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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인학의 우리명산 답산기-인수봉에 서린 성스러운 기상과 우리나라의 미래

    인수봉

    ● 인수봉과 우리 나라의 미래

     

    앞에서 필자는 서울의 산 중에서 인수봉이 가장 아름다우며, 인수봉에는 성자의 기상이 가득 감돈다고 했다.

     

    인수봉은 원래의 한양땅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인수봉에 서린 성스러운 기상이 한양땅으로 크게 뻗쳐오질 않았다. 이 때문에 성자들이 많이 나올 수가 없었다. 설령 그런 이들이 있다 해도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인수봉도 서울시내 복판으로 들어왔다. 인수봉 아래는 어느덧 시가지가 되었다. 이제 인수봉에 서린 성자의 기상이 활짝 피어난다.

     

    인수봉 아래에 시가지가 크게 들어선 것은 1970년대 일이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성자(聖者)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인수봉의 정기가 크게 떨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이다.

     

    1980년대는 또 우리 나라에서 소비풍조 · 물질주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때이다. 한편에선 많이 갖고 쓰고 버리는 데서 기쁨을 찾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안 갖고 적게 쓰는 데서 참자유와 행복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예언서 격암유록>에 이런 내용의 예언들이 들어 있다.

     

    을유년 (1945) 에 해방이 되고 나라가 둘로 쪼개진다.

     

    무자년 (1948) 에 이씨 성을 가진 사람 (이승만) 이 권력을 잡는다. 이씨가 12년간 독재정치를 한다.

     

    인년 (1950) 에 남과 북이 서로 싸운다.

     

    계사년 (1953) 에 전쟁이 끝난다.

     

    경자년 (1960) 에 독재정권 (이승만 정권)을 몰아낸다.

     

    신축년 (1961) 에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다. 그들도 이승만 정권처럼 독재정치를 한다. 국민들 입에 재갈을 물린다.

     

    군사독재정권이 물러갈 때가 되면 물질주의가 판친다. 종이돈이 세상을 지배하리라. 이 때 사람들이 말하기를, 돈이면 못할 게 없다고 한다.

     

    물질주의가 사람들을 타락시키며 온 세상을 황폐하게 만든다. 물질주의로 인해 인류는 파멸의 위기를 맞는다. 자칫하면 천 사람 중 한 사람이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때 성자들이 인류를 구하기 위해 세상에 나온다. 물질주의에서 헤어나, 성스러운 마음을 기르고, 무소유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이들은 성자들을 따라 성자들의 세계로 들어간다.

     

    성자들의 세계.

     

    그곳은 오랫동안 인류가 꿈꿔온 낙원이며, 천국 · 극락 같은 이상향이다. 파멸의 위기가 사라진 다음에는 온 세계가 그 이상향으로 변한다. 갈등과 투쟁으로 얼룩진 암흑의 시대가 가고, 모든 사람·모든 생명이 찬란한 자유와 평화를 함께 누리는 광명시대가 밝아온다.

     

    인수봉은 지금 이 광명시대의 여명을 보고 있는지 모른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 다가오는 성자들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을 것이다. 또 물질주의에 빠져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깨어나라' 외치며, 가슴에 품고 있는 성스러운 기상을 보내고 또 보낼 것이다.(계속)
     

  • 가장 어려운 사람들의 종, 김하종 신부

    이미지 : 김하종 신부 페이스북

    성남 사회복지 법인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의 몸에선 항상 반찬 냄새가 배어있다. 앞치마를 두르고 직접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때로는 역한 냄새를 풍기는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주고, 직접 안아주기도 한다.

     

    코로나 여파로 많은 급식소가 문을 닫았지만, <안나의 집> 노숙자 급식은 30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급식 장소인 성남성당 앞마당은 언제나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의 줄이 길게 이어진다. 인근 서울에 있는 분들도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이곳 성남까지 온다고 한다. 김하종 신부는 이들에게 언제나 친근한 목소리로 “환영합니다. 맛있게 드십시오.”라고 인사를 한다.

     

    1957년, 이탈리아 피안사노 지방에서 장남으로 태어난 김하종 신부의 원래 이름은 빈센조 보르도. 1987년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90년 선교사 자격으로 서울에 왔다. 1992년 성남 신흥동 성당의 보좌신부로 일하게 되었고, 1993년 <평화의집> 운영을 맡아 독거노인 급식 사업을 시작했다. 1994년부터는 성남과 분당 지역 청소년들을 상대로 한 공부방을 열었다. 1998년 IMF 사태로 노숙자가 급증하자 <안나의 집>을 열고 독거노인뿐만 아니라 노숙자에게도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한국말도 서툴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낯선 한국에서 청소년, 독거노인, 노숙자들을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후원금을 모으러 다니고 밥 짓고 배식하고 밤에는 공부방을 챙겨야 하니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아프고 쑤시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종’이란 뜻으로 지은 한국 이름, 김하종 신부는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의 종이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틴다. 아마도 하느님이 신부님에게 특별한 힘을 불어넣어 주시나 보다.

     

    그래서 지금까지 13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여기 <안나의 집>에서 땀을 흘렸고, 많은 사람들이 후원금과 물품 지원을 계속하였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250만 명이 이곳에서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김하종 신부의 페이스북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왜 주님은 천국에서 내려오지 않으시며, 왜 코로나의 혼란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지 않으십니까?”

     

    “나 역시 많이 울었다. 나는 고통과 문제들을 네가 상상하는 것처럼 마법처럼 없애주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마법을 쓰는 것은 내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야. 하지만 난 너와 함께 걷고 있고 언제나 너의 곁을 지키고 있단다.”

  • 성자들의 시대7-정기가 피어오르다

    "도형, 제가 깨우친 게 아니고 스승님 도력이었어요. 또, 이 터의 정기가 활짝 피어났고요. 스승님 도력하고 좋은 지기가 어우러져서 그런 일이 생긴 거예요."

    혜원이 필섭을 일으켜 세우고 조금 전에 일어났던 일에 관해 설명했다.  

    "스승님께선 여기에 계시지도 않잖아."

    필섭인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심쩍은 듯 말했다.

    "만리 밖인들 스승님께서 도력을 못 보내시겠어요. 시공을 초월하신 어른이신데요." 

    "하긴 충분히 그러실 수 있지. 한데 이곳 지기가 활짝 피어 났다고?"

    필섭인 고개를 끄덕이며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잘은 모르지만 느낌이 그래요. 어젯밤부터 기운이 달라지는 것 같았어요."

    혜원의 짐작이 맞았다. 초막터의 지기는 전날 밤부터 크게 달라졌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뭉클뭉클 솟아올랐다. 거기에 반비례해서 탁한 기운은 점점 줄어들었다. 아침나절에 혜원이 마당으로 나와서 수련할 무렵엔 초막 일대의 지기가 극도로 깨끗해져 있었다.

    바로 그 시간에 또 벽운 선생이 초막을 향해 지극히 맑은 진기를 보내 주었다. 혜원인 수련을 하면서 스승의 모습을 심안으로 보았다. 벽운 선생 바로 옆에는 백령자가 있었다.

    혜원의 심안에 나타난 백령자와 벽운 선생의 모습은 새하얀 빛의 응어리였다. 그들의 몸에서 눈부시게 찬란한 빛이 뿜어 나왔다. 

    그리고 백령자와 벽운 선생이 혜원일 향해 미소를 보냈다. 그 순간, 수많은 빛줄기들이 혜원의 몸 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혜원인 스승과 백령자한테서 뿜어 나오는 빛으로 목욕을 하는 느낌이었다. 빛의 폭포가 몸 속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 내는 것 같았다. 전신이 파스를 바른 듯이 시원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피부를 통해 시원한 공기가 쏴아쏴아 마구 밀려았다. 피부의 기공이 활짝 열려 피무 호흡이 되었던 것이다. 피부 호흡이 되자 또 엄청난 진기가 몸 속으로 들어왔다.

    몸 속에 진기가 차오르니, 몸이 깃털허럼 가벼워졌다. 몸이 없어지고 형체만 어렴풋하게 남은

    기분이었다. 또, 풍선처럼 둥실 떠올라 하늘 높이 날아갈 것 같았다.

    공기는 계속 피부를 통해 드나들었다. 코로는 숨을 쉴 필요가 없었다. 거의 피부만으로 숨을 쉬었으나  조금도 답답하지 않았다.

    정신은 가없이 투명했다. 티끌만한 잡념도 침범하지 못했다. 번뇌의 그림자까지 말끔하게 씻겨 나간 듯 했다.

    얼마 후, 혜원인 자신의 몸이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지는 느낌을 받았다. 투명한 의삭만 남고 몸은 허공으로 변해 버렸다. 아니, 온 우주, 삼라만상과 한몸이 된 기분이었다.

    백령자와 벽운 선생한테서 뿜어 나온 빛은 혜원의 몸 속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석주, 필섭, 초막에 몰려온 짐승들, 이들이 모두 그 빛에 휩싸였다.

    해가 서해 바다 너머로 완전히 사라졌다. 노을이 마지막 잔광을 받아 더욱 붉어졌다.

    세 사람은 말없이 서서 노을을 바라보았다. 초막은 깊고 깊은 고요에 잠겼다. 잠자리에 드는 새들의 푸덕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없이 아늑한 평화가 세 사람의 마음을 감쌌다.

      곧이어 어둠이 내리고 하늘 가득 번졌던 노을이 스르르 지워졌다. 혜원이 먼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석주와 필섭은 굳어버린 듯이 그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둘다 침묵 속에서 이날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했다. 아직도 가슴은 진한 감동으로 뭉클거렸다.

    " 아우, 놀랍지?"

    이윽고 필섭이 침묵을 깼다.

    "참말 신기하네요. 짐승들이 모여들어 죽은 듯이 꼼짝 않고 있는 모양이 정말로 희한하더군요. 말도 못 하는 짐승들이 어찌 그리 영검하지요? 스승님께서 도력을 보내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짐승들이 사람보다 더 나을 때도 많아. 사람들이 전혀 몰라 보는 성인을 짐승들은 알아. 성인들의 마음을 몸으로 느낀다네. 자비로운 마음에서 뿜어나오는 좋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에 여기로 몰려든 게야."

    "사람들은 왜 못 느끼지요?"

    "욕심이 너무 많아서 그래. 욕심이 가득하니 늘 번뇌 속에 빠져 살지. 번뇌에 휘감겨 몸이 굳어 버렸어."

    "욕심이 별로 없는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석주는 의형 방헌수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지. 아주 극소수이지만 더러 있지. 하지만 그들도 번뇌가 많아. 근심 걱정이 떠나질 않고, 자꾸 뭘 생각하지. 마음도 정신도 편히 쉴 때가 없어. 번다한 생각도 몸을 굳게 만든다네."

    "그런데, 형님. 아까 보니까 혜원이 도제 힘이 대단하던데요.

    형님께서 꼼짝못하시는 거같더군요. 체구도 작은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지요? 전 깜짝 놀랐습니다."

    "나도 놀랐네. 보통 기운이 아니더라고. 도력이 틀림없어. 혜원이 도제의 임독이 벌써 열린 모양이야."

    "임독이라니요? 그게 뭐지요?"

    "사람의 원기는 단전에 있다는 거 알지?"

    "예."

    "그 단전에서 등뒤 척추를 타고 머리로 기운이 올라가는 길을 독맥이라고 한다네. 또, 머리에서 다시 단전으로 내려오는 길을 임맥이라 하지. 단전에 큰 기운이 모이면 뜨거운 기운덩이가 임독맥을 타고 오르내려. 그럴 임독유통이 된 사람은 기운이 엄청나다네."

    "임독이 어떻게 해서 열리지요."

    석주는 호기심을 갖고 물었다.

    "수행이 깊어지면 그리 된다네."

    석주의 뇌리에 방헌수와그의 큰아들 한솔이가 떠올랐다. 한솔이도 아버지처럼 난쟁이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데 친구들한테서 자꾸 놀림을 받았다. 한솔이가 임독유통이 된다면 괴로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 같았다.

    "형님, 어린아이들도 수도할 수 있나요?"

    "근기가 되고 인연이 닿으면 할 수 있지. 왜?"

    석주는 필섭에게 헌수의 가족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 양반 도심이 깊은 분이구먼. 부인하고 아이들도 예사 사람들이 아닌 것 같네. 언젠가는 다 도인이 되겠네. 아우가 인도할지도 모르겠구먼."

    두 사람은 이야기를 좀더 나누다가 자기네 방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석주는 이날도 전날처럼 신기한 일이 일어날까 매우 궁금히 여기며 아침을 맞았다. 혜원은 전날보다 일찍 밖으로 나와 수련을 시작했다. 그러자 전날과 마찬가지로 짐승들이 몰려왔다.

    그들 중에는 백학봉 근처에 살지 않는 짐승들도 있었다.

    토끼, 비둘기. 꾀꼬리 등의 모습이 보였다. 얼마 후엔 노루 네 마리와 멧돼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멧돼지는 뒷다리를 절었다. 오른쪽 뒷다리에 상처가 있었다. 사냥꾼의 총에 맞았는지 허벅지에서 발등까지 붉은 핏자국이 보였다. 노루 중에도 다리를 저는 놈이 하나 있었다. 이놈 역시 뒷다리를 절룩거렸다.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뼈를 다친 모양이었다.

    멧돼지나 노루나 평소에는 백학봉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었다. 어디서 왔는지 이상했다. 그들도 작은 짐승들처럼 혜원이 앞에 다소곳이 엎드렸다.

    석주와 필섭은 잠시 후에 깊은 선정에 들었다. 혜원인 이날도 헤질녘에야 수련을 끝냈다. 짐승들은 그때까지 꼼짝 않고 엎드려 있었다. 혜원이 수련을 끝내자. 그제서야 꼼지락거리며 모두들 일어났다.

    그런데 또 희한한 일이 있었다. 아침에 절룩이며 왔던 노루와 멧돼지의 다리가 멀쩡해진 것이었다. 석주가 그걸 보고 깜짝 놀라며 필섭에게 그 이유를 물어 보았다.

    "형님, 저기 저 노루하고 멧돼지를 보십시오. 아침에는 절룩절룩 간신히 걸었는데 멀쩡해졌어요. 웬일이지요?"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 나은 게야."

    "기운으로 병을 고쳐요?"

    "하늘의 진기를 받으면 불치병도 다 나을 수 있지."

    "그 기운을 어떻게 받나요?"

    "수행이 잘된 사람은 몸이 진기로 채워진다네. 그 기운을 남에게 보내 줄 수도 있고."

    석주는 외경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혜원이를 쳐다봤다. 석주의 뇌리에 문득 중병을 앓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이 내는 신음 소리가 귓전에 울리는 것 같았다. 석주는 자신도 수행을 잘하여 병고로 신음하는 중생들을 건져 주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날은 혜원이 밖으로 나오기 전부터 짐승들이 몰려왔다. 초막 주변에 사는 다람쥐와 산새들은 동이 트자마자 마당으로 와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침해가 백학봉 위로 떠오르기 전에 이미 전날보다 더 많은 짐승들이 모였다. 석주와 필섭인 수련도 미루고 짐승들을 지켜보았다.

    이날도 새로운 짐승들의 모습이 보였다. 뻐꾸기 두 마리와 함께 꿩 한 마리가 날아왔다. 뒤를 이어 족제비 몇 마리가 나타났다.

    석주가 깜짝 놀라며 눈을 크게 뜨더니 족제비를 쫓으려 했다. 다람쥐나 산새들이 족제비한테 잡혀 먹힐까봐 걱정이 됐던 것이다. 족제비들은 석주가 쫓을 사이도 없이 잽싸게 마당 한가운데로 달려갔다. 석주는 그들에게 작은 짐승들이 잡혀 먹힐까봐 몸을 움찔했다.

    한데 석주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족제비들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새와 다람쥐 또한 놀라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모두들 태평하게 그대로 앉아 있었다. 족제비들도 마당 한가운데에 이르러서는 다른 짐승들처럼 가만히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족제비에 이어 고양이 몇 마리가 나타났다. 고양이 역시 작은 짐승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누구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쥐와 산새들도 도망칠 생각을 안 했다.

    그 다음엔 뱀들이 기어왔다. 능구렁이, 살무사, 까치독사 등 여러 마리가 미끄러지듯 마당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뱀을 보고 석주는 바짝 긴장했다. 소름까지 돋았다. 뱀들이 작은 짐승들을 잡아 먹으려고 초막에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뱀들도 다른 짐승들과 똑같았다. 마당 한가운데로 오더니 깊은 잠에 빠진 것처럼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석주의 눈이 더욱 휘둥그래졌다.

    " 극락 선경이 따로 없구먼. 고양이와 쥐가 함께 선정에 들다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고 극락일세."

    필섭이 짐승들을 바라보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고양이가 다람쥐를 봐도 그냥 두네요. 족제비와 뱀도 그렇고요. 어찌 된 영문이지요?"

    "마음이 지극히 화평해져서 그래. 또 좋은 기운을 많이 받아서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게야..

    "형님, 짐승들이 먹지 않고서 어떻게 배가 부릅니까? 이미 잔뜩 잡아먹어서 더 먹을 맘이 없는 게 아닌가요? 스승님이나 백령자처럼 크게 깨우쳤다면 몰라도요."

    석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우, 자네 요 며칠간 허기를 느껴 본 적 있나? 나는 한번도 안 그랬어. 끼니때가되면 그냥 습관적으로 미숫가루를 먹었지. 자네도 마찬가지일걸."

    필섭의 얘기가 맞았다. 2,3일 동안 석주도 시장기를 느껴 보지 못했다. 끼니때가 되면 필섭이처럼 그저 습관적으로 미숫가루를 먹었던 것이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미숫가루만 먹으니 자주 속이 허했었다. 끼니때가 가까워 오면 배가 꽤 고팠다.

    "그럼 우리도 아주 좋은 기운으로 배를 채웠었구먼요."

    "맞아."

    "도를 조금도 깨우치지 못했는데 어찌 그럴 수 있지요?"

    "백령자와 스승님께서 도력으로 여기에다 좋은 기운을 듬뿍 보내신 거야. 또 기운이 우리 몸 속으로 들어왔고. 몸이 맑은 진기로 채워지니 허기도 안 지고 아픈 데도 없게 됐어. 어제 그 멧돼지하고 노루 좀 봐. 다리가 저절로 멀쩡해졌지. 또, 배부르고 마음이 화평해져서 싸울 생각도 안 해."

    "참 기막힌 일이구먼요. 이 얘길 다른 사람들한테 하면 누가 믿겠어요."

    "못 믿지. 이치를 모르니까. 이런 세계가 있다고 상상도 못 하지. 하나, 앞으로 달라진다는 게야. 많은 사람들이 도를 닦아 성인이 된다더구먼. 머지 않아서 세상 사람들 모두 큰 도인이 되는 시대가 온다는 게야. 그렇게 세상이 바뀌는 걸 후천개벽이라 하지."

    "형님, 정말 그리 될까요?"

    석주는 경이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옛날의 뛰어난 선지자들께서 다 그 말씀을 전하셨네. 우리가 스승님을 만나게 된 것도 그 때가 가까웠기 때문일 게야. 앞으론 우리 같은 사람이 참 많아지겠지. 그중에 스님처럼 크게 깨우치는 이들도 꽤 나올 게고. 옛 어른들께서 이르시길, 세계 방방곡곡에서 성자들이 쏟아져 나오리라 하셨어."

    "야, 그럼 굉장하겠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중생들이 그 은덕을 입겠구먼요. 스승님 한 분의 도력으로도 이 여러 중생들이 대복을 누리는데,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성인이 되면 어찌 되겠어요?"

    "이 세상이 곧 극락이요 선경이지."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 마음은 그저 화평하니 싸움이 없겠지요? 잡아먹고 먹히는 일도 없겠고요. 정말 태평성대가 오겠네요."

    "그렇고말고. 대평화의 시대지."

    "정말 그리 될까요, 형님?"

    "나는 확신하네. 옛 선지자들 말씀이 지금까지 하나도 안 틀렸어."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올까요?"

    "글쎄, 어느 선지자께선 앞으로 40년 후라 이르셨네. 두고 봐야지. 하지만 스승님께선 정확히 아실 거야."

    "40년요?  그럼 우리도 잘하면 보겠구먼요."

    석주는 기뻤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늘 남들한테 지기만 했던 석주에게 연약한 짐승들은 자기의 분신과도 같았다. 강한 짐승들에게   쫒기고 잡아멱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사람들이 짐승들을 무자비하게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학대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처럼 괴로웠다. 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석주는 오래 전부터 육식을 끊었다. 이런 석주한테 필섭이 전한 선지자들이 예언은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날 저녁 석주와 필섭은 식사를 하지 않았다. 허기를 느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말아 보자고 필섭이 제안했던 것이다. 석주는 그 제안에 쾌히 동의했다.

    짐승들은 그 후에도 닷세 동안 초막으로 몰려왔다. 갈수록 수가 불어났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닷새째 되는 날에는 마당이 꽉 찼다.

    병들고 상처받은 짐승들도 많이 왔다. 그들은 몰라보게  좋아져서 돌아갔다. 그들 중에 중병을 앓거나 상처가 깊은 짐승들은 며칠 동안 초막에 계속 머물렀다, 2,3일 지나자 그들 역시 병이 나았고, 상처가 아물었다.

    석주와 필섭은 닷새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런데도 시장기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처음 이틀간은 가끔 물만 마셨다. 사흘째부터는 물도 끊었다. 갈증까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때 청령자도 사냥을 나가지 않았다. 며칠 동안 내내, 가지 위에 고요히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있었다.

    혜원이 밖에서 수련한 지 여드레째 되는 날 저녁이었다. 이날은 짐승들이 모두 돌아갔다. 중병으로 시달리던 짐승들도 하루만에 씻은 듯이 병이 나았던 것이다.

    그 이튿날이었다. 이날도 석주는 짐승들이 몰려오는 광경을 지켜보기 위해거 동트기 전에 마당으로 나갔다. 오늘은 또 어떤 짐승들이 올까, 얼마나 많이 올까, 이런 생각을 하는 석주의 가슴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밖으로 나온 지 반시간쯤 지나서 동이 텄다. 다른 날 같으면 짐승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한 마리도 오지 않았다. 날이 환하게 밝은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 아무도 안 올까요? 이상하네요?"

    필섭이 밖으로 나오자 석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글쎄, 왜 그런지 모르겠네. 좀더 두고 보세."

    두 사람은 한 시간 가량 더 기다렸다. 산새 한마리 마당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초막의 마당은 썰물이 빠져 나간 바다처럼 공허하고 적막했다.

    혜원인 해가 백학봉 위로 떠오른 뒤에댜 마당에 나왔다.

    "도제, 오늘은 짐승들이 하나도 안 오네. 어찌 된 일일까?"

    석주가 혜원에게 물었다. 혜원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고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일을 끝내셨나 봐요. 인연이 닿는 중생들은 모두 다녀갔나 보군요."

    "스승님께서 하시는 일이 뭐지, 도제?"

    필섭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혜원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스승님께서 하시는 일은 전부 하늘의 도를 널리 펼치시는 게 아닐까요?"