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ALL : 기적

Contents List 3

  • 죽어서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신부님

    이미지 : Divine TV 채널

    신부님 한 분이 큰 교통사고를 당해 사망했습니다. 의사가 사망진단까지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신부님은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났습니다.
     

    인도 출신으로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사목활동을 하고 있는 호세 마리얀갓 신부님이 그 분입니다. 신부님은 2016년 한국을 방문해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남양성모성지에서 치유 미사를 집전하기도 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그 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놀라움 그 이상입니다. 

     

    수호천사의 안내로 하늘나라로 가서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님을 만났고 치유사역을 하라는 말씀을 듣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수호천사와 함께 천국과 지옥, 연옥도 방문했습니다.

     

    다음은 마리얀갓 신부님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려 놓은 사후세계 이야기입니다. 물론 자신의 체험이 가톨릭 교회에서 공인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혔습니다.

     

    마리얀갓 신부님은 1949년 인도 남서부 해안가에 있는 케랄라(Kerala)주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부님을 만나면 부모님이 힌두교도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독실한 카톨릭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매우 영적인 분위기의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가족과 친척을 모두 합하면 25명의 신부님과 40명의 수녀님을 배출했다고 하네요.

     

    인도에서 어떻게 그런 집안이 있을 수 있냐구요?  

     

    신부님이 자란 케랄라주에는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명인 도마 사도가 예수님이 부활하신지 20년쯤 뒤에 찾아와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라서인지 마리얀갓 신부님은 7살 때 첫 영성체를 하면서 신부가 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중등학교를 졸업하고 케랄라주의 티부발라에 있는 성마리아 소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열 네 살 때였습니다. 소신학교 4년을 마친 뒤에는 같은 지역에 있는 성 요셉 대신학교에 들어가 사제 수업을 계속했습니다.

     

    이어 7년 동안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뒤 1975년 사제 서품을 받고 티루발라 교구에서 사목을 시작했습니다. 1978년에는 배터리에 있는 성토마스 소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교구 신부로 일했습니다.

     

    당시 케랄라 교구를 맡고 있던 주교님이 그에게 오지의 공소를 맡겼습니다. 마땅히 머물 곳은 물론 교통편조차 없어 가려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마리얀갓 신부님은 하느님께 기도를 했고 그곳으로 가라는 응답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교님은 그에게 공소를 오갈 수 있도록 오토바이를 한 대 사줬습니다.

     

    그 신비하고도 놀라운 사건은 1985년 4월14일에 일어났습니다. 마리얀갓 신부님은 부활 제2주일이자 하느님 자비주일을 맞아 공소에서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흰두교 축제일이기도 했습니다. 축제 때 술을 마신 한 남자가 몰던 트럭이 신부님이 타고 가던 오토바이를 덮쳤습니다. 신부님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된 신부님을 50km 떨어진 병원으로 싣고 갔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신부님의 영혼이 육체를 벗어났습니다. 죽음을 경험한 것이지요. 신부님은 몸 밖에서 자신의 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병원으로 옮기며 울부짖고 기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영혼이 육체를 벗어남과 동시에 신부님은 수호천사를 만났습니다. 수호천사는 신부님에게 “당신을 천국에 데리고 갈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을 만나 얘기하고 싶어 하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천국에 가는 길에 지옥과 연옥을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수호천사는 신부님을 지옥에 먼저 데리고 갔습니다. 

     

    눈앞에 끔찍한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사탄과 악마들도 보였습니다. 1000도가 넘는 꺼지지 않는 불길 속에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사람들은 비명을 질러댔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싸웠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로부터 고문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지옥은 7단계로 나뉘어져 있었고 단계별로 받는 고통의 수준이 달랐습니다. 이곳에 온 영혼들은 아주 추하고 잔인한 모습이었습니다. 수호천사는 그들이 생전에 지은 죄를 뉘우치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죄를 뉘우쳤다면 지옥 대신 연옥으로 갔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지옥에서 만난 이들 가운데 신부님이 아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부님은 죄를 지었지만 생전에 뉘우치고 고통을 통해 정화되면 연옥이 아니라 곧바로 천국에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지옥에 이어 수호천사는 신부님을 연옥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연옥 역시 일곱 가지 차원으로 나뉘어 있었고 고통과 꺼지지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옥에 비하면 훨씬 고통은 훨씬 덜했고 그곳에 있는 영혼들은 서로 언쟁을 하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고통은 하느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생전에 많은 죄를 지었지만 죽기 전에 뉘우치고 하느님과 화해한 이들이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고통을 겪었지만 언젠가 하느님을 만날 것을 알기에 마음은 평화로웠습니다. 

     

    신부님은 연옥에 있는 영혼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신부님메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그들이 빨리 천국에 가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자신의 수호천사에 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수호천사는 눈부시게 빛나는 존재로 너무 아름답는 말 외에 묘사할 말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언제나 신부님 곁에서 지켜주고 도와주고 있으며 특별히 치유 사역에 많은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언제 어디서나 수호천사의 가호를 받고 있음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수호천사는 지옥과 연옥을 거쳐 신부님을 하늘로 데리고 갔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동안에 눈부시게 빛나는 흰색 터널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신부님은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보다 더한 평화와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터널을 지나니 바로 천국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곳에서는 천사들이 노래하며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계셨고, 특히 복되신 성모 마리아님과 성 요셉, 그리고 많은 주교와 성직자들이 별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아가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원한다. 너의 두 번째 삶을 통해 너는 나의 사람들을 치유하고 그들에게 평화를 주는 도구가 될 것이다. 너는 외국어를 말하며 외국을 다니게 될 것이다. 나의 은총을 너는 못할 일이 없다.” 예수님의 말씀에 이어 성모 마리아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하여라. 내가 너의 사역을 돕겠다”

     

    천국의 모습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수백만 배 더 큰 평화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하시고 계신지 말은 물론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의 얼굴은 수천 개의 태양보다 더 밝게 빛나고 아름답습니다. 주님을 그린 그림은 단지 그 분의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주님 옆에 계신 복되신 성모님도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그 분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신부님은 우리 모두가 하늘나라로 가서 하느님과 영원한 기쁨을 누리도록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신부님은 천국을 방문한 뒤에 수호천사와 함께 지구로 돌아왔습니다. 신부님의 육신은 병원에 있었는데 의사가 사망선고를 내린 상태였습니다. 사인은 출혈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멀리 있었기 때문에 병원 직원들이 시신을 안치실로 옮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병원에 에어컨이 없어서 직원들은 사체가 빨리 부패할까 걱정했습니다. 

     

    영혼이 다시 육체로 돌아왔을 때 신부님은 어마어마한 통증 때문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직원들은 깜짝 놀라서 의사에게 달려갔습니다. “선생님, 시체가 소리를 지르고 있어요? 의사가 달려와 진찰을 한 뒤 소리쳤습니다. ”신부님이 살아 있습니다. 기적이에요. 서둘러 병원으로 옮깁시다.“ 의사는 수혈을 하고 수술을 해 아래턱, 갈비뼈, 골반뼈, 손목, 오른쪽 다리 등등. 부러진 뼈를 이어 붙였습니다. 두 달 쯤 지나 퇴원을 했지만 의사는 다시 걸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님은 ”나를 되살려 세상으로 보내신 주님께서 고쳐주실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 신부님과 가족들은 모두 하느님께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올렸습니다. 한달쯤 지났지만 여전히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기도를 하던 중에 골반뼈 부근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지더니 곧바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제 다 나았으니 일어나 걸으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신부님은 바로 일어나 걸었다고 합니다. 

     

    신부님이 자신을 수술했던 의사를 찾아가 이같은 사실을 전하자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힌두교인이었던 의사는 “당신이 믿는 하느님이 진짜 하느님입니다. 당신이 믿는 하느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고 영세를 받아 가톨릭 신자가 됐습니다. 

     

    1987년 11월 신부님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미국에 선교 사제로 와서 여러 지역의 성당을 옮겨다니며 일했습니다. 

     

    신부님은 2016년 4월에 은퇴한 뒤에는 주교님의 허락을 받아 미국은 물론 세계를 다니며 치유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더 많은 사람을 섬기면서 더 많은 자유를 얻었다고 합니다. 

  • 이탈리아 신부가 한국에서 만난 기적

    경기도 성남시에서 노숙인 급식소를 운영하는 김하종 신부가 책을 냈습니다.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니케북스 펴냄)입니다.

     

    김 신부의 본명은 빈첸시로 보르도입니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사제가 된 그는 1990년 한국에 와서 김대건 신부의 성을 따 김하종이라는 이름으로 빈민과 노숙인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맡고 있는 ‘안나의집’은 노숙인 무료급식소와 노숙인 쉼터, 노숙인 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안나의 집은 “안아주고 나눠주고 의지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김 신부가 <순간의 두려움 매일의 기적>을 낸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 뒤 두 가지 기적을 체험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매일 오후 1시에 무료급식을 함께 하는 봉사자가 모이는데 한 번도 봉사자 숫자가 적어 차질을 빚은 적이 없다는 겁니다. 두 번째 기적 매일 650명의 식사 준비를 하는데 음식재료가 부족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김 신부는 그런 기적을 더욱 실감했다고 합니다. 안나의집은 성남동성당 맞은 편에서 월~토요일 오후4시부터 저녁7시까지 무료급식소를 운영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휴일 저녁이었지만 여기저기서 식당을 폐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가난한 거리의 500여 명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 폐쇄된다면, 이중 70%는 ‘안나의 집’에서 제공하는 식사가 하루의 유일한 한 끼인데, 문을 닫아버린다면…”(책 중에서)

     

    논의 끝에 도시락으로 급식을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더 많은 비용이 들고 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도시락을 제공하면서 ‘안나의 집’을 찾는 사람은 점점 늘어났습니다. 다른 무료급식소가 문을 닫아서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전파를 우려한 주민들은 김 신부와 안나의집이 무료 급식을 지속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어떤 주민은 시청에 무료 급식을 막아달라고 민원을 냈고 어떤 주민은 김 신부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구두를 벗어 집어 던지기도 했습니다. 

     

    무료 급식을 계속 하기로 한 데 대해 김 신부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분들은 제 가족입니다. 가족은 버릴 수 없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안나의집을 찾는 이들 가운데 70%가 이곳에서 먹는 한끼가 하루 식사의 전부라는 사실도 김 신부가 도시락 제공이라는 힘든 결정을 하게 한 이유입니다.  안나의집마저 문을 닫으면 그 사람들은 굶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안나의집 무료급식소에는 자원봉사자가 끊이지 않습니다. 가톨릭 수도자와 신자 뿐 아니라 교회 목사와 신자, 스님과 불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이들이 함께 봉사자로 참여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나의집의 기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 [영상] 시한부 암환자에게 찾아온 기적

  • 프란치스코, 사나운 늑대를 순한 양으로 만들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말년에 아씨시 북쪽의 구비오라는 마을에서 지냈습니다.

     

    당시 구비오에는 동물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해치는 거대한 늑대 때문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를 잡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썼지만 실패했고 도리어 늑대의 공격을 받아 희생된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사람들은 성밖을 나갈 때는 혼자 나가지 못했고 반드시 무장을 했습니다. 늑대가 성을 포위한 형국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 얘기를 듣고 늑대를 만나러 가기로 했습니다. 구비오 주민들은 늑대가 성인을 해칠까 걱정해 만류했지만 프란치스코는 그들을 안심시키고 성을 나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을 주민 몇몇이 멀찍이서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아무런 동요 없이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한참을 가니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뒤를 따르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십자 성호를 긋고 자신에게 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늑대는 천천히 프란치스코에게 다가와 엎드렸습니다.

     

    프란치스코는 늑대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했다고 합니다.

     

    “늑대 형제님, 당신은 이 도시에 너무 많은 피해를 입혔고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허락없이 하느님의 피조물을 죽였습니다.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까지 해쳤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을 미워하고 저주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늑대 형제님, 나는 형제님과 사람들 사이에 평화로운 관계를 맺고자 합니다. 형제님이 더이상 사람들을 해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당신의 과거 모든 죄를 용서할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나 개도 형제님을 더 이상 쫓지 않을 것입니다.”

     

    늑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말에 승복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숙이고 성인이 내민 손에 앞발을 올리고 맹세를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늑대를 데리고 구비오 성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성 안의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광장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과 늑대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중재를 했습니다. 이미 늑대는 사람들이 기르는 개나 마찬가지로 순한 모습으로 바뀐 상태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주민들에게는 늑대는 그동안 배가 고파서 가축을 해치고 사람들을 공격했으니 주민들은 늑대에게 정기적으로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대신 늑대는 더 이상 가축이나 사람들을 해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성안에 사는 개들에게도 늑대를 힘들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성인은 늑대는 물론이고 성안의 모든 존재를 축복해주었습니다. 

     

    그로부터 구비오 마을에서는 더 이상 늑대로 인한 문제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늑대는 성안에서 평화롭게 살다 2년 뒤에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늑대의 죽음에 크게 슬퍼했다고 합니다. 늑대가 마을을 다닐 때마다 그로부터 풍겨나오는 평화로운 기운에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자애로움이 떠올렸기 때문입니다. 

     

    저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일화가 사실이었다고 믿습니다. 비슷한 얘기가 더러 전해오기 때문입니다. 더욱 믿는 것은 성경 이사야서 11장에 적힌 평화의 나라를 묘사한 구절입니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장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암소와 곰이 나란히 풀을 뜻도, 그 새끼들이 함께 지내리라.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고 젖먹이가 독사 굴 위에서 장난하며 젖 떨어진 아이가 살무사 굴에 손을 디밀리라”

     

    이런 평화의 나라가 이 땅에 이뤄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 100만명 마음을 사로잡은 7살 소녀 춤꾼의 사연

    최근 중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바로 한 소녀의 춤 영상인데요.

     

    영상에서 소녀는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신나게 춤을 춥니다.

    그런 소녀의 익살맞으면서도 현란한 춤사위와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녀의 불편해보이는 왼쪽 다리와 발입니다. 

     

    영상의 주인공은 올해로 7살이 된 중국 산둥성에서 사는 양쥔시입니다.

    쥔시는 낭창성 지방층염이라는 면역체계 이상으로 생긴 난치성 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이 질환 때문에 두 살 때부터 쥔시의 왼쪽 다리와 발이 점차 변형되기 시작했는데, 그로부터 3년 뒤에야 겨우 쥔시의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쥔시를 치료하기 위해 쥔시의 부모님은 집을 팔기까지 했고, 지금도 타지로 나가 쥔시의 치료비를 벌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쥔시가 익살맞은 춤을 추게된 것은 작년 4월 어른들이 다같이 춤을 추는 광장무를 보면서였습니다.

    광장무를 보고 춤의 매력에 푹 빠진 쥔시는, 하루도 안 쉬고 매일 밝게 웃으며 춤을 췄고, 그것을 촬영해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이런 쥔시의 영상과 사연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 점차 퍼지게 되었고, 어느덧 쥔시는 구독자 1백만 명의 인터넷 스타가 됐습니다. 

     

    쥔시는 "춤을 추면 다리를 단련할 수 있고, 다리가 더는 위축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웃으며 춤을 춥니다.

    그런 쥔시의 장래희망은 "돈을 많이 벌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중국의 네티즌들 또한 "꿈이 있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라며 그녀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 ‘1000 고아의 어머니’ 신두타이 삽칼

    인도 푸네에 살고 있는 신두타이 삽칼은 ‘1천 고아들의 어머니’로 불리며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그는 1968년부터 지금까지 1500명의 고아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구걸도 마다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인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가정을 꾸리면서 그에게는 282명의 사위와 49명의 며느리가 생겼습니다.

     

    교수,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보육원을 지어 운영하며 ‘어머니’의 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삽칼은 1948년 인도의 가난한 마을인 마하라슈트라주의 작은 마을 핌프리 메게에서 태어났습니다. 찢어진 옷이라는 뜻의 친디가 그에게 주어진 이름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가난한 목동이었지만 딸을 학교에 보내길 원했습니다. 아내가 반대하자 그는 함께 소를 돌보겠다며 데리고 나가 몰래 학교에 보냈습니다. 삽칼은 필기용 석판을 살 돈이 없어서 나뭇잎에 글자를 적어가며 공부했습니다. 하지만 집안 사정으로 공부는 초등학교 4학년을 끝으로 그만둬야 했습니다.

     

    대신 삽칼은 인도 풍습에 따라 열 살 때 서른 살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19세에 이미 아들 셋을 뒀고 또 임신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삽칼이 사는 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숲속에서 소똥을 모아 지주에게 연료로 팔고 있었는데 그가 여성들에게 돈을 제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난폭한 지주가 무서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지요.

     

    삽칼은 지주가 자신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앞장서서 이 일을 문제 삼았고 지방 관청을 움직여 마을 여성들이 소똥 판매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상대로 지주는 복수를 위해 남편을 찾아가 거짓말을 합니다. 삽칼이 많은 남자들과 관계를 맺었고 자신도 그랬다는 겁니다. 뱃속의 아기도 누구 아이인지 모른다는 말도 했습니다. 삽칼을 죽이지 않으면 남편을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고요.

     

    남편은 그 말을 믿고 집으로 돌아와 임신 9개월째인 삽칼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쓰러져 바닥에 쓰러지자 발로 배를 걷어찼지요.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짐짝처럼 끌고 가 소 우리게 던져뒀습니다. 소에 밟혀 죽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에 있던 소 한 마리가 삽칼을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소의 접근을 막았을 뿐 아니라 그가 죽었는지 살펴보러 온 사람들까지 쫓아냈습니다.

     

    삽칼은 외양간에서 딸 맘타를 낳고 돌멩이로 탯줄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켜준 소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자신이 가장 절박할 때 도움을 받았으니 자신도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삽칼은 핏덩이를 안고 친정으로 갔지만 어머니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먹고 살 방법이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기찻길 옆이나 길에서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해야 했습니다. 힌두 사원을 찾아 먹을 것을 얻기도 했습니다. 잠은 근처 공동묘지에서 잤고요. 한때는 너무 힘이 들어서 딸을 안고 기차선로 위에 지나가는 기차에 치여 죽으려고도 했습니다.

     

    길에서 걸식을 하면서 삽칼은 부모에게서 버려져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많이 많이 만났습니다. 자신의 먹을 것을 그 아이들에게 나눠 주면서 간신히 연명해갔습니다.

     

    그러던 중 삽칼의 삶에 큰 전환점을 주는 일이 생깁니다. 어느 날 한 거지가 그를 찾아와 물 한 모금만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는 곧 죽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온몸이 열로 펄펄 끓었고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습니다. 삽칼은 물은 물론 자신이 갖고 있던 음식까지 모두 그 사람에게 줬습니다. 곧 죽을 것 같던 그 사람이 기적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바로 그 순간 신두타이는 자신이 평생 가난한 이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 자신의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거리에서 만난 버려진 아이들을 품어서 키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구걸을 했고 그렇게 얻은 돈과 음식으로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의 수가 빠르게 늘자 그는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만으로는 아이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기부를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푸네 마하라슈트라 등 4곳에 보육원을 지어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삽칼이 운영하는 보육원은 여느 보육원과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보육원은 18세가 되면 아이들을 독립시키지만 그는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얻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지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삽칼을 어머니라는 뜻의 ‘마이’라고 부릅니다. 테레사 수녀 앞에 마더라는 말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랑으로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그는 누구도 비난하지 않고 어떤 부정적인 말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삽칼의 사랑 속에서 아이들은 구김살 없이 자라 어엿한 성인으로 인도 사회의 구성원이 됐습니다.

     

    삽칼은 남편이었던 슈리하리 삽칼이 70살에 용서를 구하러 찾아왔을 때 그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가난 때문에 굶주리던 그를 보호소에서 살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단 하나의 조건은 이제 그가 자신의 가장 큰 아들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삽칼은 방문객들에게 그를 “가장 큰 아이”로 소개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이 남편을 용서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헌신으로 신두타이는 지난 40년 동안 마더 테레사 상, 아마디야 무슬림 평화상 등 750여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그가 받은 상금은 모두 고아들을 위한 시설을 짓고 교육하는 데 쓰였습니다.

     

    신두타이 삽칼의 감동적인 삶은 2010년 영화 ‘미 신두타이 삽칼’로 만들어져 런던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습니다.

     

    삽칼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도움을 준 아이들은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 것”이라며 “그것이 내 삶에서 이뤄낸 가장 귀한 성과”라고 말했습니다.

  • 마음을 바꿔 먹었더니 암이 사라졌다

    오늘은 기적적인 체험을 한 분의 얘기를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저와 가까운 한의사 선생님의 어머님 얘기입니다. 20년도 지난 일이지요,

     

    그 분의 연세가 여든인가 여든하나였을 때입니다. 어느날 가슴에 멍울 같은게 만져졌다고 합니다.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렇듯이 그 분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멍울이 커지고 만저지는 멍울의 수가 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기운이 없어 거동이 힘드실 정도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제서야 병원을 찾으신거죠.

     

    병원에 갔더니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유방암 말기라는 것입니다. 의사 선생님은 길어야 3개월 정도 사실 수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어머님은 물론 가족들도 깜짝 놀랐지요. 병원에서는 더 해볼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가족들은 아드님인 한의사 선생님에게 뭐라도 해보라고 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편견이 없는 분이었습니다, 한의학은 물론 서양의학의 장점에도 이해가 많으셨죠. 무엇보다 그 분은 마음이 지닌 치유의 힘을 믿는 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외과의학적 처치가 불가능하다는 게 객관적 현실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 두 가지 처방을 했습니다. 어머님은 독실한 크리스챤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은 그런 점까지 고려해 처방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기도이고, 하나는 생각의 전환이었습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어머님에게 매일 기도를 하시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이 보시기에 아드님이 알려주는 기도법은 조금 이상했습니다. 아랫배에 십자가를 떠올리며 고요히 묵상을 하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랫배라고 표현했지만 사실 그곳은 한의학에서 에너지 저장고로 여기는 하단전이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마음이 가는 곳에 에너지가 모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처방은 마음을 하단전에 둠으로써 에너지 창고를 채우는 방법이었던 겁니다.

     

    그냥 아랫배를 바라보면 생각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어머님에게 익숙한 대상인 십자가를 떠올리시라고 했습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십자가를 말이지요.

     

    다행히 어머님은 아드님을 무척 신뢰하셨다고 합니다. 틈날 때마다 열심히 아랫배에 십자가를 떠올리는 기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두 번째 처방은 생각의 전환입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하루 날을 잡아 어머님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두 손을 꼭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제 말을 잘 들으세요. 어머니는 3개월 뒤면 하늘나라에 가셔서 예수님을 만나시게 됩니다. 평생 예수님을 존경하고 따르고 뵙고 싶어하셨잖아요. 이제 그 소원이 이뤄지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통 사람 같으면 3개월 뒤에 죽는다는 생각에 두려워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어머님은 믿음이 훌륭하셨던 것 같습니다. 아드님의 얘기를 듣고는 두려움 대신 기쁜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한의사 선생님은 이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 말씀처럼 살다가 가시면 예수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이웃은 물론 세상 만물에 사랑을 전해보세요. 그저 어머님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축복이 만나는 모든 존재에게 전해진다고 생각만 하시면 됩니다. “

     

    어머님은 이 말을 듣고 더 기뻐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지요

     

    그때부터 어머님 삶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만나는 사람 모두를 친절하게 대하고 좋은 말을 건네고 그들이 건강하고 행복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옷, 그릇, 음식 등 생활용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고 그 모든 것들에게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빌었다고 합니다.

     

    살면서 도움을 줬던 이들에게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혹 당신 때문에 상처를 입었을지 모르는 분들에게는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어머님의 건강이 좋아졌습니다. 가슴에 만져지던 멍울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느날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암세포가 다 사라졌습니다.

     

    의사와 가족들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어떤 이유로 어머님 몸에서 자라던 암세포가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의사 선생님은 어머님께서 사랑으로 만물을 대하는 마음을 먹자 치유력이 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분은 10여 년을 건강하게 살다가 당신이 그리던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 열흘 굶다 빵훔친 ‘청년 장발장’에 찾아온 기적

    지난 해 10월 생활고에 시달리다 빵을 훔친 '광주 장발장' A씨가 포스코휴먼스에 취업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이미지 : 연합뉴스 유튜브]

    지난해 10월 배가 고파 마트에서 빵을 훔친 ‘광주 장발장’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었습니다.

     

    지난 10일 주인공인 A씨가 광주 북부경찰서를 찾아왔습니다. 두 손에는 비타민 음료 두 박스가 들려 있었습니다. 처벌 대신 자립을 도와준 경찰관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지금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자회사 포스코휴먼스의 정직원입니다.

     

    7개월 전만 해도 절도 피의자로 조사를 받은 그 청년에게 그동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지난해 막노동을 하다 허리를 다쳐 지체 장애 6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일을 구하지 못해 돈이 떨어졌고 열흘 동안 굶다 배고픔을 참지 못해 빵을 훔친 겁니다.

     

    범행 당시 그가 마트에서 들고 나온 것은 빵 20여 개, 냉동 피자 2판, 짜장 컵라면 5개 등 모두 먹을 것뿐이었습니다.

     

    사연을 들은 마트 주인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경찰도 딱한 사정을 듣고 선처를 했습니다.

     

    경찰은 그를 병원에 입원부터 시켰습니다.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고 우울증마저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A씨가 머물 거처와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사연을 전해 들은 포스코휴먼스가 취업 기회를 주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습니다.

     

    포스코휴먼스는 포스코가 장애인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만든 국내 1호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입니다. 포스코 등에서 나오는 근로자 작업복 등을 가져다 세탁한 뒤 배달하는 일을 합니다.

     

    A씨의 범행 기록을 작성했던 광주 북부경찰서 형사들은 이번에는 그의 입사지원서 작성을 도왔습니다. 면접 때 자신감 있게 보이라는 조언도 했고요.

     

    A씨는 지난해 11월 1일 최종 합격 통보를 받았고 석 달 뒤에 정직원이 됐습니다. 이 회사는 초봉 3천만 원에 60세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좋은 직장입니다.

     

    그는 자신을 선처한 마트에도 찾아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마트 주인의 따듯한 마음이 한 사람의 삶을 바꾼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 ‘빌 게이츠 가짜 편지’가 주는 통찰

    인터넷에는 가짜뉴스가 많습니다. 대부분 악의적 의도를 가진 것들입니다. 아주 가끔은 좋은 가짜뉴스도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빌 게이츠가 썼다는 글처럼 말이지요.

     

    빌 게이츠가 3월23일 오픈레터(Open letter)에 올린 글로 알려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라는 제목의 글은 가짜였습니다. 빌 게이츠가 쓴 글이 아니었습니다.

     

    <시카고선타임즈>는 빌 게이츠와 무관한 글임에도 놀라운 통찰이 담겨 있기 때문에 소개한다고 적었습니다. 글을 쓴 이의 의도는 ‘빌 게이츠’라는 큰 ‘문’을 통해 인류에게 코로나19를 계기로 멈춰 서서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피스우즈도 같은 이유로 그 글을 소개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

     

    저는 우리가 선한 것으로 여기든 악한 것으로 여기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이면에는 영적인 뜻이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코로나19와 관련해 명상을 하면서 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말로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1) 코로나19는 문화, 종교, 직업, 재정 상태, 유명세 등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이 평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가 마땅히 그래야 하듯이 우리 모두를 평등하게 대합니다. 제 말이 믿기지 않으면 확진자인 톰 행크스에게  물어보십시오.

     

    2) 코로나19는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바이러스는 여권조차 필요 없기 때문에 우리가 그어 놓은 국경선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단기간 억압함으로써 자신의 전생을 억압 속에 낭비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해줍니다. 스스로 건강을 돌보지 않으면 병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4) 코로나19는 인생이 너무 짧으며 그 짧은 기간 동안 우리가 해야 할 보다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서로를 특히 노인이나 병자를 돕는 것 말입니다. 화장지를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5) 코로나19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물질 위주로 돌아가는 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작 어려운 시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식료품, 물, 약 등과 같은 본질적인 것이지 별로 필요하지도 않으면서 가치를 부여하는 사치품들이 아님을 알려줍니다.

     

    6) 코로나19는 우리에게 가족과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우리가 이를 얼마나 무시해왔는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코로나19는 우리를 집으로 돌려보내 그곳을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집’으로 만들고 가족의 유대를 강화하도록 해줍니다.

     

    7) 코로나19는 우리가 진짜 해야 하는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점을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진짜 해야 하는 일은 서로를 돌보고 보호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8) 코로나19는 우리의 에고를 계속 점검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기거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큰 존재라고 여기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의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춰 서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 코로나19는 우리가 자유 의지를 갖고 있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서로 돕고 나누고 베풀고 지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는 이기적이고 사재기를 하며 자신만을 돌보는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사람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본색이 드러납니다.

     

    10) 코로나19는 우리가 인내심을 갖고 참고 견딜 수도 있지만 패닉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같은 상황이 인류 역사상 여러 차례 발생했으며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패닉 상태에 빠져 이를 지구의 종말로 보고 우리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일이 발생하는 데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11) 코로나19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 끝이 될 수 있지만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성찰과 이해를 통해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배우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우리가 필요한 것을 배울 때까지 반복되는 수업의 시작되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12) 코로나19는 지구가 병들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화장지가 슈퍼마켓 진열대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삼림황폐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말입니다. 우리의 집, 지구가 병들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픈 것입니다.

     

    13) 코로나19는 이 모든 어려움이 지나간 뒤에 평온이 찾아온다고 알려줍니다. 삶에는 주기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시기는 인생이라는 위대한 주기 안에 있는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패닉 상태에 빠질 이유가 없습니다. 이 또한 곧 지나갈 것입니다.

     

    14) 많은 분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큰 재난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위대한 교정자’로 봅니다.

     

    코로나19는 우리가 살면서 잊어버린 중요한 교훈들을 일깨워주기 위해 주어진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교훈들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 보문동 주민들이 만든 기적의 마스크

    서울 성북구 보문동 주민 400여 명이 보문동 모든 주민에게 1개씩 나눠줄 수 있는 수제 면 마스크 1만 6천 장을 만들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 : 성북구청]

    서울 성북구 보문동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따뜻한 동네가 됐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스크를 만들면서 더욱 정이 도탑게 됐기 때문입니다.

     

    보문동 주민 400여 명은 3월 21일부터 13일 동안 성북구패션봉제지원센터에서 한 조에 25명씩 조를 짜 3교대로 밤낮없이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월 2일 마침내 모든 주민에게 1개씩 나눠줄 수 있는 수제 면 마스크 1만 6천 장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목표했던 마스크 제작이 끝나자 재봉틀에 앉아 있던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창가로 다가 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보문동의 천 마스크 셀프 보급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도움 없이 오롯이 주민들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좁은 골목길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봉제업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입을 모습니다. 보문동에 자리한 20여 개 봉제업체들이 마스크 원단을 대고 주민들의 작업을 도왔습니다.

     

    보문동 주민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보문동 새마을금고 회원들 가운데 일부가 마스크 구매를 위해 약국에서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기가 민망하다며 마스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냈습니다.

     

    이 제안이 알려지자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400여 명의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했습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성북구패션봉제지원센터를 찾아 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보문동 주민들이 만든 수제 마스크 1만 6천 개는 총선 다음 날인 16일부터 주민들에게 배포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