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조사(5) - 스승의 가르침과 이적
그날 밤 노인은 조사를 데리고 희양산 중턱에 올랐습니다. 노인이 발걸음을 멈춘 곳에는 넓은 마당만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달빛이 낮처럼 밝았는데 바위 앞이 훤하게 트여 쾌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바위를 가리키며 스승이 일렀습니다.
“인재가 땅의 기운을 받아 명당의 자리에서 나는 것처럼 수행도 그러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바위 위에 올라서자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담한 암자 하나가 저절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조사는 이 암자에서 스승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신이한 이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끼니때가 되면 먹거리가 저절로 생겼고, 목마르다 싶으면 물이 생겼습니다.
조사의 신심은 100배나 솟구쳤습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지복의 환희심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조사가 할 일은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에 전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다만 한 가지, 아만(我慢)에서 벗어나 마음을 조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 아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용맹 정진한 지 7일째 조사는 마침내 간혜지(乾慧地)를 증득합니다.
간혜지는 성문·연각·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의 첫 번째 단계를 말합니다. 온갖 욕망이 겉으로 일어나지 않고 욕망에 따른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경지가 간혜지입니다.
욕망은 잠재의식 속에만 남습니다. 탐진치(貪瞋癡, 곧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삼독의 습기는 다했으나 아직 지혜가 부족하기에 마른 지혜 즉 건혜지라 일컫는데, 선정으로 이 부족한 지혜를 보충합니다.
조사가 간혜지를 얻자 스승이 책 두 권을 내려 줍니다. 그것은 <정본수능엄경> 과 <유가심인록>이었습니다.
“내가 보현존사(寶賢尊師)에게 구결로 받은 신해수증(信解修證)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진중하게 받들어 간수하라.”
조사는 공경하게 삼배를 올리고 스승이 내리시는 책을 받잡아 정수리 위로 올렸습니다.
다시 좌복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승께서 말씀으로 전해주시는 대승(大乘)의 오묘한 경지를 하나하나 터득해나갔습니다.
스승은 내리고 제자는 받들고……. 전승이 끝나자 조사는 다시금 공손히 일어나 스승 앞에 100배를 올렸습니다. 사은의 절을 마치자 스승이 제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작별의 말을 합니다.
“나는 이제 간다.”
말을 마치자 스승은 몸을 솟구쳐 새처럼 푸른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조사의 눈에서는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한 배 한 배 스승이 사라진 허공을 보며 조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경히 100배를 올렸습니다.
스승을 전송하고 돌아오니 그동안 머물던 암자도 온 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