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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쁨과 충만함 가득한 걷기명상

    팃낙한 스님이 한국을 여러 차례 다녀가신 뒤 걷기 명상에 관심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방법들이 소개되고 있는데요, 이런 마음으로 산책하셔도 좋을 겁니다. 

     

    먼저 산책하실 길이나 산, 혹은 정원, 숲 전체를 눈길로 천천히 둘러보세요. 그런 뒤 잠시 눈을 감으시고 숨을 고르세요. 그리고 상상합니다. 

     

    '예수님이나 부처님, 혹은 위대한 스승께서 이곳에 지금 계신다면 어떤 표정이실까? 어떤 걸음걸이이실까? 어떤 모습, 어떤 마음이실까? 이때 주위의 나무, 풀, 꽃, 동물, 돌 등 모든 존재들은 얼마나 황홀한 떨림에 환호했을까?' 

     

    상상하셨나요? 상상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오를 겁니다. 

     

    그런 뒤 이젠 상상하신 그분의 표정, 태도, 걸음걸이, 마음을 그대로 똑같이 한번 지녀보세요. 그리고 그 상태로 산책길에 나서세요. 

     

    그러면 분명 그대의 걸음걸이는 한없이 한가로우며 느긋할 것이고, 표정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을 것이며, 마음은 자비와 축복으로 가득 차 주변의 온갖 생명들과 어우러지고, 그 자비와 축복의 파장이 물결쳐 퍼져 나가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한없는 기쁨과 충만함을 경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책상에서, 사무실에서, 소파에서, TV와 컴퓨터 앞에서 벗어나 자주 나무와 강물과 하늘과 햇볕과 흙을 온몸과 맘으로 만나셔요. 기쁨과 생명을 만끽하세요.  

  • 숲에 들어 하는 명상

    자주 숲으로 가십시오. 

    바람결과 햇볕, 숲의 향기,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맨발에 전해져 오는 대지의 생생한 감촉, 눈 푸른 숲의 질감. 

     

    숲은 화들짝 그대의 오감을 자극하여 몸과 마음이 춤을 추게 합니다. 

    숲은 그대의 전 존재를 깨우고, 그대의 의식을 고양시키고, 그대의 감정을 정화해 줍니다. 

     

    숲에 드세요. 

    오랜 나무들이 있는.... 

     

    함께 숲으로 가실까요? 

     

    - 따갑지 않으면 햇볕 속에 앉는 것이 더 좋지요. 나무 그늘에 자릴 잡아도 됩니다. 

     

    - 그대의 몸 상태, 주변 환경을 고려해 가장 편한 자세를 가지셔요. 

     

    - 먼저 주변을 둘러보세요. 나무, 바위, 풀, 꽃, 새, 흙 등과 눈 맞추며 반갑게 인사하셔요. 

      명랑하게 소리를 내서 하시면 더 좋지요. 

    - 이제 지그시 눈을 감고, 숲의 신선한 공기로 몸과 마음을 정화한다 생각하시며 

      큰 숨 여러 번 쉬셔요. 

     

    - 자, 고요해지셨나요? 그러면 들리는 것, 맡아지는 것, 느껴지는 것들을 아무런 판단을 하지 마시고 

      한동안 그저 가만히 듣고 맡고 느끼며 내 몸의 감각을 활짝 깨워 보셔요. 

     

    - 그런 뒤, 이번엔 내 피부의 모든 세포들이 활짝 열린다 생각하셔요. 

      그 세포들이 환호하며 그 소리, 냄새, 느낌들을 내 몸으로 다 받아들인다고 상상하며 실감해 보셔요. 

     

    - 숲의 초록의 생명 에너지가 피부의 열린 세포를 통해 내 몸에 들어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 몸을 가득 채운다 생각하시며 그 충만감에 젖어 보셔요. 

     

    - 내 몸 전체가 푸르고 눈부신 생명력으로 되살아나 빛이 나고 풀어져 숲 전체로 퍼져나간다 생각하시며 실감해 보셔요.  

     

    - 숲의 빛나고 푸른 기운과 하나 된 그 느낌 속에서 오래 머물러 행복하십시오.

  • 숨, 참 쉼의 도구

    숨과 관련한 우리 표현 가운데 쉰다는 게 있습니다. 내쉰다고도 합니다.

    왜 숨이라는 단어에 쉰다는 표현이 들어가 있을까요? 숨이 우리가 쉬는 데 가장 요긴한 수단이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숨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음식은 먹지 않아도 50일 이상 살 수 있지만 숨은 몇 분만 쉬지 않아도 생명을 잃게 됩니다.

    하지만 숨의 중요성을 나타내기에 쉰다는 표현은 적합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숨을 쉰다는 표현은 말 그대로 숨을 통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숨을 풍부하게 들이마시고 내쉬면 몸에 긴장을 풀 수 있습니다. 몸에 에너지도 찹니다.

     

    무엇보다 숨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쉴 수 있도록 해줍니다. 숨에 마음을 모으면 생각이 줄어듭니다. 생각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숨이 생각을 쉬는 도구가 되는 것이지요.

  • 떼제, 청년들의 영혼의 쉼터

    떼제공동체에서 기도 중인 청년들. 이미지 출처 : 플리커 (TaizéBirmingham), 퍼블릭 도메인

    “우리가 지금 온 대륙의 젊은이들과 함께 신뢰의 순례를 해 나가는 것은 평화가 얼마나 시급히 필요한지를 자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음의 물음에 답하려고 노력할 때 평화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사는 곳에서 신뢰를 간직하고 전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려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떼제공동체 창설자 로제 수사) 

     

    교회나 성당에 다니는 분들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푸근해지는 하늘색 십자가를 본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둘기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상징한 이 십자가가 공동체의 상징 떼제 십자가입니다. 

     

    [[IMAGE|198|center|떼제공동체를 상징하는 푸른 십자가. 출처 : 위키미디어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roix_de_Taiz%C3%A9.jpg), CC BY-SA 라이센스]]

     

    1940년 8월 한 청년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 부르고뉴 남부 지방의 작은 마을 떼제(Taize)를 찾았습니다. 그 해 6월 14일 프랑스 파리가 함락된 지 두 달쯤 되는 때였습니다.  

     

    스물다섯 살의 청년 로제는 전쟁이라는, 사람이 벌인 가장 잔인한 행위를 보면서 하루하루를 화해와 일치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분열과 갈등을 치유해 전쟁을 막고 인류가 한 가족처럼 지내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떼제를 찾은 이유는 그런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고통받는 바로 그곳에 그런 공동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그가 한 일은 도망자를 숨겨주는 일이었습니다.  

     

    로제에게 가장 먼저 눈에 뜨인 사람들은 나치 독일의 점령지에서 목숨의 위협을 느껴 도망 나온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반대의 처지에 놓인 독일군 포로들을 맞았습니다. 젊은이들의 영성 공동체 떼제는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떼제가 공동체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49년입니다. 로제와 뜻을 함께 하는 일곱 명의 청년들이 찾아와 독신 생활과 물질적 영적 재산의 공유 등을 지킬 것을 약속하는 종신서원을 하면서 공동체 식구들이 생겼고 1952년에는 떼제의 규칙이 만들어집니다. 어떤 기부나 헌금도 받지 않고, 가족의 상속도 받지 않으며, 스스로 일해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나눔을 실천한다는 등의 내용입니다.  

     

    평생 단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차츰 그들의 뜻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결과 지금 공동체에는 지금 공동체에는 20여 개 나라에서 온 1백 명가량의 수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 출신도 있고, 개신교회 출신도 있습니다. 

     

    떼제에는 1950년대 말부터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로제 수사를 비롯한 공동체 식구들은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머물면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 정신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그때부터 손님맞이는 떼제의 주요한 부분이 됐습니다.  

     

    지금은 1년 내내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에서 찾아온 젊은이들이 떼제를 찾습니다. 한 주에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들은 일요일에서 다음 일요일까지 1주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떼제의 정신을 경험합니다.  

     

    이들은 1962년 세워진 ‘화해의 교회’에서 하루 세 차례 공동체 식구들과 함께 기도를 하고 소그룹으로 나눠 대화하는 시간도 갖습니다. 젊은이들이 많아지자 몇 해 전부터 가톨릭 국제공동체인 성 안드레아 수녀회와 폴란드의 우술라 수녀회에서 ‘젊은 순례자’들을 맞는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과의 모임은 떼제공동체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사들은 유럽은 물론 다른 대륙을 찾아다니며 크고 작은 모임을 이끕니다. 이는 지구촌에 믿음에 바탕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신뢰의 순례’입니다. 이들 모임에서 떼제공동체 수사들은 젊은이들이 자기가 사는 바로 그곳에서 인류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열심히 활동하도록 돕고 격려합니다. 

     

    가장 큰 모임은 떼제공동체가 매년 말 유럽에서 여는 ‘테제 유럽 젊은이 모임’(Taize European Youth Meeting)입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는 유럽은 물론 세계 각지에서 온 수만 명의 젊은이들 참여합니다. 2004년 말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행사에는 8만 명의 젊은이들이 참가했다고 합니다. 올해 행사는 12월 28일부터 2006년 1월 1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립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지만 떼제는 자신을 중심에 두는 법이 없습니다. 떼제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조직은 하나도 없습니다. 대신 동네, 마을, 도시, 교회, 성당 등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속한 곳에서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이끌어 줍니다. 떼제공동체가 세계 곳곳을 찾아가며 벌이고 있는 ‘신뢰의 순례’는 그런 젊은이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해서 기획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요청으로 1979년 다섯 분의 수사들이 파견되어 서울 화곡동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분들은 26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한국의 교회와 젊은이들을 돕고 있습니다. 화해와 일치의 지구촌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떼제공동체. 이들의 꿈이 자랄수록 지구촌에는 사랑과 평화의 기운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 새끼 코끼리와 생명의 은인 찾은 어미 코끼리

    코끼리 야타(Yatta)는 1999년 구조됐습니다. 부모를 사냥꾼에 모두 잃은 고아였습니다.  

     

    케냐의 야생동물 보호 단체 DSWT(David Sheildrick Wildlife Trust)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야타는 2010년쯤 다시 자연으로 돌아갔습니다.  

     

    야타는 2017년 12월 새로 태어난 아기 코끼리 요요(Yoyo)와 첫째 아기 Yetu와 함께 DSWT를 찾아왔었습니다. 

     

    마치 새끼들을 자랑이라도 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DSWT에 코끼리가 새로 태어난 새끼들과 함께 방문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그곳을 늘 고향처럼 여기나 봅니다. 

  • 히말라야의 선인 라히리 마하사야(2)

    <<히말라야의 선인 라히리 마하사야가 보인 이적들>>

     

     

    히말라야의 대 성취자 마하사야(1828-1895)의 제자 중에 ‘아브호야’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아브호야는 여덟 명의 아기를 출산했지만, 모두 태어나자마자 바로 죽었습니다. 그녀는 아홉 번째로 임신한 다음 스승을 찾아가 이 아이는 오래 살 수 있도록 축복을 내려 달라고 간곡한 요청을 올렸습니다. 마하사야는 쾌히 승낙하면서, “아기가 밤중에 태어날 테니 동이 틀 때까지 꼭 등잔불을 켜놓으라”라고 일렀습니다.

     

    드디어 고대하고 고대하던 출산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브호야는 조산원에게 부탁해서 등잔에 기름을 가득 채워 두었습니다. 한밤중에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브호야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건강한 아기와, 아기를 안고 기뻐하는 산모의 모습을 지켜보는 조산원의 보람 역시 매우 컸겠지요.   

     

    조산원은 정성을 다해 아기를 씻기고 정결한 배냇저고리를 입혔습니다. 그리고 산모의 뒷수발을 들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왔습니다. 그런데, 밤을 꼬박 새운 조산원과 아브호야는 새벽녘이 되자 그만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 어느덧 등잔의 기름이 거의 다 떨어져서 불꽃이 차츰차츰 희미해져 갔습니다. 꺼질락 말락 불꽃이 점점 사그라 드는데, 잠에 곯아떨어진 조산원과 아브호야는 일어날 기척이 없고…….  

     

    이때 와락 큰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렸습니다. 두 여인은 깜짝 놀라 눈을 떴습니다. 문간엔 스승 마하사야가 서 있었습니다. 스승은 다짜고짜 불꽃을 손으로 가리키며, “아브호야, 불이 꺼지지 않느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조산원이 급히 일어나 기름을 채우니 불꽃이 다시 환하게 일었습니다. 스승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마하사야는 죽어서 숨이 끊긴 사람도 다시 살려 냈습니다. 하루는 제자 유크테스와르가 허겁지겁 스승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자기 친구 라마가 콜레라에 걸려 죽게 됐다며 살려 달라고 스승에게 매달렸습니다. 마하사야는 미소를 머금고 “염려 말라.”라고 했습니다. 유크테스와르는 안심하고 돌아갔지만 친구 라마는 곧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유크테스와르는 엉엉 울면서 스승에게 되돌아갔습니다. 

     

    라마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마하사야는 깊은 명상에 잠겼습니다. 속절없이 하루가 가고, 다음 날 새벽이 되어서야 명상에서 깨어난 마하사야는 유크테스와르에게 자기 방에 있는 등잔의 기름을 조금 가져다가 라마의 입에 일곱 방울만 떨어뜨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미 죽은 친구의 입에 기름을 떨어뜨리라니, 유크테스와르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라마는 어제 죽었습니다. 시체의 몸에 기름을 떨어뜨린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스승에게 물어보았지만 스승은 더 이상 가타부타 말씀이 없었습니다. 스승이 시키시는 일을 거역할 수가 없었던 유크테스와르는 마지못해 기름을 들고 죽은 친구에게 갔습니다. 라마의 시체는 이미 딱딱하게 굳어 있었지만 유크테스와르는 라마의 입술을 열고 스승의 말씀대로  기름을 떨어뜨립니다.  

     

    한 방울, 한 방울……. 드디어 마지막 일곱 번째 방울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라마의 몸이 갑자기 후들후들 떨리더니 그가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하사야님께서 찬란한 빛에 휩싸여 계셨어! 나한테 깨어나라고 명령하셨어! 그리고 너와 함께 집으로 오라고 하셨어!” 

     

    1895년 마하사야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열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하사야가 열반에 든 이후에 어떤 사람은 강물 위를 걸어 어디론가 가고 있는 그를 보았다고 합니다. 마하사야를 직접 다시 만난 제자도 있었습니다.  

     

    마하사야의 시신을 화장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침 열 시경, 마하사야의 제자 케샤 바난다의 방이 갑자기 환한 빛으로 가득 차올랐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빛 속에서 스승이 더욱 젊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은 스승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빛 속에서 장엄하게 스승의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바난다여, 나를 보아라. 불에 타서 흩어진 원자(原子)들을 가지고 내 형체를 이렇게 부활시켰느니라. 나는 바바지님과 한동안 히말라야에서 지낼 것이다.” 

     

    마하사야는 이렇듯 시해선(尸解仙)이 되어 육신의 껍질을 벗어 버리고 선계(仙界)로 들어간 것입니다.

  • 농민빚 대신 갚는 인도 영화배우

    인도의 인기 영화배우가 농민의 은행 빚을 대신 갚아줬습니다.

     

    영화 <블랙>과 <위대한 캣츠비> 등에 출연한 인도의 인기 영화배우 아미타브 바찬(76)은 사재를 털어 1398명의 은행 빚을 갚았습니다. 

     

    그가 농민의 빚을 갚기 위해 쓴 돈은 4000만 루피, 우리 돈으로 약 6억 4천만 원이라고 합니다. 

     

    바찬이 도와준 농민들은 바찬의 고향인 인도 북부의 우타르프라데시 주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바찬은 올해 초에도 자신이 살고 있는 마하라슈트라 주 농민 350명의 빚을 갚아줬습니다.

     

    그는 블로그를 통해 “농민들이 겪고 있는 부담 중 일부를 덜어주고 싶다”면서 “그 바람이 이뤄질 때 내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온다"라고 선행의 이유를 밝혔다.

     

    인도는 수십 년간 가뭄, 지하수 고갈, 시설 부족, 생산성 저하 등으로 농업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이로 인해 수만 명의 농민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져 있다고 합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빚을 내야 하는 농민이 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어려움 때문에 1995년 이후 최소 30만 명 이상의 농민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바찬은 인도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19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습니다. 

     

    그는 지난 2015년 8월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세계에서 소득이 가장 많은 남자배우’ 7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포브스가 당시 밝힌 그의 1년 수입은 약 3350만 달러(약 378억 4500만 원)였습니다. 

  • 방청객 모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판사

    미국 대공황 때 있었던 일입니다. 

     

    1935년 1월 어느 추운 겨울밤에 뉴욕 법원에서 재판이 열렸습니다.

    남루한 옷을 입은 나이 든 여성이 법정에 나와 판사 앞에 섰습니다. 빵 한 덩이를 훔쳐 절도죄로 기소된 그 여성은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떨군 채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판사가 그 여성에게 물었습니다.

     

    "빵을 훔친 것이 사실인가요?"

    "그렇습니다"

    "그것이 절도죄라는 것을 모르셨나요?"

     

    그 여성은 고개를 들고 판사를 보며 답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배가 고파서 그랬습니다. 사위가 가족을 버렸고 딸은 병이 들어  어린 두 손자가 굶고 있습니다. 너무 어린아이들입니다"

     

    나이 든 여성이 말을 마치자 법정이 술렁였습니다. 용서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빵 가게 주인은 단호했습니다. 

    “판사님, 본보기를 위해서라도 저 여성을 처벌해야 합니다.”

     

    판사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잠시 후 선고가 내려졌습니다.

     

    "당신은 분명히 법을 어겼습니다. 그러므로 본 법정은 10달러의 벌금형에 처합니다."

     

    판결을 마친 뒤 판사는 주머니에서 10달러 지폐를 꺼내 자신의 모자에 담았습니다.

     

    “이 돈은 벌금입니다. 그리고 나는 법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50센트의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우리는 모두 이 여성처럼 가난한 이웃이 빵을 훔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난함에도 무관심했습니다. 이는 우리의 무관심에 대한 벌입니다.”

     

    순간 방청석은 침묵에 쌓였습니다.

    판사의 모자가 방청객들에 넘겨졌고 모두가 기꺼이 벌금을 냈습니다. 

    판사는 10달러의 벌금을 뺀 나머지 돈을 그 여성에게 전달했습니다.

     

    재판정을 나서는 여성의 빰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이 판결을 내린 판사가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입니다.  그는 공정하면서도 가난한 이들에게 우호적인 명판결을 많이 내린 판사로 이름났습니다. 

     

    후에 시민들의 추대로 뉴욕시장이 돼 세 번이나 연임하며 시민들을 위해 봉사했다고 합니다. 시장 시절에는 뉴욕의 지하경제를 주무르고 있던 마피아 소탕작전을 성공적으로 벌이기도 했습니다.

     

    1945년 그가 사망하자 뉴욕시는 퀸스에 설립된 공항을 라과디아 공항으로 이름 지어 그를 기렸습니다. 

  • 좁쌀명상 - 괴롭힘 탈출법

    우리의 참모습은 참나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지구에 소풍 온 사람입니다. 삶이 끝나면 우리는 하늘나라로 돌아갑니다. 지구에서 지내는 동안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를 보살피고 최선의 길로 안내하십니다. 주위에는 수호천사가 늘 우리를 보호하고 계십니다.

    지금의 겉모습과 달리 우리 안에는 하늘나라에 있을 때의 모습인 참나가 있습니다. 예전의 성인들은 참나를 그리스도, 부처, 진아 등으로 불렀습니다. 참나는 영원불멸합니다. 우리의 삶이 끝나면 우리 안의 참나는 하늘나라로 돌아갑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일을 우리를 돌보시는 하느님과 수호천사님에게 맡기십시오. 그 분들이 우리를 최선의 길로 안내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명상을 위한 준비

     

    조용한 장소를 찾아 자리에 앉습니다. 의자에 앉아도 되고, 바닥에 앉아도 됩니다. 바닥에 앉을 때는 벽을 등받이처럼 해서 앉으세요.

    누워서 해도 괜찮습니다. 누울 때는 두 다리를 어깨 넓이처럼 벌리고 두 팔도 몸에서 15~30도 떨어지게 바닥에 내려 놓고 손바닥이 하늘로 향하게 합니다. 이 자세가 우리 몸을 가장 이완시킬 수 있는 자세입니다. 불편하면 베개를 쓰셔도 괜찮습니다.

    연습을 꾸준히 하면 시끄러운 지하철이나 서 있을 때도 할 수 있게 됩니다.

      

     

    1. Relaxing

     

    눈을 감고 다음과 같이 호흡을 합니다.

    숨은 내쉬기부터합니다. 숨을 편안하고 길게 내쉽니다. 억지로 길게 내쉬면 가슴이 답답해지니 편안한 만큼만 내쉽니다. 들이마시는 숨은 저절로 들어오게 내버려 둡니다.

    처음 몇 번은 숨이 거칠 수가 있습니다.

    숨이 들어온 뒤 내쉴 때 길고 편안하게 내쉽니다. 숨을 내쉬면서 온몸에 힘을 뺍니다.

    들이마시는 숨은 저절로 들어오게 두시고 내쉴 때 온몸에 힘을 뺀다고 생각하며 길고 편안하게 내쉽니다. 이 때 얼굴에는 미소를 짓습니다. 자신이 행복했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바라봤을 때, 아니면 아기의 웃는 모습이나 개나 고양이의 귀여운 모습을 봤을 때를 생각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2. 참나 떠올리기

     

    이제 우리 안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몸 참나가 있음을 생각해봅니다. 우리 자신의 모습을 닮은 하지만 황금빛으로 빛나는 몸이 우리 안에 있음을 생각하고 떠올려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세상사에 찌든 나는 사라지고 참나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여러 번 속삭여 줍니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다.”

    이제 우리가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기 때문에 하느님과 수호천사들이 우리에게 사랑과 축복을 쏟아부어주신다고 생각합니다. 그 축복과 사랑이 세상의 모든 어려움을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우리를 괴롭히거나 해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고, 하늘에서는 눈부신 햇살같은 사랑과 축복의 에너지가 쏟아져 우리를 감싸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행복에 잠겨 봅니다.

     

     

    3. 좁쌀 떠올리기

     

    이제 눈을 감은 채로 한 손을 떠올립니다. 손바닥 안에 우리를 괴롭히는 어떤 사람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의 모습은 좁쌀만큼 작습니다. 그리고 그 색깔은 아주 새카맣습니다. 그의 존재는 너무 작아서 나 자신을 절대 해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은 하늘의 축복과 사랑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 아주 작고 힘없는 작은 좁쌀만한 크기의 그 사람이 보입니다. 1분 동안 그 상태로 잠시 머뭅니다.
     
    그 사람도 나와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서 함께 소풍 온 천사입니다. 그의 안에도 나와 똑같은 참나가 있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에너지에 물들어 그를 잊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아주 작은 좁쌀 같은 그의 몸 안에 있는 찬란히 빛나는 참나를 떠올려 봅니다. 그 빛이 점점 커져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검은 어둠을 몰아내는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기뻐합니다. 1분 동안 그런 기쁨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4. 깨어나기

     

    눈을 뜹니다. 눈을 뜬 채로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얘기합니다. “나는 하늘나라에서 온 천사다. 하느님과 수호천사들이 나를 보호하고 있고, 어느 누구도 나를 해치지 못한다.”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천사의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모든 존재들에게 축복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그런 마음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합니다.

  • 부설거사, 파계 또한 깨달음의 길

    부설 거사에 얽힌 이야기는 수행에 승속이 따로 없음을 알려주는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신라 때 고승인 부설 거사의 삶과 행적에 대한 기록은 전북 부안 내변산 월명암에 전해오는 한문 필사본 <부설전>에 담겨 있습니다. 누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지은이는 구전되던 부설 거사의 이야기를 소설체로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다.

     

    거사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부설은 출가승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출가했다 파계한 승려입니다. 부설 스님은 신라 때 불국사의 승려였다고 합니다. 스님은 도반인 영조, 영희 스님과 함께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부설 스님에게 당혹스런 인연이 생겨납니다. 지리산, 천관산, 능가산 등지에서 수도하고 오대산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묘법을 얻고자 만행을 떠나는 어느 봄날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김제시 부근을 지나던 세 도반은 불심이 깊다는 집을 수소문해 하룻밤을 지내게 됐습니다. 구무원이라는 사람의 집이었습니다. 하룻밤 신세지고 떠나려했지만 비가 몇 날을 계속해서 내려 하는 수 없이 며칠을 묵게 됐습니다.

     

    스님들이 머무는 동안 불심이 깊었던 구무원은 스님들에게 자주 법문을 청했습니다. 그에게는 재색을 겸비한 묘화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묘화 낭자도 스님들의 법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며칠 뒤 비가 그치고 부설 거사 일행은 다시 길을 나서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묘화 낭자가 부설 거사를 붙잡았습니다. 그는 부설 거사에게 자신의 지아비가 되어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득도를 위해 세속의 삶을 버리고 출가한 스님에게 혼인을 해달라고 매달린 것입니다. 부설 거사는 단호히 거절했지만 묘화 낭자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장차 도통하여 많은 중생을 구하실 스님이 작은 계집 하나 구해 주지 못한다면 어찌 큰 뜻을 이루실 수가 있겠습니까?”

     

    묘화 낭자는 혼인을 해주지 않으면 자신은 목숨을 끊겠다고 했습니다. 자살 기도도 했습니다. 그런 딸을 보고 구무원도 부설 스님에게 매달려 애원했습니다. 부설 스님은 묘화 낭자의 목숨을 건 호소에 하는 수 없이 그녀와 혼인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도반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 때 부설 스님은 도부재치소(道不在緇素) 도부재화야(道不在華野) 제불방편(諸佛方便) 지재이생(志在利生)라는 게송을 들려주며 도반들을 떠나 보냅니다. 

     

    도라는 것는 승려의 검은 옷과 속인의 하얀 옷에 있는 것이 아니며, 번화로운 거리와 초야에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부처님이 하고자 하신 뜻은 중생을 이롭게 제도하는 데에 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설 스님은 거사가 됐습니다. 묘화와 부부의 인연을 맺은 뒤 아들과 딸을 얻어 등운과 월명이라 이름지었습니다. 비록 파계하고 집안을 이뤘지만 부설 거사는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부부는 바닷가에 지은 초막에서 지낼 때나 나중에 내변산에 지은 암자에서 살 때나 늘 수행에 몰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