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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현진, 동료가 세운 희귀병 연구재단에 기부

    야구선수 류현진이 '5월의 투수상'으로 뽑혀 받은 상금을 기부해 화제가 되었다. [이미지 : 플리커(https://www.flickr.com/photos/27003603@N00/8667165230), CC BY-SA 2.0]

    류현진 선수가 ‘5월의 선수’로 뽑혀 받은 상금을 기부했습니다.

     

    류현진 선수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스폰서 업체인 바이오프리즈가 선정한 ‘5월의 선수’로 뽑히면서 상금 1000달러를 받았습니다.

     

    그가 기부한 재단은 같은 팀 동료이자 투수인 리치 힐과 부인 케이틀린 힐이 세운 자선재단 ‘필드 오브 진스’입니다.

     

    힐 부부는 5년 전 생후 2개월인 아들을 희귀병으로 잃은 뒤 관련 질병을 연구하기 위한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힐 부부는 이 재단을 통해 모은 돈을 유전적 희귀질환을 연구하는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스위처 박사팀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부부는 57만 5천 달러를 내놓았고 10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들을 잃는 뒤 몇 년 동안 치료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몇 가족이 여전히 치료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구의 진척이 빨라지고 있는 만큼 치료법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수명을 9.7년 늘려주는 운동

    운동이 생명 연장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압니다. 그렇다면 어떤 운동이 가장 효과가 있을까요?

     

    2018년 덴마크에서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테니스가 수명 연장에 가장 크게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덴마크의 프레데릭스베르크병원 피터 쇼노어 교수는 운동과 건강 및 수명과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코펜하겐시 심장연구 참가자 가운데 8577명을 25년간 추적 조사했습니다.

     

    연구 결과 운동을 한 그룹의 기대수명이 높았고 그중에서도 테니스를 즐긴 이들의 기대수명이 9.7년 연장돼 테니스가 수명 연장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운동으로 조사됐습니다.

     

    다음으로는 배드민턴이 6.2년, 축구 4.7년, 사이클링 3.7년, 수영 3.4년, 조깅 3.2년, 체조 3.1년, 헬스클럽 1.5년 등의 순이었습니다.

     

    연구진은 테니스와 배드민턴이 기대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이유로 사회적 상호작용을 들었습니다. 파트너나 팀 동료가 필요한 운동은 운동 그 자체의 효과와 함께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함으로써 건강 증진에 도움을 준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계 장수마을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서로 활발하게 소통한다는 연구결과와도 일맥상통합니다.

  • 방탄소년단 만든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지난 26일,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서울대학교 졸업식에서 동문 자격으로 축사를 하고 있다. 방 대표는 이 축사에서 자신의 행복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지 출처 : 서울대학교]

    방탄소년단을 키워낸 방시혁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졸업 축사가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방 대표는 26일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종합체육관에서 열린 졸업식에서 동문 자격으로 축사를 했습니다. 방 대표는 이 학교 미학과 출신입니다.

     

    많은 언론에서 방 대표의 축사 내용을 부조리에 대한 분노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실제 그는 이날 축사에서 부조리에 분노하고 맞서 싸워 사회를 변화시키기를 바란다고 졸업생에게 당부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방 대표의 행복론입니다. 방 대표는 남들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신이 행복이라고 정의한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라고 합니다.

     

    다음은 방 대표가 후배들에게 주는 행복해지는 비결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다음은 방시혁 대표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오세정 총장님, 여러 교수님,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이신 졸업생 여러분들과 가족, 친지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 방시혁입니다.

     

    오늘은 날씨조차 여러분들의 졸업을 축하하듯 화창한 것 같습니다.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모교의 졸업식에서 축사를 한다는 건 무한한 영광이기에 총장님의 축사 제안을 덜컥 수락해 버렸지만 사실 이 자리에 서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저는 부정할 수 없는 기성세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또 무엇보다,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첫걸음을 내딛는 여러분께 해드릴 유의미한 이야기가 제게 있는지 우려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졸업 축사란 것은 결국 연사가 졸업생에게, 혹은 선배가 후배에게, 자신이 인생에서 배운 것을 이야기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꼰대’스러움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오늘은 최대한 솔직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아마 제 자랑도 좀 하게 될 것 같고, 제 삶의 여정 중 여러분과 맞닿는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1980년대 말에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는 공부를 조금 한다고 하면 법대를 가는 게 당연히 여겨지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1지망도 법대였습니다. 법학에 대한 열망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때의 저는, 어떤 열정도 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냥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목표와 성공의 요건에, 별 자의식 없이 흔들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력고사는 다가오고, 점수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재수를 각오하고 법대를 쓰느냐, 법대를 포기하고 안전하게 서울대를 가느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습니다. 저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렸듯 법학에 대한 열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재수는 하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법대 다음으로 커트라인이 높은 과를 가려니까, 뭔가 되게 없어 보이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과들을 뒤지다가 미학과를 발견했습니다. 법대를 기대하셨던 어른들의 반대는 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떨어지면 재수는 없다’라고 반 협박조로 (대응해) 무사히 미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미학과가 저와 너무 잘 맞았다는 것입니다. 미학이 뭘 하는 학문인지도 모르고 들어왔는데 수업들이 너무 재미있는 겁니다. 원래 예술도 좋아했었고 탁상공론을 좋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는 미학과 수업이 너무 재미있어서 중학교 때부터 해왔던 음악은 뒷전으로 밀렸고 음악을 직업으로 하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잊게 됐습니다.

    그랬던 제가 어쩌다 음악 프로듀서가 되었을까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납니다. 많은 분들께서 서울대생이 음악을 직업으로 삼기까지는 대단한 에피소드나 굉장한 결단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하시는데, 사실 아무리 돌이켜봐도 그런 결정적인 순간은 없었습니다. 그냥 흘러가다 보니 어느새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게 가장 적절한 표현 같습니다. 정말 허무하죠?

    저는 그렇게 허무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1997년부터 직업 프로듀서의 길에 들어서 박진영 씨와 함께 JYP라는 회사를 창업하고, 그 후 독립해서 지금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자 프로듀서로 살고 있습니다. 우스운 게, 독립한 후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왜 회사를 차리겠다고 생각했는지 선택한 이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서두부터 제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한 이유는, 제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결정들, 훗날 보면 의미심장해 보이는 순간들이 사실은 별 의미가 없었다는 것. 때론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유조차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사실 큰 그림을 그리는 야망가도 아니고, 원대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구체적인 꿈 자체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번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에 따라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 저와 방탄소년단, 빅히트 엔터테인먼트의 행보를 보면 이런 말이 믿기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상을 수상했고, 4만 석 규모의 뉴욕 시티필드 공연을 순식간에 매진시켰습니다. 얼마 전에는 그래미 어워드에 시상자로 초청받으면서 또 하나의 ‘최초’ 기록을 세웠습니다. 외신에서는 감히 ‘유튜브 시대의 비틀즈’라는 과찬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현재 전 세계 주요 지역 스타디움에서 월드투어를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티스트의 반열에까지 올라가게 됐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저는 영광스럽게도 빌보드가 뽑은 25인의 혁신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저희 회사 역시 엔터테인먼트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자 유니콘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아마 뉴스를 통해 이런 이야기를 접하셨을 때 이런 성공 뒤에는 분명 원대한 꿈이 있었거나, 방시혁은 엄청난 야심가여서 큰 미래를 그려놓고 이를 차근차근 실현해가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야심은 둘째치고 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니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실 겁니다. 매번 하고 싶은 것들을 아무렇게나 하고 그렇게 선택하다 보니 어쩌다 이 자리까지 왔다? 물론 그런 말이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이야기를 잠깐 바꿔 볼게요.

    여러분! 저는 꿈은 없지만 불만은 엄청 많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에 이 표현을 찾아냈는데 이게 저를 가장 잘 설명하는 말 같습니다. 오늘의 저와 빅히트가 있기까지,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분명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로, ‘불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에는 타협이 너무 많습니다. 분명 더 잘 할 방법이 있는데도 사람들은 튀기 싫어서, 일 만드는 게 껄끄러우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는 게 싫어서, 혹은 원래 그렇게 했으니까, 갖가지 이유로 입을 다물고 현실에 안주하는데요. 전 태생적으로 그걸 못 하겠습니다. 제 일은 물론, 직접적으로 제 일이 아닌 경우에도 최선이 아닌 상황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게 되고 그럼에도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만이 분노로까지 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의 멘토로 저를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참가자들이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분노를 폭발시키는 제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굉장히 많이 비호감이었죠? 그때 이후 그런 형태의 분노 표출이 결코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고, 이제는 그렇게 분노를 폭발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어졌지만 그 모습이 제가 ‘불만 많은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기에 좋은 예인 거 같아서 잠깐 언급했습니다.

    그런 저의 성정은 제 작업과 제가 만든 회사의 일에도 똑같이 발휘됐습니다. 최고가 아닌 차선을 택하는 ‘무사안일’에 분노했고, 더 완벽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데 여러 상황을 핑계로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는 관습과 관행에 화를 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불행하게 한 것은 음악 산업이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산업은 전혀 상식적이지 않고, 불공정과 불합리가 팽배한 곳이었습니다.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이 세계를 알아가면서 점점 저의 분노는 더 커졌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용당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작곡가로 시작해 음악 산업에 종사한 지 21년째인데, 음악이 좋아서 이 업에 뛰어든 동료와 후배들은 여전히 현실에 좌절하고 힘들어합니다. 음악 산업이 안고 있는 악습들, 불공정 거래 관행, 그리고 사회적 저평가. 그로 인해, 업계 종사자들은 어디 가서 음악 산업에 종사한다고 이야기하길 부끄러워합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여전히 음악 회사를 일은 많이 시키면서 보상은 적게 주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 고객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케이팝 콘텐츠를 사랑하고, 이를 세계화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팬들은 지금도 ‘빠순이’로 비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이돌 음악을 좋아한다고 떳떳하게 말하지도 못합니다. 업계와 사회가 나서서 찬양하고 최고의 예우를 해도 모자랄 판인데 왜 이런 대우를 하는지, 저는 전혀 이해할 수가 없고 화가 납니다.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며 전 세계 음악팬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우리 아티스트들은 근거 없는 익명의 비난에 힘들어하고 상처받고 있습니다. 우리 피, 땀, 눈물의 결실인 콘텐츠 역시 부당하게 유통되거나 저평가되며 부도덕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아직도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분노하게 되고 이런 문제들과 싸워 왔고 아직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저는 혁명가는 아닙니다. 다만, 음악 산업의 불합리, 부조리에 대해서 저는 간과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고 안주하고 타협하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아닙니다. 원대한 꿈이 있거나 미래에 대한 큰 그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 제 눈앞에 있고 저는 그것이 부당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는, 그 분노가 제 소명이 됐다고 느낍니다. 음악 산업 종사자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고 온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화를 내는 것. 아티스트와 팬들에 대해 부당한 비난과 폄하에 분노하는 것. 제가 생각하는 상식이 구현되도록 싸우는 것. 그것은 평생을 사랑하고 함께 한 음악에 대한 저의 예의이기도 하고, 팬들과 아티스트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이기도 하면서 마지막으로 제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유일한 방법 같습니다.

     

    저는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일 학업과 업무에 시달리던 고단한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뽀송뽀송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 행복하지 않나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감정적으로’ 행복한 것들도 있지만, ‘이성적으로’ 인식하는 행복한 상황도 있을 겁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여러분 스스로가 어떨 때 행복한지 먼저 정의를 내려보고, 그러한 상황과 상태에 여러분을 놓을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셔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두 번째 행복의 정의에 입각해서, 저의 행복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가 하는 일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특히 우리의 고객인 젊은 친구들이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 더 나아가 산업적으로는, “음악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킴으로써 음악 산업을 발전시키고 종사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데 기여하는 것.” 그래서 그 변화를 저와 우리 빅히트가 이뤄내는 게 저의 행복입니다.

     

    자, 이제 돌아갑시다.

    제가 앞에서, 저는 구체적이거나, 커다란 꿈이 없다고 했죠? 맞습니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저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어떤 기업이 될지, 방탄소년단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심지어는 제가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될지에 대해서도 그림 같은 건 없습니다.

    그럼에도 현재 저의 모습을 외부에서 보면 커다란 꿈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는 듯 보일 겁니다. 그렇게 개인적인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저와 제 주변 사람들, 제가 봉사해야 하는 고객들의 행복까지 빚어낸 매우 이상적인 상황으로 보일 겁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렸듯, 이런 시선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저는 별다른 꿈 대신 분노가 있었습니다. 납득할 수 없는 현실, 저를 불행하게 하는 상황과 싸우고, 화를 내고, 분노하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것이 저를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고 제가 멈출 수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러니 많은 분들께 위로와 행복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제 꿈이 아니라 제 불만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꿈 없이 살 겁니다. 알지 못하는 미래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시간을 쓸 바에, 지금 주어진 납득할 수 없는 문제를 개선해 나가겠습니다.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음악 산업이 처한 수많은 문제들을 개선하는 데 매진할 것이며, 방탄소년단은 아시아 밴드, 혹은 케이팝 밴드의 태생적 한계라고 여겨지는 벽을 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겁니다. 저 역시 이런 일을 수행하는 데 부끄럽지 않게 끊임없이 반성하고 제 자신을 갈고닦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지금 큰 꿈이 없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리지 못했다고 자괴감을 느끼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정의하지 않은, 남이 만들어 놓은 행복을 추구하려고 정진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 시간에 소소한 일상의 한순간 한순간들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노력하십시오. 무엇이 진짜로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는지 고민하십시오.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남이 정해준 여러 가지 기준들을 좇지 않고, 일관된 본인의 기준에 따라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미리 준비하십시오. 본인이 행복한 상황을 정의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고, 끊임없이 이를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행복이 찾아올 겁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반복은 습관이 되고, 습관은 소명이 되어 여러분의 앞길을 끌어주리라 생각합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여러분의 행복이 상식에 기반하길 바랍니다. 공공의 선에 해를 끼치고 본인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파괴적이고 부정적인 욕망을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분 바깥세상에 대해 끊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자신과 주변에 대해 애정과 관용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관심 속에서 여러분의 삶에 제기되는 문제들, 여러분의 행복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것들을 해결하고 본인이 생각하는 상식을 구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노력들은 궁극적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여러분이 자신의 행복을 좇는 것은 세상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일이 될 것이며, 이것이 우리 학교의 졸업생에게 주어진 의무이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두서없는 저의 축사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대학이라는 일생에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과정을 잘 마무리하신 여러분, 다시 한 번 격하게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시작될 인생의 다음 단계들을 행복 속에 잘 살아내시고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제법 잘 살아왔구나”라고 자평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제 묘비에 “불만 많던 방시혁, 행복하게 살다 좋은 사람으로 축복받으며 눈 감음”이라고 적히면 좋겠습니다. 상식이 통하고 음악 콘텐츠와 그 소비자가 정당한 평가를 받는 그날까지, 저 또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갈 겁니다. 격하게 분노하고, 소소하게 행복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괜찮아'라는 말은 상대방을 신뢰하고 기대한다는 아름다운 언어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괜찮아’는 미래의 언어입니다.

     

    ‘왜 그랬니?’

    ‘이거 어떻게 할 거야?’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추궁과 질책을 담고 있는

    과거의 언어라면

     

    ‘괜찮아’는

    그 존재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언어이며,

    기다림의 언어입니다.

     

    제가 한 잘못된 일에 잔뜩 주눅 들어있는 아이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가장 다정한 말투로, 표정으로, 눈길로 말해줍니다.


    “얘야, 괜찮아.”

    “야, 괜찮아, 임마!”

    “아빠, 괜찮아요.”

    “여보, 괜찮아.”

     

    그리고

     

    눈을 맞춥니다.

    꼬옥 안아줍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줍니다.

                     .

                     .

                     .

    자주 쓸수록 참 괜찮은 말

    ‘괜 ․ 찮 ․ 아’

  • 개운조사(3)-분주히 다니면서 신발만 닿게 하다

    "개운조사(2) 보러가기(클릭)"

     

     

    그러나, 자애로운 은사님 밑에서 연달이 피붙이들을 여의여야 했던 상처를 어루만지며 생사고락을 넘을 수행의 기초를 닦아나가는 것마저도 잠시, 조사가 입산한 지 1년 후 혜암 선사께서 열반에 드십니다. 참으로 조사의 삶에서 삶의 풍파를 막아주는 어른들의 안락함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요. 

     

    죽음을 이기는 방법을 배우고자 산으로 들어왔는데 이제 스승마저 돌아가시니 이제 나는 누구를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은사 스님을 잃은 조사의 입에선 연신 장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 뼈 마디마디마다 무상함이 절절히 새겨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출가수행자의 몸으로 언제까지 슬픔에만 잠겨 있을 수도 없는 노릇, 조사는 그 후 다른 스님들의 지도를 받으며 6년 동안 봉암사에서 경학과 참선 공부를 이어갑니다. 한 권 한 권 경학을 떼고 한 번 참선에 들면 밤을 넘기기가 일쑤……. 시간이 흐를수록 수행은 깊어갔지만 조사의 마음 한 켠 아쉬움은 달래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봉암사에서는 죽음을 초월한 스님도, 죽음을 이기는 길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님도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지요. 죽음을 넘어 자유자재한 삶에 이른 큰 스승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고 싶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이러한 열망은 점점 더 깊어지고……, 조사는 마침내 스스로 스승을 찾아 봉암사를 떠납니다. 조사의 나이 19세 되던 해였습니다.

     

    조사는 이후 11년 동안 만행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조사가 찾던 스승은 없었습니다. 세월만 쉼 없이 흘러 어느덧 조사의 나이 서른, 어느 날 조사는 홀연 “공연히 쇠신만 닳게 하면서 분주히 돌아다니네.”라는 옛 선사의 시를 읽게 됩니다. 꼭 자신의 처지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깨달아지는 바가 있어 그 길로 봉암사로 돌아옵니다.

     

     

    "개운조사(4)"에서 이어집니다.

  • 17년째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눈이 되주는 사람

    안기형씨는 두 개의 직함을 갖고 있습니다. 공식 직함은 현대모비스 모듈품질보증팀 차장이고, 비공식 직함은 시각장애인 마라톤 코치입니다. 

     

    안 차장은 토요일이면 서울 남산 산책로에서 2시간 동안 마라톤을 하는 시각장애인의 ‘눈’이 됩니다. 17년째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라톤 마니아로 2002년 4월 사하라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그는 특별한 모습의 참가자를 보게 됩니다. 

     

    서로의 팔에 줄을 묶고 함께 호흡을 맞춰 달리는 두 사람을 보게 된 것이지요. 그들은 한국에서 온 시각장애인과 도우미였습니다. 

     

    안 차장은 도우미로 온 분에게 물어봤다고 합니다. 

     

    “어렵지 않으세요? 

    “어려울 것 하나도 없어요. 오히려 더 보람되고 즐겁습니다.” 

     

    그분의 환한 얼굴을 보면서 존경심이 생겼다고 합니다. 

     

    레이스 마지막 날 시각 장애인이 뜻밖의 제안을 했습니다. 한국에 자신 외에도 마라톤을 하고 싶어 하는 장애인이 많으니 지도를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안 차장은 매주 토요일 남산을 찾아 시각장애인의 도우미 구실을 시작했습니다. 

     

    쉽지는 않았지요. 국가대표 출신이 마라톤 코치를 한다고 하니 첫날 11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왔다고 합니다. 안 씨는 준비체조부터 가르쳤는데 따라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따라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일주일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조각상을 만지면서 느낌을 얻는다는 데 착안해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신의 몸을 만지면서 스트레칭 자세를 배우도록 했습니다. 

     

    노하우도 쌓였습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트레칭법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고, 시각장애인과 동반주자를 이어주는 끈의 길이를 1m 이하로 줄였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의 실력이 늘어가자 안 차장은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모두들 망신만 당할까 자신 없어 했습니다. 

     

    180개 동호회가 참여했는데 시각장애인임에도 19등을 했다고 합니다. 

     

    안 차장은 1977년 성남 성일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육상부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2000m 달리기에 참가해 1위로 선발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습니다.  

     

    1985년 경부역전마라톤 대회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현대모비스 실업팀에 들어와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상비군에 선발되기도 했지만 1987년 동아마라톤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은퇴를 선택했습니다.  

     

    직장인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평범하게 살다 2002년 '나를 찾는 달리기'를 다시 시작해 이듬해 열린 '제18회 사하라 사막 마라톤 대회'에서 아시아 참가자 중 최고 기록을 내기도 했습니다. 2004년 <243㎞ 사하라를 달린다>는 책도 펴냈습니다. 

     

    요즘에도 가끔 강연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데 강연 또한 마라톤 자원봉사와 마찬가지로 돈을 받지 않고 합니다. 봉사를 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 GS칼텍스 미얀마에 고효율 취사도구 5만 대 지원

    GS칼텍스가 미얀마 저소득층 가구에 고효율 취사도구 5만 대를 지원합니다. 

     

    적정기술이 적용된 쿡스토브는 미얀마 서민들이 사용하는 화로보다 연료 비용이 최대 66% 줄어들고, 조리시간도 50% 줄여주는 취사도구라고 GS칼텍스는 소개했습니다. 

     

    GS칼텍스는 온실가스 감축에 도움을 주기 위해 쿡스토브를 보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해마다 5만 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지난해 11월 미얀마 정부로부터 쿡스토브 지원 사업을 승인받았고 올해 8월에는 유엔에 청정개발체제(CDM) 사업 계획서 등록을 완료했습니다. CDM 이란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배출권으로 전환해 거래할 수 있게 한 제도입니다. 

     

    또 9월에는 기후변화 대응 전문 컨설팅업체 에코아이와 쿡스토브 지원 사업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 故 이태석 신부, 남수단 교과서에 실리다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인술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남수단의 국정교과서에 실렸습니다. 

     

    남수단 교육부는 지난 9월 이 신부님의 삶을 수록한 교과서를 펴냈는데 2019년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보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온 슈바이처’라고 불린 이 신부님의 삶은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3쪽, 중학교 시민권 과목에 교과서에 2쪽에 걸쳐 소개됐습니다. 

     

    교과서에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제가 되어 남수단의 가난한 이웃들과 사랑을 나눈 감동적인 이야기가 담겼습니다. 


    “그는 남수단에서도 열악한 지역인 톤즈에 작은 병원을 세웠고, 하루 300명의 환자를 돌봤다. 학교를 지어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고 80여 개의 마을에 백신을 공급하기도 했다”  

     

    “그의 병원은 가톨릭과 개신교, 무슬림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는 마을을 파괴한 군인들도 치료를 받았다”  

     

    남수단 정부는 이 신부님을 기리기 위해 2015년부터 신부님의 삶을 교과서에 싣는 것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뎅뎅 호치 야이 남수단 교육부 장관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태석 신부님의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을 수 있어 큰 영광”이라며 “의사·음악가·선교사로서 10년 넘게 희생과 봉사를 몸소 실천하신 이 신부님의 삶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이 고향인 이 신부님은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을 놀이터로 삼아 자랐습니다. 집안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삯바느질로 10남매를 키우셨다고 합니다.  

     

    이 신부님은 성당에서 벨기에 출신 다미안 신부를 다룬 영화를 보고 사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부근의 한 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 자신도 같은 병에 걸려 49세에 세상을 떠난 분입니다. 

     

    인제대 의대에 진학한 이 신부님은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졸업 뒤 사제의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2001년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이 신부님은 곧바로 남수단 톤즈로 떠났습니다.  

     

    이 신부님은 그곳에서 전쟁으로 인해 다치고 굶주리고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하고 마음을 어루만졌습니다. 

  • 달라이 라마의 아침기도문

    모든 생명 가진 존재들을

    소원을 들어주는 보석보다도

    더 뛰어난 존재로 여겨

    최고의 목적을 이루려는 결심을 지니고

    나로 하여금 언제나 중생을 사랑하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언제나 나 자신을 가장 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내 가슴 속 깊이

    그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보내게 하소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번뇌가 마음 속에 들어오는 순간

    정신을 바짝 차려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그것에 맞서 물리치게 하소서.

     

    악한 본성을 가진 이들이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것을 보면

    마치 귀한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그들을 사랑할 수 있게 하소서.

     

    다른 사람들이 질투심에서 나를 비난하고 

    터무니없이 욕을 퍼부어도

    나는 기쁜 마음으로 패배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 승리를 주게 하소서.

    큰 기대를 품고 

    내가 은혜를 베푼 사람이 

    나를 심하게 상처 입힐지라도

    나는 그를 거룩한 영혼의 친구로 여기게 하소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나의 어머니인 모든 중생에게

    행복과 이익을 함께 바칠 수 있게 하소서.   

    그들에게 고통을 주고 상처를 주는 모든 것을 

    남몰래 내가 대신 받을 수 있게 하소서.

     

    그들로 하여금

    세속의 여덟 가지 이해 관계에서 생겨난 

    생각에 물들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이 환상임을 깨닫게 하소서.

     

    모든 중생이 집착에 묶인 상태에서 벗어나 

    해탈을 얻게 하소서.

     

     

    출처 : 달라이 라마의 <마음을 바꾸면 인생이 변한다> 중에서

  • 삼성이 화장실의 종이타월을 없애는 이유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일회용품 사용량을 줄이기에 나섰습니다.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자는 시대의 요구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현재 삼성전자와 삼성SDS, 삼성전기 등 일부 삼성 계열사들은 테이크아웃(Take-out) 메뉴를 제공하는 사내식당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이 같은 활동을 삼성디스플레이, SDI, 물산, 호텔 등 모든 계열사로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위해 테이크아웃 메뉴에 쓰이던 각종 물품이 크게 바뀝니다. 

     

    플라스틱과 비닐 재질은 재생종이로 바꾸고, 1회용 숟가락과 포크의 비닐포장을 없애며 플라스틱 소재의 포장음료를 최대한 줄이고 에코백 사용을 장려하는 것 등입니다. 

     

    삼성은 이를 통해 사내식당의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량을 월 36톤, 연간 432톤 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사내식당 이외에도 사무실, 커피숍, 화장실 등 다양한 장소에서도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일 계획입니다. 

     

    개인 머그컵 사용을 권장하고, 리필용 문구 사용을 늘리며, 사내 입점 커피숍에서 쓰는 플라스틱 컵과 빨대를 종이재질로 변경하기로 했습니다. 

     

    개인컵이나 텀블러를 사용하면 값을 깎아주는 정책도 도입했습니다.

     

    또 화장실에 핸드드라이어를 설치해 종이 타월 사용을 대신하고 건물 로비에 우산용 비닐 대신 우산빗물제거기를 설치하기로 했습니다. 
    계열사 사원협의회와 함께 임직원을 대상으로 플라스틱과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캠페인도 함께 진행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