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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엄마, 친구가 하늘나라 갔대”

    ※ 이 글은 오마이뉴스 ‘사는이야기’ 코너에 12월10일에 실린 글입니다 필자의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금요일 오후였다. 다른 것이라고는 늘 비가 오는 이곳 캐나다 밴쿠버의 겨울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창하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모처럼 비가 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고민하며 아들을 맞으러 학교에 갔다. 학교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학부모들. 멀찍이 바라봤을 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때 학교 현관문을 나서는 아들과 눈이 마주쳤다. 활짝 웃으며 다가가는데 이상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어두웠다. 평소 금요일이라면 주말에 놀 생각에 더 활짝 웃으며 나오던 아이가 아니었던가. 아들은 나를 보자마자 반쯤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진짜 슬픈 소식이었어. 진짜, 진짜, 진짜 슬픈 소식이야. 그 친구가 하늘 나라에 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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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닷없는 비보

     

     

    그 친구라 함은, 지난 학년부터 아들과 한 반이었던, 9월에 시작된 새로운 학년에 첫 짝궁이었던 그 친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근무력증을 앓고 있어 휠체어에서 생활했고, 옆에는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이 늘 함께 했지만, 아들의 그 친구는 학교생활에 대부분 참여했었다.

     

    통합교육이 원칙인 이곳 캐나다에서 아이들은 조금 더 몸이 불편한 학생들과 생활하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이 친구도 학급 활동에 늘 함께 했다. 지난해 그 친구의 생일 땐 반 전체에서 작은 축하파티도 열었었다. 반에서는 혼자 책을 읽기 힘든 이 친구에게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곤 했는데 두어 달 전 아들은 자신이 책 읽어줄 차례라며 영어발음을 연습해 갔었다. 몇 주 전 자원봉사로 따라간 현장학습 때도 장애학생 지원 선생님과 함께 참가했던 아이였다.

     

    내게도 충격이었다.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먹먹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돌아보니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마주친 선생님들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고, 아들과 같은 반 친구들 중 몇몇도 눈가가 촉촉했다. 아이를 픽업하러 온 부모들 중 몇 명은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마음이 조금 추스러지자, 아들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는 처음 겪는 상실. 그것도 2년 동안 같은 반을 했던 친구가 10살의 나이에 하늘나라에 간 것을 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아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담임선생님이 건넨 종이

     

     

    아들이 비보를 접한 것은 등교하자마자였다. 교실에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아이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몇몇 친구들은 곧바로 눈물을 터뜨렸다고 한다. 이어 담임선생님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종이를 꺼내며 아이들에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에 종이를 둘게요. 수업 도중에라도 마음이 힘들고 슬픈 기분이 들면 언제든지 가져다가 쓰고 싶은 것을 아무 거나 쓰세요. 그림을 그려도 되고, 하늘나라에 간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되고, 너무 슬퍼서 화가 나면,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도 돼요. 그리고 수업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나거나, 도저히 수업에 집중이 안 될 땐 도서관에 가서 혼자 시간을 보내거나 울고 와도 돼요."

     

    아들이 전한 바에 따르면, 이날 그 어떤 선생님도 아이들에게 수업에 집중하라거나, 이럴 때일수록 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도, 그 친구를 위해서 우리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느꼈을 심리적 충격을 이해해주고 그 슬픔을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하고 함께 울어줄 뿐이었다. 선생님들 역시 슬픔을 숨기지 않았다. 아들의 담임선생님은 "오늘은 마음이 너무 슬퍼서 수업하기가 힘들다"고 아이들에게 털어 놓았고, 지원 나온 대체교사가 이날 수업시간에 함께 했다.

     

    상실은 그것이 어떤 종류의 것이든 심리적으로 깊은 충격과 슬픔을 남기는 경험이다. 특히, 어린 시절 생애 처음으로 겪는 상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차례 맞닥뜨리게 될 또 다른 죽음을 대하는 태도를 형성해 준다.

     

    상실을 맞닥뜨릴 때 정서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슬픔을 충분히 표현해내야 한다는 점이다. 마음 안에서 밀려오는 슬픔을 힘들다고 해서 부인하거나 '괜찮다'고 포장해 버리면, 그 슬픔은 마음 더 깊은 곳으로 꽁꽁 숨어들어간다. 숨어든 슬픔은 예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 오랫동안 일상을 방해하곤 한다.

     

    이런 면에서 선생님의 대처를 듣자 안심이 되었다. 이날 아들과 반 친구들은 수시로 종이를 가져다가 슬픔을 표현했고, 도서관에서 멍하게 앉아 있거나 한바탕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서로를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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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장선생님의 메일 한 통

     

     

    그리고 그날 오후, 교장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교장선생님은 전체 학부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다시 한 번 비보를 공식적으로 전했다. 그리고 당부했다.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이 다른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므로, 이들의 뜻을 존중해 달라고. 유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이야기하는 것을 자제해 달라고 말이다. 

     

    이어 교장선생님은 학교는 신속히 밴쿠버 교육청의 위기지원팀(VSB Critical Support Team)의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교육청의 위기지원팀은 학교 공동체에서 재난이나 구성원의 죽음 등 정신적인 상처를 남기는 일이 발생했을 경우, 심리적 문제를 비롯한 각종 어려움들을 지원해주는 역할을 한다.

     

    학생뿐 아니라 슬픔에 빠진 선생님들도 돕고, 때로는 대체 인력을 파견하기도 한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학교를 체계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 아이들이 들를 수 있도록 상담센터를 열어 두었고, 학교와 교육청 소속의 상담사들이 도움을 제공할 채비를 마쳤다고 알렸다.

     

    또한 교장선생님은 강조했다. 이번 일로 인해 아이들이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하거나 물을 때 주의 깊게 들어주고 정직하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라고. 나아가 학교에서도 언제든 아이들이 죽음에 대해 묻고 이야기 하며, 슬픔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며 집에서도 함께 해달라고 당부했다.

     

    교장 선생님이 보낸 메일을 보니 여전히 먹먹한 나의 마음이 조금은 따스해지는 듯 했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하지 않고, 삶의 일부분으로 죽음을 이해하도록 도우려는 자세, 상실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 유가족들을 존중하는 태도, 공동체 차원에서 상처를 극복해 가려는 노력. 아들의 학교는 가슴 아픈 상실을 경험할 때 반드시 해야 할, 그리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차근차근 해내며 애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친구를 잃은 경험이 나와 내 아이를 비롯, 그 친구와 가까워 충격과 슬픔이 더 큰 몇몇만이 스스로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님을 알게 했다. 공동체 차원에서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은 시린 마음 한 켠에 훈훈함과 용기를 불어넣어 줬다.

     

    물론, 아무리 함께하고 서로 위로하더라도 상실을 경험해내는 것은 분명 힘들고 아픈 일일 것이다. 그 충격 또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하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교육청까지 나서 함께 슬픔을 나누고 도우려는 모습들을 보니 이를 통해 아이들도, 선생님들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한 단계 성숙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애써 축소하거나 감추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며 함께 나눌 때 우리는 분명 이 슬픔을 감당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 친구가 하늘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프지 않길, 유가족들에게도 평화가 함께 하길 기도드린다.
     

  • 마음상처 치유하는 속마음버스

    마음에 담아두면 병이 된다고 합니다. 하고 싶었던 말이 많지만 참고 사는 이들이 많죠. 가까운 사이일수록 담아두는 게 더 많습니다.

     

    카카오의 같이가치와 사단법인 공감인이 함께 운영하는 속마음버스는 시민들의 속앓이를 덜어 건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운영되는 치유의 공간입니다.

     

    원솔이 속마음버스 운영팀장은 “살면서 놓치기 쉬운 하지만 꼭 표현해야 하고 나눴으면 하는 마음들을 자유롭게 꺼낼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라고 속마음버스를 설명합니다.

     

    속마음버스는 말 그대로 버스입니다. 일반 버스 내부를 고쳐 일상에서 말할 수 없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을수 있도록 편안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한 번에 두 명이 이용할 수 있습니다. 버스 안에는 두 사람이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좌석이 멀찍이 자리하고 있고 커튼도 쳐져 있습니다. 탁자 위에는 간단한 다과 외에 오디오와 모래시계가 있습니다.

     

    버스를 타서 안전벨트를 착용하면 탁자 위에 마련된 오디오에 이어폰을 꽂고 사연을 듣습니다.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이 녹음한 사연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사람이 많아 탁자 위에는 휴지가 놓여 있습니다.

     

    이어 카드에 오늘의 대화 주제를 적습니다. 그리고 번갈아 가며 자신의 얘기를 합니다. 규칙이 있습니다.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기 전까지는 듣기만 해야 합니다. 모래시계는 3분짜리와 5분짜리 2종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 듣기보다 말하기에 익숙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래시계가듣는 시간, 말할 수 있는 시간 모두를 확보해주는 것이지요

     

    속마음 버스 이용자층은 다양합니다. 신청자는 연인이 가장 많습니다. 다음으로 부모와 자녀가 많고, 친구, 부부, 형제자매 등의 순이라고 합니다. 고해성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비공개로 털어놓고 싶은 경우에는 공감자와 탑승하겠다고 신청하면 됩니다.

     

    2014년부터 시작된 속마음버스는 첫해 1043명이 이용했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속마음버스는 신청은 홈페이지(https://together.kakao.com/mom-bus/apply)를 통해 가능합니다. 이용료는 없습니다. 무료입니다.

     

    평일에는 오후 6시 20분, 8시 20분 두 차례, 토요일에는 오후 4시, 오후 6시 20분, 8시 20분 3차례 운영됩니다.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운행하지 않습니다. 탑승 장소는 서울 지하철 여의도역 2번 출구입니다.

  • 기독교 성자 썬다 싱(4) - 신비체험을 남기고 사라지다

    썬다 싱은 22세인 1911년부터 본격적인 전도 활동을 시작합니다.

     

    기독교 전통이 거의 없는 인도와 티베트에서 썬다 싱의 전도 활동은 쉽지 않았습니다. 복장을 보고 사두로 여겨 존경을 표하던 사람들도 그가 기독교인임을 알고 나면 외면했습니다. 

     

    굶주림이 일상이었습니다. 추위에 몸이 얼고 더위에 지쳐 주저 앉은 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썬다 싱은 인도 대륙을 횡단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박해도 많이 받았습니다. 경찰이 그를 감옥에 가둔 채 거머리 때를 풀어 놓기도 했고, 시체가 썪고 있는 우물에 던져져서 팔이 부러지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썬다 싱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의 발길은 티베트로도 향했습니다. 서른살이 될 때까지 티베트 방문을 위해 열 번이나 히말라야를 넘었습니다. 

     

    썬다 싱은 기독교의 본고장이던 서구 여러 나라에도 전도를 위해 방문했습니다. 1920년과 1922년 두 차례에 걸쳐 영국, 아일랜드, 미국, 러시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을 다니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했습니다.

     

    썬다 싱은 기도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영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체험도 했다고 합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썬다 싱이 경험한 상태를 입신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썬다 싱이 신비현상을 체험한 것은 1922년 티베트에 가던 길이었다고 합니다. 

     

    눈으로 길이 막혀 꼼짝 못하게 되어 기도를 하던 중 자신이 천사들 무리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자신이 죽어서 영혼이 하늘나라에 온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썬다 싱은 이를 시작으로 이런 신비 체험을 자주 하게 됐습니다. 

     

    썬다 싱은 영안으로 보이는 존재에게 궁금한 점을 묻기도 했습니다. 그가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은 죽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며 영혼은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썬다 싱이 영안으로 본 존재들로부터 들은 삶과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죽음은 잠이 드는 것과 같습니다. 질병이 없다면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오는 데 아무런 고통도 없습니다. 마치 몹시 피곤한 사람이 깊이 잠드는 것처럼 인간은 죽음이라는 깊은 잠에 빠지게 됩니다. 죽음은 너무나 뜻밖에 찾아오기 때문에 죽은 이들은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들어간 것을 알아채기조차 힘듭니다. 그들은 충분히 가르침을 받은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몸이 육체가 아니라 영체이며 자신이 물질 세계에서 영적 세계로 옮겨온 것을 알게 됩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은 죽을 때 무지각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는 죽은 뒤에 자신의 주변에 모여든 사납고 무서운 악마들의 얼굴을 보고 말도 못하고 공포에 떨게 됩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진 이들의 죽음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을 맞으려고 오는 천사들과 거룩한 영들을 보고 극도의 행복감을 맛보게 됩니다. 그때 먼저 죽은 사람들도 그를 영계로 데리고 가기도 합니다.”

     

    썬다 싱은 1924년 또 다시 티베트로 향했으나 얼마가지 못해 돌아오게 됩니다.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영양실조 상태였고 폐결핵까지 앓고 있었습니다. 2년 동안의 서구 전도 여행으로 피로도 많이 쌓여 있었습니다. 의사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썬다 싱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몸을 추스리면서 글과 편지를 통해 전도활동을 이어갔습니다. 

     

    1928년 썬다 싱은 다시 티베트로 향합니다. 하지만 며칠 뒤 길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 있다 상인들에 구출돼 돌아옵니다.

      

    이듬해인 1929년 그는 다시 티베트에 가겠다면서 길을 나섭니다. 그 뒤로 썬다 싱의 모습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으러 나섰지만 흔적조차 찾지 못했습니다. 

     

    썬다 싱이 어디로 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바로가기(클릭) : 기독교 성자 썬다 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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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벤지>의 노랫말에 담긴 가르침

    삶이 학교이고 일상이 수업입니다. 눈을 열고 귀를 기울이면 의외의 곳에서 위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영화 <벤지>의 주제가가 그런 가르침입니다.

     

    <벤지>는 길 잃은 강아지 벤지가 주인공입니다. 주인이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예쁜 개이지요. 벤지는 몸값을 노린 인질범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들을 납치했을 때 그들을 구하는데 활약을 펼칩니다. 티파니라는 예쁜 마르티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요.

     

    <벤지>는 제작비 5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지만 세계에서 4500만 달러를 벌어들인 성공한 영화이지만 주제가 ‘I  feel love’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I feel love’는 놀라운 노래입니다. 가사가 그렇습니다. 종교, 명상, 수행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사 내용이 어떤지 볼까요?

     

     

    <가  사> 
     

    I feel love all around  나는 어디에서는 사랑이 느껴져요. 

    I can feel it shining down 사랑이 쏟아지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어요.

    It lights up the day like the morning sun 사랑은 하루를 밝혀주는 아침 햇살처럼 

    Reaching out and touching everyone 모든 사람들을 어루만져 줘요.

     

    I feel love all day long 나는 하루 종일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Like a promise, like a song 약속처럼, 노래처럼

    And it's feeling good like I knew it would 사랑은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런 좋은 느낌이에요.  

    Everywhere I go, I feel love 어디를 가든 나는 사랑을 느껴요.

     

    I feel love, yes I do 사랑이 느껴져요. 정말이에요.

  • 문재인 대통령의 인도 연설, 국격을 보여주다

    문재인 대통령의 격조 높은 연설이 많은 이들을 미소짓게 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8일부터 11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인도를 국빈 방문 중입니다.

     

    둘쨋날인 9일 문 대통령은 인도 뉴델리 타지 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한국과 인도 비즈니스 포럼’에서 한 연설에서 한국과 인도의 관계를 미,중,일,러 등 한반도 주변 4대 강국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제인을 대상으로 한 연설이지만 인도의 역사, 인류사에 기여한 공헌, 한국과 인도의 인연 등을 녹여낸 연설은 현장에 있던 인도 경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내용 가운데 일부를 소개합니다.

     

     

    <연설문>

     

    나마스떼! 반갑습니다.

     

    인도에 오니, 20년 전 트레킹을 다녀왔던 라다크가 생각납니다.

    라다크의 주민들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전통적인 생활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현대 문명과 떨어져 있었지만 행복해 보였습니다.

     

    오늘의 뉴델리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통의 바탕 위에 고층빌딩이 올라가고 도로는 차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매우 젊고 역동적입니다.

     

    과거와 미래, 자연과 문명, 철학과 과학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함 속의 조화가 인도의 발전을 이끄는 힘인 것 같습니다.

     

    세계 4대 문명 발상지답게 인도가 세계사에 남긴 발자취는 남다릅니다.

     

    불교와 힌두교가 인도에서 탄생했고, 많은 인류가 두 종교로 마음을 수양합니다.

    그 정신세계는 명상과 요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물의 세계에 인간의 정신을 접속한 것도 인도입니다.

    숫자 영(0)은 눈에 보이는 세계를 넘어 세계를 무한대로 끌어올렸습니다.

    십진법과 분수 개념도 수학에 도입했습니다.

    과학기술이 끊임없이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던 것도 물리적 원리에 심오한 정신세계를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를 가까이했던 인도의 젊은이들은 지금 실리콘밸리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벵갈루루에서는 오늘도 새로운 테크기업이 생겨나고, 인도 출신의 최고경영자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어도비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도가 문학, 물리학, 경제학, 평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인도의 상상력은 문화의 영역에서도 빛납니다.

    볼리우드는 독창적인 영화산업으로 이어졌습니다.

    70년대, 코끼리와 인간의 우정을 담은 인도영화 ‘신상’이 기억납니다.

    한국에서 상영된 최초의 인도영화로 많은 한국 국민들을 울렸습니다.

    최근에는 ‘세 얼간이’와 ‘당갈’이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류 역사에 크게 기여하고,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끌고 있는 인도 국민과 경제인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중간 생략)

     

    인도와 한국은 오랜 교류의 역사를 갖고 있고, 어려울 때 도와 준 친구입니다.

     

    고대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약 2천년 전 한국 가야국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도는 한국전 당시 의료지원단을 파견해 따뜻한 손길로 한국 국민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제 양국의 교류는 국민들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인도 국민들은 현대차를 타고, 삼성 휴대폰을 사용합니다.

    한국 국민들은 요가로 건강을 지키고, 카레를 즐겨 먹습니다.

    제 딸도 한국에서 요가 강사를 합니다.

    교류와 협력이 양국 국민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성큼 더 나가, 더 깊은 우정으로 협력하자고 제안합니다.

     

    (중간 생략)

     

    “반대편 네 형제의 배를 도와주어라.

    그러면 네 배가 해안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인도 속담이 의미심장합니다.

    먼저 돕고, 서로 도와야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립니다.

     

    수천 년을 이어온 양국의 교류와 협력이 이제 번영과 희망의 미래를 향하고 있습니다.

    해안에 배가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한국이 돕겠습니다.

    인도가 함께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 명상의 목적

    많은 이들이 명상을 합니다.

    명상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명상은 기도, 참선, 묵상, 마음공부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립니다.

    예전엔 명상을 성직자나 종교인이 주로 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학교, 병원, 직장 등에서도 명상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학습 효과가 높아지고, 질병 치료에 도움을 주며, 직장의 업무 효율을 높여준다는 연구 결과들도 많습니다.

     

    물론 명상이 그런 효과를 갖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명상의 목적은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명상을 하는, 아니 명상을 해야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건 다름아닌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우리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자들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 세상의 존재자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명상의 목적은 깨달음에만 있지 않습니다. 명상의 진정한 목적은 그런 깨달음에 기반해 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기한 것은 그런 존재로 살아가려 노력하다보면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찌보면 최고의 명상법은 삶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로 명상입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할 때 우리는 명상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할 때가 바로 명상 상태입니다.

     

    성경 에베소서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도 신구의(身口意)로 선업을 지으라고 합니다. 인디언들은 우리 안에서 다투는 검은 늑대와 흰 늑대 가운데 흰 늑대에 먹이를 줘 키우라고 합니다. 그러니 명상을 할 시간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뜻, 부드러운 말, 친절한 행동으로 하루를 지내는 노력을 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