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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고승_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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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불을 쪼개 땔감으로 쓴 쓰님

    

    단하천연(丹霞天然)은 당나라 때의 고승입니다. 저녁노을을 뜻하는 단하라는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선사이지요.

     

    단하 선사와 관련해서는 유명한 일화가 <전등록>에 실려 있습니다. 단하소불, 다시 말하면 단하선사가 목불을 태웠다는 뜻입니다.

     

    단하 선사가 만행을 하며 각지를 돌아다니다가 추운 겨울날 낙양에 있는 한 절에서 묵게 되었다고 합니다.

     

    객실이 너무 추워서 잠을 자기 힘들자 단하 선사는 대웅전에 올라가서 목불을 가져다 도끼로 쪼개 불을 지폈습니다.

     

    불이 활활 타오를 때 그 절을 지키던 스님이 깜짝 놀라 달려 나와 소리쳤습니다. “불상을 쪼개서 불을 피우다니 당신 미쳤소?

     

    단하 선사는 태연하게 막대기로 재를 뒤지면서 “목불을 다비(화장)해서 사리를 얻기 위해서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 절의 스님은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스님은 고함을 쳤습니다. “목불에 어떻게 사리가 나온단 말이요?”

     

    그러자 단하 선사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사리 없는 부처라면 나무토막이지 어찌 부처이겠습니까?”

     

    단하 선사의 이런 기행은 부처님의 가르침 대신 불상을 모시는 행태, 나아가 부처님 가르침 대로 살지 않는 세태에 각성의 죽비를 내리친 게 아닐까 합니다. 그 죽비소리는 오늘날 더 유용해 보이기도 합니다.

  • 진표율사(4) - 물고기와 자라에게 법을 베풀다

    금강산 발연사의 〈관동풍악발연수석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스님이 명주(강릉) 앞바다를 가는데 물고기와 자라가 바다에서 나와 육지처럼 만들어 주어 스님은 그것을 밟고 바다에 들어가 그들을 위해 계법을 외워주었다. 고성군에 들어가 발연사를 세우고 점찰법회를 열고 7년간 머물러 가르침을 폈다.”

     

    강릉지방에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려 마을에서는 사람이 죽고 흉흉한 소문이 돌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강릉지방에 가서 바다에 가서 계법을 베풀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바닷가에는 무수한 고기들이 저절로 죽어 나와 그 지방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진표율사의 이 같은 법력이 알려지자 경덕왕이 계를 청했습니다. 왕과 외척은 물론 궁중의 중신들을 모두 불러놓고 보살계를 설했는데 이에 감읍한 왕이 쌀과 비단, 황금 등을 공양하였습니다. 스님은 이것을 전국 여러 사찰에 나눠 달라고 부탁하고, 자신은 다시 백성들 속으로 떠났습니다.

     

    말년에 발연사에 지내다가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올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뼈가 모두 삭아 내릴 때까지 그대로 공양하고 흙으로 덮어 무덤으로 삼으니 무덤에서 푸른 소나무가 났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의 문장가 이규보가 진표율사가 수행하던 변산을 찾아가 썼다는 글이 전하고 있습니다.

     

     

    大千猶可筒中藏

    무지개 같은 사다리 다리 밑이 길어서

     

    回身直下萬尋强

    몸을 돌려 곧장 내리니 만 길이 넘네

     

    至人已化今無迹

    도인은 이미 가고 자취마저 없는데

     

    古屋誰扶尙不疆

    옛집은 누가 붙들었기에 아직도 쓰러지지 않나

     

    丈六定從何處現

    일장육척의 불상은 어느 곳으로 좇아 나타날런지

     

    大千猶可筒中藏

    대천의 세계는 그 가운데 감추어져 있네

     

    完山吏隱忘機客

    완산의 벼슬아치 숨어들어 나그네임을 잊으니

     

    洗手來焚一辨香

    손씻고 들어와 한 조각 향을 사르네

    

    (끝)

  • 진표율사 (3) - 소에게 절을 받다

    진표율사가 가르침을 베푸는 금산사는 1백 년 전에 멸망하여 소외받는 백제인들의 귀의처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널리 퍼져나가는 미륵신앙이 자칫 현실도피나 허무주의로 빠지는 것을 경계하며 ‘실천 없이 미륵불의 내려오심만 기다리지 말라’고 엄하게 가르쳤습니다. 죄를 참회하면서 선업을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진표율사는 퇴락해가는 절을 다시 새롭게 고치고 미륵장륙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고 속리산으로 향하였습니다.

     

    속리산에 거의 이를 무렵 소달구지를 탄 사람을 만났는데 소들이 갑자기 스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울었습니다.

     

    “아니, 이 소들이 왜 스님 앞에 무릎을 꿇고 웁니까? 스님께선 어디서 오십니까?”

     

    “나는 진표라는 사람으로 금산사에서 오는 길입니다. 저는 훌륭한 도량 터를 찾아 속리산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들은 내가 미륵부처님한테서 계법을 받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들도 불법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꿇어앉아 우는 것입니다.”

     

    “짐승도 이렇게 신심이 깊은데 사람인 제가 어찌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달구지에 탔던 사람이 낫으로 자기의 머리칼을 잘랐습니다. 진표율사는 그를 갸륵하게 여겨 다시 머리를 깎아주고 계를 받게 하였습니다.

     

    진표율사가 속리산으로 들어가니 길상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이 있었습니다. 과연 성스러운 수행도량이 될 만하다고 생각하여 그곳에다 표시를 해두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는 속리산에서 세 스님이 찾아왔습니다. 스님들은 자신들을 영심, 융종, 불타라 소개하며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진표율사는 묵묵부답,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세 스님은 자신들의 죄업이 깊다고 생각하고 뜨락에 있는 복숭아나무 위에 올라가 떨어지며 참회하였습니다.

     

    진표율사는 그제서야 스님들을 부르고 자기의 가르침을 모두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미륵부처님한테서 받은 간자 두 개를 건넨 뒤에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너희는 이 간자들을 가지고 속리산으로 돌아가거라. 속리산에 길상초가 무성하게 우거진 곳에 표식이 있다. 거기에다 절을 세우고 미륵부처님의 교법을 널리 전하라.”

     

    세 스님은 속리산으로 돌아와서 진표율사가 당부한 대로 길상초가 우거진 곳에다 절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이름을 ‘길상사(법주사)’라고 지었습니다.

  • 진표율사(2) - 부처님 친견 서원을 이루다

    간절한 소원은 3년이 지나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죄가 많아서라고 생각하여 나중에는 먹고 자는 것조차 거르고 정진하였지만 아무런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욱 깊게 참회한다고 스스로 바위벽에 머리를 부딪치고 돌로 자신의 몸을 쳐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래도 미륵부처님을 친견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참회하며 목숨을 바치는 것이라는 절박함으로 괴로워하던 진표율사는 미련 없이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온몸을 날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어디선가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날아와 진표율사를 감싸 안고 절벽 위로 솟구치더니 우금 바위 밑에 올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진표율사는 미륵부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정진하며 마음을 남김없이 텅 비웠습니다. 온갖 욕망과 바라는 마음까지 비우고 나니 그 자리가 오롯이 기쁨으로 채워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표율사의 천안통이 열려 하늘이 환해지더니 찬란한 빛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존재들이 나타났습니다. 미륵부처님과 보살들 그리고 도솔천에 머무는 성자들이었습니다. 감격하며 절을 올리는 진표에게 미륵부처님이 다가왔습니다.

     

    “장차 내가 이 세상에 내려와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할 것이다. 너는 이 소식을 널리 전하여라. 그리고 속리산에 성스러운 도량 터가 있으니 그곳을 찾아서 후세 사람에게 알리도록 해라. 이 두 간자는 나의 손가락뼈이다. 너는 이것을 가지고 세상에 법을 전하고, 나루터와 뗏목의 역할을 하여 무명(無明)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여 사람들을 건너게 하여라.”

     

    진표율사는 미륵부처님을 친견하고 금산사로 돌아갔습니다.

     

    〈고승전〉에는 “이때 진표 스님이 산에서 내려오자 남녀 대중들이 그가 지나는 길에 옷을 벗어 진창길을 덮고, 길에 자리를 깔고 펴서 밟고 지나가게 하니... 진표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정성스레 밟고 갔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진표율사(1) - 개구리 울음 소리에 출가를 결심하다

    진표율사는 신라시대 고승으로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시조입니다. 처절한 수행을 통해 미륵보살의 수기(부처님의 예언)를 받은 이후 많은 이적과 법회를 통해 민중을 일깨우고 가르쳤습니다. 중국 <송고승전>에 전기가 실려 있고, <해동고승전>에 출가 당시의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성덕왕 때(718년) 전북 전주에서 태어난 진표율사가 11살 때의 일입니다. 친구들과 놀던 소년은 논둑에서 개구리 30마리를 잡아 산 채로 버들가지에 꿰어놓고 물에 넣어둔 뒤 산으로 갔습니다.

     

    다음 해 봄날이었습니다.

     

    “개굴개굴, 개굴개굴…….”

     

    소년의 귀에 처연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와 가보니, 예전의 그 장소에서 개구리들이 꿰미에 묶인 그대로 살아서 울고 있었습니다. 산 생명을 해를 지나도록 괴롭혔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은 소년은 불도에 뜻을 두고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진표율사는 12살에 출가하여 금산사에서 숭제 스님께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숭제 스님이 혜안으로 보니 진표는 석가모니 부처 다음에 오실 미륵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수행자였습니다. 스님 밑에서 가르침을 받으며 10년 넘게 수행을 한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당나라 선도스님 밑에서 공부하고,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의 현신께 직접 5계를 받았다. 너도 미륵보살께 지성으로 참회하고 용맹 정진하여 직접 계를 받도록 하여라.”

    “얼마나 부지런히 수행해야 스님처럼 그렇게 계를 받을 수 있을까요?”

    “네 정성이 지극하다면 1년이라도 되는 일이다.”

     

    진표스님은 자신도 그렇게 부처님의 계를 받고 싶다는 간절한 서원을 했습니다. 스님은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하다가 변산에 있는 불사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변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 의상봉에 올라가면 깎아지른 절벽 아래 한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아슬아슬한 좁은 길이 있고 서너 평 될 만한 자리가 있었습니다. 앞이 탁 트여 마치 구름 속에 앉은 것 같고 신성한 기운이 어려 있는 이곳에서 진표율사는 자나 깨나 미륵부처님께 정성을 다해 기도하였습니다.

     

    (계속)

    

  • 개운조사(5) - 스승의 가르침과 이적

    그날 밤 노인은 조사를 데리고 희양산 중턱에 올랐습니다. 노인이 발걸음을 멈춘 곳에는 넓은 마당만한 바위가 있었습니다.  

     

    달빛이 낮처럼 밝았는데 바위 앞이 훤하게 트여 쾌활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 바위를 가리키며 스승이 일렀습니다.  

     

    “인재가 땅의 기운을 받아 명당의 자리에서 나는 것처럼 수행도 그러한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바위 위에 올라서자 참으로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담한 암자 하나가 저절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조사는 이 암자에서 스승과 함께 머물렀습니다. 신이한 이적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끼니때가 되면 먹거리가 저절로 생겼고, 목마르다 싶으면 물이 생겼습니다.  

     

    조사의 신심은 100배나 솟구쳤습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지복의 환희심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조사가 할 일은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에 전념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다만 한 가지, 아만(我慢)에서 벗어나 마음을 조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도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마음을 항복받지 못하고 아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용맹 정진한 지 7일째 조사는 마침내 간혜지(乾慧地)를 증득합니다.  

     

    간혜지는 성문·연각·보살의 삼승이 공통으로 닦는 열 가지 수행 단계의 첫 번째 단계를 말합니다. 온갖 욕망이 겉으로 일어나지 않고 욕망에 따른 행동을 전혀 하지 않는 경지가 간혜지입니다.  

     

    욕망은 잠재의식 속에만 남습니다. 탐진치(貪瞋癡, 곧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삼독의 습기는 다했으나 아직 지혜가 부족하기에 마른 지혜 즉 건혜지라 일컫는데, 선정으로 이 부족한 지혜를 보충합니다. 

     

    조사가 간혜지를 얻자 스승이 책 두 권을 내려 줍니다. 그것은 <정본수능엄경> 과 <유가심인록>이었습니다. 

     

    “내가 보현존사(寶賢尊師)에게 구결로 받은 신해수증(信解修證)이 모두 여기에 있으니 진중하게 받들어 간수하라.” 

     

    조사는 공경하게 삼배를 올리고 스승이 내리시는 책을 받잡아 정수리 위로 올렸습니다.  

     

    다시 좌복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승께서 말씀으로 전해주시는 대승(大乘)의 오묘한 경지를 하나하나 터득해나갔습니다. 

     

    스승은 내리고 제자는 받들고……. 전승이 끝나자 조사는 다시금 공손히 일어나 스승 앞에 100배를 올렸습니다. 사은의 절을 마치자 스승이 제자의 손을 어루만지며 작별의 말을 합니다. 

     

    “나는 이제 간다.” 

     

    말을 마치자 스승은 몸을 솟구쳐 새처럼 푸른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조사의 눈에서는 조용히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한 배 한 배 스승이 사라진 허공을 보며 조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공경히 100배를 올렸습니다.  

     

    스승을 전송하고 돌아오니 그동안 머물던 암자도 온 데 간 데가 없었습니다.

  • 개운조사(4) - 드디어 참 스승을 만나다

    봉암사로 돌아온 조사는 환적암(幻寂庵)에 머물며 불철주야 용맹 정진을 이어갑니다. 침식도 잊고 부처님께 오직 참 스승을 만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런데 기도나 참선 중에 온갖 이상한 현상이 꼬리를 물고 나타납니다. 별의별 환상들이 다 나타났습니다. 환상은 현실처럼 생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주 아름다운 여자가 요염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눈앞에 황금 덩이기 놓이기도 하고, 호랑이가 입을 딱 벌리고 다가오기도 하고, 구렁이가 몸을 칭칭 감기도 했습니다. 도적이 방문을 부수며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가 천상에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음악 소리가 들려오고, 온갖 진귀한 음식들로 차려진 밥상이 불쑥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조사는 이러한 환상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리따운 여자의 요염한 자태를 보아도 무덤덤했습니다. 황금은 돌로 보였습니다. 호랑이가 나타나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구렁이가 몸을 감아도 징그럽지 않았습니다. 도적들이 대갈통을 부수어버리겠다 호령하며 방망이를 휘둘러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산해진미를 보아도 먹고 싶은 마음이 일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눈앞에서 온갖 환상들이 나타났다 스러지기 일 년여, 조사는 그저 고요한 마음으로 정진을 이어갈 뿐이었습니다. 

     

    어느 해 질 녘이었습니다. 웬 미치광이 중이 비틀걸음으로 환적암을 찾아왔습니다. 너덜너덜 다 해진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고, 온몸의 부스럼에서 진물이 줄줄 흘렀습니다. 옷과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부지깽이라도 들어 바로 쫓아냈겠지요? 하지만 조사는 이 비렁뱅이 노인을 안으로 맞아들여 극진히 봉양합니다. 

     

    그런데 이 거지 스님의 행패가 아주 고약하기 그지없었습니다. 툭하면 욕설을 퍼부으며 조사를 마구 때렸습니다. 조사는 그래도 화가 안 났습니다. 어떤 때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조사에게 칭찬의 말을 해댔습니다. 그래도 조사는 기쁘지 않았습니다. 이래도 저래도 조사의 마음은 그저 잔잔한 호수같이 고요할 뿐이었습니다. 

     

    거지 스님과 같이 지낸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하루는 밤중에 거지 스님이 조용히 조사를 불렀습니다. 

     

    “너는 정말 마음을 잘 비웠구나. 못살게 굴어도 화를 안 내고 칭찬을 해도 좋아하지 않으니 마음이 참으로 훌륭하게 닦이었구나. 틀림없이 크게 득도할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네가 부처님께 그토록 애타게 기원한 것이 무엇이더냐?" 

     

    조사는 이 노인에게 공손히 절을 올리고 대답했습니다. 

    "참 스승님을 만나 부처님의 법을 잘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자 노인이 또 물었습니다. 

    “부처의 법을 배워 무엇 하려고?” 

     

    “생사를 뛰어넘는 대도를 이뤄 가없는 중생들을 구하고자 하옵니다.” 

     

    노인의 입에서 한없이 자비로운 음성이 흘러나왔습니다. 

    "내가 네 스승이 되면 어떻겠느냐?" 

     

    그 순간 조사는 이 노인이 자기가 그토록 만나옵기 간절히 바라던 큰 스승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조사는 거듭거듭 큰절을 올렸습니다. 

     

    “불감청이어든 고소원이외다. 부디 저를 제자로 삼아주소서.” 

     

    조사의 눈에서 감격의 눈물이 샘솟듯 흘러내렸습니다. 

     

    “일어나라. 너는 이미 내 제자다.” 

     

    노인이 따사롭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