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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성자들의 시대8 - 바른 숨쉬기

작성자 : 피스우즈

"그렇겠지."

필섭은 아득히 먼 서해 바다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의 눈앞에 어떤 환상이 떠올랐다.

벽운 선생이 수많은 중생들을 모아 놓고 가르침을 펴는 환상이었다. 스승 앞에 벌레, 풀같은 미물중생에서부터 사람까지, 온갖 중생들이 함께 모여 있었다. 그 무리에 끼여 있는 자신의 모습도 보였다.

 

초막의 풍경은 평소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큰 축제가 끝난 뒤의 적막감과도 같은 것이 감돌았다. 간간이 들려 오는 산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만이 깊은 고요를 깨뜨렸다.

 

석주와필섭은 오랜만에 시장기를 느꼈다. 그들은 다시 미숫가루를 먹기 시작했다. 청령자도 사냥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이전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러나 석주와필섭에게는 눈에 비치는 삼라만상이 모두 새롭게 다가왔다. 온갖 짐승들이 다 자기네와같은 수행자로 보였다. 짐승들만이 아니었다. 갖가지 풀과 나무들, 생명이 없는 돌과 물과 흙, 바람과구름 등도 그렇게 보였다. 만물중생이 다 함께 도를 향해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벽운 선생이 백령자를 데리고 초막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열심히 잘 닦았구나."

벽운 선생이 제자들의 절을 받고 나서 흐뭇해 하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두 스승님의 은덕입니다. 저희뿐 아니라 수많은 짐승들까지 큰 감화를 입었습니다."

필섭이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드렸다.

 

"오늘부터는 새로운 공부를 하자. 이제 숨쉬기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석주는 의아해 하는 표정으로 스승을 쳐다봤다. 숨쉬는 공부라니, 숨이야 그냥 쉬는 것인데 무슨 얘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석주야, 너는 무엇으로 숨을 쉬느냐?"

석주의 마음을 읽고 벽운 선생이 석주에게 물었다.

 

"코로 쉽니다."

"공기를 마시느라 쉽니다."

"숨은 어디로 들어가느냐?"

"가슴으로 들어갑니다."

벽운 선생은 누구나 다 아는 것을 물었다.

 

"반만 맞고, 반은 틀렸다."

석주에겐 의외의 말씀이었다. 왜 틀렸다고 하실까. 석주는 그 이우를 궁금히 여기며 다음 말씀을 기다렸다.

 

"숨은 코로만 쉬는 게 아니다. 살갗으로도 쉰다. 숨쉴 때는 공기만 들어오는 게 아니다. 천지의 기운도 같이 들어온다. 또 코로 숨을 쉴 때 공기는 가슴까지 내려간다. 그러나 기운은 배꼽아래 단전이라는 곳까지 들어간다. 여기가 단전이다."

벽운 선생은 손으로 석주의 단전을 만져 주고 말을 이었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아기들은 모두 살갗만으로 숨을 쉰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 숨이 코로 들어온다. 그래도 살갗의 숨구멍이 많이 열려 있어 그리로도 공기가 드나든다. 그리고 코를 통해 마시는 공기는 폐까지 들어오지만, 공기와 함께 들어온 천지의 기운은 단전까지 쑥쑥 내려간다. 그래서 아기들은 숨쉴 때마다 아랫배가 불룩불룩 나온다.

또 살갗의 구멍들을 통해서도 천지의 기운이 들어온다. 아기들은 천지의 기운을 많이 받아서 몸이 매우 깨끗하다.

한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온갖 번뇌에 시달리면서 살갗의 숨구멍이 조금씩 닫힌다.코로 들어오는 숨도 폐에서 멈춘다.숨을 따라 들어오는 기운이 단전까지 못 내려가게 된다.

이때문에 어른들은 숨쉴 때 배가 나오는 사람이 드물다.

"살갗의 구멍도 많이 닫혀 아주 적은 공기만이 드나든다. 이리하여 천지의 기운을 크게 못 받으니 자연히 몸이 탁해진다. 몸이 극도로 허약한 사람은 숨쉴 때 어깨가 오르내린다."

 

석주는 스승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숨을 살펴보았다. 숨을 쉴 때 배도 어깨도 움직이지 않았다. 숨이 배꼽 근처까지 내려가다 말았다. 벽운 선생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수행이 잘된 사람은 아기처럼 숨쉰다. 갓 태어난 아기같이 아랫배로 쉬다가, 나중엔 태아처럼 살갗만으로 숨쉴 수 있게 된다. 태아와 같이 쉬는 숨을 태식이라 부른다. 아기와 같이 숨쉬면 몸도 아기처럼 깨끗해진다. "

석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의 얼굴이 갓난아이 처럼 맑았기때문이었다. 혜원이도 그랬다. 

 

"숨은 마음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마음이 평안한 사람의 숨은 가지런하다. 숨을 깊고 가지런하게 쉬면 마음도 따라서 고요히 가라앉는다.

정신이 산란하고 마음이 괴로우면 숨도 거칠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도는 마음 공부, 정신 공부와 함께 숨쉬는 공부를 한다. 숨은 모름지기 단전으로 쉬어야 한다. 그래야 천지의 좋은 기운을 많이 받는다. 또, 하늘의 진기가 몸에 가득 채워져야 하늘 사람 되는 길이 열린다."

 

벽운 선생은 석주와 필섭에게 단전 호흡에 대해 더 자세히 얘기해 주었다. 

"단전이란 배꼽 아래 한 치쯤 되는 곳에 콩팥과 붙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운은 여기에 쌓였다가 온몸으로 퍼진다. 그러니까 단전은 바로 기운의 창고와 같은 것이다. 단전에 기운이 충만한 사람은 건강하다. 마음도 튼튼하다.기운이 허한 사람은 몸이 부실해진다.

마음 역시 허약해진다. 한데 기운만 세고 마음과  정신이 바르지 못한 사람은 단전의 기운을 나쁜 일에 쓴다. 그러다가 결국 기운이 소진되고 몸도 망가진다. 마음과 정신이 올바르나 단전이 기운이 약한 사람은 그 올바른 마음과 정신을 굳게 지키기 어렸다. 자기의 올바른 뜻을 크게 펴지도 못한다.

그러기에 수행을 바로하려면, 마음도 잘 닦고 단전의 힘도 길러야 한다.

너희들도 한번 숨을 편안히 쉬어 보거라." 

 

석주와 필섭이 자세를 가다듬고 숨을 쉬었다.

 

"필섭아, 네 숨은 어디까지 내려가느냐?"

잠시 후에 벽운 선생이 필섭에게 물었다.

 

"아랫배까지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배꼽 윗배까지 오르내리지 않았느냐?"

"그랬습니다."

"그것은 단전 호흡이 아니다. 복식 호흡이다. 마음과 정신이 좀 들떠 있기 때문에 배꼽 위까지 움직이는 것이다. 단전 호흡은 배꼽 아래로만 내려가는 숨이다."

"석주는 어떻더냐?"

"숨이 배꼽 근처까지 밖에 안 내려갔습니다."

"네 마음과 정신이 아직도 위축돼서 그렇다.오늘부터 단전으로 숨쉬는 공부를 하자.

둘 다 바닥에 편안히 눕거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앞에서 벌렁 눕기가 죄스러워 좀 머뭇거렸다.

"괜찮다. 어서 누워라."

둘은 스승의 재촉을 받고서야 조심스레 나란히 누웠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의 두 손을 단전 부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일렀다.

"눈을 감고 마음을 평안히 갖거라. 천지 우주 삼라만상과 너희가 한몸이라 여겨라. 또, 선정 공부를 할 때처럼 정신을 텅 비우거라. 그런 다음에 마음의 눈으로 단전을 바라보아라. 정신을 오로지 단전에만 집중시켜라."

 석주와 필섭은 스승의 가르침의 따라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혔다. 정신도 맑게 비웠다. 마음에는 아늑한 평화가 깃들였고, 정신은 거울처럼 깨끗했다.

 

"자, 숨을 아주 천천히 깊게 쉬어라."

필섭은 깊이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배가 불룩하게 솟아올랐다. 힘이 장사인 만큼 폐활량도 컸기 때문에 임신한 여인처럼 배가 불룩했다. 그런데 배꼽 위까지 올라왔다.

"필섭아, 배꼽 아래로만 쉬어라. 그래야 좋은 기운이 단전에 잘 모인다."

벽운 선생이 필섭의 호흡을 교정해 주었다.

석주의 배는 그리 높게 올라오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이 이른 대로 배꼽 아래만 천천히 움직였다. 폐활량은 적지만 마음이 잘 가라앉았기 때문이었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열흘 동안 단전 호흡만 하도록 시켰다. 열흘쯤 되자 숨이 제대로 단전까지 내려갔다. 앉아서도 서서도 단전 호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단전 호흡을 익힌 다음에는 몸푸는 도인 체조를 배웠다. 여러가지 독특한 자세를 취하고 단전호흡을 하는 법도 익혔다. 혜원이 체조 동작과 행공 자세를 먼저 시범으로 보여 주면, 두 사람이 그대로 따라서 했다. 체조와 행공 자세가 몸에 배는 데 또 며칠이 걸렸다. 이것들을 가르치며 벽운 선생이 이런 얘길 했다.

"이 체조와 행공 자세는 마디마디 굳어진 몸을 부드럽게 풀어 준다. 동작을 제대로 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관절이 다 풀린다. 또, 단전을 키워 주고 온몸에 기운을 보내 몸을 아주 튼튼하게 만든다. 몸이 풀리면 숨쉬기가 편하다. 반대로 몸이 굳어 있으면 숨이 잘 막힌다.

몸이 굳었을 때 숨을 단까지 끌어 내리려면 힘이 들어간다. 단전 호흡하면서 무리하게 힘을 들이면 부작용이 생긴다.

숨과 마찬가지로 정신과 마음 또한 몸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몸이 무거우면 정신도 마음도 어두워지기 쉽고, 몸에 힘이 넘치면 마음 역시 가뿐해진다. 이 때문에 우리의 도는 몸 공부 마음 공부 정신 공부 숨 공부를 같이하는 것이다."

 

벽운 선생은 두 사람에게 단전 호흡 수련을 부지런히 하라 이르고 또 어디론가 떠났다. 제자들은 스승이 어디를 가는지 아무도 물랐다. 묻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백령자가 벽운 선생을 따라갔다.

석주와 필섭은 하루에 세 번씩 벽운 선생이 가르쳐 준 행공법을 수련했다. 또 나머지 시간에는 틈틈이 선정을 닦으며 단전 호흡을 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체조로 몸을 풀고 나면 숨쉬기가 한결 더 편해졌다. 또,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취하고 단전 호흡을 하고 나면 아랫배가 든든했다. 전신에 기운이 차오른 느낌도 들었다.

청령자는 여전히 초막에서 지냈다. 전과 다름없이 하루에 한번씩 사냥을 나갔다. 그 외의 시간은 초막 주변에서 보냈다.

 

그런데 석주와 필섭이 여러 가지 행공 자세를 배울 무렵부터 청령자도 특이한 몸짓을 자주 했다. 소나무 위나 땅바닥에서 여러 가지 날갯짓을 했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기도 했다. 날갯짓이나 비트는 동작 모두 다양했고, 언제나 그 순서가 똑같았다. 파란 풀밭이나 소나무 위에서 하얀 학이 우아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하루는 석주가 이를 기이하게 여겨 혜원에게 물었다.

"도제, 청령자가 왜 저러지? 날아오르지도 않으면서 자꾸 날개를 파닥이네. 이상한 날갯짓도 많이 하고. 날기 연습을 할 리도 없을 텐데. 몸은 또 왜 자꾸 비틀어댈까. 그리고 똑같은 순서대로 되풀이하네."

"청령자도 도형들처럼 행공을 하는 거예요. 청령자의 동작은 도형들이 하는 도인 체조나 행공 자세와 마찬가지예요."

"그래? 희한하구먼.  그 행공법은 백령자가 가르쳐 줬나 보지?"

"맞아요. 그렇지만 백령자한테 행공법을 가르쳐 준 분은 우리 스승님이세요."

"아, 그랬었구먼. 그런데 도제, 학도 단전이 있어? 단전으로 숨을 쉴 수 있나?"

"그럼요. 짐승들도 다 단전이 있어요.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전 호흡도 하고요. 짐승들은 번뇌가 적으니까 더 잘할 수도 있을거예요."

"득도하는 것도 사람보다 빠르겠네."

"그렇진 않아요."

"왜?"

"정신이 사람만큼 맑지 못해서 그래요. 사람은 삼라만상 온 우주를 생갈할 수 있지만 짐승들에겐 그만한 능력이 없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신의 힘이 사람만 못하지요. 그러니까 크게 깨우치려면 정신의 힘을 많이 길러야 해요."

 

어느덧 단전 호흡을 시작한 지 한달이 지났다. 석주와 필섭인 자신들의 몸이 좋아지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다. 좀 이상한 체험도 하게 되었다.

하루는 필섭이 행공을 끝낸 다음 고요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 호흡을 하는데 갑자기 아랫배가 따뜻해졌다. 처음엔 은은하게 따스하더니 나중엔 후끈후끈 달아올랐다. 필섭이 수련을 마친 뒤 혜원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앉아 있는데 난데없이 아랫배가 뜨거워지더군. 지금도 뜨거운 기운이 남아 있어. 왜 그러지?"

"단전에 기운이 차고, 또 마음이 단전에 자리잡아서 그래요. 도형, 스승님께서 단전은 콩팥과 붙어 있다 하셨죠. 콩팥이 오행으로 무엇인지 아시죠?'

"수(水)지, 물이야."

"그래요. 단전의 기운도 수, 즉 물이에요. 그런데 마음은 어디에 의지해 있죠?"

"염통, 심장이지."

"염통은 오행으로 불, 화잖아요."

"그렇지."

"마음도 화예요. 그런데 정신을 단전에 집중하고 있으면 마음도 따라서 단전으로 내려가요. 도형, 물은 어떤 성질을 지녔지요?"

"밑으로 가라앉고 또 차갑지."

"불은요?"

"위로 치솟고 뜨겁지."

"마음의 불성질이 기운의 차가운 물성질을 뜨겁게 달궈 주어서 아랫배가 후끈거린 거예요."

"아하, 그랬었구먼!"

필섭은 혜원의 설명을 듣고 나서 무릎을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주 도형도 곧 그런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혜원이 석주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석주는 이틀 뒤에 필섭과 똑같은 체험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여러 가지 새로운 경험을 했다. 후끈후끈한 기운이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고, 전기에 감전된 듯 휘청휘청 흔들이기도 했다.  아랫배가 마구 떨릴 때도 있었다.  혜원이 그런 현상들이 생기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단전에 기운이 차서 그래요. 단전이 채워지니까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도 평소보다 강하지요. 그 때문에 전기가 온 것처럼 찌릿찌릿해요. 벌레가 돌아다니는 것처럼 스멀거리기도 하고요. 뜨거운 기운 대신 싸아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도 있어요. 특히 전에 아팠던 곳이 뜨거워지거나 떨려요."

그랬다. 필섭인 몇 년 전에 어깨를 크게 다쳤던 적이 있는데, 다친 곳이 특히 후끈거렸다. 석주는 무릎이 안 좋았었다. 한동안 관절염을 앓았었는데, 뜨거운 기운이 무릎으로 자주 내려왔다. 무릎이 자주 저절로 떨리기도 했다. 벽운 선생과 백령자는 달포 만에 돌아왔다. 벽운 선생은 제자들이 수행을 잘하고 있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똑같은 공부를 계속하라고 일렀다. 또, 이런 가르침을 주기도 했다.

"단전에 기운이 차면 정도 충만해진다. 정이 충만해지면 자칫 음욕에 빠지기 쉽다., 정은 생명력의 뿌리다. 정이 충만해야 생명력이 왕성해진다. 음욕에 빠져 정을 빼앗기면 기운이 크게 소모된다. 그저 음욕이 일기만 해도 정이 탁해진다. 탁한 정은 몸도 마음도 탁하게 만든다.

정을 자꾸 배출라면 아무리 수행을 많이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나 마찬가지다. 공부가 깊어지질 않는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음욕에서 온전히 헤어나야  참도인이 될 수 있다. 너희는 그래도 음욕을 많이 끊은 사람들이다. 하나 그 뿌리는 아직도 남아 있다. 음욕의 뿌리가 자라지 않도록 경계하거라. 음욕에서 헤어난다는 것은 억지로 참는 게 아니다. 훌훌 떨치고 넘어서는 것이니라.

사람의 뇌신경 중에 송과선이란 게 있다. 송과선은 기맥을 따라서 기운이 잘 유통되게 만드는 일을 한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이 송과선이 활발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어린이들의 몸은 기운이 잘 유통되어 아주 부드럽다.한데 사춘기가 되면 송과선이 퇴화한다. 대신 뇌하수체라는 게 왕성히 활동한다.

뇌하수체가 활발히 작용하면서 남자 여자의 몸이 크게 달라진다.  또, 난자와 정액이 생기고 음욕이 강해진다. 음욕은 또 온갖 번뇌를  불러온다. 음욕으로 인해 몸과 마음과 정신이 크게 약해진다.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음욕을 승화시켜 삼라만상 모두를 품어 안는 크나큰 사랑으로 바꾼다.

그리고 참수행자의 뇌하수체는 힘을 잃는다. 대신 송과선이 도로 소생하여 활발히 활동한다. 불현듯 여인을 향한 음욕이 생기거든 온 우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거라 마음으로 나를 남김없이 비우고 삼라만상과 하나가 되거라. 그리하면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게다."

 

필섭은 애욕을 잊고 지낸 지 이미 오래였다. 결혼하자마자 아내를 여의고 절망 속에 헤매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그 괴로움 때문에 다시는 여자와 인연을 맺지 않고 살았다. 그래도 가끔 여자가 그리워졌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절제를 잘해왔다. 자꾸 절제하다 보니 갈수록 애욕이 희미해졌다.

석주 역시 아내한테 받은 상처 때문에 마음으로부터 여자를 멀리하게 됐다. 또 상처를 입을까봐 더 이상 이성으로서 여자를 가까이하고 싶지가 않았다. 혜원과 함께 살지만, 혜원일 이성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그저 동기간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두 사람이 애욕을 완전히 초월한 것은 아니었다. 아주간혹 여인의 따스한 체온이 아련하게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벽운 선생의 말대로 애욕의 뿌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백령자는 청령자에게 새로운 행공 자세들을 가르쳐 주었다. 청령자는 백령자가 시범을 보이는 대로 똑같이 따라서 했다. 새로 배우는 동작들은 전에 하던 동작들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목, 날개, 다리 등을 쫙 뻗기도 하고, 휘휘 돌리기도 하고, 이리 저리 꼬기도 했다. 백령자가 청령자에게 새 행공법을 가르쳐 준 다음, 벽운 선생은 백령자를 데리고 다시 초막을 떠났다.

6월이 되었다. 온 산이 초록빛으로 짙게 물들었다. 나무들마다 뜨거운 여름 햇빛을 받아서 산소를 물씬물씬 뿜어냈다. 운학산의 공기는 매우 싱그럽고 신선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시원한 공기가 쏴아쏴아 단전까지 밀려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