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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송인 유병재의 특별한 기부 프로젝트

    이미지 : 유병재 유튜브

    방송인 유병재 씨는 2018년 12월에 새해 다짐을 했습니다. 새해 매달 1000만 원씩 기부하겠다는 겁니다.

     

    유 씨의 소득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한 달에 1000만 원을 기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방송인이나 연예인은 인기에 따라 소득의 부침이 심하기 때문에 벌이가 괜찮을 때 돈을 모아 ‘궂은 날’을 대비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서 유 씨의 기부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겁니다.

     

    수십억 원의 연봉을 받는 이들 가운데도 이렇게 큰 금액을 기부하는 사람은 아주 드문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는 유병재 씨의 ‘2019년 다짐’은 어떤 결말을 맺었을까요?

     

    유 씨는 2019년 12월 31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1년 동안 매달 1000만 원씩을 기부한 내역을 올렸습니다.

     

    유 씨가 큰마음을 낸 곳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거 공간 ‘나눔의 집’, 세이브더칠드런, 유기동물입양단체 등 뜻있는 활동을 하는 단체부터 강원산불피해성금, 저소득층 생리대 후원, 미혼모 생계 후원, 보육원 아동 특식 지원, 독거노인 여름 나기 등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한 해 동안 진행한 후원활동에 대한 소감도 적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유병재입니다.

    2019년의 마지막 날인 오늘 치매노인분들 가정 후원을 끝으로 작년 12월부터 매달 천만 원씩 시작했던 기부가 어느덧 1년을 맞았습니다. 누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을 묻는다면 전 그동안 망설였던 나눔을 시작했던 일이라고 말할 것 같아요. 이 포스팅은 올 한해 저 스스로에 대한 자랑반(?) 그리고 저처럼 나눔을 망설이던 분들을 위해 정보를 정리해놓는 목적 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찾아보면 좋은 후원단체가 참 많습니다.!)

    제 포스팅을 보고 본인도 후원을 시작하셨다던 분들의 DM을 보고 정말 너무 행복했네요.

    앞으로도 분에 넘치게 받은 사랑을 많은 분들과 나누는 유병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남 모르게 하는 선행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선행을 드러내는 유병재 씨의 마음 또한 대단해 보입니다. 

  • 故 이태석 신부의 남수단 제자 의사 되다

    지난 1월 22일, 故 이태석 신부의 남수단 제자였던 존 마엔 루벤이 의사국시에 합격했다. [이미지 : KBS News 유튜브]

    이태석 신부의 남수단 제자 가운데 두 번째 의사가 탄생했습니다.

     

    인제대 의과대학에 따르면 이 신부의 제자인 존 마엔 루벤이 올해 의사 국가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루벤은 지난해 의사 시험에서 실기시험과 달리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는데 1년 동안 절치부심 노력한 끝에 올해 최종 합격했습니다.

     

    인제대 의대는 루벤에게 1년 동안 기숙사를 제공하는 등 국가시험 준비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합니다.

     

    루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석 신부님 선종 10주기를 맞아 의사가 되니 신부님에게서 받은 선물이 아닐까 싶고 신부님이 있었다면 많이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다"라며 "병들고 어려운 분들을 치료하며 사랑에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루벤은 내년 3월까지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과정을 밟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의사시험에 합격한 이태석 신부의 또 다른 남수단 제자 토마스 타반 아콧은 현재 인제대 부산백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 쓰레기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사회적 기업가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이사. [이미지 : 유튜브 캡쳐]

    박미현 터치포굿 대표는 ‘버려지는 자원과 버리는 마음을 터치하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합니다. 

     

    터치포굿은 현수막이나 광고판 등 짧은 시간 쓰이고 버려지는 자원을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과 환경 교육이 주요 사업입니다. 업사이클링은 재활용품에 디자인을 도입하거나 기능을 높여 가치를 더한다는 뜻입니다. 

     

    박 대표가 터치포굿을 만든 것은 지구촌을 위협하는 쓰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플라스틱이나 비닐에 재활용 로고가 표시된 것은 말 그대로 모두 재활용이 되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랐지요..

     

    그는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마다 500이라는 숫자를 자주 얘기합니다. 500년은 플라스틱이 썩는 데 걸리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박 대표는 이를 ‘인간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가장 긴 숫자’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자녀의 자녀의 자녀가 태어나서 온통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세상을 접하고 그런 상황을 만든 사람을 찾아 책임을 물으려고 해도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그런 세월이 500년입니다. 그렇게 오랜 생명을 지닌 플라스틱이 지구를 뒤덮고 있었습니다.

     

    박 대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야 하지만 당장 주위에 널린 것들을 처리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한 2008년 터치포굿을 만든 이유입니다. “쓰레기가 더 이상 쓰레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순환고리를 만드는 일”을 시작한 것이지요.

     

    자동차 범퍼를 잘게 쪼개 만든 ‘버즈 줄넘기’ 페트병에서 추출한 섬유로 만든 담요, 선거현수막으로 만든 손가방, 이면지로 만든 포스트잇 등 터치포굿은 그 동안 쓰레기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마법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특히 지난해에 만든 업사이클 블록은 터치포굿의 재활용 ‘열정’이 담긴 상품입니다. 텃치포굿은 플라스틱은 종류가 다양하고 안에 기름기가 끼여 있는 등 처리 비용이 많이 들어 버려지는 경우가 많다는 걸 알고 업사이클로 재활용을 시도했습니다. 

     

    터치포굿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산업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인식변화를 가져오기 위한 일이죠. 이를 위해 기업이나 기관 등을 대상으로 쓰레기 재활용을 위한 솔루션을 제공하거나 아이들을 위한 환경교육을 진행합니다.

     

    박 대표는 터치포굿 브랜드 영상(https://www.youtube.com/watch?v=RmfkW-FWkh0)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버려지는 자원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어요”

  • 119REO, ‘은퇴’한 방화복으로 암투병 소방관 돕는 회사

    이미지 : 119REO 홈페이지

    

    소방관들이 입는 방화복은 수많은 화재현장에서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데 쓰이는 소중한 물건입니다. 그런 귀한 존재이지만 수명이 다하면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방화복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회사가 있습니다. 119REO입니다. 이 회사는 ‘은퇴’한 방화복으로 가방을 만들어 판매합니다. 가방 판매 수익금은 암 투병 중인 소방관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쓰인다고 합니다.

     

    119REO는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미션을 적어 놓았습니다.

     

    ‘암 발병에 노출된 소방관들. 151명의 소방관이 투병 중입니다. 119REO는 암 투병 중인 소방관을 돕습니다.’

     

    119REO는 방화복을 업사이클링 해 가방을 만듭니다. 방화복의 법적 내구연한은 3년입니다. 이 기간 동안 방화복은 평균 354번 현장에 출동하고 ‘퇴역’하게 되는데 그 숫자가 1년에 1만 벌가량 된다고 합니다. 

     

    방화복은 고강도의 신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소방 현장에서는 기능이 부족하지만 일상용품의 소재로는 여전히 뛰어난 성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활 방수 기능은 물론이고 불에도 잘 훼손되지 않는 방염 기능을 갖추고 있지요.

     

    119REO는 모든 과정을 수작업으로 진행해 백팩 손가방 등을 만듭니다. 상의 16조각, 하의 10조각으로 이뤄진 방화복을 손으로 분해해 세척한 뒤 손으로 직접 자르고 이어붙이고 꿰매 가방을 만듭니다. 방화복의 ‘부활’은 가방에 그치지 않습니다. 파우치, 클러치 백, 인형, 팔찌, 열쇠고리 등도 방화복을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회사는 지금까지 방화복으로 만든 가방 등을 팔아서 얻은 수익금의 50%인 1500여만 원을 암 투병 소방관에 기부했습니다.

     

    이승우 119REO 대표가 이 사업을 시작한 계기는 2017년 소방관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언론을 통해 접한 뒤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소방관들이 겪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도울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소방관들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한민국재향소방동우회에서 김범석 소방관의 얘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김범석 소방관은 2006년부터 8년 동안 수많은 현장을 누비며 350여 명의 생명을 구한 소방관인데 2014년 6월 혈관 육종암이라는 희귀 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질병과 직무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국가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고 김 소방관의 아버지는 공무상 상해를 인정해달라고 국가를 대상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는 암 투병 중인 소방관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을 돕겠다는 생각에 119REO를 만들었습니다. REO는 Rescue Each Other의 약자로 서로를 구하자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의 생명을 구한 방화복이 업사이클링으로 다시 태어나 정부 지원 밖에서 고통받는 소방관들을 돕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 ‘청년 소방관’ 오영환의 도전, “가장 절박한 사람이 정치해야”

    이미지 : 연합뉴스 유튜브

    민주당이 ‘청년 소방관’ 오영환씨를 영입했습니다.

     

    오씨는 2010년 서울 광진소방서 119 구조대원으로 소방관 생활을 시작해 10년 가까이 구조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출동한 횟수만 2천 번이 넘는다고 합니다.

     

    구급대원으로 일했던 시절에는 심정지 등으로 거의 죽을 뻔한 이들을 응급처리로 살린 경우에 수여하는 ‘하트세이버’ 배지를 6차례나 받았습니다.

     

    소방관들의 현실과 처우 개선을 위한 행동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는 열악한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담은 책 <어느 소방관의 기도>를 펴냈고 소방공무원 국가직화를 위한 광화문 1인 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암벽 여제’로 불리는 김자인 선수의 배우자로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JTBC의 길거리 강영 프로그램 ‘말하는대로’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오씨는 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치에 꼭 한 번 묻고 싶었다”며 “국민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한 예산을 포퓰리즘이라 비난하고 퍼주기라고 말하는 정치가 우리 국민의 안전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지 묻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평생을 소방관으로 살고 싶었지만, 누군가 국민 생명과 안전에 관해 필요한 법과 제도, 예산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가장 절박하게 공감해 본 사람이 정치를 해야 더 절박하게 일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민주당의 요청을 받아들인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소방공무원뿐만 아니라 경찰, 군인 등 현장에서 근무하는 제복 공무원들이 당당하고 마음껏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키우는 데 헌신한 부모님 같은 분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어서 고교시절부터 소방관을 꿈꿨다고 합니다.

  •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병원장, 빈민촌서 25년 '인술'

    이미지 : 아산메디컬센터 유튜브

    25년.

     

    이석로 방글라데시 꼬람똘라 병원장이 방글라데시에서 의료 봉사로 보낸 시간입니다.

     

    이 원장은 1994년 전남대 의대를 졸업한 뒤 꼬람똘라병원 의사 모집 공고에 지원했습니다.

     

    그가 자원봉사를 신청한 이유는 군 면제 판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남대 83학번인 그는 키가 153cm로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면제 판정을 받았습니다.

     

    다른 이들 같으면 인생에서 ‘3년을 벌었다’고 좋아했겠지만 이 원장은 다른 이들이 군 복무를 하는 기간 동안 봉사를 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처음 방글라데시로 떠날 때 딱 3년 동안만 있다가 돌아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해 18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떠난 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태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가 일하는 꼬람똘라 병원은 한국해외의료선교회인 콤스(KOMMS)가 1992년 설립한 병원입니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차로 2시간 걸리는 빈민촌에 있습니다. 방글라데시는 건강보험이 없고 진료비는 비싸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혜택을 거의 받지 못합니다. 병을 안고 살면서 키우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세워진 병원이라 꼬람똘라는 진료비의 1/10만 받습니다. 그 돈을 부담하기도 어려운 사람은 무료로 치료해줍니다. 하지만 치료를 위해 돈을 ‘강제로’ 맡아두기도 합니다.

     

    결핵 환자 치료가 그랬습니다. 결핵은 오랜 기간 약을 먹어야 완치가 되는데 이곳 환자들은 증세가 완화되면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이 원장은 결핵 치료 환자에게 보증금으로 1000타카(약 1만4천 원)를 받았습니다. 대신 병이 다 나으면 돌려줬습니다.

     

    이 원장은 병원에 필요한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의 급여도 대폭 삭감했습니다. 연봉이 3만 달러와 퇴직금 조로 쌓아두는 돈이 1만 달러였습니다. 하지만 이 원장은 2만 달러만 받겠다고 하고 나머지 돈으로 외과의사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이 원장은 백내장으로 시력을 잃은 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는 점을 알고 2009년에는 백내장 수술에 특화된 안과도 개설했습니다. 2018년 한 해에만 1300여 명이 시력을 되찾았습니다.

     

    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운 여성을 위해 3년제 간호학교도 설립해 학생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 있고 장학사업도 벌이고 있습니다. 현재 이 학교에서 100여 명의 간호사가 배출됐습니다.

     

    25년간 그가 쏟은 땀방울과 정성으로 현재 꼬람똘라 병원은 8개의 진료과와 50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해마다 8만 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원장은 고교 시절 공대에 진학하려고 했지만 누나의 권유로 의대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대학 때 도서관에서 공부하면서는 민주화 운동을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고민도 많았다고 합니다. 돈과 명예 대신 다른 길을 찾고자 했던 고민이 그를 방글라데시로 이끌었습니다.

     

    이 원장은 25년간의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올해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아산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막노동으로 3남 2녀를 키운 부모님에게 늘 죄송하다는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상이 부모님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이를 치료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치료했다고 합니다. 겉치레를 다 버리고 가난한 이들을 섬기며 소박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지요.

  • 록의 살아있는 전설 본 조비의 특별한 레스토랑

    이미지 : JBJ Soul Kitchen SNS

    존 본 조비는 1980년대를 풍미한, 록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본 조비의 리더입니다. 하지만 그가 다른 이들을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는 2006년에 본 조비 소울 재단(JBJ Soul Foundation)를 설립해 가난한 이들과 무주택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이 재단이 하는 대표적인 일은 가난한 이들이 공짜로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무료 식당 ‘소울 키친(Soul Kitchen)’의 운영입니다. 이 재단은 2011년 10월에 뉴저지주 레드뱅크에 첫 번째 식당을 열었고 두 번째 식당은 2016년 톰스 강 근처에 열었습니다. 이 지역은 2012년 허리케인으로 큰 피해를 입은 곳입니다.

     

    본 조비는 이 식당을 찾는 이들이 자존심을 잃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돈을 내고 사 먹는 손님이나 공짜 밥을 먹는 손님이나 모두 이 식당에서는 환대를 받습니다. 밥값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값을 치르고 싶은 사람은 대신 20달러를 기부하면 됩니다.

     

    메뉴는 3가지 종류로 단출하지만 맛이 좋고 영양가도 풍부합니다. 소울 키친에서 쓰는 식재료는 직접 재배한 유기농산물을 쓰기 때문입니다.

     

    11월 기준으로 소울 키친은 10만 5천 끼를 제공했습니다. 이 레스토랑 웹사이트에 따르면 식사를 마련하는 데 들어간 비용의 54%는 기부금으로 마련했고 나머지 46%는 자원봉사자들이 벌어서 댔다고 합니다.

     

    ‘본 조비 재단’은 식당 운영 외에 필라델피아에서 집 없는 노숙인들을 위해 집을 짓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이 주택은 가난한 젊은이와 퇴역군인에게도 제공됩니다.

  • 구자경 LG 명예회장의 삶, 신독(愼獨)

    이미지 : LG 공식 홈페이지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9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족은 ‘허례허식’을 삼가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장례도 비공개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렀습니다.
     
    빈소를 공개하지 않고 조문은 물론이고 조화까지 사양했지만 인연 있는 정재계 인사 수십 명이 굳이 빈소를 찾을 정도로 고인이 남긴 족적은 큰 것 같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에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부자가 되기 위해 바르고 부끄러움 없는 생활 자세”를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를 위해 고인은 서울 여의도 LG 사옥 집무실에 신독(愼獨)이라고 쓴 휘호를 걸어 놓고 늘 마음에 새겼습니다.
     
    신독은 대학에 나오는 군자필신기독야(君子必愼其獨也)의 줄임말입니다. 군자는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늘 올바르게 처신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이는 LG가 내세우는 ‘정도경영’의 바탕이 됐을 것입니다. 
     
    고인은 신독을 바탕으로 기업 경영의 원칙도 세웠습니다. 
     
    “사사로운 이해를 떠나 공사를 엄정히 구분하면서 기업을 이끌어 나가고, 항상 정당한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기업을 운영한다면 사회는 결코 색안경을 끼고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근검절약하고 절제된 생활을 영위하면서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부는 이 사회로부터 점차 존경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신독이라는 삶의 철학은 구 명예회장의 검소하고 소탈한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의 검소함은 가풍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구 명예회장은 회고록 <오직 이 길밖에 없다>에 “나는 주로 구태회 숙부의 옷을 대물림해 입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조부께선 학용품도 하나 다 써야 새것 하나를 꺼내 주셨다”고도 했습니다.


    그렇게 배우고 자라서인지 구 명예회장은 재벌의 총수이지만 어느 동네에서나 만날 수 있는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검소한 삶을 살았습니다. 
     
    구 명예회장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고동색 카디건과 검은 뿔테안경은 20년 쓴 물건들입니다. 은퇴한 뒤 사용할 컴퓨터도 계열사에서 쓰던 것을 가져다 쓸 정도로 근검절약했습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회장님께서 1980년대 정부청사 인근 허름한 식당에서 일행과 수행원도 없이 혼자 비빔밥을 드시던 소박한 모습을 몇 차례나 봤다. 회장님의 그런 풍모가 국민의 사랑을 받는 기업을 키웠다"라고 회고했습니다.
     
    고인은 각지의 공장을 방문할 때도 불필요한 의전을 삼가도록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LG그룹에서는 오너 경영인이 방문했을 때 간부들과 직원들이 도열해서 맞는 일이 없습니다. 
     
    구 명예회장은 가족에게도 엄격했습니다. 힘 있고 돈 많은 이들의 대다수가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으려고 궁리할 때, 고인의 네 아들은 모두 육군에서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습니다.
     
    늘 자신을 돌아보는 신독의 삶을 살았기에 구 명예회장은 물러날 때도 알았습니다.  그는 1995년 LG를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넘겨주고 충남 천안으로 내려가 자연 속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여생을 보냈습니다. 충분히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건강한 상태에서 자식에게 경영을 물려주는 것은 흔치 않은 일입니다. 구 며예회장은 낙향한 곳에서도 버섯 재배를 연구하고 된장, 청국장, 만두 등 전통음식의 맛을 재현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에는 늘 마음을 썼습니다. 1991년 사재 2억 원을 출연해 LG복지재단을 만들어 소외계층을 지원하도록 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이 상남이라는 호를 지은 것입니다.
     
    구 명예회장은 문중에서 항렬이 낮지만 나이가 많은 축에 들었습니다. 아저씨뻘 되는 이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이들이 자신을 편하게 부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상남이라는 호를 지었습니다. 상남은 경남 진양군 지수면 고향집 앞에 있는 작은 다리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고인은 삶처럼 떠나는 길도 소탈했습니다. 
     
    유족은 빈소를 공개하지 않았고 화장 뒤 묻힐 장지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문상객도 200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화도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것만 받고 모두 돌려보냈습니다. 나라의 대표가 보낸 것이라 그마저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 16세 환경운동가 툰베리, 타임 ‘올해의 인물’에

    스웨덴 출신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타임지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이미지 : TIME]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이 됐습니다. 

    <타임>은 현지시각으로 11일 ‘올해의 인물’로 그레타 툰베리를 선정했다고 발표하고 1927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한 이래 가장 어린 수상자라고 덧붙였습니다.

    <타임> 편집장 에드워드 펠센탈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툰베리는 올해 지구가 직면한 문제를 가장 큰 목소리로 이슈화해 지구적 운동을 이끌어 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는 “툰베리가 지구를 대신해 혼자 행동에 나서 수백만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는 점도 주목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타임>은 툰베리를 다룬 특집 기사에서 “툰베리에게도 기후 변화를 막을 마법 같은 해법은 없다”면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을 긴급한 변화를 촉구하는 운동으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툰베리가 2018년 8월부터 스웨덴 의회 앞에서 야영을 하며 벌인 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 비행기 대신 요트로 대서양을 건너 UN에서 연설한 일 등 세계인의 주목을 끈 담대한 행동을 소개했습니다.

    <타임>은 툰베리가 권력에 맞서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낼 것을 촉구하는 평범한 소녀이지만 한 세대의 아이콘이 됐다며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해 가장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툰베리는 이 소식을 듣고 자신의 트위터에 “와우, 믿을 수 없어요. 이 영광을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금요시위에 함께 하는 세계의 모든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적었습니다.

  • 김치찌개 식당 사장이 된 신부님

    이미지 : 연합뉴스TV 유튜브 캡쳐

    이문수 가브리엘 신부님은 김치찌개 집 사장님입니다.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안 건물 2층에 있는 ‘청년식당 문간’이 신부님의 식당입니다.

     

    2018년 5월 문을 연 ‘문간’은 시장통 안의 여느 식당과 다름없어 보이지만 값싸고 맛있는 김치찌개로 유명합니다. 칼칼한 국물에 듬뿍 썰어 넣은 김치와 큼지막한 두부, 돼지고기, 햄, 떡국떡 등이 푸짐하게 들어 있는 정통 김치찌개가 ‘문간’의 대표 메뉴이지요.

     

    맛이 좋지만 김치찌개 값은 3000원에 불과합니다. 2016년 개업했을 때 가격 그대로입니다. 게다가 밥과 샐러드는 무제한으로 제공됩니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이면 이 식당은 자리가 꽉 찹니다. 하루 손님은 80~90명가량 된다고 합니다. 중고생과 대학생, 청년들이 절반 가까이 되고 나이가 지긋한 일반인들도 찾아옵니다.

     

    올해로 사제 생활 20년째인 이 신부가 식당을 연 이유는 인천에 있는 한 수녀원을 찾았을 때 그곳에 있던 수녀로부터 한 청년이 고시원에서 굶어 죽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서였습니다. 

     

    당시 이 신부가 속한 글라렛 선교 수도회에서 청년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도회에 제안했고 승낙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때가 2016년 3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식당 운영에는 문외한이라 이 신부는 오랜 ‘스터디’를 통해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많은 조언을 듣고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식당 운영 경험은 물론 청년들을 이해하기 위해 관련 활동을 하는 이들도 만났습니다.

     

    지속 가능한 식당을 만들기 위한 방안도 고민했습니다. 김치찌개 값을 3000원으로 정한 것도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월세, 요리사 인건비, 재료비 등을 따져보니 지속 가능하려면 최소한 3000원은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하루 운영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합니다. 부족한 부분은 기부받은 식재료로 메우고 있습니다.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면 무료급식소에 자주 가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밥값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 신부 자신도 “고민과 불안함과 실패와 좌절 같은 그런 것들을 안고 경험하고 지냈던 시기가 있었다"라고 합니다. 그는 서울 명문대 공대에 들어갔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편의점에서 끼니를 주로 때워야 했습니다. 

     

    그때 이 신부는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많이 벌어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96년 겨울방학 때 피정에서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고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걸 깨닫고 사제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합니다. 피정은 가톨릭 신자들이 일정 기간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고요한 곳에서 묵상과 자기 성찰기도 등 종교적 수련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신부는 몇 가지 꿈이 있습니다. 요리 실력을 쌓아 주방에 ‘진입’하는 것이고 ‘문간’ 같은 식당을 체인점으로 늘려나가는 것입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이 문간에서 힘을 얻고 갔으면 좋겠다. 본인들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전해주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신부는 식당을 운영하면서 “하느님, 이 식당에 (배고픈) 청년들을 보내주십시오. 그들을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매 순간 기도한다고 합니다. 테이블을 닦으면서, 음식을 나르면서도 그의 이 신부의 기도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