수원시청 공무원노조, 수원시노사민정협의회, 수원시 평생학습을 실천하는 사람들 협회 등이 참여했습니다.

     

    기부를 원하는 시민은 본인 명의 계좌로 받은 돈을 특별 모금 계좌에 입금하거나 기부 상담창구를 운영하는 동행정복지센터의 모금함에 넣으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기부하는 지정기탁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운동은 더불어민주당 원혜영 의원이 앞서 제안했습니다. 원 의원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논쟁보다 값진 것은 기부입니다”

     

    4월부터 모든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1인당 10만 원씩 재난기본소득이 시행됩니다. 코로나19로 침체 된 도내 경기를 살리고 생계에도 도움을 드리기 위한 조치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옳으냐는 논란도 있습니다. 논쟁은 의미 있지만 지금은 한 차원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일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의 이 상황을 오히려 사회통합의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유가 좀 있으신 분들은 재난기본소득 기부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어떨까요?

     

    참여해 주십시오. 우리는 논쟁보다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비슷한 제안을 했습니다. 김 지사는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는 굳이 재난지원금을 주지 않아도 되니 어려운 분들에게 주시라고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라며 “그런 분들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가칭)사회연대협력기금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김 지사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간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놓고 의견차를 보이는 데 대해서도 “국채 발행에 주저할 때가 아닙니다. 정부가 빚을 지지 않으면 국민이 빚을 지게 됩니다. 기획재정부의 재정건전성 집착을 국회가 풀어줘야 합니다”라고 재난기본소득의 조기 지급을 위해 국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 LG, 대구 경북 병상부족 도우려 기숙사 연수원 내놔

    3월 4일 LG그룹이 코로나 병상 부족으로 인한 확진자 진료 치료를 돕기 위해 경북지역 기숙사와 연수원을 제공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미지 : LG]

    LG그룹이 대구∙경북 지역의 병상 부족사태를 돕기 위해 기숙사와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합니다.

     

    LG는 4일 코로나19 병상 부족으로 확진자 치료에 어려움을 겪는 문제를 지원하기 위해 경북지역 기숙사와 연수원을 생활치료센터로 제공키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LG가 제공하는 시설은 383실 규모의 LG디스플레이 구미 기숙사와 167실 규모의 울진 LG생활연수원입니다.

     

    LG디스플레이 구미 기숙사는 경북 구미시 2공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연면적 2만5000㎡로 욕실을 갖춘 원룸 형태 267실과 방 2개, 욕실 등 아파트 형태의  116실을 갖추고 있어 최대 499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울진 LG생활연수원은 임직원 휴양 시설로 연면적 2만2000㎡에 167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습니다.

     

    앞서 LG는 코로나19 구호성금 50억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고, LG생활건강은 10억원 상당의 핸드워시 제품을 현물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 미국 도시에서 진행 중인 ‘공짜 버스’ 실험

    미국에서 ‘공짜 버스’ 실험이 진행 중입니다.

     

    빈곤 지역에 사는 시민들의 이동권을 보장하고 승용차 사용을 줄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소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무료 버스 운영에서 앞서가는 도시는 매사추세츠 주의 로렌스시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보도한 바에 다르면 로렌스시는 지난해 9월부터 3개 노선에서 무로 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로렌스의 버스 요금은 1인당 1달러 25센트(교통카드를 이용할 경우 1달러)입니다. 2년 동안 운영되는 시범사업을 통해 버스회사가 입게 될 손실금액은 22만 5천여 달러는 시 재정에서 지원됩니다.

     

    민주당 소속 댄 리베라 시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들 3개 노선은 가장 가난한 지역을 통과한다"라며 “이를 통해 그 지역 주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었다"라고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보스턴, 캔자스시티, 올림피아, 워시 등 다른 도시들에서도 무료 버스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물론 무료 버스 운행에 드는 비용을 들어 반대하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무료 버스가 운행되는 곳은 미국뿐이 아닙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유럽을 중심으로 100여 개의 도시에서 무료 버스를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 설날에 찾아오는 부산 남구의 기부천사

    부산시 남구 용호동에는 설날이면 찾아오는 손님이 있습니다.

     

    신분도 밝히지 않는 그 손님은 올해도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거금을 두고 갔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일 부산시 남구 용호4동 행정복지센터에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찾아와 1천만 원이 든 봉투를 민원대에 올려놓았습니다.

     

    올해 봉투 위에는 "2019년 정년퇴직을 해서 2020년도에는 지원이 어렵겠네요. 이해 바라며 형편이 되면 내년에 뵙지요"라는 글귀를 남겼다고 합니다.

     

    그 남성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어려운 이웃에 써달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그는 2015년부터 매년 설 연휴를 앞두고 이곳을 찾아 익명의 기부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올해까지 6년 동안 4800만 원을 기부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남구는 기부자의 뜻에 따라 용호동 1~4개동에 각 250만 원씩 기부금을 나눠줘 어려운 이웃 돕기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 네덜란드의 치유농장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은 네덜란드의 케어팜 중 하나로, 정서적 안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이미지 : 유튜브 캡처]

    자연이 현대인의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자연의 그런 힘을 이용해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들을 치유하는 농장을 케어팜(Care Farm)이라고 부릅니다.

     

    네덜란드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Hoover Klein Marieendal) 농장이 대표적인 케어팜입니다.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은 마리엔달의 작은 농장이라는 뜻입니다.

     

    이 농장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남동쪽으로 100km 떨어진 아르헴의 교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농장이라고 불리지만 이곳은 깔끔하게 정돈된 현대식 농촌과는 거리가 한참 있어 보이는 곳입니다. 담장은 아예 없고 마당에는 닭들이 자유롭게 오가고, 당나귀도 어슬렁거립니다. 어디가 들판인지 밭인지 구분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이곳이 여느 농장과 다른 점은 이용객들의 치유를 위해 운영된다는 점입니다. 매일 20~25명의 ‘이용객’이 이곳을 찾아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케어팜에서는 치유를 위해 방문하는 이들을 환자 대신 이용객(클라이언트)라고 부릅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치매나 자폐 환자들입니다. 장기간 실직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나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학생들도 이곳을 찾습니다.

     

    텃밭에서 농작물을 가꾸기도 하고 농장의 동물들과 들판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요리를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기도 하지요. 빵과 커피를 앞에 놓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10여 명의 직원과 4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케어팜을 운영합니다.

     

    후버 클라인 마리엔달은 농업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와게닝겐(Wageningen) 대학의 얀 하싱크(Jan Hassink) 박사가 2007년에 만들었습니다. 상처받은 도시인들이 주거지와 멀지 않은 곳에서 치유 받을 수 있도록 만든 도시형 케어팜이라고 합니다.

     

    케어팜 이용은 농장에서 정서적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 소견서를 갖고 지역 행정기관을 찾아가면 사회복지담당 직원이 판단해 치유농장을 연결해줍니다. 정부에서는 반나절에 35유로(약 4만5천원)를 지원한다고 합니다.

     

    네덜란드의 케어팜은 농업과 복지를 합친 개념으로 1995년 등장했는데 현재 약 1400개나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2만 명이 케어팜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병원장, 빈민촌서 25년 '인술'

    25년.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병원장이 방글라데시에서 의료 봉사로 보낸 시간입니다.

     

    이 원장은 1994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꼬람똘라병원 의사 모집 공고에 지원했습니다.

     

    그가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유는 군 면제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남대 83학번인 그는 키가 153cm로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이들 같으면 인생에서 ‘3년을 벌었다’고 좋아했겠지만 이 원장은 다른 이들이 군 복무를 하는 기간 동안 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처음 방글라데시로 떠날 때 딱 3년 동안만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해 1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태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가 일하는 꼬람똘라 병원은 한국해외의료선교회인 콤스(KOMMS)가 1992년 설립한 병원입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빈민촌에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건강보험이 없고 진료비는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병을 안고 살면서 키우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라 꼬람똘라는 진료비의 1/10만 받습니다. 그 돈을 부담하기도 어려운 사람은 무료로 치료해줍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돈을 ‘강제로’ 맡아두기도 합니다.

     

    결핵 환자 치료가 그랬습니다. 결핵은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완치가 되는데 이곳 환자들은 증세가 완화되면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원장은 결핵 치료 환자에게 보증금으로 1000타카(약 1만4천 원)를 받았습니다. 대신 병이 다 나으면 돌려줬습니다.

     

    이 원장은 병원에 필요한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급여도 대폭 삭감했습니다. 연봉이 3만 달러와 퇴직금 조로 쌓아두는 돈이 1만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2만 달러만 받겠다고 하고 나머지 돈으로 외과의사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 원장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알고 2009년에는 백내장 수술에 특화된 안과도 개설했습니다. 2018년 한 해에만 1300여 명이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운 여성을 위해 3년제 간호학교도 설립해 학생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고 장학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이 학교에서 100여 명의 간호사가 배출됐습니다.

     

    25년간 그가 쏟은 땀방울과 정성으로 현재 꼬람똘라 병원은 8개의 진료과와 50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해마다 8만 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고교 시절 공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누나의 권유로 의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대학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고민도 많았다고 합니다. 돈과 명예 대신 다른 길을 찾고자 했던 고민이 그를 방글라데시로 이끌었습니다.

     

    이 원장은 25년간의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올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아산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막노동으로 3남 2녀를 키운 부모님에게 늘 죄송하다는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상이 부모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이를 치료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겉치레를 다 버리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며 소박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지요.

  • 폐지 판 돈 기부 27년째 이어가는 할아버지

    지난 5일 장광래(75) 할아버지가 천안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에 100만 원 상당의 상품권을 기부해 화제가 되었다. [이미지 : MBCNEWS 유튜브]

    폐지를 팔아 생활하는 70대 할아버지가 27년째 기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천안시에 따르면 지난 5일 중앙동에 사는 장광래(75) 할아버지가 행정복지센터를 찾아 100만 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기탁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에 전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요.

     

    온누리상품권은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동네의 폐지를 수거해 판 돈 가운데 일부를 모은 돈으로 구매한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매일 폐지를 팔아서 받은 돈을 들고 은행을 찾는다고 합니다. 적은 돈이지만 할아버지가 통장에 꼬박꼬박 입금하는 이유는 갖고 있다가 써버릴까 걱정해서라고 합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연말이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줬고, 생활비가 부족한 이웃에게는 생필품을 사서 보내기도 했습니다. 올해로 27년째입니다.

     

    할아버지는 아침이면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 봉사활동도 한다고 합니다.

     

    할아버지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천진난만한 애들이 고맙다고 인사하고, 또 어떤 때는 사탕도 하나씩 줄 때도 있어요.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라며 자신이 오히려 얻는 게 많아 기부를 멈출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삶, 신독(愼獨)

    지난 14일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향년 9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미지 : LG 공식 홈페이지]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허례허식’을 삼가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도 비공개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빈소를 공개하지 않고 조문은 물론이고 조화까지 사양했지만 인연 있는 정재계 인사 수십 명이 굳이 빈소를 찾을 정도로 고인이 남긴 족적은 큰 것 같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에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부자가 되기 위해 바르고 부끄러움 없는 생활 자세”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고인은 서울 여의도 LG 사옥 집무실에 신독(愼獨)이라고 쓴 휘호를 걸어 놓고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신독은 대학에 나오는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의 줄임말입니다. 군자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늘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는 LG가 내세우는 ‘정도경영’의 바탕이 됐을 것입니다. 
     
    고인은 신독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의 원칙도 세웠습니다. 
     
    “사사로운 이해를 떠나 공사를 엄정히 구분하면서 기업을 이끌어 나가고, 항상 정당한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기업을 운영한다면 사회는 결코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근검절약하고 절제된 생활을 영위하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부는 이 사회로부터 점차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신독이라는 삶의 철학은 구 명예회장의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의 검소함은 가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구 명예회장은 회고록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 “나는 주로 구태회 숙부의 옷을 대물림해 입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조부께선 학용품도 하나 다 써야 새것 하나를 꺼내 주셨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자라서인지 구 명예회장은 재벌의 총수이지만 어느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구 명예회장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고동색 카디건과 검은 뿔테안경은 20년 쓴 물건들입니다. 은퇴한 뒤 사용할 컴퓨터도 계열사에서 쓰던 것을 가져다 쓸 정도로 근검절약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회장님께서 1980년대 정부청사 인근 허름한 식당에서 일행과 수행원도 없이 혼자 비빔밥을 드시던 소박한 모습을 몇 차례나 봤다. 회장님의 그런 풍모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키웠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고인은 각지의 공장을 방문할 때도 불필요한 의전을 삼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LG그룹에서는 오너 경영인이 방문했을 때 간부들과 직원들이 도열해서 맞는 일이 없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가족에게도 엄격했습니다. 힘 있고 돈 많은 이들의 대다수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궁리할 때, 고인의 네 아들은 모두 육군에서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습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신독의 삶을 살았기에 구 명예회장은 물러날 때도 알았습니다.  그는 1995년 LG를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주고 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에서 자식에게 경영을 물려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구 며예회장은 낙향한 곳에서도 버섯 재배를 연구하고 된장,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는 늘 마음을 썼습니다. 1991년 사재 2억 원을 출연해 LG복지재단을 만들어 소외계층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상남이라는 호를 지은 것입니다.
     
    구 명예회장은 문중에서 항렬이 낮지만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습니다. 아저씨뻘 되는 이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들이 자신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남이라는 호를 지었습니다. 상남은 경남 진양군 지수면 고향집 앞에 있는 작은 다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고인은 삶처럼 떠나는 길도 소탈했습니다. 
     
    유족은 빈소를 공개하지 않았고 화장 뒤 묻힐 장지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문상객도 2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화도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것만 받고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나라의 대표가 보낸 것이라 그마저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 배고파 우유 훔친 ‘장발장’ 부자에 일어난 기적

    '현대판 장발장'이라 불릴 정도로 가난한 부자(父子)를 도운 이재익 경위(왼쪽)와 박춘식씨(가운데). [이미지 : 인천 중부경찰서]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은 배고픔을 견디다 못해 빵 한 조각을 훔쳤다는 이유로 19년 동안 감옥에 갇힙니다.

     
    우리 시대에도 ‘장발장’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장발장은 다행히 감옥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신 많은 이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4시쯤 30대 A 씨와 10대 아들이 인천시 중구의 한 마트에 들어가 물건을 훔치다 붙잡혔습니다. A씨가 아들이 멘 가방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을 CCTV로 본 직원이 이들을 붙잡았고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지요.
     
    이들의 가방에서 나온 물건은 우유 2팩과 사과 6개, 음료수 몇 병 등 금액으로 따지면 1만 원 정도 됐습니다.
     
    경찰이 출동했을 때 A씨는 두 손을 앞에 다소곳이 모은 채 직원에게 연신 "용서해 달라"라며 머리를 숙였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다"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A씨는 택시 운전을 했지만 당뇨와 갑상선 질환으로 6개월 동안 일을 못해 끼니를 때울 돈조차 없어 물건을 훔치게 됐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는 홀어머니와 7살 둘째 아들이 먹을 것을 구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도 털어놓았습니다.
     
    사연을 들은 마트 주인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경찰도 이들 부자를 훈방조치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경찰관들은 이들을 돌려보내기에 앞서 근처 식당에 먼저 데리고 가서 따뜻한 국밥을 대접했습니다.
     
    식당에서는 한 시민이 20만 원이 든 봉투를 건네고 식당을 나갔습니다. 아들이 돌려주려고 달려나갔지만 그 시민은 한사코 아이에게 돈 봉투를 맡기고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경찰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의인은 국내외를 오가며 사업을 하는 박춘식(66)씨로, 당시 창밖에서 ‘사건’을 지켜본 뒤 식당까지 따라가 돈 봉투를 전했다고 합니다.
     
    현장에 출동했던 이재익 경위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아침 점심을 다 걸렀다고 부자가 그러니까요… 요즘 세상에 밥 굶는 사람이 어딨습니까”라며 눈물을 훔쳤습니다.
     
    경찰은 행정복지센터를 통해 A씨의 일지라를 알선하고 B군은 무료급식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많은 이들이 부자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당장 마트 주인부터 이들 부자에게 쌀과 식료품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여러 시민들이 사과, 식료품, 생필품 등 물품을 구입한 뒤 부자에게 전해달라며 맡기고 갔고 어떤 이들은 계좌로 돈을 입금하기도 했습니다. 도울 방법을 묻는 문의 전화도 이어졌습니다.
     
    A씨는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가장으로서 일을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니 애들한테 가장 미안하다”면서 식당에서 현금 봉투를 주고 간 사람을 꼭 찾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로 알지도 못하는 데 그렇게 해주셨다는 것 자체가 너무 고맙다"라고 했습니다.

  • LG의인상에 95세 정 안나 할머니

    지난 9일 LG의인상을 수상한 정희일(안나, 95) 옹. 그는 노숙인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에서 33년간 급식 봉사를 했다. [LG복지재단]

    역대 최고령 LG 의인상 수상자가 탄생했습니다.

     

    LG의인상은 LG복지재단이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에게 수여해 온 상입니다. 올해부터 시상 범위를 우리 사회와 이웃을 위한 선행과 봉사로 귀감이 된 시민들로 확대했습니다

     

    주인공은 무료급식소에서 35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정희일 안나 할머니입니다.

     

    정 할머니는 올해 95세로 2015년 LG 의인상이 제정된 뒤 지금까지 수상한 117명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정 할머니는 1986년 서울 영등포구에 무료급식소 토마스의 집이 문을 연 후 지금까지 급식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토마스의 집은 염수정 추기경이 1986년 천주교 영등포동성당 주임신부를 맡았을 때 성당 인근 노숙인들에게 점심 한 끼를 제공하기 위해 신자들과 뜻을 모아 설립한 국내 최초의 노숙인 무료급식소입니다.

     

    하루 평균 400~450명, 연간 13만 명의 가난한 이웃이 이곳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정 안나 할머니는 토마스의 집이 문을 열 때 자원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염 추기경의 말에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토마스의 집이 재정난 등으로 세 번이나 자리를 옮기는 동안에도 그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습니다.

     

    정 안나 할머니는 토마스의 집이 문을 여는 날이면 언제나 새벽에 서울 당산동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나와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고령으로 음식 조리와 배식 봉사가 어려워 오전 8시부터 식탁을 닦고 수저와 물컵을 놓고 식사를 마친 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일을 합니다.

     

    LG의인상도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 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정 할머니는 2014년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로부터 제31회 가톨릭 대상 사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