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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획기적인 치매 완화법 ‘기억의 방’

    독일 드레스덴의 알렉사 양로원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방법을 사용해 치매노인들을 치료하고 있다. [이미지 : 슈피겔TV 유튜브 캡처]

    과거의 기억이 치매 치료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일 드레스덴 지역의 알렉사 양로원에서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방법을 써서 알츠하이머성 치매 노인들을 치료해 효과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단기 기억과 달리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기억은 쉽게 잊어버리지 않으며 관련 기억을 소환하는 자극을 주면 곧바로 복원된다는 겁니다.

     

    알렉사 요양원은 이를 위해 ‘기억의 방’이라는 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방에는 옛 동독의 대표적 상품인 흰 도자가 그릇과 마트료시카 인형 등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에게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1960~70년대의 소품들로 꾸며져 있습니다.

     

    ‘기억의 방’은 알레스 요양원 원장인 군터 볼프람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볼프람 원장은 2014년 치매노인들의 인지능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다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선 실내 장식용으로 1960년대 동독에서 사람들이 많이 타고 다니던 모터스쿠터를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구입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스쿠터의 세세한 내용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었고 친구들과 함께 스쿠터를 타고 놀러 다녔던 얘기를 하는 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어떤 노인은 스쿠터의 점화 장치를 작동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볼프람 원장은 가능성을 확인하자 잡지, 헤어드라이어, 세제, 안락의자, 화로, 라디오 등 1960년대 동독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다양한 소품들을 찾아 ‘기억의 방’을 꾸몄습니다.

     

    ‘기억의 방’을 드나드는 치매 노인들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식사량이 늘었고 말 수가 늘었으며 어떤 환자는 스스로 화장실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성과가 확인되자 볼프람 원장은 1970년대의 추억을 소환하는 두 번째 ‘기억의 방’을 만들었고 지금은 1980년대를 복원한 것까지 ‘추억의 방’이 모두 3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영화관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곳의 치매 노인들은 하루에 몇 시간씩 ‘기억의 방’에서 머물며 ‘치료’를 받습니다. 환자들은 옛 동독 시절 자신이 살던 과거로 돌아가 좋아하는 물건을 고르고 사기도 합니다.

     

    볼프람 원장은 미국 라디오방송 NPR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런 의욕 없이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들이 갑자기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아버지를 살리려 뚱보가 되기로 한 소년

    루 지콴(11)이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골수이식을 해주기 위해 13kg 이상 살을 찌워 화제가 되고 있다. [이미지 : 차이나 데일리]

    11살 소년이 아버지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살찌우기에 나섰습니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허난성 신샹시에 사는 루 지콴은 30kg이던 몸무게를 2달 남짓한 기간 동안에 무려 13kg을 늘렸습니다. 하지만 아직 목표인 50kg까지는 아직 7kg이 남아 있습니다.

     

    루 지콴이 몸무게를 늘리는 이유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에게 골수이식을 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아버지 루 야닝은 7년 전쯤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지난해 8월 몸 상태가 나빠져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수혈이 필요하다면서 장기적으로는 골수이식 외에 방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가족 가운데 아들 루 지콴의 골수가 그와 일치했습니다. 하지만 의사는 골수 기증을 위해서는 기증자의 체중이 최소 45kg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식수술이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 얘기를 듣고 루 지콴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살을 찌우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때부터 루 지콴의 식사는 고기와 밥 위주의 기름진 식단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끼를 억지로 먹었습니다.

     

    하지만 식비가 늘면서 가뜩이나 넉넉지 않았던 살림살이가 어 어려워졌습니다. 어머니가 식료품점에서 일해 버는 돈은 남편의 병원비에도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루 지콴은 팔다 남아 싸게 파는 고기를 사다 먹어야 했습니다.

     

    루 지콴이 살이 찌자 같은 학교 친구들이 뚱보라고 놀리기 시작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중국 언론에 뚱보라고 불렸던 것에 대해 “아버지를 구하는 게 우선입니다. 살은 나중에 빼면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친구들은 사연을 듣고는 놀리는 것을 중단했고 학교에서는 루 지콴 가족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연을 전해 들은 몇 사람이 이를 소셜 미디어에 올렸고 많은 이들이 루 지콴의 사연을 공유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저렇게 큰 책임감을 가졌다니” “너무 훌륭하다"라는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루 지콴의 가족을 위한 모금 운동도 시작됐습니다.

     

    “힘들지만 계속 먹을 겁니다. 아버지가 없는 가족은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 베네딕토 성인 (4) - 위대한 가르침

    베네딕토 성인은 살아생전 많은 수도원을 만들고 수도자들을 가르쳤습니다. 성인을 수도원에서 사는 이들을 위해 규칙서를 만들었습니다.

     

    <성 베네딕토 규칙서>에는 수도원의 운영과 수도자들이 마음을 닦아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아주 세밀한 규칙과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물론 가톨릭의 가르침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일반인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내용이 많습니다.

     

    규칙서 맨 첫 부분에 성인은 참 수도자와 가짜 수도자를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이를 통해 수도자는 누구나 자신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인은 수도자의 종류를 4부류로 나눴습니다.

     

    첫째는 수도원 안에서 사는 회수도자(會修道者)들입니다. 수도원에서 아빠스의 지도 아래 규칙을 엄격히 지키며 자신을 닦아 나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둘째는 독수도자(獨修道者) 또는 은세수도자(隱世修道者)입니다. 이들은 수도원 안에서 오랫동안 훈련을 받아 혼자서도 악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인은 나머지 두 부류의 수도자들을 강력히 비판하며 경계했습니다.

     

    성인은 셋째 부류의 수도자로 꼽은 이들은 사라바이따라고 불렀습니다. 극히 나쁜 자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세속의 욕망을 따르면서도 삭발로써 하느님을 속인다고 합니다. 성직자의 행색을 갖추고 있지만 돈, 권력, 명예 등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라는 뜻이지요.

     

    성인은 넷째 부류의 수도자들을 기로바꾸스(떠돌이 수도승)라고 부르며 이들은 사라바이따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성인은 이들이 일생 동안 여러 지방을 떠돌고 여러 수도원에서 나그네로 지내며 자기의 뜻과 탐식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성인은 규칙서에 하느님의 뜻대로 살기 위한 다양한 가르침을 담아뒀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가르침이 뼈대입니다.

     

    성인은 착한 일을 하는 도구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일 먼저 앞세웠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라. 그다음으로 이웃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을 수행으로 삼아 마음을 닦을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가르침도 제시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라.

    아무도 미워하지 말라.

     

    원한을 오래 품어두지 말라.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라.

     

    정의를 위하여 박해를 참아 받아라.

    불의 한 일을 당해도 참아라.

     

    나이 든 이들을 공경하라

    어린 이들을 사랑하라.

     

    다툰 사람이 있다면 해가 지기 전에 화해하라.

  • 베네딕토 성인 (3) - 독살 위기를 면하게 한 기적

    베네딕토 성인은 독수자로 사는 것이 소망이었지만 그의 가르침을 받고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성인이 머물던 지역에 있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찾아와 전임 수도원장이 선종했다며 후임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성인은 거절했지만 수도자들이 거듭거듭 요청하자 마침내 그 자리를 수락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장이 되어 흐트러진 규율을 다시 세우고 올바른 수도자로서의 삶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유분방한 삶에 물들어버린 그들은 성인의 엄격한 규율에 불만을 갖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자신들이 모셔온 수도원장을 쫓아내기가 어렵자 이들은 성인을 독살하기 위해 포도주에 독을 탔습니다. 성인이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축복 기도를 하기 위해 성호를 긋자 그 잔이 그 자리에서 깨져 버렸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상황을 짐작하고 미련 없이 수도원을 떠나 수비아코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성인은 자신을 죽이려 한 이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마음 아파했습니다. 성인은 수도원을 떠나기에 앞서 하느님께 그들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주시기를 청했습니다.

     

    성인이 수도원을 떠날 때 그를 따르던 수도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성인과 수도자들은 수비아코 근처에 작은 수도원들을 만들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도 성인은 수많은 기적을 행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한 본당 사제가 성인을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성인이 이끄는 수도자 공동체를 파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빵에 독을 넣어 성인에게 바쳤습니다. 평소 성인은 빵을 먹을 때 까마귀에게 부스러기를 던져주곤 했는데 그날 성인이 빵을 먹으려 하자 까마귀가 나타나 빵을 물어다 버렸습니다.

     

    그 사제는 성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이 쉽지 않자 생각을 바꿔 성인을 따르던 수도자들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심지어 아리따운 여성들을 수도원에 보내 수도자들을 유혹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그를 따르던 수도자들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가꿔온 수도 공동체를 미련 없이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수도원별로 책임을 나눠 맡긴 베네딕토 성인이 그곳을 떠나던 날이었습니다. 성인을 괴롭히던 사제는 자신의 처소 발코니에서 성인이 떠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갑자기 그가 서 있던 발코니가 무너져 그 사제는 돌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수도자가 기뻐하며 성인에게 이를 알렸지만 성인은 그의 마음 또한 세상을 떠난 사제와 별반 다름없음을 한탄하며 그를 엄히 꾸짖고 속죄하도록 했습니다.

  • 베네딕토 성인(2) - 3년 동안의 동굴 ‘면벽’

    베네딕토 성인은 유모와 함께 살던 엔피데(지금의 아필레)를 떠나 수비아코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성인은 좁고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 바위산 꼭대기에 있는 동굴에서 3년 동안을 지냈는데 그 시절 로마노 수사라는 분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성인이 수비아코로 가기 위해 산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는 곳이었는데 그곳에서 성인은 로마노 수사와 우연히 마주치게 됩니다.

     

    근처의 수도원에서 생활하고 있던 로마노 수사는 성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어디로 가는지를 물은 뒤 은수자 수도복 한 벌을 주고 정기적으로 먹을 것을 가져다줬습니다.

     

    성인이 머무는 곳은 가파른 낭떠러지에 있는 동굴이어서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로마노 수사는 방울을 매단 줄을 달아 놓고 빵을 가져다 묶은 뒤 줄을 흔들어 방울소리를 듣고 성인이 줄을 끌어올려 빵을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어려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는 3년 동안 성인을 성심성의껏 뒷바라지했습니다.

     

    성인의 동굴 생활에 대해 전해지는 얘기는 없습니다. 하지만 베네딕토 성인은 동굴 속에서 하느님과 대면하며 지내는 삶이 무엇보다 행복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부활절을 앞둔 어느 날 수비아코 근처에 사는 한 신부의 꿈에 하느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수비아코의 낭떠러지에 있는 큰 동굴에 나의 종이 굶주리고 있으니 좋은 음식을 가져다 주어라”

     

    신부는 곧바로 부활절 대축일을 위해 준비한 음식을 싸 들고 낭떠러지를 향했고 동굴을 찾았습니다. 그 안에는 베네딕토 성인이 기진맥진해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베네딕토 성인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나왔고 많은 이들이 성인의 말씀을 듣기 위해 동굴을 찾았습니다.

  • 선한 마음과 200톤의 순무가 낳은 기적

    선한 마음이 기적을 낳았습니다.

     

    중국 베이징청년보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에 사는 탕 샤오룽씨는 혈우병으로 입원 중인 두 살배기 아들에게 먹을 것을 사러 가다 지갑을 하나 주웠습니다.

     

    지갑 안에는 2만 위안(약 336만 원)의 현금과 은행 카드, 운전면허증 그리고 명함이 들어 있었습니다.

     

    탕씨는 처음에 지갑을 주운 것이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아이의 수술비 마련을 위해 많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탕씨의 아들은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데 수술비만 40만 위안(6739만 원)이 필요했습니다. 친척들로부터 빌린 12만 위안을 포함해 20만 원을 냈지만 아직도 20만 위안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생각을 바꿔 먹었습니다. 병원 주변에서 발견한 지갑 안의 돈이 자신처럼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치료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탕씨는 지갑에 든 명함을 보고 채소상인 딩 이롱씨를 찾아가 지갑을 돌려줬습니다. 딩씨가 보답을 하고자 했지만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줬을 뿐인데 그만한 일로 대가를 받을 수는 없다고 거절하고 SNS를 통해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나중에 딩씨는 SNS를 통해 탕씨가 아이의 골수이식 수술을 위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딩씨는 그를 돕고 싶었지만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어서 현금이 거의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창고에 쌓여 있는 200톤의 순무를 기부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딩씨는 “우리 두 사람이 순무를 함께 팔면 탕씨 아들을 위한 수술비를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고 언론에 말했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가 산둥 지역 언론에 알려지자 사흘 만에 순무가 모두 팔려나갔고 50만 위안이 생겼습니다. 골수이식 수술비와 친척으로부터 빌린 돈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골수이식 수술은 한 달 안에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IMAGE|387|center|탕 샤오룽과 혈우병으로 입원 중인 그의 두 살배기 아들. [이미지 : Handout] ]]

  • 베네딕토 성인 (1) - 첫번째 기적

    얼굴 없는 성인으로 알려진 베네딕토 성인은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입니다. 유럽의 수호성인이기도 하지요.

     

    베네딕토 성인은 로마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20살 전후에 모든 것을 버리고 은수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평생 독수가로 살고자 했지만 다른 수도자들의 거듭된 요청으로 그들을 이끌며 이탈리아 수비아코에 12개의 수도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말년에 이탈리아 남부 몬테카시노 산에 세운 몬테카시노 대수도원은 서방 수도원의 발상지가 됐고 베네딕토 수도회의 총본부로 쓰이고 있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즈음 이탈리아 움브리아주 누르시아에서 로마인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젊어서 문학에 심취한 그는 방탕한 삶을 사는 친구들을 보면서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고민하다 귀족 신분을 포함해 남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로마를 떠나게 됩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처음부터 은수자의 삶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저 퇴폐한 로마를 떠나고 싶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시골로 갔을 때 곁에는 자신을 키워준 유모가 함께 갔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처음 정착한 곳은 성 베드로 성당이 있던 작은 시골마을이었습니다.

     

    시골 마을 사람들은 지체가 높은 그를 경계하고 어려워했습니다. 그럴수록 베네딕토 성인은 지극히 겸손한 자세로 모든 이들을 친절히 대했다고 합니다. 그즈음 베네딕토 성인이 첫 번째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느 날 베네딕토 성인을 돌보던 유모가 밀을 빻아 거르기 위해 이웃집에서 빌려온 채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습니다. 유모는 남의 집에서 쓰던 채를 망가뜨린 것이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서 부유하게 살던 때를 떠올리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은 유모가 우는 것을 보고 흩어진 조각을 모아 놓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났을 때 채는 원래 모양대로 돌아가 있었다고 합니다.

  • 예비 신부를 울린 기적 같은 선물

    올해 8월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엠마(38)는 3월 초, 돌아가신 어머니가 미리 주문한 신부용 구두를 받았다. [이미지 : Lace and Love 페이스북]

    결혼식을 앞둔 예비신부가 자신 앞으로 배달된 선물을 받고 눈물을 쏟았습니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올해 8월에 약혼자 리처드와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 엠마(38)는 3월 초 자신 앞으로 배달된 신부용 구두를 받았습니다. 

     

    알고 보니 2017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딸을 위해 미리 주문해둔 것이었습니다. 

     

    엠마는 구두들 살피다가 밑창에 쓰인 메시지를 발견하고 왈칵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구두에 쓰인 글은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남긴 축하 편지였기 때문입니다. 

     

    “네 결혼식에 선물을 주고 싶었단다. 결혼식에 신을 구두는 내가 주는 선물이야. 마법 같은 하루가 되길 바란다. 가없는 사랑을 담아 너를 안아 주고 싶다. 엄마로부터” 

     

    포장을 뜯고 구두 한 짝을 집어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구두 밑창에 쓰인 글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쪽에 쓰인 글에서 어머니가 남긴 편지임을 알고는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엠마는 “우느라 숨도 제대로 쉴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라고 BBC에 말했습니다. 

     

    [[IMAGE|373|center|엠마(38)가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받은 신부용 구두 밑창에는 그의 어머니가 남긴 편지가 적혀 있었다.  [이미지 : Lace and Love 페이스북] ]]

     

    엠마의 어머니는 말기 암 진단을 받고 1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가족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구두를 만든 아만다 바이제는 “처음 주문을 받고 난 뒤 어머니가 연락을 해서 자신이 암에 걸려 딸의 결혼식에 가지 못할 것 같다며 메시지를 구두에 새겨달라고 요청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엠마의 구두는 내가 만든 것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구두”라면서 “엠마가 이를 통해 위로를 받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엠마는 2016년 약혼을 했는데 같은 해에 어머니는 폐암 진단을 받았고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 아버지를 돕고 싶은 아들의 트윗이 낳은 기적

    아버지를 돕고 싶은 아들의 간절한 마음이 기적 같은 일을 만들었습니다.

     

    지난 10일 빌리 바이(Billy By)라는 트위터 계정에 짧은 글과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아버지가 도넛 가게를 내셨는데 손님이 아무도 없어 슬퍼하고 계십니다”

     

    트윗에는 텅 빈 도넛 가게와 한 남자가 혼자 서 있는 사진과 텅 빈 주차장 등 몇 장의 사진이 함께 올라와 있었습니다. 물론 가게의 주소지도 나와 있었고요.

     

     

    트위터에 올라온 도넛 가게는 텍사스 휴스턴에서 남서쪽으로 32km 떨어진 미주리시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6만 7천 명이 사는 작은 도시입니다.

     

    빌리의 도넛 가게는 3월 7일 오픈했습니다. 오픈 뒤 처음 맞은 토요일에도 그 가게는 찾는 손님이 없었습니다. 아들이 올린 사진은 주말인 토요일에 찍은 것입니다.

     

    하지만 아빠가 슬퍼하고 있다는 짧은 트윗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은 빛의 속도로 퍼져 나갔습니다.

     

    아들이 올린 트윗은 이틀 만에 25만 6천 번 리트윗 됐고 54만 6천 명이 좋아요를 눌렀습니다.

     

    심지어 트위터의 공식 계정도 글을 올렸습니다. “우리는 내일 아침에 그 가게로 갈 겁니다.”

     

    인스타그램 계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팔로어 수가 71명에 불과한 빌리 도넛 가게의 계정의 팔로어는 월요일까지 5만 5천 명으로 폭증했습니다.

     

    일요일인 11일부터 도넛 가게에 손님들이 몰려들었습니다. 트위터를 보고 찾아온 동네 사람들이었지요. 한 방송에서는 그 가게가 손님들로 미어터졌다고 합니다. 오후가 되자 도넛과 초콜릿이 모두 팔렸습니다.

     

    바이는 다시 트윗을 올렸습니다. “가게를 찾아 동네 가게를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가게는 우리 가족에게 정말 중요한 곳입니다.”

  • 시한부 암환자에 찾아온 기적

    어느 스님이 법문에서 말씀하신 이야기입니다.

     

    한 티베트 사람이 몸이 불편해서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게다가 3개월을 넘기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조금이라도 더 살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고 몸에 좋다는 온갖 것을 해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에 분노하고 죽음에 두려워 떨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분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굳이 애쓰지 않고 차분히 죽음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곡식가루를 준비해 하루에 한번씩 공동묘지를 찾아가서 물에 타서 먹었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묘지에 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자신은 어차피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니 암에 걸린 다른 사람들의 질병을 모두 자신이 안고 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이 점점 좋아지는 듯했습니다. 병원을 찾아 검사를 했더니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