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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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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열면 길이 보인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자아를 버릴 준비가 되면, 영적인 깨달음은 바로 지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름다운 비유가 있어요. 

     

    백만 년 동안 빛이 들어온 적 없는 컴컴한 동굴이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동굴 안으로 촛불을 가지고 옵니다. 

     

    그 순간 백만 년 동안의 어둠은 즉시 사라집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참된 본성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필요한 어떤 것을 찾아 헤매는 ‘나’는 없게 됩니다. 

     

    깨달음은 우리의 배경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오랫동안 명상을 해왔다거나 위대한 스승과의 만남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깨달음에 마음이 열려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습니다.

     

    - 아남 툽텐

  • 분노 에너지가 있는 자리

    한 스님이 혼자 고요히 명상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 스님은 강원을 떠나 보트를 타고 호수 한 가운데로 가서 눈을 감고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한 두 시간 고요한 시간이 흘렀을 때 스님은 갑자기 다른 배가 자신이 탄 배를 들이받는 것을 느꼈습니다. 눈은 여전히 감고 있었지만 스님은 분노가 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님은 명상을 방해한 그 배에 탄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려고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부딪혀 온 배가 끈이 풀려 호수를 떠다니는 빈 배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스님은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분노가 바로 자신 안에 있으며 분노는 단지 그를 촉발할 외부의 자극이 필요할 뿐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일이 있는 뒤 스님은 자신을 괴롭히거나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면 언제나 그 때를 떠올립니다. 그 사람은 빈 배일 뿐이라고. 분노는 내 안에 있는 것이라고.
     

  • ‘빌 게이츠 가짜 편지’가 주는 통찰

    인터넷에는 가짜뉴스가 많습니다. 대부분 악의적 의도를 가진 것들입니다. 아주 가끔은 좋은 가짜뉴스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빌 게이츠가 썼다는 글처럼 말이지요.

     

    빌 게이츠가 3월23일 오픈레터(Open letter)에 올린 글로 알려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은 가짜였습니다. 빌 게이츠가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시카고선타임즈>는 빌 게이츠와 무관한 글임에도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에 소개한다고 적었습니다. 글을 쓴 이의 의도는 ‘빌 게이츠’라는 큰 ‘문’을 통해 인류에게 코로나19를 계기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피스우즈도 같은 이유로 그 글을 소개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저는 우리가 선한 것으로 여기든 악한 것으로 여기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이면에는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명상을 하면서 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1) 코로나19는 문화, 종교, 직업, 재정 상태, 유명세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대합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면 확진자인 톰 행크스에게  물어보십시오.

     

    2)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바이러스는 여권조차 필요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어 놓은 국경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단기간 억압함으로써 자신의 전생을 억압 속에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스스로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4) 코로나19는 인생이 너무 짧으며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서로를 특히 노인이나 병자를 돕는 것 말입니다. 화장지를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5)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돌아가는 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작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식료품, 물, 약 등과 같은 본질적인 것이지 별로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가치를 부여하는 사치품들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6)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가족과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이를 얼마나 무시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 그곳을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집’으로 만들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도록 해줍니다.

     

    7) 코로나19는 우리가 진짜 해야 하는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진짜 해야 하는 일은 서로를 돌보고 보호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8) 코로나19는 우리의 에고를 계속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큰 존재라고 여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춰 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코로나19는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나누고 베풀고 지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이기적이고 사재기를 하며 자신만을 돌보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본색이 드러납니다.

     

    10) 코로나19는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참고 견딜 수도 있지만 패닉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상황이 인류 역사상 여러 차례 발생했으며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패닉 상태에 빠져 이를 지구의 종말로 보고 우리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데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11) 코로나19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끝이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찰과 이해를 통해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배울 때까지 반복되는 수업의 시작되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12) 코로나19는 지구가 병들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화장지가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삼림황폐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입니다. 우리의 집, 지구가 병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픈 것입니다.

     

    13) 코로나19는 이 모든 어려움이 지나간 뒤에 평온이 찾아온다고 알려줍니다. 삶에는 주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시기는 인생이라는 위대한 주기 안에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패닉 상태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입니다.

     

    14) 많은 분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큰 재난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위대한 교정자’로 봅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살면서 잊어버린 중요한 교훈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주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교훈들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 나쁜 생각을 없애는 법

    명상을 할 때 생각이 더 많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끝없이 떠오르는 생각에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지요. 게다가 나쁜 생각이 떠오르면 더욱 심란해집니다.

     

    그럴 때 좋은 방법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혜자(선묵 혜자) 스님이 지은 책 <모르는 마음>(샘앤파커스)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젊은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검은 두 개의 큰 그릇을 앞에 두고, 그 옆으로는 개울가에서 가져 온 조약돌들을 쌓고 있었다. 두 개의 큰 그릇과 수북한 조약돌은 자신의 마음속에 든 온전한 생각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이 명상을 하다가 옳은 생각을 하게 되면 흰 그릇에 조약돌을 하나 얹고, 나쁜 생각을 하면 검은 그릇에 조약돌을 하나 얹었다. 그는 하루 종일 명상에 들어갔다. 명상을 하는 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름다운 여인이 생각나면 검은 그릇에 조약돌 하나, 길가의 아름다운 꽃을 꺾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 또 조약돌을 하나 얹었다. 명상을 마치고 보면 검은 그릇에는 조약돌이 가득했고 흰 그릇에는 겨우 몇 개의 조약돌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명상을 할 때마다 옳은 일만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명상 속에서 눈을 떴다. 그런데 검은 그릇에는 조약돌이 하나도 없고 흰 그릇에는 조약돌이 가득했다.

    그는 그때 옳은 생각이 옳은 생각을 이끈다는 것을 깨우쳤던 것이다. 이것은 수백 년 전 불교 경전에 있는 어떤 일화로서 좋은 생각이 어떻게 더 좋은 생각으로 이어지는가를 알려주고 있다. 선은 단순히 ‘참선하다’, ‘선에 깃들다’는 뜻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선의 넓은 의미는 ‘마음을 외로 잡아서 나를 가꾸다’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 ‘디자인 싱킹’의 전설 라이퍼 교수의 ‘초긍정 싱킹’

    래리 라이퍼 스탠퍼드대학 교수 [이미지 : Design Thinking DTINGRE 유튜브]

    래리 라이퍼 스탠퍼드대 교수의 인터뷰 글을 읽다 그가 가진 ‘초긍정’ 인생관에 깜짝 놀랐습니다.

     

    라이퍼 교수는 '디자인 싱킹(Design Thinking)'의 전설로 불리는 인물입니다. 스탠퍼드대 기계공학과 교수이자 디자인 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는 석학이지요.

     

    디자인 싱킹이 뭐냐고요?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인데 콕 짚어 설명하기는 어려운 개념입니다.

     

    디자인 싱킹과 관련해 2009년 출간된 <디자인에 집중하라>에는 “모두가 대화에 참여하는 기회를 통해 다극화된 경험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디자인 싱킹을 얘기하려는 게 아니라 라이퍼 교수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며 한 말 가운데 공유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하던 기자가 귀가 전혀 들리지 않음에도 강의를 계속하고 연구하며 여행을 할 수 있는 열정의 동력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라이퍼 교수의 답이 ‘법문(法門)’입니다.

     

    “남은 생만 보면 나는 당신보다 운이 좋다. 이 세상 모든 소음을 안 들어도 되니까. 도시는 점점 더 시끄러워질 거다. 난 전철역에서 잠도 잘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명상도 할 수 있다. 아주 좋은 점이다.”

  • 인디언 전통 피리, 물소리 그리고 새의 지저귐

    마음을 고요히 하는 데 음악이 도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인디언 전통악기와 새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진 다음의 연주를 듣다 보면 저절로 마음이 가라앉게 되고 고요해집니다.

     

    집안일을 할 때나 심지어 사무실에서 일을 할 때 들어도 좋습니다

  • 불교의 간화선

    한국불교의 주류는 선종입니다. 이는 수행법으로 참선을 중심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간화선을 정통 수행법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조계종에서는 간화선이 부처님으로부터 시작돼 가섭존자에게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뒤 달마대사에 의해 중국으로 건너갔고 조계종이 그 맥을 이었다고 합니다.

     

    조계종이라는 이름도 간화선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조계’라는 이름은 간화선 수행의 중심이었던 중국 조계산에서 따왔습니다.

     

    조계산은 달마대사의 법맥을 이은 육조 혜능 대사가 주석하며 제자들을 기르던 곳입니다. 조계종에서는 간화선의 초조(初祖)로 추앙받는 달마 대사의 법맥이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 6조 혜능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간화선은 간단하지만 간단치 않은 수행법입니다. 방법은 말 그대로 화두를 보는 것입니다. 화두를 본다는 것을 대개 화두를 든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간화선을 화두선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렇다면 화두(話頭)란 무엇일까요? 우리말로 풀이하면 말 머리라는 뜻입니다. 화두는 거칠지만 간단히 말하면 참선, 즉 명상을 할 때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을 하도록 해주는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화두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화두를 공안(公案)이라고도 하는데 대략 1700여 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명상을 할 때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쓰는 도구는 많습니다. 하지만 화두는 아주 독특한 도구입니다. 화두를 드는 사람에게 의문을 갖게 해서 그 의문에 집중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화두를 ‘말길과 생각의 길이 끊어진 말이되 말이 아닌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화두는 ‘이뭣고’ 입니다. 중국어로는 시심마(是甚麼)라고 합니다. 일생을 간화선 보급에 매진하고 있는 인천 용화선원의 송담 스님이 주로 권하는 화두가 이뭣고입니다. 송담 스님은 이뭣고 화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뭣고 화두는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놈, 부르면 대답할 줄 아는 놈, 욕하면 성낼 줄 아는 놈, 배고프면 밥 먹을 줄 아는 놈, 눈으로 보면은 저것이 꽃이다 새다 나비다 아는 놈, 귀로 들을 줄 알고, 코로 냄새 맡을 줄 알고, 혀로 맛볼 줄 알고, 몸으로 춥고 더운 것을 알고, 그러할 줄 아는 놈이 다 사람마다 다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주인공인데, 그 놈을 찾는 것입니다. 그 주인공이 분명히 이 몸뚱이에 따악 주재하고 있으면서 눈을 통해서 모든 것을 보기도 하고, 귀를 통해서 모든 것을 들을 줄도 알고,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든 육체적인 작용, 정신적인 작용을 하는, 차로 말하면은 운전사와 같은 그러한 주인공이 있는데, 그것을 찾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 끌고 다니는 이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이놈이 무엇인고로 시작해 나중에는 이뭣고 이뭣고 하는 이 놈이 뭣고 이렇게 바로 그 이뭣고 하는 그 놈을 다시 되돌려 찾는 것입니다."

     

    화두선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분들은 호흡과 함께 화두를 드는 방법을 많이 씁니다. 이 하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뭣고 하면서 숨을 내뱉는 것입니다. 화두를 꾸준히 들다 보면 나중에는 멈춰 있을 때나 움직일 때 심지어 잘 때도 이뭣고 라는 화두가 끊기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이뭣고 외에 유명한 화두는 무자 화두입니다. 무자 화두는 한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질문한 데 서 나왔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개도 불성이 있느냐고 묻자 조주 선사는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 스님은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라고 되물었고 조주 선사는 "다만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 대화에 들어 있는 의문에 집중하는 게 무자 화두를 드는 것입니다.

     

    또 다른 유명한 화두인 뜰 앞의 잣나무(庭前 栢樹子)도 조주 선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한 스님이 "조주 선사에게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조주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니라”라고 답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사는 중국에 선을 전한 달마 대사를 뜻합니다. 이 또한 화두를 드는 사람에게 의문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還我本來面目)이라는 화두도 유명합니다. 부모조차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의문을 갖도록 하는 게 이 화두입니다.

     

    화두선을 가르치는 선사들은 수행자가 화두를 들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선사들은 화두를 들기 위해 세 가지의 마음을 갖추라고 합니다. 대신심, 대분심, 대의심이 그것입니다. 이를 간화선의 삼요(三要)라고 부릅니다.

     

    대신심은 화두 공부를 하면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대자유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공부를 해나가겠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대신심은 자신은 물론 일체중생이 본래 성불해 있다고 믿는 것도 포함합니다. 삼라만상 안에 똑같이 불성이 깃들여 있다는 믿음입니다. 

     

    대분심은 자신의 처지를 되돌아보고 불퇴전의 의지를 다지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은 물론이고 과거의 많은 조사들과 선승들이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고 대자유인이 되었는데 자신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자기반성에서 시작해 반드시 화두를 타파하기 위해 분발하겠다는 뜻을 확고히 세우는 것입니다.

     

    대의심은 화두를 철두철미하게 의심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과 모든 조사들이 화두를 통해 깨달음의 길을 밝혀주셨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인가 하고 간절하게 의심하는 것입니다. 크게 의심을 하게 되면 생각으로 의심을 갖는 게 아니라 저절로 의심이 생긴다고 합니다. 이런 의심을 의단이라고도 합니다. 

  • 깨달은 이로 살기

    우리는 깨달음이 어떠한지 알지 못 합니다.

    어떤 정교한 언어로도 그 의식의 세계를 드러낼 수는 없을지니

    언어와 우리의 감각을 뛰어 넘는,

    오직 경험으로만 알 수 있는 그 경지.

     

    그럼에도 우린 막연히

    ‘나는 깨달은 사람(붓다, 그리스도...)이다.’ 라는 의식을 가짐으로 그 길을 더 잘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깨달음에 이른 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삶.

     

    우리가 각성되어 있는 순간만이라도

    이렇게 살아 보십시다.

     

    나는 깨달은 이(붓다, 그리스도....)라는 의식을 자주 가지십시다.

    깨달은 이의 마음을 지니고

    깨달은 이로 모든 존재를 대하십시다.

    깨달은 이의 발걸음으로 걷고

    깨달은 이로 자세로 앉으십시다.

    깨달은 이의 언어로 말을 하고

    깨달은 이의 표정으로 머무십시다.

    깨달은 이의 숨을 쉬고 그 숨결을 나누십시다.

    깨달은 이의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고

    깨달은 이로 먹고 마시며

    깨달은 이로 노래하고 춤추십시다.

    깨달은 이의 손길로 이웃의 손을 잡읍시다.

     

    내가 많이 거칠고 고집스럽고 아직 서툴다 하여도

    이 길에 들어섰으니, 적어도 각성된 순간만이라도...

    우리, 깨달은 이로 살아가십시다.

     

    연습하다 보면 그렇게 닮아 가리니...

    정녕 그렇게 되리니....

  • 분주한 발걸음이 줄자 행복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많은 곳을 다녔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런 시간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대신 가까운 곳에 있는 모든 것들에 마음이 가고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이 시간 이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들이 참으로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 줄을 조금씩 알게 됐습니다.
     
    집 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젊은 날 산길을 갈 때 정상을 다녀오는 게 목표였다면 지금은 길을 걷다 만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가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런 마음이 커지자 참으로 편안해졌습니다.
     
    무엇을 더 얻고자 하는 마음이 줄어들고 그 자리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대신 채우고 있습니다.
     
    부족하다는 생각 대신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는 나도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완전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여여((如如)하다는 말의 의미를 아주 조금 알 것 같기도 합니다.

  • 멍 때리기가 건강에 좋은 이유

    멍 때리기가 뇌 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멍 때리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있는 상태를 뜻하는 속어입니다. 예전에는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린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였지만 현대인들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2016년부터 멍 때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을 정도로 ‘대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정보에 노출되기 때문에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에게 멍 때리기는 뇌에 휴식을 주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뇌는 몸무게의 3% 정도를 차지하지만 20%의 에너지를 사용할 정도로 활동량이 많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 때도 뇌는 움직이지요.

     

    멍 때리기는 그렇게 쉼 없이 일하는 뇌에 꿀맛 같은 휴식을 주는 방법입니다.

     

    멍 때리기는 의학 용어로는 ‘디폴트 모드’라고 합니다. 컴퓨터를 껐다 켜면 초기 설정인 디폴트로 돌아가듯이 뇌도 휴식을 취해야 다시 일할 준비가 된다는 뜻입니다.

     

    디폴트 모드는 뇌의 ‘성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창의력과 학습력이 높아지고 기억력이 좋아지도록 한다는 겁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나 문제 해결책을 찾는 사람이 일상에서 벗어나 쉴 때 갑자기 ‘유레카’를 외치게 되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하게 과거의 일이 기억나는 것도 디폴트 모드의 ‘힘’일 수 있습니다.

     

    멍 때리기가 무념무상 상태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어찌 보면 일종의 명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