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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 생명

Contents List 3

  •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는 방법

    나그네는 자신이 하늘에서 온줄 압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늘은 나그네의 하루살이입니다.

    나그네에게는 자신의 생명과 우주만물도 선물입니다.

     나그네의 아침은  선물받은 어린이의 심정입니다.

    포장을 열고 무엇이 있을까 기대하니 가슴이 뜁니다.

    만나는 이들마다 어떤 모습일까 살펴 봅니다.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너머에 어스름 달을  만납니다.

    덕분에 돌뿌리며 계단이 보입니다. 나무며 산들도 저기 서있습니다.

    온갖 풀벌레가 제소리를 냅니다

    저마다의 소리가 모여서 온누리에  가득합니다. 

    나그네의 가슴에도 소리들이 뿌듯합니다.

    바람은 선선하여 살갖을 어우릅니다

    .걷는 걸음이 느릿하니 여유롭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신선한 아침공기를 맛봅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만지고 두드립니다.

    굳어진 어깨며 무릎을 움직이고 늘립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살핍니다.

    여기저기 나그네들을 만납니다.마음으로 평화를 전합니다.

    오~~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 코로나19 예언 소년이 알려준 바이러스 이기는 법

    아비냐 아난드는 코로나19를 예언한 인도의 소년입니다.

     

    아난드는 인류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성찰하지 않으면 더 심각한 질병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야 합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 어떤 피조물도 해치지 말아야 합니다. 

    분노와 두려움을 가져다 주는 뉴스를 접하지 않도록 휴대폰과 SNS를 멀리하세요.

    채식을 하고 세상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 모두 손님이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일 뿐

    요즘 매일 근처 숲으로 가 산책을 하고 명상도 합니다.

     

    술에 취해 널부러저 자거나 심지어 화투판까지 벌이는 분들을 보기 싫어 어스름 저녁에 주로 숲에 갑니다. 하지만 사람이 드문 시간에는 들개를 조우하기도 하고 고양이도 자주 만납니다. 비가 그친 숲길에서 실뱀이 한가롭게 지나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새들은 물론 거미나 벌레도 많습니다. 명상을 할 때 성가신 것들이 모기들과 온갖 물 것들입니다. 개미들도 자주 기어 오릅니다. 모기가 무는 것을 느낄 때 속으로 ‘2,3번까지는 참을게. 너희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하고 말했습니다. 알아들었는지, 더 물리지 않을 때도 있고 모기 때문에 명상을 마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푸른 하늘과 숲, 우주와 하나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아 모기가 물든 말든 괘념치 않고 계속 명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착각하지마라. 얼굴 찌푸리지도 마라. 이 숲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다! 숲이 좋아 저마다 찾아든 뭇 생명들 모두, 평등하게 머물다 가는 객(客)이다. 나도 그 수많은 손님들 중 하나일 뿐!’

     

    숲과 마찬가지로 나는 지구에도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입니다. 여행지에서 묵었던 아름다운 숙소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머물다 떠나고 싶습니다.

  • 엔돌핀적 삶과 세로토닌적 삶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사람 뿐 아니라 모든 모든 생명이 행복한 삶을 원합니다. 

     

    우리 몸에는 행복할 때 나오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호르몬이 엔돌핀과 세로토닌입니다.

     

    엔돌핀은 좋아하는 것, 바라는 것을 얻었을 때 생성됩니다. 재산, 명예, 권력, 좋은 직장 등을 가졌을 때 우리 몸 안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엔돌핀은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뭔가를 새로 얻어서 행복감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고 합니다.

     

    세로토닌은 아무 조건없이 사랑하고 좋아할 때 나옵니다. 있는 그대로 자족하고 다른 존재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 매사에 긍정적인 사람들은 세로토닌 생성이 잘 되어 행복감을 잘 느낍니다. 

     

    가난한 나라 중에 작은 것에 흡족해하며 인간관계가 상대적으로 좋은 나라의 국민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입니다.

  • 행복으로 가는 길은 애쓰지 않고 맡기기

    어떤 분이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더 이상 행복해지려고 애쓰지 않으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적을 ‘행복해지기 위해’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은데 말이죠. “그럼 불행해져도 좋다는 말인가?” 이런 극단적인 생각까지도 떠올랐다 사라집니다. 

     

    “그런데 나에게 ‘행복’이란 무엇이지?” 이런 의문도 듭니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그저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 하나 만으로 모든 걸 참고 인내하며 아등바등 살아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정말 ‘행복’이란 뭘까요? 

     

    불과 5,6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쌀밥’ 실컷 먹는 게 꿈이었습니다. 고기를 실컷 먹는다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습니다. 그저 보리밥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그런 것은 더 이상 ‘꿈’이 아닙니다. 요즘은 배불리 먹기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덜 먹어 살 빼는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처음 아기를 낳아 마주 하게 되는 감격의 순간, 거의 모든 부모는 손가락 발가락 다 있고, 건강한 자식 낳은 것 만으로도 행복해 합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부모의 소망은 “건강하게만 자라다오”이지요.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서 부터 성적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성적이 나쁘면 아이를 잡도리합니다. 자아가 성숙해지면서 아이가 부모에 반항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가족 간 갈등이 심해지면 서로 불행하다고 느끼게 될 것은 뻔한 일입니다. 

     

    이렇게 ‘행복’은 시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수시로 변합니다. 절대적인 행복이란 없고 모든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어쩌면 행복은 내 마음먹기에 달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 ‘애쓰지 않는다’에 대해서도 생각해봅니다. 

     

    아침에 잠이 깨서 세수하고 밥 먹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직장에 가는 일상을 한번 생각해봅니다. 어떻게 아침이 되어 저절로 눈이 떠졌을까요? 어떻게 수도꼭지를 틀면 물이 나와 세수를 하고 세수를 한 물은 하수구로 흘러 내려갈까요? 벼에서 쌀이 만들어져 밥이 된 것은 어떻고요? 손이 뜻대로 움직여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입으로 가져가는 것은 어떤가요? 다행히 나의 위장은 잘 움직여 소화를 시키고 소장, 대장 등 오장육부가 알아서 움직입니다. 

     

    사고로 사지가 마비되었던 분이 재활 치료에 성공해서 손가락 한 개를 움직일 수 있었을 때 그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환호하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시각으로 보자면 기적 아닌 일이 없습니다. 

     

    사실 많은 일들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태어나고, 먹고 자라고, 병들어 죽기까지 모두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모든 걸 하늘에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면 어떨까요? 

    편안한 우주의 기운이 나의 마음에 감응해 하늘 보시기에 가장 좋은 일이 벌어지게 되지 않을까요?

  • 이스라엘 여성이 팔레스타인 3살 아이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한 이후 벌어진 일

    이스라엘은 B.C. 1.000년 전 지금의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 세상을 떠돌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땅을 점령하고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지요. 그 지역에선 끝없는 갈등과 피의 보복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있습니다.

     

    이디트 하렐 시걸은 이스라엘 북부의 유치원 교사인데 50세 생일에 아주 뜻밖의 결정을 합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사는 3살 팔레스타인 남자아이 환자에게 자신의 신장을 떼어주기로 한 것입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11일간의 전쟁을 막 마쳤을 때였습니다.

     

    이 결정에 시걸의 남편은 펄펄 뛰며 반대했습니다. 팔레스타인 공격에서 친척 3명을 잃은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를 배신자 취급했습니다. 그녀도 사람인지라 가족들의 완강한 반대에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한편 아들의 신장이 자신의 것과 적합하지 않아 아들에게 주지 못했던 남자아이의 아버지는 그때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신장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기증하기로요!

     

    마침내 아들이 새 신장을 받은 날, 그 아버지는 자신의 것 하나를 25세 이스라엘 여성에게 떼어주는 수술을 하게 됩니다. 죽어가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이 서로 새 생명을 얻게 된 거죠.

     

    서로가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서로 적인 이들은 자신의 몸의 일부를 기꺼이 서로에게 나누어 주어 생명이 이어지는 기적적인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생명은 사랑을 먹고 자랍니다. 원수로 여겼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가족들이 서로 얼싸안게 된 것은 물론이고요!

  • 김연경을 다시 보게 되는 순간들

    “김연경은 너무나 특별한 선수다. 어느 누구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거듭거듭 말해왔다. 김연경은 10억 명 중에 하나 나올까말까 한 스타다” (세계배구연맹)

     

     

    핸디캡으로 장점 만들기

     

    김연경은 어린 시절 배구 선수 치고는 키가 작았습니다. 결정적 핸디캡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리시브 기술을 연마하는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고교시절 키가 쑥쑥 컸고 그는 수비와 공격을 모두 잘 하는 완벽한 선수가 됐습니다. 

     

     

    후배들을 위한 양보

     

    김연경은 후배들을 위해 수억 원을 아낌없이 포기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친정팀 흥국생명과 연봉 3억5천만 원에 계약했습니다. 터키 배구팀에서 받던 직전 연봉은 17억 원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샐러리캡 때문에 흥국생명이 그를 포함해 15명의 선수와 계약에 쓸 수 있는 돈은 13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김연경은 곧바로 자신의 연봉을 깍자고 했습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한국이 일본에 극적으로 승리한 뒤 모든 선수들이 코트로 뛰어 나와 어깨를 겯고 껑충껑충 뛸 때였습니다. 라바리니 감독도 달려나가 원 안에 합류했습니다. 에르난데스 코치도 달려나갔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이 한데 부둥켜 안고 감격해 하는 상황이라 자칫 에르난데스 코치는 원에 기어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에 김연경 선수가 원의 한 자락을 끊고 나가 에르난데스 코치를 끌어들여 더 큰 원을 만들었습니다.

     

     

    나보다 팀

     

    김연경은 승리 때마다 늘 공을 팀 전체에 돌립니다. 배구가 팀 경기일지라도 뛰어난 개인이 승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경기 뒤 인터뷰에서 김연경은 늘 팀워크가 승인이었다고 말합니다. 도쿄 올림픽 일본과의 경기에서 허벅지에 핏줄이 터질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승리를 이끌었지만 김연경은 “선수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했기에 가능했다”며 공을 팀 전체에 돌렸습니다. 

     

     

    일제 운동화 위에 써붙인 대한독립만세

     

    2017년 8월15일 김연경 선수의 팬클럽 인스타그램에 사진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이날 경기 때 김연경의 신발을 찍은 사진이었는데 미즈노 신발 바깥쪽에 ‘8.15 대한독립만세’라는 글이 써붙여져 있었습니다. 미즈노가 스폰서 회사지만 광복절날 일제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물론 미즈노에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고도 했습니다. 

     

     

    김연경의 생각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도 '배구' 하면 김연경을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같은 선수끼리 봤을 때 '저 선수는 사람이 됐다'고 할 수 있는,운동만이 아니라 인격까지 갖춘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요. "

  •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스베덴보리(3)

    스베덴보리는 천사들의 안내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여행했습니다.

     

    사람들은 죽은 뒤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중간영계를 거쳐 천국과 지옥으로 간다고 합니다. 스베덴보리는 중간영계를 천국행이나 지옥행이냐를 가르는 심사가 이뤄지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중간영계는 지구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사람들이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잊을 정도라고 합니다. 중간영계에서 죽은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를 만나기도 합니다.

     

    중간영계에서 머무는 동안 사람들의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지구상에서 다른 이의 눈에 하찮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았더라도 천국의 마음을 갖고 살았다면 그의 내면에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반대로 남들 눈에 아무리 고상하고 이타적인 삶을 산 것처럼 보였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명예나 권력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 사람의 모습은 점점 지옥에 사는 악령들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중간영계에서 자신의 본래모습이 드러난 뒤에 사자들은 일정한 교육을 받은 뒤에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과 지옥이 각각 세 개로 나눠져 있다고 했습니다. 종교를 믿지 않았지만 착하게 산 사람들이 가는 제1천국이 맨 아래에 있고, 그 위에 제2천국과 제3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방문했을 때 제3천국은 아직 비어 있었다고 합니다.

     

    지옥도 제1지옥, 제2지옥, 제3지옥으로 나눠져 있었습니다. 지옥에 사는 영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하느님으로 여기는 이들로 서로를 괴롭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알았습니다.

     

    제1지옥에는 악령이 제2지옥에는 악마가 제3지옥에는 악귀가 삽니다. 이들의 형상은 지구상에 있는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흉측하고 기괴하며 섬뜩하고 무섭다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지구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천국의 천사나 지옥의 영인들 모두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세계로 끌고 들어가기 위해 애쓰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구는 천국의 천사와 악령 즉 선과 악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터입니다.

     

    그렇다면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가기가 생각보다 쉽다"고 했습니다. 왠만큼만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천국에 가느냐, 그 천국에서 어떤 집에서 사느냐의 기준은 오직 한 가지, 얼마나 이타적인 삶을 살았느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 천국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지구상에서의 삶이 너무나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구상에서의 100년도 안 되는 삶이 영원한 삶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천국에 가기 위한 덕을 쌓거나 잘못을 회개하는 것 모두 오로지 지구에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기회는 지상에만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죽음도 '예언'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죽는 날을 밝힌 방식은 독특합니다. 스베덴보리는 한번도 만난 일이 없던 존 웨슬리라는 목사에게 편지를 써서 그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 하지만 자신이 1772년 3월 29일 영계로 '이주'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을 만나려면 그 전이 좋겠다는 편지를 썼습니다.

     

    실제 그는 자신이 '예언'한 그날 그 시간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삶과 그가 체험한 천국과 지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믿음이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그의 말에 대해 비판하는 기독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남긴 '천국에 가는 방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독교나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기 때문입니다.

     

    스베덴보리가 밝힌 천국에 가기 위한 6가지 삶의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셋째. 매사에 양심을 지켜라.

    넷째, 다른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

    다섯째, 자기 생명까지 희생하는 사랑은 사랑의 극치이다.

    여섯째, 마음의 참 평화를 확인하라.

    천국에 가려면 지상에서의 삶을 천국 사람들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끝.

  • 한국 호랑이 모티브 동화, 미국 아동문학 '노벨상' 타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가 미국의 아동청소년 문학계 최고상을 수상했습니다. 

     

    미국도서관협회(ALA)는 25일(현지시간) 테이 켈러(27)의 '호랑이를 잡을 때'(When You Trap a Tiger)를 '2021 뉴베리 메달'(John Newberry Medal) 수상작으로 발표했습니다.

     

    1921년 제정된 ‘뉴베리 메달’은 미국에서 '아동·청소년 도서계의 노벨상'으로 불릴 정도로 권위 있는 상입니다. 

     

    켈러는 ‘호랑이를 잡을 때’라는 책으로 100번째 뉴베리상 수상자가 됐습니다. 켈러의 두 번째 작품인 이 책은 만 8~12세를 대상으로 한 동화책으로 지난해 1월 펭귄랜덤하우스가 출판했습니다. 

     

    ‘호랑이를 잡을 때’는 켈리가 어린 시절 외할머니로부터 들은 한국 전래동화에서 영감을 얻어서 쓴 작품입니다. 

     

    주인공 릴리의 가족이 병든 할머니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는데 신비한 호랑이가 나타나 릴리에게 비밀스러운 가족사를 풀도록 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켈러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둔 이 책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할머니가 호랑이들로부터 무언가를 훔쳤습니다. 이제, 호랑이들은 그것을 돌려받기를 원합니다. 호랑이들 가운데 한 마리가 릴리에게 할머니의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것을 대가로 훔친 것을 돌려달라는 거래를 제안합니다...” 

     

    2020년 1월 책이 출판됐을 때 켈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것은 정말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제게 너무 개인적인 것이라 잘못 쓸까봐 너무 걱정했고 몇 번이나 그만둘 뻔 했습니다. 18번이나 다시 썼지요.”

     

    심사위원단은 이 책에 대해 "한국 전래동화에 생명을 불어넣은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의 걸작"이라며 "사랑과 상실, 희망을 생각해보게 한다"고 격찬했습니다. 

     

    켈러의 어머니는 '군 위안부'(Comfort Woman·1997)와 '여우 소녀'(Fox Girl·2002) 등을 쓴 소설가  노라 옥자 켈러(54)입니다. 

     

    켈러는 한국인 어머니와 독일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 태어나 세 살 때까지 서울에서 살다 하와이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자신을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김치와 흑미밥, 이야기를 양분으로 자랐다"고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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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스베덴보리(1)

    엠마뉴엘 스베덴보리는 스웨덴 사람은 17~18세기를 살다 간 인물입니다. 

     

    그는 1688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고 웁살라 대학에서 언어학, 수학, 천문학, 생리학, 신학 등을 공부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당대 최고의 과학자였습니다. 아이작 뉴턴과 같은 반열에 올랐고 현대의 인물에 비교하면 아인슈타인급에 해당하는 과학자였지요.
     

    하지만 그는 57세에 과학자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체험을 하게 되면서 그동안 쌓아 온 모든 것을 버리고 신학자이자 종교인, 신비가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스베덴보리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와 같은 과학자는 얼마든지 또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계의 진리를 알고 보니 이는 학문이 아니라 인류의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이 특별한 소명은 내가 과학자로 공헌하는 것보다 수천, 수만 배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스베덴보리는 어떤 체험을 했기에 자신이 과학자로서 평생 쌓아온 업적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새로운 삶의 길을 가게 됐을까요?

     

    스베덴보리는 1743년부터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꾸던 꿈과 너무도 다르고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어떤 꿈에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야 그 꿈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알게 됐지만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한 지 2년 쯤 지난 1745년 스베덴보리는 영국 런던을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단골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스베덴보리는 강렬한 빛줄기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체험을 합니다. 그 빛 속에서 사람 같은 인물이 서있는 것도 보였습니다. 

     

    다음날 밤 자신의 방에서 잠을 청하던 스베덴보리는 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가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전날 식당에서 경험한 것처럼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전날처럼 빛 속에서 한 신비한 인물도 보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신비한 인물이 자신을 하느님이 보낸 사자라고 밝혔다는 겁니다. 그 신비한 인물은 자신이 스베덴보리를 영적인 세계로 안내할 테니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세상 사람`

     

    그때부터 스베덴보리는 영계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스베덴보리는 어떻게 영적 세계에 갈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영적인 몸을 통해서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는 스베덴보리가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때 육신에서 분리된 스베덴보리의 영적인 몸은 천국, 지옥 등 영적 세계를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영적인 몸이 육체로부터 분리되는 현상을 '죽음의 기술'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음의 기술'은 동양에서도 전해 내려오는 얘기입니다. 한국 전통 심신수련법을 이어가고 있는 국선도에서는 고차원의 수련을 하게 되면 우리 안에 있는 '얼령'을 몸밖으로 내보내 영적인 차원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중국 도가의 그림을 보면 몸 안에 그 사람과 똑같이 생긴 또 다른 몸이 있는데 이를 국선도에서는 얼령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몸 밖으로 내보내는 것을 얼령을 띄운다고 하고, 중국 도가에서는 이를 양신출태(陽神出胎)라고 합니다. 스베덴보리가 얻게 된 능력은 아마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합니다.

     

    어쨌든 스베덴보리는 그 뒤 영적인 세계를 넘나들며 경험한 것을 기록으로 남기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몸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몸 밖에 나온 영적인 몸은 육체까지 지배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 사람들은 합리성으로 무장한 사람들입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의 '기술'이 사실임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그는 스웨덴 국왕 앞에서 이를 증명해 보였습니다.

     

    스웨덴 국왕은 스베덴보리를 불러 세상을 떠난 한 장군을 만나 그가 남긴 비밀 유서의 내용을 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 장군은 스베덴보리가 만나본 적이 없고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궁궐에서 소파에 누운 채 '죽음의 기술'을 통해 세상을 떠난 장군을 만나 그로부터 유서 내용을 듣고 돌아옵니다. 스베덴보리가 세상을 떠난 장군으로부터 들었다는 말과 국왕이 갖고 있던 비밀 유서의 내용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이밖에도 스베덴보리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스톡홀름에서 큰 화재가 난 사실을 맞췄고, 한 귀족 부인의 죽은 남편을 만나고 돌아와 그가 남긴 귀중한 문서가 든 비밀서랍의 위치를 찾아주기도 했습니다. 스베덴보리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정확하게 예언했습니다

     

    이런 일화들이 알려지면서 스베덴보리의 영적 체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그렇다면 스베덴보리가 '죽음의 기술'을 통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