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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철 100주년기념교회 목사의 아름다운 ‘버림’

    이재철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 기념교회 목사의 퇴임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이 목사는 지난달 11월 17일 주일예배를 끝으로 경남 거창군 시골마을로 낙향했습니다. 2005년 7월 100주년기념교회 초대 담임목사를 맡아 13년 4개월 동안 사역했는데 정년을 7개월 앞두고 조기 퇴임 한 것입니다. 

     

    이 목사는 퇴임식, 이취임식, 감사예배 등 일체의 행사를 열지 않았습니다. 그날 1~4부 예배에서 4차례 설교한 뒤 짐을 정리해 아내와 함께 표표히 교회를 떠났습니다.  

     

    이 목사는 교회로부터 퇴직금 한 푼 받지 않았습니다. 남은 삶은 국민연금으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마지막 설교는 울림이 컸습니다. 이 목사는 버림을 강조했습니다.  

     

    “버리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소욕을 거침없이 버려야 깊은 영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을 거침없이 버려야 새로운 내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낡은 부대를 거침없이 버려야 새 포도주를 담그고, 새 부대를 지닐 수 있습니다.” 

     

    그 자신부터 버림을 실천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유익을 취하기 위해 100주년기념교회 담임이 된 게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따른 마르튀스(증인)와 휘페르테스(종)의 소임을 다한 뒤에 100주년기념교회를 떠나기 위해 담임이 됐고,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신도들에게 오랫동안 이끌어온 목사인 자신도 당연히 버림의 대상임을 일깨웠습니다. 자신의 버림은 신도들의 버림으로 완성된다고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얻기 원하신다면 교우님들은 이제부터 이재철을 버리셔야 합니다. 이재철을 버리시되 적당히가 아니라 철저하게 버리셔야 합니다. 이재철을 크게 버리면 크게 버릴수록 후임 공동 담임목사님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거침없이 내려주실 새로운 차원의 은혜를 더 크게 누리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목사는 자신이 시골로 낙향하는 이유도 설명했습니다. 

     

    “후임자에게 걸림돌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양화진에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희 부부를 위해 택정해 놓으신 땅으로 낙향합니다.” 

     

    한국 교회에서 이재철 목사의 자취는 특별합니다. 교계에서는 이 목사가 한국 교회에 남긴 가장 큰 공로는 예수님의 자리에 결코 자신을 들여놓으려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예수님의 자리에 놓는 잘못을 범하곤 합니다. 자신이 키운 교회라는 왕국의 제왕이 되어 타락의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목사는 버림을 잊지 않음으로써 그런 유혹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1988년 서울 강남에 주님의교회를 개척했으나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의 약속대로 10년 임기가 끝나자 곧바로 사임한 뒤 파송 선교사로 스위스 제네바 한인교회를 맡았습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 서울의 한 작은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일하다 초기 선교사들의 무덤이 제대로 관리되고 있지 않다는 말을 듣고 2005년 양화진에  100주년기념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가 교회를 개척했다는 얘기가 퍼져나가면서 100주년 기념교회에 신도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신도 수가 1만 6천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이 목사는 또 다른 버림을 준비했습니다. 은퇴 3년 전인 2016년부터 퇴임 준비를 위해 교회 안에 미래준비위원회를 만들어 정관 개정과 후임자 인선 등을 추진한 것이지요. 목사 신임투표제를 도입하고 장로와 권사를 직분에서 호칭으로 바꿨습니다. 장로와 권사를 교회 안의 직급이 아니라 존경할만한 연장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쓰도록 한 것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목사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장로나 권사와 같은 직분이 목사의 수족 노릇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도들에게 군림하기도 합니다.  

     

    이 목사는 자신의 뒤를 이어 4명의 목사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시스템도 만들었습니다. 제왕적 목회자의 탄생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100주년기념교회는 정한조(영성 총괄), 이영란(교회학교 총괄), 김광욱, (목회 총괄), 김영준(대외 업무 총괄) 4명의 목사가 사역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인 말구유에서 탄생하신 성탄절을 되새기게 됩니다. 

  • 암환자가 쓴 자신의 부고기사

    이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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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냐 토드는 38세인 2012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너무나 아파했지만 그는 하늘나라로 떠나기에 앞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자신에 대해 직접 쓴 부고 기사를 통해 귀한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누군가 그 부고 기사를 페이스북에 올렸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줬습니다. 다음은 소냐 토드가 남긴 자신의 부고 기사입니다.

     

     

     

    “제 이름은 소냐 토드입니다. 38세 때 암으로 죽었지요. 저는 자신의 부고 기사를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왜냐하면 대개 부고 기사는 제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부고 기사들은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모여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연대기처럼 나열하거나 세상을 떠난 이의 삶을 빛나는 누군가의 삶과 시적으로 연결 지으려고 노력합니다. 죽은 사람들이 인간의 모습을 한 신의 화신이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가감 없이 사실 그대로 제 삶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 성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노력했습니다.

     

    제가 가끔 어처구니없는 말과 농담을 내뱉고 불평을 하기도 했지만 저는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제가 늘 옳은 일을 하거나 옳은 말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삶을 끝낼 때 여러분들이 정말 후회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상처를 준 아주 작고 단순한 일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저의 부고 기사를 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저는 제 삶에서 도움을 준 모든 분들에게 감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분들은 제가 멋지고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저를 사랑하고 도와주고 보살펴주고 함께 웃었던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모두를 알게 된 것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나큰 축복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있어서 제 삶이 가치가 있었습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저를 생각하고, 저를 추모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학교나 교회 또는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십시오.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 사람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나아졌다고 말하세요.

     

    담배는 끊으세요. 음주운전, 절대 안 됩니다.

     

    텔레비전과 같은 전자제품을 끄고 집 밖으로 나가 아이들과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며 아이들의 희망과 꿈에 대해 얘기하세요.

     

    비록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용서하세요.

     

    조금이라도 그럴 힘이 있다면 오늘도 누군가를 미소 짓게 만드세요."

  • 아침이면 동이 나는 빵집의 비밀

    미국 캘리포니아 실 비치(Seal Beach)에는 오전 10시도 되기 전에 그날 만든 도넛이 다 팔리는 가게가 있습니다. 어떤 날에는 8시도 되기 전에 도넛이 동이 납니다. 

    도넛 시티라는 이름의 이 가게는 1979년 캄보디아에서 이민 온 존 찬(Chhan)과 스텔라 찬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데 2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문을 열었을 정도로 성실한 운영으로 동네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 가게의 도넛 매진 사태는 이웃들의 따뜻한 마음이 이뤄낸 작은 기적입니다. 

     

    도넛 시티의 단골인 돈 카비올라는 어느 날 가게를 들었다가 스텔라가 자리에 없자 존에게 물었습니다. 

     

    “아내분은 안 보이시네요?” 

     

    존은 아내가 뇌동맥류로 쓰러져 요양원에 입원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겨우 의식을 회복했지만 온몸이 마비됐다는 겁니다. 

     

    스텔라는 9월 22일있었던 결혼식에 참석했다 어지럼증과 방향감 상실을 호소했고, 병원에서 뇌동맥류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텔라는 한동안 의식이 없었고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2주가 지나서야 의식을 찾았고 말문이 트였다고 합니다. 

     

    존은 아내의 재활을 돕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가게 문을 닫을 수도 없었지요. 

     

    카비올라는 도넛 가게에 다녀온 뒤 부부의 안타까운 사연이 계속 생각났다고 합니다. 

     

    “맞아. 우리가 도넛과 빵을 일찍 다 사주면 존이 아내 곁을 지키게 도와줄 수 있잖아.” 

     

    카비올라는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존과 스텔라의 사연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부부의 사연을 알게 된 동네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도넛 시티를 찾았습니다.  

     

    평소 새벽 4시 30분에 일을 시작해 오후 3시까지 가게 문을 열었던 존은 9시에서 10시면 도넛과 빵을 다 팔고 아내에게 갈 수 있게 됐습니다.  빵이 일찍 다 팔리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존은 이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많은 이웃이 찾아와 빵을 서너 박스씩 사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수험생 울린 엄마의 ‘통장편지’

    어머니가 딸에게 쓴 통장편지 일부. 이미지 출처 : 트위터

    한 어머니가 수험생 딸에게 쓴 ‘통장편지’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최근 수능을 치른 한 학생은 자신의 트위터에 어머니로부터 선물로 받은 통장을 찍어 올렸습니다. 

     

    학생의 어머니는 수능 100일 전부터 1만 원씩 저축하면서 최대 7자까지 적을 수 있는 입금 메시지에 4~7자씩 글을 적어 ‘통장편지’를 완성했습니다.  

     

    선물을 받은 학생은 트위터에 “엄마가 수능 100일 때부터 1만 원씩 모아서 통장을 만들어 줬다”면서 “읽다가 눈물 펑펑 쏟았다”라고 적었습니다.  

     

     

     

    다음은 ‘통장편지’의 내용입니다. 

     

     

     

    수능 백일 파이팅. 수능 끝나고 놀아. 너는 빛나는 존재. 사랑스러운 우리 딸, 네가 선택하는 그 모든 것들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기를. 그리고 행복한 너의 삶을 스스로 가꾸어 나가길 바란다.  

     

    그러니 수능이 끝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를 꼭 안고 토닥거리며. 그동안 고생했다. 괜찮다. 모두 다 괜찮다. 애쓰고 애썼다. 그걸로 충분하다. 사랑하는 예쁜 우리 딸 삶의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하고 싶은 거 모두 다 하렴. 

     

    바른 인생관, 바른 인간관, 바른 세계관, 중요한 삶의 가치관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싶고 삶의 무게나 삶의 의미 등 진지한 고민을 공유하고픈 나의 바람을 알아주길 바란다. 좀 더 성숙해진 이야기들을 나눈 후에 너를 독립시켜야 내 맘이 편할 듯싶구나. 미래는 그리하여 그 의미를 갖는다 하니 자신의 힘으로 멋진 인생을 이루길 바란다. 

     

    You're my present. 선물 같은 너를 만나서 엄마는 정말 행복해. 늘 건강해서 다행이었고 잘 자라줘서 참 고맙다. 더할 나위 없이 묵묵히 잘 커 준 예쁜 우리 딸아, 지금도 충분히 예쁘고 예쁘다. 어젯밤 앨범을 함께 보며 추억해보니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시간의 소중함, 추억의 소중함을 느꼈단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자. 

     

    누구나 각자의 인생이 있단다. 뒤돌아볼 때 후회 없는 선택은 별로 없단다. 그러니까 진정한 행복을 찾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언제나 너의 뜻을 존중하고 이해하니, 너는 늘 당당하게 웃음 넘치는 00이가 되기를.

  • 故 이태석 신부, 남수단 교과서에 실리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인술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남수단의 국정교과서에 실렸습니다. 

     

    남수단 교육부는 지난 9월 이 신부님의 삶을 수록한 교과서를 펴냈는데 2019년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온 슈바이처’라고 불린 이 신부님의 삶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3쪽, 중학교 시민권 과목에 교과서에 2쪽에 걸쳐 소개됐습니다. 

     

    교과서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가 되어 남수단의 가난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그는 남수단에서도 열악한 지역인 톤즈에 작은 병원을 세웠고, 하루 300명의 환자를 돌봤다. 학교를 지어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고 80여 개의 마을에 백신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의 병원은 가톨릭과 개신교, 무슬림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을을 파괴한 군인들도 치료를 받았다”  

     

    남수단 정부는 이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2015년부터 신부님의 삶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뎅뎅 호치 야이 남수단 교육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을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의사·음악가·선교사로서 10년 넘게 희생과 봉사를 몸소 실천하신 이 신부님의 삶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이 신부님은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을 놀이터로 삼아 자랐습니다.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이 신부님은 성당에서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를 다룬 영화를 보고 사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부근의 한 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49세에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인제대 의대에 진학한 이 신부님은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졸업 뒤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200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부님은 곧바로 남수단 톤즈로 떠났습니다.  

     

    이 신부님은 그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굶주리고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하고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 할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손자와 쇼핑하는 법

    한 할아버지가 세 살바기 손자와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식료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 세 살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사탕을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비스킷이 쌓여 있는 곳에 도착하자 손자는 이번에는 비스킷을 달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또 다른 코너에 이르자 손자는 과일과 시리얼이 먹고 싶다고 다시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내 침착했습니다.

    “윌리엄,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진정해”

     

    손자의 고함과 떼쓰기는 계속됐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평정심을 잃기 않았습니다.

    “얘야 조금만 참으렴”

     

    손자는 마침내 카트에 담긴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타이르기만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윌리엄, 윌리엄 진정해. 화내지마. 어찌됐든 우리는 5분 안에 집에 갈 수 있을거야. 침착해 윌리엄”

     

    한 여성은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할아버지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서 물었습니다.

     

    “손자가 그렇게 시끄럽게 굴어도 참 침착하게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감동했습니다. 윌리엄은 이런 훌륭한 할아버지가 계셔서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손자가 아니라 제 이름입니다. 이 작은 꼬마의 이름은 케빈이지요”

  • 홍콩 대표 영화배우 주윤발 8000억 대 전 재산 기부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8000억 원대의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주윤발은 최근 홍콩의 한 영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영화 홍보를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 팬들 앞에서도 같은 다짐을 했습니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주윤발은 19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 배우입니다. 
    그 뒤에도 '와호장룡', '황후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등 중화권과 할리우드의 여러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주윤발은 많은 팬을 갖고 있습니다. 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주윤발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달 용돈으로 12만 원을 쓰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개인 차량도 없습니다. 

     

    휴대폰이 고장 나기 전까지 17년 동안 썼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서민들이 가는 식당을 즐겨 찾기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그와조우할 때가 많습니다. 주윤발은 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구에도 늘 기쁘게 응합니다. 

     

    팬들은 주윤발의 말과 행동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윤발의 아내 천우리롄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87년 주윤발과 결혼한 그는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남편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출연료를 투자해 자산을 늘렸을 뿐 아니라 주유발의 기부활동을 돕기 위해 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두 부부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카페 주인이 구직 청년에게 준 기적같은 선물

    스페인 코르도바의 한 카페 주인 유지니아 로페즈씨는 이력서를 컴퓨터로 출력해올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한 청년에게 일자리라는 큰 선물믈 했습니다.

     

    지난 9월 로페즈가 일하는 카페에 한 청년이 찾아왔습니다. 손님이 아니었습니다. 그 청년은 “여기서 일하고 싶은데 혹시 사람을 구하시지는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은 카를로스 두아르테이며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로페즈는 두아르테가 성실하고 착한 청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사람을 구하지 않지만 이력서를 두고 가면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돈이 없어 이력서를 출력해오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로페즈는 경제사정 때문에 구직활동조차 제대로 못하는 딱한 사정을 보다 못해 자신이 가게에서 쓰는 종이와 펜을 건네며 이력서를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두아르테는 카페 테이블에 앉아 정성스럽게 이력서를 작성해 내밀었고 로페즈는 그의 정갈한 글씨체와 깍듯한 모습에 또 한번 감동했습니다.

     

    두아르테가 파란색과 검은색 볼펜으로 적은 이력서에는 간단한 자기 소개와 연락처가 적혀 있었습니다. 이력서 끝에는 “준비를 잘 해 오지 못했는데도 이력서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말도 적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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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페즈는 진심으로 그 청년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두아르테의 이력서를 찍은 사진과 사연을 올렸습니다.

     

    CNN스페인어판에 따르면 두아르테는 구직을 하러 다닐 차비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두아르테의 사연은 곧 널리 퍼졌고 방송 출연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를 채용하고 싶다는 제안이 쏟아졌습니다. 두아르테는 몇 군데 면접을 본 뒤 유리제조 업체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 어느날 상추가 내게 말을 걸었다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지구에 사는 동물은 다른 생명을 통해 자신의 생명을 유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다른 생명을 해치는 게 싫어 육식을 거부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교사로 살다 정년 퇴직을 한 한 여성도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텃밭을 가꾸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자란 식물을 가져다 먹을 때에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식물의 생명을 취해서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는 게 늘 부담스러웠지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식물을 뜯으러 가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는 것 뿐이었습니다.

     

    어느날 그가 밭에서 상추를 뜯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주위에 누가 있는지 돌아봤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시 뒤 그는 상추가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상추가 한 말에 너무나 감동했습니다.

     

    “나를 먹는 것에 대해 미안해하지 마세요. 나는 당신을 너무 사랑합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 생명을, 내 몸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너무 기쁩니다.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주세요. 당신이 저를 먹고 얻은 생명력으로 제가 당신을 사랑하듯이 다른 존재를 사랑하면서 살아가 주세요. 당신이 그렇게 살아간다면 저는 너무나 기쁠 것입니다.”

  • "승패보다 사람", 잉글랜드 감독이 써내려가는 감동스토리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 세계인들에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이후 28년만에 잉글랜드팀을 4강에 진출시켰습니다. 잉글랜드 팬들에게는 더 이상 감격스러운 일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사우스게이트 감독이 보여주는 감동은 잉글랜드팀의 성적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잉글랜드는 4일 월드컵 16강전에서 콜롬비아와 전후반 연장전까지 1대1로 비겨 결국 승부차기로 4:3 승리를 거뒀습니다. 말 그대로 짜릿한 승리였지요. 하지만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승리의 기쁨보다 상대팀 선수에게 눈길이 갔습니다.

     

    그는 이날 실축한 마테우스 우리베에게 다가가 눈물을 쏟고 있는 그를 따뜻하게 감싸 안으며 위로했습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 자신도 그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22년 전 유로 1996 대회에서 독일과의 준결승에서 승부차기 때 마지막 키커로 나서 실축을 했었습니다.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선수는 많은 팬들로부터 원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이날 경기가 끝난 뒤 콜롬비아 선수에 대한 살해 협박도 있었습니다.

     

    나라를 대표한다고 하지만 어린 선수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지요.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날 경기에 앞서 아내의 출산을 함께 하기 위해 자리를 비우겠다는 선수의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잉글랜드팀이 콜롬비아에 승부차기 끝에 8강에 오른 그 순간 잉글랜드팀 선수 파비언 델프는 영국에서 세 번째 아기를 출산하는 아내 곁에 있었습니다.

     

    델프는 29일 예선 경기인 벨기에전을 마치고 감독의 허락을 받아 영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SNS에 "최고로 놀라운 24시간을 경험했다"고 남편이자 아빠로서 아이의 출생을 함께 했던 감동을 적었습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델프의 ‘출산 휴가’에 대해서도 월드컵은 한 개인에게 드문 기회이고 큰 대회이지만 가족은 더 소중하다면서 델프에게 기꺼이 휴가를 허락했습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월드컵 기간 중 조깅을 하다 어깨 탈골로 잉글랜드팀 1호 부상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그는 “선수보다 내가 다친 게 낫다”며 웃어 넘겼습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축구가 아닌 다른 스포츠 종목의 경기를 연구하는 등 ‘괴짜’ 행보를 보인 끝에 잉글랜드 대표팀의 세트피스 전술을 발전시켰습니다. 미국프로농구(NBA) 경기 현장을 찾아 농구선수들의 움직임을 연구했고, 미식축구에서도 배울 점을 찾았습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러시아 월드컵에서 지금까지 넣은 11골 가운데 페널티킥을 포함해 세트피스 상황에서 8골을 넣었습니다. 8강 경기에서도 세트피스로 2골을 넣어 ‘철벽 수비’를 자랑하던 바이킹 군단 스웨덴을 꺾었습니다.  

     

    이런 감동적인 스토리와 잉글랜드팀의 4강 진출로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인기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영국에서는 그의 조끼 패션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잉글랜드팀 의류 공식 공급업체는 '사우스게이트 효과' 덕에 조끼 주문량이 35%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잉글랜드팀의 성적도 기록에 남겠지만 러시아 월드컵 기간 중에 보여준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감동 스토리는 세계인들의 마음 속에 더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