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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신수가 메이저리그 안팎에서 존경받는 이유

    이미지 : MBC Sports+ Youtube

    추추 트레인으로 불리는 추신수 선수는 올해 1월 뜻 깊은 상을 받았습니다. 헤럴드 맥키니 굿가이 어워드인데요.

     

    텍사스 레인저스 출입기자들이 투표로 수상자를 뽑는데 ‘클럽하우스 리더’에게 이 상을 줍니다. 야구 실력은 물론 다른 선수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라는 말이지요.

     

    동양인 선수가 클럽하우스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 뿐만 아니라 그라운드 안팎에서 존경받는 선수입니다. 

     

    추신수가 존경받는 이유는 뛰어난 실력 때문만은 아닙니다. 성실함과 겸손함, 다른 선수들을 돕고 배려하는 마음이 추신수를 존경하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최근 그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선행이 알려져 다시 한번 미국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줬습니다.

     

    그 사연을 공개한 사람은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 마이너리거 엘리 화이트 선수입니다. 그는 코로나19로 훈련이 중단 되자 주급이 끊겨 생활고를 겪고 있었습니다. 월급이 끊기자 아내와 함께 살아갈 일이 막막했습니다. 훈련을 계속해야 했지만 생활비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추신수 선수가 그를 조용히 불렀다고 합니다. 혹시 네가 기분나빠할까봐 걱정되기는 하지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는 겁니다. 

     

    화이트는 실질적인 도움보다 존경하는 선수가 자신을 돕겠다고 하니까 그 말 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합니다. 

     

    추신수 선수는 화이트를 포함해 마이너리그에 있는 190명의 선수들에게 1인당 1000달러(123만원)씩을 개인적으로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화이트에게는 자신에게 지급되던 식대를 모두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야구와 가족에게 집중하라는 조언과 함께 말입니다. 화이트의 아내는 통장에 추신수가 보낸 식대를 받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화이트는 추신수가 캠프 때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한다고 전했습니다. 추신수는 클럽하우스에서 코치, 물리치료사, 트레이너, 마사지사, 매니저 등의 복지를 위해 가장 앞서는 선수라는 말도 전했습니다. 

     

    화이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추, 고맙다는 말로 다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합니다. 당신이 돈 뿐이 아니라 마음도 함께 보내줘서 우리 가족들에 더 뜻깊게 다가왔습니다. 당신의 도움을 받은 마이너리그 선수들 몫까지 포함해 감사드립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당신이 보인 마음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텍사스 산하 싱글A구단인 다운 이스트우드 덕스의 웨이드 하웰 단장은 “추신수가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얼마전 한국의 코로나19 극복을 돕기 위해 2억 원을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서거 소식을 듣고 잠을 못이뤘다는 얘기, 구단을 찾아가 검은색 리본을 달겠다고 했다가 메이저리그 규약 때문에 거부당했다는 얘기를 적었습니다. 

     

    추신수 선수는 한국의 모든 국민들이 비통함에 잠겨 있는데 혼자서 방망이를 휘두르며 경기에 출장한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고도 했습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추신수 선수는 화이트 선수를 비롯해 많은 마이너리그 선수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줬음에 틀림없습니다.

     

    그가 끼친 선한 영향력은 나중에 다른 곳에서 또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세상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올해 38세인 추신수 선수에게 메이저리그 생활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은퇴한 뒤 그가 꾸려갈 제2의 인생이 더욱 궁금해집니다.

  • 산소호흡기 양보하고 세상 떠난 신부님

    이미지 : 아라베라라 캡쳐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이 주신 가르침입니다. 귀한 말씀이지만 실천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겪고 있습니다. 사망자가 7천 명을 넘어서 두려움에 떠는 이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한 신부가 코로나19 치료에 필요한 산소호흡기를 젊은이에게 양보한 뒤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도 주세페 베라르델리 신부는 북부 베라가도의 한 병원에서 투병하다 숨졌습니다.

     

    그는 신자들이 치유를 기원하며 그에게 선물한 산소호흡기를 자신보다 젊은 한 환자에게 양보했다고 합니다.

     

    코로나19에 감염되면 나타나는 증상 가운데 하나가 호흡곤란이라고 합니다. 몸이 병을 이길 때까지 버티려면 산소호흡기의 도움을 받는 게 무척 중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베라르델리 신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구명줄 같은 산소호흡기를 일면식도 없는 다른 이에게 양보했습니다. 

     

    베라르델리 신부의 시신은 장례식도 없이 안치됐습니다.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장례식을 포함해 모든 행사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신부의 관이 옮겨지는 동안 베란다에 나와 박수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고 합니다.

    

  • 보문동 주민들이 만든 기적의 마스크

    이미지 : 성북구청

    서울 성북구 보문동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따뜻한 동네가 됐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나서 마을 사람들에게 필요한 마스크를 만들면서 더욱 정이 도탑게 됐기 때문입니다.

     

    보문동 주민 400여 명은 3월 21일부터 13일 동안 성북구패션봉제지원센터에서 한 조에 25명씩 조를 짜 3교대로 밤낮없이 마스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4월 2일 마침내 모든 주민에게 1개씩 나눠줄 수 있는 수제 면 마스크 1만 6천 장을 만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목표했던 마스크 제작이 끝나자 재봉틀에 앉아 있던 주민들 가운데 일부는 창가로 다가 가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보문동의 천 마스크 셀프 보급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의 도움 없이 오롯이 주민들의 힘으로 이뤄졌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주민들은 무엇보다 좁은 골목길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봉제업체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입을 모습니다. 보문동에 자리한 20여 개 봉제업체들이 마스크 원단을 대고 주민들의 작업을 도왔습니다.

     

    보문동 주민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우연히 시작됐습니다.

     

    보문동 새마을금고 회원들 가운데 일부가 마스크 구매를 위해 약국에서 오래 줄을 서서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보기가 민망하다며 마스크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냈습니다.

     

    이 제안이 알려지자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400여 명의 주민들이 자원봉사를 자청했습니다. 낮에 일하고 밤에 성북구패션봉제지원센터를 찾아 봉사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보문동 주민들이 만든 수제 마스크 1만 6천 개는 총선 다음 날인 16일부터 주민들에게 배포된다고 합니다.

    

  • 이탈리아 3D 프린터로 인공호흡기 생산 시작

    이미지 : 레딧

    세계 각국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의료장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장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인공호흡기라고 합니다. 감염 환자는 폐에 이상이 생겨 호흡곤란을 겪기 때문입니다.

     

    어떤 의료진들은 인공호흡기를 갖고 있는지가 삶과 죽음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환자가 폭증하고 사망자 수가 7천 명을 넘어선 이탈리아는 바로 인공호흡기 부족을 겪고 있는 나라입니다.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한 3D 프린팅 회사에 근무하는 두 엔지니어가 해결책을 찾아냈습니다.

     

    3D 프린팅 회사 이시노바의 엔지니어인 크리스챤 프라까시와 알레산드로 로마이올리는 스노클링 마스크를 응용해 인공호흡기를 만들어보는 게 어떠냐는 한 의사의 제안을 받고 그 아이디어를 현실 속에 구현해 냈습니다.

     

    두 사람은 단 3시간 만에 마스크를 3D프린터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영국 매체인 인디펜던트에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지만 코로나19와의 싸움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은 호흡에 쓰이는 밸브를 만들어야 했지만 마스크와 달리 상당한 기술이 필요해 고민이 됐습니다.

     

    이들은 유명 프랑스 스포츠 브랜드인 데카트론에 연락을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데카트론은 흔쾌히 자신들의 스노클링 마스크 제품인 '수베아 이지브레스'에 들어가는 밸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데카트론은 그들의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3D 프린터를 사용해 만든 인공호흡기 [이미지 : 크리스챤 프라까시 유튜브]

     

    드디어 세계 최초로 3D프린터를 사용해 만든 인공호흡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병원에서 테스트한 결과 충분히 사용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개발한 인공호흡기의 특허를 신청했지만 코로나 위기가 끝날 때까지 누구나 3D프린터로 인공호흡기를 만들 수 있도록 3D 프린팅 파일을 무료로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인공호흡기를 만든 것이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한 푼의 로열티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이 만든 인공호흡기는 인증 절차를 받지 않아 곧바로 의료 현장에 투입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신들의 노력이 코로나19와의 싸움에 어떤 형태로든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배우 김남길과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이미지 : 김남길 페이스북

    김남길. ‘대세’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배우입니다.

    그에게는 또 다른 호칭이 있습니다. 문화예술 NGO ‘길스토리’ 대표가 그의 두 번째 ‘직함’입니다.

    길스토리의 목적은 “문화예술 캠페인으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입니다. Rla 김 대표는 “예술이 가난을 구할 수는 없지만 위로할 수는 있다”고 합니다.

    김 대표가 길스토리를 만든 것은 2012년 3월입니다. 길스토리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까지 김 대표가 걸어온 ‘길’이 있습니다.

    길의 시작에는 ‘라파엘의 집’이 있습니다. 그는 2009년쯤 지인의 소개로 중증 장애 어린이를 돌보는 ‘라파엘의 집’에서 처음 경험한 봉사활동에서 조건없이 베푸는 기쁨을 경험했습니다. 배우로서 인정받으며 점점 바빠졌지만 그는 ‘라파엘의 집’을 오가는 길 위에 더욱 자주 섰습니다.

    김 대표의 나눔이 알려지면서 팬들도 봉사활동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축하할 일이 생기면 쌀 화환을 만들어 ‘라파엘의 집’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길은 김 대표를 인도네시아 재난구호 현장으로도 이끌었습니다. 2010년 1월 쓰나미로 폐허가 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다녀온 다음날 이번에는 강진이 아이티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김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아이티의 피해 현장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세계와 나 W-재난과 인간’의 나래이션을 자원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김 대표는 ‘선한 영향력’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고민도 됐습니다. 드러나지 않는 선행을 베풀고 싶었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그를 도드라지게 했습니다. 자신의 활동이 어떤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위선적 행동으로 비칠까 걱정도 됐습니다.

    ‘길스토리’는 그런 고민의 결과물입니다. 배우 김남길의 활동이 아니라 길스토리의 활동에 김남길이 참여하는 틀을 만들면 오해로부터 좀더 자유로울 수 있겠다 생각한 것이지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문화콘텐츠를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길스토리는 2013년 비영리단체로 한 단계 더 발전하게 됩니다. 계기는 필리핀에 큰 피해를 입힌 태풍 하이옌이었습니다. 필리핀의 한 팬이 그에게 ‘필리핀을 위해 기도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태풍 피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길스토리는 그해 12월 이재민을 위한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한달만에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미국, 호주 등 세계 각지에서 400명 가까운 후원자들이 3500만 원의 성금을 보내줬습니다. 당시 길스토리는 비영리단체가 아니라 법적인 문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모금과 집행 전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철저히 관리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내용을 모두 올렸고요.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길스토리를 비영리단체로 등록하기로 했고 2015년 1월 서울시 산하 비영리 민간단체가 됐습니다.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공헌을 표방하는 NGO로서 길스토리는 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길이야기, 길을 읽어주는 남자’입니다.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알리고 그 길에 담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입니다. 

    지금까지 북촌, 성북동, 제주, 한양도성 등을 주제로 영상과 오디오가이드를 제작했습니다. 김 대표가 나래이션을 맡았고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국 언어를 지원합니다.

    길스토리의 프로그램 제작에는 김 대표를 비롯해 작곡가, 통번역사, 카피라이터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프로보노로 참여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김 대표는 길스토리에 돈과 시간과 열정을 쏟아붓게 된 이유에 대해 한 방송사에 출연해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며 겸손해 합니다. 김 대표의 활동에 대해 주위에서 “넌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어서 좋은 일을 하려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가 그런 일을 하면서 조금씩 변하다보니까 사람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 대표는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 ‘열혈사제’에 나왔던 대사를 늘 떠올린다고 합니다. 

    “성인에게도 과거는 있고 죄인에게도 미래는 있다”

  • 음압 병상 간호사의 ‘그림일기’

    이미지 : 간호사 이야기 페이스북

    음압 병동에 투입된 간호사의 ‘그림일기’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그림 그리는 간호사’로 알려진 오영준씨가 ‘그림일기’의 ‘작가’입니다. 한때 미대를 다녔던 오 씨는 2015년부터 ‘간호사 이야기’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과 중환자실에서 일하던 오 씨는 최근 코로나19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국가지정 음압 격리병상을 맡게 됐습니다. 그는 환자 돌보기에 바쁘지만 짬을 내 코로나19와 싸우는 동료 의료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습니다.

     

    ‘냉철한 지성 마음이 따뜻한 간호사’라는 문패 글을 단 그의 페이스북에는 요즈음 방호복을 입고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이는 동료 간호사와 의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림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잠시 방호복을 벗고 생수병을 한 손에 쥔 채 의자에 앉아 쉬는 간호사의 이마에는 외신들이 ‘영광의 배지’라고 상찬을 한 반창고가 붙어 있습니다. 

     

    방호복을 입고 두 겹으로 장갑을 낀 채 입원환자의 정맥에 주사를 놓는 장면은 보기만 해도 힘이 쓰입니다.

     

    오영준 씨가 그린 그림들. 음압 병상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미지 : '간호사 이야기' 페이스북]

     

    오 씨는 그림과 함께 “방호복에 속 겉 장갑을 끼고 처치를 하려니 시간이 두세 배 걸리는 듯합니다. 평소엔 IV 던지면 잡혔는데 말입니다. 에헴 ㅋㅋㅋ”라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잊지 않았습니다.

     

    ‘장갑도 두 개 껴야 해서 진심 잘 안 만져짐’이라는 동료 간호사의 공감 댓글도 있지만 ‘그림일기’에는 간호사와 의료진들을 격려와 응원 댓글이 수십 건씩 달려 있습니다.

     

    ‘존경스러워요’, ‘당신들이 진정한 영웅이십니다’, ‘힘내세요’ 등등. 국내는 물론 대만에 사는 외국인의 격려 메시지도 있습니다.

     

    “간호사님, 맨날 눈팅만 하던 IT업계 사람입니다. 오늘 용인 세브란스병원에 실사 다녀왔어요. 먹먹했습니다. 시간 없어도 뭐라도 어떻게든 입에 밥 넣으시길.. 고맙습니다.”

     

    그림에는 격리병동 안에 있는 의료진이 유리창에 글을 써서 소통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이 병동 안에서 일하는 의료진들은 ‘내 선에서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가장 큰 부담이라고 합니다.

     

    오 씨는 2015년 메르스 사태 때도 감염병 현장에 있었다고 합니다.

    

    오영준 씨가 그린 그림들. 음압 병상에서 근무하는 이들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이미지 : '간호사 이야기' 페이스북]

  • 자폐와 조울증 청년, 채용 안되자 희망 카페 만들다

    이미지 : CBS News 유튜브

    장애로 취직이 어려운 청년이 장애인을 위한 희망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장애인 올림픽에 미국 대표로 출전하기도 했던 마이클 코인은 ADHD와 자폐를 앓고 있습니다. 조울증도 있지요.

     

    코인은 21살이 됐을 때 일자리를 가지려 노력했지만 어느 곳에서도 그를 채용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취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자격을 땄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코인은 자신이 겪는 불편함이 삶을 불가능하게 하는 ‘장애’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편견에 굴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다만 일자리를 찾기 위한 ‘전략’을 바꿨습니다.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자신을 고용하기로 한 것입니다.

     

    지난해 11월 코인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미국 로드아일랜드 북스미스필드에 “레드, 화이트 & 브루 커피하우스”라는 이름의 카페를 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가게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페이스북에 적었습니다.

     

    “우리 가게는 커피 한 잔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우리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고용하고 그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도록 지원해 세상 사람들이 장애를 가진 이들을 보는 시선을 바꾸려고 합니다.”

     

    코인의 가게는 여느 커피숍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로컬푸드 정신에 따라 해당 지역에서 로스팅 한 커피콩을 씁니다.

     

    장애를 가진 지역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그들의 작품을 판매하는 선물가게 ‘버드 바이올렛’과 공간도 공유하고 있습니다.

     

    레드, 화이트 & 브루 커피하우스는 이제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희망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의 ‘성지’가 된 것이지요.

     

    어머니 셰일라 코인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장애 자녀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부모들이 찾아와 가게를 둘러보고 감동해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격리된 교민들 위해 ‘펭수 DJ’된 의사

    중국 우한에서 입국해 격리된 교민들을 위해 DJ를 자처한 의사 얘기가 감동을 줍니다.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우한 교민들이 격리된 충남 아산시경찰인재개발원에는 오후 3시면 ‘라디오 방송’이 시작됐습니다.

     

    15분짜리 ‘미니 프로그램’이지만 함께 지내는 사람들의 사연과 음악을 들려줘 ‘청취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방송 진행자는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가정의학과에서 일하는 A 교수였습니다. 그는 <서울신문>에 “작은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 의사로서 교민의 마음을 보듬어 드릴 수 있어 기뻤다"라고 방송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방송 진행을 위해 A 교수는 많은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PD, 작가, 진행자 등 1인 3역을 해야 했지만 멘트는 물론 목소리 톤에까지 신경을 썼습니다.

     

    고민 끝에 교민들의 마음을 쉽게 열기 위해 대세 캐릭터 ‘펭수’의 성대모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교민들의 사연은 방문 앞에 붙여둔 ‘포스트잇’ 메모지를 통해 전해졌습니다. 교민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적어 문 앞에 붙여 두면 A 교수가 그를 가져다 방송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그는 교민들이 격리 생활을 도울 의료진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했다고 합니다. 코로나 19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생각하며 결심을 굳혔다고 합니다.

     

    2주일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A 교수는 자신에게도 무척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서울신문>에 “부나 명예보다 좀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이로운 연구를 하고 싶다는 꿈이 더욱 강해졌다"라고 말했습니다.

  • 빛고을에 빵집 낸 달구벌 청년

    이미지 출처 : Pixabay.com (Free-Photos)

    굴곡의 현대사를 겪으며 마음으로 가장 멀어진 두 도시를 꼽으라면 광주와 대구를 드는 이들이 많습니다. 

     

    대구의 옛이름 달구벌과 광주를 뜻하는 빛고을의 앞글자를 모아 ‘달빛동맹’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두 도시가 친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적 성향이 너무 달라 마음까지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달구벌의 두 청년이 빛고을에 빵집을 열었습니다. 광주 광산구의 주택가에 자리한 빵집 ‘빵과 장미’가 그곳입니다. 1908년 여성참정권을 요구하며 내건 구호 ‘모든 이에게 빵을, 그리고 장미도’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빵과 장미’의 주인은 서수민씨와 장미주씨입니다. 27살 동갑내기로 서씨는 우리밀과 천연효모로 빵을 만들고 장씨는 가게 운영을 맡습니다. 

     

    두 사람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게 이름이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와 관련이 있느냐는 질문에 ‘인생의 아름다움’을 담은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빵을 통해 아름답게 사는 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빵과 장미’는 운영이 독특한 빵집입니다. 평소에는 여느 빵집과 다름없지만 가끔 ‘빵과 장미’는 작은 영화관으로 변신합니다. 강연장이 되기도 합니다. 빵집 

     

    공간을 크게 차지한 8인용 대형 식탁에도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게 주인은 손님들이 함께 빵을 먹으며 얘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공동체 정신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은 ‘우정과 환대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가게’를 꿈꾼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서씨는 인문학 공부를 위해 광주의 한 대안학교에 입학하면서 빛고을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대학 2학년 때 독일 어학연수를 받을 때 빵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자비로 6개월을 더 머물면서 제빵을 배웠습니다. 돌아와서는 우리밀로 빵만드는 법도 익혔구요.

     

    그 뒤 사회적기업진흥원의 도움을 받아 2019년 11월 ‘빵과 장미’를 열었고 그의 권유로 대구의 한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던 ‘베프(베스트프렌드)’ 장씨가 합류했습니다. 장씨는 기계 부속같은 회사원 삶이 싫었다고 합니다.

  • 멕시코의 총기 업사이클링 예술가

    이미지 : CGTN 뉴스 유튜브

    3만 3369명.

     

    2018년 멕시코에서 살해된 사람의 숫자입니다. 이 가운데 총기를 사용한 살인이 무려 2만 1000건으로 가장 많습니다.

     

    이는 멕시코의 살인 사건이 개인 간 우발적인 다툼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조직적 범죄에 따른 것임을 알려줍니다.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 대부분은 갱단입니다.

     

    갱단의 살해 대상은 민간인은 물론 정치인과 군인, 경찰에까지 이릅니다.

     

    이 같은 죽음의 악순환을 끊고자 멕시코의 예술가 페드로 레이예스는 총을 소재로 예술 작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2008년 'Plas por Pistolas(총을 삽으로)'라는 칼과 창을 쟁기와 보습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이를 통해 1527개의 총으로 1527개의 삽을 만들어 나무 1527그루를 심었습니다. 그가 만든 삽은 각급 학교와 사회 기관에 기증됐습니다.

     

    레이예스가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생명을 해치는 살인무기가 사람은 물론 지구촌의 모든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페드로 레이예스는 총기를 악기로 만드는 '무장해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미지 : CGTN 유튜브]
     

     

    2013년에는 총기로 악기를 만드는 ‘무장해제’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쓰인 재료는 멕시코 북부 도시 시우다드 후아레스에서 군과 경찰이 압수한 총기 6700여 정입니다.

     

    이들 총기는 레예스의 손을 거쳐 마림바, 심벌즈 등 다양한 타악기와 현악기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기에 희생된 이들을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라며 “세계적으로 무기 거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싶었다”라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