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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끼리 고아원’을 만든 다프네 셀드릭

    케냐 나이로비에 코끼리 고아원을 설립한 故 다프네 셀드릭. [이미지 : 쉘드릭 와일드라이프 트러스트 공식 홈페이지]

    동물보호운동가인 다프네 셀드릭은 삶의 대부분을 아프리카의 어미 잃은 아기 코끼리들을 구하고 돌보는 데 보냈습니다.

     

    그가 구한 아기 코끼리의 어미들은 모두 상아를 노리는 사냥꾼에 희생당했습니다. 다프네는 ‘코끼리 고아원’을 운영하며 아기 코끼리를 구출해 돌본 뒤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2018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다프네의 가장 큰 공적 가운데 하나는 코코넛 오일이 아기 코끼리들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다프네가 처음 발견한 어미 잃은 두 마리의 새끼 코끼리는 우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 먹이를 먹였는데도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거의 모든 조합을 시도해 본 끝에 코코넛 오일이 든 우유가 아기 코끼리에게 적합함을 알게 됐습니다. 그의 이런 발견으로 세계 각지에서 구출된 수천 마리의 아기 코끼리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다프네는 어미의 죽음으로 심각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아기 코끼리들을 위로하고 그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일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IMAGE|382|center|故 다프네 셀드릭이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에서 아기 코끼리를 돌보고 있다. 나이로비 코끼리 고아원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무한도전의 정준하가 아기 코끼리 도토를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 ]]

     

    다프네는 생전에 “코끼리는 감정적으로 사람과 다르지 않다"라고 그를 찾아온 기자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가족을 잃고 적의 손에 붙잡힌 아이가 어떤 감정을 느꼈겠습니까?”

     

    그는 코끼리들이 세상을 떠난 동료를 애도하기 위해 오랜 기간 머문다는 사실을 예로 들기도 했습니다.

     

    아기 코끼리를 구출하고 키우면서 그는 세계에서 코끼리와 가장 대화를 잘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다프네가 돌본 뒤 야생으로 돌아간 코끼리들은 언제 만나더라도 그를 알아봤습니다. 낳아 기른 아기를 보여주려는 듯 다프네가 있는 곳을 부러 찾는 코끼리들도 있다고 합니다.

     

    위험한 때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그는 자신이 키운 뒤 돌려보낸 코끼리인 줄 알고 다가갔다가 공격을 받았습니다. 코끼리는 코로 그를 휘감아 내동댕이쳤고 바위 무더기 위해 떨어진 그는 한쪽 다리가 부러졌고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그는 코끼리가 다가오자 죽음의 위협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코끼리는 그의 냄새를 맡더니 그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주위를 살피다가 떠나갔습니다. 다프네는 코끼리가 인간으로부터 수없이 위협을 당한 경험으로 자신을 공격했지만 이내 자신이 친구임을 알아봤던 것이라고 회고했습니다.

     

     

    [[IMAGE|384|center|故 다프네 셀드릭이 젊은 시절 딸과 코끼리와 함께 촬영한 사진. [이미지 :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 ]]

     

    다프네가 아기 코끼리를 구하는 일을 시작한 것은 남편 데이비드 셀드릭 때문이었습니다. 다프네의 두 번째 남편인 데이비드는 1960년대 케냐의 차보(Tsave) 국립공원 소장으로 일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야생동물을 도우면서 다프네는 밀렵꾼으로 인해 고아가 된 코끼리가 많음을 알고 이들을 돌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1977년 남편이 심장마비로 57세에 사망하자 다프네는 남편을 기리기 위해 데이비드 셀드릭 야생 재단을 만들어 차보 공원에 전초기지를 두고 코끼리 고아원을 운영했습니다.

     

    다프네는 생전에 상아 거래 금지를 적극 옹호했습니다. 특히 그는 상아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상아 판매를 금지하도록 세계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프네는 2014년 라는 자서전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남편 데이비드가 권해서 읽은 책의 한 구절을 담았습니다. 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얻은 트라우마를 자연 속에서 치유한 헨리 베스턴이라는 사람의 책이었습니다.

     

    “동물에 관한 더 현명한 아니 더 신비로운 또 다른 개념이 필요합니다. 그들은 우리 세계보다 더 오래되고 복잡한 세계에서 기품 있게 움직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잃어버렸거나 결코 갖지 못했던 예리한 선천적 감각을 갖고 있어서 완전하며 우리가 결코 듣지 못할 목소리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들은 우리 형제가 아니며 부하도 아닙니다. 그들은 생명과 시간이라는 그물 속에서 우리와 함께 붙잡힌 다른 민족이자 지구의 영화와 시련을 함께 누리는 동반자들입니다.”

     

     

    [[IMAGE|381|center|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에서 사육사가 아기 코끼리를 돌보고 있다. 나이로비 코끼리 고아원으로도 알려진 이곳은 무한도전의 정준하가 아기 코끼리 도토를 만난 곳으로 유명하다. [이미지 : 데이비드 셀드릭 코끼리 고아원] ]]

  • 학습장애 아이를 바꾼 선생님의 한마디

    레스 브라운은 오하이오 주 하원 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It's Possible!"이라는 캐치프라이즈로 유명한 동기부여 연사이기도 하다. [이미지 : 레스 브라운 페이스북]

    레스 브라운은 생전에 자기개발과 동기부여 분야에서 이름난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작가이면서 라디오 DJ를 했었고 레스브라운쇼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어릴 적 삶은 불행했습니다. 미국 마이애미주 리버티시의 버려진 건물 바닥에서 태어난 그는 가난뿐 아니라 학습장애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에게는 ‘교육적 정신장애자’라는 딱지가 붙었고 6학년에서 5학년으로 강등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쌍둥이 동생은 너무 똑똑하고 재능이 많아 다른 학생들은 레스를 ‘멍청한 쌍둥이’라고 부를 정도였습니다. 완전히 자신감을 잃은 것은 두말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한 선생님이 레스의 삶을 바꿔 놓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한 선생님이 레스에게 칠판에 적힌 문제를 풀어보라고 했을 때 레스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선생님이 “넌 할 수 있어”라고 격려했지만 레스는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레스의 그런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지요.

     

    그러자 선생님은 교탁 뒤에서 걸어 나와 레스와 눈을 맞추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레스, 너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현실로 만들 필요는 없단다”

     

    그 한 마디가 어린 레스의 가슴을 움직였습니다. 바보, 학습장애자 등 자신을 향한 친구들의 놀림은 그들의 의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레스는 변했습니다. 평생 그 말을 잊지 않고 온갖 역경을 딛고 노력해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강사가 됐습니다.

     

    레스는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위대함을 갖고 있습니다.”

    “인생이란 힘들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한 여행이라고 믿지만 우리 모두는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 인터넷 서비스 기사의 친절이 준 감동

    한 인터넷 서비스 기사의 친절한 행동이 SNS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 픽사베이]

    캘리포니아 남부에 사는 한 간호사가 인터넷 관리회사 대표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간호사로 일하는 제시카 도나후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수리기사의 친절에 감동한 내용을 글로 쓰고 그 기사가 자신의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다음은 도나후가 올린 글 내용입니다.

     

    "스펙트럼 인터넷사 귀하

     

    오늘 인터넷 기술자 로버트가 집에 와서 인터넷을 업그레이드하고 TV 스트리밍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줬습니다.

     

    그는 엉망진창인 우리 집에 왔습니다. 세 살배기 아들인 세일러는 뇌에 문제가 있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아이입니다. 원하는 것을 달라고 할 줄도 모르지요.

     

    오늘은 세일러가 기분이 좋지 않은지 아침 내내 울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일하는 동안 우는 아들을 달래고 두 살배기 딸을 돌보면서 청소, 설거지, 세탁 등을 해야 했지요.

     

    로버트가 방문하자 세일러는 그에게 달려가 안겼습니다. 로버트는 귀찮아하는 대신 집안에 머물던 45분 동안 세일러를 안아줬습니다. 로버트는 제가 빨래를 개는 동안 제 아들을 꼭 껴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피곤에 절은 엄마에게 엄청난 안도감을 줬습니다.

     

    로버트는 잽싸게 자신이 할 일만 하고 떠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터넷을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고객이 더 필요로 하는 것을 알자 도움을 줬습니다.

     

    로버트의 행동은 고객에 대한 서비스를 훨씬 넘어서는 최고의 인간애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로버트는 칭찬을 받아 마땅하고 승진이나 어떤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로버트는 귀사의 훌륭한 일꾼입니다. 저는 오늘 그가 보여준 친절한 행동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도나후가 올린 글은 SNS를 통해 퍼져나가 스펙트럼사의 부회장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 역시 장애를 가진 자녀가 있어서 도나후의 글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스텍트럼사는 “우리도 로버트가 무척 자랑스럽다. 그에게 반드시 보상을 하겠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 준 제시카씨에게 감사드린다"라고 밝혔습니다.

     

    로버트 키드니는 네 살 아이를 혼자 키우는 싱글대디로 9년 동안 스펙트럼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IMAGE|375|center|제시카는 인터넷 수리기사 로버트가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는 사진과 함께 사연을 SNS에 업로드했다. 로버트의 친절함은 SNS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상사의 귀에도 들어갔다. [이미지 : 제시카 도나후 페이스북] ]]

  • 봉급의 80%를 제자 위해 쓰는 교사

    케냐의 교사 피터 타비치(36)가 2019년 세계교사상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들고 있다. [이미지 : Global Teacher Prize 공식 홈페이지]

    케냐 시골학교의 과학교사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선생님으로 뽑혀 상금 100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케냐의 리프트밸리에서도 오지인 프와니빌리지의 케리코 중학교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피터 타비치(36)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세계 교사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교사로 뽑혔습니다. 

     

    타비치는 이날 시상식에서 진행자 영화배우 휴 잭맨으로부터 트로피와 상금을 전달받고 “이 상이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게 될 것”이라며 활짝 웃었습니다.  

     

    세계 교사상은 바르키재단이 주관하는 행사로 올해 179개 나라에서 1만여 명이 추천됐습니다. 

     

    타비치는 프란체스코 수도화의 멤버로 자신이 받는 봉급의 80%를 가난한 학생들에게 교복과 교과서를 사주는 데 썼다고 합니다.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자신의 전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가난을 신부로 맞아’ 평생을 청빈하게 살면서 어려운 이들을 도운 프란체스코 성인의 삶을 따르고자 만들어진 단체입니다.  

     

    타비치는 케냐의 가장 가난한 마을 가운데 하나인 프와니빌리지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90% 이상은 빈곤가정 출신이고 1/3은 고아들이거나 편부모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5~7km 가량을 걸어서 등교하는데 우기에는 학교에 가기가 불가능할 때도 있습니다.  

     

    마약에 손을 댄 아이들도 있고 임신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조혼을 하는 학생도 적지 않고, 심지어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의 교육 환경도 무척 열악합니다. 학교에 컴퓨터가 한 대뿐이고 인터넷 환경도 좋지 않습니다. 교사 한 명이 60명에 가까운 학생을 돌봐야 합니다.  

     

    타비치는 아이들을 위해 재능육성동아리를 만들었고 이를 과학동아리로 발전시켰습니다. 타비치와 4명의 동료 교사들은 아이들을 1대1로 맡아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고 틈나면 가정을 방문해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으려 하는 부모들을 설득했습니다.  

     

    그들의 노력으로 이 학교 학생 수는 지난 3년 동안 두 배 이상 늘어나 400여 명이 됐습니다. 특히 여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크게 향상됐습니다.  

     

    타비치와 동료 교사들이 지도한 과학동아리에서도 성과가 났습니다. 학생들은 국제 과학경진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탔고 영국왕립학회가 주는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타비치는 시상식에서 “내가 여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내 학생들이 이룩한 성과 때문”이라며 “이 상이 그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음을 세상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아프리카는 세계 곳곳에서 이름을 떨칠 과학자, 기술자, 사업가를 배출할 것입니다. 특히 여성들이 그런 성공 스토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저는 과학과 기술이 아프리카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아프리카의 아침입니다. 하늘도 활짝 갰습니다. 이제 아프리카의 시대입니다.”

  • 1000번의 감사를 위해 세계를 누빈 작가

    <<미친 척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아본 1년>>의 저자로 유명한 에이제이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실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미지 : TED 캡처]

    미국 작가인 A. J. 제이콥스는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 아이들에게도 늘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북돋워 줬습니다. 그와 아내는 아이들에게 감사 노트를 쓰게 하기도 했습니다. 버스 운전사는 물론이고 날씨를 알려주는 인공지능 로봇 알렉사에게도 말이지요. 

     

    추수감사절에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식탁에 오른 음식이 있기까지 도움을 준 이들에게 감사 기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제인이 제이콥스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감사하는 그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으니까 감사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아세요? 아빠가 진심으로 감사한다면 직접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요?” 

     

    제이콥스는 아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뉴욕 맨해튼에 사는 이 작가는 모닝커피를 마시도록 해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의 감사 인사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제이콥스가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을 감사 인사를 직접 전할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관여된 사람이 생각보다 적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동네 커피점에서 일하는 바리스타를 대상으로 시작한 감사 인사는 끝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동네 커피가게의 바리스타, 원두커피 판매자, 원두커피가 담긴 포장지를 만든 사람, 원두커피를 싣고 온 운전기사, 원두커피를 실은 트럭이 다닐 수 있게 도로를 만들어 준 사람 등등. 

     

    그는 자신이 마시는 커피 컵의 뚜껑을 발명한 더그 플레밍이라는 발명가에도 연락을 해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그가 매일 마시는 모닝커피와 관련된 사람들은 세계 각지에 퍼져 있었고 그가 감사해야 할 사람들은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심지어 도로의 중앙선을 그어준 사람도 그가 감사해야 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그는 커피를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남미의 콜롬비아에까지 찾아갔습니다. 자신을 콜롬비아의 깊은 산속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벼랑길을 운전하는 기사에게도 당연히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전화를 걸거나 이메일을 통해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이콥을 텔레마케터나 다단계판매원으로 오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감사 인사를 받고 행복해했다고 합니다.  

     

    제이콥스는 이 프로젝트에 ‘천 명에 감사하기(Thanks a thousand)’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결국 천 명이 넘는 사람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상이 생각보다 촘촘하게 연결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아주 사소한 물건에도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 부정적인 사고에 익숙하고 심굴 궂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감사 여행을 하면서 그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합니다. 감사 프로젝트를 하면서 제3세계의 식수 문제 해결을 돕는 단체를 알게 되어 후원도 시작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행복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들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결과는 감사하면 삶이 여유롭고 행복해진다고 합니다. 마음이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행동이 마음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다"

    찰스 로퍼(Charles Roper) 박사가 쓴 아름다운 시를 소개합니다. 번역이 서툴지만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나는 들었다

     

    나무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당당히 서되 숙일 줄도 알라

    포용적이고 유연해야 한다

    자신에게 솔직하라

    홀로 서라, 그리고 함께 서 있으라

    용감하라

    인내심을 길러라

    시간이 지나면 너는 성장할 것이다.

     

    바람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숨을 느껴보라

    자신의 몸, 마음, 영혼까지 모두 돌보라

    여유를 가져라

    침묵하라

    가슴의 소리를 들어라

    용서하라

     

    태양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른 이를 돌보라

    네게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함을 다른 이들이 느끼도록 하라

    바라지 말고 베풀라

     

    냇물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라

    진실로 중요한 것에 마음을 쏟고

    나머지는 그냥 흘러가게 내버려 두라

    멈추지 말고 움직여라. 주저하거나 두려워 말라

    모든 일을 가볍게 생각하라.. 웃고 낄낄대라

     

    산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 머물라

    정직하라

    믿음직한 사람이 되라

    하겠다고 말한 일은 해보라

    무엇보다 진실되게 하라

    양심에서 나온 말을 하라

    속이지 말라

     

    새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자신을 자유롭게 하라.

    노래하라

    깃털처럼 가볍고 명랑하라

    때로는 무거운 슬픔도 느껴보라

    슬플 때는 울어라

     

    하늘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경계와 장벽을 허물라

    변화를 경험하라.

    자유롭게 날아올라라

     

    꽃들과 작은 식물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겸손하라

    소박하라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라

    겸손과 진실의 아름다움을 존중하라

    완벽하겠다는 생각을 버려라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그러면 변화의 문이 열린다.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라.

     

    벌레들과 곤충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하라.

    생산적인 사람이 되라.

    손을 사용하라.

    눈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라.

    과거는 무시하라, 지금만이 있을 뿐이다.

     

    달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랑하라.

    사랑을 나누라.

    사랑을 만들라.

    낭만적이 되라. 느끼고 보듬어 주라.

    다른 이의 사랑을 받아들여라.

    다른 이를 점잖고 친절하게 대하고 이해하도록 하라.

    촛불을 사용하라.

     

    별들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춤추며 놀아라.

    생각을 비우고 즐겨라

     

    지구가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너의 어머니다.

    나는 네게 생명을 줬다.

    주위의 모든 것들을 존중하라.

    너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라.

    살아 있던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분리되지 않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특별히 어린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을 존중하라.

    그들은 모두 신에게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고등한 생명체라는 믿음을 버려라.

    우월한 생명체라는 것은 없다.

    우리 모두는 똑같이 평등한 존재다.

    나에게 돌아올 때 나는 너를 환영할 것이다.

    그리고 네 영혼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잘 양육하라.

    좋은 음식을 만들어 주고 자주 그들을 꼭 안아주라.

    나도 자주 꼭 안아주라.

    그러면 나도 너에게 그렇게 하겠다. 나는 너를 지지한다.

    믿음을 가져라.

  • 추신수 “난 현금지급기 아니다”, 두 아들 클럽하우스 자원봉사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이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다고 13일 MLB닷컴이 전했다. [이미지 : 플리커(https://www.flickr.com/photos/keithallison/14552006471/), CC BY-SA 2.0 라이선스]

    추신수 선수의 두 아들이 텍사스 레인저스 구단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한다고 합니다.

    미 프로야구 공식 사이트인 MLB닷컴은 13일 추신수의 아들 앨런(무빈)과 에이든(건우)가 텍사스 구단의 클럽하우스에서 자원봉사를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클럽하우스는 ‘선수단의 집’과 같은 곳입니다. 프로야구 선수는 물론 감독과 코치 등 선수단이 생활하는 공간입니다. 이들이 집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클럽하우스입니다.

    다양한 공간이 클럽하우스에 있습니다. 감독실, 코칭스태프실, 구단스태프실, 선수라커룸, 식당, 샤워실, 비디오 분석실, 실내 훈련장, 세탁실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추 선수의 두 아들은 클럽하우스를 청소하고 세탁물을 나르는 일을 하게 된다고 MLB닷컴은 덧붙였습니다.

    이 매체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고액 연봉자이자 지난해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외야수로 뽑힌 추신수 선수라고 강조했습니다.

    올해 연봉 238억 원을 받는 추신수 같은 선수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 건 미국 사회에서 드문 일입니다.

    추신수 선수는 이에 대해 “나는 아이들의 현금지급기가 아니다”라며 “두 아들이 클럽하우스에서 일하는 아이들이 선수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를 보고 아이들이 뭔가를 배웠으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6명 고아 입양해 평생 바친 100살 독신 할아버지

    6명의 고아를 키우느라 평생 독신으로 산 할아버지가 100세 생일을 맞았습니다. 

     

    중국 하얼빈 다오와이 펑룬에 사는 펑윈송 할아버지는 지난 4일 자신이 입양해 키운 6명의 자녀들로부터 100세 생일 축하를 받았습니다. 

     

    펑  할아버지가 고아들과 인연을 시작한 것은 그가 35세이던 1954년이었습니다.  

     

    흑룡강성 화학공업국 소속 노동자로 일하고 있던 그는 길을 가다 철길 위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났습니다. 주머니에 있던 만두를 꺼내 건네주자 그 아이는 허겁지겁 먹어치웠습니다. 

     

    “몇 살이니?” 

    “8살입니다” 

    “가족은?” 

    “없어요”. 

     

    펑 할아버지는 차마 그 아이를 두고 돌아설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아이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우리 집에 가서 나와 함께 살자.” 

     

    그렇게 만난 8살 아이가 첫 번째 입양 아들인 얀 진챙입니다. 그로부터 15년 동안 모두 5명의 아들과 1명의 딸을 입양했습니다. 

     

    막내딸로 입양된 장 추징은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굶주림과 외로움에 죽음을 떠올린 적이 수도 없었다"라며 “어느 날 아빠가 찾아와 “얘야, 나와 같이 가자. 잘 먹을 수는 없지만 충분히 먹을 수는 있게 해주마”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펑윈송 할아버지는 당시 먹고살기 위해 고향인 산둥성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하얼빈으로 갔고 화학기계 공장에서 임시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책임감과 성실함을 인정받아 얼마 지나지 않아 흑룡강 성 화학공업국의 노동자로 채용됐습니다. 

     

    하지만 첫 아들을 입양했을 때 한 달 월급은 30위안(한화 약 5000원)에 불과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월급은 조금씩 올랐지만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여전히 생활에는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펑 할아버지는 귀갓길에 늘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을 샀습니다. 

     

    넷째 아들인 가오 유빙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에 가장 행복했던 것은 우리가 문간에 서서 아버지를 기다리며 길을 바라봤던 때였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중추절에 월병을 먹는 데 어느 해 펑 할아버지가 받은 월병이 하나뿐이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작은 월병을 6조각 내어 아이들에게 한 조각씩 먹였습니다. 자녀들은 그때 먹은 월병이 평생 먹어본 음식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기억합니다. 

     

    펑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도 힘을 쏟았습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했지만 어느 한 아이도 공부 대신 일을 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다섯 마리의 염소를 길러 매일 아침 염소젖을 짜서 시장에 팔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아이들이 생활비를 보태기 위해 폐지를 줍는 일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다시 한 번 그런 일을 한다면 내쫓겠다"라고 혼을 냈습니다. 일찍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을 쏟으면 그릇될 수 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구오 엥총이 군대에 가게 됐을 때 펑 할아버지는 아들의 주머니에 몰래 10위안을 넣어줬습니다. 구오는 나중에 주머니에 든 돈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 돈이 가족의 반 달치 생활비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웃들이 장가를 들라고 여성을 소개해준 일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6명의 고아를 키우는 그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그 얘기를 듣고 자신들을 버리지 말아 달라고 울며 매달렸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는 선이 들어와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가정을 꾸린 뒤에도 펑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짐이 될까 봐 혼자 살았습니다. 아이들의 간청에 못 이겨 2013년 94세가 되어서야 한 자식의 집으로 거쳐를 옮겼습니다.  

     

    펑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그는 2016년 ‘중국의 선한 사람들 목록’에 올랐습니다. 일곱 가지의 성을 가진 한 가족의 얘기는 큰 감동을 줬습니다. 

     

    서로 다른 성씨로 자란 아이들은 자신들의 성을 펑씨로 바꾸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펑 할아버지는 “근본을 나타내는 성이 있는데 이를 바꿔서는 안된다"라고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자녀들은 “다음 생에 태어나도 우리는 한 가족”이라며 여러 차례 눈물로 호소해 2013년 마침내 펑씨 성을 갖게 됐습니다.

  • 업드림코리아, 가난한 이들 지원이 목표인 회사

    업드림코리아는 ‘소비를 통한 기부문화 정착’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처이자 예비 사회적기업이다. 사진은 업드림코리아 단체 사진. [이미지 : 업드림코리아 홈페이지]

    ‘선함을 일상으로’

     

    이지웅 씨가 대표로 있는 업드림코리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말입니다. 이 회사의 비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업드림코리아는 트랜디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그를 통해 얻은 수익을 저소득층이나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해 씀으로써 ‘소비를 통한 기부문화의 정착’을 목표로 하는 소셜벤처이자 예비 사회적기업입니다.

     

    회사 이름에는 '꿈을 키우다'라는 뜻의 ‘업드림(UP DREAM)’과 ‘낮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자’는 ‘엎드림’이라는 2가지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 한국을 알리자는 의미에서 코리아를 뒤에 붙였습니다.

     

    이 씨는 이 회사의 목표를 가난한 이들을 돕는 일로 정했습니다.

     

    업드림코리아는 현재 제3세계 아이들의 그림을 패션에 적용한 디자인 브랜드 ‘딜럽(D’LUV)’을 운영해 제3세계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합니다.

     

    딜럽은 그리다는 뜻의 Draw와 사랑인 Love의 합성어로 ‘사랑을 그리다’라는 뜻입니다. 이 브랜드는 캄보디아의 NGO와 업무협약을 맺고 그 지역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바탕으로 디자인해 만든 의류, 가방, 액세서리 등에 쓰입니다.

     

    "수익금의 최대 40%를 캄보디아 빈민가 아이들을 돕는 일에 씁니다. 지금까지 마을학교 1채와 집 3채를 지었다고 합니다. 또 해마다 봉사팀을 파견해 미술, 교육, 위생‧보건 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건물을 짓는 것보다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요."

     

    [[IMAGE|355|center|디자인 브랜드 ‘딜럽(D’LUV)’에서 나온 에코백. 캄보디아의 NGO와 업무협약을 맺고 그 지역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트렌디한 스타일로 리디자인해 패션의류 및 악세서리에 사용하고 있다. 수익금의 40%는 캄보디아 빈민가 아이들을 돕는데 사용된다. [이미지 : 업드림코리아 홈페이지] ]]

     

    ‘깔창 생리대’ 문제를 보고 시작한 생리대 브랜드 ‘산들산들’도 이 회사의 주요 사업 아이템입니다. 판매 방식도 여느 회사와 다릅니다. 하나를 사면 하나가 기부되어 이를 통해 저소득층 여학생들을 지원합니다.

     

    국내에서 단가를 맞추기 어려워 중국, 인도네시아, 홍콩 등 200여 곳을 접촉한 끝에 값싸고 질 좋은 생리대를 생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소비자가 ‘산들산들’ 브랜드의 생리대를 하나 사면 하나가 기부됩니다.

     

    선물세트 ‘FIRST FLOWER’도 만들었습니다. 생리대 중형 2팩, 라이너 1팩, 오버 1팩, 위생 파우치 1종, 위생 팬티 2종, 꽃, 팔찌, 편지 등으로 이뤄진 것입니다.

     

    특히 가장 한국적인 여권케이스를 목표로 만든 세종여권케이스와 네임택은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2017년 크라우드 펀딩 와디즈를 통해 이 프로젝트가 공개됐을 때 8일 만에 목표액 1억 원의 투자금을 모았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IMAGE|354|center|생리대 브랜드 ‘산들산들’에서 나온 생리대는 업드림코리아의 주요한 상품 중 하나가 되었다. [이미지 : 업드림코리아] ]]

     

    지난해 진행된 2차 펀딩 프로젝트의 반응은 더 폭발적이었습니다. 5월 1일 종료된 이 프로젝트에는 3127명이 2억 1932여 만 원을 모아 목표의 21932% 달성했습니다.

     

    업드림코리아는 지난 2013년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자’는 뜻을 가진 청년 16명이 만든 봉사 모임이습니다.

     

    대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공익광고 제작과 다양한 봉사활동을 통해 사회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뜻을 모았습니다.

     

    업드림코리아의 핵심 멤버였던 이지웅(30) 씨는 여행을 통해 운명 같은 만남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던 그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다가온 것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한 그는 건강을 되찾은 뒤 재미있고 보람 있는 일을 하면서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구체적인 길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는 1년 동안의 세계여행을 통해 넒은 세상을 보고 즐기려 했지만 인도에서 7~8살로 보이는 아이들이 배가 고파 쓰레기를 주워 먹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 장면을 내게 보여주셨을까?’라는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요트선수로 체육교육을 전공한 그의 앞에는 체육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선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2015년 업드림코리아라는 사회적기업을 만드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군 생활을 마친 뒤 캄보디아의 선교 현장을 방문한 뒤 알게 된 제3세계의 비참한 현실이 그를 소셜벤처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아이들은 배움이 절실했고 그곳의 가난한 이들은 머물 수 있는 집이 가장 필요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온 뒤 곧바로 업드림코리아라는 회사를 차리고 딜럽이라는 브랜드를 론칭하며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이 대표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꿈은 업드림코리아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업드림코리아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열심히 뛰고, 그들과 함께 사라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 가출 청소년 도운 20대 배달원

    가출한 학생이 한 남성의 도움으로 400시간 만에 무사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이미지는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가출한 학생이 400시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학생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게 된 데는 자신의 가출 경험을 후회하던 한 남성의 도움이 컸습니다. 

     

    세종시에 사는 한 학생은 1월 집을 나와 광주로 갔습니다. 함께 가출한 친구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그 학생은 광주의 한 모텔에 그냥 머물렀습니다. 

     

    지난 1월 29일, 귀가한 친구의 말을 듣고 아들이 광주의 모텔에 있다는 말을 들은 아버지는 곧장 광주로 달려가 경찰에게 아들을 찾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경찰은 학생이 머물만한 모텔을 수소문했고 한 모텔 주인으로부터 2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청소년들의 방값을 대신 내고 연락처를 남겼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경찰은 남긴 연락처로 전화해 해당 남성을 불러 냈습니다. 처음에는 그 남성이 나쁜 마음을 먹고 청소년들을 유인해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학생을 데리고 있던 그 남성은 자신이 어릴 적 가출한 것을 후회하면서 살다 인터넷을 통해 만난 가출청소년을 설득해 귀가 시키거나 청소년 보호시설로 보내는 일을 가끔 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을 만나서도 사비를 털어 모텔방을 구해주고 먹을 것을 사주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했습니다. 

     

    배달원이 직업이라 모텔비를 더 이상 낼 수 없게 되자 아내, 갓난아이와 함께 사는 집으로 데리고 가서 보호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모텔 주인에게는 혹 무슨 일이 생기면 알려 달라고 연락처를 남겼구요. 

     

    이 남성은 아버지에게 가출한 중학생 아들의 고민도 전해줬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