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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고승들의_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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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도 따른 정암 스님, 무소유 자비행 한평생

    

    조선시대 정암스님(1738~1794)은 무상의 자비심을 실천하여 이름이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동사열전>의 ‘정암선사전’에는 그의 보시행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정암스님 이름의 ‘정’(晶)은 ‘맑다’ ‘밝다’ ‘빛나다’라는 뜻인데, 그 이름에 걸맞게 청정한 마음으로 무소유를 실천하며 주변을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9세부터 미황사에 있는 재심스님의 손에서 자란 스님은 16세에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습니다. 20세 때부터 여러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깨달음을 구했고 송파 스님과 연담 스님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30세에 송파스님의 법통을 이어받았습니다.

     

    스님에게는 유난히 학문을 배우겠다고 모여드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기록에는 제자가 구름처럼 안개처럼 많았다고 전해집니다. 설법을 하면서도 마음은 오로지 곤궁한 대중들에게 자비를 실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정작 자신은 늘 찌그러진 모자에 해진 옷을 입고 다니고 팔꿈치가 보이기 일쑤여서, 춥고 배고픈 거지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보다 못한 친척이나 제자들이 비단옷을 선물하면 밖으로 나가서 헌 옷으로 바꿔 입고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시봉하는 스님이 이유를 물어보면 추워서 떨고 있는 사람에게 벗어주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절에 거지가 찾아왔습니다.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더덕더덕 때가 낀 몸에 너무 오래 입어 시커멓게 미어진 옷을 걸치고 있었습니다. 대중들은 거지의 몸에 이가 많은 것을 보고 문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그 꼴을 하고는 절에 발을 들여놓다니, 어서 썩 나가거라!”

     

    마침 외출했다가 돌아오던 정암스님이 이 광경을 보았습니다. 스님은 얼른 그 걸인을 자기 방으로 데리고 가서 잘 먹인 후에 밤이 되자 함께 이불을 덮고 잤습니다. 스님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스님에게 아쉬운 형편을 말하면 누구에게나 즉시 내어주므로 스님의 옷 궤짝에는 남은 옷이 없고, 배고픈 사람이 찾아오면 몽땅 내주어 항아리에는 남아나는 곡식이 없었습니다. 스님이 오히려 끼니를 굶을 지경이라는 소식을 듣고, 거지들 수십 명이 시장에 모여 약속하였습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든지 정암스님이 계시는 방에 가서 곡식을 얻어 오면, 우리가 다 같이 그를 쫓아내고 우리 축에 끼지 못하게 하자.”

     

    날이 저물어 정암스님이 산사로 돌아오는데 숲속에서 호랑이가 튀어나와 스님의 옷자락을 발로 거머잡고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가 집주인을 반갑게 맞이하듯 하였습니다.

     

    “이 녀석아, 길을 비키거라.”

     

    스님이 지팡이를 휘둘러 쫓아오지 못하게 했지만, 호랑이는 계속 스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어서 돌아가거라, 사람들이 놀라겠구나.”

     

    호랑이는 절 문 앞에 이르러서야 꼬리를 흔들며 돌아갔다고 합니다.

     

    다산 정약용은 정암스님 비문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당신은 추워 떨면서도 남을 입히시고

    당신은 배고파도 남을 먹이셨네.

    맹수도 순종하고 걸인들도 자비심을 내었거늘

    아아, 편한 길 제쳐두고 험한 길 가시었네.

  • 진묵조사 (6) - 저것이 바로 부처님이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초의 선사가 편찬한 <진묵대사유적고>에 진묵스님이 입적할 무렵의 일을 전하고 있습니다.

     

    진묵조사가 나이 72세 되는 해 10월이었습니다, 조사는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시자를 데리고 시냇물로 갔습니다. 그리고 물에 비친 스님의 그림자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것이 바로 석가부처님이다.”

     

    물에 비친 그림자를 들여다본 시자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스님의 그림자입니다.”

     

    “너는 나의 거짓 모습은 알면서 그 안에 부처님의 참모습은 모르는구나.”

    조사는 방으로 들어가 가부좌를 하고 나서 대중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나는 오늘 세상을 떠나려고 한다. 부지런히 닦고 잘 깨우치거라.”

    “스님이 가시면 누가 법맥을 이어갑니까?”

    “수행자가 공부나 참되게 하면 되지, 그런 것은 왜 따지느냐?”

    그래도 제자들이 스님을 붙잡으며 재삼 청하자 조사는 마지못해 입을 떼었습니다.

    “명리승(名利僧)이기는 하나 서산스님이 정통을 이은 분이니 그쪽으로 해라.”

     

    말을 마친 진묵조사는 가부좌한 채 고요히 입적하였습니다. 대둔산에 있는 태고사에는 진묵조사의 풍모를 짐작하게 하는 시가 남아 전합니다.

     

    하늘을 이불 삼고 땅으로 자리하고 산은 베개 하며

    달을 촛불 삼고 구름으로 병풍치고 바다는 술통 삼네.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신나게 춤추니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저어할 뿐이라네.(끝)

  • 진묵조사 (5) - 복을 걷어찬 조카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한 번은 누이동생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끼니를 잇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진묵조사는 7월 칠석날 조카 내외를 찾아갔습니다.

     

    “오늘 밤 자정까지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려라. 특별히 칠성님들을 모셔다가 복을 지을 수 있는 인연을 만들어 주마.”

     

    조카는 삼촌의 신통력이 있다는 소문을 들어서 아는지라 그 말을 믿고 음식을 장만하여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렸다고 합니다.

     

    밤 12시가 되자 진묵조사가 일곱 분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런데 조카가 보니 자기가 생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같이 땟국물에 절은 지저분한 옷에 눈에는 눈곱이 달렸고 콧물이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한 명은 언청이요, 한 명은 곰보, 나머지는 절름발이, 곰배팔이, 장님, 귀머거리였습니다.

     

    ‘어떻게 저런 거지 영감들만 데리고 왔담?’

     

    조카 내외는 덕을 보기는 틀렸다고 생각하여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투덜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내외가 부엌에 들어가 탕탕 그릇 소리를 내며 소란을 피우자, 밥상 앞에 앉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나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사람까지 일어서려고 하자 진묵조사가 붙잡았습니다.

     

    “저를 봐서 한 숟갈이라도 드시고 가십시오.”

     

    그 말을 들은 마지막 사람은 밥 한술, 국 한 숟갈,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먹고 떠났습니다.

     

    모두 떠나 버리자 진묵조사가 안타까워하면서 혀를 찼습니다.

     

    “쯧쯧, 복 지을 인연을 이렇게 차버리다니 참 한심한 사람들일세. 그나마 마지막 분이 세 숟갈이라도 잡수셔서 앞으로 3년은 잘 살 수 있을 거다.”

     

    다음날 조카가 돼지 한 마리를 사게 되었는데 시세보다 많이 싸게 사 왔습니다. 그 돼지가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고,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는 돼지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부유하게 잘 살던 조카는 어느 날 돼지우리에 불이 나서 모든 재산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연을 귀하게 여기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는 일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