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자락에 있는 인도의 시킴(Sikkim) 주가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주는 2018 미래정책상(Future Policy Award)을 받았습니다.
미래정책상은 지구촌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정책을 펴고 있는 곳에 주어지는 상입니다.
FAO는 시킴 주가 세계 최초로 유기농 100% 달성 지역이 됐다는 것을 주요한 수상 이유로 들었습니다.
인구 64만 명의 이 작은 주에는 농업인이 6만 6천여 명인데 이들은 2003년 유기농업 추진을 선언한 뒤 13년 만에 100% 유기농으로 전환했습니다.
여기에는 주 정부의 역할이 컸습니다.
주 정부는 2003년 유기농 100% 달성지역 추진을 선포한 뒤 단계적으로 화학비료 지원을 중단하고 농민을 대상으로 유기농 관련 교육을 대대적으로 시행했습니다.
농민들이 유기농업을 기피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농사짓는 게 너무 힘들기 때문입니다.
제초제 대신 손으로 잡초를 없애느라 “손톱이 자랄 겨를이 없다"라고 할 정도로 유기농업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 정부는 흔들림 없이 유기농 전환을 추진했습니다.
2009년 마침내 농가들이 적극 호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은 자체 유기농 인증 시스템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현재 시킴 주에서는 민관이 함께 운영하는 유기농 인증기관이 있습니다.
시킴 주는 2014년 화학비료와 농약을 주 내부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법률을 공포하기도 했습니다. 농축산과 관련한 법률에도 같은 내용이 포함됐습니다.
주 정부는 주 경계선에서 트럭을 하나하나 점검합니다. 법을 위반할 경우 최고 5년형에 처해집니다.
유기농업 100%를 달성한 뒤 시킴 주에는 관광객이 크게 늘었습니다. 찾아오는 이들이 늘면서 농산물 판매 걱정도 없다고 합니다.
아시아뉴스는 시킴 주의 수상 소식과 함께 이 지역이 100% 유기농 지역이 된 뒤 관광객과 농산물 판매가 늘어 농민들의 소득이 크게 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ALL
Contents List 3
-
피스우즈히말라야 기슭 작은 인도 지방 UN상 받다
-
피스우즈타임지 표지 장식 음바페 “존중, 겸손, 평정이 좌우명"
겸손한 천재 음바페(파리 셍제르망)가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지 표지를 장식했습니다.
타임지는 12일 ‘축구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러시아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우승을 이끈 19살의 축구천재 킬리안 음바페를 표지에 실었습니다.
축구 선수가 타임지 표지에 등장한 것은 리오넬 메시, 마리오 발로텔리, 네이마르 등 3명에 불과했고, 10대 축구선수로서는 음바페가 처음입니다.
재치 있고 의미 있는 제목을 다는 타임지는 메시에게는 ‘왕 레오(King Leo)’, 네이마르는 ‘제2의 펠레(The Next Pele)’라고 표시했습니다.
축구계 안에 만연한 인종 차별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면서 표지에 실은 발로텔리의 경우엔 ‘마리오의 의미(The Meaning of Mario)’란 제목을 달았습니다.
타임지는 음바페를 10년째 이어지고 있는 메시와 호날두 시대를 이을 차세대 리더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음바페는 나이에 맞지 않는 성숙함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그는 타임과 인터뷰에서 자신의 축구 인생을 이끌어 줄 좌우명이 존중, 겸손, 평정심이라고 밝혔습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은 모두 겸손하고 사람들을 존중한다며 자신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는 겁니다.
아프리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파리 교외의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음바페는 가진 것을 벌써부터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있기도 합니다.
음바페는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하자 당초 약속대로 출전 수당과 보너스 전액인 30만 유로(약 4억 원)를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들에 기부했습니다.
그가 기부한 단체 가운데 하나인 프르미에 데 코르데 재단의 세바스티앙 뤼팽 대표는 프랑스 일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음바페가 틈날 때마다 재단을 찾아와 어린이들과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습니다.음바페는 아이들보다 더 즐겁게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뤼팽 대표는 덧붙였습니다.
이 재단은 투병 중인 아동이나 장애를 가진 어린이들의 스포츠 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음바페는 자신이 나고 자란 파리 외곽 봉디의 청소년 25명을 러시아 월드컵에 자비로 초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카메룬 출신 아버지와 알제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지 가정 2세입니다. 저소득층 이민자들이 모여 사는 파리 외곽 봉디에서 유소년 축구클럽을 다니면서 축구선수의 꿈을 키웠습니다.
겸손하고 가슴 따뜻한 천재 음바페는 축구사를 새로 쓰고 있습니다.
16살에 프로에 데뷔한 음바페는 2016~2017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 4경기 연속 골을 넣으며 화려하게 등장했습니다.
그로부터 올해까지 그는 프랑스 1부 리그 우승 2회, 컵대회 우승 2회를 경험했습니다. A매치를 포함한 개인 통산 득점은 68골로 같은 나이 때 메시의 기록을 넘어섰습니다.
무엇보다 세계 축구를 이끌고 있는 메시와 호날두도 못 이룬 월드컵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게다가 결승전에서 골까지 넣었지요. 10대 선수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골을 넣은 것은 1958년 펠레 이후 60년 만입니다.
음바페가 속한 파리 생제르맹은 지난해 음바페 영입에 2400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축구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이적료입니다.
생제르맹은 1조 원을 줘도 음바페를 팔지 않겠다며 애정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음바페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내가 꿈꾸던 삶을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음바페는 누구나 자신처럼 꿈을 이룰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은 말도 했습니다.
“언제나 여러분의 꿈을 믿는다면 언젠가 여러분 중 누군가가 지금의 제 자리에 있을 겁니다.”
-
피스우즈네스프레소, 다 쓴 커피캡슐로 볼펜 만들다
네스프레소의 업사이클링이 호평받고 있습니다.
업사이클링이란 버려지는 물건들에 창의력과 디자인을 더해 완전히 새로운 물품을 만드는 일을 뜻합니다.
네스프레소는 업사이클링으로 예쁜 볼펜을 만들었습니다. 재료는 사용하고 난 커피 캡슐입니다.
캡슐커피 브랜드로 유명한 '네스프레소'는 지난 5월부터 스위스의 고급 필기구 제작회사인 까렌다쉬와 협업해 만든 한정판 볼펜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849 네스프레소'라는 이름의 이 볼펜은 까렌다쉬의 대표적인 모델인 849 제품의 디자인을 토대로 제작되었습니다.
재료는 사용하고 난 네스프레소의 알루미늄 캡슐입니다. 포장 박스 또한 재활용 골판지로 제작돼 친환경적인 제품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IMAGE|132|center|caption]]
네스프레소의 업사이클링 프로그램은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39개국에서 실행 중입니다.
수거된 캡슐은 녹여 알루미늄을 추출해 쓰고 커피 찌꺼기는 영양분이 풍부한 비료 또는 녹색에너지를 만들기 위해 사용됩니다.
네스프레소는 "알루미늄이야말로 네스프레소 그랑크뤼의 신선함, 풍미, 품질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자원"이라며 "알루미늄 덕분에 신선도와 풍미를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포장이 필요가 없고, 따라서 자원 낭비도 줄어든다"고 설명했습니다.
네스프레소는 "캡슐이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충분히 재활용 가능하며, 사용 가능한 분야 또한 넓다"고 했습니다.
네스프레소에 따르면 재활용 알루미늄은 자동차 엔진, 자전거, 컴퓨터, 음료 캔, 또는 새로운 커피 캡슐 등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고 합니다.
네스프레소의 리사이클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캡슐 커피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사용하고 난 캡슐의 처리 문제가 점차 대두되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사용하고 난 캡슐이 환경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캡슐커피 구입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네스프레소는 "캡슐 커피를 이용하는 것이 더욱 친환경적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849 네스프레소 볼펜 외에도 몇가지 업사이클링 제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네스프레소의 대표적인 업사이클 제품으로, 유명 멀티툴 제작회사인 빅토리녹스와 협업하여 만든 멀티툴이 있습니다.
'파이오니어 네스프레소 나이프'라고 불리는 이 제품은, 개당 24개의 재활용 알루미늄 캡슐을 재료로 만든 한정판 제품입니다. 제품의 뒷면과 내장된 칼에는 네스프레스 로고와 한정판이라는 표시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외에도 네스프레소는 체코의 유명한 사이클 자전거 제조회사인 패스트카와 협업하여 '페스트카 네스프레소 도플러'라는 사이클 자전거 만들기도 했습니다.
-
피스우즈기독교 성자 썬다 싱(2) - 성자 마하리쉬 만나다
예수님의 현현은 썬다 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꿨습니다. 썬다 싱은 그 순간부터 평생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시크교도인 아버지와 가족 친지들은 썬다 싱의 그런 변신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생각해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은 썬다 싱에게 싸준 점심밥에 독약을 넣어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썬다 싱은 성공회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회가 운영하는 병원 일을 도우며 틈날 때마다 고요히 묵상을 했습니다.
그렇게 33일이 지난 뒤 썬다 싱은 사두로서 길을 나섰습니다. 사두는 인도에서 집을 떠나 길에서 생활하는 수행자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듬해 썬다 싱은 코드갈이라는 곳에서 스토크스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성 프란치스코의 가르침대로 청빈한 삶을 살고자 인도에 온 사람이었습니다. 썬다 싱은 그와 2년 동안 동행하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삶과 가르침을 알게 됐고 이를 통해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습니다.
썬다 싱은 전도 여행 중에 귀한 만남을 가집니다. 그가 힌두신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알려진 성산 카일라스에 이르렀을 때 그는 돌십자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힌두교의 성산에 십자가라니.
그는 십자가의 ‘주인'을 찾아 주변을 다니다 몸의 균형을 잃고 비탈길에서 굴러떨어지며 정신을 잃었습니다. 얼마를 지났을까 의식을 되찾고 보니 큰 동굴 입구에 백발로 전신이 뒤덮인 노인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노인의 모습은 기괴했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과 눈썹이 길게 자라 온몸과 얼굴을 덮고 있어서 얼핏 봐서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야생 곰이나 전설의 히말라야 설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하리쉬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그 성자는 당시 자신의 나이를 318세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원래 이슬람교도였으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 자비에르의 조카 제르나우스자비에르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그는 썬다 싱에게 함께 기도하자면서 자비에르가 줬다는 양피지 신약성경을 꺼내더니 썬다 싱에게 산상수훈을 읽어줬습니다. 마하리쉬는 이 양피지 성경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하고 썬다 싱에게 선물로 줍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하리쉬는 그동안 썬다 싱이 겪은 일들을 직접 본 듯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표범과 함께 밤을 지낸 일, 산길에서 굴러떨어진 일 등등.
마하리쉬는 썬다 싱에게 천국과 지옥, 삶과 죽음, 죽음 뒤의 세계 등에 대해 많은 가르침을 줬습니다.
썬다 싱은 마하리쉬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고 텅 빈 마음에 사랑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베푸는 일에는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썬다 싱이 열 번째 히말라야를 넘을 때였습니다. 티베트 사람 한 명과 길을 가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폭설로 산길이 모두 막힌 데다 눈보라가 쳤습니다.
두 사람은 길을 가다 눈길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그 사람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얼어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썬다 싱은 그 사람을 업고 가자고 했지만 동행인은 그러다가 우리도 함께 죽는다며 혼자 길을 재촉했습니다.
썬다 싱은 그 사람을 들쳐 업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산길을 헤쳐나갔습니다.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몇 시간을 지났을까 길에서 또 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을 봤습니다. 얼어 죽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함께 길을 갔던 티베트 사람이었습니다.
시체처럼 축 늘어진 사람을 업은 썬다 싱은 힘이 들어 몸에 열이 났고 그 열기가 얼어서 죽어가던 사람에게 전달되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썬다 싱도 힘은 들었지만 몸에서 나온 뜨거운 열기로 히말라야의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이지요.(계속)
-
피스우즈요셉의원, 큰 병원보다 더 큰 병원
“너희가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서울 영등포역 근처 쪽방촌 한가운데 자리한 요셉의원은 성경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자들’을 무료 진료하는 곳입니다.
병원에는 하루에 100명이 넘는 환자들이 옵니다.
대부분 노숙인이나 행려병자입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감기약 한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진료받을 곳이 없어 병을 키우기 일쑤인 외국인 노동자들도 이곳을 찾습니다.
병원 운영에는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서울카톨릭사회복지회 부설인 요셉의원은 의료인 외에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단식하며 하루에 500원씩 모은 돈을 보내주는 버스 기사, 후원금을 내기 위해 미국에서 온 본, 시주 받으러 왔다가 후원금을 내도 간 스님까지 많은 분들이 요셉의원을 후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오는 분들은 몸이 병들었지만 마음이 더 아픈 분들이 많습니다.
의사나 간호사는 물론 자원봉사자들은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는데 더욱 신경을 씁니다.
한 목욕 봉사자는 악취가 진동하는 환자의 발에 입을 맞추고 온몸을 깨끗이 씻기고 닦았다고 합니다. 세상 누구도 가까이 오려 하지 않는 자신의 발에 따듯한 입술이 닿았을 때 그분의 마음은 어땠을까요?[[IMAGE|174|center|caption]]
요셉의원은 2008년 세상을 떠난 고 선우경식 박사가 ‘지극히 작은 자’를 위해 1987년 세운 무료병원입니다.
1969년 가톨릭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킹스브룩 주이스 메디컬 센터에서 내과학을 전공한 선우 박사는 귀국한 뒤 한림대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1983년부터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진료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1987년 선우 박사는 돈이 없어 치료받지 못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아예 병원을 세웠습니다. 요셉의원의 시작입니다. 개원 첫 달 1000만 원의 적자가 날 정도로 병원 운영이 어려웠지만 선우 박사는 직접 나서서 쌀을 얻어오고 의약품을 기부받았습니다.
선우 박사가 요셉의원을 만든 것은 처음 의학을 공부할 때 사람을 살리는 데 의술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시작한 알입니다.
퇴근길에 길가에 쓰러진 환자를 데리고 가 치료하면 그렇게 마음을 좋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선우 박사에게 어느 날 병마가 찾아옵니다. 2006년 위암 수술을 받고 투병하면서도 병원을 찾았던 그는 2008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영등포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선우경식 박사의 뒤를 이은 사람은 신완식 박사입니다.
감염내과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가톨릭의대 교수였던 신 박사는 여의도성모병원 내과 과장으로 ‘잘 나가던’ 의사였습니다.
하지만 신 박사는 2009년 정년을 6년 앞두고 월급 한 푼 없는 요셉의원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전문의가 됐을 때 개업해서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힘들게 공부했으니 세상과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라고 몇 번을 당부하셨던 아버지의 말씀이 그때 다시 생각났다고 합니다.
신 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요셉의원에서 가슴으로 웃는 법을 알았고 세상에 감사할 줄 아는 삶을 찾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처럼 요셉의원에서 참 행복을 찾은 이들이 많습니다. 600여 명의 자원봉사자와 1만 1000여 명의 후원자들이 그들입니다.
한 여중생은 요셉의원 소식지에 쓴 글에서 “커다란 병원보다 더 큰 병원”이라고 적었습니다.
요셉의원 홈페이지에 원장 신부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적었습니다.
“과거는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고 미래는 하느님의 섭리에 맡기라” -
피스우즈행복의 문이 닫혀도, 다른 문들이 열립니다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대개 닫힌 문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우리를 위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합니다.
- 헬렌 켈러 -
-
피스우즈할아버지가 말썽꾸러기 손자와 쇼핑하는 법
한 할아버지가 세 살바기 손자와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할아버지가 식료품 코너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을 때 세 살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사탕을 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비스킷이 쌓여 있는 곳에 도착하자 손자는 이번에는 비스킷을 달라고 고함을 질렀습니다.
또 다른 코너에 이르자 손자는 과일과 시리얼이 먹고 싶다고 다시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당황할 법도 하지만 할아버지는 내내 침착했습니다.
“윌리엄,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진정해”
손자의 고함과 떼쓰기는 계속됐습니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평정심을 잃기 않았습니다.
“얘야 조금만 참으렴”
손자는 마침내 카트에 담긴 물건을 내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도 할아버지는 침착하게 타이르기만 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윌리엄, 윌리엄 진정해. 화내지마. 어찌됐든 우리는 5분 안에 집에 갈 수 있을거야. 침착해 윌리엄”
한 여성은 할아버지의 그런 모습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할아버지를 따라 주차장으로 가서 물었습니다.
“손자가 그렇게 시끄럽게 굴어도 참 침착하게 모든 것이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감동했습니다. 윌리엄은 이런 훌륭한 할아버지가 계셔서 참 좋을 것 같아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윌리엄은 손자가 아니라 제 이름입니다. 이 작은 꼬마의 이름은 케빈이지요”
-
이정숙 에디터‘숨쉬는 방’에서 학생들이 달라졌다
숨쉬는 방이 있는 학교를 아시나요?
샌프란시스코의 마리나 중학교에는 '숨쉬는 방'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나 숨을 쉬는데 숨쉬는 방이 필요하냐고요?
사실 이 학교의 '숨쉬는 방'은 명상을 위한 곳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명상 프로그램의 이름이기도 하구요. 학생들은 이곳에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연습을 합니다. 바로 명상이지요.
마리나 중학교가 명상프로그램을 도입하기로 한 것은 제멋대로 굴거나 배우는데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마리나 중학교는 학생수가 900명이나 되는 그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학교 가운데 하나입니다.
학생들은 출신이 다양합니다. 백인은 드물고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 계통을 학생들이 많습니다. 가정 형편도 좋지 못하고요.
원인은 복합적이겠지만 이 학교는 정학 처분을 받는 학생의 비율이 가장 높은 학교이기도 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마리나 중학교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명상입니다.
학교는 ‘숨쉬는 방’을 만들어 학생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숨을 지켜보며 명상을 하도록 했습니다.
효과는 작지 않았습니다.
오빠가 갱 조직 사이의 다툼에서 살해된 한 학생은 명상을 한 뒤 자신이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게 됐다고 말합니다. 예술가가 꿈인 한 학생은 그림을 그릴 때 더 잘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습니다. 한 학생의 어머니는 딸이 다른 사람들을 더 존중하게 됐고 성적도 올랐다고 말합니다.
연구 결과도 그런 사실을 뒷받침해줍니다.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2학년과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명상을 통해 집중력, 학업성취도, 사회성 등이 모두 크게 좋아졌다고 합니다.
마리나 중학교의 ‘숨쉬는 방’ 이야기는 다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
피스우즈홍콩 대표 영화배우 주윤발 8000억 대 전 재산 기부
홍콩 영화배우 주윤발이 8000억 원대의 재산을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주윤발은 최근 홍콩의 한 영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전 재산인 56억 홍콩달러(약 8100억 원)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영화 홍보를 위해 대만을 방문했을 때 팬들 앞에서도 같은 다짐을 했습니다.
“그 돈은 내 것이 아니라 내가 잠시 보관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주윤발은 1980년대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으로 홍콩 누아르 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대표 배우입니다.
그 뒤에도 '와호장룡', '황후화',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 '리플레이스먼트 킬러' 등 중화권과 할리우드의 여러 영화에 출연했습니다.주윤발은 많은 팬을 갖고 있습니다. 연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주윤발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한달 용돈으로 12만 원을 쓰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버스를 타고 다닙니다. 개인 차량도 없습니다.
휴대폰이 고장 나기 전까지 17년 동안 썼다는 일화도 유명합니다.
대중교통을 주로 이용하고 서민들이 가는 식당을 즐겨 찾기 때문에 홍콩 시민들은 그와조우할 때가 많습니다. 주윤발은 시민들의 사진 촬영 요구에도 늘 기쁘게 응합니다.
팬들은 주윤발의 말과 행동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것은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평화롭고 평온한 태도로 사는 것입니다. 내 꿈은 행복해지는 것이고 보통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주윤발의 아내 천우리롄도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1987년 주윤발과 결혼한 그는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는 남편의 결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출연료를 투자해 자산을 늘렸을 뿐 아니라 주유발의 기부활동을 돕기 위해 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두 부부의 삶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
피스우즈예수님이 밝히신 하늘나라 들어가는 법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