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rch

종교 : 성자들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terimakasih0)

그림자 없는 선사 수월스님 (3)

작성자 : 피스우즈

"위대한 스승들 - 수월스님 (1)" 바로가기

"위대한 스승들 - 수월스님 (2)" 바로가기 

 

수월 스님이 사람들이 자신의 이적에만 주로 관심을 갖자 마지막 거처인 오대산 상원사를 떠나 북쪽으로 향했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수월 스님이 스승인 경허 스님을 찾아다녔을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 경허 스님은 박진사라는 이름으로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와 술로 사람들을 만나며 스님도 속인도 아닌 것처럼 지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월 스님은 평안도 강계에서 스승 경허 스님을 찾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하지만 경허 스님은 뵙기를 청하는 수월 스님을 만나 주지 않았고, 자신이 누구인지도 확인해주지도 않았고요.

 

수월 스님은 정성 들여 삼은 짚신 몇 켤레를 스승이 계신 곳에 남겨두고 그곳을 떠났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수월 스님은 그 뒤 함경북도 회령군의 두만강 부근에서 한동안 생활했습니다. 거기서도 낮에는 나무를 하고 밤에는 짚신을 삼았습니다.

 

가끔씩 강가에서 대비주를 외며 선정에도 들었다고 합니다. 수월 스님이 강가에서 대비주를 외고 있을 때면 물고기들이 물 밖으로 뛰어올라 장관을 이뤘다는 얘기가 전해 옵니다.

 

수월 스님은 58세인 1912년에는 두만강을 넘어 간도로 거처를 옮긴 뒤 3년 동안 소먹이 일꾼으로 일했습니다. 그렇게 번 돈으로 주먹밥을 만들어 길가 바위 위에 쌓아 놓고 나뭇가지에는 밤새워 만든 짚신을 매달아 뒀습니다.

 

일제의 탄압을 위해 간도로 도망 오는 동포들의 주린 배를 잠깐이라도 채워주고 고단한 원행에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 위해서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수월 스님이 살던 간도 지역에는 비적이 많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비적에 맞서기 위해 집집마다 사나운 개를 키웠다고 합니다. 비적을 물어 죽일 정도로 용맹한 개들도 수월 스님 앞에만 가면 순한 양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반겼다는 얘기가 전해집니다.

 

수월 스님은 간도 지역 동포들이 지어준 화엄사라는 작은 절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여기에서도 누더기를 걸치고 밤낮없이 일했습니다. 잠을 자지 않았고 아픈 사람을 쉽게 고쳐줬으며 호랑이를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는 등 수월 스님과 관련한 신비한 얘기들은 지금도 그 지역에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수월 스님은 1928년 늦여름 화엄사가 자리한 송림산의 개울가에서 결가부좌를 한 채 입적했습니다. 바지저고리와 짚신 한 켤레를 머리 위에 얹은 채였습니다.

 

수월 스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 7일 동안 송림산에서는 밤마다 방광의 기적이 일어났고 많은 짐승들이 무리 지어 울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